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1. 11. 16. 01:19

[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대학 거부’

김서린

대학에 입학한 것은 나의 선택,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대학거부선언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편에 앉은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며 머릿속으로 문득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진지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네가 대학에 가서 굳이 공부할 생각이 없고 그냥 지금 취직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꼭 대학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대학에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전혀 망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분명히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은 어떤 면에서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선택받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대학은 필수라고 여겼다. 나는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조차도 대학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는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막연히 대학생이 되면 자유로워지고 국․영․수 같은 주입식 교육, 혹은 죽도록 싫은 입시공부에서 해방될 것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예뻐지기 까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수준이었다.

반면 대학을 안 가서는 안 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졸이 받는 사회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 전문대를 졸업한 사촌이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결국에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요즘에는 대학 나와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 가방끈이 짧으면 사람은 좋아도 교양이 없다는 이야기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 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너의 삶은 너무 고될 거야. 이제까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참으며 살아왔니?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당연히 대학에 가야해. 대학에 가면 너의 꿈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잘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입을 선택했다. 고3인 내 눈에 질 높은 삶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 ‘대입’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그에 대한 나의 애증

(1)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1학년 때 가장 싫었던 것은 선배들이 강요하는 술과 노래였는데, 지금 가장 싫은 것은 선배가 된 내가 토익공부나 아르바이트로 바쁜 1학년 후배들을 불러 술 한 잔, 밥 한 끼 하기가 미안한 현실이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스펙을 쌓고 학점을 따 놓아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벅찬 등록금과 거주비용 등으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학생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오늘날의 대학생활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들은 무엇을 두고 경쟁하고 있을까? 대부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그런데 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작업이 모두가 노력만 한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경쟁에서는 절대로 모두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 이른바 낙오자는 ‘나’이거나 ‘내가 아닌 다른 학생’ 중에서 무조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참으로 무서운 전제이다.

대학에서의 경쟁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상대평가제도’가 아닌가 싶다. 이는 내가 얼마만큼 배움의 완성을 이루어 냈는지 상관없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보다만 더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것이니 학생들은 일단 다른 학생들보다만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려 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 교수님들은 상대평가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수준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와는 상반되게 노트하나 빌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강의실의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그러는 사이 대학 안에서 공부와 학점 사이의 간극은 커졌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주로 ‘학점’ 쪽이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현명하게 공부하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학점만 현명하게 받아내라’라는 주문이었다. 그 말은 “시험에 나오지 않을 부분을 붙들고 있지 말고 그럴 시간에 교수님께 가서 눈도장 한 번 더 찍어라.”라는 식이었다. 그런 말이 ‘현명하게’라는 단어를 앞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실속’이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점 외에 토익, 토익 스피킹, 봉사활동 및 기타 학내활동, 학외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해내기 위해서 공부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학생들이 겉포장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겉포장이 취업경쟁의 ‘참여요건’이 되는 사회의 모습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남에게 인증받기 위한 공부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의도한 적도 없는 경기에서 남에게 지거나 혹은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도서관에 앉아있는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더군다나 경쟁에 필요한 비용도 우리집 형편으론 만만치 않았고 그럴수록 나의 부담은 커져갔다. 이러한 부담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지라도 무조건 ‘안정적인’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열중하고 있는 이 경기에 나 혼자 의문을 가져서 괜히 이도저도 아닌 게 될까봐 두려운 적도 많았다.

(2)
대학에 와서 무조건 안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으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물론 그게 어떤 공부이든 공부도 하긴 했다. 검도 동아리에 들어서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경험도 했고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도 알았다. 학내기관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나는 나 스스로 ‘대학생활다운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대학은 이제까지 젊음을 대표하는 곳이고 그만큼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내가 대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대학이 그러한 에너지들을 어떻게 소모시키고 있는지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서 느낀 많은 것들이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대학의 현실은 어둡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대학의 낭만을 노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학의 공부와는 무관한 활동들을 꼭 대학에 들어와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그만큼 다양한 교육이 보장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애착과 불만이 뒤섞인 대학생활에 졸업이라는 지점이 가까워 올수록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동쳤다. 경쟁 속에 끼어든 많은 불합리한 사건들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내가 본 많은 학생들이 생각하려 들지 않거나, 모르는 척 하고 싶어 했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자살을 하고, 꿈을 잃고, 생존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허덕였다. 대학교 축제가 벌어지던 어느 날, 한창 인기 있던 노래에 맞춰 하나가 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보았던 생동성실험에 대한 방송,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했다는 선배의 얼굴, 대출금이 쌓여서 무섭다던 친구의 문자 메시지, 축제날임에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며 모인 달랑 두 명인 동아리원의 모습, 그리고 갖가지 기사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대학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일까? “축제에 흥겨워하는 저 모습이 대학의 진짜 모습일까?”라고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바로 ‘대학 거부’

