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 9. 29. 10:37

http://www.ohchr.org/EN/NewsEvents/Pages/DisplayNews.aspx?NewsID=13797&LangID=E






1. 어제인 9월 27일 유엔 인권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서 유래하는 권리이며, 모든 정부는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결의했네요.
2. 재미있는건 이 만장일치에 한국 정부도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표결 전에 한국은 징병제이며 법으로 인정하기 않기 때문에 이 결의를 온전하게 지지하기는 어렵지만 결의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며 찬성한다는..
3. 이 소식을 전했던 메일은 이렇게 끝나네요.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 없이 평화로운 사회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 It is not possible to live in a peaceful society without the recognition of our right to be a conscientious objector to military service.
5. 이 결의 과정에서 한국정부의 유체이탈 화법이 독특한데, 사실 전세계 병역거부 수감자의 90%가 대한민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을 위한 결의안이라고도 할 수 있는죠. 이걸 실행할 수는 없지만 찬성은 하겠다는 말은, 외교적 수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네요.
6. 유엔 인권이사회 병역거부 인정 결의안(A/HRC/24/L.23) 중 흥미로운 점이, 분쟁 이후의 사회에서 병역거부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평화정착"의 과정(as part of post-conflict peacebuilding)으로 본다는 점.
7. 병역거부는 전쟁 시기에, 전쟁 직후에 더욱 많아집니다. 전쟁의 참상, 그 속에서 강요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절감하기 때문. 전쟁이 끝난 후에, 더 이상 싸우기 싫다고 하는 이들을, 그 감정을 '권리'로서 보호하는 것. 이걸 평화라고 본 것입니다.
8. 전쟁이 끝난 후에, 그 전쟁 상대를 증오하며 더 많은 군대, 더 많은 무기를 갈구하고 이것에 반대하는 가진 이들을 적이라 낙인 찍는 사회는 아직도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닌 거죠. 맞습니다. 한국사회의 이야기입니다.






병역거부자이고 병역거부와 평화운동 등으로 논문 쓰셨던 임재성 씨 트윗 twitter.com/@beindp 에서 인용합니다.


관련 기사는 아직 못 찾겠군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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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8. 6. 04:32

다 쓰고 나서도 세상에 뭔 캠프 자료집으로 A4 7페이지짜리 글을 쓰나... 싶었던a
그냥 혼자 쓰다가 불 붙어서 마구 써버린...





‘19세 미만’은 왜 ‘미성년자’가 되었나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청소년인권캠프 별세상(2회) “별을 낚다!”



  청소년들에게는, 법적으로 붙어 있는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미성년자”라는 이름이죠. 민법에서는 만 20세 미만, 청소년보호법에서는 만19세(사실상 연20세) 미만, 공직선거법에서는 만 19세 미만 등등으로 그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미성년자”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으세요? 미성년자라는 말은 ‘아직 성년이 아닌 사람’, ‘아직 완성된 나이가 아닌 사람’, ‘미성숙한 나이의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이건 마치 장애인을 “비정상인”이라거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 같은, 괴악한 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한 마디로 차별적인 말이란 거죠.


‘미성년자’라는 굴레

  어떤 사람들을 “미성년자”로 이름 붙이고 “미성년자”로 대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미성년자”라고 불릴 때 그 사람들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삶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다른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의 강요를 당해야 합니다. 학교에 다니며 교육받아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정치 참여 같은 문제에서는 전사회적 왕따를 당합니다. 그들은 학교의 교육과 가족의 보호·통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하니까, 성숙한 사람들이 그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잘못을 고치려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반항은 있을 수 없죠. 왜냐하면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이 항상 더 옳을 텐데. 그러니까 학교를 운영하든 자기 삶의 진로를 결정하든 정책을 결정하든, 그들은 쏙 빼놓고 성숙하고 완전한 사람들끼리 알아서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들은 혹시 무슨 사고를 저지르거나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르니까 밤에는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보호자의 허락 없이 돌아다니거나 외박을 하거나 하면 안 되죠. 돈을 주거나 돈을 벌 수 있게 했다간 잘못 쓸 수도 있으니까 조금씩조금씩 용돈만 주거나 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미성숙한 그들을 위해 사회가 그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미성숙하고 불완전하니까 혹시 책이나 그림이나 영화 같은 걸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잘못된 걸 따라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도 다 미리미리 금지해둬야 합니다. 성행위? 섹스하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거나 하면 어떻게 책임을 지겠습니까? 당연히 다 금지해야죠! 그렇게 미성숙한 사람들에게 성욕이나 성적 자유? 택도 없는 소리입니다. 청소년의 섹스할 자유? 그게 뭐임? 먹는 거임? 우걱우걱.
  특히 한국에서 더 두드러지는 건데, 이 그들에게는 한 가지 더 무거운 짐이 지워집니다. 입시경쟁, 취업경쟁이라는 짐이죠.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미성년자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을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만들기 위해서, 경쟁은 옵션이 아닌 필수입니다. 한국처럼 먹고 살기 힘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미성년자’는 자연스러운 걸까?

