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6. 7. 6. 11:33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우리 사회의 청소년혐오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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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혐오’, 아마 당신이 처음 들어보는 말일 것이다. 소수자 집단에 대한 사회적 대우를 명명하는데 사용하는 용어로는 혐오, 차별, 배제, 폭력, 낙인 등이 있다. 모든 소수자 집단이 혐오와 차별과 배제와 폭력과 낙인을 겪고, 이 용어들의 의미는 종종 중첩되지만, 집단에 따라 그 양상이 미묘하게 다르다. 특히 어떤 집단에 대한 어떠한 대우는 특정한 용어로 명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거나 그 본질을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혐오'로 명명되어 분석된 적이 아직 한국에서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청소년을 비하·경멸하고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혐오로 해석되어야 한다. 청소년에 대한 비하와 경멸은 일상에서 만연하게 드러나며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를 정당화한다. 청소년을 공포스러운 타자로 간주하는 문화는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유독 나이를 강조하여 ’무서운 십대들‘이라고 수식하는 언론, 청소년을 통제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 청소년이 길에 모여만 있어도 무섭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드러나고 재생산된다. 이 글에서는 청소년혐오라는 용어를 소개하고,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혐오어와 체벌을 중심으로 청소년혐오 현상을 간략히 분석해보려고 한다.

청소년혐오, 'Ephebiphobia'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이론화 작업을 하는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는, '성인중심주의(Adultism)'에 맞선다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미국의 단체 'The Freechild Project'에서 발간한 자료들을 함께 읽었다. 그 중 ‘Ephebiphobia’에 대해 설명하는 자료가 있었다. Freechild Project는 ephebiphobia를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공포로 정의하고, 미디어와 정치, 그리고 학교 현장 등에서 만연한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전사회적 공포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이는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하여 거대 미디어가 아동과 청소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강화된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Freechild Project는 이 ephebiphobia가 민주주의, 사회문화, 교육,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측면에서는 청소년의 참정권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것, 정치인이나 정치 조직에서 청소년의 권리를 대변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난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청소년을 악마화(demonize)하는 현상, 가족 안에서 부모가 청소년 자녀와 자녀의 친구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현상 등으로 결과가 나타난다. 교육의 측면에서 의무교육제도, 체벌, 학교에서의 나이(학년)구분은 ephebiphobia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19-20세기 많은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자, 그들에게 공포를 느낀 사회와 어른들이 학교를 의무화하여 청소년이 낮 시간동안 거리에 모여 있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연령의 청소년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두려워한 결과가 나이(학년)구분이라고도 설명한다. 경제 측면에서는 청소년이 의미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구조, 가게들이 ‘보호자 동행 없이 18세 미만 출입 금지’ 간판을 내거는 현상, 청소년이 거리에 많이 보이는 동네를 어른들이 피하는 바람에 상권이 변화하는 현상도 ephebiphobia의 결과라고 말한다.

우물모임에서는 위 자료를 읽고 한국 사회가 청소년을 대우하는 방식을 ephebiphobia 개념을 차용해 분석하는 것이 유의미하며, 한국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ephebiphobia를 청소년혐오로 번역했다. -phobia는 개인의 병리적인 공포증과 사회적 혐오 현상을 설명할 때 모두 쓰이지만, 비슷하게 –phobia의 결합어인 호모포비아의 경우 한국의 맥락에서는 ‘공포증’보다는 ‘혐오’로 번역되는 것이 적절하고, 실제로도 동성애 혐오나 성소수자 혐오로 번역되어 쓰인다. 공포증으로 번역하였을 때는 폐소공포증이나 첨단공포증처럼 개인의 병리적 증상을 나타내는 뉘앙스가 강해, 그것이 일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사회적 현상이라는 맥락이 옅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혐오어의 등장과 확산

다음의 말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어떤 뜻일지 짐작해보라.
1. 급식충
2. 등골브레이커
3. 중2병

위 세 가지 단어는 최근 온오프라인에서 청소년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말들이다. 언어로 드러난 혐오만이 혐오의 전부는 아니지만, 혐오현상을 진단하는 데 특정 집단에 대한 어떠한 용어들이 통용되는가를 지표로 삼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위 세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간주하고 혐오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급식충, 너넨 무상급식 먹을 자격 없어!

급식충은 ‘급식’ ‘충(벌레)’의 결합어이다. 급식을 먹는 초․중․고 학생을 경멸하는 말이면서, 무상급식의 맥락에서 (사회에 기여도 안 하면서) 복지의 수혜를 받는 집단이라고 청소년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다. 중학생은 ‘중급식충’, 고등학생은 ‘고급식충’으로 이르기도 한다. 무상급식 먹을 자격 없다는 맥락에서 청소년을 급식충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이전에도 청소년을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 그러면서 특혜를 누리거나 의무를 면제받는 존재로 간주하는 인식은 만연했다. 형사처벌의 감경을 특권으로 묘사하며, 청소년이 그 특혜를 누릴 자격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은 주로 청소년이 위법한 행위를 했을 때 대중이 분노하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형사처벌의 감경을 근거로 청소년은 ‘책임을 다하지 않으므로’ 성인과 동등한 권리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성립하기도 하는데, 청소년의 참정권을 논할 때도 성인과 동등하게 처벌받지 않는 존재가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냐는 반응이 되돌아오는 식이다.

부모님 등골 빼먹는 등골브레이커들

(부모의)등골을 부수는 존재라는 의미의 ‘등골브레이커’도 청소년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된다. 이 말은 모든 청소년이 부모의 부양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편견에 기댄 말이기도 하면서, 청소년이 부모의 부양에 기대어 살아가게끔 만드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대신 청소년을 기생하는 존재로, 기생하면서 고마움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존재로 비하하는 말이다. 청소년의 소비와 관련해서 이 말이 자주 사용되는데, 청소년이 입시공부와 관련 없는 소비-옷, 화장품, 신발 등-를 할 때면 ‘등골브레이커’라는 딱지가 붙는다. 여성의 소비를 사치로 간주하고 남자의 돈으로 그것을 샀을 것이라 간주하며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 청소년의 소비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위 사진:2014년 '취재파일K'라는 시사프로그램에서 중2병이 교실과 교사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방송을 함.

중2병을 치료하자?!

중2병은 비교적 예전부터 흔히 사용되어온 말이다. 초기에는 주로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지나친 진지함이나 ‘오글거리는’ 말과 행동을 지칭하는 데 쓰였다. 하지만 점차 그 의미가 약간 변질되어 쓰이기 시작하는데, 초기의 의미에 더해 부모나 교사에 반항하거나, 우울하거나 염세적인 것, 성적 호기심을 가지는 것,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공부를 안 하는 것 등 매우 포괄적인 언행에 중2병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단어는 은어처럼 쓰이던 단계를 지나 현재는 각종 언론, 심지어는 공공기관이 개최하는 강의명에도 쓰이고, 교육감 후보의 공약에서도 활용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중2병이라는 병은 없다. 의학적으로 실증되지 않은 병인데도 이 단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며 청소년 집단을 병리화하고 있는 상황은 청소년혐오를 이 사회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방증한다.

