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시민과 활동가 사이...?

공현 2010. 5. 4. 05:38



  예전에 ‘활기’(청소년활동기반만들기) 회의 때 제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난 솔직히 청소년활동가들이 용산 투쟁이나 이런 데에 열심히 다니는 게 맘에 안 들어." 그때 몇몇 청소년활동가들이 "헐 왜?" "못됐다."라고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笑)

  못된 저는 여전히 청소년(인권)활동가, 구체적으로는 저와 같은 단체에서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두리반이든 용산이든에 자주 갈 때마다 기분이 나쁩니다. 그리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으나, 집을 지키고 있으며 아무도 가사노동을 분담하지 않는 것에 불만이 쌓인, '정상가족 내의 어머니' 같은 느낌일까요? 그게 자기 집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들은 내버려둔 채 옆집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있는 식구들의 야박함에 대한 불만일지, 아니면 애초에 이 집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의 외로움 같은 것일지는,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요.

  표현을 바꿔서,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두리반이나 용산에 열심히 다니는 몇몇 분들은 참으로 바람직한 시민이라고. 자기 시대, 자기 지역의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하는 것은 실로 훌륭한 시민-인민의 덕목일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여러분은 참으로 훌륭한 시민이시군요."라고 이야기할 때면, 그 속에는 여러분이 좋은 청소년(인권)활동가는 아닐 수 있다는 의미 또한 포함하고 있는 것이지요. '~~활동가'라는 것은 ~~한 자기의 정치 분야를 우선시하고 그 정치 분야의 입장에서 사안들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어찌 이야기하면 여러 가지 사회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넘나들며 횡단할 수 있는 주체라거나 '시민'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주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리반 정도 규모라면 좀 미묘할 수 있겠지만, 용산쯤 되면 솔직히 관심을 가지고 일을 맡고 있고 연대하는 활동가들은 적지 않습니다.(두리반도 적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어떻게 말하면 조약골=돕헤드 씨라거나 박래군 씨 같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려고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요. 물론 모든 투쟁이 그러하지만 아무리 많은 활동가들이 연대하고 협력하여도 힘이 부족하지 않은 때라는 건 없고, 아무리 많은 활동가가 붙어 있어도 더 많은 참여와 연대를 요구하게 되는 법이지요.
  그냥 제가 생각하는 건, 왜 그런 절박함과 필요성의 논리는,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청소년운동에는 충분히 적용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겁니다. 바로 우리가 서있는 청소년운동 자체가 당장 몇 달 후에 망해서 공중분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위태로움 속에서 버티고 서있는 건데 말이지요. 아, 자기자신이 이 청소년운동에 몸담고 있다고, 청소년운동 속에 서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신다면야... 굳이 이 글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청소년(인권)활동가들에게 정도일 테니까요.


  저의 활동 조건을 악화시키는 한, 두리반이나 용산이나 비정규직운동이나 모두 저의 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저는 두리반이나 용산이나 비정규직운동 등에 지지와 참여를 드릴 수 있겠으나, 한 명의 활동가로서는 저의 적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자 하는 단순한 원리에 의해 두리반이나 용산이 빨리 해결되어서 사라지길 바랍니다. 그 둘은 일단 현상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동기 면에서는 참으로 큰 차이가 있지요. 뭐 그래서 '활기'가 중요한 걸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활동기반이 탄탄하게 마련되어서 활동가들이 안정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경제적 기반이 존재하고 있다면, 제가 최소한 두리반이나 용산 등을 '적'으로까지는 여기지 않아도 되겠지요.

  뭐 최근 들어서는 몇몇 분들의 그런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행위들이 운동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요소도 찾아내기야 했습니다. 운동이나 단체의 역량을 직접적으로 소모하지 않으면서(간접적으로야 꽤 많이 깎아먹지만요.) 주변의 다른 활동가들과 운동에 인맥을 쌓고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은 여러 사안에 적극 연대한다."라는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효과가 있는 듯하더군요. 간접적으로 손해를 입히는 만큼, 간접적으로 이득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일단은 쌤쌤으로 생각해둘까 합니다.

  제가 여전히 몇몇 분들의 그런 식의 방식에 반대한다는 건 당분간은 변함 없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다른 분들의 자유로운 사회적 활동들을 제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의 불만 표현 정도야 아주 평화적인 애교 수준이지요.







(이 글은 이 사진을 보고서 생각났던 것들을 정리한 겁니다. 여기에 절반 이상이 청소년(인권)활동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