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4. 1. 4. 23:24



1. 우선 영화는 약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법정 드라마 요소를 기대하고 보는 관객으로선 실망스러울 거라고 생각.

물론 당시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이긴 한데... 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끊임없이 다루는 방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도 변호인으로서 변론을 하기보다는 격앙된 분노를 보여주는 데 장면을 주로 할애한다.


80년대 남한의 인권 문제를 환기시키려는, 남영동 같은 의도라면 성공적인 편인데...


영화로서의 재미는 다소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내부고발을 감행하는 과정이나 그 인물을 법정에 불러오기까지의 과정도 감동적으로 또는 스릴 있게 그리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함.


그래서 볼 만한 영화이긴 한데,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하고 사회에 보수적으로 순응하며 살던 주인공이 다르게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2. 다음으로 정치적으로 불편한 점.

  아 노무현 어쩌구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이 영화에서 결국 대학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야학을 하던 학생들은 계속해서 불쌍한 피해자로만 묘사가 된다.

결국 영화가 마무리를 송우석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서, 송우석이 87년에 추도집회를 선도하고, 그 과정에서 법정에 서는 것으로 끝냄으로써 영화는 학생들을 송우석의 변화의 계기로 수단으로 삼고 지나갈 뿐이다.

실제로 부림사건 피고인들은 그런 불쌍하고 억울한 피해자로만 있던 게 아니라 민주화운동, 사회운동 등에 일정하게 기여하고 활동을 했던 주체들이 많았다. 그러나 '변호인'과 '국가폭력'을 강조하다보니까 영화는 피고인들을 긴장감 없는 불쌍하고 무력하고 무고한 존재로만 그리고 있다.


특히나 이 영화는 "법조인이라면 그래야 한다"라는 식으로 일종의 '엘리트의식'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가끔씩 시민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영화의 흐름 속에서 이 시민이란 지식인-법조인 엘리트가 되고 만다.

시대와 불의한 권력 때문에 자기 피고인을 지키지 못한 '변호인'이,

자기가 변호했던 사람 곁에서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주고 앞장서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뭐, 재판 과정에선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예를 들어 출소 후에 그 학생들과 송우석이 무언가 같이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식의 마무리가 있었다면 그런 면이 희석되었을 텐데.


끝내, 그 불의한 권력을 뒤엎은 사람이 그래서 변호사들이었던가? 송우석이었던가? 노무현이었던가? 6월항쟁의 주역은 누구였던가? -- 이런 역사관에 연관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변호인 한 개인의 모습, 순응적으로 살다가 시대 앞에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던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굳이 그런 엘리트주의적 역사관으로 끝을 맺어야 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시민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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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1. 6. 10. 10:23
안티조선 운동사 - 10점
한윤형 지음/텍스트



‘또 하나의 역사’ 『안티조선 운동사』 소개글인지 서평인지


『안티조선 운동사』 서평을 쓰려고 개요를 간단하게 메모해보았다. 하지만 그 개요로 글을 다 쓰지 못하고, 몇 번이고 그 개요를 다시 쓰고 다시 썼다. 도무지 리뷰의 맥락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안티조선 운동사』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티조선 운동사』에 일부 그 책임을 돌리고 싶다. 『안티조선 운동사』에는 읽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안티조선 운동사』를 읽으면서 ‘독후감’에 이런 내용을 넣어야지, 하고 메모했던 많은 것들이 도무지 하나의 통일성과 논지를 가지고 정리되지 않는 상황과 씨름해야 했다. 읽은 이에게 단일한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여러 가지 생각의 소재를 제공해주고 새로운 생각들의 계기가 되어주는 것, 그건 역사책에 있어서는 차라리 장점이 아닐까? 그래서 그냥,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냥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몇몇 생각들이나 지점들 중에서 소개할 만한 것들 두엇을 골라서 소개하는 걸로 서평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안티조선 운동사』의 표지에 적혀 있는 부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이다. 책을 처음에 집어 들었을 때는 너무 부제가 거창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더랬다. 15~20년 남짓한 사회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가지고 ‘또 하나의 역사’라니, 너무 스케일이 크지 않은가?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그 부제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 다른 독자 분들도 그럴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단순히 안티조선 운동이라는 사회운동에 대한 역사 정리에 그치지 않는다. 1990년대 초반 ~ 2000년대 후반까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안티조선 운동’ 관점에서의 조망이며 한윤형의 정치평론이다. 그리고 특히 노무현 정부(나는 사실 노무현 정부가 안티조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에 대한 한 안티조선 운동 참여자의 평론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안티조선 운동이란 프리즘으로 바라본 지난 15년간의 ‘역사’에 관한 기록이다.”(p.15. 여는 글.)


예를 들어서, 다음은 『안티조선 운동사』에서 노무현 지지층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이 ‘집단’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보려 한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 강준만의 ‘실명 비판’과 진중권의 ‘키보드워리어질’은, 심지어 《조선일보》와 전쟁을 벌이며 나온 노무현의 개혁 정치조차 ‘그것’을 받아들이고 열광할 준비가 된 ‘집단’이 없었다면 무의미했다. 물론 강준만, 진중권, 노무현, 그리고 기타 여러 등장인물들은 이 ‘집단’의 정서를 구체화하고, 정교화하고, 더 큰 덩어리로 만든 공로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집단’의 열망에 주어진 ‘해답’으로 존재했을 뿐이지, 그 주인공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pp.248~249)


즉 한윤형 씨는 『안티조선 운동사』를 운동사인 동시에 안티조선 운동과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해석 또는 평론으로 위치 지우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안티조선 운동의 자료를 모으고 기록한 ‘백서’나 사료 모음, 또는 역사기록 정도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안티조선 운동사』는, 비록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저자 ― 한윤형 씨의 정치적 견해나 평론, 그리고 논설이 삽입되어 있긴 하지만,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기록과 평가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나라면 이런 식으로 글을 쓰려면 아마 어느 정도에서 균형을 잡아야 할지 아주 그냥 머리가 빠지도록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한윤형 씨가 실제로 작업 과정에서 그런 부분 때문에 고생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그 결과물인 이 책 안에는 특별히 망설이거나 어려워 한 듯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건 아마도 한윤형 씨 자신이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였으며 안티조선 운동을 통해서 정치적 사회적 의식이 성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극우 헤게모니론을 근거로 《조선일보》를 기타 신문과 구별하는 논의가 여전히 유효한지는 더 따져 봐야 할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는 최장집 사건에서 《조선일보》의 ‘마지막 기동전’을 보았으며, 그 후에도《조선일보》의 과장․왜곡 보도의 수준이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현격히 다른 수준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극우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의 실행자로 《조선일보》를 지목해 낼 수 있을지는 알수 없다.”(p.128)


어쩌면 나도 ‘조중동문’의 ‘기동전’의 피해자 중 하나라고 슬쩍 한 숟갈 얹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10년 7월 동아일보가 주도하고 조선일보, 문화일보, 세계일보 등이 가세했던 ‘아수나로-진보교육감 공격’ 때문이다. 이른바 ‘진보교육감’ 당선 이후, 그들을 까기 위해서 아수나로의 일제고사/교원평가제 반대 행동 등에 관해서 ‘홍위병’ “청소년들이 날뛴다.”라는 식의 보도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심지어 1면까지 사용해주었고 조선일보도 2면과 사설 등에 자리를 내며 아수나로가 어떤 단체인지 소개까지 해주셨다.

아수나로는 주민직선 교육감들이 선출되기 이전부터 일제고사 반대 행동을 했고 교원평가제에 대해 (더 급진적으로, 점수화하는 평가가 아닌 학생들이 직접 학교운영, 교원인사 등에 참여해야 한다는 취지의)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었다. 일제고사 반대 행동 같은 경우도 2008년 10월이나 2009년 3월의 활동이 규모 면에서나 실천 방법(농성, 오답선언, 등교거부 등) 면에서나 가장 컸다. 그런 점들에 비추어 볼 때 그 보도는 다소 생뚱맞은 일이었다. 서울시 곽노현 교육감 등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7월 교육부 일제고사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최장집 사건 같은 데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이것도 ‘극우 헤게모니’에 위협이 될 만한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을 공격하기 위한 일종의 기동전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안티조선 운동사』의 지적대로 과연 지금 시점에서 조선일보가 그러한 ‘극우 헤게모니’의 대표적 주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수나로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게 동아일보였듯이, 오히려 동아일보나 문화일보 등이 그러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미 언소주, 행언련 등 지금의 언론운동은 사실상 ‘조중동’ 내지는 ‘조중동문’ 등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안티조선 운동사』를 읽으면서 내게 가장 생소하게 다가왔던 것은 동아일보 이야기였다. 내가 운동을 시작한 게 2004~5년 무렵, 그리고 사회적인 여러 사안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길게 잡아봐야 2002년 정도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2000년 10월, 한겨레신문 정연주 논설위원의 손에서 탄생했던 “조중동”이라는 조어가 굳어진 시점이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동아일보는 높은 빈도로 조선일보보다 더 악의적인 보도를 해왔다. 따라서 동아일보가 조선/중앙보다 더 개혁적인 위치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좀 낯설게 들릴 수밖에 없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안티조선 운동사』를 읽어보시라. 『안티조선 운동사』는 조선일보 이야기 뿐 아니라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이 어떤 역사를 거쳐서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진영 논리를 넘어


“이런 논리에 다가서면, 여기에는 ‘우리 편은 우리 편이니까 옳고, 상대편은 상대편이니까 그르다’는 자폐적인 답밖에 남지 않는다.”(p.268)

“참여정부는 대단히 미심쩍은 논점을 손에 쥐고서 조중동과 분쟁을 일으켜 그들의 몰상식함을 이끌어 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를 반대한다면 이런 저열한 의사소통 방식을 넘어서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그 저열한 의사소통에 동참하는 일이었다. 소위 개혁 언론들은 참여정부가 그어 놓은 전선에 따라 별수없이, 혹은 자의에 의해, ‘조중동과의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이를테면 공정한 잣대로 쌍방을 평가하지 못하고 ‘패싸움’에 휘말린다는 인상을 주었던 셈이다. 그 결과 참여정부를 열렬히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더 ‘《조선일보》 비판’ 활동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됐다.”(pp.361-362)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를 비판함으로써 한국 언론들에게 중론이나 여론을 관성적으로 대변하고 답습하는 것을 넘어 공론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강제해야 했다.”(p.464)


『안티조선 운동사』가 반복해서 주문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운동이, 정치가, 언론이, 담론이, ‘진영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안티조선’은 공정성과 당파성의 두 가지 측면에서 조선일보가 취해오던 왜곡된 진영 논리를 넘어서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안티조선 운동은 그런 문제의식을 과연 얼마나 견지했는가? 스스로가 조선일보식의 저급한 편향성, 저열한 의사소통 방식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아닌가? 때문에, ‘발전적인 운동’을 위해서는, ‘안티조선’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언론운동이 ‘발전적인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조선일보(또는 조중동)만 없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이러한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조선일보(또는 조중동)가 사라져야 한다.’가 되어야만 한다.

(‘조선일보=친일파’라는 공식을 이용해 안티조선이 대중화되던 시절을 서술하면서 한윤형 씨가 던지는 “운동은 어디까지 단순화될 수 있는 것일까?”(p.190)라는 질문에서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나는 한윤형이라는 저자를 좋아한다. 한윤형 씨의 장점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공정하게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한윤형 씨의 글쓰기는 당파적이지만, 최소한의 공정성이라는 룰을 지키려고 애쓴다. 우군에게만 특별히 너그럽지도 않으며, 이중 기준을 적용하는 일도 없다. 당파성의 근거가 되는 기준도 명확한 편이다. 그때 당파성은 일종의 실용성이 되기도 한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특히 그런 한윤형 씨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책이다.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운동이기 때문에 좀 더 너그러워도 좋을 법하건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공정하게 편파적인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며, 편파적으로 공정한 것이 가장 편파적인 것이다'라는 말 자체도 안티조선 운동에서 등장했던 말(정확히는 유시민 씨가 쓴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정작 이 말을 한 분이 또는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이, 공정하게 편파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안티조선 운동사』를 놓고서 한윤형 씨 ― 10대 무렵부터 안티조선 운동에 빚을 진 어떤 한 사람은 ‘공정하게 편파적인’ 그 자세를 가능한 한 유지하고 있으면서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기록과 평가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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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6. 10. 01:42

우리 그냥 정치하게 해줘!

전교조 탄압과 기호0번 청소년 후보 운동

공현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교사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교사들 중에서도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조합원들이. 물론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고 해서 전교조가 잘 먹고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탬(NEIS)니 교원평가니 싸우고 욕먹고 탄압당할 일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교사들을 무더기로 해고하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들어선 첫 해부터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안내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하나둘 해직 교사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더니 교사들의 시국선언, 정당후원 등을 이유로 해임, 파면을 남발했다. 이제 200명이 넘는 해직교사들이 생겨났다. 무슨 ‘해직교사’를 이명박 표 특산품으로라도 만들 기세이다.

징계 폭탄을 두고서 대부분은 ‘전교조에 대한 공격’, ‘전교조 탄압’이라고 이야기한다. “한나라당에 100만원 후원한 교장은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데 민주노동당에 1만원 후원한 전교조 조합원은 해임이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징계가 어디 있어? 전교조를 노리고 두들겨패는구만, 아주!” 이 정도 수준이다. 전교조 측에서도 이 문제를 전교조 탄압으로 이해하면서 “과잉징계”, “법원 판결도 나기 전에 해임”, “형평성 상실”, “절차 무시” 등을 주로 제기했다. 결국 프레임은 ‘전교조 지지냐 탄압이냐’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지금 이 상황은 단순히 ‘전교조에 대한 공격’ 일까? 아니 뭐, 고리타분하게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공격” 이러면서 위기의식을 자극하며 연대를 호소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상황에 대해서 좀 다른 해석을 붙여보자는 것뿐이다. 왜 교사의 정치활동은 금지되는가? 교사는 왜 사상ㆍ양심의 자유, 집회ㆍ결사의 자유 등 표현의 자유를 모두 억압당하고 있는가? 왜 그러한 법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고 전교조 탄압의 명분이 되며 사회적 힘을 잃지 않고 있는가?

전교조나 전교조 탄압에 반대하는 언론 등이 간간이 제기하는 쟁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교수들의 정치적 자유는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되는데 왜 교사들은 시국선언(표현의 자유), 정당후원/가입(결사의 자유) 등이 모두 제한되고 있는가?” 교사들은 ‘공무원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디 한 번 사립초중고등학교 교사와 국공립대 교수를 비교해보면 그냥 ‘공무원이니까’로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임을 알게 된다. 오히려 공무원 프레임도 “왜 교사들은 공립 사립 가릴 것 없이 국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공무원 취급을 받는가?”라는 식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을 위한 교사들의 희생(?)

답은 단순하다. 교수와 교사의 차이가 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뭐 연봉이나 노동환경 등 여러 가지 있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육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수는 대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참여하지만, 교사는 초중고등학생들에 대한 교육에 참여한다. 그리고 대학생들은 선거권도 있고 정치적 권리들을 보장받고 있지만, 초중고등학생들에게는 선거권도 없고 정치적 권리들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인 것을 접하기에는 너무나 ‘미성숙’한 초중고등학생들을 정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교사들의 정치활동은 금지되어야 한다. ‘미성숙’하고 감수성과 모방성이 뛰어난 학생들이 행여나 교사들에게 영향이라도 받아서 편향된 정치적 견해를 가지게 될까봐 그런 것이다. 헌법 제31조에도 “정치적 중립성”이 명시되어 있으니까 교사의 정치활동은 위헌이라고까지 한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로 나왔을 때,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중고등학생들의 주체적 실천으로 보지 않고 ‘전교조의 영향’ 운운했다. 그의 망발은 이런 사고방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학생들(청소년들)에게 정치적 권리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들의 정치적 권리 또한 봉쇄되어야 했다. 청소년들에게 교사 이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들의 정치적 권리는 왜 금지하지 않나 참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건 그것이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논리이다. 이건 단순히 나의 해석이나 억측이 아니라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에 대해 위헌 재판 신청을 했을 때 헌법재판소에서 이를 기각하면서 내놓았던 논리이다. 결국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혹은 ‘미성숙’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강제로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며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정치 금지가 교육하는 반인권성, 반민주성

뻔히 아는 사실이겠지만, 이 ‘금지’는 공평하지 못하다. 교육이 정치성을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과서와 교육과정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태도들을 전제로 만들어지고 그것들을 ‘상식’이자 ‘공식적인 지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면서 교육을 비정치적으로 만들겠다는 구호는 현재 사회의 지배적 가치를 공고히 하고, 이에 비판적인 이야기들은 ‘정치’라며 틀어막아버린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다. 민주노동당 후원 교사는 ‘징계’, 한나라당 후원 교장은 ‘출세’라는 결과는 그러한 불공정성의 극단적 표현일 뿐이다.

