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7. 4. 19. 15:12

이것도 노동이다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영롱.명수민 지음, 교육공동체 벗, 2016) 리뷰



운동 사회 안의 해묵은 이야깃거리로,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화제가 있다. 최근에는 열정노동/열정페이 비판 등이 여론에 대두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당연히 노동자지!’ 하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원론적으로는 맞다. 운동의 과정에서 하는 일들도 노동이다. 단체와 계약하여 정해진 돈을 받고 일을 한다면 더욱 명백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나는 이게 그렇게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자명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재정 상황 상 오랜 기간 상근활동가가 없었다. 그러다가 단체 규모가 커지고 후원금을 모아 상근활동가를 새로 두기로 했다. 기존에 활동하던 회원 중 몇 명이 상근활동가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상근활동가가 그냥 회원이었을 때 통상 참여해 왔던 정기 회의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상근활동가로서 하는 노동인가, 아니면 회원으로서 하는 활동인가? 이런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면 좀 더 근본적으로는 상근활동가는 왜 돈을 받고 단체 일을 하는데, 그 외의 회원들은 돈을 받지 않고 무급 봉사로 단체의 일을 하는지부터가 고민스럽게 된다.


  조금 다른 길로 빠져 보자면, 노동자의 임금은 양면적인 성격이 있다. ‘(노동시간 또는 그 성과)에 대한 대가라는 측면과 생존과 노동력 재생산 보장이라는 측면이다.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의 노동과 그에 대한 임금은 후자의 측면이 좀 더 강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른 많은 자발적인 무임금 노동/활동/운동들 때문에 일에 대한 대가라는 식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체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참여가 모두 대가를 지급받아야 하는 임노동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스럽다.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자. 사실 이 질문에서 노동자, 문자 그대로 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라는 역사적 환경 속의 임노동자를 뜻한다. 법과 판례를 참고하면, 노동자는 사용자/고용주의 감독·지휘 하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 사람이다. 구체적 상황은 단체마다 천차만별이긴 한데, 적지 않은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들은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라고 하기 어렵다.


   가령 사용자/고용주가 별도로 있지 않은 경우도 있고, 따로 감독이나 지휘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정해진 시간 또는 그 이상의 노동을 단체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가는 것은 맞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있거나 자기감독자기착취(꼭 나쁜 의미에서 쓴 말은 아니다.) 식으로 노동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한다.’ 등에 더해서, 이처럼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시민사회단체 상근활동가라는 직업을 택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면 자영업자에 가까운 건가 하면, 또 정해진 임금을 받지 단체가 활동이 잘 된다고 해서 돈을 더 가져간다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이나, 총회 등 단체의 의결 기구에 그 고용이나 활동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노동자에 가깝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영리 기업과 달리 그 활동의 수혜자나 대면하는 대중이 시민사회단체의 수입처가 되는 곳(후원자들이나, 극단적으로는 정부 및 기업 등 기부처나 프로젝트 발주처)과 다르다는 특징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들도 있다. , 피터 드러커 식 개념으로는 본질적 차이는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잘 알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예를 들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는 단체마다 상황이 매우 다르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 등으로 넓혀서 보면 실로 각양각색의 조직 구조와 노동 환경을 갖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영역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단지 노동법 준수의 문제나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같은 이야기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다.

 

 

다각도에서 바라보기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청년들의 사회적 노동 경험에 대해 2014년에 진행한 연구를 재가공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노동이란 의미적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내려는 의지와 실천, 협상을 동반한노동을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 공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이 가려는 길은 그러한 현장을 기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청년들이 좋은 노동’(공익적이고 가치 있는 노동이라는 의미에서이든, 노동자가 행복한 노동이라는 의미에서이든.)을 기대하며 사회적 노동에 찾아오고, ‘좋은 노동에 대한 질문을 계속 붙들고 고민하며 일하고 있다는 데 주목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노동의 의미나 성격이나 좋은 노동의 요건 자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려고 한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의 장점은,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의 현장을 노동의 문제의식을 갖고 다루면서도, 그 노동조건의 열악함만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인터뷰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중층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살피며 그렇다면 청년들은 왜 이 영역에 남아서 계속 일하고 있는가묻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에필로그 청년들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가에서 저자들이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곧 이 책을 낳은 문제의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토록 열심히 오랜 시간 일하도록 만들었을까? 그러나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고 소진시키고 있을까? ‘그럼에도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는 걸까? 더 좋은 노동과 사회를 향한 어떤 형태의 바람과 기대, 혹은 어떤 열망이 그들을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현장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도 다층적이며 복잡하게 경험되고 있을까?” (240)

 

   그래서인지, 이 책은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라는 주제를 시종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가령 1장에서는 노동, 활동, 운동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사회적 노동의 양태를 파악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에서 하는 일은, 노동이기도 하고 (사회적) 활동이기도 하며 (정치적)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책 속에는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이 노동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회피한다는 지적도 담겨 있지만, 동시에 활동과 노동을 엄격하게 구분했을 때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고, 사회 변동 속에 운동의 개념이 약화되거나 혹은 불명확해지고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읽힌다.


   4모순과 함께 일하기에서는 사회적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순된 가치의 충돌이나 중첩을 보여 준다. 자율성과 타율성, 공동체적 조직 문화와 일의 효율성, 우리 좁히기와 우리 넓히기, 자립과 의존 등 가치 사이에서 느끼는 고민들을 기록한 내용에는, 과연 무엇이 좋은 노동인지, 사회적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지, 당위적 가치 하나를 선택할 수 없는 복합적 경험들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리뷰는 사실 이 책의 주제와 관점을 이해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작은 운동장 안에 들어와 막상 부딪혀본 세상은 꽃밭이 아니라 또 다른 고난이었다. 선의에 기댄 채 생활의 어려움은 애써 외면해 보려 했으나, 반복되는 삶에 지속적으로 덧대어지는 더께는 결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은 결국, 그들의 선택을 후회한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70년대 산업화의 격랑을 단기간에 거쳐오며, 더 나은 노동을 찾아내는 것에 지속적으로 실패해 왔다. 첫 번째 책인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그 증거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1213&CMPT_CD=C1500_mini)


  이 책은 단지 좋은 노동을 찾아서 온 사회적 노동 현장에도 좋은 노동은 없었다라는 서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가 원래 연구 보고서에서 출발해서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인지 읽기 어려운 부분들이 왕왕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책의 내용에서 사회학자의 개념 등을 많이 인용해 오고 있는데 굳이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단적인 예로는, 서문에서부터 피로 사회등으로 대표되는 ‘OO사회논의가 이어져왔던 점을 거론하고 있는데, 지난 몇 년간 그러한 논의를 따라오며 읽어오지 않았던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그러한 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하는 부분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축적된 담론이나 개념들을 이미 독자가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 자체가 학문적 영역에서 탄생한 글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더 나은 노동을 위해

 

사회적 노동은 복합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노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 자체가 복합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라고 말하고 그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말을 막고 현상을 유지하자는 소극적인 자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인지, 좀 더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역시 막바지에서 우리에게는 완벽한 출구도 섣부른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243)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이 계속될 것임을, 삶을 지속하는 능력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나는 첫 번째로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의 현장에 필요한 변화는 투명성 강화라고 생각한다. 노동 문제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문화를 없애고, 노동 조건과 현실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공개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는 1차적으로는 일을 하는 노동자/활동가들에게 진입 과정에서부터 이를 공개하고 솔직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며, 2차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이 영역의 현실이 이러함을 열어놓고 문제점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기대가 어긋나서 생기는 문제를 줄일 수 있고 개선할 길도 더 빨리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운동 사회’(혹은 사회적 경제 사회/네트워크’)의 문제 인식과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개별 단체나 협동조합 등의 수준에서는 자원의 한계가 많고 당장의 선택지도 적은 경우가 많다. 비슷한 여건에 놓여 있거나 같은 영역에서 활동하는 단위들 사이의 네트워킹과 연대를 통해서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 분명히 있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인의 성장에 관한 문제나 세대 간 소통, 조직 문화 및 조직 내 민주주의와 같은 문제들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로 더 문제를 확대하면, 전 사회적 공동 책임을 논의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노동영역에서의 여러 문제들은 다중적 의미에서 사회적이다. 예컨대,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에서 청년 세대의 문제나 세대 간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여러 지점들은, 단순히 세대 간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청년 세대가 겪는 사회적·경제적 문제나 전 사회에서 정치적 변화의 전망이 약화된 문제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노동, 전 사회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공익적인 성격의 일을 하지만 이 때문에 투여되는 노동에 비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은 한정되는 성격이 있다.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이 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가치 있는 공익적 일이라는 합의가 가능하다면, 이에 대해 좀 더 사회적인 공동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제도적인 지원이나 공간 등 인프라 구축의 형태가 되었든, 좀 더 풀뿌리적인 연대의 형태가 되었든.(‘예술인 지원 제도가 가능하다면 활동가 지원 제도는 왜 불가능한가?)


  마지막으로 내가 이 책을 읽고 한 생각은, ‘사회적 노동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의 문제와 별개로 볼 수 없으며, 우리 사회의 경제·교육·주거·문화·복지 등의 문제와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사회적 노동 영역만을 따로 놓고 이것이 좋은 노동인지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역시 그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 사회적 노동 영역에서의 예시들은 문제점과 변화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모델이자 창구이다. 결국 우리가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으며 나 자신에게도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우리가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꼭 시민사회단체·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에서 일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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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4. 3. 23. 12:54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10점
오찬호 지음/개마고원


'자기계발논리'를 원인이자 핵심으로 지목할 수 있는 걸까?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읽고 난 후 단상 겸 메모


# 우선은 이 작업에 찬사를 보낸다. 2008~2012년, 4년 간 다양한 20대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인식구조에 대해 탐구하는 이런 연구는 분명히 우리 시대상을 기록하는 작업으로서 의미가 크다. 또한 단편적인 분석과 인상비평들이 주를 이루던 '2000년대 대한민국의 20대(또는 청년?)' 논의들 속에서, 이정도의 성실함을 가지고 이야기를 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수 있다.


# 읽다가 든 궁금증 : ‘대학생 아닌 20대’, 또는 ‘전문대학생’들은 어떨까? 그것이 자기계발담론이든 체념이든 분명 공유하는 큰 맥락과 줄기가 있겠지만, 저자가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또 다른 위치에서 또 다른 결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홍보 문구 등에서 ‘20대’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사소한 아쉬움이 있는데, 사실 이건 이 책의 한계라기보다는 추가 연구, 다른 연구들이 더 많이 보태져야 하는 것이리라.