  그런데 정말로 당연한 일일까요? 이렇게 어떤 사람들에게 ‘미성년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꽤나 깐깐한 제한을 가하고 학교에 반드시 다녀야 하게 만드는 등의 일이 꼭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지금 당장 다른 나라들을 봐도 서로서로 다른 점이 많습니다. 정치 활동을 하는 데 나이에 따른 제한이 별로 없다던가, 선거권이 만 16세라던가, 15~16살만 되어도 원한다면 독립해서 살 수 있다던가, 12살에 애를 낳아도 너무 큰 부담 없이 양육할 수 있다든가…. 학교나 교육제도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겠죠.
  최근에 좀 뜬 『88만원세대』라는 책이 있는데 혹시 아실까 모르겠습니다. 주로 한국 20대들의 현실을 다룬 책인데요, 심심찮게 10대들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첫 챕터 제목이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입니다.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 이 말 속에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동거를 상상할 수 있는 10대”들이 있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실제로 다른 몇몇 나라들에서는 16~18세만 되어도 섹스·동거·독립을 비교적 자유롭게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성년자’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제도들은 사회가 만든 것입니다.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지금과 같은 ‘아동’, ‘어린이’, ‘청소년’, ‘미성년자’ 같은 개념과 제도들이 생겨난 건 500년도 안 된 일입니다. ‘학교’처럼 거의 모든 아동·청소년들이 꼭 다녀야 하는 교육기관이 생긴 건 그보다도 더 가까운 과거의 일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100년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이전에도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다르게 대하는 게 전혀 없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고, 대체로 지금보다 더 이른 시기에 ‘성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청소년들의 뇌가 어쩌구저쩌구 호르몬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소리들을 많이 듣습니다. “주변인”이니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자아정체성 확립”이니 하는 말들을 사용해가며 청소년들을 규정하려는 심리학자들의 이야기를 교과서에서나 책 속에서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은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사실 이런 얘기들은 100% 과학적인 것은 아닙니다. 문화가 다른 여러 사회들을 살펴보면, 아이와 어른의 구별이 별로 없는 사회,  ‘질풍노도의 시기’ 같은 것 없이 아주 평화롭게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사회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10대’들이 판단력이나 책임감이 부족한 듯이 보이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어른들과 격리시켜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엄격한 규율을 강요하고 권리를 박탈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더 문제행동을 일삼는 것처럼 보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사회에 참여할 권리, 경험을 쌓을 기회를 빼앗겼기 때문에 더 의존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능력이 부족하고 의존적이기 때문에 권리와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식의 뷁스런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오히려, 정말로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성욕이나 성적인 활동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라고 하는 15~16세부터 섹스, 결혼 등이 가능한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이 글이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합니다. 청소년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며 통제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은 청소년들의 뇌가 아직 덜 익었다거나 그들의 몸 속에서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감정과 행동을 조장하는 호르몬들이 마구 분비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 18세까지는 판단력도 없고 멍청하고 비합리적이다가, 만 19세가 넘으면 판단력이 갑자기 짠하고 생기고 삶과 사회에 진지해지고 합리적으로 변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딴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고, 이 사회가 그따위로 생겨먹은 탓입니다.


왜?