체벌의 혐오범죄적 특성

혐오범죄는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소수자집단 전체를 위축시키려는 명시적이거나 암묵적인 의도를 가지고 소수자집단에 속한 특정 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이다. 혐오범죄 가해자가 목표하는 바는 무엇일까. 가장 큰 목표는 해당 소수자집단이 위축되거나 사라지는 것일 테지만, 자신이 마주한, 구체적인 개인으로 드러난 피해자에 대하여 목표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로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거나,‘ ~하는 행동이나 특성을 고치도록 만드는 것’일 것이다. 흡연하는 여성에 대한 구타는 여자가 길거리에서 건방지게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싶다는 욕망을 기반으로,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하는 ‘교정강간’은 성적지향을 고쳐놓고자 하는 목표 의식적으로 행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체벌의 혐오범죄적 특성을 파악할 수 있다. 체벌은 청소년으로서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나 특성을 고치도록’ 만들기 위해 목표 의식적으로 행해진다(물론 단순히 분풀이를 위해 행해질 때도 많지만, 그렇더라도 청소년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는 관철된다). 때로는 청소년 집단이 특정 청소년이 체벌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집단 전체가 위축되도록 하는 의도를 달성하기도 한다. 교사가 굳이 반 전체 학생이 보는 앞에서 특정 학생을 체벌하는 것은 한 명을 때리지만 그 위축감을 반 전체 학생들이 공유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래서 그 반의 학생 모두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고분고분해지기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체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이유 없이 감정적으로 행해지는 체벌만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체벌과 혐오범죄의 가장 극명한 형태는 오히려 뚜렷한 목표를 갖고 행해지는 형태이다. 체벌은 비청소년에 의해 (어린이) 청소년에게 행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서 밝힌 그러한 특성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부모-자식, 교사-학생, 비청소년-청소년 간의 권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혐오범죄적 특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청소년혐오, 앞으로의 이론화 작업

청소년혐오는 청소년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근저에 깔린 사회적 감정이며, 나이에 따라 권리와 자원을 차등 배분하는 나이주의의 양상이다. 지면상 이 글은 청소년혐오 현상에 대해 몇몇 혐오어들과 체벌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 청소년운동에서는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청소년혐오의 내용을 채우고 그 개념을 활용하여 사회현상을 분석해나가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쥬리 님은 우물모임 멤버이자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491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9일 13:21:5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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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6. 6. 23. 10:35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청소년 억압의 뿌리, 나이주의를 발견하다

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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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청 소년인권운동은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 ‘나이주의’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 사실 나이주의(Ageism)라는 개념은 노인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에서부터, 그리고 페미니즘에서까지 사용되던 개념이다.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며 ‘한 우물만 파는 모임’인 우물모임에서는 지난 1년 여 동안 나이주의에 대해 자료를 찾고 토론하며 청소년운동이 이야기하는 나이주의가 어떤 것인지 정리했다. 그 결과 중 일부를 인권오름을 통해서 공유하고자 한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이 사회에 여러 가지 도전을 했던 청소년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학교에서 방과 후 학습을 강요하는 일을 중단시키기 위해 헌법 소원을 내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종교 강요를 거부하며 단식을 했다. 어떤 사람은 머리스타일을 획일화시키는 학교 규칙들을 바꾸려고 서명운동을 했다. 어떤 사람은 미성년자는 밤 10시에 귀가시킨다는 촛불집회 주최 측 방침에 항의하며 청소년에게도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발언했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들은 밤 12시 이후에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다는 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이 겪은 차별과 억압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겪은 것이었다. 이처럼 ‘청소년이기 때문에’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없애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움직임이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인권운동은 가장 근본적인 하나의 질문과 씨름해야만 했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 억압은 무엇으로 인해 생기는가?’ 처음에는 구시대적인 학교 문화와 비청소년(어른)들의 편견, 유교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진행되면서는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없기 때문, 또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 참정권이 없는 것이나 경제력이 없는 것 자체가 청소년 억압과 차별의 결과 중 하나라는 점에서 좀 더 거시적인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때문, 사회재생산 과정의 문제라는 논의로 나아갔다.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등의 사회 체계 자체가 원인이라는 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 더 세분화하여 청소년 억압을 규명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제 우리는 이를 위해 ‘나이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하려고 한다. (단, 정확히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는 아직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나이주의(ageism)는 성차별주의(sexism), 인종주의(racism)와 같은 맥락의 조어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나이주의는 나이에 따른 차별, 나이를 중심으로 어떤 사람의 특성을 섣불리 규정하고 그 규정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부정적인 규정 뿐 아니라 긍정적인 규정 역시 포함된다. 또한 나이주의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나 인식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시장, 국가 제도, 사회 구조 전반에 존재한다.

나이는 자연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지구가 일정한 주기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사람이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노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나이 개념으로 파악하고 제도화하는 것은 사회이다. 국가가 인구를 관리하고 효과적인 사회적 재생산을 꾀하기 위해서 나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현대 국가는 사람들의 나이를 셈하고 나이에 따라 학교, 노동, 결혼, 은퇴와 노년생활, 복지 체계 등의 제도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생겨나는 나이에 대한 관념과 문화, 그리고 제도와 사회 구조가 곧 나이주의이다.

이런 설명에서 알 수 있겠지만 나이주의는 단지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주의는 처음에는 노인차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나이주의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사회 구조이며, 그 속에서도 도드라지는 것이 노인과 청소년인 것이다. 우리는 나이주의와 청소년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청소년이 겪는 나이주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나이주의는 청소년의 권력을 빼앗고, 청소년을 사회적 소수자로 만든다. 슬프게도, 나이주의는 이견이 없는 진실 내지 상식, 사회적 합의라고 받아들여질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상태이다. 그만큼 나이주의는 사고방식 속에, 사회 체계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있고, 지금의 사회를 움직이는 근간이 되고 있다.

나이주의의 사례들

나이주의의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가족은 대단히 나이주의적인 제도이다. 나이에 따른 올바른 행동양식이 있다거나, 청소년은 친권자(법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친권을 갖는 사람, 소위 부모 등)의 경제적 사회적 법적 통제 하에 있으며, 친권자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거나, 나이가 적은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의 생각을 깨닫기에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이 널리 퍼져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친권자들은 청소년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 “애면 애답게 굴어라”
- “내가 시키는 대로 해” / “나한테 말대꾸 하지 마”
- “너도 나처럼 나이 먹으면 알게 될거야” / “너도 니 자식 키워보면 알 거다”

이는 친권자와 청소년 사이의 관계에서 나이주의로 인해 권력차가 생긴 것이다. 청소년이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친권자는 나이주의로 인해 청소년의 입장보다는 청소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며 기존의 관계를 지속시키려 한다. 국가는 친권자가 청소년을 ‘보호’하고 감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나이주의적인 제도로 기존의 관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환경을 유지시킨다. 청소년의 특성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은 이와 같은 협력(?)으로 계속 단단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은 정치로부터 배제되어야 하고, 정치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나이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여기에는 청소년이 아직 미성숙해서 정치적 결정을 함께할 시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것은 나이주의 체계 속에서 청소년이 부여받는 주요한 위치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정치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더러운 것으로 보며 청소년이 정치에 쉽사리 휩쓸려 희생당하거나 타락해선 안 된다는 인식도 더해진다. 청소년이 타인을 속이거나 이용해먹을 줄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참정권 문제를 포함하여 청소년이 순수한 존재,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고 하는 것은 청소년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며 정치를 금지시키자는 비청소년들에게, 어떤 청소년이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선거권을 돌려줄 리는 없다. 결과적으로 국가기관에서의 판단이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강제로 막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돌려받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정치로 인해 물들어버렸다’,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사람이 문제의 근원이다’라는 나이주의적인 판단이 우선되면서 청소년의 요구는 묻힐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은 여전히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고, 국가는 청소년을 기르는 존재로 대할 뿐 청소년을 대변하는 정책을 내지 않고 있다.

