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수필 - 최선을 다하는 것

공현 2008. 1. 30. 23:56
최선을 다하는 것


  우리는 종종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쓴다. 그 말이 언급되는 것은 삶의 지혜를 말하는 자리에서일 때도 있으며, 어떤 일에 대해 변명하는 자리일 때도 있다.

  최선을 다한다. ― 이는 실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모호한 말이지만, 고3 교실에서 사용될 때는 종종, 고상하게 말하면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에 투자하는 것, 대놓고 말하면 사회적․유희적 인간으로서의 여러 가지 욕망들을 최대한 죽이고 입시용 공부에 전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3 교실에 앉아서 속으로는 죽어라 욕을 해대며 작년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주는 세계사 선생님을 노려보고 있다 보면 "어문 데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비단 고3 교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새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오직 하나만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직접적으로는 분명 온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본래 최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인간에게 최선은 아마 행복일 것이다. 그리고 행복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겠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개념을 빌자면, 행복이란 원칙적으로는 삶 전체, 나라고 하는 존재 전체를 두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그러므로 (입시) 공부는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최선을 다해 다른 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해야 나중에 후회를 안 한다고 하는 이야기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그 공부조차 제대로 못해서야 쓰겠냐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는 대체 어째서 전부가 아닌 공부를 그들이 말하는 '제대로'의 수준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다른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입시 공부에 매달리는 것은, 최선이 아니라 생활의 기형적인 불균형이라고 불러야 옳다. 만약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그런 의미였다면, 나는 몇 달 전에 학교고 수학능력시험이고 때려쳤어야 할 것이다. 내가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쪽에만 전념하기 위해서.

  어설프게 안 경제학이 잘못된 인식을 형성했다고나 할까. 경제학에는 가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 전부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경제 원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하자면 논리적인 이야기이며, 그 원리를 생활에 적용하면서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비약이다. 내가 18시부터 19시까지 부산에 있기로 했다면 18시부터 19시까지 부산에 있으면서 동시에 남극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라든가 내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하기로 했으면 마음고생을 할 각오는 해야 한다는 것이 이 경제 원리의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죽도록 공부만 해야 한다."라든가 "행복하려면 지금은 오직 공부만 해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제한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경제학에는 실제로 "효과적인 의사결정이란 보통 어떤 것을 조금 더 가지고 어떤 것을 조금 덜 가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전부 아니면 무(all or nothing)’의 방식으로 결정해야 하는 것은 거의 없다."와 같은 원리도 있다.

  요컨대,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흔히들 쓰는 시쳇말로, 올인(all-in)과 같은 것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기 삶에서 내가 어떤 가치들을 어느 정도로 중요히 여기고 또 그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치열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 성찰의 결과가 어떤 한 가치를 위한 다른 가치들의 희생일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며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 자신을 혹사시키며 죽어라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하나를 위해 다른 것들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했다면 그 선택에는 어떤 찌꺼기도 없을 것이며, 그 생활은 괴롭더라도 보람찰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가 반드시 간절히 원하고 싶은 단 하나의 소망을 갖고서 다른 모든 가치들을 희생시키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무언가 하나의 정해진 가치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하나의 가치만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은 오히려 "나는 경험하기 위해 산다."(홍정훈)와 같은 입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현재와 미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언제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한다거나 현재를 위해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여러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것들에 어떻게 우리 삶의 비중을 배분할지 그 구체적인 결정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며, 우리는 그 가치관의 차이, 실천의 차이에 따라 각자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관건은 치열하게 사는 것 ― 이는 내가 한 선생님께 들은 이후로 항상 간직하고 살려 노력하는 말 중 하나인데 ― 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비록 최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항상 최선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치열한 삶의 자세, 현재에 충실한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대학 학벌에 굉장히 많이 집착하면서도 대학 입시는 보기 귀찮아한다면 당신은 치열하지 않은 자세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며, 나중에 자신이 원하는 학벌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과거의 자신이나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 이런 경우만큼은 치열하지 않은 자세가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지만….) 만일 당신이 어떤 법안에 반대하는데, 그에 대한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진실성과 삶의 치열함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행복도 성공도 어느 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이 여러 가지 가치를 모두 이루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위해 다른 소중한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처럼 느껴진다. 현실에서는 종종 그런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좀 더 나은 선택은 없을까?" 그건 마치,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개발독재를 비판하고 둘 모두를 이룰, 좀 더 나은 방법은 없었을지 따져 물어야 하는 것과 같다. 『퇴마록』에 나오듯, 세상이 멸망하느냐 내가 희생하느냐의 기로에서도 둘 모두 살 길은 없을지 생각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길은 언제나 무한히 있다. 어느 한 쪽을 버리는 것은 최후의 최후의 최후에야 선택해도 좋은 차선책이다.


  얼마 전에 어떤 선생님께서 고3 교실인데 점심시간에 공부는 안하고 뭐가 이렇게 시끄럽냐고, 아직 철딱서니가 없다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소란한 것도 나름대로 즐겁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어주었다. 나는 급우들이 그렇게 떠들어 놓고 떠든 사람 본인이 나중에 오늘도 공부를 못했다면서 불평하는 것은 정말 싫어하지만,(이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후회'다.) 떠드는 것 자체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지나친 소음은 귀에 좋지 않긴 하지만, 적당하게 떠드는 환경이, 바로 옆 공기 중에도 입시주의 담론이 꽉 차있는 듯한 숨 막히는 침묵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단 하나의 가치를 맹신하고 다른 데 눈을 돌릴 줄 모르는 삶과, 여러 가치와 여러 길에 눈을 돌릴 줄 아는 삶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철딱서니가 없는 것일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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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1318virus.net/modules/news/view.php?id=2516

-야! 바위 한국교육
<칼럼> 잘만뽑으면 인생역전 Look SKY, It's different!
양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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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미야치 나오스케, 너도 이상해. 어째서 불행을 선택하지? 그리고 어째서 결혼 아니면 구보라는 양자택일, 취사선택이 되는 거지?”

