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 12. 9. 11:44
[논평] 수능 뒤에도 고3들을 학교에 가둬두라고? 학생들이 노는 게 그렇게 보기 싫나?
- ‘정상화’를 원한다면 입시교육과 과중한 학습부담을 없애고,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라


11 월 7일, 2013년 수능시험이 있었다. 전국의 수험생들을 경쟁시키고 줄세우고 대학서열구조 속에 밀어 넣는 입시의 과정 중 가장 비중이 크고 상징적인 시험이 11월 7일 치러졌다. 모든 고3 학생들이 수능을 보는 수험생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몇 개월, 몇 년을 입시공부 속에 버텨온 고3 학생들 중 수십만 명이 시험을 치러냈다. 그러나 수능이 끝난 뒤에도 고3 학생들은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언론들에서는 고3 교실이 난장판이고 학생들이 학교에 제대로 출석도 하지 않는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들에서는 단축수업을 금지한다고, 정상수업을 하라는 지침을 계속해서 발표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능 일정을 늦추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수능이 끝난 뒤 학교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수능 이전에 많은 고등학교들이 입시를 교육의 목표로 삼아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수능 전부터도 본래 다수의 고등학교들은 교육기관으로서는 ‘난장판’이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에서의 성공과 승리라고 대놓고 말하고, 입시 일정에 맞춰서 무리를 해서라도 교과 진도를 마치며, 그 뒤에는 입시 준비를 위해 문제 풀이에 몰두하는 수업을 한다. 이렇게 입시학원처럼 운영되는 학교를 과연 올바른 교육기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연 수능 후의 학교가, 수능 전의 학교보다 더 난장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수능 이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처럼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 교육의 한 측면일 뿐이다. 학생들에게 “수능 때까지만 참아라.”라고 하면서 과중한 공부시간, 입시 스트레스, 학업을 강요하는 것이 입시기관 학교의 운영 방식이다. 그러니 수능이 뒤에는 학교에 붙어서 공부하라고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수능을 본 고3 학생의 입장에서는 수능 뒤에도 정상수업을 시키라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을 어기는 ‘무리수’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 와 같은 입시기관화된 학교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고3 정상수업’을 강변하는 것은, 아무래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일찍 끝나는 꼴, 쉬고 노는 꼴을 보기 싫다는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에 걸쳐 과중한 학업부담 속에 학생들을 몰아넣으면서, 고작 1-2개월 남짓 단축수업을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니까 화가 날 지경이다. 애초에 한국의 공부시간은 너무 길고 학업부담은 너무 크다. 정규수업을 오후 4시, 5시까지 하는 것이 기본이고,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 등을 하면 밤 늦게서야 하교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고도 또 학원을 가는 등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고3 때는 공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학교에 나오거나 사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과중한 학업부담은 사라져야 하고, 오히려 오후 1~2시 정도면 하교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수능시험이 끝났든 어쨌든 학생은 학교에 8, 9시간씩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과중한 학교의 일정을 계속해서 강요하려는 것은 그저 학생들을 학교에 가둬둬야 안심이 되는 강박관념은 아닌가?


수능 끝난 뒤 고3 정상수업이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입시경쟁교육을 중단하라. 입시에 올인하는 교육을 개혁하고,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바꿔내라. 현재의 과중한 학습부담을, 학생들이 감당할 만하게, 학생들의 교육권과 쉴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 정도로 줄여라. 고3 수업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하는 교육당국들은, 과연 입시기관이 되어버린 학교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해본 적은 있는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학교들을 ‘정상화’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더불어 우리는 고3 학생들을 무조건 학교에 가둬두라는 식의 지침이, 비민주적인 교육정책 결정 탓에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육부, 교육청들이 고3 학생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런 막무가내 억지 정책을 밀어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은 논란이 되자 학생들과 토론을 해보잔 식으로 말을 던졌지만, 실제로 학생들과 제대로 토론을 하기보다는 형식적으로 게시판을 열어두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학생들의 참여가 없는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은 그것만으로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 아닌 주체이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학생들이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자치를 활성화시키고 참여의 길을 열어라. 그래야만 이런 억지 정책이 강행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2013년 12월 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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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5. 5. 23:24


1
옛날에 봤던 기사인데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사가 있다.

 문화부가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작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고3"이 한국의 교육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탈락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해당 한겨레기사)

그때 그걸 보면서 든 생각 두 가지.


