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4. 3. 21. 22:10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7889346&start=slayer



『안녕들하십니까? -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자보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글들 등을 모은 책이 나왔다. 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요청을 받아서 급히 써서 보낸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이 책 막바지에 실려 있다. 다만 내가 책에 원고 싣는 걸 동의하는 서류 몇 가지를 까먹고 못 보내서 내 이름이 안 실렸다 -_-;;;; 책 제일 뒤에 이 원고(두 개로 나뉘어 실렸음)를 보시면 제가 썼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안녕들 하냐는 그 질문은,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하다고들 답을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욱 안녕하지가 못한 기분이 듭니다.

  2013년에, 한 중학생이 코치에게 목검으로 ‘체벌’을 당한 뒤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청소년이 가족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죽은 사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맞아서’ 죽은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체벌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들에 대한 폭력은 너무나 쉽게 정당화됩니다. 그리고 다들 너무나 안녕히 살아갑니다. 그렇게도 ‘학교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외치는 우리 사회이지만 말입니다.

  꼭 직접 때리고 죽게 하는 것만이 폭력인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들의 생활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폭력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을 원격으로 감시하고 조종하는 각종 어플리케이션들, 청소년의 게임 및 인터넷 이용 등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정책들, 청소년들의 정보를 마음대로 수집하고 이용하게 하는 ‘학교밖청소년정책’ 등. 청소년들의 생활을 국가가 학교가 친권자가 나서서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가며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는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바로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한 공부. 교육이 아닌 입시와 경쟁이 학교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선두를 다투는 공부시간 속에 청소년들에게는 쉬고 놀 시간조차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공부를 해봤자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는 청소년들에게는 학교 수업시간이란 무의미하고 괴로운 시간 때우기일 뿐입니다. 성적 때문에, 입시 때문에, 공부 때문에 청소년들이 죽고 불행해져도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만 말합니다. 대학은 서열화되어 있고 성적으로 학교로 차별을 당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문제가 있다고 다들 생각한다지만, 세상은 잘 변하지를 않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중고등학생들의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8년째 해왔습니다. 제가 하기 이전부터 있던 역사를 돌아보면, 약 15년은 두발자유화를 요구해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두발자유는 멀게만 보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는 몇 지역에서만 두발규제가 완화되거나 사라졌을 뿐, 다수의 지역과 학교들에는 두발규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발자유 하나조차도 15년 동안 귀를 막고 들어주지 않는 사회, 그런 사회에 살고 있어서 저는 도무지 안녕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참 안녕하게 살아갑니다. 두발자유 그런 것은 사소한 일이라고 하면서요.

  이번에 여러 청소년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를 묻는 대자보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중고등학교들이 ‘안녕들 하십니까’를 묻는 그 대자보를 철거하고, 학생들의 의견 표현을 짓밟았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에 대자보를 붙여본 적이 있었고, 징계를 하겠다는 위협도 당해보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고서 언론의 자유가 없는 고등학교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청소년자유언론을 만들어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항들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은 지금도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규칙과 편견에 막히고 기본적인 말할 자유조차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안녕들 하냐고 물을 자유조차 없습니다.