# 저자가 기본적으로 이런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당사자로서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지금의 20대들은 과거의 20대/대학생/청년들과 다르다! 왜 그렇지? 왜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약자에 연대하지 않지?” 같은 것들. 그것은 저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궁금하고 문제적인 현상이었을 테지만… 정작 내 입장에서는 ‘그럼 그 옛날에는 대체 어땠는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20대의 관점에서 과거, 90년대의 20대(지금은 40대 정도가 되어있을)들은 대체 어땠던 것인지 그 사회적 조건과 인식 구조를 탐구해보는 작업도 재미있을 것이다. 어쨌건 저자의 그런 인식들 때문에 초반부에는 책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인식들에 대해 저자가 계속해서 붙이는 자기 변호 같은 것들이 오히려 더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었다.(-_-)

이와 비슷한 맥락의 문제의식일 수 있는데, 과연 ‘자기계발논리’가 지금 20대에 고유하고 특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자기계발논리’의 근간을 이루는 ‘능력주의’, ‘자기책임논리’ 자체는 굉장히 뿌리 깊은,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이데올로기이다. 다만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변화하면서 ‘자기계발논리’가 좀 더 세련되고 전면적으로 나오고 있을 뿐인 것 아닌가. 그리고 저자는 ‘학벌주의’가 과거와 현재의 양상이 다르다고 하는데,(과거에는 ‘패거리문화’ 같은 것이었는데 현재 20대에게는 그것이 능력주의와 촘촘한 차별 기제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과연 얼마만큼 다른지 나는 좀 의문스럽다. 질적으로는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이미 과거의 학벌주의 안에 내재해있던 모습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 '능력주의' 문제에 대한 비판은 교육사회학에서 계속해서 나오던 문제이다. 교육체계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에 따른 보상/성과라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한다! 결국 이 연구는 그러한 효과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제목 자체도 그렇고. 그것이 크게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데, 다만 생각보다 그게 노골적이고 강력하게 뿌리 박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 책이 기본적으로 20대의 ‘인식’, 집단적 의식을 탐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보니 ‘자기계발 논리’가 책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지게 된다. 그러다보니까 아무래도 사회학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연구가 좀 더 뒷받침되어야 분석이 설득력을 얻을 것 같은 구절들이 몇 개 눈에 띈다. 면접한 여러 20대들의 말들로부터 그 사람들의 심층 심리를 분석하는 여러 부분들이 그러하다. 오히려 책의 마지막인 4장의 부분들이 더 사회학적인 이야기가 많다는 느낌인데... ‘자기계발논리’ 문제에 대해서도 의식 조사 수준을 넘어서 좀 더 여러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논지를 구성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4장에서 왜 지금 경쟁이 불공정하고 능력주의가 왜 허구인가에 대해서 설명한 부분은 가져다가 써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자기계발논리’가 과연 20대의 인식구조에서 핵심적인 문제이자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나는 그 부분에서 동의가 잘 되지 않았다. 자기계발논리도 일종의 현상이고 체제 정당화이자 자기 정당화를 위해 동원된 논리인 것 같다. 20대의 의식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10대 당시 경험, 그리고 조직화라고는 없이 개인화, 원자화되어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회 구조와 삶의 경험들, 그런 것들을 좀 더 비중 있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착된 한국 사회의 모습, 입시경쟁, 부모 문제 등등 그런 이야기들이 없지는 않지만 비중이 좀 적다. ‘자기계발논리’를 중심에 두고 여러 가지 것들을 설명하다보니까 그림에 공백이 생기는 것 같다.



# 며칠 전에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스무살인 걸로 추정되는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솔직히 우리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업에서는 우리가 공부하고 능력을 갖춰서 들어가면 함께할 인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써먹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번에 내가 아는 오빠는 회사에서 일은 일대로 했는데 별 이유도 없이 잘렸다. 나이가 좀 들고 40대만 되어도 자르지 않더라도 막 눈치를 주고 명예퇴직시킨다고 한다. 무슨 왕따도 아니고 그런 것들…. 진짜 말도 안 되는 건데 우리 입장에서 당장 뭘 어쩔 수가 없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가 뭔지를 모르고 있지 않다. 문제들에 순응하게 되는 것도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오히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저 “어쩔 수가 없다”라는 부분일 것이다. 자기계발논리도 결국은 그 ‘개인으로서는 뭘 어쩔 수가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창궐하게 된다. 나는 ‘무력감’의 문제를 좀 더 집중해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력감’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개인’이 어떻게 ‘집단’이자 ‘조직’이 되게 하고, 무력감을 넘어서 최소한 뭔가 작은 거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느끼게 할 것인가. 그런 여건과 사회적 관계, 조직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실천이 이 단단한 ‘구조’를 바꾸고 넘어서는 길일 것 같다.

http://gonghyun.tistory.com2014-03-23T03:54:59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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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모임'에서 세미나로 같이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리뷰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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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6. 27. 03:35










최저임금은 거의 모든 서민들(부유층 외의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문제입니다.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법규들을 놓고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체 기본급을 정할 때도 기준이 되지만 재난·사고 피해자나 사회변동 희생자, 서민, 사회적 약자 등에 정부가 돈을 지급할 때도 기준이 된다. 이렇게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활용하는 주요 법률은 14개, 사안별 제도는 20개로 모두 34개의 법제도에 적용된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투쟁은 대체로 고령 여성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해왔습니다. 대다수가 청소노동자이고 민주노총 여성연맹 소속 조합원들인 경우가 많은 이 분들은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집회를 해야 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최저임금 투쟁을 하는 것도 몇번 있었으나,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오지는 못했습니다.
(참 이런 거 보면, 사람들이 흔히 '여성운동'이라고 하면 최저임금 인상 투쟁 같은 건 생각도 잘 안 할 텐데...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여성운동 이슈이기도.)



며칠 전에 청소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발표 등에 참여하고나서, "이거가 최저임금 투쟁의 주체들이 더 많이 확대되는 거라고 보이려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청년유니온에서도 최저임금과 관련하여 실태조사 결과나 인상요구를 발표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주로 해온 여성 청소노동자 분들이 혹시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이제 10대, 20대 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하나보다 생각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주체들이 넓어져간다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는 인식 속에서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바로 언저리의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광범위해지고 있다는 것은 썩 좋은 일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비는커녕 생활비도 마련하기 어렵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20대-대학생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올해 최저임금 인상의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나오는 게 노동운동의 발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 사회환경, 실질임금의 후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동시에, 누가 '최저임금'을 받게 되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하게 됩니다. 여성들, 청소년들, 20대들... 등등등. 지금 사회에서 돈을 벌어오는 '가부장'으로 불리지 못하는 이들 또는 노동의 가치를 폄하당하는 이들이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가 됩니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 투쟁의 당사자가 됩니다. 최저임금은 인권의 문제입니다.


혹시 기대를 하고 계셨을 분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청소년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발표도 서명운동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고 실제로 조직되어 있는 청소년 노동자들은 10명도 채 못됩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을 시작으로 해서 청소년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니까, 멀지 않은 시일 내에 10대 청소년 노동자들의 조직이 출범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추천을!)





추신 : 그러니까 지금 경총 측에서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10원을 올리네 15원을 올리네 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시급 5180원은 별로 많은 돈이 아니라는... 얼마 전에 1만5천원 정도로 최저임금을 정한 호주는, 물가를 비교해도 한국보다 좀 더 비싸거나 식품 등에서는 더 싼 것도 꽤 많고... 쨌든 5180원은 전체적으로 낮은 실질임금을 전제한 상태에서 나온 최소값입니다. =_= 근데 4110원에서 10원 올려서 4120원 하자는 뻘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최저임금 투쟁이 더 쎄져야 하는데 에구구...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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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디어 없음!(<-)

    2010.06.27 21:28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0. 4. 5. 15:46

"야간 교대제 근무는 발암물질"

국제암연구기구 전문가들 정의…"납 성분과 같은 등급"



간혹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석면은 1970년대까지 미국의 공사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던 절연 물질 중 하나였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석면이 폐암 혹은 악성 중피종이라는 복잡한 이름을 가진 암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만, 당시의 건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매일같이 만지고 사용하는 물질이 암을 유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거예요.


교대제 근무가 발암물질인 이유

   
  
불안하면서도 ‘설마 이렇게 다들 사용하는데 이걸 만진다고 암이 생기겠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석면만이 아니었겠지요.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고무 공장에서 벤젠을 만지던 노동자들도, 크롬으로 도금하던 노동자들도 모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하고 있지 않을까요.

덴마크 직업병 판정위원회는 2008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결정을 내립니다. 다름아닌 야간 근무를 포함한 교대제 근무를 발암물질로 인정한 것이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1주일에 한 번 이상 20년에서 30년 가량 야간근무를 했던 여성 노동자에게서 발생한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산재보험으로 보상하라는 판정을 내린 것입니다.

물론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진 가족력과 같은 다른 위험요소가 없는 사람들에 한해서요. 그 결과 간호사, 비행기 승무원 등의 직업을 가졌던 38명의 여성 노동자가 산재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http://www.ask.dk/sw25371.asp)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 중 15%에서 20%가 교대제 근무를 한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한국에서는 몇 %나 될까요. 짐작하건데, 20% 보다 결코 작지는 않을거예요.

병원 노동자들, 방송국 노동자들, 운송 노동자들, 제조업 노동자들. 주변을 둘려보면 야간 근무는 이미 일상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발암물질이라니요. 석면이, 크롬이 혹은 흡연이 발암물질인 것은 짐작할 수있는데, 밤에 근무하는 것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납과 같은 등급

덴마크에서의 판정은 사람과 동물을 대상으로한 기존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008년에는 30여 편의 기존 연구를 분석한 결과, 비행기 승무 노동자에서 70% 가량, 다른 교대제 근무자의 경우 40% 가량 유방암 발생율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 논문이 발표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를 들어 야간 근무의 어떤 요소가 암을 발생시킬 것인가를 질문에 대해서 생물학적으로 설명가능한 여러 가설들이 제시되고 또 여러 실험 결과들이 그것들을 뒷받침했습니다. 예를 들어, 밤 시간에 빛에 노출이 되면, 수면 리듬을 파괴되고 또 멜라토닌이라는 암 발생을 억제하는 호르몬 생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요.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기구(IARC :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의 결정이었습니다. 2007년에에서 24명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한 결과, 야간 교대제 근무를 유력한 발암물질(IARC 2A, Probable Carcinogen)으로 정의한 것이지요.