  그럼 왜 이 사회는 이따위로 생겨먹은 것일까요? 설마 특별히 어른들이 못돼먹어서, 성격이 안 좋아서, 변태라서 그런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동·청소년들의 노동이 금지되기 시작한 때, 청소년들에게 학교에 다닐 것을 요구하고 학교를 ‘의무교육’으로 만들어갔던 때를 살펴보면 대충 답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학교 제도는 아동·청소년들의 삶을 억누르고 ‘배워야 하는 존재’인 ‘미성년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도 초등학교가 생겨나면서 아이, 어린이에 대한 개념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았고 중등학교가 생겨나면서 청소년기가 보이게 되었거든요.

  처음 유럽에 도시가 생기고 공장이 생기던 때는, 참 비참하고도 끔찍한 노동 착취가 흔하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많은 공장들이 적은 돈을 주고 아이들을 고용했습니다. 아이들이 임금이 적었던 건,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약한 입장이었고, 따로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숙련되지도 않은 노동자로 주로 단순한 업무에만 고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하루에 최저 10시간 최대 19~20시간씩(!) 일을 하는 끔찍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과도하고 위험한 노동에 목숨을 잃었고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이 10대 후반일 때도 있었습니다.(즉, 노동자들이 20살이 되기 전에 죽었단 이야기!) 빈민이나 노동자 계급에 속했던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과도한 노동 속에 몸을 망치고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응하여, 일정 나이 이하의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의무교육을 받도록 하는 법률들이 18세기 이후에야 만들어졌습니다. 학교에 다닌다는 취학 증명서를 가져오는 아동·청소년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같은 게 만들어지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아동 노동 금지, 의무교육 도입 등이 이루어진 데는 두 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이런 끔찍한 현실을 바꾸고 (아동을 포함해서)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게 해야 한다는 노동자들 자신과 양심적인 지지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교육을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의 권리이며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권리 사상의 발전이었습니다. 참 바람직한 일이죠? 물론 직접 노동 착취를 없애고 사람들이 굶어죽을 걱정 없이 살게 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지만요.
  반면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노동력이 필요해졌다는 것, 학교 교육을 통해 더 순종적이고 규율을 잘 따르며 생산성 좋은 노동자를 만들 수 있으며 사회 불안을 줄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들 사이의 전쟁 등으로 인해 국가의 말을 잘 따르고 군사화된 국민들이 필요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학교의 모습은 많은 부분이 1800년대 프러시아(지금의 독일지역)에서 시작된 국가주의·군사주의 교육에서 온 것입니다. 당시 프러시아는 중앙집권화된 학교 교육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 고분고분한 광산노동자 ▲ 정부 지침에 순종하는 공무원 ▲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일하는 사무원 ▲ 중요한 문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하는 시민들. 프러시아의 교육은 순종적인 군인·노동자·공무원을 만드는 교육이었고 복종과 규율을 가르치는 교육이었습니다. 독일 민족주의 교육의 대표자인 얀이라는 사람은 민족부흥을 위해 의무교육이 필요하며, 민족주의적 의미가 없는 교과목의 폐지 등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프러시아의 이런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지적도 있지요. 그밖에도 그 시대에는 많은 저명한 사람들이 학교 교육이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정부에 복종하는 인간을 길러내고 생산성 좋은 노동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에서 학교교육이 도입되고 ‘아동’이나 ‘청소년’이나 ‘소년’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근대 문물이 막 들어오던 1800년대 후반~1900년대입니다. 