대학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동안 그 폐해는 사건들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혹은 대학에 적응하지 못 하는 소수의 문제라고 치부하며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각해진 대학의 문제 덕분에 학교와 사회에서도 대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는 것, 물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등록금투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구조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학문을 추구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대학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고 해도 대학은 반값으로 내린 등급별 취업자격달성소가 될 뿐이다.

나는 ‘대학생’이라면, 아니 ‘젊은이’라면 이 시대의 순수한 지성으로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뼛속까지 느꼈던 많은 문제들을 다른 누군가가 죽음으로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졸업한다면 나는 그 졸업장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내가 ‘진짜 대학’을 원한다면 나 역시 ‘진짜 대학생’으로 행동하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내 후배들, 내 동생들을 나와 같은 어쩌면 더 심해질 문제의 한 가운데에 방치시켜놓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이 무의미한 경기에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대학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가로등이 있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거슬렀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이런 교육과 사회를 바꾸어야한다고 외치는 우리가, 가로등이 아니더라도 성능 좋은 휴대용 손전등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서린 님은 바람 같은 여자,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었지만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고 중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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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22:19:2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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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4. 10:18

대학입시거부선언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오늘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수십 만 명이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대학입시경쟁은 남의 꿈을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라는 걸.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의 과정이라는 걸. 이 경쟁에 미친 입시위주 교육과 불안정한 모두의 삶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사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단단한 제도에 시비를 건다. 조용히 경쟁에서 지쳐 떨어지는 대신,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짓밟고 뜀박질 하는 대신, 사회가 붙여준 루저라는 딱지를 버리고 스스로 거부자의 길을 택한다.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게 묻는다. 어째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배움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해야 하고 주어지는 정답만을 외워야 하는지. 서로를 도우며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무한경쟁을 견뎌내야만 하는지. 대학은 왜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강요되고, 다양한 삶의 길이 아닌 "명문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하는지. 왜 대학만이 독점적으로 ‘학력’, ‘자격’, ‘지식’을 판매하고, 대학 밖에서는 다른 배움의 길을 찾기 어려운지. 정부와 사회는 왜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우리 개개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떠넘기는지. 점점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해도 우리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늘의 불행을 저축해도 내일의 행복이 오진 않을 것 같고, 불안과 경쟁만이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가.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다. 우리는 낙오자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거부가 낙오가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기에, 우리는 거부라는 길을 택한다. 잘못된 쪽은 우리가 아니다.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배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제는 이 교육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 우리의 보편적 권리로서 존재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대학 밖에서도 다양한 배움의 길, 삶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한다. 무한경쟁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교육을 원한다. 학력이 학벌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으며 학교가 서열화되지 않은 사회, 우리를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는 사회를 원한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 사회가 모든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 사람다운 삶,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를 요구한다.

우리에게 수능만을, 순응만을 요구하는 교육, 남을 밟는 것 외에 살 길은 없다고 말하는 이 사회. 이것들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우리의 오늘이 너무 아깝기에. 학력과 학벌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에 갇혀있기에는 우리들의 배움이 너무 소중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선언한다. 여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노라고. 자유로운 배움을 위해, 존엄하고 안정된 인간적인 삶을 위해, 유예되지 않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행동하겠다. 살아가겠다.


2011년 11월 10일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


고예솔 김민성 김재홍 김해솔 문동혁 민다영 박제헌
양현아 이찬우 이현지 임준혁 장주성 전경현 정열음
조만성 최경수 최난희 한소영 (18명)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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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0. 17:20