안녕들 하냐고 묻는 옆의 삐딱선에서

  제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생각한 것은 내가 안녕하냐 아니냐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삐딱한 생각이었습니다. ‘안녕하냐고 묻고 답하는 대자보를 붙이는 데도 자격 유무가 갈리는 것일까?’ 누구는 대자보를 금지당하고, 대학을 거부하거나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안녕하냐는 대자보를 붙일 마땅할 공간조차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자격’은 사람에게만 묻는 것이 아닙니다. ‘주제’에도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철도민영화는, 노동자들이 해고당하는 일은, 농민들의 삶을 파괴하며 이루어지는 송전탑 건설은,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되묻고 싶어집니다. 청소년들의 삶의 현실은, 모두에게 안녕하냐고 물을 중요한 일이 아니냐고.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각종 억압과 폭력과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찌 안녕하실 수 있냐고 물을 이유가 되지 못하는 거냐고. 학벌과 학력과 성적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에서 여러분은 안녕들 하시냐고. “청소년들이 ‘체벌’이라며 여전히 폭력을 당하고 두발단속을 당하는 이 끔찍한 세상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질문이 어색하게 들리신다면, 안녕하냐고 물을 수 있는 ‘주제’ 역시도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차라리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제대로 물을 수도 답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안녕들 하십니까?’라며 모두의 문제, 공공의 문제랍시고 불려나올 수도 없는 문제들입니다. 정치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는 청소년 같은 소수자들, 그리고 공공의 문제라고 생각조차 안 되고 있는 현실들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적어도 청소년인권의 문제, 대학서열화와 입시경쟁의 문제 등을 가지고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그리고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로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서기 전까지는, 저는 안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살고 있는 저 자신을 사랑하기에 저는 참으로 안녕하고, 행복하기도 하겠지만요.)

  그러므로 안녕들 하냐는 질문에 대해 제가 삐딱하게 되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안녕들 하냐고 묻는 그 질문은, 정말 모두에게 묻는 것입니까? 모두가 물을 수 있는 것입니까?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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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12. 19. 02:24





청소년의 대자보는 안녕들 하십니까?
청소년 대자보 및 탄압 사례를 모읍니다

많 은 청소년들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쓰기에 동참하면서 의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자보가 학교에 의해 강제로 철거당하는 것은 물론, 징계 위협을 당하는 일까지도 일어나곤 합니다. 청소년들도 생각이 있고 말할 자유가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대자보를 붙였다가 권리를 침해당한 사례를 제보해주세요! 사례를 모으고 세상에 알려서 우리의 권리를 지키려고 합니다!
http://asunaro.or.kr/jabo

★ 대자보 갤러리에 청소년이 쓴 대자보를 올려주세요!
    청소년들의 '안녕 못한' 목소리들을 많이 모읍니다!
★ 권리침해사례를 제보해주세요!
   · 대자보를 학교 등이 강제로 철거, 훼손, 압수한 경우
   · 대자보를 썼단 이유로 위협, 폭력, 폭언을 당한 경우
   · 대자보를 썼단 이유로 학교가 반성문을 강요하거나 징계를 하려는 경우
   · 그밖에 경찰 등에 의해 청소년의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경우

"안녕하지 못한" 우리들의,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할 자유를 위해 함께해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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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7. 12. 18:23




일제고사 반대 운동이라고 하면 흔히 체험학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체험학습에 몇 명이나 참가했냐가 항상 이 운동의 크기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죠.

하지만 정말 그것뿐일까요?



서울중앙여고 거울에 붙은 대자보


(등촌고 교문에 붙은 대자보)


(서울문화고 교문에 붙은 대자보)



(고척고등학교 앞에 붙은 대자보)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 중에서 몇 명은

아수나로 서울지부에서 같이 논의하여 만든 내용의 일제고사 반대 대자보를 자기 학교 앞에, 그리고 학교 안에 붙였습니다.



새벽에 붙였고, 교사 등이 보자마자 바로 떼어가서(이것도 표현의 자유 침해!!)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고 또 언론이라고는 프로메테우스(http://www.prometheus.co.kr/articles/101/20100712/20100712074900.html)에서 보도자료 보고 한 줄 쓴 게 다이지만;;;;;;

그래도 붙이고 수위 분이나 교사 분 등에게 안 걸리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서 마음 졸이며 겁을 내야 하는 학교... 더욱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이유를 실감하게 됩니다.