그 이야기들이 국가주의·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던 것은 한국에서도 별로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특히 조선-대한제국-한국에서는 청소년, 학생들을 민족의 전사이자 조국의 근대화를 이루고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세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한국전쟁까지 거치고 난 이후 한국에서도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1954년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장관이 쓴 글을 보면 “여러분이 학교에서 학업을 닦는 목적이 여러분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태어난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미성년자’ ― 청소년, 아동들을 따로 구분하고 학교 교육을 받게 한 것은 국가를 위한 것이었단 겁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던 때에도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이는 것이 국민으로서 청소년들의 의무라고 밝히고 있는 ‘국민교육헌장’을 청소년들에게 달달 외우게 했던 때입니다. 청소년들, 학생들은 조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인적 자원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한편, 그 당시 청소년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해야 할 대상이었고 그 때문에 정치적인 사건들에 대해 알고 판단을 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반공주의와 애국주의를 벗어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지만 말이지요. 그건 청소년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했다기보다는 청소년들에게 획일적 의식을 강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프러시아 교육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교육에서도 군사주의·군국주의적인 모습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과 십 년 전까지도 있었던 ‘교련 과목’도 그렇고, 우리가 체육 시간이나 운동장 조회 때 하게 되는 줄 맞춰 서는 훈련 등도 그렇습니다. 두발복장규제는 특히 군사주의적 냄새가 많이 나는데, 때로는 남자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미리 준비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듭니다. 교육에서 경쟁이 심한 것 또한 청소년들을 이 사회에 순응하게 하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효과가 있지요.
  그리고 한때는 한국에서는 청소년 노동에 대한 착취가 심각했습니다. 섬유, 옷, 봉제 등이 주력 산업이던 1960~70년대에는 평균 15~18세 나이의 청소년들이 어두운 공장에서 하루 15시간씩 재봉틀을 돌리고 마름질을 하고 바느질을 했습니다. 이런 노동 현실에 분노하여 항의하다가 분신하여 돌아가신 노동자 분이 바로 전태일 씨(본인도 17살부터 일을 했던)였습니다. 이러한 아동 노동이 실질적으로 금지되고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산업 구조가 바뀌고 민주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1980년대에 들어서였습니다. 이런 패턴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국·동아시아만의 특색도 없진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유교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인데요. 독특한 ‘가족주의’라거나 교사에 대한 독특한 존경, 나이에 따라 존댓말 반말이 갈리는 등 나이 구별/차별이 쩌는 나이주의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한국 ‘미성년자’들의 삶을 괴롭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지요.
  시간이 흐르고 1990년대가 되면서 청소년들의 노동이 줄어들고, 청소년들이 사회에 참여할 이유(반공, 애국, 근대화 등)도 줄어들면서 청소년들은 자연스레 사회에서 왕따가 되어갔습니다. 1920년대에는 그렇게 흔하던 중고생들의 동맹휴학이나 학교 점거, 시위 등이 지금은 별로 없는 것에는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사회의 주체라기보다는 의미있는 소비계층, ‘알 수 없는’ 젊은 세대 정도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에 촛불이다 뭐다 하고난 뒤에야 사회적 주체로서 청소년들에 대한 좀 진지한 얘기들이 오가고 있는 편이지요.

