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나의 대학거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은

공현 2011. 11. 8. 13:03

[나의 대학거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은

어쓰


(1) 작년,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청소년인권활동을 시작했다. (2) 이미 고등학교는 자퇴한 상태였고, 그렇게 나름 열심히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스무 살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3)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해가 지나 스무 살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나는 비(非) 대학생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끝.

이렇게 달랑 세 문장으로 정리되는 ‘나의 대학거부’를 글로 풀어 쓰려고 하니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한 번, 조금 더 길게 주절거려 보자면…….

1. 열아홉, 청춘?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그 때, 청소년들의 사회참여가 어쩌고저쩌고 시끄러웠던 그 해 여름, 광화문이나 시청 한 번 안 가고 나름 착실하게(?) 살다가 학교를 자퇴했다. 뭔가 뚜렷한 생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학교에서 매일매일 맞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마치 재채기가 튀어나오듯이 덜컥 저질러버린 자퇴였다.

그렇게 학교 밖에서 살아가게 된 후, 대안학교에도 가보고 이런저런 공간들에도 갔지만, 대개 아무 것도 안 하고 멍하니 살았다. 하루에 20시간쯤 자보기도 하고, 온종일 만화책만 보면서 뒹굴거리기도 했다. 한 2주일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기도 하고,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뭘 할까를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주로 음침하고 우울하게, 그리고 쓸모없게 살아갔다.

‘10대’, ‘밝음’, ‘반짝반짝한 청춘’ 따위는 대부분의 경우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적어도 나의 10대는 전혀 반짝거리지도, 보람차지도 않았던 것 같다. 뭘 해도 즐겁다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그 ‘청춘’은 나를 비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청소년인권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열아홉 살, 작년에 썼던 글들의 대부분이 ‘힘들고 막막하고 서럽다’ 로 요약되는 걸 보면 확실히 드러나더라.

처음에는, 학교를 자퇴한 걸 후회했다. 자퇴를 할 당시 수도 없이 들었던 “조금만 더 참지 그랬어”라는 말을 내가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삼 년만 더 참아볼 걸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지금 나의 이 우울함과 찌질함은 전부 다 ‘고등학교→(수능)→대학교’라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그 루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고민들을 정리하거나 추스를 틈도 없이, 어느 새 어영부영 스무 살이 됐다.

위 사진:지난 10월 31일 홍대 앞 거리에서 진행된 '입시좀비 스펙좀비 할로윈행진'.

2. 스무 살, 인생

사실 스무 살이 됐을 때, 내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이라는 장소는 오히려 나에겐 그렇게 가깝거나 실감나는 장소가 아니었기에, 학교에 다닐 때의 친구들이 다들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내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열아홉 살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은, 딱 어느 시점이라기보다는 그냥 서서히,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계속 청소년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뭐 먹고 살지?’부터 시작해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까지. 5년 후, 10년 후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리고 나이에 따른 위계/권력에 반대하는 소위 ‘운동판’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나 자신도 그렇게 나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또 딱히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단지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넘어왔을 뿐인데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며 불안해하다니.

‘모든 건 구조의 탓이다’라는 식의 논법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런 식의 거창한 의미부여와 과장된 불안함 역시 이 사회에서 ‘스무 살’, ‘성년’들에게 요구하는 그 역할과 의무들을, 동시에 스무 살이 되는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권리와 권한 - 술/담배부터 시작해서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까지 - 들을 무시하기 힘들었던 탓이 아닐까, 라는 식의 생각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에, 같이 활동을 해오던 93년생/19살 친구들의 대학/입시거부운동이 시작되었다. 19살/고3들의 선언 외에 20대의 대학거부선언도 준비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같이 운동을 꾸려나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또 했다.

사실 어떻게 살지 모르겠고 불안하고 힘든 건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학/입시거부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대학을 안 가면 살기 힘들지만, 사실은 대학에 가더라도 살아남기 힘든 사회.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누가 과연 ‘나는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외곽에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쳐내는 방식으로 아직까지는 내쳐지지 않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쟤네가 힘든 건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희는 대학에 갔으니까, 너희는 괜찮아.” 하지만, 정말 괜찮은가?

결국 문제는 어떤 한 개인이 대학에 갔거나, 가지 않았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사회가 불안하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지기 힘들다면, 지금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대학을 거부함으로써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보려는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 다 안다. 알지만.

3. 그래도?

뭐 이렇게 글을 써봤자 그런 불안함이 절대 사라지지는 않더라. 여전히 불안하고, 뭐 먹고 살아야 할 지 모르겠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리고 당분간, 아마도 높은 확률로 평생 이런 불안함들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위 사진:지난 10월 22일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대학입시 거부 뻥튀기 선전전' 중.

설령 그렇더라도,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 거야’ 따위의 근거 없는 믿음으로 나를 속이면서 사는 것 보다는, 힘들더라도 그 불안을 직시하고 사는 게 조금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 불안해하며 끙끙거리는 것 보다는 “나 힘들어, 너도 힘들어? 그러면 어떻게 해 볼까?”같은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그래도 약간은 더 마음 편하더라.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서 활동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지 않은 20대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기뻤다. 이 사회에서, 각자의 불안을 그저 혼자서 처리하라고 요구받는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어느 한 새벽, 문득 찾아오곤 하는 참을 수 없는 그 감정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잘 상상이 안됐다. 그런 얘기들을, 그런 고민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게 내가 찾은 대학거부운동의 의미였다. 일단 지금은, 그리고 당분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원해보자면, 이런 불안들을 함께 털어버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단순히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 받고 위로받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 협동조합일 수도 있고 네트워크일 수도 있는 ‘모임’을 꾸려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박하면서도 사실 엄청나게 거창한 꿈을 꾸며, 정작 그다지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나의 대학거부 이야기는 여기까지. 흠.
덧붙이는 글
어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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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3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2일 13:4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