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꿈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공현 2010. 9. 20. 22:19





임시 야간 숙소 (1931년)

                                      - 베르톨트 브레히트

듣건대 뉴욕
26번가와 브로드웨이 교차로 한 귀퉁이에
겨울 저녁마다 한 남자가 서서
모여드는 무숙자들을 위하여
행인들로부터 돈을 거두어 임시 야간 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한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임시 야간 숙소」에서 말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가끔 나도 어떤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라고.
그 '어떤 사람들'이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변화를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들. 소통 부족이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열린 토론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 투쟁적이고 배타적인 태도가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

물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론장을 형성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 태도가 정착된 사회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모습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세계를,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의 가장 큰 오류는 우리 사회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합리적인 개인들의 집합'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런 사고방식은 중산층-중간계급적인 태도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사회 구조인 현실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 사이의 관계나 소통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이거나 대안일 수는 있어도 수단이 될 수 없다. 이미 우리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서로 다른 사회적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데, '열린 토론'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그러한 '합리성'을 독점한 자들의 자기들에게 유리한 생각은 아닌가?
우리가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것 또한, 그저 그 의견이 탄압받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선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립하는 것을 놓고 '불통'이라거나 다른 것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참으로 난감하다.

이 세계의 문제는 '서로 소통하지 않는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문제, 권력의 문제,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소통'이나 '토론' 같은 언어에서가 아니라 행동과 사건에서 나온다. '소통'과 '토론'은 그러한 행동과 사건을 뒷받침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만 의미있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그렇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착취의 시대'라는 것이다. 불통의 시대가 아니라 착취의 시대. 불통은 그러한 착취적 관계의 한 현상에 불과하다.
마르크스 또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평등한 공동체"를 꿈꾸었지만 그것이 소통과 열린 토론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소통을 말하는 이들을 믿지 않는다.





p.s. 쉽게 말해, 4대강 삽질에 관해서 소통을 백날 해도 4대강 삽질에 얽힌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은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발자유에 관해서 소통을 백날 해도, 두발규제-두발자유에 얽힌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은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동의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한 설득과 선전, 소통의 과정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소통의 역할에 과한 비중을 두는 것은 온당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