사실 초중고등학생들에게 사회 굴러가는 것이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며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집단적 자기결정권으로서, 말하고 듣고 행동할 자유로서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인권이다. 정치적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 금지하는 것은 반(反)민주주의, 반(反)인권을 교육한다. ‘비정치성’을 강요하는 것은 보수적인 정치성을 띄는 것이다.

혹자는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 등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면 이런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히틀러 유겐트와 같은 사례는 따져보면 국가 권력이 교육을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이 정점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교육이 정치권력,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어야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교사들을 통제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교사들을 해고하는 데 오용되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나치 독일스럽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거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자기 견해를 강요할까 걱정스럽다면,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체벌’이나 ‘평가권’ 같은 과도한 (때로는 폭력적인) 권력들에 제한을 걸고 학생들에게 정치적 능력을 배양하면서 평등한 교사-학생 관계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학생에게 권력을 청소년에게 정치를”부터 시작하자

위 사진:전교조 탄압저지 결의대회에 지지하며 참여한 아수나로 회원들


2010 지방선거 때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요구하면서 ‘청소년 후보’가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 교육에서 다른 어떤 후보들보다 0순위로 주인이 되어야 한다면서 기호0번을 달고 출마한 청소년 후보는 말하자면 일종의 ‘계급 후보’였으며, 벽보도 안 붙여주고 공보물도 안 보내주는 선거관리위원회를 원망하면서 열심히 유세를 다녔다.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선거운동기간 중에 생긴 정치활동을 이유로 한 전교조 해직 사태에 대해서도 논평을 발표하고 지지방문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학생들,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학생들,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공부시킬 대상으로만 보기 때문에 교사들의 정치적 자유까지 탄압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부는 지금 청소년들을 강제로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상태로 남겨놓기 위해 ‘대량해직’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교육의 진짜 주인인 학생들은 무시하고 정부 입맛에 안 맞는다고 해고하는 것에 당연히 반대해줘야 한다.”라며 정부의 무리수를 비판했다.

전교조에 대해 ‘정치활동’을 이유로 하며 가해지는 공격들은 학생들에 대한 공격이고 모욕이기도 하다. “니네는 너무 미성숙하니까 이런 불순한 교사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해.”라면서 학생들 핑계를 대고 있는 참 가증스러운 징계이다.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며 기호0번 청소년 후보 활동을 했던 청소년인권운동의 주체들은 이후로도 적극적으로 이번 전교조 징계에 대응할 것이다.

위 사진:교육감 기호0번 거리 유세 중.


역으로 말해서, 학생들의 정치적 권리 보장이 교사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임을 이번 전교조 징계가 보여주고 있다. 학생, 청소년들을 정치에서 왕따 당하는 존재,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로 남겨두는 한 교사들이 부딪치고 있는 정치적 자유의 문제들도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정말로 ‘전교조 징계’는 전교조라는 조직만의 일로 볼 수 없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이 평등하게 오갈 수 있는 학교. 학생들도 교사들도 모두 자유롭게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학교. 그런 학교를 위해서 기호0번 청소년 후보는 감히 나서서 먼저 외쳤다. “학생에게 권력을! 청소년에게 정치를!” 전교조든 전교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든, ‘전교조 표적 탄압 반대’를 넘어서서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 모두의 정치적 자유가 꽃피는 학교를 보는 날이 머지않기를 바란다.

* 히틀러 유겐트

나치가 통치한 독일에서 나치즘을 내면화시키고 국가에 동원하기 위해 운영한 조직. 자세한 것은 <히틀러의 아이들>참고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06 호 [기사입력] 2010년 06월 09일 14:53:41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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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몇년 전에 이십대에 의회의원으로 당선이 되어 활동을 한다고 하는 독일의 청년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청소년 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고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권리의 모든 것이 정치라는 것으로 부터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면 정치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르치는 과목이 없다는 것이 통탄할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청소년인권활동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고 앞으로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힘이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돕고 함께 하고 싶습니다.

    2010.06.10 02: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선진국 처럼 투표 연령을 더 낮춰야 합니다.

    2010.06.10 13:00 [ ADDR : EDIT/ DEL : REPLY ]
    • 투표연령도 낮아져야 하고
      선거권이 설령 없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활동을 하도록 보장해야겠죠 ^^

      2010.06.12 02:11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12. 19. 21:03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교육정책팀에서 만들고 있는 소책자에 들어갈 글 내용.








  교원평가제라는 건 풀어서 설명하면  ‘교사들을 평가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교원평가제라고 하면 학생들은 학생들이 교사들을 평가할 수 있다고 하니까, 교사들을 견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학생들 막 대하고 수업 대충 하고 이런 교사들을 학생들이 직접 낮은 점수 줘서 쫓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지만 지금 정부,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교원평가제를 보면, 1년에 한 번씩 교사에 대해서 정해진 항목에 점수를 매기는 일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학생과 학부모(친권자, 보호자 등)는 참고자료 삼아 ‘만족도조사’만 하고, 교장, 교감, 다른 교사들만 교사들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거 참. 학생들을 학교의 주인, 교육의 주체로 만드는 제도라기보다는 그냥 만족도 점수만 몇 점 매길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제도인 셈입니다.

  교원평가제는 달콤한 독약일 수도...
  정부에서는 교원평가제를 도입하는 목적이 공교육의 질 향상이라고 합니다. 특히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대요.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 이유는 뭐죠? 보통은 입시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사교육을 대신하려면, 학교에서 입시 성적을 잘 올리는 수업을 하게 되는 거가 ‘공교육의 질 향상’이겠군요! 이런, 그러면 학생들에게 보충수업 빡세게 시키고, 학생들을 때려서라도 성적을 올리는 교사들이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거겠네요?
  물론 교원평가제를 하면, 그냥 수업 들어와서 자습서 펴고 줄줄 읽는 몇몇 교사들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손해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입시경쟁은 더 빡세지는 상황에서 이런 식의 교장, 교감의 평가 권한이 강하고 학생들은 들러리 취급하는 교원평가제로는요. 자율학습 많이 시키는 교사, 일제고사 성적 많이 올리는 교사, 좋은 대학 많이 보내는 교사, 교장 말 잘 듣고 학생들 용의복장단속 잘 하는 교사가 좋은 점수를 받기 쉬울 거라는 겁니다.
  사실 학교교육 자체가 입시경쟁과 차별에 찌들어 있고 교육예산은 부족하고 교사들은 교육부, 교육청이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짤리는 상황에서 교사들만 평가하면 교육이 나아진다는 건 좀 말이 안 되는 거 같습니다. 교육부장관, 교육감들은 학생들이 평가 안 하나요? 참 이런 식의 교원평가제라면 학생들은 성적과 상벌점(그린마일리지;)으로 줄 세워지고 경쟁하고, 교사들은 교원평가점수로 경쟁하고, 학교들은 일제고사 성적과 대입 실적으로 경쟁하는 무한경쟁 점수 매기기 교육이 완성될 뿐일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참여권을~ 학교를 민주화하면 되는데?
  사실 교원평가제를 학생들이 환영할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수업에, 학교운영에, 교육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면 경쟁시키는 교원평가제 말고 아예 좀 더 확실하게 합시다. 학생들이 ‘만족도 조사’란 이름으로 1년마다 교사들을 점수 매기는 요상한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침해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직접 징계할 수 있게 하면 됩니다. 교육정책 결정, 교육감 선거, 학교 운영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하면 됩니다. 교장 독재 학교가 아니라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면 됩니다. 학생들에게 참여할 권리, 정당한 권력을 주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될 일을, 왜 이런 요상한 교원평가제를 하려고 할까요? 더군다나 학생회는 아무 권한도 없고, 학생들이 교육정책에 대해 학칙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다 때려잡으면서 말이죠. 정부에서 삽질한다고 교육예산도 깎았던데 정말 교육의 질을 향상시킬 의지가 있는 걸까요?? 설마... 교사들을 더 잘 통제하고 말 잘 듣게 해서, 학생들을 더 빡세게 공부시키고 잡으려는 음모인 건 아니겠죠??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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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원평가 자체가 문제란건지, 교원평가를 Peer survey로 한다는데에 문제가 있는건지?;

    2009.12.21 09:52 [ ADDR : EDIT/ DEL : REPLY ]
    • 항목에 대한 점수 평가 식으로 1년마다 하는 교원평가는 반대임.
      차라리 사전에 학생들의 수업과정, 교육과정 편성, 학교운영 참여와 수업에 실시간으로 피드백하고 폭력 등이 심각한 교사는 즉각 징계 요구하는 시스템을 원하지 @_@

      2009.12.21 10:51 [ ADDR : EDIT/ DEL ]
  2. 학생한테 교사를 평가한다는거 자체가 잘못됬다고 봐요

    2010.02.18 00:5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6. 24. 18:15


- 일단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 문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만의 문제는 아니란 걸 지적을 해야겠지?
전단지 돌린 걸로 징계하겠다고 한 학교나, 뱃지 차고 다니는 거 금지한 사례나,
노무현 때 청소년들 집회 나오는 것에 대해 뭐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2003년)랑, 2005년 내신등급제 두발자유 집회 등의 이야기 모두 포함해서.
(사실 두발복장자유 등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가 더 억압당하는 것은 변함 없다. 더 억압당하는 것이 변함 없다는 말은,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 전반에 대한 억압이 심해지면, 청소년들에게 가해지는 것 또한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제도적 권력의 작용이든 '대중'의 인식이든.
문자메시지 추적, 휴교시위, 촛불집회, 청소년시국선언 사례.

- 청소년보호법과 교과서. 문화적 억압? 억압의 의도는?
더 급진적인 상상력이 없이는 오십보백보.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를 19세 먹이는 것과 이장호 감독의 어우동을 19세 먹이는 것 사이에는 과연 큰 차이가 있나?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설령 반두비가 이명박을 비하해서 19금을 받은 게 아니라 하더라도 상관 없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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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16. 16:43

#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고 가사노동은 여성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사회.
여성단체들이 독재적인 정권에 의한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며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그들의 시국선언문 중 일부이다.


"무엇이 우리를 부엌에서 뛰쳐나와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까?"
"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과 직면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무거운 집안일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합니다."
"
우리는 순수한 여성들이고, 정치적 색을 띠지 않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압니다. 진정한 민주정치가 무엇인지를요."


청소년시국선언문 을 보는 내 기분이 어떤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겠는가?
2차 수정 버전과 비교해본다면야 다른 단체들의 수정 의견을 받아들여서 상당부분 바뀌긴 했지만,
(2차 수정 버전에는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아직 정치적 색을 띠지도 못한 그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우리는 아직 어려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등의 표현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안에도 내가 여성에 빗대어서 말한 저 세 개의 표현은 엄존한다.


그리고 또,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나 구절이 더 있다.

"그저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던 우리는 이제 ‘가진 자’ 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합이나 상생이 아닌, 대립과 갈등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 알게 되면 좋은 것 아닌가?;; ㅡㅡ;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어째서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인지,
그에 대한 설명도 해명도 전혀 없다.




#

지금도 청소년시국선언 페이지에 들어가면 자동 재생되는 동영상의 첫 마디는 이렇다.
"현 청소년들의 순수한 염원이 현 이 시국선언을 꽃피우게 했습니다. 청소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는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란 행위는,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 활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뉘앙스는, 청소년시국선언을 적극적 정치활동으로 의미화하기보다는,
정치 활동이 아닌 윤리 활동으로 의미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의 행위는 정치색을 떠난 것이요, 사상을 떠난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윤리적 선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순수한 것이다.
(순수하다는 강조는, 순수와 비교되는 불순한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불순한 것은 무엇인가?)
오, 물론 정치는 윤리와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정치는 윤리와 다르다. 밀가루와 라면이 분리될 수 없지만 다르듯이.
정치는 논쟁 가능하고 상대적이며 공공적이다.
윤리는 논쟁 불가능하고 절대적이며 사적이다.
(윤리적 사안이 논의되기 시작한다면, 그건 이미 원칙적으로는 정치의 영역이고 대상이다.
* 인권담론에는 윤리적인 성격이 있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는 인권들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실천은 정치적인 것이다.)

청소년시국선언 내용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분들은, 청소년시국선언에 대해서 비난을 보내는 우파들에게 반발할 것이다.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이며 스스로 행동하는 존재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저 시국선언문의 내용과 뉘앙스에 100% 동의한다면, 그분들의 주장은 곧 한계에 부딪쳐 돌아설 것이다.

그분들은 청소년들이 '특정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사회/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상황에서는 사회/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학업에 매진하는 게 옳다고 말할 것이다.
그분들은 이 사회에서 '윤리'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설지언정, 이 사회의 '윤리'를 바꾸는 '정치'에 나서는 일은 반대할 것이다.

다음 문장의 모순어법을 이해하신다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고 교과서에서, 학교에서 배운대로 사는 존재이다!" (????????)
"청소년은 꼭두각시가 아니라 백색의 종이이다!" (???????????)
"청소년은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이지만 정치적 주체는 아니다!" (?????)


b
내가 청소년인권운동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또 작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확고하게 정리한 생각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항일독립운동이든 민주화운동이든 미군장갑차 사건이든 광우병쇠고기 문제든
무슨 사회적으로 커다란 건수에 대해서 참여해서 목소리를 열심히 내는 것만으로는 청소년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직접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회적 지위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실천은 평가절하되거나 다르게 받아들여질 뿐이다.

그것은 '나이가 20세 미만인 어느 국민들'의 민주주의일지언정
청소년의 민주주의는 아니다.





#

청소년시국선언임에도 '시국'의 내용으로 청소년들의 상황이 포함되지 않은 것 또한 서글픈 부분이다.
이는 이 선언 내용 작성을 주도한 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의 상황을 '시국'으로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이명박 정부 이후의 '시국'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었다면 이명박 정부 이후의 변화된 청소년 상황에 대해 썼으면 될 문제인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청소년들의 문제는 '시국'으로 포함될 수 없다는 내면화된 차별적 인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사소한 문제와 큼직한 문제, 사적 문제와 공적 문제의 구별-차별이랄까.

미림 씨가 쓴 시국선언 논의 게시판에 쓴 글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선거권이나 두발문제는 따로 다뤄져야한다. 이번 선언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것에 강력한 비판 메세지가 담겨야한다"
는 것이였고 만약 이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선언을 동참하신 단체나 개인분들이
선언하지 않으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아,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처음 초안에는 들어가 있던 청소년 선거권 내용이 빠지는 것에 대해
한 청소년이 비판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내용은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에 김용제님(시국선언문 작성에 참가한 청소년)이 단 덧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명박의 폭압정치는 느끼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대부분의 깨어 있는 청소년들이 강한 반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으실거라고 봅니다.
반면에 청소년 선거권은 이치적으로도 한 쪽의 의견이 맞다고 확정할 수 없는 사안이며,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그 의견이 매우 분분한 사안입니다.



이 두 논리에 따르면 청소년들 관련 내용이 시국선언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1. 청소년들의 상황은 민주주의나 반민주주의에 해당되지 않는다.
2. 청소년들의 인권/권익 문제는 '대부분의 깨어 있는 청소년들'이 동의하는 문제가 아니라 의견이 분분한 사안이다.