이렇게 청소년인권운동은 나이주의를 통해서 ‘청소년이기에 받는 차별과 억압’을 더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주의가 무엇인지, 나이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통용되고 있는지를 계속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청소년을 차별하는 나이주의 개념, Adultism

그런데 이건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Freechild project’에서 모여있는 자료들은 나이주의를 ‘Adultism'이나 ’Pedophobia', 'Ephebiphobia’, ‘Adultcentrism' 등으로 부르며 청소년 프로그램 기획자나 유아의 친권자, 학생, 청소년인권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나이주의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있다. 그 곳에서 발견한 청소년을 차별하는 나이주의(Adultism)의 정의를 간략하게 추리면 다음과 같다.

- 청소년을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침묵하고 얕잡아보고 탄압하는, 비청소년(이른바 ‘성인’)들의 습관적인 태도·사고방식·생각·믿음·행동.
- 비청소년이 청소년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청소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청소년을 위한 행동을 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
- 비청소년들이 조직적으로 청소년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 청소년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신뢰하지 않으며 의미 있는 결정과정에서 배제하는 것.
- 청소년들에게 삶의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 것.
- 청소년 개인의 권익이 아니라 청소년 집단 전체를 대하는 일반적인 관점을 기준으로 청소년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


Freechild project의 자료들은 위와 같은 식으로 나이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나이주의의 특징을 분류하고, 나이주의가 끼치는 영향을 소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Paul Kivel에 의하면 청소년은 자신의 삶에 대한 권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규제당하고 통제당하고 학대당했고 그것이 청소년에게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내면화되어 청소년이 겪는 모든 문제를 청소년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고 한다.

Freechild project를 운영하고 있는 Adam Fletcher는 나이주의로 인한 비청소년 중심적인 시선이 결국 청소년 본인에게까지 옮겨져 “나이 어린 비청소년(little adults, 청소년 본인이 아니라 ‘만들어진 어른’에 가까운 사람)”현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고, 청소년에 대한 차별을 언어 차별, 청소년활동에서의 차별, 학교에서의 차별, 사회에서의 차별로 분류하였다.

청소년 프로그램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John Bell은 청소년을 통제하려 하는 나이주의가 학생을 억압하는 교칙과 법률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어린이 발달문학과 교육담론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나이주의로 인해 존중받지 못하고 잘못된 대우를 받는 것은 점점 그 고통에 익숙해지게 만들고, 결국 다른 억압에도 마찬가지로 무감각해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Freechild project는 나이주의를 뛰어넘기 위한 여러 실천사항들을 풍부하게 제안하고 있다. 나이주의와 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소개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교육안까지 마련되어 있었을 정도였다. Freechild project의 자료 중에서 사람들이 청소년에 대한 차별과 나이주의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았더니,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 비청소년에게 하는 것처럼 청소년에게도 눈을 맞추며 성의를 다해 이야기하라.
- 비청소년에게는 쓰지 않을 말들을 청소년에게만 쓰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라.
- 타인에게 나이주의를 지양하는 자신의 방식을 드러내고 권유하라
- 나이주의에 저항하는, 특히 청소년 당사자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라
- 비청소년의 나이주의가 어느 수준인지, 어디의 문제인지를 파악하자.
- 나이주의를 고수하는 비청소년에게 청소년을 향해 분노를 표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자.
- 다른 비청소년들에게 나이주의에 대해 탐구하자고 요청하고 동료를 모으자.


한국에서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에서 주최한 ‘꼰대와 동지 사이, 나이주의를 고민하다’ 워크숍에서 나이주의 사전을 만들며 나이주의가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밝힌 적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인권오름에서 기사 <[인권교육, 날다] 허깨비 같은 나이주의, 개념으로 잡아내다>로 다뤄졌고, 이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나이주의 사전은 다듬어 다시 발표되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이주의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거듭하고 있다. 다음 순서부터, 나이주의의 한 현상으로서 청소년혐오와 한국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나이에 따른 서열과 ‘예의’ 문제 등을 소개할 것이다. Freechild project에서 나온 말처럼, 반(反)나이주의의 가치를 정리하고 전파하다 보면 청소년 억압의 뿌리가 분명 뽑힐 것이라고 믿는다.


* 여기서 말하는 청소년은 주로 0세부터 만 19세까지인, 실질적으로 ‘미성년자’ 취급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필부 님은 노원지역청소년인권동아리 화야와 청소년운동 우물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490 호 [기사입력] 2016년 06월 22일 13:40:2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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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5. 2. 8. 15:02

[벼리]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①

검은빛, 공현,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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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청소년 운동이 지금 놓인 현재와 고민, 그리고 새롭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거나 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내가 담겨있습니다. 인권오름에서는 선언에 담긴 내용과 그에 대한 설명과 맥락을 다양한 사람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다만 웹으로 글을 읽을 때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하나의 글을 두개의 글로 나누어 담습니다.

2015년 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청소년활동가마당’이 열렸습니다. 지난 2014년에 처음 ‘청소년활동가마당’을 연 뒤 횟수로 두 번째였습니다. 청소년활동가마당은 청소년운동 단체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청소년운동의 의제나 활동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여 교류하고 토론하자는 취지로 열린 활동가대회 성격의 행사입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 여긴 어디? 나는 누구?>는 그 제목 그대로 청소년운동의 현주소와 청소년활동가들의 현재를 함께 확인하는 자리로, 청소년활동가들 30여 명이 각 단체의 활동을 공유하고, 질문과 고민을 나누고 토론을 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의 마지막 순서는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셋째날에 기획단이 미리 준비해온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 초안을 놓고 수정 및 보완하는 토론을 했으며, 참여자 중 자신의 이름이 이 선언에 명기되는 것에 동의한 활동가들의 연명으로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기획단에서 굳이 선언을 제안하고 채택한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개별 단체 소속을 넘어 ‘청소년활동가’로서, 함께 청소년운동의 목표와 현재를 명문화된 형태로 발표하자. 둘째, 새로 청소년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청소년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안내해줄 수 있는 자료를 만들자. 셋째, 청소년운동과 부대끼고 있거나 청소년운동을 잘 모르는 다른 운동/활동가들에게 청소년운동에 대한 내용을 좀 더 합의된 형태로 제시하자. 청소년운동의 단체와 흐름들이 다양해지면서, 한 단체의 강령이나 운동원칙 합의 정도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선언은 총 11개의 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운동이 그간 논의해온 수많은 의제들과 고민들을 모두 내용으로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적으로 함께 인식해야할 중요성이 있는 내용들을 모아 만들게 됐습니다.