(1) "고3"이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현실인 걸 알긴 아는구나. 그렇게 나쁜 줄 알면 입시 문제 좀 바꾸지? 고3만 문화상징에서 제외하면 되는 건가?
(2) 문화상징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좋아보이는 환상들로 치장할 생각만 하는 거군 -_-




2
이번에 명박 씨가 어린이날 행사에 와서 "정부는 어린이들이 너무 공부에 시달리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립서비스를 하셨다는 기사를 보고 저 기사가 생각났었다.

현실의 암울함에 대해 개선하려고 하기는커녕 일제고사니 국제중이니 학교자율화니 해서 더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으면서,
말로는 공부에 시달리지 않게 하려고 한다느니 어쩌느니...
그래 행사장에서 말 몇마디 하는 거야 참 쉬운 일이지... 그래.

명박 정부가 하는 일이 대개 그렇다. 그럴 듯한 말로 사람들에게 경제가 살아날 거라느니, 일자리가 늘어날 거라느니, 녹색 성장이라느니, 선택과 다양성이라느니 하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정책의 현실은 오히려 사람들의 자유를 축소시키고, 돈 없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기회들을 축소시키는 것들.

시장에 나가서 퍼런 목도리를 선물하고 물건을 사주지만,
고환율에 대기업이나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 등등으로 물가는 치솟고 먹고 살긴 팍팍하다.

명박 씨가 청와대로 '어린이'들을 불러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요즘도
요즘 중고등학교들에서는 강제야자나 0교시가 부활했다는 소문과, 상벌점제 시행으로 퇴학당하고 학교에서 쫓겨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소문들이 계속 들려온다... 마침 중간고사가 끝날 시점이라서, 시험 성적 때문에 우울해하는 목소리들도 계속 들려온다.


강제야자를 빠져서, 100대가 넘는 체벌을 당하고 목숨을 끊는 학생이 나오는가 하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치마를 벗기는 체벌을 당하는 학생들도 있다...




3
청소년들의 현실과 환상은 어떤가.

청소년들의 현실은 암울한데, "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입니다"라고 서울역에 서있던 입간판이 얼마나 허울 좋은 거짓말로 보이던지.
청소년은 언제쯤 미래의 희망, 꿈나무가 아니라 그냥 지금 여기에 살아 있는 인간, 현재의 존재-인격체로 존중받을까.
'아동'은 언제쯤 순수와 미성숙의 환상을 벗고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으로 세상에 설 것인가.


5월 말에, 어김없이 '청소년박람회'가 있다.
청소년박람회는 올해로 5회 째인데, 청소년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세계의 주역으로 청소년을 이끌고 나가는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1회부터 5회까지 프로그램들을 보니까 거의 대부분이 동아리 공연이나 CEO 강연 등으로만 채워져 있어서
이게 어디를 봐서 "청소년박람회"인지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이 입시경쟁교육 속에서, 노동시장에서, 빈부격차 속에서, 차별적인 사회 속에서 겪는 여러 문제와 현실들을 직시하고 그런 청소년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몇몇 제도화된 문화적 활동들과, 좀 말랑말랑한 캠페인들을 배치한 행사.(성교육, 장애교육, 다문화 이해 교육, 학교폭력 예방 교육 등은 의미가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사 전체적 배치를 볼 때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얼마나 담보되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냥 적당히 무난하니까 넣은 거라는 느낌?)
그러면서 현란한 '칼라풀'을 내세우는 행사.

청소년들의 삶이 어둡기만 하다거나, 암울하기만 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청소년들은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자기들의 실력을 연마해온 많은 청소년 동아리들에게는 이 박람회가 중요한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청소년들의 많은 현실들을 외면하고 누락시키면서 "청소년박람회"라고 내세우는 게 적절한 건가.
청소년들에 대한 환상을 소비하라고 진열해놓는 진열장일 뿐은 아닌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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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1. 2. 02:05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소식지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와서 쓴 글입니다-
주제가 "수능"이었어요 -_=;;





세 종류의 “수능대박”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외면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