대학입시거부선언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오늘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수십 만 명이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대학입시경쟁은 남의 꿈을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라는 걸.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의 과정이라는 걸. 이 경쟁에 미친 입시위주 교육과 불안정한 모두의 삶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사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단단한 제도에 시비를 건다. 조용히 경쟁에서 지쳐 떨어지는 대신,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짓밟고 뜀박질 하는 대신, 사회가 붙여준 루저라는 딱지를 버리고 스스로 거부자의 길을 택한다.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게 묻는다. 어째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배움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해야 하고 주어지는 정답만을 외워야 하는지. 서로를 도우며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무한경쟁을 견뎌내야만 하는지. 대학은 왜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강요되고, 다양한 삶의 길이 아닌 "명문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하는지. 왜 대학만이 독점적으로 ‘학력’, ‘자격’, ‘지식’을 판매하고, 대학 밖에서는 다른 배움의 길을 찾기 어려운지. 정부와 사회는 왜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우리 개개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떠넘기는지. 점점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해도 우리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늘의 불행을 저축해도 내일의 행복이 오진 않을 것 같고, 불안과 경쟁만이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가.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다. 우리는 낙오자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거부가 낙오가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기에, 우리는 거부라는 길을 택한다. 잘못된 쪽은 우리가 아니다.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배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제는 이 교육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 우리의 보편적 권리로서 존재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대학 밖에서도 다양한 배움의 길, 삶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한다. 무한경쟁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교육을 원한다. 학력이 학벌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으며 학교가 서열화되지 않은 사회, 우리를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는 사회를 원한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 사회가 모든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 사람다운 삶,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를 요구한다.

우리에게 수능만을, 순응만을 요구하는 교육, 남을 밟는 것 외에 살 길은 없다고 말하는 이 사회. 이것들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우리의 오늘이 너무 아깝기에. 학력과 학벌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에 갇혀있기에는 우리들의 배움이 너무 소중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선언한다. 여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노라고. 자유로운 배움을 위해, 존엄하고 안정된 인간적인 삶을 위해, 유예되지 않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행동하겠다. 살아가겠다.


2011년 11월 10일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


고예솔 김민성 김재홍 김해솔 문동혁 민다영 박제헌
양현아 이찬우 이현지 임준혁 장주성 전경현 정열음
조만성 최경수 최난희 한소영 (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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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일에 수능거부선언,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본 게 벌써... 직접 본 것만 3번.

올해는 이례적으로 18명의 참가자

100명을 목표로 했지만 18명에 그쳤다.

꼭 거부자가 아니어도 좋으니, 아니 거부자 말고 다른 분들 많이 많이 오시라고 마련한 자리이니

거리행동 많이 오시랍!

경쟁과 학벌만을 강요하는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11월 12일 거리행동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 언제?

11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사전행사는 오후 1시부터)

★ 어디서?

청계광장 옆 파이낸스 센터 앞 (1,2호선 시청역 4번출구, 5호선 광화문역 5번출구)

★ 누구와?

19살 대학입시 거부자, 20대 대학거부자, 그리고 대학입시거부 운동과 대학거부자들을 지지하는 여러분과 함께!

 

 

11월 12일 거리행동 소개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만을 향해 달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학교와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불행하고 불안합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교육은 이미 대학에 가기 위한, 학벌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그 안에서 진정한 교육의 의미는 찾아볼 수도 없습니다. 경쟁만을 강요하는 지금의 이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진정한 교육을 찾기 힘든 지금의 입시를 철폐하고 대학을 평준화하기 위해 당당하게 대학을 거부하는 대학거부자들의 목소리와 이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이 사회에 전달하고자 이번 거리행동을 준비합니다.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홈페이지 cafe.daum.net/wrongedu1

트위터 @wrongedu

후원계좌 우체국 014019-02-153534(김해솔)

 

 

공동주최_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교육혁명 공동행동 (관 악동작학교운영위원협의회, 교육노동운동의전망을찾는사람들, 경기교육운동연대꼼, 노동해방실천연대, 노동전선,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다함께, 사회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공동실천위원회, 사회진보를위한민주연대, 서울대법인화반대공대위, 입시폐지대학평준화국본, 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수노조, 진보교육연구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학벌없는사회, 한국비정규교수노조,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학술단체협의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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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이팅!화이팅!화이팅!
    맞습니다.
    경쟁과 학벌이 사람 죽입니다.
    이건 모순입니다.

    거리행동하시는 분들은 모두 선구자이십니다.
    선구자님들 사랑해요!

