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아침, 욕실, 거울 앞

공현 2008. 1. 31. 00:00

아침, 욕실, 거울 앞


저녁을 닮은 노란 조명 속
눈 밑부터 번져나는 마른 밤과
에누리 없이 얼굴을 맞대게 된다

검은 무기질 눈동자 위에
방울진 불빛이 미끄러지고
샤워기의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아래로 아래로 가랁는 머리칼
그러나 아무리 수도꼭지가
더운 숨결을 토하며 곡조를 뽑아도
무기질 눈동자는 젖질 않는다

몸 가운데선 거뭇한 죽음이 흔들거린다
젖을 줄 모르는 건 죽은 고깃덩이일 뿐이다
드러난 갈빗대처럼 앙상한 눈동자가
물 묻는 것은 고작해야 물든 몸뚱아리
그 거죽뿐인
고깃덩이 씻는 풍경을 건조하게 더듬다가
묻는다, 이 고긴 몇 등급이며 누가 사서 먹을 게냐

어머니는 새벽부터 이웃집을 청소하러
가셨다 가버리셨다
렌지로 몇 분을 데워도 속은 데워지질 않는 두부를 씹는다
나도, 어머니도,
다 지울 수 없는 마른 곰팡이가
몸 가운데서 번지고 있겠다

거울 앞에서 고개숙인 죽음을 바라본다
나는 말하자면,
네가 조심스레 누르는 초인종 소리와
거리에서 꿈틀대는 바람을 기대해 본다
가운데서 흔들거리는 죽음을 달래기 위해
눈 밑에서 짙어지는 곰팡일 뱉어내기 위해

나는 샤워기보다 수도꼭지보다 더 크게
조금은 우울한 노래를 부른다
검은 눈동자 다시 젖을 때까지
조금은 사실적인 노래를 부른다
다시 젖은 눈으로 너를 맞고 싶어서
내 몸뚱아리를
그리고 그 목구멍 안쪽을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