  내가 수능을 본 것은 그리 오래 전은 아닌 2005년의 일이었다. 비행기도 못 뜨게 하고 출근시간도 늦추게 하는 수능 시험의 당사자가 되는 게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 뭐 사실 별 것 없었다. 전교조 교사 한 명 없는 사립학교에서 고3 내내 한 달에 1~2번씩 모의고사를 지겹도록 봤던 덕인지, 그냥 좀 특이한 모의고사 하나 보는 것만 같은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이미 청소년인권운동을 시작한 지 반년 이상이 지난 뒤에 보는 수능이었기에, 수능거부라든지 안티수능페스티벌이라든지 해서 수능을 볼지 말지 남모르게 고민을 하기는 했었지만.
  그런 수능 라이프(?) 와중에도, 가장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면서 가장 역겨웠던 것은 “수능대박”을 기원한다는 응원들이었다. (2학년 때 반강제적으로 돈을 걷어가는 것에 그렇게 분개했기에 ‘고3’이 된 후에도 학생회에서 나눠준다는 엿이니 초콜렛이니 뭐니는 죄다 거부하긴 했지만.) 인터넷이건 방송이건 수능시험장 앞이건 “수능대박” “수능대박” 주문이 떠돌았다.
  수능은 상대평가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며 공부할 능력이 있나 없나 검증하겠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의 능력을 절대평가로 측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비해 잘하냐 못하냐를 평가하는 상대평가 방식의 시험이다. 수능이 상대평가라는 것은 수능에서 내가 대박이 나면 남은 못 보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내가 운이 좋아서 찍은 게 몇 개 운좋게 맞아서 원래 4등급이었을 법한 성적이 3등급이 되었다고 해보자. 나는 대박이 났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그 ‘대박’의 이면에 있는 현실은, 다른 누군가가 3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수험생들에게 수능대박 나라고 응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수능대박 나라는 응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나는 결코 사람들의 입시경쟁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소박하게 “수능대박”을 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3이나 재수생의 현실도, 입시경쟁의 현실도 잘 알고 있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 구조에 대해서도 모르지 않는다. 예전에, 2006년 7월에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민족문화상징 100개에 “고3”이 한국의 교육 현실을 잘 보여주는 상징으로 추천받았지만 여론조사 결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탈락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만큼 수능, 고3 등으로 대표되는 입시경쟁의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남을 밟고 올라설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은 경쟁의 구조에서 눈을 돌리고, 모두가 아무도 밟지 않고 날아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듯이 외치는 “수능대박”의 주문 소리…. 그러나 그런 주문 소리에 별로 신통력이 없는지,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올해에도 누군가는 수능 성적 때문에 자살하고, 등급과 표준점수에 일희일비하며, 꿈도 성적 때문에 바꿔가며, 자존감조차도 성적에 휘둘리며, ‘수험생’들은 이제 재수/반수/지방대/인서울/명문대 기타 등등의 서열 구조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간다. 깃발 대신 학교들과 학원들에 걸려 있는 “○○대 ○○○과 12명 합격”하는 식의 현수막들만 머리 위에 펄럭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 “순응 대박”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소리였다. 입시경쟁에 대해, 강제야자를 비롯해서 학교 생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니 말이 맞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괜히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여라.”라는 류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건 교사들도 그랬지만, 학생들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3시기에 온갖 분란을 일으키며 학교를 다녔던 나를 싫어하던 학생들도 1/3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입시경쟁의 성격을 적절히 꼬집어서, 수능을 “순응” 시험이라고 비꼬곤 한다. 이 순응 시험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수능 시험이 학생들이 얼마나 학교와 입시경쟁 체제에 잘 순응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수능 시험이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모들 등 교육주체들을 말 잘 듣게 순응시킨다는 뜻이다.  수능대박[순응대박]은 “순응하면 대박”난다는 말씀되시겠고.
  학생들이 두발규제 폐지 등에 대해서는 곧잘 시위를 하면서도, 입시경쟁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주 적극적·급진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순응’에 있다. 입시경쟁체제나 교육시스템은 너무 거대해보이고 잘 바뀔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너무나 당연한 것인 양 눈 앞에 존재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깔짝거리는 많은 정책들이 아무 효과가 없거나 입시경쟁을 더 심하게, 혼란스럽게 만드는 꼴을 보면 그런 무력감은 더 커진다. 수능만 끝나면 학교에서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학생들도 학교의 생활 규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은 수능이 얼마나 학생들의 삶을 ‘순응’하도록 규율하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아주 나이가 적을 때부터 성적과 등수에 따라 가치를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설령 그런 가치 평가에 대해 의문이나 불만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상상할 능력이 없다. 