이 말은 흡연이나 석면이 속한 발암물질 그룹(IARC 1, Carcinogen) 바로 아래 등급에 야간 교대제 근무가 속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등급으로 분류되는 물질에는 납, 디젤엔진 연소가스가 있습니다.

보통 특정 화학물질이 발암물질인가 아닌가 여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인용되는 국제암연구기구가 야간 교대제를 발암물질이라고 규정한 이 결정은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20만년 진화와 충돌하는 자본주의 노동환경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야간 교대제가 인간 몸에 좋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인류의 조상을 어디까지 따라 올라갈 수 있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20만년 전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야간 근무제는 오늘날처럼 일반적인 근무형태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빛에 노출이 되어 일하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지내며 그러한 자연 조건에 맞추어서 인류는 진화해 왔던 것이지요.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또 전기가 발명되면서 밤에도 낮처럼 일할 수 있는, 혹은 일해야만 하는 상황과 조건들이 생겨나면서, 인간의 몸에 부작용이 생긴 것이지요.

과학자들이 야간 교대제가 생체리듬 을 파괴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20만년 가까이 진화하며 낮과 밤에 길들여진 인간의 몸이 불과 수백년 전에 시작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요되는 노동 환경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것의 다른 표현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슷한 문제가 또 다른 유방암과 난소암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타민D 합성에서도 발생합니다. 야간 교대제가 밤 시간에 노동자를 빛에 노출시켜 생체리듬을 파괴한다면, 비타민D 결핍은 낮시간에도 건물 안에서 일하면서 태양 빛에 노출되지 못해 생겨난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밤에라도 일할 수 있어, 감사해야 하나

한국 상황으로 돌아와봅니다. 한국보다는 여러 면에서 진보적인 유럽국가들에서도 덴마크 직업병 판정 위원회의 결정은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아직 야간 교대제를 발암물질로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구요.

하지만, 저는 걱정이 됩니다. 석면처럼, 벤젠처럼, 흡연처럼 처음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규제가 지연되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암물질로 밝혀졌던 역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그 대가를 누가 치르게 될까요.

노동조합 조직율이 10% 남짓하고, 작업장에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기에 시키는 일에 대해서 불평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50%가 넘는,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수를 늘려 여성 일자리를 더 마련하겠다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아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나라에서 야간 교대제가 유력한 발암물질이라는 과학적인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야간 교대제를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요. 밤에라도 일할 수 있는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 감사한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 아닌가요. 암에 걸리면 보상해주면 되는 건가요.

덴마크에서 스칸디나비아 항공 비행기 승무원으로 30여년을 일하고 나서 유방암에 걸렸던 울라 만코프씨는 산재보상 결정이 난 후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http://news.bbc.co.uk/2/hi/uk_news/scotland/7945145.stm)

“만약에 제 직업이 암을 유발하는 줄 알았더라면, 저는 직업을 포기했을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거예요. 절대로요. 암으로 죽는 것이니까요. 저는 살아남고 싶어요”


2010년 04월 01일 (목) 09:08:41 김승섭 / 하버드 보건대학원 직업병 역학 박사과정



나도 밤샘 일 좀 안 하고 싶다 ㅠ_ㅠ
근데 야간 자율학습, 심야 학원교습도 그럼 발암물질로 해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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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발적으로 야간 업무를 하게 만드는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와 경희대 교지 고황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

    흥미로운 기사였죠. 유한킴벌리 등의 회사에서 실시하는 4조 2교대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2010.04.07 17:17 [ ADDR : EDIT/ DEL : REPLY ]
  2. 비밀댓글입니다

    2010.04.08 02:47 [ ADDR : EDIT/ DEL : REPLY ]
    • 사실 어떻게 보면 이미 전지구적 생산력은 과잉 생산에 이르러 있을지도 몰라요; 굳이 밤을 새가며 야간 노동으로 생산을 해야 할 만큼, 모두가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며 모두 굶어 죽어요, 뭐 이런 상황인 건지는 좀 의문스러워요...

      2010.04.08 17:07 신고 [ ADDR : EDIT/ DEL ]
  3. flyingwhale

    전 지구적 생산력이 과잉생산이라는 말이 참 흥미롭네요.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2010.04.09 16:16 [ ADDR : EDIT/ DEL : REPLY ]
  4. 공유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01.31 14:4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12. 9. 16:05

[페미니즘인(in)걸] 밑바닥에 깔린 청소녀 알바

44만원에 그치지 않는 노동현실

윤티



44만원, 청소년 비정규직 알바


나는 청소녀 알바생이다. 시사in에서 얼마 전에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름붙이길, 일명 “44만원 세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이며, 청소년이고, 말하자면 비정규직 노동자다. 요즘 청소년노동인권 토론회나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내가 이런 존재라는 것을 여러 번 우려먹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이게 뭐 비밀도 아니고 계속 말해서 닳고 닳을 얘기도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ㅋㅋ 그래서 이번에도 내 경험을 가지고 한 번 청소녀 알바생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탈학교 청소년인 나는 부모의 눈치 압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내가 번 돈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알바를 시작했고, 내가 처음 일했던 곳은 패스트푸드점이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일을 하였다. 내가 하는 일은 뒤편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남자애들의 일보다 더 편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처음에는 (어떤 기준으로 책정된 건지 잘 몰랐지만) 남녀의 시급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러한 차이에 대해 별 감각이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이게 그리 편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면 할수록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계산대를 두드리고 주문을 받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여성다움’을 같이 팔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야 알았다. 난 주문을 하러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맑은 목소리를 선사해야 했고, 버거를 만드느라 지친 몸에 못지않게 스스로를 여성스럽게 가다듬고, 언제나 웃는 얼굴을 보여야 하는 ‘험한 일’을 해야 했다.

청소녀들, 돈을 벌려면 성을 이용하라구?

어쨌든 돈은 벌어야 했기에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그만두게 된 뒤에도 다른 일을 구하였다. 그런데 그 일이 참 커다란 ‘일’이었다. 사무직 일이었는데, 처음에는 일주일에 사흘 정도만 나가서 서류 정리 조금 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하루 4~5시간 일하고 일당은 2만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가자마자 내게 설거지와 청소를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더라. 자기가 혼자 일하고 있는데, 그런 일들을 못하고 있다고. 이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한다고 얘기했고, 그렇게 그 사장의 사무실(인지 집인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급을 받는 날, 그 기러기 사장의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에 나는 큰 반항 한 번 못하고 ‘당해야’ 했다. 처음엔 다리를 쓰다듬더니, 나중에는 안아달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도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냥 박차고 나와 버릴 수도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더 치가 떨린다. 나는 일을 하러 갔는데, 그 사장이 원한 건 내가 생각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일이었다는 것이 무서웠다. 여성청소년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을 구하려면 일단 이런 수모는 미리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오피스텔을 빠져 나왔다.

사실 처음엔 이런 일을 당했어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장의 해코지가 두려워서, 또는 이제 와서 하소연해봤자 뭐가 있겠나 싶은 마음에, 내 마음 속에만 꽁꽁 숨겨왔던 것 같다. 많은 청소녀 알바생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위 사진:청소년 알바를 모집하는 광고. <사진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밑바닥 노동, 청소년 노동인권 현실

얼마 전인 11월 27일에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발표한 ‘청소년 노동자의 노동인권실태’를 보면, 청소년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88만원 세대만도 못한 44만원 세대인 청소년 알바. 그래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밑바닥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급이 3770원이었을 때도 2100원, 2500원 등등 햄버거 한 개 값만도 못한 시급을 받으며 청소년 알바는 그렇게 '헐값노동' 취급을 받아 왔다. 그나마 올해부터 시급이 4000원으로 올랐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이다. 임금뿐만 아니라 노동 환경 또한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가혹하다.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일하는 도중에 휴식 시간과 휴식 공간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휴게시간 따로 없다/휴게실 없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62.0%, 62.8%로 꽤나 높게 나왔다. 근로기준법에도 4시간 일을 하면 30분은 꼭 쉴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청소년 노동자들에겐 쉬는 것도 사치일 뿐인 것 같다. 나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 매일 똑같은 버거만 먹으면서 좁은 곳에서 딱 30분 쉬게 해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30분이 너무 짧게 느껴졌으니까.

우리가 청소년이기 때문에 고용주(비청소년)들은 우리를 더 쉽게 대한다. 실제로 어떤 청소년은 일하는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고, 손을 들고 벌을 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청소년'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일테다. 일단 '청소년'에 대해, 거기다 공부만 죽어라 열심히 해야 할 청소년이 '알바'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딱히 칭찬해주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사회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만만한 존재다. 그래서 서비스업, 주문을 받는다거나, 전화를 건다거나 하는 업종에 있다 보면 손님들까지 우리를 막 대할 때가 있다.

용모단정(?)과 밑바닥을 벗어날 날은

나도 일을 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확실히 변하지 않는 건, 여성청소년에게는 주어진 일자리조차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힘들게 일하고 돈 많이 주는 알바는 난 할 수 없다. 하고 싶어도 못한다. 편의점 야간알바는 대부분 남자를 뽑고 오토바이배달이나 다른 배달 쪽 일도 거의 남자가 대부분이다. 청소년 알바도 성별분업이 되어 있다. 여성들은 상냥하고 예쁘고 얌전한 일, 남성들은 힘쓰고, 몸 부딪히고, 강하고, 험한 일. 우리는 그런 식의 험한 일은 여성들의 것이 아니라는 걸 계속 교육받아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중매체들에서도 여성의 직업과 남성의 직업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고 보여준다. 그리고 남성 직업인데 그 일에서 성공한 여성들, 소위 말하는 '여성 엘리트' 을 보여주며, 이례적인 일이라는 투로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다른 여성들을 향해 말한다.
"너도 네 재주껏 해봐."
남성은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여성은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있다. 다시 내가 알바를 구할 때는 '용모단정'이라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시간을 써야할 것 같은 두려움이 스물스물 생겼다.

여성청소년으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안 그래도 '밑바닥 노동'인 청소년 노동에서 그 '밑바닥'을 뚫고 한참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초초저임금인) 시급에 남녀차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손님들을 대할 때 아무리 토 나올 것 같은 손님을 만나더라도 언제나 생글생글 웃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주급 더 올려 줄테니, 애인이 되어달라는 마초 아저씨들의 더러운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과 청소년, 여성 청소년의 노동 현실은 언제쯤 밑바닥을 벗어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윤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여성주의 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82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09일 15:14:2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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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 그러고 보니 난 참 운좋게도 좋은 알바를 구한 듯 하네.

