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인권단체 항의서한) 이삼열 전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대위 경선 후보의 행보를 우려하며……

공현 2010. 4. 30. 03:13

이삼열 전 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대위 경선 후보의 행보를 우려하며……


여느 때보다 스산한 4월입니다. 좀처럼 따뜻해질 줄 모르는 날씨 탓도 있겠지만,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은 여러 불쾌한 소식 때문에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육현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안고 서울시 민주진보교육감 범시민추대위원회(아래 추대위)에 참여했던 인권단체들입니다.

하루치 신문만 읽어도 분노 수치가 한없이 올라가는 요즘, 4월 23일 추대위 경선과정에 참여했다 사퇴한 이삼열 씨가 발송한 전자우편을 받았습니다. 경선 투표 바로 전날까지도 추대위 후보로서 토론회에 참석했던 이삼열 씨가 경선 당일(지난 4월 14일)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고 느닷없이 사퇴한다는 뜻을 문자로 통보했을 때의 황당함이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삼열 씨가 ‘내가 사퇴한 걸로 오해 말라’면서 보내온 편지 내용을 보고 나니 더더욱 당혹스럽습니다. 교육감 선거를 한달 여 앞으로 남겨둔 지금은 민주진보교육감 당선을 위해 입품, 발품을 팔기에도 모자란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부러 시간을 내어 답장을 보내는 이유는 이삼열 씨의 편지에 담긴 내용이 추대위에 참여했던 단체들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편지의 도입부에서 이삼열 씨는 일부 언론 표현을 인용하며 추대위의 경선 과정이 '반쪽 경선, 미완의 경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추대위 경선 과정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과정이 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선 직전 돌발 사퇴로 ‘반쪽 경선, 미완의 경선’을 만든 몫을 나눠야 할 이삼열 씨의 편지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우리가 추대위에 참여했던 마음과 이삼열 씨가 추대위에 참여했던 마음은, 아마도 같지 않았나 봅니다.

우리는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현장에서 느꼈던 고민과 대안적 교육 방향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후보와 함께 폭주하는 MB교육을 심판하기 위하여 추대위에 참여했습니다. 경쟁만을 강요하며 학생의 존엄을 훼손하는 교육정책에 맞서 대안적 교육을 설계할 때 ‘인권’이 묵직한 열쇠말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권’만으로는 부족하겠지만, 단일 후보가 누구로 결정되든 인권이라는 열쇠말을 놓지 않고 본선에 나가 시민들과 대화하고, 나아가 당선까지 되면 좋겠단 바람으로 우리가 보탤 수 있는 힘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 후보들의 공약을 꼼꼼히 검토하고 정책질의서에 대한 답변과 토론회 분석을 통해 어느 후보가 우리의 바람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지, MB교육에 대한 대항 흐름을 조직하는 데 누가 가장 우리와 호흡을 맞출 만한 인물인지를 보고 최종 선택을 내렸습니다. 우리와 친한 후보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공약 내용과 후보로서의 준비됨을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물론 이번 추대위 경선과정에 여러 아쉬움이 있기는 합니다. 우리도 ‘운영위 단체 투표 20%, 시민공천단 투표 30%, 여론조사 50%’로 후보를 결정한다는 경선 룰이 완전히 민주적이고 공정하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짧은 시간 동안 추대위에 모인 그 많은 단체가 여러 이견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한 결과 도달한 최선의 결론이었기에 존중했던 것입니다. 추대위에 모인 단체들이 바라는 대안적 교육정책과 ‘민주진보교육감의 상’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도 아쉽습니다. 그러나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추대위 경선과정에 열심히 참여하고 후보 선택에 심혈을 기울이고 경선 결과를 존중하는 이유는, 경선 결과 단일후보가 된 곽노현이라는 인물 역시 어려운 조건에서도 추대위가 일구어낸 성과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이삼열 씨가 그간 보여왔던 행보를 보면, 과연 추대위의 ‘조직 후보’가 되는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이삼열 씨가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면, 추대위에 모인 단체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후보였다면, 경선과정에서의 불충분함을 추대위 안에서 채우려고 노력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삼열 씨의 행보는 경선 승리에만 목표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민주진보교육감을 추대하기 위해 추대위에 참여한 것이지, 누군가의 승리에 들러리 서기 위해 추대위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추대위와 곽노현 후보 쪽을 흠집 내면서 내세우는 근거들을 스스로 배반해온 사람이 이삼열 씨 본인 아니었던가요?

이삼열 씨는 4월 14일 <레디앙>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부영 후보와 단일화를 시도했는데, 이 후보가 본선에 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둘 다 나오면 곽노현 후보에게 질 것 같아, 경선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추대위는 경선과정이 진행되는 내내 견해차가 존재하긴 했지만, 운영위원회와 전원회의 등 공식 자리를 통해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식 자리에서의 합의를 뒤로하고 다른 후보와 '물밑'에서 단일화를 논의하는 것이 과연 공정합니까? 게다가 '내가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사퇴했다‘는 경악할 만한 말씀을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하셨더군요.

사퇴 다음 날(4월 15일) 이삼열 씨 캠프 측에서 발송한 <홍윤기의 이삼열 생각 5>에서도 추대위 경선 과정을 '친소관계와 운동판 연고주의'에 기반한 비민주적인 조직표로 폄하하셨더군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추대위에 모인 단체들이 이런 일방적 모욕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단체들이 그랬는지는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나 적어도 우리 단체들은 별도 토론자리를 마련해 각 후보의 공약과 정책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꼼꼼히 살피고, 더욱 적합한 후보를 찾기 위해 추가 질의까지 건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민공천단을 낸 단체들 중에는 토론을 통해 정한 기준에 따라 공천단이 주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한 곳도 있었고, 공천단이 전적으로 알아서 판단하도록 후보들에 대한 정보 제공에만 힘쓴 단체도 있었습니다. 물론 자기 운동의 가치와 신념, 정치적 판단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나 반대하는 후보를 정한 단체도 있었을 테지만요. 그럼에도 추대위 경선과정을 연고주의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추대위 참여 단체와 회원들의 열망과 치열한 논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간 우리 교육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온 단체들을 이리도 쉽게 폄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이삼열 씨의 정책공약을 그렇게 꼼꼼히 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삼열 씨가 우리가 추대하는 후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아찔해질 정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삼열 씨가 편지를 보낸 경로는 '추대위 경선 시민 공천단 메일'이었습니다. 시민 공천단의 개인 메일은 분명 추대위 경선 과정에서만 사용하기로 약속한 것이고, 경선 이후에는 폐기하기로 약속했던 정보였습니다. 그럼에도 경선 과정에서 중도 탈퇴한 후보가 계속 이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기본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태도로 보입니다.

경찰의 선거 개입 등 현 정권의 잦은 압박 속에서도 이번 교육감 선거를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고 대안적 상상력이 넘실대는 진정한 축제의 장으로 만들려 노력하는 수많은 단체들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마십시오. 이들에 대해 이삼열 씨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의, 최소한의 배려는 ‘자리 욕심’을 버리고, 깨끗하게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시간 소모, 감정 소모를 멈추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이 편지에 대한 답은 행동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4월 29일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