  어쨌건 결론을 정리해봅시다. “왜 이 사회에서는 ‘미성년자’를 따로 나누고 통제하고 학교를 보내고 사회에서 왕따시키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그 이유를 대략 요약하자면, ①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동·청소년들이 착취를 당하기 쉬웠는데 이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 ②국가와 기업(자본)이 아동·청소년들을 사회에 순응적이고 명령에 잘 따르고 생산성 좋은 국민·군인·일꾼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①번 이유는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지금 학교나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큰 영향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통제는 어른들이 못돼먹어서도 아니고 변태라서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지금처럼 국가가 사람들보다 더 우선시되고, 기업이 돈을 잘 벌고, 지금 같은 가족제도가 유지되도록 하는 등, 이 사회를 계속 꾸려나가기 위해 생겨난 제도인 것입니다. 학교는 우리들이 똑똑해지고 훌륭한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 국가와 기업(자본)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지금은 다른가요? 너무 음모론처럼 들린다구요? 하지만 역사를 봐도, 그리고 지금 있는 여러 정책들의 결과를 봐도, 충분히 그럴 듯해 보이지 않나요?


‘미성년자’도 인간이라는 외침

  그래서 우리가 “미성년자도 인간이다.”라거나 “청소년도 인간이다.”, “청소년에게도 인권이 있다.”라고 외치는 것은 단지 나쁜 어른들의 편견을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의 이 사회에 도전하는 일이고, 사회의 문화와 제도와 구조를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각을 바꾸고 말을 바꾸고 학교를 바꾸고 가족·가정을 바꾸고 법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일입니다. 그건 어쩌면 자본주의, 국가주의 사회에 대한 혁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 쉽게 말해서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거죠.
  어려운 일이더라도 ‘만 19세 미만’의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게, ‘미성년자’가 아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상상하기가 좀 어려울 겁니다. 지금 같은 학교, 지금 같은 가족·가정이 없는 사회는 어떤 세상일지. 그럼 14살짜리 청소년이 임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애를 낳아서 기르라는 건지. 8살짜리 아이에게도 투표권을 주자는 건지. 청소년들이 사회경제적 약자가 아니게 만드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어쩌면 청소년들 스스로도 사회경제적 약자의 지위에서 자유와 권리를 제한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안주하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교복이 없어지면 아침에 뭐 입고 나갈지 고민해야 해서 싫다는 청소년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통제와 타율과 귀차니즘이 자유나 개성이나 인권에 대해 거둔 씁쓸한 승리.)

  구체적으로 그런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더 곰곰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누가 정답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미성년자’도 인간이라고 말하는 외침은, 청소년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토록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을 포함해서 말이죠. ^^






* 참고문헌
『바보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존 테일러 개토
『이팔청춘 꽃띠는 어떻게 청소년이 되었나 - 청소년 만들기와 길들이기』 고미숙, 권인숙, 김현철, 나임윤경, 박노자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아동」 배경내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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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캠때 이 글 받고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정작 챙겨 읽지 않고 이렇게 허겁지겁 공현씨 블로그를 찾아 읽었네요. (아수나로에서 찾아봤지요.) 쉽고 재미있는 게 딱 제 타입입니다. 한국이 '특이한 케이스'였다는 것에는 조선말-대한제국초 서툴은 근대화와 그 이후 일제의 폭압이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이러니하게 일제의 폭압에 저항하기 위한 민족교육도 한 몫을 했고요. 뭐 이런 과정을 통해 뿌리깊게 새겨진, 군인 출신 대통령들을 통해 확고화된 파시즘적 사고가 말씀하신 부분일테고요. 무튼 재미있는 글입니다. '진청모'와 제 블로그에 퍼가도 될런지요?

    2009.08.09 23:52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런데 공교육이 민족주의, 국가주의 성향이 강했던 건 한국이나 프러시아나 프랑스나 미국이나 큰 차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저항적 민족주의적 맥락에서의 특색이 없는 건 아니지만요. 한국적 특색이라면 유교적인 문화나 가족주의 특색을 봐야 하지 않을지 싶기도.
      사실 이 글에서는 핵가족의 형성, 가족주의의 문제는 분량상-시간상 거의 쓰지 못해서 좀 아쉽습니다.

      네 얼마든지 퍼가세요 ^^

      2009.08.10 00:05 신고 [ ADDR : EDIT/ DEL ]
  2. 유교와 가족주의의 문화 역시 한국의 특색이라기 보다는 역시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공통점이죠. 무튼 잘 퍼가겠습니다. 아, 캠프 때 받았던 배경내 씨의 글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그 역시 저의 주체할 수 없는 띨띨함에 의해 잃어버렸지요 ㅠㅠ

    2009.08.10 08:47 [ ADDR : EDIT/ DEL : REPLY ]
  3. Cts

    음... 통제하기 편한 국민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 그런 '목적'으로 여러 세대 쌓여온게 지금의 상황인것 같아요

    2011.06.24 18:47 [ ADDR : EDIT/ DEL : REPLY ]
  4. KTX 부다

    엄밀히 말해서 청소년을 미성년으로 분류한 역사는 100년정도에 불과하고 초등학생 아동기의 노동금지도 이보다 조금 전인 19세기 후반에서야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 초등학교 의무교육탄생은 길어야 19세기 중반이전을 상회하지 않습니다. 중학교이후의 의무교육이나 청소년기에 대한 미성년규제는 대략 1차대전이후로 정립하게 됩니다.

    2018.11.04 13:57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8. 5. 27. 02:23
모두에게 고민거리들을 던져줄 수 있는 언론이길 바라며
여성주의 저널 앤 창간호에 바치는 비평


윤종

군사주의 비판과 여성주의라는 조합에 대해

 “여성주의+병역거부는 참 최악의 조합인 듯”
  모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병역거부, 군사주의,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세미나 홍보 글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병역거부만으로도 온갖 욕을 먹는데, 거기에 여성주의라니! ‘사회부적응자’들과 ‘꼴페미’들이 합쳐지는 것에 불편해하는 마음을 참으로 간명하게 드러낸, 쓴 웃음 주시는 댓글이 아닐 수 없다. 오, 이런.