... 참, 이 둘 다 서글픈 말이다.
대부분의 깨어있는 청소년들이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깨어있는'이 정확히 뭔지도 모르겠고.




#

이 건에 대해, 덧글들과 글들 등에서 나타나는 몇 사람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것.


우선, 이 시국선언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몇 명의 청소년들의 생각일 수는 있어도 시국선언에 동참한 3000명의 생각은 아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 시국선언문을 올려놓고 서명을 받았다면 3000명이 여기에 동의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초안과는 확 달라진 글이 시국선언문 최종안이 된 마당에 말이지.
더군다나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청소년들이면서도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게시판에서 적극 의견 개진을 했지만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경우들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게시판도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홍보가 많이 된 후반부에 이르기 전에는,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들에 답하는 덧글을 단 사람들은 희망 아이디 아니면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그 의견이 시국선언에 대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게시판에 올라왔지만 시국선언문에 반영되지 못한 의견들은, 3000명의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반영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시국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몇몇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반영되지 못한 걸까?


아, 나는 이 시국선언문이 3000명의 것이 아니라고 해서 폄하할 생각은 없다. 여하간에 시국선언문이 현 상황에서 담고 있는 대체적인 정신과 방향성에 3000명이 동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문구 하나하나, 디테일한 표현 하나하나까지 포함해서 시국선언문 전체를 그냥 3000명의 생각이라고 포장하지 말았으면 할 뿐이다. 그냥 솔직하길 바랄 뿐이다.

중간에 시국선언문 내용이 전면 교체된 것은, 그냥 살만 붙인 것도 아니고 요구안도 다 바뀐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로 말한다면 절차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걸, 어떤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희망은 계속해서 시국선언문을 희망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참여로 썼다는 걸 강조하며 희망의 영향은 별로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희망이 처음 청소년시국선언을 제안하면서 올린 시국선언문 초안에 반영되어 있는 표현과 생각들, 그 코드들에 맞는 청소년들이 이 시국선언 운동에 모이는 게 자연스럽다는, 당연한 생각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청소년들이 시국선언 운동에 참가하는 것을 주저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시국선언문 초안의 내용과 뉘앙스 때문이었다. 운동은 제안자의 코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 나는 희망이 시국선언의 내용이나 뉘앙스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하면서 자신들은 대변자이거나 판을 까는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b

분명히 가장 좋은 모양새는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던 청소년 아니면 여하간 대략 이런 의견을 가진 중 누군가가 시국선언문 작성 공개 온라인 회의도 참가하고, 그 내부에서 수정안이 나오기 전부터 발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먼저 몇 가지 사정 설명을 하자면, 희망 사람이 아수나로 게시판에 청소년시국선언 제안을 한 시간은 6월 4일 목요일 밤 11시경이었다.
그리고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6월 5일부터 서울인권영화제에 참가하고 있었고, 6월 6일이나 7일에 했어야 할 정기회의도 인권영화제에 다 같이 가기로 해서 1번 쉬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때문에 논의가 늦어졌고,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개인이 단체의 결정 없이 참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인권영화제 가느라 + 희망이 제안하면서 올린 시국선언문 초안의 내용이 워낙 참가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라서 적극적인 참가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다만 개인이 게시판을 통해서, 그리고 시국선언문 작성 회의에 참가하는 다른 청소년들 중 일부를 통해서 의견을 전달하는 일은 있었다.)

단체라는 게 보통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진 못한다.
앰네스티 같은 단체는 무려 런던까지 연락을 해서 의견이 오고가고 조율이 된 후에야 입장 발표를 한다지 -_-;
뭐 아수나로가 앰네스티처럼 의사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급할 때는 긴급 결정 시스템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6월 4일 밤 11시에 들어온 제안을 2~3일만에 처리하지 못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요일에 있던 아수나로 전체온라인회의에서 회의에서 물어봤을 때도, 내용상 좀 참가하기가 애매해서 지부별 논의도 필요하고,
내용이 대폭 수정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의견들이 많았고...

그러다가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겨우 회의를 하고 입장을 정리해서 글로 쓴 게 화요일(9일)이었다.

시간상 그냥 가만히 있을까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라도 의견을 내는 게 옳다는 판단에 의견서를 올리고/보냈다.
(희망에서는 이게 청소년 전체를 대표하는 시국선언도 아니고, 다른 내용의 시국선언을 발표하시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만약 청소년시국선언이란 이름으로 선언이 발표된다면 이게 청소년 아니면 최소한 민주주의나 이른바 '진보/개혁'적 청소년들 대부분을 대표하는 의견인 것처럼 다루어지고 받아들여질 거라는 건 자명했다.)

이처럼 시간적인 문제로만 이야기한다면, 닷새전에야 시국선언 운동 제안을 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안 할 수 없기에,
굳이 시간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꼬치꼬치 따지고 싶진 않다.



그러나 여하간에 그렇게 올린 의견서에 대해서 그 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덧글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글이 올라온 시점과, "이 수정의견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수정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청소년시국선언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습니다."라고 쓴 것에 대해서만 덧글로 논란이 있었다는 것도,
 참 서글픈 일이다.





#b

나는 청소년시국선언 운동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고생하고 준비한 분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저 현재 발표된 청소년시국선언문이 담고 있는 한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 한계들을 옹호하기 위한 논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후에 발표되는 청소년'시국'선언은 내게 덜 안타까운 것이길 바란다.
애초에 '시국' 선언이란 것 자체가 가지는 한계를 무시하더라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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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성헌

    일전에 한고학연에서 몇 번 부딪힌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여전히 고등학생때의 꿈을 잊지 않으신 것 같고,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서, 다행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06.16 17:19 [ ADDR : EDIT/ DEL : REPLY ]
    • 딱히 고등학생 때의 꿈이라기보단 제꿈이죠 ^^
      정성헌 님도 책 사세요 ㅋㅋㅋㅋㅋㅋ

      2009.06.17 01:26 신고 [ ADDR : EDIT/ DEL ]
  2. 글은 본지 꽤 되었지만, 나름대로 이 글에 호응하는 답변 형식 (?) 의 글을 올립니다. 공현 님의 비판을 약간 참고했습니다. 트랙백도 보냅니다.

    2009.07.06 22:34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6. 11. 10:17

6.10 섞이지 못한 구호와 민주주의

"수권정당을 만들어 달라"고 돌아온 대답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 2009년06월11일 1시34분

장면 1. 10일 오후 5시 경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노란색 손수건을 든 쌍용차 노동자들이 버스에서 내린다. 방금 공장을 나온 듯한 작업복 차림. 서울광장에 선 노동자들의 목소리에서는 설레임마저 느껴진다. 핸드마이크를 든 한 여성이 “정리해고 반대한다”를 외치자 노동자들은 한 글자 씩 쪼개어 팔박자 구호를 외친다. 정.리.해.고.반.대.한.다. 서울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장면2. 같은 시각 서울광장 중앙에는 천막이 쭉 쳐있다. 햇볕이 닿지 않는 천막 아래에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앉아있다. 그들 뒤로는 “국민이 주인이다. 대통령은 사죄하라. 광장 없이 민주 없다”고 쓰인 플랑카드가 걸려있다. 경북에서 왔다는 민주당 관계자가 “반드시 전국정당이 되어서 경북에서도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외친다. 정범구 전 의원이 ‘광야에서’를 함께 부르자고 제안한다. 박영선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손을 흔든다.
장면3. 집회가 시작되고 쌍용차 노동자들은 무대 앞 쪽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 왼쪽 스크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과 포옹을 하며 웃는 사진이 뜬다. 구호를 외칠 때 마다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를 있는 힘껏 든다. 노란 손수건 무리가 섬처럼 하늘로 떠오른다.


87년에서 22년이 흐른 서울시청 앞 광장. 쌍용차 노동자들의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외침은 ‘민주회복’이라는 구호에 섞이지 못했다. 용산에서 죽어간 철거민들과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의 죽음은 성명서 한 귀퉁이에 담겼지만 결론은 “2012년 민주개혁정부를 다시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직선제가 없었다면 이명박도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정치인의 말은 “수권정당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말로 돌아왔다.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민주주의 쟁취하자”고 외치자 무대로 오른 정치인은 “그러니 야당에 힘을 실어 달라”는 고백으로 답했다.
서울광장을 연 공은 밤새 천막을 쳤던 국회의원들에게 돌아갔다. 사회자의 “국회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오”라는 요구에 시민들은 순간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모든 영광을 국민들에게”라는 정치인들의 말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는 “들러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광장에 사람들은 많은 데 광장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도 했다.
“왜 나오셨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친다는 한 선생님은 “저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라고 답했다. 그 선생님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이명박 대통령이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럼 대안은?”이라는 질문에 “계속 거리로 나오는 거죠”라며 웃었다.
이광일 성공회대 교수는 “시청 앞이 아니라 용산에 민주주의가 있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이 삶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광일 교수는 “비대칭적인 힘들이 평등해 지는 것,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여성과 장애인들이 서로 평등하게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국민대회 1부가 끝나고 2부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문화제가 시작하자 깃발 밑에 있었던 노동자들이 술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화제를 마치고 “살인정권 물러나라”를 외치던 시민들은 전경들의 강제 해산에 다음 약속을 잡지 못하고 헤어졌다.
2009년 6월. 야당들의 지지율이 올라갔다는 소식은 들려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백지화 되었다는 소식은, 용산에서 죽어간 철거민들의 장례가 치러진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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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10. 13:48



이 수정 의견서는 청소년시국선언 2차 수정안이 나온 시점에서 써서 보낸 것입니다.

최종안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는데,
이 수정의견서가 일.부. 반영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언론이 과연 공정했나'라는 문제의식이 받아들여져서 언론이 공정했다는 이야기는 빠졌고,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려서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뭐 이런 표현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백색의 종이" 같은 표현이랑, 청소년들은 학교에 있는 게 당연한데 지금이 매우 특수하고 막장스런 상황이라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어용, 하는 뉘앙스의 표현들은 전혀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발표 바로 전날밤에 의견서 보내서 뭐하는 짓이냐고 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그럼 시국선언 바로 6일 전에 제대로 나온 선언안도 없이 제안하는 건 뭔가 하는 질문부터 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
단체라는 게 대개 그렇게까지 긴급하게 움직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2009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대한 수정 의견서


0/ 먼저 우리는 청소년들의 적극적 정치․사회 활동으로서의 청소년시국선언 운동의 의의를 긍정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애통하고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있어선 안 될 일들에 비추어 볼 때, 시국선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또한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게시되어 있는 청소년시국선언서의 내용이 반드시 고쳐져야 할 점들과 아쉬운 점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국선언은 이 ‘시국’에서 그것이 담고 있는 커다란 방향성, 맥락, 유효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현재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후 이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 또한 담고 있는 것이며, 이후 이 ‘시국’을 극복하고 변화시켜나가는 사람들의 실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의 내용이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내용에서 청소년의 정치적 중립성 또는 비정치성에 대한 관념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이러한 관념이 시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우리는 아직 어려 거짓 속에서 진실을 보기 힘들지만” “우리는 이념이 뭔지 모릅니다. 아직 정치적 색을 띠지도 못한 그저 백색의 종이일 뿐입니다.” 등의 표현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청소년 스스로의 비정치성, 또는 정치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면, 이는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제한해왔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입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이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정치․사회에 대한 참여 의지를 표현하지 않고 청소년들의 정치․사회 참여를 이 ‘시국’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하는 뉘앙스를 보인다면, 이는 오히려 반민주, 반인권적인 생각입니다. 청소년시국선언은 청소년들의 정치성을 적극적으로 선언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나와 있듯이, “청소년들은 이 사회나 민주주의와 유리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덧붙여서, 민주주의든 자유주의든 인권이든 권위주의든 복지국가든 그것은 분명히 이념이며 정치입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비정치성으로 포장한다면 이는 오히려 왜곡이 될 것이며 앞으로의 문제 해결과 사회․정치의 발전을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의 내용에서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교육 속에 갇혀 있는 많은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앞서 1번항에서 언급한, 청소년들의 정치․사회에 대한 참여를 이 ‘시국’의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하는 뉘앙스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과 직면하고 있기에 무거운 학업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우리를 학교에서 뛰쳐나와 이 길에서 민주주의를 걱정하게 만들었습니까?” “그저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그걸로 되는 줄 알았던” “우리는 지식의 요람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에 따라”와 같은 표현들에서 우리는 청소년들은 학교에 있어야 하며 공부(학업)를 하고 있는 게 정상적이라는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교과서가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리 훌륭한 텍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과서가 성전(bible)이라도 되는 듯이 청소년시국선언문 전체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시정되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이 주신 밥을 먹고 건강하게 학교를 다니면” 같은 표현에서는 빈곤 청소년이나 한부모 또는 무부모 청소년에 대한 고려가 없음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굳이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입시경쟁과 폭력이 판치는 학교에서 뛰쳐나올 수 있으며, 굳이 지금처럼 절차적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은 ‘무거운 학업의 짐’(특히 입시경쟁, 취업경쟁 때문에 강요받는 학업)을 잠시가 아니라 영영 내려놓고 집어치울 수도 있습니다. 굳이 정부가 7, 80년대 권위주의 독재정부로 회귀하지 않더라도 청소년들은 정치․사회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으며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도 있고 거리로 나올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가르친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더 많은 권리와 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있고 저항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조차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과 수사적 표현은 이해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발상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재 청소년시국선언문의 이러한 표현들이 청소년들의 활동을 예외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일상적인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을 규제하는 것을 지지하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문에 보이는 이명박 정부 이전의 사회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합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민주주의’ 가 무너졌음을 느끼고” “한때 자유의 공간으로 인식되던 인터넷 세상은, 이제 잡혀갈까 무서워 쓰고 싶은 글도 못 쓰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공정한 것만을 보여주고 들려주던 언론이, 우리의 소리를 대변해주던 언론이 ‘미디어법 개정’이라는 명목 아래 서서히 장악당하고 있습니다.” 등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인민(people)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지배,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일치, 주권재민 등의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온전한 이념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대로 작동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권리침해신고(블라인드), 인터넷 실명제 등으로 인하여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축소되던 것은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우리에게 공정한 것만을 보여주고 들려주지도 않았고, 우리의 소리를 대변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면 ‘이명박만 물러나면’ ‘한나라당만 없으면’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언론이 개혁되고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거라는 잘못된 진단을 낳을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많은 인권을 위해서는 ‘이명박만 물러나면’ ‘한나라당만 없으면’을 넘어선 활동과 실천, 대안들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미화하고 있는 청소년시국선언문 첫 번째 문단에 대해서도 우려를 느낍니다. 과연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일까요? 어째서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철거민들의 죽음, 한 화물노동자의 죽음은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애도하고, 그 과정에 있었던 부당하고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것들을 마땅히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 다른 죽음들과는 다른 특별한 죽음이며, 마치 민주주의의 붕괴를 상징하는 단 하나의 죽음인 것처럼 표현되는 것에는 그 자체로 비민주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말한 ‘사람 사는 세상’은, 대통령이든 철거민이든 노동자든 청소년이든 모두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죽음을 애도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기에 했던 정치가 과연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정치였는지에 대한 고려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과 민주주의 문제를 연관지을 때 그 내용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 마지막으로 우리는 무엇이 ‘시국’이고 무엇은 ‘시국’이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전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시국선언문이라면 당연히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집회시위의 자유 침해, 언론의 자유 탄압,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은 ‘시국’이면서, 강화되는 입시경쟁 속에서 늘어만 가는 청소년들의 죽음, 일제고사나 자사고를 비롯한 지역간 학교간 학생간 경쟁 강화, 그린마일리지나 강제야자 등 학생인권 문제, 청소년노동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최저임금 삭감,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는 청소년들의 증가 등등 청소년들의 문제는 ‘시국’이 되지 못하는 걸까요?

