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9. 4. 6. 17:17


아 글 제목 초 길어...

여하간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국청소년학생연합'에서 본 글 때문입니다.
전청련에서는 요즘 한~창 논쟁을 하고 있는데요.

뭐 생긴 지 얼마 안 된 조직(2008년 5월에 생겼고, 실질적으로 단체-조직의 틀을 갖춘 지는 정말 얼마 안 되었죠.)이다보니 이래저래 운영모델이나 방식이나 지향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들이 많을 테고 요즘 싸우는 것도 그런 '고비' 중에 하나인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재미있게(어두운 욕망.-_-)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른 단체 사람으로서 그 논란에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고 보기에도 안 좋을 거 같아서 끼어들지 않고 있지만, 글을 읽다보니 아수나로에 관한 언급이 있어서 말이지요

아수나로에 대한 언급
: "아수나로 등의 단체들은 보면 알겠지만 평가하자면 아나키스트적이다. 그러다보니 단결조직된 학생행동조직체를 만들 수 없고, 그에따라 새로운 단체의 필요성을 느껴 전청련을 단결학생행동조직체로서 끌어가려한다."



뭐 저게 전청련 전체 의견이란 것도 아니고 그냥 저 문장을 보고 나니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적는 겁니다. 즉 이 글은 전청련과 사실은 직접적 관련은 전혀 없습니다 ㅎㅎ
사실 예전에 버스 안에서 했다가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고 묻어버렸던 생각이랑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라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겁니다. 전청련 분들이 읽고서 혹시 참고하실까 싶긴 한데 뭐 그건 그 분들 개개인의 자유에 맡기고...

그래서 오늘 쓰려는 글은 '운동조직에서 민주주의와 관료제 또는 대의제의 문제' 뭐 이런 겁니다.
옛~날에 관련해서 인권오름에 '대표'가 '문제'다 라는 글을 쓴 적이 있긴 한데, 당시에는 청탁 받고 급하게 쓰느라 그리 정리된 의견을 낸 것은 아니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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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수나로가 '아나키즘'적이라고 칭해지는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지부'는 있는데 '지부장'도 없고, 전체 '대표'도 없고 '의장'도 없고 '위원장'도 없는 구조 때문일 것입니다.
'총회'나 '전체온라인회의'도 사실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시키는 '활동회원'이기만 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평의회 형태로 되어 있고 말이죠.
지부별, 또는 온라인 업무 관해서 '담당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담당'이 '직위'나 '명예'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귀찮은 일 해주는 사람 정도 인식이라서...

그리고 이런 운영을 뒷받침하는 가장 대표적 논리는 바로 '민주주의'입니다.(또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대의제의 폐해를 경계하고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는 정신에 입각하여,
일이 '위임'되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아수나로의 입장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상시적인 '대표'나 '~장'은 필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아수나로에서 활동회원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수나로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뭐 그런 원칙이랄까요.

--> 이렇게만 보면 굉장히 원칙주의적인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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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래도 '인권운동'하는 우리인데 민주적이어야지" 어쩌구 하는 당위적 접근으로 얘기하긴 참 쉽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당위에 그다지 동의하진 않습니다.
'인권운동'하더라도 대의제나 관료제 할 수 있는 거지 뭐. 해선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데?  -- 뭐 이런 심정?

그래서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왜 손쉬운 피라미드형 구조 또는 '지부장' '대표' 뭐 이런 걸 둬서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는 구조 대신에 이런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는지 뭐 그런 것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의견(그러니까 현재 아수나로 같은 운영 방식의 장점)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생각들 같은 걸 적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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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실리와 명분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만
저는 '명분'이란 것도 결국 '실리'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라서요.
우리가 어떤 명분을 취한다면, 그건 그 명분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되기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이렇게 '대표'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집행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단체가 커지기도 힘든 이런 시스템을 택한 데에는 나름의 실리가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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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번째로 아수나로는 아직 그다지 덩치가 크지 않습니다.
아니 청소년(인권)운동 전반이 그리 덩치가 크지 않죠.
그래서 사실 아직 그다지, '관료제'라는 방식이나 '대의제'라는 방식이 딱, 필요한 건 아닙니다.
기껏해야 100명 남짓 정도이거나 100명 이내면 충분히 대의제를 취하지 않더라도 소통과 운영이 가능한 규모죠.
하물며 아직 수십명 단위인 아수나로는 어떻겠습니까.
한 1000명 단위가 되면 혹시 또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규모에서는 오히려 관료제적인 운영 방식을 취하는 게 비효율적입니다.
임기 다 되었다고 선거를 해서 교체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상시적으로 하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닌 부서들이, 단지 그 부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회의를 해야 하는 등등.
거기다가 '~~장'이나 '대표' 같은 직위를 놓고 명예욕에 따라 별 의미 없는 다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때그때 '~팀'을 꾸려가며 팀제로 운영하거나, 절차를 간소화하고 실질적으로 활동가들이 전부 되는 만큼 결합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운영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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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경험적으로 볼 때 '덩치가 크고' '관료제화된' '대중조직'들에서 나타나는 폐해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전교조나 민주노총을 보면, '지도부'(중앙이건 지부건 지회건)와 그냥 조합원들 사이에,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까진 아니어도 '넘삼벽'(넘기 힘든 삼차원의 벽)이 있는 것 같더군요 -_-;
관료제-대의제는 때로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슨에 나온 말("우리가 대표를 뽑는 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야!")처럼, 그 결과 조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큰 거리를 벌려놓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덩치가 큰 '대중조직'이 된다고 해서, 우리 중 일부가 '핵심 활동가'이자 '간부'가 되고, 일부는 그냥 집회나 행사 있을 때 동원되는 '회원'이 되는 그런 조직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아수나로에 '활동회원'으로 적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기 삶 속에서 청소년인권에 관해 좀이라도 고민을 하고, 자기 생업에 바쁘더라도 여유 시간 중 일부라도 청소년인권에 관한 활동을 직접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길 바라지요.

