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청소년운동의 교육운동을 꿈꾸며

공현 2012. 7. 13. 22:48


청소년운동의 교육운동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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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시기 마지막 일제고사가 지나갔습니다. 별로 다를 것 없는 일제고사였습니다. 반대하고, 감행하고, 체험학습 가고... 일제고사에 반대한다고 하는 세력들도 일제고사가 치러지는 그 시기에만 잠깐 집중력을 보여줄 뿐 지속적으로 투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제고사는 관례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앞으로 일제고사는? 다음 대선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또는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그렇겠죠? 그럴까요?

   2008년 10월부터 2010년 7월까지 대략 3년 동안 일제고사 반대 운동에 같이 했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론 참 별로였습니다. 교사,학부모 등의 ‘교육운동’에 회의도 느꼈고, 청소년운동의 무능함, 무력함도 많이 절감했습니다. 사실 일제고사 반대 운동의 주된 방법이었던 체험학습은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적절한 투쟁방법이 아니었고, ‘체험학습 몇 명 참여했냐’에만 얘기가 집중되는 상황에서 청소년운동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운동에는 독자적인 투쟁을 기획할 조직력도 없었습니다.

   한편으론 ‘일제고사 폐지’가 청소년들이 실감하는 교육 현실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효과와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청소년들 중에 초등학생, 초등학교는 좀 가시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미 입시교육, 진학.취업 실적 등이 지배하는 중고등학교에 시험 하나 더 생긴 게 학생들의 삶에 중대한 사건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매년 수능이라는 ‘강력한’ 일제고사를 치르고 있고 ‘모의고사’들도 수두룩하지 않냔 말입니다. 고등학생들이 체감하기엔 일제고사는 어쩌면 내신등급제보다 파급력이 미미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제고사 반대 운동은 청소년운동으로선 수세적이고 소극적인 운동입니다. 승리하더라도 새로운 걸 얻지 못할 운동. 그것이 과연 청소년운동이 집중할 만한 적절한 운동일까요? 이러한 회의와 비판은 2008년부터 운동 내에서 제기되어 왔습니다.

   ‘선행학습금지법’이나 ‘국립대 법인화’, 뭐 하다못해 ‘사교육비’ 같은 이슈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런 의제들이나 운동들의 중요성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런 의제들이 청소년들의 삶과 청소년운동의 현실을 고려할 때, 청소년운동의 자체적인 교육운동을 만드는 데 적절한 지, 그런 부분이 회의적이란 것뿐입니다. 최근 <고래가 그랬어>와 <경향신문>에서 퍼뜨리고 있는 ‘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의 경우 내용적은 적절성이 있으나 어쨌든 (학)부모-친권자를 주체로 한 방식이란 한계는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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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청소년운동이 더 강해지고 조직화된 청소년들이 교육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초.중등 교육 현실 및 고등(대학)교육 현실 일부가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믿습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운동’, 특히 교사조직(전교조) 중심의 운동이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은 교육의 현실이든 무기력한 운동.조직의 현실이든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례한 말일 수 있지만, 저는 가끔은 활동가들 외에 조직화된 교사 집단에게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투쟁할 절박성이 있는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교사 조직. 집단이 교육운동에 대해 무책임한 행태를 보일 때 특히 그렇습니다.

  나중에 잘 안 됐을 때를 위해 보험을 들어두자면(;;), 제가 청소년운동이 흥하는 게 해법이라는 것도 아니고, 교사(또는 학부모, 시민)운동이 쓸모없단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역시 청소년들의 해방을 청소년들 자신의 힘없이 이룰 순 없는 법 아니겠냐는 그런 원론적인 얘기입니다. 그리고 교육 문제에서 당장의 절박성이 있는 당사자, 교육에서 노동자도 소비자도 아닌 ‘상품’ 취급을 당하는 청소년들이 조직화되고 독자적으로 투쟁을 열고 다른 주체들을 추동하지 못한다면, 교육운동이 답답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요새 민주당이 공약으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를 검토하네 어쩌네 해도, 그것이 파편화된 반짝 이슈성 정책 쪼가리가 아니라 총체적인 방향성이 있는 실질적 변혁이 되게 하기 위해선 결국 청소년들의 힘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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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운동의 교육운동. 머리가 복잡해지는 주제지만, 어쨌건 시작은 작은 데서부터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얘기하는 내용이 소심할 것까진 없습니다. 내용이 청소년들에게 와닿을 수 있고 실질적으로 청소년들의 삶에 교육 현실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라면 거창해도 급진적이어도 좋지 않을까요? 시험폐지, 숙제폐지, 대학 평준화, 학교.학원 다 꺼져라, 뭐든 가능하고, 그건 우리가 논의해서 정하고 또 청소년들의 피드백에 따라 조정할 문제지요. 우리가 작은 데서부터 한다는 것은 활동의 규모와 수위 얘기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것, 그러니까 우리 주장을 청소년들과 세상에 많이 알리고, 청소년들이 모이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일, 이 두 가지입니다.

  예컨대 교육에 대한 청소년들의 ‘불만 말하기 대회’, 만민공동회 같은 걸 준비하면 어떨까요. 준비도 많이 하고 홍보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며 열기만 한다고 청소년들이 막 몰려들 리도 없겠지만, 꾸준하게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시도해볼 만합니다. 논리정연한 주장 없이 학교 엿 같다고 욕을 해도 좋다고 하고, 청중들의 공감표를 가장 많이 얻은 사람에겐 작은 상품을 준다거나, 기획은 여러 가지로 짜볼 수 있을 겁니다. 교육에 불만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만나고 또 우리 주장을 알리는 자리도 될 수 있겠지요.

  또는 “시험 폐지” 같은 주장을 담은 기획 홍보물을 정기적으로 배포하면 어떨까요. 학교 안에서 학원가에서 거리에서 대량 배포하려면 물론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의 결의가 필요할 테죠. 학생들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 50장, 100장씩 뿌리고 비학생들은 인맥으로, 지역에서, 거리에서 100장씩 나눠주겠다는 식으로요. 2주에 1번씩 새 홍보물을 시리즈로 내서 게속 1만장, 2만장씩 배포하면, 10명, 20명이라도 흥미를 가지긴 하지 않을까요? 때론 배포자를 색출.징계하려는 학교도 있을 테니 학내 언론.표현의 자유 이슈가 뜰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활동을 하려면 탄압 대응팀을 미리 준비해야겠죠. 학생이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이라면 더 좋을 수도 있구요.

  물론 사전 준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내용, 의제, 디자인 등등... 안내 브로셔 하나도 제대로 준비해야죠. 2~3개월은 준비가 있어야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아니, 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는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과거 패러디했던 표어를 다시 빌려오자면, “어른(교사, 학부모)에게만 맡겨두면 교육(운동)이 망합니다.”


- 2012. 07. 08.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