    2009.12.09 22:03 [ ADDR : EDIT/ DEL : REPLY ]
  2.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소녀동지들이여!

    투쟁을 해야지

    안하고 억울하게 당하기만 할 것인가?

    내가 여러분이었으면 짤릴 각오하고 소녀고용살이노조를 만들어서 우리들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었다.

    당하기만 할 것인가?

    나의 동지들이여!

    2009.12.17 00:54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아무래도 활동가 입장이다보니- 그런 말은 쉽게 못하겠습니다 ㅋ;;;;; 노조 만들려고 하면 짤릴 게 뻔한 게 비정규직 파트타임이니까요.
      제가 청소년노동운동 쪽에 뛰어들 때는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노조를 만드는 건 '우리들의 처지를 이해해달라' 이상이기도 하지요

      2009.12.17 17:19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12. 7. 16:59


버거세트 값도 안 되는 청소년 시급


마음 따로 얼굴 따로…“항상 웃어야”


[짱돌토크] 10대들의 ‘알바’ 뒷담화…“우리도 노동자예요”



겨울방학과 본격적인 아르바이트 시즌을 앞두고, 이번 ‘짱돌토크’는 10대 청소년들의 ‘알바’ 이야기를 준비해봤다. 주변을 둘러보면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주유소 등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왜 알바를 할까.이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레디앙>은 어른들의 문제에 가려져, 잘 조명되지 않았던 청소년들의 노동현실을당사자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봤다. 이야기꾼으로 참석한 ‘짱돌’들은 현재 ‘커피숍 알바’를 하고 있는 김해솔양(17세)과 ‘패스트푸드점 알바’ 등의 경험이 있는 윤혜진 양(18), ‘옷가게 알바’ 등을 해본 한소영 양(17)이다.이들은 현재 고등학교 재학중이거나 탈학교 학생이다.



청소년 노동자들의 실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 2,200원짜리 ‘헐값 노동’을 한 사연부터, 자신의 감정과는 달리 손님들한테는 항상웃어야 하는 애로사항, 선생님이나 부모님 모르게 알바를 하게 된 이유, 가게에서 만들다가 실패한 와플을 저녁으로 먹은 사연까지다양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또 알바를 뛰는 주변 친구들의 고민도 생생히 전했다.  

   
  ▲ 왼쪽부터 한소영 양, 윤혜진 양, 김해솔 양 (사진=손기영 기자)


청소년들이 알바를 하게 된 이유도 다양했다. 이들은 부모님에게 자유로워지기 위한 일종의 ‘독립 자금’ 마련부터, 학교에서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여가활동비, ‘사고’를 친 뒤 뒷수습을 위한 자금 마련 등의 이유를 들었다. 또 소비문화 및 사회적빈곤의 확산도 청소년들을 ‘생계 전선’으로 내모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좌담회에참석한 청소년들은 “우리들도 노동자”임을 강조하며, 학교에서 교칙으로 무조건 알바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직업의식을형성하도록 ‘노동인권 교육’이 필하다고 밝혔다. 또 사업주에게도 청소년들을 노동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번‘짱돌토크’는 지난 3일 저녁 청계광장 주변 모 커피숍에서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 * *

- 어떤 알바를 했나?

김해솔 = 저는 올해 처음으로 알바를 해봤다.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테이크아웃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체인점이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커피숍이다. 시급 4,000원을 받으면서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일을 한다.”

한소영 =중 3 때인 지난해 처음 알바를 했다. 그 때 동대문에 있는 옷가게에서 일을 했다. 손님들한테 사이즈를 물어보고 옷을 골라주는일을 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하고 일당으로 25,000원(시급 2,200원 수준)을 받았다. 힘들어서 며칠뒤에 그만뒀다. 당시 돈을 많이 받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완전히 ‘착취’였던 것 같다.  당시 최저임금이3,770원이었다.



10시간 넘게 일하고 25,000원 받아

올해에는 워크넷이라는 곳에서 ‘전화알바’를 했다.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을 상대로 ‘이번에 인턴을 뽑을 거나 정규직을 채용할거냐’ 그런 걸 물어봤다. 오전 8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고 일당 45,000원을 받았는데, 제가 미성년자인 사실이 들통이 나서 며칠 못하고 잘렸다.그밖에도 다른 곳에서 하루 동안 ‘주거조사 알바’도 해봤다.  

   
  ▲ 한소영 양 (사진=손기영 기자)
윤혜진 = “첫 알바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의 하루짜리 ‘전단지 알바’인 것 같다. 이후에도다양한 알바를 했지만 올해에는 시급 4,000원을 받고 모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고, 엑셀 작업을 하는 ‘사무보조 알바’도해봤다. 일당 2만원 수준으로 하루에 3시간 반 정도 일했다.”

- 알바를 하는 이유는 무언가.

해솔 =부 모님과 이런 저런 문제로 싸우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으로부터의 ‘간섭’과 ‘도움’을 줄이기 위해 알바를시작했다. 요즘은 적금을 들고 싶다는 생각에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 일종의 ‘독립자금’이다.(웃음) 당장은 힘들겠지만, 월세방을 마련해 보고 싶다.

주변 친구들은 용돈이 필요해서 알바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게 있지만, 그걸 사고 싶어도 경제권자인 부모님이 반대를 하면 사기 힘들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 전반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 알바를 하는 경우가 있다.”

소영 =저 같은 경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해 차비가 많이 든다. 또 먹는 데에도 돈을 많이 쓴다.(웃음) 스트레스를먹는 것으로 푸는 것 같다. 특히 학생들은 시험 기간만 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험 전에필통이나 노트를 새것으로 바꾸는 친구들도 있다.

시험이 끝나면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들이 많다.특히 시험기간 전후로 돈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돈을 쓰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알바를하는 것 같다. 또 요즘 청소년들이 소비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 같다. 사고 싶은 것은 많아지는데, 갖고 있는 돈은 항상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은 항상 부족"

혜진 = “학교를 그만둔 뒤부터, 부모님한테 용돈을 달라고 말하기 미안해진 것 같다. 욕심 같아서는 이것저것 배우고 싶고 돈이 필요한데, 부모님들은 거기에 돈쓰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다. 수능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주변 친구들 중에 ‘사고’를 쳐서, 그 돈을 갚기 위해 알바를 하는 경우도 있다.(웃음)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났을 때, 학교기물을 파손했을 때, 솔직히 부모님한테 말하기 좀 그렇다. 그래서 몰래 알바를 뛰게 되는 것 같다.

또 TV을보면 예쁜 연예인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성형을 위해 알바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학교에서 여자들끼리 모이면 성형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누구누구를 닮고 싶다는…. 그리고 집안형편 때문에 알바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점점 살기가어려워지니까, 이제 부모님뿐만 아니라 청소년들까지 사회에 나가 돈벌이를 하는 것 같다.”

- 알바 현장에서 겪었던 힘들었던 점은?  

   
  ▲ 윤혜진 양 (사진=손기영 기자)
해솔 = 보통 남학생들의 시급이 높은 편이다. 어떤 고깃집은 시급으로 여학생은 2,500원을 남학생은 5,000원을 준다고 들었다. 둘 다 하는 일도 거의 비슷한데….

또 편의점 야간 알바는 보통 남학생들만 뽑는다. 여학생들도 시급이 센 편인 야간 알바를 하고 싶지만 뽑아주는 곳은 거의 없다. 여학생들은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여학생 시급, 남학생의 '반토막'

소영 = 요즘청소년들 사이에서 인력업체에 가서 막노동을 하는 알바가 유행이다. 비교적 하루에 많은 돈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서똑같은 일을 해도 청소년은 돈을 어른의 절반정도 밖에 받지 못한다. 물론 여학생들은 써주지도 않는다.

예전 에편의점에 면접을 보러갔는데, 제 나이를 물어보더니 연락처만 적고 가라고 했다. 물론 이후에 연락은 없었다. 사장님들은 청소년이면알바를 금방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면접에 가면 ‘6개월 이상 할 수 있느냐’고 꼭 물어 본다.

하 지만 우리들도 한곳에서 오랫동안 일하기를 원하다. 솔직히 일부 사장님들이 알바 청소년들에게는 말을 막하거나 힘들게 부려먹는 등그만둘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드니까 그런 것이다. ‘빨리 그만 둔다’는 식으로 말하기 전에, 이런 것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해솔 = “지금 작은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는데, 사장님이 저녁식사는 보통 가게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한다. 그런데 자꾸 눈치가 보여서, 제가 만들다가 실패한 와플 등을 먹게 된다.(웃음)

소영=사무보조 알바를 했던 제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알바 첫날에는 직원들이 음식점에서 점심을 사줬는데, 둘째 날부터는 ‘자기돈으로 알아서 점심을 사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직원들은 따로 점심을 먹으로 간 것이다. 그 친구는 너무 황당해 하고 힘들어했다.



저녁식사는 '실패한 와플'로

혜진 = 예전에는 햄버거를 안 먹었다, 제 입맛이 고급이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하지만 모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했을 때, 배가 너무 고파서 어쩔 수 없이 햄버거 같은 ‘나쁜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오전에 알바를 할 때는 아침식사로 베이컨이 들어간 머핀을 먹었다. 솔직히 그것도 몸에 안 좋은 음식인데…(한숨)

해솔 = 커피숍에 사람들이 엄청 몰릴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빨리 커피를 달라’고 보챌 때는 정말 짜증이 난다. 그래도 항상 웃으면서 주문을받아야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는 식당이나 커피숍에 가면 직원들한테 ‘빨리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제가 그분들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소영 = 전화조사 알바를 했을 때, 높은 직책을 가진 분 옆에서 일을 했다. 대기업에 전화하는 일이어서 자리 배치도 그렇게 한 것 같다. 눈치가 보이고감시를 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점심시간만 빼고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정말 숨 돌릴 시간도 없었다. 또 가끔대기업 인사팀에 전화를 할 때, 알바생이라는 이유로 마구 대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상냥하게 전화를 걸어야 해야 했다.  