선언의 전반부는 주로 청소년운동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청소년에 관련된 단체나 활동이 여러 종류가 있고 ‘청소년’ 자체의 개념도 모호한 까닭에 대체 무엇이 또는 어디까지가 청소년운동인지 혼란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선언을 통해서 청소년운동의 정의와 방법론 등 그 중심에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들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시선, 또는 청소년운동과 다른 사회운동 사이의 관계 등을 다루는 내용이 있습니다. 운동의 정체성이란 다른 이들과의 관계나 외부로부터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을 보는 잘못된 관점을 비판하고, 청소년운동의 정치성과 독립성, 연대성 등의 원칙과 성격을 적었습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그 이름 그대로 2015년 시점에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과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청소년운동이 변화하고 발전해가면서 새로운 문제의식과 발전한 내용을 담은 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을 통해 청소년운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길 바라는 한편으로 그런 변화의 여지 또한 염두에 두시길 청합니다.

2015 청소년활동가 선언

지 금 우리의 청소년운동은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청소년운동은 쌓인 경험과 기억, 그리고 더 깊어지고 다양해진 목소리와 실천을 바탕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청소년운동의 새로운 모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등과 같은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운동의 존속에만 급급하던 시대를 넘어, 이에 더해 발전과 변화 또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해방을 위한 경로를 찾기 위해서는 현재 위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청소년운동이 무엇이며 어디를 향해 있는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청소년운동 안팎으로 알리는 언어가 필요하다. 우리는 <2015 청소년활동가마당 - 여긴 어디? 나는 누구?>에 참여하여 청소년운동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를 마무리하며, 우리들은 각자의 소속 단체를 떠나서, 한 사람의 청소년활동가로서 청소년운동에 대해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우리의 청소년운동이 서있는 위치와 걸어갈 방향, 그리고 걸음걸이를 밝히고자 한다.

1. (청소년운동의 목표)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해방을 지향하는 사회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 차별, 폭력, 착취에 저항하며, 청소년들이 인간적으로 존중받고 개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평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 (청소년의 정의) 우리가 말하는 청소년은 사회에 의해 ‘미성년’이라고 구분되는 모든 사람들이다. 연령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적・제도적․관습적․문화적 구분의 기준이 청소년운동의 당사자를 결정한다. 그 범위는 대개 만18세~20세 미만이 되며, 경우에 따라 더 적은 나이나 더 많은 나이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3. (청소년의 성격) 청소년은 소수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집단이다. 현재 청소년인 사람은 사회적으로 억압과 차별을 받는 소수자의 위치에 있으나, 모든 청소년은 언젠가 청소년이 아니게 되며 모든 비청소년은 한때 청소년이었다. 또한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계급성을 가지지만, 그러면서도 속한 가족의 계급의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은 한 마디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한 채 유예된 존재이다. 청소년운동은 단지 현재 청소년인 사람들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해 투쟁할 뿐 아니라, 특정 연령의 사람들을 ‘청소년’으로 구분하고 억압하는 현상과 사회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4. (청소년억압의 성격) 이 사회에서 청소년은 국가와 자본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생각되며,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 또는 미래를 준비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청소년억압은 신체적・사회적 약자인 청소년들을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맞춰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사회에서 청소년억압의 대표적인 사회구조는 학교와 가족이다. 학교제도는 청소년이 자본주의적인 경쟁 및 차별 논리, 능력주의를 내면화하고, 권력에 복종하는 국민이 되도록 교육하고 있다. 현 가족제도는 청소년을 친권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만들고 양육과 생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며 계급을 재생산한다. 학교와 가족뿐만 아니라 비청소년 중심의 각종 제도와 문화 역시 청소년억압의 중요한 요소이다.
5. (청소년 안의 다양성) 청소년들은 단일한 존재들의 모임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계급, 성(性), 사상 및 이념, 신체적 상황, 그밖에 다양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자 다른 억압을 경험한다. 청소년은 여러 차원의 중첩된 억압을 겪는 존재이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은 다양한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억압에 저항한다.
6. (청소년운동의 주체)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청소년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청소년 당사자이다. 청소년 당사자가 정치적인 힘을 가진 주체로 나서고 연대를 통해 집단적인 세력이 되는 것은 청소년해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소수의 엘리트나 ‘선한 어른들’이 청소년해방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7. (청소년운동과 나이주의)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에 반대한다. 나이주의는 연령에 따른 위계, 나이에 따른 차별 등의 문화와 제도를 가리킨다. 청소년들은 나이주의에 의해 사회 전반에서 차별과 억압을 겪기에 청소년운동은 나이주의를 극복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나이주의는 운동사회에도 존재하며, 그로 인해 청소년활동가들은 동등한 활동가로서 존중받지 못하기도 한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이 나이를 이유로 운동의 참여가 제한되거나 업무에서 배제되는 현상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들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활동가로서 존중받으며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조직 구조와 문화를 지향한다.
8. (청소년운동의 정치성) 청소년운동은 정치적인 운동이다. 사회를 운영하고 사회적 문제에 대해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정치이고, 따라서 사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정치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겪는 일상적 억압과 차별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이며, 이에 저항하는 청소년운동도 정치적인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주장하며, 정치적 활동이 청소년이 접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에 반대한다.
9. (청소년운동의 독립성) 청소년운동은 다른 운동에 종속되지 않은 운동이다. 청소년운동에 ‘배후’가 있다고 여기거나, 청소년활동가들이 다른 비청소년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이자 거짓이다. 또한 청소년운동은 다른 사회운동의 ‘준비과정’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동등한 사회구성원이므로 청소년의 사회적 참여는 당연한 것이지 특별하거나 대견한 일이 아니다.
10. (청소년운동의 고유성)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만의 문제의식과 고유한 영역을 가진다. 청소년억압은 다른 구조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관점에 의한 정세 판단과 가치 기준, 우선순위를 갖고 활동한다.
11. (청소년운동의 연대성) 청소년해방은 인간해방과 분리되지 않는다. 청소년억압은 우리 사회의 각종 억압적인 구조와 제도,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은 우리 사회의 인간해방을 위해 함께 투쟁한다. 그리고 인간해방과 우리 사회 전체의 변화를 위해 청소년운동으로서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한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청소년운동의 지향을 함께 선언하며,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모든 청소년의 해방을 향해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와 단체에서 청소년운동을 하면서도, 해방을 위한 단결의 필요성을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다른 운동과 구별되는 고유한 청소년운동을 하면서도, 청소년해방은 전체 사회구조의 변혁과 함께 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활동가이고, 우리의 옆에는 청소년해방을 함께 이루어낼 동료가 있다. 우리는 더욱 많은 청소년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더 많은 청소년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2015년 1월 15일
※ 이름 뒤의 단체명은 참여자의 소속 단체를 참고삼아 알리기 위한 것이며,
해당 단체가 공식 입장으로 이 선언에 참여했다는 뜻이 아님을 밝힙니다.
검은빛(관악청소년연대여유), 공현(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난다(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델라(관악청소년연대여유), 둠코(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루블릿(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마카롱(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목성돼지(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미쁨(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박씨(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별다(청소년활동기상청활기), 선우(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윤서(희망의우리학교), 이응이, 자유(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쥬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쥰(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최준호(중고생연대), 치이즈(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플린(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필부(노원지역연합청소년인권동아리화야), 하루유키(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호야(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덧붙이는 글
검은빛 님은 관악청소년연대여유 활동가 입니다. 공현 님은 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입니다.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25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05일 14:20:47


















[벼리] ‘2015청소년활동가선언’을 소개합니다②

검은빛, 공현, 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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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주]

'2015 청소년활동가선언'은 청소년 운동이 지금 놓인 현재와 고민, 그리고 새롭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하거나 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안내가 담겨있습니다. 인권오름에서는 선언에 담긴 내용과 그에 대한 설명과 맥락을 다양한 사람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다만 웹으로 글을 읽을 때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하나의 글을 두개의 글로 나누어 담습니다.

