딱딱한꿈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까지?

공현 2010. 4. 27. 02:38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까지."라는 자유주의적인 경구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범위를 단순 명쾌하게 정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그다지 많은 것을 알려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에 따르면, 우리는 내 자유의 범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자유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고, 그 타인의 자유의 범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다시 나의 자유를 기준으로 삼아야만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양쪽 모두 그 범위를 규정할 수 없게 되고 만다.

그래서 아주 순수하게 저 명제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가 자유에 대해 상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이 안 되는 결론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이런 사고실험을 해보자. 나 한 명 외에는 아무도 없는 좁은 세계를 가정한다. 그 세계에는 타인이 없기 때문에 나의 자유에 한계를 짓는 요소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 타인이 생겨난다면? 그 타인이 생겨나는 것 자체가 그 전까지 내가 갖고 있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되고 만다!! 결국 우리는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까지"라는 명제에서부터, 다른 사람에게는 존재할 자유조차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다른 예로, 어떤 사람이 붉은색을 두드러기 날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싫어하는 색을 안 보고 편하게 길을 다닐 자유"를 위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 붉은색 옷을 입을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이 경우에 사람들은 "좋아하는 색의 옷을 입을 자유"(법적, 인권적 이름을 붙인다면 개성발현의 자유, 자기결정권, 표현의 자유 등)를 침해하는 것은 자유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왜 그 역은 성립하지 못하는가? 자신의 싫어하는 색을 보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붉은 옷 착용은 왜 자유로 인정되는가?

곧,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까지."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우선시되는 자유의 범위가 이미 규정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애초에, 자유는 내가 다른 사람 - 세계와 맺는 관계 속에서 행위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개인과 개인이 서로의 고유한 영역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뭘 하든 아무 상관 없다는 뉘앙스를 가진 이런 자유론은 비현실적이다.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자유들에서 나타나는 온갖 양상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기본적인 자유의 범위가 이미 규정되어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자유가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는 점도 그렇고, 우리는 자유가 지극히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자유'의 범위나 내용은 항상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규정되는 것이다. 애초에 자유('스스로에게서 비롯됨')의 원천인 자신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존재가 아니던가? 우리가 자유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항상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