  우리는 청소년시국선언이라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겪는 ‘시국’의 문제들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의 현실, 청소년들의 ‘시국’을 반영하지 못한 선언이 과연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으로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대표적으로는 학생인권과 교육의 문제를 비롯하여,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요구사항으로 청소년시국선언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6/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청소년인권과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같은 의견은 어쩌면 숫자상으로는 소수의 의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청소년시국선언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다수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 수정의견에 동의하는 단체들과 사람들은 이와 같은 수정 의견이 받아들여질 경우 청소년시국선언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럼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청소년모임, 청소년 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활동모임 푸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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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나는꿈2009. 6. 9. 12:50


길 그 끝에 서서
글 박현욱
곡 지민주
편곡 마구리밴드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걸어온 거야
언제나 길의 끝에 서있던 사람들이
우리가 온 길을 만들어 온 것처럼

눈 앞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의 시간이 온 거야
먼저 간 사람들의 빛을 따라 온 것처럼
이제 우리가 스스로 빛이 될 차례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 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 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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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한국의 정치 상황,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에서 기본적인 가치들의 상황이
1980년대 수준으로 후퇴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2009년이며, 사회상황도 다르고, 우리의 대응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 연달아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6월 10일에 모이자고 외치는 걸 보면
사람들은 2009년의 문제를 1980년대식으로 풀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
새로운 길을 만들기보다는 원래 있던 길들을 다시 찾아서 가려는 것 같지만,
그건 결국은 뒤로 돌아가는 일이다.

난 차라리 길의 끝에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을 하겠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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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을 보실 지 모르겠으나 글 제목에 '지민경'님 아니라 '지민주'입니다.

    2015.03.30 22:21 [ ADDR : EDIT/ DEL : REPLY ]
  2. 노래를 잘 들었어요.^0^ 언제 들어도 좋네요

    2015.03.30 22:22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6. 5. 14:25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김진숙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분 후 “노무현 전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뒤편, 부엉이 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 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이야긴 한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 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1/3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FTA를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 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 주익은 600여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짤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짤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조정 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짤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짤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출처] http://bsnodong.tistory.com/30






추신 : 이제보니까 프레시안에도 이 글이 올라갔네요.

덧글들은 좀 압박스러운 게 많습니다.

제가 살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김진숙 씨의 글이 여러 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제가 산 시대(2000년대 이후, 특히 운동을 시작하고 정치에 관심을 가졌던 2004년 이후)에서 노무현 씨는 '변절'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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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5. 28. 20:45


원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는 더 글을 안 쓰려고 했다. 어차피 넘쳐나는 게 그 이야기들이라서, 내가 굳이 말을 더 보태야 하나 싶었던 거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 마디 정도는 더 해야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노무현 씨 생전의 정책이나 태도들이 어떠했나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여기저기 들어가서 뒤적거려보면 많이 보이니까, 굳이 내가 첨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행위들이 내재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텐(YTN아님;)뉴스의 전유경 아나운서께서
"
야구장에서 치어리더가 없어졌다, 왜 방송국에서 예능을 안 하느냐, 왜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가 무채색이냐고 불만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옆에 계시다면… 그냥 싸다구 한대를 날려주시던지 입에 재갈을 물려주시기 바란다"라고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거기다가 그걸 놓고 "개념있다"라거나 "속시원하다"라고 말하는 '대세'를 접하고 특히 심각성을 느꼈다;; -_-;
관련 경향신문 기사

(아, 근데 치어리더는 원래 좀 없어졌으면 하긴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며 애도/추모하자는 것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왜 이렇게 전국적으로, 장기간 호들갑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건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수준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온갖 문화공연들이 다 취소되고 연기되고 있고, 대학교 축제들도 연기되고 있으며, 퀴어퍼레이드도 연기되었다.
그걸 연기하거나 취소한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타당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일요일에 예능 프로그램 하나 방송했다가 몰매를 맞은 방송사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비난하고 싶은 건 "그런 걸 하면 안 된다", "전 대통령이 죽었는데 그런 걸 하는 건 무개념하다"라는 식으로 흘러가는 이 '대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대통령'을 매우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영웅주의적 정치 지형(정확히는 엘리트-대의제)의 폐해로 보인다.

엘리트주의-영웅주의에서 비롯되는 감정-행위를 '인간에 대한 예의'로 포장하지 마시라, 제발.
나는 지금의 이 추모 분위기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 두렵다. '국민주의'가 두렵다. 폭력성이 두렵다.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민중의 왕이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며 슬퍼했다고 한다.

민중의 왕은 당연히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왕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중의 왕이건, 귀족의 왕이건, 독재의 왕이건, 왕은 죽어야 한다.
귀족들의 왕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더라도, 종국에는 민중의 왕조차도 사라져야 하는 게 민주주의다.
홍세화 씨의 표현을 빌린다면, 왕을 단두대에 세우고 처형한 후에야 이루어지는 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오히려 노무현은 죽음으로써 민중의 왕으로 등극한 것 같다. 이건 뭐..)





노무현 씨도 생전에 대통령이란 한낱 직책에 지나지 않으며 대통령의 권력, 중요성, 위상을 줄이고 낮춰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 씨를 민중의 왕이니, 국부니, 영웅이니, 영원한 대통령이니 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노무현 씨의 정치를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비판에 대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덕이 있고 훌륭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추앙받는 것이라고 반론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훌륭하고 덕이 있는 명사 정도였다면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축제나 공연(이나 투쟁)을 죄다 연기하고, 전국민이 일주일 동안 추모하며 사는 게 당연하다고, 그런 거에 토 다는 놈은 "무개념"하고 "싸다구를 날리거나 입에 재갈을 물릴" 놈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지금의 현상들은, 특정한 소수의 인물들이 강조되고 상징이 되는 엘리트적 대의제의 폐해라는 혐의를 피해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진정한 의미에서 민중 또는 인민이 주인이 되며 평등한 민주주의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훌륭하고 인망있는 인물의 죽음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겠지만, 이런 식의 '국민이라면 당연히 슬퍼해야지' 같은 류의 반응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거기다가 노무현이 그토록 부각되는 것 자체도 '인물'로 '정치'를 표상하고 대신하는 엘리트 대의제이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
민주주의 같지 않은 민주주의(대의제 엘리트정치)의 정치 현실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할 뿐이다.
(사실 "킹메이커"니 뭐니 하는 말도 그렇다.)



무직인꿈틀이가 쓴 글에서 일부를 인용하면서 글을 마친다.


"
단지, '망자에 대한 예의'에 대해선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 전직 대통령 외에도 노동자, 철거민, 청소년도 같이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꿈꾸던 '사람사는 세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직 최고지도자도, 일개 시민도 같이 추모받을 수 있다면 그의 '이상'에 좀 더 가까워진 사회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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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c

    민중의 왕이라는 표현의 왕이 말씀하신 그런 왕은 아닐텐데요;;

    2009.05.28 22:19 [ ADDR : EDIT/ DEL : REPLY ]
    • 하지만 상징적으로 '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서, 노무현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냐 하는 건 드러나는 법이지요.
      "민중의 벗"이라고 했으면 또 다르겠습니다만.

      2009.05.29 02:08 신고 [ ADDR : EDIT/ DEL ]
  3. 거참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자나요. 조금 시간을 되돌리면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때처럼 국민들이 반응하셨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네요.

    영웅설이라고요? 여보세요 부동산 한탕주의에 물들인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바로 이명박입니다. 진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없다면 이렇게 거리로도 나오지 않습니다.

    일부 의혹설도 있고 살아생전 좋은 모습이 장례기간에 쏟아져 나오는게 영웅주의로 보이십니까? 이명박이나 노무현이나 대통령 당선되었을때, 그 당선까지의 과정이 보기좋게 언론에서 뿌려지면 이것또한 영웅주의입니까?

    사람들은 생각하는대로 움직입니다. 그것이 글쓴님이 말한 민주주의이구요 물론 글쓴님처럼 왜이렇게 나라가 호들갑을 떠냐 라고 말할수 있는것도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여서 그런겁니다.

    애도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그걸 호들갑이라고 표현하시다니요. 한나라의 지도자가 돌아가셨습니다. 장기간 국민이 애도하는것을 호들갑이라고 표현하시다니.. 생각에 자유와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건 고인을 욕보이는 행위가 아니라 애도를 하시는 많은 분들을 욕보이는것 같습니다.

    덧붙여 일부 정치인이나 지식인의 정도가 지나친 발언은 그냥 무시하는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글쓴님의 생각도 소요사태가 발생할지 모를것 같다라는 생각을 가진 정부와 큰 시각차가 없는것 같구요.

    2009.05.28 23:41 [ ADDR : EDIT/ DEL : REPLY ]
    • 살아 생전에 좋았던 모습들이 부각되는 게 영웅주의라는 게 아닙니다 끙. -_-;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표현되느냐를 말하는 겁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민주주의는 아니죠. 뭐 이 이야기는 사회구조와 개인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저는, 그, "한나라의 지도자"라고 해서 굉장히 특별한 존재라고 하는 생각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냐고 하는 겁니다.
      네 애도하는 몇몇 분들을 욕보이려고 쓴 글 맞습니다.

      저는 소요사태는 차라리 일어나길 바라기도 합니다만, 제가 지적하는 '정치적 위험성'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문제이며 정부에서 보는 것과 관점은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 가까우니까요.

      2009.05.29 02:11 신고 [ ADDR : EDIT/ DEL ]
  4. nccn

    그럼 김수환 추기경도 왕이었나보죠?

    2009.05.29 00:18 [ ADDR : EDIT/ DEL : REPLY ]
    •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반응이 어땠는지 자세히 살피진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온 국민, 온 미디어가 모두 추모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던 것 같지도 않고, 김수환 추기경을 '왕'적 존재로 형상화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꼼꼼하게 살피진 않았으니까요,

      2009.05.29 02:12 신고 [ ADDR : EDIT/ DEL ]
  5. 누구도 등떠밀려 추모하는 사람 없습니다. 자발적인거죠. 노 전 대통령께서 왕으로 떠받들으라고 한적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씀하는 거죠. 하다못해 내일이 아니라고 해도 바로 옆집에서 초상났을 때 풍악을 울리며 잔치하는건 예의가 아닙니다. 이 국민장이 100일동안 하는것도 아니고 이번 주말이면 끝날텐데...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이야기 하기 쉬워질 겁니다.

    2009.05.29 00: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옆집의 비유는 슬퍼하고 계신분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바로 옆에 집에 계신분이 슬퍼할수 있고 내 식구중에 누군가가 슬퍼할 수 있는거니까요.
      이미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에서 정치적인 합의 자체가 안되고 있는게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의 원인이 지금의 정부와 야당에 있다는 대다수의 견해도 그렇고, 정부와 야당의 추모객들에 대한 반응 또한 그렇습니다.
      여기부터는 정말 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지금의 많은 추모객들은 아버지처럼 존경하던분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겁니다. 호상에는 누구나 웃으면서 조문할 수 있지만 악상에는 그럴 수 없는게 우리나라의 상가집 문화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2009.05.29 02:24 신고 [ ADDR : EDIT/ DEL ]
    • 양보, 이런 차원의 문제도 아니고, 예능 프로 안 한다고 짜증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걸 막는/욕하는 논리, 인식, 생각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함의에 위험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네, 당연히 자발적인 겁니다. 그런데 자발적인 행동들도 결국 다 사회적인 겁니다.
      저는 왜 사람들의 자발성이 이런 식으로 드러나는지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겁니다. -_-

      그리고 옆집에서 초상났을 때 잔치하냐, 이런 문제로 곧장 비유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봉하마을이 전국민의 옆집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논리나 근거, 프레임도 다릅니다.

      2009.05.29 02:31 신고 [ ADDR : EDIT/ DEL ]
    • 리잔느

      공현의 논점은, 현재의 자유위임으로 대표되는 엘리트적 정치, 대의제, 대통령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존재하며, 이러한 문제가 이 사건을 통해서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인 듯 싶네요.
      고 노 전 대통령 추모하지 말자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요?

      자발적인 행동 자체를 금지해야한다 뭐 이런 논점은 아니고, 그냥,
      사회 전반적으로 모두들 슬퍼해야하고, 애도해야하고, 좋은 면만 보아야 한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왜 다들 그런 '당위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한 사람이 그러면 애도하는 것이지만 여러 사람이(심지어 고 노 전 대통령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그 언론들조차도!) 그렇게 행동하면 사회 현상이 됩니다. 공현은 사회학도이거든요 ^^

      2009.05.29 02:56 [ ADDR : EDIT/ DEL ]
    • 그러니까, 제 말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그 슬픔의 성격은 또 무엇인지를 반성적으로 묻고 있는 겁니다. 슬퍼하고 있다는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뒤에 뭘 해야 하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요.

      리잔느 / -_-; 엘리트 정치의 핵심 또는 대표적 제도가 '자유위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음.

      2009.05.29 17:01 신고 [ ADDR : EDIT/ DEL ]
    • 음..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는 건, 슬프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개개인의 슬픔이 모여서 그 슬픔이 서로 공유되고 있다고 설명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저또한 많이 슬픕니다. 그래도 대한민국 역사이래 가장 뜻있는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했던 분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까요.

      첫번째 질문에 대한 제 답은... 많은 사람이 슬퍼서 개인이 슬퍼지는게 아니고 개인의 슬픔이 모여서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게 되어버린거라고 봅니다.

      2009.05.29 17:53 신고 [ ADDR : EDIT/ DEL ]
  6. 리잔느

    무튼 공현이 현재의 자유위임으로 대표되는 엘리트적 정치, 대의제, 대통령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겠음. 나도 자유위임과 기속위임 관련 논문이나 좀 더 찾아서 읽어봄... ㅠ ㅋ

    2009.05.29 02:43 [ ADDR : EDIT/ DEL : REPLY ]
  7. 리잔느

    사실 대통령제는 왕권을 본따서 만든 측면이 없잖아 있음.
    군주주권제에서 민주주권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과도적으로 발전한 내각제는 군주주권제와 양립 가능한 정부형태이고,
    신생국은 혈연적 순수성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군주주권제를 택하기 어려웠으며, 따라서 국민적 지지와 민주적 대표성을 가지는 한 사람을 그 국가의 대표로 내세우게 되었고, 그 최초의 신생국이 바로 미국이었고;
    이러한 대통령제의 역사적 유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으려나.

    그냥 내 생각에는 지금 이 현상의 원인은... 이것 저것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 같은데, 다른 건 모르겠다쳐도 언론이 싹 태도 바꿔서 용비어천가식 기사 써대는 거 보면 조금 웃기기도 함. 노 정부 시절 언론법 개정할 때 난리쳤던 게 누군데. 무죄추정의 원칙을 어긴 건 누구길래 말이지.

    헌법 제 66조를 본다던가 하면 대통령이 마치 특별한 존재처럼 여겨질 수 있으나, 사실 그 조항의 유래를 따지고 들어가면 대통령은 삼권에 우선하는 권력을 가지는 게 아니라, 행정부에 속해 있는 게 맞음(아울러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논의도 전개될 수 있으나 이것에 대해서는 패스하고). 대통령이 국가원수이고 국가를 대표한다는 라는 조항은 우리나라가 내각제일 때 추가된거니까, 이 당시 실세는 내각이었고 대통령은 상징이었을 뿐인데, 그게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유일무이한 권력을 가지는 1인 권력기관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되게 되었고, 지금도 학계에서는 이게 다수였나...? 다수였는지는 잘 기억은 안나지만.

    2009.05.29 02:48 [ ADDR : EDIT/ DEL : REPLY ]
    • 언론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야 하나, 라는 복잡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어쨌건 대통령이 한국에서 '왕'적인 위치라는 건 이미 대부분 인지하고 있는 사실인 것 같고, 다만 다들 그걸 인정하고 들어가는 분위기라서 거기에 의문을 던지는 거지.

      2009.05.29 17:03 신고 [ ADDR : EDIT/ DEL ]
  8. 장담컨대

    네. 좋은 논리입니다.