선언 해설

먼저, 선언의 앞머리에는 청소년활동가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짧게 보면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청소년운동은, 정치적 권리 부재와 경제적 독립의 어려움이라는 청소년 집단의 특수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지속하고 성장시켜왔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이 운동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결의로 성장해온 청소년운동은, 이제 불충분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지속가능한 운영과 활동가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지금이 앞으로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시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전문에서는 선언이 나온 그런 현실 인식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1. (청소년운동의 목표)
2. (청소년의 정의)
3. (청소년의 성격)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운동’이라고 하면, 청소년들을 선도․보호․육성하는 종류의 단체들이 많이 떠오르고 ‘청소년단체’라고 하면 여전히 그런 단체들이 주류입니다.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는 우리의 운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일부 충돌하기도 합니다. 이는 사실 1920년대에 ‘소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운동이 청소년에 대한 보호․교육과 청소년 해방, 두 가지 상이한 입장을 함께 안고 있던 것에서부터 예언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선언 1항에서부터 청소년 해방을 운동의 목표로 명시하며, ‘청소년운동’이라는 이름을 재정립하기를 바랐습니다.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이 무엇인가 역시 설명할 필요가 있지요. 우리는 그것이 어떤 자연적인 나이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분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운동이 특정한 세대의 성격이나 문화(청소년들은 순수하다, 정의롭다, 충동적이다, 발랄하다 등)로 인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 억압이라는 사회구조에 맞서는 지속적인 운동이라는 것도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은 시간이 흐르면 변할 수밖에 없다는 운명적 특수성이 있습니다. 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청소년 집단은 소수자이며,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는 집단이라는 점에서도 소수자이지만, 청소년기의 경험과 억압은 모든 사람들이 겪고 (보통은 미화되거나 왜곡되곤 하지만)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보편적인 성질을 지닙니다.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철폐하는 일은 전체 인간의 해방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4. (청소년억압의 성격)
5. (청소년 안의 다양성)
다음 4항에서는 ‘청소년억압’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했습니다.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억압이 단지 비청소년들의 고정관념이나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논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유교 문화, 신자유주의, 권위주의 문화 등 다양한 것들이 거론되었었지요. 이번 선언에서는 청소년억압의 원인을 국가와 자본에 의해 수단화되어 자본주의적 구조 하에서 자본을 위한 인적 자원으로 청소년기를 희생당하는 것을 핵심으로 꼽았습니다. 나아가서 억압적 사회구조에 맞춰서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고 짚어봤습니다.
청소년기는 특히 지배 이데올로기와 구조를 내면화하도록 요구받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기본권을 억압당한 채 권력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고, 경쟁과 차별 등을 내면화합니다. 또한 핵가족단위를 중심으로 한 시스템은 미성년 자녀의 권리를 그 보호자에게 양도하는 친권제도와 청소년의 성과 생활에 대한 통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제도는 청소년들에게 계급재생산/상승을 위해 사회에 순응할 것을 종용하고, 양육의 책임을 부모 개인에게 떠넘기기도 하며, 여성들은 어머니라는 굴레 속에서 자녀의 삶을 책임지고 관리하느라 가정과 가부장에 종속되게 만듭니다.
5항에서는 청소년들이 여러 다른 조건에 놓여 있기에 여러 중첩된 억압을 겪는다고 적었습니다. 이는 청소년들이 겪는 다양한 억압에 복합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즉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들이 단지 청소년억압에 대한 인식 하나만으로는 설명하거나 대처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5항에 관해서는 무엇을 조건의 예시로 나열할지에 대해 토론이 이루어졌는데요. 초안에서는 일단 청소년운동이 지금까지 다루어온 경험이 있는 계급(경제상황)이나 성(성별,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 등)을 나열하자고 제안했고, 이에 더해 몸과 마음의 문제를 대표격으로 넣어서 사상 및 이념과 신체적 조건(예를 들어 장애, 외모 등이 얘기됐습니다.)을 명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6. (청소년운동의 주체)
6항은 청소년운동의 주체를 다룹니다. 준비 과정에서는 청소년운동의 방법론을 다룬 항과 주체를 다룬 항이 따로 있던 것을 논의 끝에 합쳐서 만들어진 항이기도 해서, 방법론에 대한 언급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년운동의 주체는 청소년해방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지만, 청소년 당사자가 주체가 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청소년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청소년 당사자인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활동가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비청소년으로서 청소년운동을 하고 있으며, 운동에서 늘 가장 중요한 주체가 ‘당사자’인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단체마다 회원 자격이나 운영 방식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청소년 당사자의 주체적 활동은 청소년운동에서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7. (청소년운동과 나이주의)
7항은 ‘나이주의’에 대한 것입니다. 나이주의적 제도나 문화는 청소년이 미성숙·무능력하다는 편견에 따라 많은 억압과 차별을 가하며 보호라는 미명 하에 청소년의 경험과 참여를 차단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사회 안에서도 이런 나이주의 문제에 부딪히고,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청소년활동가들은 이런 문제로 다른 운동에 몇 차례 항의를 하고 사과를 요구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서울교육감 후보를 뽑는 경선과정에서는 청소년들을 배제하는 결정에 반발하여 연대체를 탈퇴했던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주의가 청소년운동이 다른 운동과 함께하는 데 최대의 걸림돌 중 하나라고 보고, 이런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을 알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선언을 기획하던 과정에서부터 반드시 넣어야 할 내용으로 상정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청소년 집단 내의 나이주의에 대해 특별히 더 언급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나이의 차이로 인한 위계가 특히 심각하기도 하니까요. 청소년 집단 안의 나이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것에 관해서는 대체로 동의가 되었지만, 청소년 집단이 그러한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현상은 나이주의 외에도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며, 나이주의에 관한 항에서만 특별히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는 의견에 따라 따로 담지는 않았습니다. 청소년운동 단체들의 여러 조건상 이를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단체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8. (청소년운동의 정치성)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에 관한 항 중 대표적으로 들어간 것이 정치성에 대한 것입니다. 청소년운동은 종종 비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제도권의 정치 등에 참여하면 순수성을 잃는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청소년해방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입니다. 넓은 의미의 정치도 그렇고, 좁은 의미에서 정부나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도 그렇습니다. 예컨대 학교에서 벌어지는 체벌 사건 역시 국가의 정책과 법률, 예산 배분 등이 모두 관련된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운동의 정치’를 할 것이고, 또 청소년들이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태도에 반대합니다. 또한 청소년운동이 여러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하다고도 봅니다.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은 각자 서로 다른 수준과 방식으로 정치적 문제를 다루겠으나, 적어도 청소년운동이 정치적인 운동이며 또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9. (청소년운동의 독립성)
청소년운동을 바라보는 관점 중에 가장 힘을 얻는 것은 사실 청소년운동을 다른 데 종속된, 독립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는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고 어른들에게 의존적이라는 편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수언론 등 한쪽에서는 청소년운동에 어떤 배후 세력이 있어서 청소년들을 조종하고 있다고 함부로 말하는 일이 많습니다.
또한 이른바 진보적인 운동을 한다고 하는 쪽에서도 사실상 궤를 같이 하여 청소년운동을 마치 다른 운동의 준비과정이고 청소년활동가들은 나이가 든 이후에 당연히 (대학생운동이든 청년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뭐든) 다른 운동을 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청소년활동가들에 대해 대견하거나 기특하다고 말하며 우리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독립적이고 평등한 사람이라고 본다면 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양쪽 모두에 문제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선언 9항에 이와 같은 내용을 넣었습니다.