   
  ▲ 좌담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장난을 치며 웃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혜진 =

“예 전에 사무보조 알바를 할 때, 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저를 뽑을 때부터 여학생이라는 것을이용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 처음에 청소나 설거지를 시키더니 주급을 주는 날 저를 앉고 애인이 되어달라고 했다. 그만두겠다고하니까 ‘주급을 두 배로 올려주겠다’고 했다. 사장이 저를 돈으로 사려는 느낌이었다.



애인이 되어달라는 사장님


그런데 당시의 상황이 마음속으로는 정말 불쾌하고 짜증이 났는데, 돈을 받는 날이어서 그런지 ‘막말’을 하지 못했던 것같다. 사장이 돈을 안 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 자신이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된다.”

-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나?

해솔 =처음에 알바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화를 많이 내셨다. 차라리 용돈을 올려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이 자존심이 상해서그러신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부모님 몰래 알바를 구했다. 두 달쯤 지나니까, 부모님도 제가 알바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결국 저를 포기했는지 이후 그냥 내버려뒀다.

소영 = 제가 다니는 학교는교칙으로 알바가 금지돼 있다. 알바를 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선생님 몰래한다. 알바 때문에 보충수업에 빠진다는 말은 꺼낼 수도없다. 인문계 학교여서 그런지 학생들이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하는 걸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바가 불건전하거나 나쁜 일도아닌데, 학교에서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


알바가 금지된 학교…"나쁜 일도 아닌데" 

정규수업 시간은 어쩔 수가 없지만,알바 시간을 학교에서 배려해주면 좋겠다. 보통 아침 7시 정도에 등교해, 야자 등 보충수업까지 하면 밤 10~11시가 된다.그러면 방학 때 말고는 알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자꾸 학교에서 알바를 못하게 하니까, 학생들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다.”

- 현재 어느 정도 받나?  

   
  ▲ 김해솔 양 (사진=손기영 기자)
소영 = 제 친구가 현재 모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인턴기간이라고 1시간에2,000원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쯤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점장한테 직접 말을 하기가어려워서 편지를 썼다고 한다.


해솔 = 사장님한테 돈을 올려달라고 하면, 잘릴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든다. 내년에는 최저임금이 110원정도 더 오르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보통 저녁 7시에 알바가 끝나는데, 어제는 퇴근시간에 사람들 많이 와서 1시간을 더 일했다. ‘1시간을 더 일했다’고 사장님한테 말해야 하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체크를 해줘서 다행이다.



“돈 올려달라면 잘릴 것 같아”

혜진 = 제가 일했던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한 버거세트는 기본적으로 4,000원이 넘었다. 그런데 제 시급으로는 버거세트 하나도 사먹지 못한다는생각에 서글펐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버거세트를 몇 백 개씩 팔았지만, 그렇게 일을 해봤자 제가 받는 시급은 버거세트 하나도사먹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혜진 = 알바를 하는 청소년들도 노동자다. 하지만 사장님들은 우리를 노동자라고 생각을 하지않는 것 같다. 그냥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일꾼’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 우리들은 정말 ‘저급’도 안 되는 존재인것 같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없는 것 같다.


해솔 = 특히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알바생의 ‘고용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 겨우 최저임금 정도 밖에 모른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을 꺼려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소영 = 학교에서 최저임금 문제 등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을 했으면좋겠다. 이런 교육이 잘 이뤄지면 사회에 나가서 어려움이 생겨도 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알바조차 못하게하고 있다. 오로지 국어, 영어, 수학 이런 것만 죽어라고 가르친다. 알바 문제는 학교의 책임도 있는 것 같다.



2009년 12월 07일 (월) 09:13:03 손기영 기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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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기랑 윤티랑 어쩔겨 쿨럭

    2009.12.07 16: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처럼 사진을 못찍는 기자한테 걸려야 사진이 운좋게 안실리기도 하고 그런 거십니다.

    2009.12.07 17:27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리될 것을 알면서도 난 왜 사진을 찍었지;;; 아- 요즘 이래저래 참 다운;;

    2009.12.07 22:27 [ ADDR : EDIT/ DEL : REPLY ]
  4.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그렇다!

    여러분들도 노동자동지들이다.

    여러분들의 돈 벌고 싶은 권리가 있다.

    2009.12.17 00:55 [ ADDR : EDIT/ DEL : REPLY ]
  5.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내가 지원해 주겠다.

    혼자 몸이겠지만

    2009.12.17 00:55 [ ADDR : EDIT/ DEL : REPLY ]
    • 투쟁단 대장이시라면서 왜 혼자몸이신지 ㅎㅎ;;;;;; 우선 감사드리지만- 음... 1명의 지원보다는, 좀 더 시스템적,운동적,조직적으로 접근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2009.12.17 17:18 신고 [ ADDR : EDIT/ DEL ]

지나가는꿈2009. 10. 6. 00:54



이명박의 지지율이 오르는 것을 놓고서도 그렇고, 여하간 최근에 많이 들려오는 이야기가 "경제 회복"입니다.
작년 전세계를 덮친 금융 시장 붕괴와 불황을 벗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출구 전략"이 어쩌구저쩌구 하고 있구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 경제는 신문지면상에서만, 그리고 TV에서만 좋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경제가 뭐가 좋아졌단 건지 모르겠어요.


경제는 쉽게 말해서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돈을 벌고 돈을 써서 물건을 구입하고...
그러니까 경제가 좋아졌다는 건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좀 더 좋아졌다는 말이어야 할 겁니다.
근데 먹고 살기가 더 좋아졌는지 어떤지 영 감이 안 옵니다.


하기사, 사실 따져보면, 저는 경제활동 인구로 제대로 잡히지도 않을 20대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경제 상황 변화에 둔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몇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긴 합니다.

(1) 우선 고환율 등등 때문이라면서 올랐던 물가는 여전히 높습니다. 먹을 걸 사러 쇼핑이라도 하면 지금도 ㅎㄷㄷ...

(2) 제 주변 사람들을 보면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시민단체에 상근자로 들어간 몇몇 사람들 외에는 구했다는 일자리가 몇 개월짜리 비정규직이나 임시직, 인턴들 뿐입니다. 저랑 같이 사는 청소년도 롯데리아 등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집 주변 동네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3) (부끄럽지만) 제가 생활비의 대부분을 받아서 쓰는 저희 부모님(전문직 자영업?)의 경제 사정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좀 못 사는 동네에서 한의원을 하시긴 하지만 '개인회생' 상태이신데, 요즘 특히 더 환자도 적고 돈도 벌기 힘들다고 하십니다.

(4) 대학을 다니면서 진 학자금 대출 빚 때문에 저는 매달 12만원씩을 꼬박꼬박 상환하고 있고, 그걸 다 상환하더라도 8년인가 7년 뒤로 상환을 미뤄둔 학자금 대출이 하나 더 있습니다. 매달 30만원이 넘는 월세도 부담스러운데 말이죠.


도대체 경제가 뭐가 좋아졌단 건질 모르겠습니다...
(이래저래 들어와야 할 돈이 꼬였던 탓도 있지만,) 얼마 전에는 가스비를 못내서 가스가 끊기기도 했고, 전기세를 못 내고 있다가 빌려서 끊기기 직전에 겨우 내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동안 통장 잔고가 단돈 100원인 상태로 며칠을 어찌어찌 살아내야 했습니다.
며칠간 돈이 없어서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얻어먹고 다니고, 교통비가 없어서 쩔쩔매고 하는 게, 우울하고 사람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더군요.

경제지표가 어쩌구저쩌구 수출이 어쩌구 하는데, 도대체 실제로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전혀 감이 안 온단 말이죠.
그런 지표들을 놓고서 "경제가 좋아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정말 살아가기가 좀 더 좋아져야 경제가 좋아지는 것 아닌가요...

빚 권하는 MB 서민 정책  - 프레시안
72.6% "MB의 친서민 실감을 못하겠다"  - 뷰스앤뉴스


실제로 링크한 프레시안 글을 봐도 가계소득은 줄고 가계부채는 늘었다고 합니다. 물가도 떨어지지 않고 있구요.
사람들이 바라는 서민을 위한 정책은 물가안정, 일자리 등등이랍니다.

-- 경제가 정말 좋아진 걸까요? 그냥 신문이나 TV에서 하는 말들을 보고 "아 좋아졌나보다"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율과 경쟁을 최우선 가치로 하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모토로 하는 MB노믹스에 '친서민 정책'이 급하게 덧씌워지다보니 곳곳에서 충돌이 불가피하다."   - 위에 링크건 프레시안 기사 中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실체가 보이지 않는 정부의 '친서민' 정책. '미친서민 정책', 무늬만 서민 정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선심성 정책, 이벤트성 행보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들의 삶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나아지게 만들 정책을 바랍니다.

그냥 등록금 얘기만 하더라도-
등록금 상한제나 등록금 인하를 위한 방안도 없이 하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은 그냥 빚더미 위에서 나중에 한꺼번에 돈 벌 때 빚갚으라는 거는 똑같잖아요... 나중에 돈을 갚을 수 있을 만큼 돈 버는 일자리에 취업이 될지 안 될지도 잘 모르는데 -_-;;



(월세랑 등록금 걱정이라도 좀 덜하고 살고 싶습니다, 킁.)

추신 -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는 경제가 나아진 게 체감되는 분들이 얼마나 되시나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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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잔느

    심지어는 학과 교수님 중에서도 MB를 좋게 말하는 사람을 못 봤구만
    지지율은 어떻게 올라가나 몰라

    표... 표본의 오류라던가 (쿨럭)

    2009.10.06 02:01 [ ADDR : EDIT/ DEL : REPLY ]
    • 표본 오류 같진 않고; 사람들이 아무래도 그래도 지금 대통령이니까 그렇게 확 못하지만 않으면 지지해주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경제지표가 나아지는 거라거나 친서민정책 발표라거나 지지율이 올라갈 요인은 분명히 있지. 어차피 20-30% 정도는 고정지지층이 있었고...

      2009.10.06 10:25 신고 [ ADDR : EDIT/ DEL ]

흘러들어온꿈2009. 9. 23. 17:10


과연 경제학은 현실/진실을 말하고 있는 건가?



