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2010. 9. 2. 03:23


자화상

몇살부터일까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시청을 지나 서울역을 지나 용산을 지나 신림을 지나는 어느 버스 안에서
밤빛 유리창에 비스듬히 비치는 빗방울 돋아난 우리의 얼굴을 보면서

삐죽빼죽 알록달록 잘만 그리던 우리의 얼굴이
언제부터 백지 앞에 막막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건지
눈을 믿지 못하게 된 건지 손을 믿지 못하게 된 건지
그리지 못할만큼 추하게 되어버린 건지, 우리의 얼굴이

우리가 서로를 탓하는 사이
눈에서 뺨에서 귀에서 코에서 입에서 여드름에서 흉터에서
돋아난 빗방울들이 빗겨 흐른다
우리 모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 누구도 자신의 얼굴을 책임질 수는 없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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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시랑은 전혀 상관 없는 감상일 지는 모르지만, 역시 오늘 밤 태풍은 굉장해.

    2010.09.02 05:48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