10. (청소년운동의 고유성)
11. (청소년운동의 연대성)
선언 중 마지막 항들은 청소년운동과 다른 운동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청소년운동이 좀 더 청소년운동 자신의 이슈에 집중해야 하는가, 또는 좀 더 다른 사회운동들과 연대해야 하는가, 이는 청소년운동 내부에서 오랜 논쟁거리였습니다. 사실 하나의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때그때 다른 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선언에서는 청소년운동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을 고유하게 가진다고 했고, 청소년억압의 문제가 독자적인 것이라는 것을 우선 강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청소년운동이 전반적인 사회의 변혁과 인간해방을 위해 타 운동과 연대해야 할 필요성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청소년운동의 고유성과 연대성 중 어떤 것을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에 대해서 활동가마다 판단의 차이가 있었고, 이는 정도의 차이이고 강조점의 차이였기에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선언에서 “청소년운동으로서” 고유한 판단을 토대로 하여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로 고유성과 연대성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검은빛 님은 관악청소년연대여유 활동가 입니다. 공현 님은 대학입시거부로삶을바꾸는투명가방끈들의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입니다. 쥬리 님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활동가 입니다.
인권오름 제 425 호 [기사입력] 2015년 02월 05일 14:30:3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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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4. 30. 23:42

‘운동사회 나이주의 깨기 활동’ 제안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함께 제안하는 글입니다.)



  혹시 누군가가 청소년운동이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들과 폭넓게 연대하고 있는가 물어보면, 참 “글쎄요…”라는 대답만 나올 것 같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우리가 힘이 딸려서 여기저기 기웃기웃 못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우리의 ‘싸가지 없음’도 한 몫하고 있을 겁니다. 솔직히 아수나로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라고 하면 까칠한 애들, 싸가지 없는 애들이란 인식이 적지는 않을 겁니다. 대표적으로 초면에 반말질하는 꼰대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런 거에 사사건건 문제제기하는 게 얼마나 싫겠어요. “나이도 어린 게”.

  하지만 그건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싸가지 없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운동사회의, 어른들의, ‘감수성 없음’, ‘개념 없음’의 문제지요. 운동사회의 ‘나이주의’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나이주의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적은 사람들을 더 ‘아랫사람’ 취급하고, 또 운동의 자원도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인식과 구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한 번, 정식으로 본격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사실 우리가 그동안 그런 문제가 있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만 대처해온 것도 사실이지요. 슬슬 이게 ‘우리’ 문제가 아니라 ‘니네’ 문제라는 걸 확실하게 까발리고 치는 게 어떨까요? 예, 마치 ‘성폭력’이 그 여성의 행실이나 지나치게 까칠하고 민감한 여성들의 문제인 것처럼 생각되던 시대에서, 최소한 운동사회 안에서 ‘성폭력’이 문제라는 공감대에 이르게 된 과정처럼 말이지요. 1999년 ‘컵깨기 행사’ 같은 이미지도 같이 떠오릅니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같이 가야 할 겁니다. ① 선언문 발표나 칼럼 써서 기고하기 ② 퍼포먼스나 액션 ③ 뱃지 만들어서 달고 다니기 등등. 우선은 나이에 따른 ‘반말’, ‘하대’ 문제부터 접근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초면에는 나이에 상관 없이 존댓말을”, “반말과 존댓말은 친소(친하고 안 친하고)를 표현하는 것이지 위계를 표현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같은 취지로요. 물론 그 외에도 나이에 따라서 맡는 직위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일단은 그게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가장 상징적으로 첫 말문을 열기 좋은 주제인 것 같아요.

  ‘연대’가 단순히 서로에게 몸을 대주는 게 아니라면, 우리 입장에서 ‘연대’란 것은 우리의 정치와 감수성이 다른 운동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은 평화적이고 화기애애한 방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일종의 도전이자 투쟁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적극성을 가지고 평등한 ‘연대’의 길을 열어 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냥 “청소년인권운동이란 게 있다더라.”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직접 우리 입장을 들이밀기 위해서, 또 하나의 투쟁을 제안합니다. ‘운동사회 나이주의 깨기’를. 여기에 공감하신다면 먼저 계획부터 같이 짜볼까요? ^^


2011년 4월 30일 공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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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취지를 표현하는 부분은 중간쯤이지만... 사실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마지막 문단.

    2011.04.30 23:4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진냥

      이 글에 동의한다는 차원에서
      우리도 얼렁 반말하는 사이가 되어야 할텐데요..ㅋㅋ
      +나 담주에 서울가는데 한번 볼 수 있었음 해요..

      2011.05.01 00:07 [ ADDR : EDIT/ DEL ]
  2. 나이주의보다... 엘리트주의 먼저 제거했으면 싶어요. 운동판 꼰대들은 경력운운, 시위참여횟수 운운, 성과운운...뭐 하다가 교도소 다녀온것도 경력이고... 동성애자 운동권에선 커밍아웃한게 훈장이니깐... 난 그런것들이 더 역겨와요.. -자주 공현님 티스토리 지나가는 조곤올림-

    2011.05.01 02: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떤 노동운동 연사분의 약력에 모모집회하다가 "교도소 복역"이란게 떡하니 있더군요. 또 화염병 만드는걸 아주 자랑스레 말하고, 죽창의 각도는 이래야한다는 둥...법치도 무시하면서 기업보고 노동법 지키라고...^^;; 어이없다는...

      2011.05.01 02:26 신고 [ ADDR : EDIT/ DEL ]
    • 청소년운동가들 마음을 많이 공감하고 이해하는게.... 저도 18,19살부터 집회 시위현장에 있어서..그런말 많이 들었어요. 보통 나이주의+엘리트주의가 섞인 비아냥인데. "아직 어려서 운동경험이 없어서 미숙하네. " 어떻게보면 별뜻없어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느낄 수 있거든요. 사실 동료로
      생각하진 않더라구요. 마냥 귀엽고
      기특한(?)존재였죠. 그런대접 받기 싫은 객기에 편한복장 추구했는데...거의 정장차림에 명함파서 돌렸던 기억.. 그땐 "안녕"이 "안녕하세요"가 되더군요. (운동도 비즈니스다.)란 생각이 들던 경험.

      2011.05.01 02:34 신고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노동운동 내부의 나이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약력에 교도소 복역을 넣는 것과 엘리트주의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교도소 복역과 같은 투쟁경력은 그분들의 치열한 삶에 대한 훈장이고,상처고,자랑거리입니다. 그런 것마저 '엘리트주의'로 몰아세우면 그분들께 뭐가 남나요? 피억압과 피탄압을 자랑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탓해야 할 것이지, 그분들에게 그걸 '자랑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요?