  그리고 그런 ‘최악의 조합’을 성공회대 여성주의 저널 n[앤]이 창간호(통권2호)에서부터 들고 나왔다. 누군가에게 ‘최악’인 조합은,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조합이 되기도 한다. 일상이 자명하고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 군사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인용한 댓글에서는 “병역거부”로 표상되는)와 여성주의의 만남이 ‘최악의 조합’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것이 가장 당연시되어온 일상의 부분들에 도전하는 것이며 그것을 해체­재구성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교육제도에 배어 있는 군사주의들과 늘상 접하는 한 청소년인권운동가로서, 또한 여성주의나 군사주의 등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학내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한 대학생으로서 앤이 창간호 기획으로 군사주의를 잡은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었다. 형식적 수사나 아부로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앤이 그 주제 선정에서 여성주의 언론으로서 당연시되어온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고 한편으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내려는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앤의 군사주의 기획에서 다소 아쉬웠던 것은, 몇몇 부분들이 다소 군대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에 기대어서 쓴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예컨대 실제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거나 하면 군대는 학벌이나 ‘빽’ 등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앤의 글에서는 “사회에서는 그렇게 쉽게 통용되던 연령주의와 학벌주의조차도 그 틈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 느낌의 서술들이 군대와 사회를 분리시키며 군대를 특수한 공간으로 규정하는 군대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에 의거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군사주의에 대한 논의를 군대에만 한정짓거나 군대 경험에 대한 것으로만 해서는 안 되지만, 오히려 그러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상 속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 이런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을 높인다면 글의 필자들의 경험들이 중복되는 부분을 줄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렇게 쓰고 창간호를 다시 보다 보니 “여성주의가 경험주의에 포위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보였다. 아하하-ㅅ;;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여성주의가 경험주의에 포위되어서는 안 되지만, 모든 정치의 한 근간이 사람들의 실제 ‘경험’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군사주의, 평화 같은 개념들을 군대, 전쟁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두루 존재하는 것으로 사고하려는 시도, 그리고 여성주의의 문제의식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앤 창간호에서 권인숙 씨가 말한 것처럼 그 역사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디 보자, 외국까지 합치면, 그게 기껏해야 20여년 정도인데 ― 응? 20여년?! 20년이라는 시간은 분명히 ‘여성주의의 역사’라거나 ‘근대’라거나 ‘군대의 역사’ 같은 큰 시간의 틀에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실제 우리들의 삶에서 보면 그렇게 짧은 시간이 아니다. 나만 해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산 시간이 20년인데, 군사주의에 대한 연구는 나보다도 오래되었다. -_-!
  2, 3년 전부터 군사주의 문제와 군사주의+여성주의의 문제를 얄팍하게라도 접해오거나 고민해온 나 같은 사람한테 앤 창간호의 이야기는 조금은 식상했고, 그래서인지 군사주의 기획보다는 밤거리 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성공회대의 다수 독자 분들에게 앤 창간호의 내용이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다. 막연하게 느껴오던 군대―병역―군사주의에 대한 불편함을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을지, 전혀 모르던 새로운 이야기를 접할 기회였을지, 불편해하면서 “여성주의+병역거부는 참 최악의 조합인 듯”이라고 뒷담을 까고 있었을지, 혹은 나처럼 다소 식상한 이야기라고 느끼고 있었을지…. 군사주의와 평화의 문제에 대해, 좀 새롭거나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앤 창간호를 펼쳤던 나의 과욕일까?
  앞으로도 이러한 불일치는 계속될 것이다. 숱한 여성주의의 문제들을 다루다 보면, 정말 몇몇 새로운 주제들을 제외하면 많은 것들이 그 전에 여러 번 이야기되어 온 주제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아주 새롭게 받아들이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과, 그런 이야기들을 이제는 식상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독자층의 이러한 불일치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인데, “운동가는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앤은 같은 말을 기꺼이 반복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반복하거나, 아니면 다른 말을 생산해내는 길을 택할 것인가?