 “어째서라니….”

 “미야치 나오스케, 그건 타협이라는 거다.”

 크게 한숨을 쉬며 심호흡을 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잘 들어, 미야치 나오스케. 그리고 도지마 코우도. 난 내 해피엔딩을 의심한 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에 일말의 타협도 할 생각은 없다. 난 미키와 결혼할 거고, 구보도 구한다. 적군 아군을 불문하고 사람을 죽게 만들 생각도 없고, 언젠가는 나데시코 누나한테도 이 결혼을 인정받을 거다. 난 축복받는 결혼을 할 테고, 최소한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아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아갈 거다.”

 “엄청난 인생 설계.”

 코우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 명이나?”

 “다섯 명 이상이다”라고 말을 받는 부장.

 “그게, 그게 내 꿈이다. 그리고 난 그 어느 것도 취사선택할 생각은 없다. 왜냐면 모든 것을 실현할 것이고, 그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난 해피엔딩을 믿고 있으며, 행복해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래는 언제나 희망으로 넘쳐나고 있어야 한다!”

 미래를, 가능성을 믿지 않고 대체 무엇을 믿는가?


(우에오 히사미츠 지음, 한나리 옮김, 『악마의 파트너 8 It/'Dog Days'를 보내는 방법』 대원씨아이 中)


*

 “분명히 말했다. 길은 둘 중 하나라고.”
 “뭐?”
 나데시코를 무시한 채 미키에게 말을 거는 부장.
 “속지 마, 미키. 퀴즈도 아니고 시험도 아닌데 길이 둘 중 하나일 리 없어! 길은 언제나 무한히 있는 거야!
 “모토나리….”
 “생각을 멈추어서는 안 돼! 생각해, 미키. 생각해서, 이 경우 제3의 길을 선택해야 해. 거기에 우리 행복이 있어!”
 “제, 제3의 길….”
 “제, 제3의 길이라니!”
 몸을 숙여 부장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새된 소리를 지르는 나데시코.
 “이 상황에 달리 어떤 길이 있는데!”
 ‘바보 같은 소리. 죽어!’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이 녀석한테 하나다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건 어떨까”하며 개의치 않고 이렇게 나불대는 그를 보고는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우선 모두 총을 내려놓고 대화를 나누는 거다. 다 함께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필사적으로 참으며 부장을 째려본다.
 그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날 바보로 아나?’
 ‘아니면 이 녀석, 진짜 바보인가?’
 미츠카 모토나리는 진지하게 나데시코를 보고 말했다.
 “당신도 사실은 미키가 행복해지길 바랄 것이다.”
 “그… 그건….”
 고개를 흔든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하나다파의 존속 문제야. 난 하나다파의 당―.”
 “하나다파도 살아남고 미키도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지 않나?”
 “물론 생각해!”
 이젠 절규다.
 “그럴 수 없으니까 이 고생을 하는 거잖아! 넌 정말―.”
 “가능하다.”
 자신감 넘치는 부장.
 할 말을 잃은 나데시코는 본 체 만 체하고 미키를 본다.
 “그게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모토나리….”
 “잘 들어, 미키. 우선 총을 놓고 부탁하는 거다. 살려달라고. 서로 돕자고, 그리고 대화를 나누자고.”
 “미쳤어.”
 말을 끊는 나데시코를 여전히 무시하고 말을 잇는다.
 “잘 들어, 미키.”
 “총은, 폭력은 생각을 멈춘 자가 내리는 결론이야. 그리고 생각을 포기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배신 행위다. 생각을 멈추어서는 안 돼. 총은 내려놓고 믿는 거야, 당신 언니를. 미키가 믿어야 상대방도 믿어. 상대를 믿고, 그리고 해피엔딩을 믿는 거다. 그러려면 우선 총을 내려놔, 미키.”


(중략)


 “네게는!”
 이제는 절규하며 미키에게 총구를 겨눈다.
 “나를 죽이고 함께 죽느냐, 자신을 죽이고 결혼하느냐밖에 없다구!”
 ‘그래, 그것밖에 없어.’
 ‘다 함께 행복해질 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 미츠카 모토나리, 네 말은 안이한 이상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그리고 미키는 스스로 희생하는 길을 택하겠지. 그 길밖에 없다. 그래. 나데시코는 땅에 쓰러져 있는 부장을 보았다. 잘 들어, 미츠카 모토나리. 앞으로 네가 살아남아 행복해진다고 쳐도(행복해질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건 미키가 자신을 희생해서 그런 거다. 다 함께 행복해질 수는 없어. 행복을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성립하는 거다. 미키가 희생하지 않으면 하나다파가 망하는 것만큼 분명한 일이다.
 ‘맞아.’
 ‘미키가 권총을 버릴 리 없어. 나를 쏠지언정 버릴 리 없어. 절대―.’
 ‘미키는 그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
 ‘절대―.’

 “미키?”

 “미키?”

 미키는 잠시 자신의 권총을 바라봤다.
 무표정하게.

(우에오 히사미츠 지음, 한나리 옮김, 『악마의 파트너 9 It/'Dog Days'를 마치는 방법』 대원씨아이 中)




(하나다 미키가 과연 무엇을 선택했을지는 직접 책을 읽으시길.

미츠카 모토나리 - 부장. 악마의 파트너 8, 9권에서 너무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5권 끝부분에서 올라갔던 저의 호감도를 확실하게 높여주는군요. 악마의 파트너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