      2011.05.06 15:59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만약 그런 자랑이나 추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시위경력이 적은 활동가에 대한 배제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물론 '엘리트주의'나 '경력주의'(적절한 이름은 아닙니다만)라고 비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헌법에 나와있는 '법치주의'와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결코 같은 차원에서 얘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법은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고, 지배층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안다면) 이해하기 편해집니다. 지배층은 '법'을 피지배층의 저항과 반란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자구속, 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 등등. 하지만 노동법의 경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법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지배층에게 유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되어왔습니다. 그래서 근로기준법 책은 전태일 열사의 무기였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법치주의는 지배층의 언어이고 '노동법을 준수하라'는 피지배층의 언어입니다.

      2011.05.06 16:07 [ ADDR : EDIT/ DEL ]
    • 까만이

      그래서, 만약 '법을 왜 지켜야 하는가'를 규명하지 못할 바에야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에게 '법치주의를 지켜라'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연 지배층이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해서 법을 어기는 것과,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의 치열한 투쟁 과정에서 법을 어기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교도소 복역, 죽창사용, 화염병 사용등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 과감히 말하건대, 교도소갔다오고 죽창을 들고 경찰에게 맞서고 화염병을 던지는 일이, 투표일날 진보정당 후보한테 한표 찍는것보다 훨씬 가치있고 아름답고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죽창사용,화염병투척 등은 몰라도 교도소출입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시는 시각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의 교도소에 갇혀있는 수많은 양심수와 구속노동자와 노동운동가들이, 대체 왜 '법치'라는 기준에 재단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지배층의 입맛에 따라 법을 정하고 재판을 하고 집어넣는데, 그 교도소를 갔다왔다고, 그걸 좀 자랑했다고 해서 엘리트주의라고 비난받아야 합니까? 법을 어겨서라도 생존권을 쟁취하겠다는, 숭고한 일을 그렇게 조롱하실 수는 없는 일입니다..

      2011.05.06 16:17 [ ADDR : EDIT/ DEL ]
    • 까만이

      불법투쟁경력이 있는 노동자들을 그런 시각으로 보시는 건요, 마치 맨날 맞고사는 약한 아이가 어느날 힘센 아이에게 대들었는데 '약한 아이도 때렸으니까 똑같다'라고 욕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런 불법이 있고 저런 불법이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반복하자면 노동운동가들과 노동자들에게, 투쟁경력은 자랑스러울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경력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좋지 않지요. '역겨웠다'라고 표현하신 그런 부분들에 대해 비판하시는 게 더 좋을것 같습니다.


      쓰다보니 본문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었네요. 나이주의 깨기 활동에 대한 제안글에 이런 댓글을 남겨서 공현님께 죄송합니다. 저도 한 청소년의 입장으로서, 앞으로 수없이 겪을 운동의 현장에서, 운동가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나이주의 깨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곤님께 단 댓글들은, 첫번째와 두번째 댓글에 대한 얘기입니다. 세번째 댓글에는 공감합니다.

      2011.05.06 16:32 [ ADDR : EDIT/ DEL ]
    • 까만이님께. 부족한 제 식견에 따끔한 지적감사합니다. 우린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자격지심을 거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나이를 먹고 더 많이 성찰하면서 깨달아가기에 과거를 무기로 삼지 말아야함을 알지만 그래도 하나의 예로서 제 이야길 합니다. 동성애자라서 많이 얻어터지고 다닙니다. 커밍아웃해서 더욱 주변에 적이 많지요. 저에게 염산테러를 한 사람을 찾아가 뼈마디 마디를 분질러놓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종종 상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대응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저는..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혁명주의자가 아닌, 잘해봤자 개혁주의자 정도라서 까만님과 의견이 다른것이므로 조롱의 의미는 아닙니다. 제 시각에선 당연히 그리 보이고 생각될 뿐이죠.저는 법이 지배계층의 권력도구로만 쓰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권력의 남용으로 분명 억울한 희생자도 발생하지만 법이 없어서 더 억울한 인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의 이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생각의 차이이죠. 윽박지르지 말았으면 합니다.

      2011.05.07 01:58 신고 [ ADDR : EDIT/ DEL ]
    • "나 이만큼 열심히 살았어요. 나 이만큼 아팠어요. 좀 알아주세요." 제가 제 과거를 매번 강의때마다 하나의 최악의 사례로 들려줄때의 제 자신의 심리 이면엔 그런것이 있더군요. 까만님, 저에게도 노동운동가들에게도 염산테러나 교도소복역보다. "지금 여기에 맞서며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큰 훈장은 없을겁니다. "내가 이만큼 희생하고, 성과를 냈다."는 자랑 좀 하는게 뭐가 어때. 그 마음이 정말 간사하다는걸 깨달았을때 무척 부끄럽더군요.

      2011.05.07 02:10 신고 [ ADDR : EDIT/ DEL ]
    • 그러니까 제 "염산테러"나 어떤 노동운동 연사의 "교도소 복역 약력"은 엘리트주의인거 같습니다. "너넨 이런거 못하지? 이러고도 살 수 있겠어? 난 이렇게 살때 (용기없는)너넨 뭐했어?" 같은...그런 엘리트주의, 운동가들이 없었으면(분명 그들의 행동은 귀감이 될만하지만...) 미천한 인민이 이렇게라도 살수 있었겠냐는 그 묘하고 역겨운 운동가들의 자격지심과 엘리트주의와 우월감들이 무척 싫더군요.

      2011.05.07 02:16 신고 [ ADDR : EDIT/ DEL ]
    • 무튼 까만님, 저는 서울대나온(많이 배웠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어떤 운동가의 계몽주의에 입각한 선동성 발언도 싫어하고, 운동판의 터줏대감이랍시고 곤조부리는 (많은 경험을 했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것도 싫어서요. 존대 안했다고 혼나는 것보다 " 경험이 없어서 모른다."란 소리가 더 문제 많은듯하여.. 쓴것일뿐 조롱의 의미는 아니었답니다. 저의 저항은 18살의 노동절의 노동자 시위에서 부터였거든요. 노동운동판은 조금은 아날로그를 지양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느껴요. 저는요.