    2011.11.10 23: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1. 10. 09:58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고예솔

나는 지금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3이다. 학년으로 고3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학력인정이 안 되는 학교라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중․고졸 검정고시를 보지 않을 것이고 대학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그런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은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 청소년에 대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는 여전하다. 올해 초 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 참여했다.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서명이 아니라 유권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들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례를 제정해 반인권적인 행동에 대한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근본적 원인이 되는 입시 위주의 무한경쟁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입시거부 모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간디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대해 별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이란 가면 가는 것이고 안가면 안 가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게 행복한 것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지 마라. 대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우리는 이렇게 6년간 배워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친구들은 나의 대학입시 거부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격려도 해 주었지만 동참하려 하지는 않았다. 나 자신은 무한경쟁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일까. 하지만 좋든 싫든 학벌만으로 평가받는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있는 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입시 따위랑은 전혀 관계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도 19세 혹은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 무언가 압박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낮에 학교나 학원이 아닌 곳에 있는 나를 뭔가를 포기한 사람쯤으로 취급하곤 한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나의 삶은 대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 질문 속에 지내다보면 나도 대학엘 가야하는 것 아닐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먹고살 수나 있을까? 하는 압박감으로 초조해지기도 한다. 무한경쟁 교육 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있다고 할 수 있는 내가 이정도로 압박을 느끼는데 그 속에 살아온 아이들이 느끼는 압박은 얼마나 심할까 싶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대학에 매여 있는 사회

학교 현장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환경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은 민주사회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민주적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소양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벌 위주의 사회 속에서 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학교는 대학만이 목표인 것처럼 학생들을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인권을 논의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논의로 치부된다. 교사들 또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얼마나 보내는가로 능력이 평가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을 경쟁으로 몰아세우고 권위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 십년 후의 행복을 위해 십년동안의 시간을 공포와 초조함으로 가득 채우고, 마음을 나누어야 할 친구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삶의 가치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매순간 순간이 모여서 미래가 되는 것인데 미래에만 의미를 두고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십년이 지나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행복이 찾아올까?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학벌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 불안한 일이다.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 사회에서 초졸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보호 아래 살던 내가 이 문제 많고 험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더군다나 사회가 요구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걷고자 한다는 것이 두렵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대학을 목적으로 한 그런 공부가 아닌데 그것 말고 다른 배움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 건 이 사회의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꿈들이 존중되고 그들이 다양한 선택을 당당히 말하고 꿈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대학을 가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학은 지금처럼 학벌로 줄 세우는 사회에 의해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대학입시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학교 현장에서나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이 운동은 입시위주 교육이 낳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문제제기라고 봐주면 좋겠다. 문제 당사자인 청소년들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대안을 찾고 교육의 진정한 목표를 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교육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답을 다시 찾아나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나는 졸업을 하고나면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살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귀농할 생각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졸업장을 따는 일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이 아니라도 이 세상에는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 많고 거기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고예솔 님은 대안학교를 다니며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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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15: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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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0. 09:57

[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대학 거부’

김서린

대학에 입학한 것은 나의 선택,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대학거부선언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편에 앉은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며 머릿속으로 문득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진지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네가 대학에 가서 굳이 공부할 생각이 없고 그냥 지금 취직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꼭 대학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대학에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전혀 망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분명히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은 어떤 면에서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선택받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대학은 필수라고 여겼다. 나는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조차도 대학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는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막연히 대학생이 되면 자유로워지고 국․영․수 같은 주입식 교육, 혹은 죽도록 싫은 입시공부에서 해방될 것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예뻐지기 까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수준이었다.

반면 대학을 안 가서는 안 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졸이 받는 사회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 전문대를 졸업한 사촌이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결국에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요즘에는 대학 나와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 가방끈이 짧으면 사람은 좋아도 교양이 없다는 이야기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 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너의 삶은 너무 고될 거야. 이제까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참으며 살아왔니?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당연히 대학에 가야해. 대학에 가면 너의 꿈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잘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입을 선택했다. 고3인 내 눈에 질 높은 삶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 ‘대입’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그에 대한 나의 애증

(1)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1학년 때 가장 싫었던 것은 선배들이 강요하는 술과 노래였는데, 지금 가장 싫은 것은 선배가 된 내가 토익공부나 아르바이트로 바쁜 1학년 후배들을 불러 술 한 잔, 밥 한 끼 하기가 미안한 현실이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스펙을 쌓고 학점을 따 놓아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벅찬 등록금과 거주비용 등으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학생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오늘날의 대학생활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들은 무엇을 두고 경쟁하고 있을까? 대부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그런데 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작업이 모두가 노력만 한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경쟁에서는 절대로 모두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 이른바 낙오자는 ‘나’이거나 ‘내가 아닌 다른 학생’ 중에서 무조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참으로 무서운 전제이다.