대학교 1학년 때 경제원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맨큐의 경제학 책을 가져다놓고 수요 공급 균형가격 완전경쟁시장 고정비용 가변비용 기업의 퇴출, 담합... 뭐 그런 것들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었다.
그리 모범생은 아니어서 수업 들은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그 중에 교역의 필요성에 대해 배우는 챕터에서 절대우위-비교우위를 설명하던 날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수업을 듣고서 내가 수업 시간에 질문을 했던 게(무려 질문씩이나 하는 학생이었다;)...
일단 분명히 그 이론은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에 주력해서 생산하면 총 효용이 늘어난다는 것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까 교수님은 비교우위에 주력하여 생산한 후에 둘 사이에 교환을 통해 둘 모두 이득이 된다고 가정하고 설명을 하셨다. 물론 둘이 교환을 할 수 없다면 비교우위에 주력하여 생산을 하지는 않을 테니 교환이 일어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교환의 결과가 둘 모두에게 이득이 되게 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교환의 비율 등 뭘 어떻게 교환하냐에 따라서 그 총효용의 증대가 양쪽 모두에 이득이 되지 않고 한쪽에는 손해가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 않나? 
 
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교수는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가정하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보증은 없긴 하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답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둘이 완전히 평등하고 합리적인 경제 주체로서 협상을 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둘 사이에는 서로서로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교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둘은 완전히 평등하고 합리적인 상태에서 협상을 할 수 있을까? 둘의 합리성과 평등에 대한 가정 말고는 저 분배를 보증할 만한 장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장치가 없는 이상, 교역은 양쪽 모두 잘 사는 전략이 아니라 총효용은 늘리지만 한쪽이 다른 쪽을 착취하는 구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날 수업은 내가 그전부터 의구심을 품어왔던 주류 경제학의 허점 같은 걸 구체적으로 느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비교우위이론에 따른 생산으로 총효용이 증가하더라도 그 총효용이 꼭 공정하게 분배되리란 법은 없다.
경제성장률이 몇%가 되고 GDP가 늘더라도 그게 꼭 모두가 잘 살게 하는 걸나 보장은 없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특정 상품의 우위나 경제규모의 차이(환율 등으로 나타나는), 군사력 등등의 요인으로 불공정한 거래를 하게 되고 불평등은 더 심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가격균형에 대해서 배울 때도, 노동시장도 똑같이 수요 공급으로 설명하고, 가격하한제가 시장을 왜곡시키는 예로 최저임금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면서...
 '아니 그럼 균형가격이 형성되었을 때 그게 최저임금보다도 아래란 건가? 지금도 최저임금은 완전 쥐꼬리인데? 그거보다 더 아래면 대체 얼마인 건지. 그 임금이 도저히 먹고 살 만큼도 안 될 게 뻔한데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런 생각에 도대체 이 경제원론이란 게 무슨 장난질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었다.  (지금이야 "기본소득 도입ㅋ"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그당시 배울 때는 교수야 최저임금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라는 식으로 설명하긴 했지만, 그럼 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지, 그런 답은 경제원론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었다.
노동자들은 가격하한제(최저임금) 때문에 실업이 되어서 먹고 살지 못하거나, 아니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초저임금을 받으며 먹고 살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란 말인가?

그런 경제학적 명제들 앞에서 생각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류' 경제학은 과연 제대로 된 현실/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는 숫자놀음은 아닐까?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 - 10점
로랑 꼬르도니에 지음, 조홍식 옮김/창비(창작과비평사)




거지를 동정하지 마라? - 경제학의 실업이론 비판
초판 2001년
지은이: 로랑 꼬르도니에                          옮긴이: 조홍식
펴낸곳: 창작과비평사



  이들은 실업자들이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주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실업자들은 참지 못할 정도로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실업이론은 이같은 광경이 초래하는 도덕적 상처를 가리기 위해 붙이는 반창고 역할만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적인 설명이 진정 필요한 부분은 실업기간 동안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보는 것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가장 부도덕하고 충격적인 부분인데, 그렇다면 일이 없는 노동자들은 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고통스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경제학은 이들이 겪는 고통의 광경을 은폐하기 위해 또다른 쇼를 준비한다. 이 쇼에서는 실업자들이 부자이며 이익을 누리려 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수혜자적 상황에 빠졌고, 그 책임 또한 그들에게 있다고 보여준다.
책 pp.95-96


"경제학의 실업이론 비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주류경제학의 환상들에 대한 알기 쉬우면서도 통렬한 비판이다.

(대개 신고전주의/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자발적 실업'과 같은 사람 홀리는 말을 써가며 실업의 원인은 노동자들한테 있노라고 말하며 최저임금과 복지제도 같은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라고 말하는 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론에 기반을 둔 것인지 이 얇은 책 한 권에 이렇게 쉽게 설명할 수 있다니!

이 책을 읽으면 신자유주의 [노동] 경제학에서 실업이론이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못 사는 건 게으르고 못나서다"라고 외치던 저 [자유방임주의적이고 기독교도덕적인] 자본주의초기 담론을 더 복잡하고 이론적으로 꼬아놓은 것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아~주 합리적으로 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목표를 빨리 간파할 수 있다. 실업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의도적인 행동의 결과이며, 따라서 불만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깊게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자유주의 담론의 문제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심각한 상태인데, 논리적 사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증상을 보이게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실업이란 자발적 실업이며, 이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인정하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실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민의 정에 사로잡힌 자유주의자가 이렇게 복지를 누리고 있는 서민들의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주의적 이상에 기초를 제공하는 유일한 이론에 따르면, 경제활동 인구의 86%를 차지하는 임금노동자들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데 왜 자유주의자들은 최저임금제를 철폐하여 완전고용을 이루려고 저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왜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행복해하고 있는 실업자들에게 선을 베풀려고 하는 것일까? 자유주의라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경호견이 되려는 정치적 계획이 아니라면(물론 이럴 경우 완전고용이 이뤄져야만 최대한의 이윤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의 관심을 이해할 수는 있다) 이것은 매우 신비한 현상이다…….
책 pp.72-73

이 인용문과 같은 위트와 비꼬는 말들은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이런 부분들이 나올 때마다 독자들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나치게 점잖은 사람들에게 이런 부분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소일지도 모르지만.)


로랑 꼬르도니에 씨는 주류경제학의 실업이론들을 하나하나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를 논박한다.
먼저, 주류경제학에서 가정하고 있는 '노동자' 그리고 '노동시장'의 모델이 대체 어떤 것인지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마치 여가와 노동을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되는 주류경제학에서의 '노동자'의 모델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를 보여준다. ("경제학에서 만든 노동자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먹을지 아니면 15분 더 낮잠을 잘지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번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p.35))

특히 고전적인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고 굉장히 타당한 비판(그러나 잘 수용되지 못하는 비판)을 다시 환기시킨다. 바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것과 같은 시장도 노동자도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결국 경제학은 현실을 분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실이 이래야 한다는 당위에 가깝게 되어 버린다. 책의 표현을 인용하면 그것은 "실증적"인 학문이 아니라 "실천적 신화"이다.


  이론가들은 시장을 변호하기 위해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화, 추상화, 가설 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변명할 것이다. 좋다. 우리는 항상 '마치 ~처럼'이라는 태도로 임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치 ~처럼'을 너무 많이 하다보면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는가? 실증적 적절성을 전혀 갖지 못한 이 훌륭한 지적 건축물은 하나의 철학일 뿐이며, 일부 사람들이 세상에 강요하려 하는 실천적 신화에 불과하다. 우리는 바로 이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인데…… 그 옹호자들은 이런 분석을 가장 지독한 비난으로 생각한다.
책 p.58


그 이후에 책은 "최저임금 때문에 실업이 발생한다", "사회복지제도(예약임금) 때문에 실업이 발생한다", "노조가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늘리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등부터
"게으른 노동자 이론", "겁많은 노동자 이론" 등 노동자들에게 실업의 책임을 돌리는 실업이론들을 차례차례 짚어나간다.



특히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유효수요'의 문제   그리고  ▲상호보완적 노동(대부분의 노동들이 그렇다)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에 경쟁으로 한 집단의 소득이 양극화되는 현상에 대해 논의한 것은 이론적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혹시라도 책을 읽기 전에 이런 논의의 요지를 간단하게 맛보기 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음 인용문을 읽기 바란다.


  의심의 여지없이 최저임금의 철폐는 반드시 완전고용을 창출하는 미덕을 발휘할 것이다. 만일 가장 비숙련된 노동자 집단의 임금이 자유롭게 변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임금은 상당히 급격한 폭락 끝에 어느 수준에선가 멈춰서서 시장을 깨끗하게 정리할 것이다. 나는 한달에 10만원 정도라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기적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이 가격이라면 사업가들은 비숙련 노동자의 고용을 분명히 늘릴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여기서는 당연히 신고전주의자가 즐겨 사용하는 우화를 소개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100만원일 때 노동조합의 독점권이 제공하는 이익의 일부분을 받으면서 풍요롭게 생활하던 노동자들은 임금이 10만원으로 내려가면 집으로 돌아가 화초나 키울 것이다.
... (중략) ...
  하지만 지적 정직함이 있다면 어떤 임금 수준에서 이런 이론이 현실화될 수 있는지를 밝혀야만 한다(이런 작업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 유연성을 막고 있는 요소들을 제거할 경우 임금이 즉각적으로 폭락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는 정통 이론이 말하는 것과 다르지만 말이다. 다시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면 최저임금제는 실업의 원인이 아니라, 실업의 가장 비참한 결과를 제한하는 구원의 방파제인 것이다.
  우선은 자유주의 담론의 기초가 되는 이론의 시발점에서부터 살펴보자. 사람들은 최저임금을 받는 자들이 가장 낮은 (한계)생산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일부가 실업상태에 있는 이유는 최저임금이 같은 직종의 비숙련 노동자의 완전고용에 해당하는 (한계)생산성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사업가들이 합리적이라면 비숙련 노동자들의 (한계)생산성이 최저임금보다 떨어지는 순간 이들의 채용을 중단했을 것이다. 따라서 고용의 문이 닫히는 것은 어느 노동자가 전체 노동의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최저임금보다 조금 적을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 고용주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1년에 1800만원이라고 하자. 이는 르노(Renault)의 고용주가 공장에 한 명의 비숙련공을 채용하더라도 1년 동안 라구나(Laguna) 자동차 한 대도 더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한 명의 1년 자동차 생산량이 평균 열여섯 대 가까이 되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경제학자들이 우리에게 르노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한 명을 더 채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너무나도 낮은 그의 생산성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한계생산성이 정말 극적으로 하락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신기한 역설 중 하나는 숫자가 나오기만 하면 경제학자들은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르노의 고용주는 아마 추가로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는 이유가 한계생산성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추가로 자동차를 생산하더라도 이를 구입할 수 있는 수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기업이 노동자의 채용을 중단하는 이유는 노동자의 생산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 신비로운 요정이 나타나 완전고용의 상태에 가까이 가기만 하면 갑자기 노동자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수요의 한계라는 가능성을 잠시 고려해보면, 최저임금제 같은 제도의 필요성과 효율성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다. 최저임금이 실업의 원인이 아닐 뿐더러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발생한 실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매우 유용한 장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책 pp.74-77