< 몇 종류의 대자보 글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 막장교육 시험지옥을 거부하고 싶어


그거 알아? 며칠 후면 ‘일제고사’ 시험이 있어.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학력평가’라는 시험이지.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모두가 일제히 같은 시간에 앉아서 시험을 보다니, 이 소름끼치는 일은 대체 뭥미? 게다가 이번 일제고사 시험은 성적을 다 공개한대. 그날 시험을 보는 학년이 아니어도 그 시험 성적을 가지고 공부 잘 하는 학교 학생, 못 하는 학교 학생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거야...

지금 우리는 공부한 걸 잘 알기 위해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거 같아.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쩌는데, 기말고사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일제고사고 나발이고 지금 입시제도나 어떻게 좀 해주지. 왜 하는지도 모를 공부 죽어라 해서, 대학가면 앞날이 창창하게 보장되나? 등록금내기도 벅찰 텐데, 그 돈 내고 대학 나와 봤자 어짜피 88만원세대일 텐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공부해서 대학가고 보라니...

우리가 무슨 바본 줄 아나? 하라고 하면 그냥 다 하고 앉아있게. 시험 같은 거 안 보면 누가 이길 일도, 질 일도 없잖아... 우린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거뿐인데... 왜 우리 삶을 이런 걸로 점수매기는 걸까? 선생님들도 어쩔 수 없이 우리를 공부시키시지만, 정말 옳은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시죠?

나는 이 시험지옥과 무한경쟁교육을 바꾸고 싶어. 용기는 없지만… 7월 9일 저녁에 이런 짜증나는 현실들에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집회가 열린대. 청계광장에 모여서 토할 것 같은 시험, 교육, 학교 다 같이 실컷 욕이라도 하며 까보자. 다음 주에 있을 일제고사 때도, 시험을 보는 학년이든 안 보는 학년이든 모두가 당당하게 반대하고 거부할 수 있으면 좋겠어... 혹시 용기가 안 나서 못하더라도(나도 고민 중... ㅠ) 그 날 저녁에 있을 일제고사 반대 문화제라도 같이 손잡고 갈 수 있으면 좋겠어. 우리가 같이 교육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

선생님한테 끌려갈까봐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여러분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


체험학습에 참가하는 것 말고도 일제고사 반대하는 뜻을 나타내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713웹자보[1].jpg



7월 13일 저녁 7시 광화문 열린시민공원
일제고사 반대 문화제 도 오세요 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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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도공부해봤다

    교사가 학생 성추행하고 복날 개패듯이 팼다면 막장이고,비난받을만 하지. 하지만, 아직 배우는 학생들입장에서 교사의 권위가 살지않으면 교육은 누구보고 어찌 하라고요?? 왜이러세요~~ 선생이 떼라면 떼는거지요~ 10대, 다큰것같지요? 몸은 다 성장했으되, 정신적으론 미성숙한 시기입니다. 가장 위험한시기이죠. 어설피 못된버릇만 배워가지고, 부모가 피땀흘려 번돈으로 학교보내 공부시켜주니, 어디 감히 공부하기싫다 땡강인겐지~~ 그때가 좋을때죠~ 사회나와봐라~ 누가 그 땡강 다받아주나~ 그냥 그 마인드로 쭈욱~살고 심심하면데모만하렴. 지금은 시험땜에 죽을것같지. 나중엔 배고파죽을거같을거다.

    2010.07.13 00:21 [ ADDR : EDIT/ DEL : REPLY ]
    • 교사의 '권위'가 뭔지 이해는 하셨쎄요?;;
      당황스러운 댓글이군요

      권위는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그 사람이 존경받을 만하고 신뢰할 만해서 주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 사람을 존경하면서 생기는 겁니다.

      교사들이든 누구든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자신들의 양심과 교육적 철학, 견해에 따라 이야기하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조차 지키지 않고 폭력에 의지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권위란 있을 수 없겠지요 ^^

      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꾸자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땡깡'이라고 폄하하는 분에게 더 이상 드릴 말씀은 딱히 없을 듯

      2010.07.14 15:01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