여성주의 언론운동의 임무 (<-군사주의적 용어?)

  그래서, 여성주의 저널이란 무엇인가? 혹은 대학 안에서의 여성주의 언론운동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역사적으로는 여성주의가 대학 안에서 이야기되기 시작하고 ‘영페미니스트’라는 용어가 흘러다니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과 연관지어 설명해야겠지만, 그런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겠다.(지식과 지면이 모두 짧아서.)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정기적으로 자신들의 발언을 담아서 배포하는 여성주의 언론운동은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그나마 효과적인 활동 방식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성주의 저널은 단순히 여성주의를 알리고 선전하는 선명하고 투명한 정치적 프로파간다일 수는 없다.
  단적인 예로, ‘다함께’에서 발행하는 <맞불>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단일한 이론적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에 선명한 주장을 담을 수 있는 <맞불>과 여성주의 언론들은 그 조건이 다를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이미 이론적/운동적으로 단일한 무언가가 아니라, 다양한 페미니즘‘들’로 분열된 상태이다. 여성주의는 여성주의와 여성 내부의 차이, 그리고 자기 성찰과 반복되는 해체, 재구성의 움직임 속에 내파(內破)되었다. 이제 페미니즘은, 단일하고 선명한 정치적 행동주의로서가 아니라 계속해서 고민하고 질문하고 많은 여성주의“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여성주의 언론 또한 선명한 프로파간다로서 만들어지기보다는 여러 고민들, 자기 모순과 성찰, 복잡성 속을 헤매는 텍스트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여성주의 언론운동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계몽’(?)하고 정답을 제시하는 방식보다는,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고민들을 풀어나가는 방식,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취하곤 하며 그러한 위치 설정에 더 큰 의의가 있을지도 모른다. 앤에 붙는 수식어가 “내가 묻는 방식”인 이유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라고 나는 멋대로 추측해본다.

  보통 ‘정답’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단일한 ‘진실’은 불편할 수도 있지만 제시되고 주어진 진실은 여하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강제적이다. 하지만 ‘질문’은 불편하다. 특히 ‘정답’이 없는 ‘질문’, 함께 여러 가지 답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는 것 같은 ‘질문’은 불편하다. 주어지는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비판’ 또한 불편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편하거나 힘들거나이다. 앤 하나를 발간하기 위해서 앤 편집진들은 얼마나 많은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거치는가? 앤이 풀어내는 여러 이야기들 속에서 실제로 새로운 삶을 재구성해내고 생산해내기 위한 고통은 또 얼마나 힘든가? 동시에 그런 고통, 그런 불편함은 일종의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마조히즘적인 기쁨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_-) 그동안 억압되어오고 언어화되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표현되고 생산되는 행복이며, 앤이라는 물질화된 결과물에서 느끼는 성취감이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앤의 독자들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며 끝맺고 싶다. 따라서 앤은 앤을 읽는 그 많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격의 이야기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내야 한다. 예컨대 군사주의 기획 같은 경우에는, ‘모두’에게 ‘불편한’ 화두와 고민거리들을 던져주기 위해서는 군대 문화의 이야기, 일상적 군사주의에 대한 이야기, 병역거부 운동에 대한 이야기, 평화운동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 등등이 모두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산문, 운문, 삽화, 만화, 사진 등등 다양한 전달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모두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화제가 되는 앤이 되기 위해서는 말이다. 역량을 고려할 때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있다 보면 조금은 더 좋은 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앤이 같은 말을 반복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묻는 다른 질문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물건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여성주의”라면 일단 삐딱하게 ‘낙인’을 찍고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더라도, 그 수가 많건 적건 앤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당히 불편한 책이 되었으면 한다. 너무 글만 넣지 말고 다른 표현 방식들도 실험하면서… ^^; 앤에 대한 나의 이 너무나 유한한 사랑을 담아, 참으로 유한하게 구성된 날림 글을 마친다.


* 미처 본문에는 끼워 넣을 곳을 찾지 못했는데, 나는 앤에서 뒤쪽에 예산 사용 내역과 후원 등을 밝히는 게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안의 여러 ‘저널’들을 봐왔지만 이런 귀찮은 작업을 하는 곳은 얼마 없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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