    그런데,
    타인과 다른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느끼시는군요.
    다른 생각을 한다는 자각.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나는 깨어있어' 라는 '우월감'.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언젠가 이 글 쓰신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2009.05.29 03:32 [ ADDR : EDIT/ DEL : REPLY ]
    • 지나가다

      동감입니다. 어느블로그에 있던 글을 옮겨 봅니다.

      대형사건이 터졌을때 어설픈 양비론을 내세우며 쿨한척 하는 놈들이 꼭 있다.
      괜히 평소에 쓰지도 않던 페이쏘스의 과잉이니 이성적 사고를 들먹이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중립적' 인게 아니라 강단이 부족한 것을 숨기려는 구차한 변명이다.

      2009.05.29 12:08 [ ADDR : EDIT/ DEL ]
    • 제 행동의 동기에 타인과 다른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 존재의 유니크함을 확인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그러한 동기가 주된 동기이거나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나가다 / 이건 어설픈 양비론도 아니고, 쿨한 척도 아닙니다. 명확하게,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적 입장(뭐 아나키즘이라고 분류하든 사회주의라고 평가하든 상관 없습니다.)에 서서 현재 상황의 한 요소를 짚고 있는 것입니다.

      2009.05.29 17:06 신고 [ ADDR : EDIT/ DEL ]
  9. 2MB 를 제가 뽑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선거에서 다수가 그를 선택했으므로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장이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노무현 대동령의 죽음을 애도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수가 그리 생각함으로서 국민장을 진행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국민장의 범위나 절차, 결정 같은게 법으로 정해진게 괜한게 아닐듯 합니다. 법이라는 것은 일단은 기본적으로 본인이 원하지 않던 원하던 지키는게 원칙일테니까요.

    글의 취지는 이해를 하나 우리 민족의 죽음에 대한 정서를 생각 해 볼 때 이런 문제 제기는 49제 이후에 하신 것이 더 진지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2009.05.29 05:36 [ ADDR : EDIT/ DEL : REPLY ]
    • 법률로서의 국민장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_-;;
      사회 현상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지요.
      단지 국가에서 국민장으로 진행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과, 다수의 사람들이 그 흐름에 매우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합류하는 건 다른 거죠;

      2009.05.29 17:07 신고 [ ADDR : EDIT/ DEL ]
  10. 답답!!

    대통령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언제부터 대통령이 특별하지않은 적이 있었나요?
    난 대통령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뭐가 잘못됬다는건지 알수없는데....
    (아무나 할수 있는일이 아니기에.....)
    이런 시점에서 이런글을 올리는 님의 사고방식이 아주 특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군요
    CF의 한 장면이 생각나네요" 때와 장소를 가릴줄 알아야...."
    굳이 편을 나눌생각은 없지만... 님도 보수논객의 대열.............. 그들의 인기몰이(?)에 한몫하자는 건가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며 사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의 정서와 생각이 자유로이 하나로 모여진다는걸
    공감대라고 하죠. 공감하기 싫으면 그냥 그렇게 사세요!!!!
    괜한 문제의식 만들어 삐딱선타고 무인도로 들어가지말구... (가던지, 말던지 알바 아니지만)

    2009.05.29 07:23 [ ADDR : EDIT/ DEL : REPLY ]
    • 리잔느

      지나가던 사람입니다만.
      하지만 저는 지금의 '정치적 정지' 상태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당장 6월 국회에서 처리될 미디어법 문제도 있고, 신영철 대법관 사건도 지금 묻혔잖아요.
      공현은 보수 논객도 아니고요, 사실 대통령제는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측면에서는 군주주권제와 닮은 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국가잖아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건 경계해야 할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재임시절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언론들이 용비어천가 부르는 걸 보면 사실 조금 웃기기도 합니다.

      2009.05.29 09:53 [ ADDR : EDIT/ DEL ]
    • 그러니까 그, 대통령이 특별한 존재라는 전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지요.
      대통령은 일단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이지만, 그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고 제왕화 되어 있다는 비판이 여러 차례 있어왔습니다. 뭐 그런 비판 자체도 넘어서 직접 민주주의, 민중적인 민주주의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없어지거나 그 권한을 크게 축소/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리고, 제 입장은 오히려 분류한다면 아나키-사회주의이거나 급진적 민주주의의 입장이지, 보수논객의 대열로 들어갈 성질은 아닌 듯합니다.

      저도 똑같이 말씀드려서 제 글에 공감하기 싫으시면 덧글 달지 말고 그냥 그렇게 사시라고 말씀드리면 기분 좋으실까요? ^^;;

      2009.05.29 17:10 신고 [ ADDR : EDIT/ DEL ]
  11. 답답!!

    슬퍼서 슬프다고 표현하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할까요?
    슬픔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하는건가요?
    어떤대답을 원하는거죠?

    2009.05.29 07:28 [ ADDR : EDIT/ DEL : REPLY ]
    • 슬픔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원인과 이유를 추적하고 매커니즘을 밝혀내는 게 학문이 하는 일입니다. 개인의 심리라면 심리학이 질문하고 추적하고 비판할 것이고, 사회적인 현상이라면 사회학 같은 게 질문하고 추적하고 비판하겠죠.
      슬픔에도, 어떤 표현에도 당연히 이유와 맥락이 있습니다.

      노무현 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개개인들에게 당신들은 왜 슬퍼하냐고 묻는 건 아닙니다.
      노무현 씨의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 발언, 오가는 언설 같은 것들을 놓고서 그 맥락을 보는 것뿐이지요.

      2009.05.29 17:12 신고 [ ADDR : EDIT/ DEL ]
  12.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지지하던 분이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게 가슴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 그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세력과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흐르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과도하게 Up 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위에 김수환 추기경과 비교하신 분이 있던데... 김수환 추기경때와의 차이점이 바로 저런 열성 지지자들의 존재 유무일 것입니다. .. 전 두 분의 죽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러나 저러나.. 오늘로 장례절차가 어느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이니.. . .. 괜시리 착찹합니다.

    2009.05.29 08:0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쩝 저는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본인의 뜻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네 지나치게 흘러가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뭐가 어떤 방향으로 지나치다고 판단하는진 사람의 입장마다 다르겠지만요.

      2009.05.29 17:14 신고 [ ADDR : EDIT/ DEL ]
  13. 리잔느

    그런데 지금 6월 국회 열리고나서부터 처리될 미디어법이라던가 여러가지 현안이 있는데
    완전히 정치적인 정지 상태인 건 좀... 아니다 싶음.
    신영철 대법관 문제도 묻혔고.
    미디어법 개정 관련 쟁점토론회(사실 토론회라기보다는... 발표회 같은 분위기) 어제 했었고, 난 갔다왔는데,
    다음 아고라에 주최측에서 두 명의 발제자의 발제문 일부 올려둔 것 사람들이 제대로 안 읽더라.
    김보라미 변호사한테만 찬성표 몰아주고.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지금 분위기가 이럼.
    하지만 난 윗 분 중에서 49제까지 정치적 발언 삼가해주십시오~ 하신 분의 의견은 동의 못하겠음.
    우리가 숨쉬고 사는 법을 논의하는 게 정치인데
    거기에서 감시의 눈길을 떼지 않으면 자유위임이라 다들 지맘대로 하는데 ㅇㅋ? ㅋ

    2009.05.29 09:46 [ ADDR : EDIT/ DEL : REPLY ]
  14. 답답!!

    리잔느님... 그냥 지나가던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
    마치 공현님과 아무관계도 아닌냥 하면서 편을 드는데...
    공현 블로그에 가보니 글도 많이 올리고 무쟈게 친한 사이같더만....
    오늘로 국민장이 끝납니다. 오늘 하루만 참자는데 그게 그렇게 힘듭니까?
    6월 국회문제 오늘 하루만 더 참으면 뭐가 달라집니까?
    아님 오늘 이야기하면 국회가 달라지는게 있습니까?
    그리고 공현님!!! 보수논객.... 칭한부분은 취소하겠습니다. 논객이라고 할 필요성조차 못느꼈네요
    그저 아직 갈길이 먼 학생정도...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더만..... 앞으로 공부 더 많이하라하세요. 둘이 같이하면 되겠네요
    정치공부, 인생공부, 정서를 읽는 공부, 사람과 소통하는 공부,차가운 이성도 필요하지만 따뜻한 감성도 느낄줄아는 공부....
    난 최소한 이런공부는 공현님보다는 더 많이했기에 적어봤네요!!!!!

    2009.05.29 10:53 [ ADDR : EDIT/ DEL : REPLY ]
    • 리잔느님의 덧글이 제 편을 든 거 같진 않은데 말이죠 ㅎㅎ 오히려 정치적 입장은 상당히 다른 편이고 제가 먼저 태클을 거는 편인데. (아 그리고 "무쟈게 친한" 사이까진 아닙니다. 그냥 지인이지요.)

      하루만 참자는데 뭐가 힘들어서 그러냐, 이런 차원의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의 행위, 오가는 이야기들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적 맥락들, 그 배경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 전제들, 그런 것들 중에 제가 반대하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_-;;;

      ///

      그리고 저는 스스로 학생보다는 청소년인권활동가가 본업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제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저의 발언의 가치를 폄하하시는 말은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요.
      저는 최소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부는 답답님보다 많이 한 것 같긴 합니다.

      2009.05.29 17:16 신고 [ ADDR : EDIT/ DEL ]
    • 리잔느

      - ㅎ. 공현과 저의 정치적 입장은 상당히 상이합니다.
      공현은 아나키적이라면 전 오히려 국가의 존재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랄까요.
      공현은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한다면 오히려 전 대의제를 주장합니다.
      - 인터넷상에서의 인맥 관계가 현실에서의 인맥 관계도 그 "정도"로 그러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개연성은 있을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지요.
      온라인 게임에서 서로 친하다고 해서 현실에서 친할 가능성은 있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듯이 말이죠.
      - 개인적으로는, 서울역 분향소와 덕수궁 분향소를 다녀왔으니 고인에 대한 예의는 나름 차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도하는 것의 뒷면에는,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전 지금의 '정치적 정지' 상태를 회의적으로 보는 겁니다.

      2009.05.29 18:38 [ ADDR : EDIT/ DEL ]
  15. 공헌님의 공헌님의 글을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일단,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약간 헷갈리기도 합니다.
    요즘, 2MB나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면서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새삼스럽게 고민이 들었습니다.

    대의민주주의라는 것은 일단, 자신이 직접 모든 현안에 대해 참여하기보다 자신의 대표자를 자신의 손으로 뽑아 간접적으로 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행하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엘리트-대의제의 폐해는 견제를 해야하겠지요.

    하지만..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어느정도 엘리트-대의제를 포함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인물을 통해서(대리해서) 나타나는 것 자체가 대의민주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정치적 의사참여 혹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스스로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선거 또한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집회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에서는 허용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거를 통해 다 말하지 못한 것을 집회라는 형식을 통해 "스스로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적하신 것처럼 모든 현안에 대해 모든 국민이 각자의 의견을 제대로 내지 않고 1명을 통한 "엘리트주의-영웅주의적인 대의제 정치체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에서 배웠듯이 일방적인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민족주의, 국민주의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까지 두리뭉실하게 비판하는 것은 수긍이 가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미래의 일부 역사가들은 '공헌'님이 예민하게 반발하신 것처럼 현재의 시대를 평가하면서.. '노무현: 엘리트주의-영웅주의적인 대의제 정치체제를 극명하게 보여준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편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한 명의 국민으로서 저는 요즘의 노무현에 대한 국민적인 애도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쇠고기 파동을 통한 촛불집회 → 대규모 집회를 통한 의사전달 →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한계의 체감적(본능적) 인식 → 분노와 한계에 대한 무기력증 및 현실외면 노력 → 노무현에 대한 과거회귀 → 노무현 자살 → 슬픔 → 노무현에 대한 과거로의 본격적인 회귀 → 과거 한계에 대한 분노의 재인식 → 전국민적인 애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공헌님께서 말씀하신 오버스러울 정도의 한 정치인에 대한 애도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애도 또한 국민들이 현재 상황에서 답답한 점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특히나 대의민주주의 상황에서 직접적인 의사전달 수단인 집회가 막혀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엘리트주의-영웅주의적 대의민주체계로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만의 해석을 떠나서..
    대한민국 많은 국민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공헌'님 처럼 저 또한 진심으로 슬픕니다.

    그분의 모든 노력이 과거의 '노탓' 놀이를 떠나서 정당히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2009.05.29 14: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저도 그건 대의민주제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의민주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구요.
      이 글은 단편적인 생각이 맞습니다. 현재 국면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총체적으로 서술한 게 아니라, 현재의 상황 중에서 어느 한 맥락만을 끄집어 내어서 그 부분에 대해 글을 쓴 거지요. 그리고 무슨 학술논문을 쓰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이 자기의 입장에서 자기가 주목한 맥락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건 써주신 사람들의 반응이 커진 매커니즘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노무현에 대한 영웅시, 신격화-왕격화, 이런 맥락이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다는 지적입니다.

      2009.05.29 17:18 신고 [ ADDR : EDIT/ DEL ]
  16. 한승수 총리 조차도 '권위주의 타파'가 고인의 훌륭한 업적이라고 추도사에서 이야기하더군요.
    정작 고인의 지지자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긴 합니다만(응?)

    2009.05.30 23:15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 말입니다 킁;
      어쩌면 대의제 정치에서 '지지자' '팬'들에게 요구하는 역할에 그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2009.06.01 15:26 신고 [ ADDR : EDIT/ DEL ]
  17. 이글이 보일지 모르겠군요. 걸어가는꿈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민주주의에 상징이 된거죠.
    모두가 민주주의에 참여한 것 뿐이고요.
    역사는 나중에 판단해 줄거에요. ^^;.. 그냥 민주주의에요. 아무것도 없어요.

    2009.05.31 06:18 [ ADDR : EDIT/ DEL : REPLY ]
    • 곤양이

      참여자체는 나쁘지 안은데..흐..그게 다른 이야기를 못하게하는 폭력성이 많이 보였던게 문제였죠..어느 초등학생분이 자기가 원하는 TV프로그램이 안해서 기분나쁘다고 자기 블로그에 올렸다가..신원공개되고 난리 아니었죠..흐
      그 외에도 다른 이야기들이 묻히고 왜 지금 그런걸 하느냐라는 반응들이 날라왔었죠

      2009.05.31 16:07 [ ADDR : EDIT/ DEL ]
    • ^^

      곤양이 / 그 몰지각한 '일부'로 고인을 추모한 '전부'를 평가하는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2009.05.31 17:20 [ ADDR : EDIT/ DEL ]
    • 민주주의의 내용은 막연한 느낌만으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들과 논의 속에서만 채워질 수 있지요.
      제가 제기한 문제도 민주주의의 한 쟁점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

      ^^님, 제 글이든 곤양이님 글이든, 추모한 '전부'를 평가한 맥락은 딱히 보이지 않는데요? 제가 보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님이 글을 넘겨짚는 것인지?
      그리고 저는 그런 식으로 욕을 하건 공격을 하건, 그런 폭력성이 과연 '몰지각한 일부'라는 말로 다른 맥락들과 단절될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럽긴 합니다.

      2009.06.01 05:05 신고 [ ADDR : EDIT/ DEL ]
    • ^^

      글을 좀 더 한정된 대상을 향하여 쓰셨어야지요.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행위들이 내재하고 있는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지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모 행위 자체를 대상으로 쓰신 글이라고 밖에는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고인을 추모하러 다녀간 사람이 약 500만이라고 합니다.

      고인 관련 기사의 댓글 작성자를 모두 합해봐야 5만 명도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많이 잡아 5만이라고 쳐봅시다. 1/100이군요.

      얼마 전 벌어진 죽봉 사건, 전체 참여자 중 죽봉을 휘두른 사람은 5%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고 박종태씨의 죽음은 상당히 유감스럽습니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공현 님의 글과,

      '죽창 시위로 나라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으니 우려스럽다'라며, 전체 시위에 대응한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이, 동격으로 보이는군요.:)

      그리고, 아무래도 '대세'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 듯 하여 적어드립니다.

      대세 :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결정적인 형세.