  경쟁제도에서 피해를 보는 자들은 다른 종류의 경쟁자들보다 필요로 하는 일의 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가 많은 사람들이다. 만약 어떤 회사의 이사(理事)가 최저임금의 100배(간단히 말해서)를 번다면, 피아노 이사 우화의 경우 이 사람은 꼬리일꾼인 셈이다. 좀더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사는 경리와 경영을 담당하여 돈을 셀 줄은 알지만(그의 능력) 노동자처럼 나사를 돌릴 줄은 모르기 때문에 경영 인력에 비해 육체노동을 제공하하는 노동력이 과잉공급되는 상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육체노동자들이 이사들처럼 경리를 담당하거나 경영을 할 수 없다고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제 같은 제도의 기능은 시장에서의 경쟁으로 인해 협상력이 취약해진 노동자집단의 소득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중략)... 따라서 최저임금은 일부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이중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한 정의의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이중의 고통이란 실업으로 인해 이들의 임금이 계속 하락하는 경향을 보여주기 때문에 나타나는 고통과 바로 이 하락 경험을 초래하는 요인인 실업이라는 고통이다.
  전통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이 최저임금에 대해 반대입장을 보일 때 그것이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성격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는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이 최저임금이 비숙련('비숙련'이란 것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노동자의 한계생산성과 비교해보았을 때 너무 높은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담론은 유효수요의 부족이라는 문제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의 무능력(또는 의지의 결핍)을 감추는 데 필요할 뿐이다. 문제는 실업이 존재할 때 수요량을 늘리기 위해 노동의 가격을 내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수요를 이동시키는 데 있자. 그것은 각각의 가격 수준에서 노동의 수요량을 늘리는 것이며 최저임금의 수준에서도 모두가 일을 갖게끔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활동의 수준을 확장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현대 경제이론의 맹점을 보여주는 부분인데, 최근에 사람들이 거의 고정관념처럼 선호하는 의식은 신이 늙은 케인즈의 장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케인즈가 유효수요 부족이라는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 경제학자들 중의 한사람인데도 말이다.
책 pp.82-84





주류경제학이 의심스러운 상식인들을 위한 책


사실 주류 경제학에서 내뱉는 온갖 말들은 '상식'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이 책에 소개된 것만 해도 그런데, '최저임금'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실업의 결과가 아니라 실업이 발생하는 원인이다, 월 60만원도 안되는 실업수당이 예약임금이 되어서 실업을 일으킨다 등등....)

물론 '상식'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적인 곡예와 비현실적인 추상화, 가정들에 입각하여 나온 이론이 '상식'보다 더 현실/진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그러나 '상식인'(요즘 한윤형 씨의 글을 읽다보니 지식인이나 엘리트에 대비되는 '상식인'이란 말이 입에 붙었다)들로서는 학자들이 도표와 계산을 제시해가면서 이렇다는데 뭐라고 딱 반박할 말이 안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뭔가 이상한데?" 싶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거나, 아니면 빈부격차나 실업 등에 대해 어차피 그럴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하고 체념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결국에는 그런 경제학적인 이데올로기들은 하나의 '상식'으로 굳어져버린다.
교과서나 신문에 범람하는 '시장실패', '정부실패', '자발적 실업', '복지수혜자들의 도덕적 해이', '정부는 비효율적이고 시장은 효율적임' 같은 말들의 힘이다. )


그런 주류경제학의 노동시장, 최저임금, 실업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영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찜찜하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찜찜하던 부분은 분명하게 밝혀주는 불빛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분명한 진실을 말해주는 것 같던 경제학들이 과연 얼마나 현실/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나 하는 회의가 들게 된다. 그러다가 열성적인 독자라면 결국 새롭고 대안적인 경제학 이론들을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나도 청소년노동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최저임금과 일자리, 비숙련 노동 등의 문제를 많이 고민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부분 좀 더 정리된 논리들을 갖추게 되었다.
최근 이명박 정부 이후로 한국의 복지는 상당 부분 축소되고 있고,
올해만 해도 경제 상황 악화와 일자리 등을 이유로 최저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재계(자본가들)의 요구 때문에 최저임금이 (물가인상 등과 비교하여)'사실상 삭감'되었다.
청년실업의 문제, 서민 경제의 침체는 갈수록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 책은 나온 지 오래 되긴 했지만 대중적인 경제서로 읽힐 만한 의의가 있다.


노동경제학자이면서도 어렵지 않게(물론 노동시장을 설명하는 부분 같은 경우는 좀 머리를 굴려가면서 읽어야 하지만 대체로 쉽게 읽을 만하고 이런 부분은 좀 건너뛰어도 큰 문제는 없다;;) 이론적인 이야기와 상식적인 말 사이를 넘나들면서 좋은 책을 쓴 로랑 꼬르도니에 씨와 이 책을 번역한 조홍식 씨 등에게 다시 한 번 한 독자로서 감사의 뜻을 표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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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 눈앞에 무슨 도표가 있어도 "기본소득ㅋ"

    2009.09.23 20:37 [ ADDR : EDIT/ DEL : REPLY ]
  2. ...라고 해도 어차피 경제학을 반박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정도의 '증거'와 '논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을걸? 내가 보기엔 아직 '체계'라고 부르기도 부족한듯 한데.

    2009.09.29 20:47 [ ADDR : EDIT/ DEL : REPLY ]
  3. 솔직히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사회학'과 마찬가지로 현상에 대한 분석과 해석에 전념하는 분야라서, 예언적이거나 당위적 측면으로 넘어가면 문제가 '더럽게 많'기는 하지. 나는 근데 아무리 읽어도 '당신들의 가정에는 사악한 사상이 담겨있어'라는 피해망상적인 푸념이 들어있는것 같달까 -_-

    2009.09.29 20:55 [ ADDR : EDIT/ DEL : REPLY ]
  4. '최저임금' 문제만 해도 사실 거기에 대해선 '주류'의 의견이란게 없을 정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너무 높이거나 너무 낮추는 것은 노동환경이나 시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정도는 대부분 인정하는듯?...하지만 "적당히 올리면요?" 라든지 "기본소득"은요? 라고 물으면 아무도 모름..) 솔직히 자유주의는 지금도 (경제학 내에서) 충분히 까이고 있기도 하고..

    2009.09.29 21:02 [ ADDR : EDIT/ DEL : REPLY ]
    • 책 원본이 나온 게 90년대인가 여하간 좀 오래됐으니까, 현재의 학계의 상황과는 다른 면이 있을 수 있겠지.
      그리고 이거 책은 실제로 읽어보면 나름 경제학자가 쓴 경제학 비판이라서 굳이 외부의 사회학이나 정치학적 논의를 끌어오지 않고 경제학적인 논리로 무장되어 있음(내가 리뷰에는 대부분 생략했지만)
      * "당신들의 가정에는 사악한 사상이 담겨있어" 내지는 "당신들의 가정은 사악한 결과를 유발하고 있어"라는 인식이 있기는 하지.

      2009.09.30 01:39 신고 [ ADDR : EDIT/ DEL ]

흘러들어온꿈2009. 9. 4. 17:18

대기업이여, 다시 태어나라

[인권오름] 이미지 마케팅만 하는 대기업들

정인  / 2009년09월03일 13시37분


일자리 창출은 온데간데없이 텅 빈

‘대한민국은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라는 마지막 장대한 카피가 뜨는 광고를 보다가 ‘이거 공익 광고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현대자동차그룹의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현대자동차의 KBS캠페인) 조금 쌩뚱맞다. 현대자동차가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지? 공익캠페인이긴 한 것 같은데, 현대자동차라... 그 느낌이 ‘공익’과는 너무 멀~구나. 대기업들의 투자는 줄고 자산은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업의 자산이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몫도 아닐 텐데 말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 표면의 휴머니즘, 그 이면에 기업의 사람 잡는 찌질리즘이 보인다.
▲  방송광고의 한 장면

더 많은 일자리 더 많은 땀방울로 대한민국은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광고를 보면 땀방울은 보이는데 어떻게 일자리가 더 많아질지는 모르겠다. 대기업들은 그동안 꾸준히 일자리 ‘창출’이 아닌 일자리 ‘소멸’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1996년과 2006년을 비교해보면 중소기업에 비해 대기업들의 고용은 오히려 줄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발표에 따르면 대기업의 일자리는 10년간 129만 개 줄었고 중소기업 일자리는 247만 개를 늘었다. 대기업은 돈은 벌어도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이다.
최근 여러 대기업들이 사회적 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해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회사가 일자리 만들기에 앞장 서는 것처럼 보이려 애쓰는 홍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실상 대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은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려 고용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대기업들은 인턴사원 고용으로 마치 채용을 늘린 것처럼 말한다. 정규직 신규채용은 작년보다 줄이거나 그대로 유지하면서 ‘청년 인턴’ 일자리만 늘이고 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인턴’은 기간제 노동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청년 인턴들은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저임금 노동을 하다가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다시 일자리 걱정에 날을 지새워야 한다. 기업은 인턴제로 청년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을 뿐, 이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주진 않는다. 일자리 창출을 호언하지만, 속으로는 기업의 이익만 챙기고 있는 것이다.

▲  방송광고의 한 장면

대기업이여, 다시 태어나라~

대기업들의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이 ‘지난해’보단 감소했지만 ‘올 상반기’에 비해 늘었다고 한다. (참, 통계란 눈 가리고 아웅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대기업들이 해야 할 일은 이미지마케팅이 아닌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노력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인턴제 확대를 비롯한 일시적인 일자리가 아니라, 단기적 고용만을 장려하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을 바꾸고 장기적.안정적 고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땅의 노동자가 일 할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대한민국도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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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6. 5. 14:25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김진숙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출처] http://bsnodong.tistory.com/30






추신 : 이제보니까 프레시안에도 이 글이 올라갔네요.

덧글들은 좀 압박스러운 게 많습니다.