전교조처럼 '전교조 같지 않은 전교조 교사'들이 많은 그런 조직이 되고 싶진 않달까요.

요즘 민주노총이 '식물조직'이란 류의 말이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가입되어 잇는 조합원이 몇만이건 몇십만이건, 그게 실제로 일정하게 공유된 인식 위에서 공동의 행동으로 조직되지 못하면 그 조직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할 수 없단 거죠. 그런데 관료제가 강화된 조직은 이런 식물조직이 될 위험성을 더 안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식물조직은 오히려 규모가 작은 살아있는 조직보다 못합니다. 기껏해야 조합원들이 내는 회비 덕분에 돈만 많달까요.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부분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덩치는 크기 때문에 거쳐야 할 의사결정의 단계와 절차들은 많고, 근데 정작 죽어 있기 때문에 논의는 안 되고,
그래서 제대로 된 일은 아무것도 못하고, 따로 깊이 있는 토론 과정 없이 지도부 독단으로도 할 수 있는 기자회견이나 관성적인 작은 활동 같은 것들만 하는 괴상한... 말하자면 '돈많은 지도부만의 활동조직' 같은 게 될 수도 있는...?


아수나로는 이미 지금도 활동회원들 사이의 동일성이랄까, 생각의 교류랄까, 뭐 그런 걸 어찌할지 고민투성이인데 말이죠.
지부들 사이의 소통도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관료제-대의제적 요소를 조직에 도입하는 건 위험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보완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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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수나로가 '아나키즘적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뭐 결과적으로 현재 운영되는 형태는 다분히 아나키즘적이군요.

저는 '권력'이라는 게 아예 없는 관계라는 건 사실 전혀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수직적 관계가 많은 조직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수평적 조직, 뭐 그런 건 또 죽었거나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는(-_-) 애매한 조직이라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수직적 관계가 없어야 하니까"라기보다는
"수직적 관계로는 활동회원들의 활발한 활동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공식화된 직위들을 만드는 걸 부정적으로 보는 거죠.

언제나 실질적인 활동이 먼저고, 절차나 틀, 형식은 그 위에서만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절차나 틀, 형식이 실질적 활동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안 될 말이겠죠?

요컨대 저는 아나키즘적인 조직 운영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제가 아나키즘의 이상사회 구상에 동의하는 면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나키즘들에 100% 항상 동의하는 건 아니니)
제가 생각하는 지금 상황에 맞는 조직 운영이 결과적으로 아나키즘적인 운영인 뭐 그런 상황?

다른 아수나로 활동회원 분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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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딱히 아수나로가 반드시 어떤 직위나 대표나 이런 게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말이죠.

구체적인 방식 면에서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생각해야겠지만
만약에 덩치가 일정 이상으로 커질 것 같고 필요해진다면 직위라거나, 대의제-관료제적 요소를 일부는 도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요소를 도입하는 게 항상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민주주의도 형식으로 판별하기보다는 실제 그 시스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어떻게 의견이 소통되고 반영되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이 언제나 대의제-관료제적 요소가 배제되어야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런 요소가 위험성이 있다는 건 항상 염두에 둬야겠지만요 ㅎㅎ

활동 분야별로 나누든가, 아니면 뭐 언론이나 소식지를 운영하는 부서를 따로 둔다든지,
뭐 아니면 지부 관리 문제상 지부장 비스무레한 걸 두거나
여하간 이런저런 요구와 결정들이 앞으로 활동해가면서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최소한 아수나로가 4~5개 이상의 지부가 안정적으로, 한 지부당 10명 이상의 활동회원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활동회원들과 지부 사이에 의견-생각 교류가 활발히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활동회원들이 일정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과정을 확립하고...
뭐 그런 규모와 시스템이 갖춰진 이후에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뭐 사실 가장 이상적인 건 아수나로 뿐 아니라 아수나로와 긴밀하게 연결을 맺고 있으면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는 여러 수십명 규모의 청소년모임들이 생겨나고 그 모임들과의 네트워킹이 잘 되는 것일 테지만요.
그게 안되면 아수나로가 그자체로 일종의 대중조직...이라고 불릴 만한 천명 단위가 활동하는 정도의 조직이 되는 것도 하나의 길로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도 같기도 하고 쩝.


덧 : 아수나로 활동회원들 중에서(아 뭐 활동회원이 아니더라도 의견을 다실 수 있지만---) 이 글에 대해 다른 의견인 분도 꽤 있을 듯한데, 무플보다는 차라리 반대 의견이 좋아요 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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