      곤양이님 댓글의 경우,

      처음 댓글(anonymous님의 댓글)을 보시면,

      '모두가 참여한 것'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부의 반응으로 전체를 호도하는,

      전형적인 조중동식 물타기형 댓글로 판단했는데,

      지금 보니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2009.06.01 15:27 [ ADDR : EDIT/ DEL ]
  18. 아, 이건 뭐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긴 합니다만, 그제 정도까지 제 블로그에 '노무현'으로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들이 100여명이 되는데, 금-토 중에 포털에서 검색하면 이 글이 첫 페이지에 노출이 되더군요. 즉 노무현으로 검색하고 이글을 읽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그 100여 명 중에서 덧글 남긴 사람 중에 제가 쓴 글의 취지에 동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유일하게 동감한다는 덧글 남기신 분은 제 글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신 듯? 그외에 슷캇님 등은 검색으로 들어온 건 아니니까...) 뭐 대표성 없는 표본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경험적 근거는 되어줄 것 같군요 ㅎㅎ

    2009.06.01 16: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9. ^^

    우선 이전 글(고인 관련)에서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고인이 진보를 '표방'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인물이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고인은 스스로의 정책 노선을 명확하게 규정한 바 없습니다.

    뭐, 그의 정책중 일부가 진보적인 가치를(굳이 나누자면) 이야기하기는 했군요.

    또 FTA 문제 하나를 가지고 신자유주의를 '주도'했다고 표현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 같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사람이 건강 보험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이, 보다 많이 누릴 수 있도록 확대하고, 복지 예산을 증액하지는 않을겁니다.

    또한 고인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묻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입니다.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김영삼 정부 시절 일어난 IMF로 인해 기업들이 부채 비율에 대한 방어적 조치들을 취한 것과,

    김대중 정부 시절 일어난 카드대란으로 중산층이 대량 붕괴한 사건 - 사실 카드 대란 자체도 IMF의 산물이지만 - 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전부 떠넘겨 받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결과는 암담했지만 정책적 의도 자체는 비정규직을 위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고인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묻는 것은, '참여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는 의견이 됩니다. 부동산 관련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인이 고 허세욱씨에게 했다는 말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데, 혹 링크를 걸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고인이 분신한 어떤 사람에게 좋지 못한 말을 했다는 루머가 돌았던 사실은 있습니다만,

    그것이 고 허세욱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군요.
    (루머는 사실 무근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번 글로 넘어갑니다.

    <대통령은 살아서 자기 정치에 대해 평가받고, 욕 먹고, 아니면 지지를 받고, 그런 것들을 받아내면서 살아야 한다.

    그게 한 사회의 대통령으로 수많은 정치의 최고책임자로 있었던 사람이 져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공현님의 이전 글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고 계시는군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하는 삶의 형태가 강제되어야 할 정도로 말이지요.:)

    이 주장은 현재 글 및 댓글의 요점과 상당히 상충한다고 보여집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대세'표현 관련해서도, 과잉 일반화의 오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댓글 및 기사의 논조에서 느낀 것을 '대세'라고 평가하신다면, 글쎄요?

    한나라당이 속칭 '알바'를 풀어 인터넷 여론조작을 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공현님이 언급하신,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집단'이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공현님이 걸어두신 링크나 다른 곳의, 고인과 관련된 기사의 댓글 및 추천수를 모두 합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는다는 사실,

    그나마도 공현님이 지적하신 문제가 담긴 기사 및 댓글은 더더욱 적다는 사실을 아셔야겠습니다.

    실제적으로 이번 사건 관련 행사에 참여해본 결과 느껴졌던 것은,

    '정치 보복에 대한 연민과 '인간' 노무현에 대한 재해석, 민주주의의 위기'정도였습니다.

    이 느낌이 틀릴 수도 있을겁니다.

    해서, 저는 '대세' 따위의 오만한 표현은 가급적 지양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대세'의 스승격인 '유행'이 만들어지는 과정(의상과 관련하여)은,

    1. 유명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모인다.

    2. 이번 해의 유행을 어떻게 선도할 것인지 정한다.

    3. 광고를 한다.

    4. 광고 시청자들이 '선동'당한다.

    이상입니다.)

    <민중의 감정은 왜 노무현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대리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을까요?

    스스로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하는 것보다는,

    왜 노무현이라는 한 정치인-인물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걸까요?

    민중의 정, 울분은 왜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영웅시함으로써 나타나는 걸까요?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하고 발언는 것 자체가 엘리트주의-영웅주의적인 대의제 정치체제를 내면화 했기 때문 아닐까요?>

    라고도 주장하셨군요.

    자칭 '진보'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 '열사'라는 단어의 사용 용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입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하신 고 허세욱씨의 유족들은, 자칭 '진보'들이 고 허세욱씨를 '이용'하는 것이 싫어,

    조용히 장례를 치르고 싶어하셨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나도 내 삶의 일부인 내 죽음은 가능하다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씨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어떤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부분을 보면 '정치적인 의도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정치적인 의도로 죽음을 이용하는 일부 세력이(혹은 그에 선동된 일부가),

    고인의 죽음 역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인 것이고,

    그것이 '민중이 자신들의 감정을 노무현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대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민중의 정, 울분이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영웅시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보고 '대세'인양 비판하시는 거라면, 공현님 역시 그 선동에 놀아난 것일 뿐입니다.

    <노무현에 대한 영웅시, 신격화-왕격화, 이런 맥락이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다는 지적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주장 말이지요.:)

    솔직히 언급할 가치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이긴 합니다만,

    '노무현을 민중이 영웅시한다'는 주장을 마치 '사실'처럼 적어 놓으셨는데,

    이건 조중동 기사를 보고 '노무현 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또, 스스로 이런 '정치적인 의도의 죽음'을 원하시는 것처럼 적어놓으셨군요.

    이런 경우를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판다'고 표현하면 딱이겠습니다.:)

    민중 전체의 감정과 기분을 함부로 판단, 일원화하는 것은 상당히 '오만한' 행동입니다.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정치적이었다고 폄하하는 것은 '더러운' 행동이고요.

    본인이 정치적인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여,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평가하는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을겁니다.

    고인이 남긴 유서를 한 번 정독해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슬픔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원인과 이유를 추적하고 매커니즘을 밝혀내는 게 학문이 하는 일입니다.

    개인의 심리라면 심리학이 질문하고 추적하고 비판할 것이고, 사회적인 현상이라면 사회학 같은 게 질문하고 추적하고 비판하겠죠.

    슬픔에도, 어떤 표현에도 당연히 이유와 맥락이 있습니다.>

    예, 밝혀내는 것이 학문이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진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할겁니다.

    단순히 '나는 이 현상을 이렇게 판단하는데, 이 판단을 근거로 하면 이렇게 비판할 수도 있겠군'정도의 논의를 할 수 있을 뿐,

    '이건 이거고, 그러므로 이부분이 잘못되었다'식의 주장은,

    누구의 표현 따라 '오만의 극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인터넷에 떠도는 혈액형별 성격분류법과 동급일 뿐이지요.


    * '대세'는 '민중의 왕' 노무현 전 대통령인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0%에서 요지 부동이군요.:)



    * 자발적인 행동들도 결국 다 사회적인 것이라는 주장과,

    '영원한 대통령'이라는 표현에 대한 비판은 웃음으로 남기고 이만 줄입니다.

    2009.06.03 16:40 [ ADDR : EDIT/ DEL : REPLY ]
    • 곤양이

      FTA문제만 가지고 노무현을 신자유주의라고 하는건 아니죠. 그외에 많은 정책들이있었죠..그리고 스스로 좌파신자유주의자라고 했잖아요.ㅋ

      그리고 도대체 중도라는게 뭔가요? 뚜렷한 기준점이 없는 상황에서 중도라는게 존재할까요?

      2009.05.31 16:03 [ ADDR : EDIT/ DEL ]
    • 졸려서, 다른 부분에 대한 답은 나중에 달고,
      몇가지에 대해서만 답니다.
      우선, 허세욱 씨에 대한 발언이 아니라, 2003년 이세남 씨와 그외 몇 분이 분신하셨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한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 등의 발언에 대한 언급이었습니다. 그런 평가가 제 글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맥락에서 언급한 거라서 사실 확인을 꼼꼼히 안 하고 썼습니다. 정정했습니다. 어쨌건 간에 사실관계가 잘못된 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허세욱 씨의 가족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허세욱 씨 본인의 태도나 의지를 오히려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리 중요하게 생각진 않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해서는
      한미FTA 추진(도 충분히 큰 사안입니다만) 외에도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이라는 정책 기조와,(아이슬란드와 같은 금융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했지요.)
      2년마다 대량 해고 사태를 만들어낼 비정규직법안 처리(비정규직에 대해 노무현 정권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조금 지나친 처사입니다. 정책적으로, 그다지 해결하려고 노력한 게 많지 않거든요. 그게 의도 자체가 비정규직을 위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 파병 (전쟁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일부지요.)
      서울시교육감에 공정택 씨를 중용하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된 고교선택제, 자사고 확대, 내신등급제 등등 교육에서의 입시경쟁 강화도 충분히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있는 정책입니다. 자립형 사립고 같은 문제도 김대중 때부터 계승해서 계속 끌고 간 정책이지요.


      ++ 그리고, 본문을 읽어보시면 알 것 같은데, 저는 '대중' 또는 '민중' 전체의 흐름이나 의견을 판단하거나, 저의 비판의 대상을 '대중'이나 '민중' 일반으로 일반화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답덧글에서 민중이란 표현을 쓴 것도 그 덧글을 쓰신 분이 먼저 민중이란 표현을 쓴 덧글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쓴 것 뿐이지요.(거기서의 민중은, 아마 그분이 생각하는 민중이 있겠지요.)
      '대세'라는 표현을 쓴 것도, '대세'에 굳이 따옴표를 쳐가면서 그것에 대해 나름 상대화를 시도한 것입니다만,
      전유경 아나운서의 발언에 대한 언론보도 내용 및 블로그스피어의 포스트, 덧글들 등을 비롯하여,
      제가 다니는(저는 서울 전역 + 경기지역 일부를 꽤 폭 넓게 다니는 편인데) 지역 곳곳에서 보이는 추모 현수막,
      추모집회에서의 발언 내용과 분위기 등을 종합하여 그러한 생각들이 분명히 있고,
      또 그런 표현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런 표현들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관찰에서
      적어도 인터넷이나 추모집회 등에서 드러나는 추세 상으로는 따옴표 대세, 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겠다 싶어서 나온 표현입니다.
      신뢰도 있는 양적인 조사를 통해서 분석한 것은 아니니 학술적 의미는 부족하다거나 지나친 일반화라고 지적하셔도 아주 틀린 이야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애초에 어느 정도 유의미한,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집단적인 담론-감정이라는 판단 정도에서 쓴 글이니 뭐 특별히 드릴 말은 없습니다.
      (그리고 약간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사실 전국민의 5%만 되어도 200~300만명이고, 그정도 숫자면 충분히 넘치도록 유의미한 숫자는 아닐까 하긴 합니다만.)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쯤에...

      2009.06.01 05:03 신고 [ ADDR : EDIT/ DEL ]
    • # 먼저 '대세' 및 '추모하는 행위들에 내재된'에 대해 쓰면-
      일단 제가 '대세'라는 말을 그렇게 사전적 의미로 사용한 건 아닙니다. 대세에 굳이 따옴표를 쳐가면서 쓴 건, 요즘에 인터넷에서 흔히 통용되는 '대세'라는 말을 가져왔다는 의미가 있는데, 뭐 글에서 굳이 그부분에 대해 설명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겠네요. 제가 부주의하게 어휘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 글의 맥락에서 '대세'는, 인터넷이나 드러난 정치적 공간(광장, 언론, 집회, 거리 등등...)에서 상당히 유의미한 규모로 발화되고 유통되는 표현, 사고방식이면서, 사람들에게 소극적/적극적 동의(그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소극적 형태이든,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형태이든.)를 얻어내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제가 '대세'라고 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웅시/왕격화/신격화하는 그자체가 아니라,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특별한 지위의 것으로 강조하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해, 또는 그 죽음을 추모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하는 것을 자연스레 비난하는, 그리고 그 비난을 당연시하는 것 자체입니다.(이런 경향은 위에 제가 언급한 의미에서 충분히 '대세'입니다.) 그런 '대세' 속에서 저는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왕격화/신격화/영웅시 등의 맥락들을 읽어냈다는 말인 거죠.


      그리고 제가 '추모하는 행위들 속에 내재된'이라고 한건, 추모하는 행위들 전부를 지칭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뭐 어쨌건 저는 추모하는 행위들과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신격화/왕격화/영웅시 및 간혹 나타나는 공격성과 비난들이, 그렇게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현들을 보거나 하면 섞여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고, 대놓고 섞여 있지 않은 경우에도, '인간 노무현'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신격화/왕격화/영웅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단절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그 둘은 단절되지 않을 겁니다.


      (집회 시위에 관해서도, 저는 '5%의 폭력시위'를 전체 집회-시위와 분리시켜가면서 문제적인 소수로 몰아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 전체나 집회의 성격, 분위기와, 집회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따로 분리시켜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집회-시위가 그 성격상 다수의 '위력'을 보이는 것이고, 또 그 집회-시위를 부당하게 봉쇄하고 억압하는 힘이 있는 상황에서, 그 폭력을 집회와 그 집회를 둘러싼 전체의 맥락에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요. 차라리 폭력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 제가 이명박의 발언이 문제라고 느끼는 건, 5%의 행위를 크게 부풀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5%건 1%건 얼마든지 영향은 미칠 수 있습니다. 저는 '죽창시위'는 나라 이미지를 훼손하고 '폭력진압'은 법과 질서를 위한 거라는 사고방식과 가치관 자체가 문제라고 느끼는 겁니다.)

      2009.06.01 15:52 신고 [ ADDR : EDIT/ DEL ]
    • # 책임의 문제에 대해
      전에 쓴 글과 지금 쓴 글은 분명히 맥락이 다릅니다. 쓴 시점도 다르고 쓴 상황도 다르고 쓴 마음도 다르지요. 단순히 사고의 방향성만으로 놓고 보면 모순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여하간 둘 다 제 마음이니까, 정당화해야겠네요.
      노무현 씨가 전대통령이었다는 건 현실이고, 바로 전 정권이었던 만큼, 저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 뒷정리 등이 만족스러울 만큼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거기에는 이명박 정권의 몰지각한 태도와 행동들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정치체제가 어때야 하고 민주주의가 어때야 하냐고 생각하는 것과 상관 없이, 어쨌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이 아주 클 때 대통령을 한 사람이고,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많이 축소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대통령으로서 많은 일을 자신의 책임과 감독하에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노무현 씨에게 전대통령으로서의 자기 정치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노무현 씨에게 자신이 과거에 했던 정치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면서도, 노무현 씨가 (특히 이명박과 대비되면서) 메시아처럼 되거나 왕격화/신격화/영웅시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있습니다.

      2009.06.01 15:58 신고 [ ADDR : EDIT/ DEL ]
    • #정치적 죽음과 죽음을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대해
      노무현 씨의 죽음은 충분히 정치적입니다. 유서에 뭐라고 썼건 말이지요. 노무현 씨를 정말로 '바보'이거나 '멍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노무현 씨가 죽으면서 자기가 죽은 이후의 상황을 한 번도 상상해보거나 그려보지 않았을 거라고 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고려나 생각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면, 이 죽음은 본인의 의도의 차원에서도 정치적입니다.

      물론,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노무현 씨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매우 정치적으로 작동하고 작용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정치적이라는 건 현재 '정치권'으로 불리는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니라, 공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전혀 그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죽음조차도 비정치적이란 점에선 정치적이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만, "정치적"에 대한 그런 말놀음은 생략하지요.