제가 살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김진숙 씨의 글이 여러 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제가 산 시대(2000년대 이후, 특히 운동을 시작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2004년 이후)에서 노무현 씨는 '변절'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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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4. 20. 13:30


청소년노동인권과 최저임금에 대한 생각


0. 청소년노동인권 침해, 청소년노동 경시
  청소년노동인권이 침해당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청소년노동이기에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금노동이기에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노동이라면 대부분 겪게 되는 착취나 차별, 소외, 폭력 일반이 있고, 청소년노동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문제가 있다.
  청소년노동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문제는 대개 청소년노동을 경시하고 평가절하하는 인식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단순한 ‘편견’은 아니다. 이는 가족임금제(가부장 한 명이 일해서 가족을 부양한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가부장 남성의 임금이 높아진다. 임금이 높아지니까 좋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여성과 아동의 임금이 낮아지는 효과.)와 청소년은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받아야 하는 존재로 규정당하는 사회 구조와 제도에서 비롯된다.

1. 청소년노동인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딜레마는, 본질적으로는 임금노동 자체에 숨어있는 딜레마와 같다. “노동하지 않을 권리”와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할 권리” 사이의 충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에 실린 청소년노동인권 관련 글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근절론과 보호론이다. 이 둘은 물론 모두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지만 그 내적 논리는 다르다. 제한적 변화냐 근본적 변화냐의 문제는 아니다. 둘은 모두 근본적인 성격과 제한적-개량적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1-1. 노동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임금노동을 하는 상황 자체가 청소년들이 착취를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자기 노동력을 (대개 싼 값에)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 자체가 비인간적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청소년노동의 확대는 노동시장 전체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노동력의 공급이 많아지고, 청소년노동은 대개 비청소년의 노동보다 싼 가격이므로.)
  그러나 노동하지 않을 권리의 주장은 결과적으로는 청소년들이 일하지 말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보호주의적인 논리와 연결되기 쉽다. “노동하지 않고도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노동하지 않고 보호받으며 살 권리”가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청소년들이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은 청소년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실제로 일찍 노동을 시작하는 나라일수록 선거연령이 낮은 경향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에 참여하느냐 않느냐는 시민권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되곤 한다.)

1-2.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할 권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함축되어 있다. 또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할 권리”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권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권리를 실현하는 데 더 적절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정당한 대우’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현재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의 기준이라는 건 전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청소년들의 ‘합법적인’(그러나 착취적인) 노동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는 청소년들의 양극화(빈곤 청소년들은 노동시장으로 내몰리고, 비빈곤 청소년들은 고등교육을 받아서 고소득을 보장받는)와 전반적으로 임금이 낮아지는 모습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할 권리’가 그냥 ‘합법적으로 노동할 권리’로 왜곡되면서 나타나게 될 현실은 더 암울해보이기도 한다.


2. 최저임금
  최저임금 보장을 요구하면서 청소년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회에 문제제기하는 첫 걸음으로 삼는 것은 방법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최저임금 보장이라는 요구에는 맹점이 있다. 예컨대 시급 2000원으로 2명의 청소년노동자를 고용하는 업소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최저임금 4000원을 보장해야 한다고 압박하면, 그 업소는 1명의 청소년노동자를 해고할 가능성이 제법 높다. -_-; (사실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적게 만든다는 이명박 정부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일자리가 ‘뼈 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말도 안 되는 저임금 일자리’란 게 문제일 뿐.)
  시장법칙에 따라, 일자리의 수와 임금은 반비례한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노동시장'의 원리 자체를 전면적으로 재구성 - 말하자면, 혁명? - 하거나, 정부나 공공영역에서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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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덧붙이자면, 수도권과 지방의 청소년 알바 임금 격차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대학에 갓 입학한 아는 동생이 (부산 태생이고 부산 지역의 대학에 진학) 편의점 알바를 하는데 시급이 2800원 정도였거든요. 당시 법정 최저임금은 이미 3100원을 넘어선 상태였구요. 그래서 미니홈피로 "니가 지금 받는 임금이 법정 최저 시급 미달이다, 만 18세 미만 근로자의 첫 달 임금을 80%만 주는 시행령을 감안해도 지금 덜 받고 있다." 고 알려줬더니 답변이 "나도 적게 받는 걸 아는데 사정상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나도 일을 계속하려면 그냥 알바 계속해야하고..." 라고 답하더군요. 그런데 실제로 부산을 비롯해서 다른 지방 출신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물가 차이 (특히 식당이나 카페 같은 서비스업)가 상당해서 알바 임금 또한 서울보단 적다고 하더라구요. 이러다보니 서울에서 최저임금을 준수해도 지방으로 내려가면 사정이 달라지기도 하고.....
    몇 년 전 그것이알고싶다 에서 청소년 알바 임금 지급 문제에 대해 나왔었는데, 하루 왠종일 분식집에서 서서 일하면서 김밥 마는 동안 자기는 끼니도 거르고 시급도 2500원(!)만 받는 여중생이 "저 방송 나가면 안돼요 계속 일해야 되는데..." 라면서 울고, 악세사리 가게에서 알바하면서 역시 시급을 덜 받는 여고생도 울면서 방송 나가면 짤릴지 모른다고 제작진에게 부탁하던데.....'경험쌓기형 알바' 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이 보여서 안타깝기도 했답니다.

    2009.04.23 12: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그게 참- 맥도날드 이런 대형 업체는 오히려 여러 번 최저임금 문제로 맞아서 최저임금을 '딱' 지켜서 주는데 -ㅂ- 편의점 분식집 이런 영세 사업장은 수도권을 벗어나면 임금이 확 떨어지더라구요. 물가 차이도 있는데, 감독 부서에서 얼마나 단속을 하느냐 문제도 있는 거 같고...

      2009.04.25 01:40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8. 9. 21. 03:14




제3회 대학생비정규포럼을 시작합니다!

〔공개강연〕비정규노동과 한국사회
- 강사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 9월 23일(화)/ 7시/민주노총교육원

〔공개강연〕비정규노동자와 노동운동
-강사 :조돈문(비정규노동센터 대표/가톨릭대사회학교수)
-9월 25일(목)/7시/민주노총교육원

〔공개강연〕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 강사: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9월29일(월)/7시/민주노총교육원

〔간담회〕대학생,비정규 노동자를 만나다.
- 10월 1일(수)/7시/민주노총교육원

비정규노동과 노동법 Ⅰ, Ⅱ, Ⅲ
- 강사 : 이수정, 최지복 (민주노무법인 공인노무사)
- 시간,장소 미정(재공지)

〔직접행동프로젝트〕
-대학생학내비정규직을 만나다-학내비정규직실태조사
-비정규직을 몸으로 말하자-플래시몹
-노래와 율동으로 비정규직을 이야기하자
-노동,아는만큼 즐겁다-아르바이트 노동인권 실태조사

-각각의 프로젝트 구체적 내용은 홍보물 게시판에 올려진
소책자를 참고하세요.
-이외에 여러분들이 희망하는 직접행동 프로젝트의
주제를 받고 있습니다.
참가신청서의 ''''''''''''''''희망프로젝트''''''''''''''''란에 적여주세요^_^

※참가신청: 참가신청 게시판에 올려진 양식을 다운받 아 작성후, 참가신청게시판에 올려주시거나
futureaction@jinbo.net으로 보내주세요.

문의: 02-312-1632~3
010-7502-5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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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아르바이트랍니다 라랄

비정규직 관련 운동을 비정규직(아르바이트)로 한다는 게 참 -ㅂ- ㅋ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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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8. 7. 14. 20:10


  나는 수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모욕적인 행위들 ― 약물검사, 끊임없는 감시, 관리자의 ‘엄한 질책’ ― 이 저임금을 유지하는 일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이 별로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믿게 하면 자기가 받고 있는 임금이 실제로 자신의 가치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직장내의 독재주의에 또 다른 기능이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관리자들은 자신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아니라면 곧 모든 일이 엉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받은 인상과는 다르다. 나는 일부 냉소주의자들과 자신들의 힘을 잘 안배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반면, 실제 게으름쟁이나 약물중독자, 도둑은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임금이나 어떤 형태로든 그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 너무나 미미한 일자리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으며 때로는 슬프기까지 했다. 사실상 이들은 일을 제대로 하는데 관리자들이 방해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웨이트리스들은 손님들에 대한 주인의 인색함에 화를 냈고, 객실 청소부들은 때때로 시간제한 때문에 일을 꼼꼼히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으며, 매장 직원들은 관리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과도한 재고로 매장을 어지럽히는 것보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어했다. 그들에게 맡겨두면 스스로 업무에 대한 협동과 분담 시스템을 고안했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상황에 대처할 줄 알았다. 실제로 복종을 강요하는 일 외에 관리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직장에서의 불합리한 악순환은 경제가 아니라 극단적인 불평등 문화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 같다. 기업의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과 심지어 더 메이즈의 사장과 같이 시시한 기업가들도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보다 훨씬 높은 경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실제 경험보다는 계층에 대한 편견 ― 종종 인종적인 문제이기도 한 ― 과 관련이 있어서 자신들이 직원으로 뽑는 계층의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약물검사나 성격검사와 같은 모욕적인 방법들과 강압적인 관리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비용이 들며 ― 관리자 한 명당 1년에 2만 달러 이상, 약물검사 1회당 100달러 등 ― 이러한 억제를 위한 비용 상승이 임금을 높이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억압을 초래한다. 거대한 사회일수록 비슷한 순환을 겪는 것 같다. 감옥과 경찰에 훨씬 더 많이 투자하는 반면, 집합적으로 ‘사회적 임금’이라고 통칭하는 빈민들에 대한 공공서비스를 삭감하고 있다. 또한 거대한 사회일수록 억압에 드는 비용은 필요한 서비스를 확장하고 복구하는 데 또 다른 걸림돌이 된다. 이는 우리를 더 심각한 불평등의 상태로 몰아가는 비극적인 악순환이며, 결과적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억압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저임금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간에 ― 내 설명은 피상적인 것밖에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적게 벌고 있다는 것이다.


                                        - 바바라 에렌라이히, 『빈곤의 경제』, pp.252-254. 옮긴이 홍윤주. 청림출판.



바바라 에렌라이히의 『빈곤의 경제』를 다 읽었다.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직접 체험하며 기록한 수기.

빈곤의 경제라는 제목은 뭔가 경제학 서적 같은 느낌이 드는데,
원제는 'Nickel and Dimed'로, 이쪽이 좀 더 책의 내용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읽으면서 주거 임대료 문제와, 서비스 저임금 노동의 노동 조건(그리고 그 비인간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청소년노동인권이나 비정규직 생각도 많이 했고...


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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