      2011.05.07 02:27 신고 [ ADDR : EDIT/ DEL ]
    • 까만이

      사실 방금 위에 제가 조잡하게 써놓은 것들이, 바로 어제 말하고 싶었던 내용의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는 제 얇디얇은 종잇장같은 식견을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었고, 생각의 차이를 거세하고 조곤님을 윽박지르고자 함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구속재벌은 없고 구속노동자가 수백명에 이르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 분노 때문에, 조곤님의 댓글에 반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법의 얘기를 지나쳐서, 노동운동과 엘리트주의에 대해서 짧은 제 느낌을 조잘대보도록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공현님이 주장하신, 조곤님이 경험하신 이른바 '엘리트주의' 또는 '경력주의'를 몸소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운동경력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노동운동가들과 뭔가를 함께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집회장에 나가면, 운동가가 아닌 나이 지긋하신 노동자분들이, 제 어깨를 두드려주시고 반말을 하시고, 그런 건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집회장에서 연사로 나오신 분들이 그렇게 경력을 자랑한다고 느낀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패악들, 역겨움들을 경험하신 조곤님께 제가 감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리고 조곤님의 문제제기에 공감하고 그런 문제의식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금은 자랑할 수도 있지 않냐, 그런 자랑이 정말 비겁한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 거기에 있어서는 조곤님의 생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과 체화의 문제이니깐요.
      다만 '많은 경험을 했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는 '많이 배웠다는 의미의 엘리트주의' 보다는, 약간은, 조금은, 쬐~끔은 이해해 줄 수도 있지 않냐.. 하는게 솔직한 제 생각입니다. 말씀하셨듯이, 귀감이 될만한 행동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자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실이 제1차적 문제이기도 하고.. 물론 운동을 통해 그런 폐단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거겠지요. 다만, 이해는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온정주의도 아니라,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구속을 당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구속경력이 자랑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선차적으로 이해하자는 겁니다. 그런 이해 없이 '경력주의 몰아내자'... 이 구호는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력주의 내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반의 구속노동자, 구속노동운동가들에게도요..

      2011.05.07 20:50 [ ADDR : EDIT/ DEL ]
    • 까만이

      윽박지르는 것처럼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솔직히 불법,불법,불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와 노동운동가를 낙인찍는 시선을 평소에 많이 봐와서인지, 약간 흥분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조곤님이 스스로에게 아플수도 있는 경험까지 얘기하시며 반박에 대답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우선 남기신 첫번째 댓글에 대해서, 법에 대해서 짧게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맞습니다. 법에는 '권력의 남용으로 분명 억울한 희생자도 발생하지만 법이 없어서 더 억울한 인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의 이점'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태일 열사의 예시를 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의 본질, 그러니까 법이 왜 만들어졌나 하는 성격에 대해서는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 한진중공업에 다녀왔습니다. 수십년간 노조에서 활동을 해온 노동자에게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청업체의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면 대기업들이 아예 그 하청업체를 없애고 노동자들을 취직 못하게 하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해도, 법으로는 그걸 처벌할 방법이 없드랬습니다.
      그런데,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채길용 문철상 지부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재판을 받고 징역을 살아야 한댑니다. 이들은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하고자 했는데, 그게,크레인 위에 올라가는 행동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지 않을수 없지 않습니까? 살기 위해서는요? 법을 지키고, 투쟁하지 않고, 순순히 해고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혁명주의자이건 개혁주의자이건 상관없이, '법은 공평하지 않다'는건 솔직히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애초부터 법이 불평등하다면, 정당한 방법을 행사해도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는 나라라면, 때로는 비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의 생존권을 지켜야 하는 나라라면, 왜 그 '법'을 지켜야 하는지요..
      님과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은, '이 세계는, 이 세계의 구조는 공평한가 그렇지 않은가'인것 같습니다. 사실 노동자들의 불법 투쟁들은 단순한 개인적 복수의 차원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억압받는 이유는 이 사회의 구조가 불공평하고 불평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억압을 당하고만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면, 사장을 죽이거나 그랬겠지요. 하지만 이땅에서 구속되어온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이 해온 것들은 무엇이냐? 업무방해, 공무집행 방해, 집시법 위반..... 이게 대체 사람들에게 얼마나 피해가 간다고, 감옥에 쳐넣고 콩밥을 먹이는 겁니까. 이게 저 지배자들이 해온것과 똑같은 방식은 아니잖아요. 처절하고 눈물나는 저항이죠..
      다 안지키는 법따위를 지켜서 손해보느니 차라리 법을 어기고 만다. 단순히 이런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투쟁을 해도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현실입니다. 무슨 특별히 불법행위를 일부러 하려고 한게 아니라, 바로 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행동을 했는데도, 불법으로 잡아넣는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그리고 경영진이 자기들 이윤을 위해, 이익을 위해 막무가내로 정리해고를 해도, 그래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 십수명이 자살하고 그 아내가 유산을 해도, 그건 '합법'입니다. 근데 거기에 항의해서 계란 좀 던지고 페인트탄 좀 던졌다고 붙잡아서 경찰서로 연행해 가는게 이 땅의 현실입니다. 그 잘못의 크기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데, 사람을 죽이는건 저자들인데, 왜 우리만, 왜 우리가 불법이 되어야 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2011.05.07 20:52 [ ADDR : EDIT/ DEL ]
    • 까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에 맞서며 살고 있다" 이 말은 참 귀감이 되네요. '자랑'들은 이해는 할 수 있어도 그것은 결코 숭고한 행위가 아니죠. 지금 여기에 맞선다는건, 참 그 자체만으로 위대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고 싶어요. 염산테러에 관련한 조곤님의 이야기,..에 대해서요. 제 생각입니다만, 그런 것들을 드러내는 것은 '경력주의'가 아니에요. 전혀 듣는 사람에게 역겹지 않고, 자격지심도 아니고 엘리트주의도 아니고 우월감도 아니잖아요. 그걸 드러낸다고 조곤님한테 뭔가 큰 이익이 되는것도 아니잖아요. 스스로의 비밀스런 아픔을 얘기하고 공유하는 것을, 일부 노동운동가들의 '역겨운' 행동 따위와 동일시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공감은 인간의 아름다운 능력입니다. 경력주의 운동가들이 은근슬쩍 요구하는 '존경'과는 아예 그 급이,차원이 다른..

      주제넘게 잔소리한것처럼 느끼셨다면 죄송해요, 단지 선의의 표현입니다.

      아, 공현님 블로그에서 내용과 상관없이 주제를 확장시킨 것 같아, 공현님께도 다시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__)

      2011.05.07 21:17 [ ADDR : EDIT/ DEL ]
    • 하청업체 노조에 대한 탄압은 매우 가슴 아파요. 특히 잔금을 주지않고 채권등으로 지급하는 대기업의 행태.힘이 세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고있는 행위에 대해서, 마음아프고 그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보수주의자이니까. 죄송하고 속상한 마음을 대신 전합니다. 까만이님의 설명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더이상 논란을 만들지 않고 싶어서. 이쯤에서 끝내기로 해요.

      2011.05.07 21:26 신고 [ ADDR : EDIT/ DEL ]
    • 때때로 나의 정당한 행동이 전혀 관계없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피해가 되기도 할때. 두 문제를 달리 결론짓고 해결해야 한다는걸 이젠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전 노동집회에서 더이상의 분신자살이나 영정사진이나 그밖의 폭력들, 전경을 희롱하고 자극하는 일체의 행위들이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행동이 억울하고 가슴아픈 인민의 마음을 보듬는 일로 인식되는 것에 조금은 회의적입니다. "오죽하면 그랬겠나" 저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회가 하나의, 유기적인 공동체라고 생각해보면 우리 행동들에 정당하든 정당하지않든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2011.05.07 21:39 신고 [ ADDR : EDIT/ DEL ]
  3. 저는 반말 존댓말의 구분이 그냥 동아시아의 문화인 줄 알았는데 중국어에는 그런 게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아무튼 우리나라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나이주의를 어떻게 좀 아주 그냥 박물관으로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주의 타파하는 것 역시 일종의 민주화 운동이 아닐까 합니다.

    2011.05.03 01: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