      그리고 저는 노무현 씨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집단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어떻게 이용하냐가 문제이긴 하지만_) 또 그런 집단이 그렇게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 감정을 노무현을 대리하여 표현하는 걸로 보이는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노무현 씨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특별히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주도나 의도에 따라 일어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미조직된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뭐 제가 상황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느끼고 본 거니까, 역시 양적인 증거를 제시하긴 어렵습니담나, 간단히 말해서 봉하마을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전국에 분향소가 시민들에 의해 차려지고 분향소에 자원봉사자들이 늘고, 이런 것들이 특정 집단의 개입이나 언론의 보도 등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2009.06.01 16:06 신고 [ ADDR : EDIT/ DEL ]
    • ^^

      우선, 고 허세욱씨 관련한 답변부터 드리겠습니다.

      제 3자들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유족들은 고 허세욱씨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이용당하고 있다는 판단을 했었고,

      활동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자발적 행동이었다'고 가볍게 단정지을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 세뇌에 의한 행동을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습니다만.)



      신자유주의 정책 관련하여,

      조금 당황스러운 몇 가지를 먼저 언급하겠습니다.


      * 이라크 파병 : '네오콘'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면 신자유주의자가 되나요?

      이라크 전쟁은 '정치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문제이지,

      '경제'의 논리로 바라볼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전쟁이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는 논리는 이곳에서 처음 듣는군요.

      네오콘(신보수주의 - 정치)과 신자유주의(경제)의 개념부터 확립하실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물론, 상당히 애매한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니까요.)

      사실 이걸 학문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굳이 나누자면 미국 보수주의의 '승자독식'사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당시 정부가 처했던 상황이나, 명목적(사실 실질적이었지만.) 파병 목적에 대한 언급은,

      문제에서 벗어나는 내용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하지만, 자이툰 부대의 파병 목적과 성과를 보신다면 더더욱 신자유주의와는 관련이 없음을 아시게 될겁니다.)


      * 고교선택제, 내신등급제, 자사고 확대 : 고교선택제가 신자유주의적 발상이라면,

      북한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신자유주의적 교육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 되겠군요;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그로 인해 학교의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은 별개의 문제이지요.
      (학교의 호불호가 갈리는 문제와 신자유주의가 관계가 있다는 생각도 안 들지만.)

      평준화의 대명사인 프랑스의 대학 조차도, 학생에게 선택권을 줍니다.
      (조건이 '거주 도시 이내'라는 점에서 한국의 고교선택제와 동일합니다.)

      그리고 애초 고교 선택제의 취지는, '강남 8학군'을 개방하고자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또, 내신 등급제는 교내 경쟁을 부추길 수는 있겠지만,

      학교 밖에서의 경쟁은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음이 입증된 바 있습니다.
      (당시 최상위권 대학 입학생들의 성적 분포를 보면...)

      대한민국에서 '학벌'이란 대학 타이틀을 말하는데,

      그 '학벌'을 물흐리게 한 이 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이라면, 글쎄요?
      (더 나은, 더 좋은 정책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별개로 쳐야겠지요.)

      마지막으로 자사고 문제는 현 정부의 자사고 문제와 혼동하시면 곤란합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자사고를 서울에 설립을 하지 못했습니다.

      말을 돌려가며 막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유는, 서울에 편중되어있는 외고 - 과고 - 강남 8학군 등의 교육 수준을 지닌 학교를,

      지방에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요.

      '자사고' 자체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자사고'는 학비 상한액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

      저소득층 자녀에 대한 장학금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언어적인 의미의 '자사고'와 동일시 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한국 자사고의 재정 현황을 아신다면...
      (대부분의 학교가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요. 그런데 일반 사립고의 경우 재정이 흑자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법안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우선, 비정규직법안의 뼈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근로자 100인 이상 기업 (이전에는 300인 이상인 기업)에 적용한다.

      2. 2년간 근무할 경우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해당 법안이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조항으로 인해 비정규직 채용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와,

      두번째 조항으로 인해 2년 이하의 근무자에 대한 대량 해고가 예상된다는 것이 그것이죠.


      입법 취지를 살펴보면,

      '비정규직보호 입법은 비정규직의 남용과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된 법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1. 현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 임금, 기타 근로조건 등에서 불합리한 차별이 있어도 이를 규제할 수 없으나,

      차별금지제도가 도입되면 비정규직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게 됨.

      2. 아울러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임금, 계약기간, 근로시간 등 중요한 근로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도록 하여,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이 더욱 보호되도록 하였슴.

      3. 종전에는 근로계약을 얼마든지 반복 갱신하여 기간제 근로자를 사실상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나,

      최장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간주토록 하여,

      기간제 근로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였슴.

      4. 파견근로와 관련해서는 파견기간초과, 대상업무위반, 무허가 파견 등 모든 불법파견의 경우에 사용사업주에게 직접 고용의무를 부과하였고,

      사용사업주에 대한 처벌도 강화(1년→3년이하 징역)함.

      5. 사용자가 2년간 근로한 숙련된 근로자를 교체할 경우 생산성 저하, 신규채용에 따른 교육 훈련 등 노무관리비용 증가가 예상되고,

      이번에 명문화된 차별금지제도가 강력히 시행되면 인건비 절감효과가 크지 않게 되어, 다른 기간제 근로자로 교체할 유인도 줄어들 것임.

      등을 들고 있습니다.


      입법 취지 및 내용에 비정규직의 이익에 반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욕을 하려거든, 헛점을 노리고 악용한 기업에게 해야겠지요.

      재탕이지만, 이건 정말 조중동이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개그이지 말입니다.

      당시 참여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과열 규제책이 무려 500여 개였지요.

      무능과 악함은 별개로 치는 것이 이성적인 사고 아니겠습니까.



      대세 관련해서는,

      뭐, 변명을 하시니, 딱히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근거의 출처인 인터넷과 일부 오프라인, 블로그 방문자 100명...뭐, 좋습니다.

      제가 단 댓글 중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관련한 내용이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요지부동인 이유를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추모집회에 참여한 절반 이상의 사람들과 비슷한 특성을 보일겁니다.


      또한, <제가 '추모하는 행위들 속에 내재된'이라고 한건, 추모하는 행위들 전부를 지칭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뭐 어쨌건 저는 추모하는 행위들과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신격화/왕격화/영웅시 및 간혹 나타나는 공격성과 비난들이,

      그렇게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현들을 보거나 하면 섞여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고,

      대놓고 섞여 있지 않은 경우에도,

      '인간 노무현'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신격화/왕격화/영웅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단절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그 둘은 단절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계속 하시려거든, 앞에 주석을 달아놓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친구되는 녀석이, 작년 촛불집회 당시, 앞에서 선동하는 무리들이 전경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고, 이곳저곳 터지고, 잡혀갔던 일이 있습니다.

      뒤에 서 있었을 뿐인데, 폭력시위 가담자가 되더군요.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전체의 1%정도였습니다.

      뭐, 끝내 뒤에 서있는 대다수의 억울함을 외면하시겠다면야...^^;

      <노무현 씨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특별히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주도나 의도에 따라 일어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미조직된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뭐 제가 상황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느끼고 본 거니까, 역시 양적인 증거를 제시하긴 어렵습니다만,

      간단히 말해서 봉하마을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전국에 분향소가 시민들에 의해 차려지고 분향소에 자원봉사자들이 늘고,

      이런 것들이 특정 집단의 개입이나 언론의 보도 등이 늘어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렇지요, 거의 맞을 뻔 하셨군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데 조직되어 있지 않은 미조직된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면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미조직된 사람들의 성향을 일체화시켜 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인터넷 댓글이나, 기사, 일부 오프라인에서 '대세'를 뽑아내는 것은 무리일겁니다.

      결국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주도나 의도에 의해 왜곡된 기사나 그것에 선동된 댓글,

      그것을 근거로 삼아 글을 쓰고 계신 것이 되겠지요.

      실제로, 소위 말하는 선동세력의 프레임과,

      공현님이 비판하는 프레임이,

      이상할 만큼 닮았군요.



      책임 관련해서, 그렇게까지 '정당화'하고 싶으시다면,

      뭐,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노무현 씨에게 자신이 과거에 했던 정치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면서도,

      노무현 씨가 (특히 이명박과 대비되면서) 메시아처럼 되거나 왕격화/신격화/영웅시되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부분을 잘 정리해서 올리신 것 보니,

      본인 스스로도 어느정도 잘못 된 것임을 느낀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정치적 죽음 관련하여,

      작가가 A라는 의미를 담아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후에 교육당국이 만든 교과서는 B라는 의미를 담은 작품으로 가르치고 있군요.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이러한 행태 역시,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안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의도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작위적 해석은 좀 아닌 것 같군요?

      특히 '죽음'을 대상으로 하는 해석이라면,

      적어도 고인에 대한 '예의' 정도는 지켜 주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농민들의 땅을 축내고 싶지 않으니,

      묘 하나 남기지 말라'고 유언했던 고 호치민씨를,

      박제해서 웅장한 박물관에 모셔두는 것과 같은 급의 행위 아니겠습니까.



      *블로그 방문자 100명 발언은,
      (그중 댓글 단 사람은 20여 명이군요.)

      어제보다 더 큰 웃음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저는 링크를 타고 들어왔을 뿐입니다. 늅늅.

      2009.06.01 19:00 [ ADDR : EDIT/ DEL ]
    • ^^

      곤양이 / FTA 이외에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친 사례가 있다면 제시해주시지요.:)

      저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라고 규정할 만한 다른 사례를 본 기억이 없군요.

      그리고 바로 그 '좌파신자유주의'가 '중도'라고 불리는 집단의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나마도 사실이 아니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8G3aUTKoCsU&feature=related

      뚜렷한 기준점을 못 잡으신다면 공부가 덜 되신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2009.06.03 16:41 [ ADDR : EDIT/ DEL ]
    • 덧글을 이제야 봤습니다만, 뒤늦게 짧게라도 답니다.

      1. 이라크전 파병 : 전쟁행위 그 자체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라고 1차적으로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지지층들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결정한 것은 다분히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뭐 노무현식 자주국방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이라크 파병 자체가 한미FTA를 논하든 자동차산업을 논하든 신자유주의적인 노무현 정부의 세계화, 금융정책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의 수혜자"라고 한 박기범 씨의 말이 생각나네요.'네오콘'이 일으킨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인 게 아니라요.
      그리고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이 사실상 정치적이라기보단 경제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건 워프로피티어(전쟁수혜자) 논의 같은 걸 보시면 될 텐데, 그런 맥락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움직임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내 정책에서의 신자유주의라고 평가하긴 어렵더라도요.

      2. 교육정책 : 푸코가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경쟁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어쩌구저쩌구 한 게 생각나는군요. 한국적 상황에서 고교선택제의 도입이 사실상 고교서열화로 연결되고 고교입시경쟁의 전면화가 될 거라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된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한 충분한 보완이나 수정 없이 고교선택제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신자유주의적입니다. 한국은 직업에서건 학벌 문제에서건 충분한 평준화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지요.
      내신등급제의 경우도, 그건 '학교밖에서의 경쟁 완화'라기보다는 그 이전에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대학 입학의 전제조건이 된 성적 기준들을 흔든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쟁'이라는 것 자체가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는 것을 1차적 기준으로 해야 할 텐데, 학교 안에서의 경쟁을 부추길 수는 있지만 학교 밖 경쟁은 완화시킬 수 있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모순입니다. 학교 밖에서의 '수능 성적'(이든 '출신 지역'이든 '출신 계급'이든)에 따른 격차는 약간 완화시킬 수 있다 란 식으로 말할 순 있을지 몰라도요.
      현 정부의 자사고도 등록금 상한선은 있고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금도 강제되어 있습니다. ㅎㅎ 자사고 정책은 결국 평준화에 대한 비판에 떠밀려서 일정 부분 서열화를 허용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지방'에도 특목고 수준의 학교들을 세워서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한다는 '환상의 평등'을 내세워서요. 저도 자사고 1기 출신이라서 자사고의 교육 상황이든 재정 상황이든 잘- 압니다만. 자사고와 특목고 등의 수가 늘어나는 게 중학교 수준에서의 고교 입시 경쟁을 전면화시키고, 자사고 사이에서의 서열화로 인해 자사고 학생들에게 추가적인 경쟁의 압박을 준다는 점에서 이 정책은 충분히 경쟁 강화적입니다. 그리고 장학금 정책은 보편적인 무상교육정책에 비해 문제점이 많습니다.(그리고 참여정부 시절 자사고는 시범운영 단계였고 그 이후에 확대될 길을 다 열어놓은 정책이었습니다.)

      3. 비정규직법안 : 비정규직법안이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입법취지만을 기준으로 해서 그 취지를 선의로 해석하려고만 하는 건 굉장히 난감하게 들립니다. 일단 그러한 비정규직법안 통과가 이후 자본가들에 의한 몇몇 사업장들의 대량 해고 사태로 번졌고, 또 지금에 들어서 비정규직들이 뭐 70%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있네 어쩌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것도 안정적인 '정규직'이라기보다는 그냥 '무기계약직'이라고 해야 할 노동조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비정규직법안의 틈새와 문제점에 대해서 논의 단계에서부터 원내의 민주노동당이든 원내의 학자들과 노동운동이든 숱하게 지적하고 반대하며 대안(최소한의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이나 정규직 전환 기금에서부터)을 제시했는데도 그 대안을 수용해서 수정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입법한 건,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그런 행태가 의도적이라고 해야 할지 무능하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비판에 귀를 막는 건 악의입니까 무능입니까? 아니면 어중간한 생색내기입니까?

      4. 폭력집회든, 추모 분위기든, 네, 사건과 현상 전반을 보려고 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항상 그런 억울함을 무시할 겁니다. 가령 집회현장에서 그 폭력이 순수하게 우발적이고 개인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고 상식적이라고 느끼신다면 그렇게 하셔도 딱히 말리진 않겠습니다만, 그런 식의 관점이 가지는 맹점들이 너무 많아서요.
      다만, 저와 같은 관점에서는 그 집회에서 폭력이 있었다고 해서 그 집회를 '폭력집회'로 규정하고 경찰이 진압해야 할 대상, 도덕적으로 잘못된 존재로 규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는 굳이 저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에서는 '억울'해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그 친구분도.

      5. 기사가 왜곡되었거나 덧글이 선동되었다, 라고 한 마디로 단정할 수 있는 ^^님도 참 무섭게 보입니다. 제가 역으로 그것이 선동되었거나 왜곡되었다는 구체적 증거를 요구하시면 뭐라 하실 수 있겠습니까?

      6. 그리고 책임에 대한 논의와 왕적 지위에 대한 논의가 반대되는 것처럼 보여도, 저는 그다지 반대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잘못된 것임을 느껴서 쓴 게 아니구요.

      7.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차원에서,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하지 않고 권위 없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 노무현 대통령을 왕으로 추앙하는 분위기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정당해보이긴 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죽으면서 내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 라고 했던가요? 모호한 유서의 말들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바보'라고 주장하시려는 게 아니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하면서 자살 이후의 상황들에 대해 이런저런 예측들을 해봤을 게 당연하다는 말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노무현 대통령의 '의도'를 해석할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긴 한 건지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 블로그 100명 발언은 웃으시라고 한 말이니까 웃으시는 게 맞습니다.

      2009.09.04 02:38 신고 [ ADDR : EDIT/ DEL ]
  20.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잘못된 지도자를 끌어내는 권리를 가진것은 우리 국민들이다!
    권위에 비굴해지지말고 실천투쟁으로 뜨거운 맛을 보여주자!

    2009.12.17 01:00 [ ADDR : EDIT/ DEL : REPLY ]
  21. 계삼선생님도 이 때 전교조 신문에 공현님께서 쓰신 글과 비슷한 점이 조금 있는 글을 쓰셨다가 협박 전화까지 받으셨어요 -_-;; 이 글을 읽고 제가 느낀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건 오해만 불러 일으킬 것 같으네요. 살면서 제대로 된 공부를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제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일이 굉장히 힘듭니다; 공현님께서 쓰신 글의 취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2010.03.17 23:40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나가는꿈2009. 5. 25. 00:40


어제 아침에 노무현이 죽었다는 문자가 와서, '오늘 만우절이었나'하는 생각을 했는데,
곧 켜본 컴퓨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자살... 그런 내용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뭐 노무현을 애도하냐 마냐 이런 이야기는 접어두겠다.
나는 여하간 이명박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 죽음을 애도할 뜻이 있고,
그보다야 좀 많이 나은 사람인 노무현 대통령을 애도하는 데 대해서 별 거부감은 없다.