나 또한 성적이 높다는 이유로 나를 ‘이뻐하는’ 교사들과 성적으로 인간이 평가당하는 학교 시스템에 초등학교 때부터 스트레스와 괴리와 혐오감을 느껴왔음에도, 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막막함밖엔 느끼질 못했다. 성적에 의해 우월감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삶은, 나이가 적을 때부터 계급적으로 나뉘어지고, 그들이 삶/세상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다르게 만든다. 예컨대, 내 친구가 서울대 다니는 학생들이 비교적 자신감도 있고 자존감도 강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이것이 나이가 적을 때부터 서울대에 입학할 때까지 입시경쟁 속에서 학습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학교를 적극적으로 박차고 나온 청소년들은 그래도 좀 더 폭이 넓은 편인데,)은, 강제야자 같은 일(강제적으로 시키는 공부의 비효율성. 정부에서도 강제로 하는 것은 금지한… 심지어 몇몇 학생들은 학원에 못 간다는 이유로 강제야자를 반대한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더라도, 입시경쟁 그 자체를 없애자고 제안하기는 주저한다. 돈 많은 집 학생과 돈 없는 집 학생이 겪게 되는 교육격차와 사교육 불평등/차별의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입시학원 자체를 안 다녀도 되고 입시공부에 목 매지 않아도 되는 교육에 대해서는 상상하지 못한다. “너도 노력하면 대박날 수 있다.”라거나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후회 안 하고 잘 산다.”라는 식으로 학생들의 욕망을 유예시키고 학생들 사이에 차별을 만드는 정책도 이런 ‘순응’에 한 몫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리하여,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비겁한 논리가 교육현장에 횡행하게 된다. “재능이 있는 사람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이라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격언이 여기에 더해지면, 피할 수 없으니 즐긴다는 소극적 태도에서 입시경쟁의 승리를 위해 입시공부를 즐기는 적극적인 태도가 되기도 한다. 입시경쟁 과정에서 겪는 피로, 혐오, 고통, 자괴감, 허무, 복종, 등등의 것들에 순응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것들을 즐기기 위해서는 학생들은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한다. “다 너희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말하며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에게 ‘매타작’을 하는 일부 사티스트 교사들에게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 성적 취향으로서의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분히 에리히 프롬적인 의미도 포함해서)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이 사회 구조에 의해 강요되고 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사디스트나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하는 세상은 불행하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의 대우 명제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해라”이다.(아, 물론 명령형 문장은 명제가 아니다. 그래도 그냥 너그러이 넘겨주시길.) 그러나 대체 어디로 피해야 하나? 도저히 즐길 수가 없어서 피할 곳을 찾던 학생들이 끝내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대안학교라거나 유학이라거나 다른 방식으로 입시경쟁을 피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가계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주는 소수만이 가능한 선택지이기 십상이며, 다수의 학생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3의 명제를 만들어내야 한다.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으면 싸워서 바꾸자!”랄까. 하지만 입시경쟁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십년 전부터 나왔음에도, 입시경쟁 자체를 문제시하며 “입시폐지”를 외치고 “수능반대”를 요구해온 운동은 그 역사가 길지 않다. 기껏해야 2003년부터 시작된 안티수능페스티벌이나 2002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공약으로 나온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도일까? 2005년 5월에 내신등급제 도입을 계기로 “내신도 본고사도 입시경쟁은 싫다!”라고 외친 학생들의 집회, 2007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수능을 거부한 고3 학생들의 1인시위,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에서 하고 있는 자전거 행진 등의 활동 등등도, 입시경쟁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번져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일제고사를 거부하듯이 수능도 거부하면서 입시경쟁을 무력화시키는 투쟁방식도 꿈꾸어보긴 하지만, 아직까지 수능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절대적인 위치와 인식을 생각해보면 그건 좀 요원할 것 같다. 하지만 일제고사나 학교자율화나 교원평가를 빙자한 교원관리제나 국제중이나 ‘자살고’(자율형 살입고?)를 비롯해서 2MB 정부의 입시경쟁 심화 정책들이 쓰나미처럼 몰아치고, 그에 대항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저항이 점점 자라난다면, 입시경쟁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따라서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만들고 싶다. 진짜 제대로 된 “수능대박”을 만들어보자. 수능을 크게 박살낸다는 의미에서의 수능대박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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