그리고 그가 뭐 진보를 표방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인물이었다거나, 비정규직법안이나 한미FTA나... 이세남 열사 등에게 한 말들이나... 뭐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며 노무현 개인을 비판하며 날을 세울 의도도 없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의 초석을 쌓았다... 검찰-대통령 유착 관계를 끊고 무소불위의 왕 같던 대통령직을 낮춤으로써 민주주의에 기여했다... (근데 국가보안법은 제발 좀 폐지해주지;; 하는 아쉬운생각은 든다. 열우당과 노무현.) 이런 긍정성들을 부각시키고 싶지도 않다.
노무현 씨의 죽음에 있어서는,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소식들을 들으면서 처음에 든 생각이 "짜증"이라는 것은 고백해야겠다.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죽으면 안 된다.

대통령은 살아서 자기 정치에 대해 평가받고, 욕 먹고, 아니면 지지를 받고, 그런 것들을 받아내면서 살아야 한다.

그게 한 사회의 대통령으로 수많은 정치의 최고책임자로 있었던 사람이 져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 한창 이런저런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나서 또 그 이후에 두고두고 평가받으며 공과를 논의당해야 할 대통령이,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솔직히 이 땅에 속한 한 정치적 인민인 나의 입장에선 짜증나는 일이다. (슬픔과 짜증이 동시에;;)

아무리 표적수사니 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느니 하더라도 (비리가 없더라도 도덕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건 노무현 대통령 본인도 인정한 일이다.)
노무현 씨는 결국 이렇게 자살을 택함으로써 평가받기보다는 추모받고 동정받고 기려지는 대통령으로 남겠지. 그게 대세겠지...

이 죽음은 전 대통령의 자살이 아니고 그저 노무현 씨의 자살이라고 해야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정치인 노무현'의 죽음이거나.
노무현 씨가 자기 목숨을 끊음으로써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수사를 받으면서 힘들어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나,
거기에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죽음을 통해서 수사를 종결시키는 것이든 정치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든
자기에 대한 평가나 국민적 감정을 움직이는 것이든...


여하간에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죽으면 안 되었다.
삐딱하고 매정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나는 노무현 씨의 죽음을 마냥 애도하기가 어렵다.
우선 안타까워하고 애도할 수는 있고, 그러고 있지만...

적어도 한 국가 정치의 최고책임자라면, 그런 사람이 되었다면, 더 많은 각오와 책임감이 있길 바라는데.
아, 물론 뒤집어서 말하면 노무현 개인을 그렇게 죽음으로까지 몰아붙인 표적수사와 검찰과 이명박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노무현 개인과 노무현 대통령 둘의 구별이랄까 그런 문제는 계속 제기되어온 거긴 하지만...






p.s.노무현 씨의 자살로 다른 것들이 묻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약간 하면서.

p.s.2. 사실은 나도 내 삶의 일부인 내 죽음은 가능하다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씨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되고 싶은 어떤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p.s.3. 화물연대 박종태 열사가 죽었을 땐 그리도 무덤덤하게 보도하던 언론들이... 속보를 쏟아내고... 추모행렬이 이어진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인지도와 박종태 열사에 대한 인지도는 천양지차이긴 하지만... 참 슬프다. 한 해에도 몇십, 100명이 넘게 입시경쟁과 성소수자 차별, 학교의 폭력 등등의 이유로 죽음을 택하는 청소년들을 생각해도.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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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마음을 그대로 정리한듯 말씀들을 써주셨네요.
    특히 박종태 화물노동자의 죽음에 무관심했던 언론에 대한 말씀은 극공감합니다. 근데, 그 무관심이 언론만의 문제가 아님이 더욱 더 서글프게 합니다.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알려졌지만, 그의 죽음을 알아보려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죠.
    이렇게 냉정하던 사람들이 노무현이란 유명인의 죽음에는 180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수없습니다. 군중심리라고 밖에 볼수가 없어요. 특히 연애인의 죽음에 대해선 거의 광적이죠.

    2009.05.25 01: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뭐 아무래도 인지도 차원에서 급이 다르니까... 별 수 없다고 생각은 합니다. 대통령과 일개 노동자는... 그러나 노무현 씨의 죽음에 대해서 "인간이라면" 애도하고 슬퍼하라고 하는 분들이 내세우는 휴머니즘이... 과연 얼마나 평등한 휴머니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묻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구요.

      2009.05.25 18:14 신고 [ ADDR : EDIT/ DEL ]
  2. 기묘

    노무현의 죽음으로 상당히 감정적으로 변해버린 사람으로써, 대선당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권영길을 선택했던 사람이지만, 정치적인 의도가 어떻고 저떻고를 떠나 노무현이라는 정치가는 서민들이 표상화했던 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져있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서 박종태 열사 등 다른 자살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역시나 마이너한 죽음에 대해 관심조차 안갖는건 조중동이고, 역시 노무현의 죽음또한 그 실체보다는 대충 얘기하고 넘어가는 것도 조중동이죠. 하도 참담한 기분에 한잔 걸친터라 감정적으로 격양되어 있는데, 굳이 이런 까칠한 글을 올리시는 이유도 이해가 안되네요. 과연 본인이 자살이라는 걸 선택한다면 정치적 의도라던가 그런 걸 우선 생각하셨을 지, 자살이라는 행동이 그런 이성적 판단하에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여러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고 슬퍼하는 어떤 공인들의 죽음에 대해 과연 군중심리라고 쉽게 치부하지 않느냐는 비판에는 어찌 생각하실 지, 혹은 그게 군중심리라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적 동의를 얻어낸다는 것이 과연 작은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건 어떠신지요. 님도 꽤 까칠하신 것 같은데, 저또한 앞서서 말씀 드린 것처럼 상당히 감정적인 상황이고, 사실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진보/혹은 보수적인 해석들도 왕 짜증이 나는 터라 까칠하게 답할수 밖에 없네요.

    2009.05.25 02:18 [ ADDR : EDIT/ DEL : REPLY ]
  3. 기묘

    결혼식을 가면 인사치레라도 신부에게 "어머 ,몰라보게 예쁘네" 라던가, 그녀와의 즐거운 추억담을 얘기하는 것이(내가 여자다 보니, 신부친구인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예를 듭니다. 하필이면 오늘도 친구 결혼식을 다녀오는 터라)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참, 한사람이 죽었는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짜증"이라니, 그러면서 정치적 의도는 운운하고, 노무현의 공적의 여부를 가리지 않겠다는 건 또 모순 아닙니까?

    2009.05.25 02:26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는 제 입장이 그렇게 뭐 '진보적'이나 '보수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뭐.
      네 저는 자살이 상당히 이성적인 판단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정과 이성이 그렇게 분리된다고 생각하지 않기도 하지만, 자살의 동력은 감정이 많이 차지하더라도 그 행동과 선택에는 여러 가지 예측과 이성적 판단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결심하면서 죽은 이후의 상황들을 상상하고 그려보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결혼식 비유에 대해서는, 저는 결혼식에 가서 기분 안 좋고 지루해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게 보통이라서 뭐라 답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적으로 결혼 제도에 비판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이라는 선택을 마냥 비난하는 건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뭐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까칠하게 말하기도 하죠. 저는 '인지상정'을 벗어난 사람인가 보네요;;

      2009.05.25 18:17 신고 [ ADDR : EDIT/ DEL ]
    • <죽음의 정치적 의도>와 <살아 있을 때의 정치적 공적여부>를 가리지 않겠다는 말은 전혀 모순이 아닙니다.
      제가 쓴 이 글은 노무현 씨가 살아생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대통령, 어떤 정치인이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노무현 씨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추모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른 맥락입니다. 어떻게 산 사람이건 추모할 수도 애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노무현 씨 정도의 삶이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애도와 추모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노무현 씨의 삶의 일부 중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쉽게 끄덕일 수 없다는 겁니다. 이 죽음에서 일종의 무책임 또는 정치적 회피 같은 게 읽히기 때문에요... 살아서 온갖 좋은 일 안 좋은 일과 부딪치고 자기에 대한 평가와 반성, 격려 등과 부딪쳐가며, 그렇게 자기의 정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길 바랬던 기대와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최소한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들은 전두환 노태우처럼 무개념하게 과거를 쌩까지도 않고, 이승만처럼 해외로 도망가지도 않고... 그렇게 살길 바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선택한 죽음이라는 행위에서, 대한민국 사회에 사는 한 인민으로서 짜증을 느끼는 겁니다.

      2009.05.25 18:21 신고 [ ADDR : EDIT/ DEL ]
  4. ㄹㄹㄹ

    사람이 죽었는데 "짜증" 이 납니까?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었다고 "짜증"내는 인간은 인간말종이라고 불리웁니다.

    2009.09.19 09:31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안타까운 동시에, 짜증이 났습니다.
      일단 제가 친하게 알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게 진정성 있는 슬픔이 일지는 않았지만요.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잘 죽었네"라고 하며 묘를 파헤치네 어쩌네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해 짜증이 일었다는 것 자체가 '인간 말종'이라고 평가할 근거인 것 같진 않습니다. (전 애초에 죽음이 그렇게까지 특별한 사건이인지도, 철학적 차원에서는 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노무현 씨 생전에 말한 "죽음은 안타깝지만 이제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를 패러디하자면,
      -> "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한때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이런 식의 죽음에는 짜증이 난다 / 바람직하지 않다" 이지요.

      2009.09.19 11:47 신고 [ ADDR : EDIT/ DEL ]

지나가는꿈2008. 9. 2. 01:45

예전에 들었던 생각인데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리는 건 처음이네요.

이 생각은 아주 간단한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현재 서울지하철 7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은 무인화되어 있습니다.
무인화되어 있다는 말은, 매표소나 카드충전을 하기 위한 창구에 사람이 없다는 거죠.

이 말은, U패스, T머니 기타 등등 교통카드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기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런데 아마 아시겠지만, 서울 지하철의 교통카드 자동 충전기에는 거스름돈 기능이 없습니다.



어느, 다른 지역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서울로 올라온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수중에 돈이 1만원짜리 하나 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먼 거리를 왔다갔다 하느라 길에 돈을 뿌렸거든요.)

계좌 잔고도 없었고, 뭐 있었다고 하더라도 수수료 1000원 정도를 물어가며 출금을 하는 것도 좀 억울한 노릇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 교통카드(U패스)에는 돈이 500원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여서, 결정적으로, 저는 저녁을 사먹어야 했습니다. (두둥)



결국 저는 지하철역까지 내려왔다가,
1만원짜리를 잔돈으로 바꾸기 위해 위에 올라가서 슈퍼 같은 데를 찾아 다녀야 할지
아니면 저녁밥을 포기하고 1만원을 통째로 충전해야 할지 골라야 했습니다.

여행으로 피곤했던 저는 그냥 저녁을 포기하고 1만원을 충전하고 집에 와서 자는 걸 택했죠 -_-;

배고팠습니다 ㅠㅠ




여하간 그날 생각한 건, 어쩌면 지하철 노동자들의 생계라거나 그런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지하철역 무인화라는 건 거스름돈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는 어느 정도 돈(여유자금?-_-;;)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한 건 아닐까, 하는 것일까요.




지하철역 무인화, 지하철 운행 무인화가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인가 김대중 정부 때부터 말이죠...)
 공기업 선진화 방안 같은 걸 외치는 이명박 정부에서, 그런 추세는 아마 더 박차를 가하면 가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지하철공사 등에서 지하철을 무인운행하거나 해서 작년에 노조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비판했었지요.

거스름돈 몇 천원씩을 쪼개가며 식비와 교통비를 그때그때 충당해야 하는 한 20대로서

지하철역 무인화에 반대합니다.

저는 거스름돈을 거슬러주기도 하고, (아주 가끔이지만) 인사도 할 수 있고, 길이나 막차 시간, 갈아탈 가능성 같은 것도 물어볼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합니다.




지하철역 무인화를 막기 위해 관심과 도움을...(굽신굽신)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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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하철공익

    안녕하세요. ^^
    저는 현재 서울메트로 소속의 공익요원입니다.
    공현님의 말씀대로 무인충전기는 현재 미비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카드 충전시간도 매표소 충전기에 비해 속도가 느리죠.
    모든 자판기가 그렇듯, 무인충전기도 돈을 꿀꺽 먹기도 하고(먹고 안 내놓음^^;;)
    기계사용에 미숙한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껴, 매표소 줄이 길게 늘어서있음에도 끝끝내 매표소를 고집하기도 하죠.
    그리고, 매표 직원들은 설 자리가 줄어들게 될 겁니다.
    이런 저런 문제들을 뒤로 하고 매표 무인 시스템을 추진하는 이유는 ...
    직접 근무해보시면 느끼게 되실겁니다.
    매표소 직원(사원에서 부장까지)들의 월급이 350~450만원 입니다.
    그들이 하루에 4~5시간 표를 팔고 받는 돈입니다.
    그럼, 한 역에 몇명이 매표직원이 있느냐?
    평균적으로 각 반(갑,을,병반으로 3반이 있음)에 6명 이상의 매표 직원이 있습니다.
    그럼 한 역에 최소 18명에서 20명의 매표 직원이 있고 이들의 월급을 평균400만원이라고 했을 때,
    한 역에서 매표 직원 인건비만 어림잡아 계산해도 8,000만원입니다. ^^;;;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표 직원이 파는 표의 70%이상이 무임권(우대권: 노인,장애인에게 지급)입니다.
    그럼, 결론적으로 이 직원들은 무임권을 나누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셈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무임권(우대권)도 앞으로는 무인 발급기를 사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 무슨 말을 쓰고 있는지, 두서가 없군요. ^^;;
    여하튼 직원이 너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 이상입니다. ^^;;

    2008.09.02 02:44 [ ADDR : EDIT/ DEL : REPLY ]
    • 글쎄요 충전기가 돈 먹는 거야 처음부터 돈을 먹게 설계했을 리는 없고(설마;) 오류라고 생각하지만
      거스름돈 기능이 없는 거라거나 기타 등등은 '무신경'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매표소 직원 인건비와 노동시간(혹은 노동강도와 조건) 등의 문제는 이 문제와는 또 다른 것 같긴 한데, 이건 사회 전체의 노동의 유연화나 비정규직-정규직 문제와 공적인 자본의 문제들이 다 얽혀 있어서.
      그렇게 딱, 쉽게 하는 일 없이 인건비가 많이 드니까 무인화, 라고 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008.09.03 12:51 신고 [ ADDR : EDIT/ DEL ]
  2. 잠깐 보니 발급기에서 우대권을 그냥 가져가는 것 같던데, 혹시 신분을 증명하는 카드 같은 걸 대고 발급받는 시스템인가요? 그런 게 아니면 아무나 우대권 쓰라는 이야기인데.

    그리고 '기계'에게 일자리 빼앗기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는 것인데,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도 쫒겨나고 열악한 서비스업에서도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근로대중들. 안타깝네요. 어차피 되지도 않을 '일자리 보전'보다는 새로운 일자리 개념을 창출해서 노동의 가치가 빛을 잃지 않도록 하는 전략이 조속히 실현되기를.

    일단은 대단한 교육 훈련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 복지, 안전 계열의 일자리를 단기적으로 늘리고, 중장기적으로 문화, 과학, 교육 분야 쪽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그런 '유연한 일자리 정책'이 필요한데, 이건 뭐 막무가내 쫒아내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정권을 잡아서.

    2008.09.05 04: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고속터미널 역은 3호선과 7호선 환승역이니까, 3호선 대합실에 가서 충전하면 되잖아

    2008.09.11 16:58 [ ADDR : EDIT/ DEL : REPLY ]
    • 충전을 위해서 갈아타는 곳까지 그 긴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니. 흑흑 7호선이 얼마나 깊은데.

      2008.09.17 18:45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