대학에서의 경쟁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상대평가제도’가 아닌가 싶다. 이는 내가 얼마만큼 배움의 완성을 이루어 냈는지 상관없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보다만 더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것이니 학생들은 일단 다른 학생들보다만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려 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 교수님들은 상대평가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수준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와는 상반되게 노트하나 빌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강의실의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그러는 사이 대학 안에서 공부와 학점 사이의 간극은 커졌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주로 ‘학점’ 쪽이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현명하게 공부하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학점만 현명하게 받아내라’라는 주문이었다. 그 말은 “시험에 나오지 않을 부분을 붙들고 있지 말고 그럴 시간에 교수님께 가서 눈도장 한 번 더 찍어라.”라는 식이었다. 그런 말이 ‘현명하게’라는 단어를 앞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실속’이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점 외에 토익, 토익 스피킹, 봉사활동 및 기타 학내활동, 학외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해내기 위해서 공부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학생들이 겉포장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겉포장이 취업경쟁의 ‘참여요건’이 되는 사회의 모습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남에게 인증받기 위한 공부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의도한 적도 없는 경기에서 남에게 지거나 혹은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도서관에 앉아있는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더군다나 경쟁에 필요한 비용도 우리집 형편으론 만만치 않았고 그럴수록 나의 부담은 커져갔다. 이러한 부담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지라도 무조건 ‘안정적인’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열중하고 있는 이 경기에 나 혼자 의문을 가져서 괜히 이도저도 아닌 게 될까봐 두려운 적도 많았다.

(2) 
대학에 와서 무조건 안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으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물론 그게 어떤 공부이든 공부도 하긴 했다. 검도 동아리에 들어서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경험도 했고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도 알았다. 학내기관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나는 나 스스로 ‘대학생활다운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대학은 이제까지 젊음을 대표하는 곳이고 그만큼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내가 대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대학이 그러한 에너지들을 어떻게 소모시키고 있는지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서 느낀 많은 것들이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대학의 현실은 어둡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대학의 낭만을 노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학의 공부와는 무관한 활동들을 꼭 대학에 들어와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그만큼 다양한 교육이 보장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애착과 불만이 뒤섞인 대학생활에 졸업이라는 지점이 가까워 올수록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동쳤다. 경쟁 속에 끼어든 많은 불합리한 사건들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내가 본 많은 학생들이 생각하려 들지 않거나, 모르는 척 하고 싶어 했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자살을 하고, 꿈을 잃고, 생존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허덕였다. 대학교 축제가 벌어지던 어느 날, 한창 인기 있던 노래에 맞춰 하나가 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보았던 생동성실험에 대한 방송,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했다는 선배의 얼굴, 대출금이 쌓여서 무섭다던 친구의 문자 메시지, 축제날임에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며 모인 달랑 두 명인 동아리원의 모습, 그리고 갖가지 기사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대학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일까? “축제에 흥겨워하는 저 모습이 대학의 진짜 모습일까?”라고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바로 ‘대학 거부’

대학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동안 그 폐해는 사건들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혹은 대학에 적응하지 못 하는 소수의 문제라고 치부하며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각해진 대학의 문제 덕분에 학교와 사회에서도 대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는 것, 물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등록금투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구조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학문을 추구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대학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고 해도 대학은 반값으로 내린 등급별 취업자격달성소가 될 뿐이다.

나는 ‘대학생’이라면, 아니 ‘젊은이’라면 이 시대의 순수한 지성으로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뼛속까지 느꼈던 많은 문제들을 다른 누군가가 죽음으로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졸업한다면 나는 그 졸업장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내가 ‘진짜 대학’을 원한다면 나 역시 ‘진짜 대학생’으로 행동하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내 후배들, 내 동생들을 나와 같은 어쩌면 더 심해질 문제의 한 가운데에 방치시켜놓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이 무의미한 경기에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대학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가로등이 있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거슬렀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이런 교육과 사회를 바꾸어야한다고 외치는 우리가, 가로등이 아니더라도 성능 좋은 휴대용 손전등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서린 님은 바람 같은 여자,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었지만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고 중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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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22: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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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8. 20:57


대학거부선언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여기,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거라고들 하고,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재촉을 받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 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수백만원의 등록금 고지서에 숨이 막혔습니다. 대학 안에도 선후배 사이의, 교수 학생 사이의 권위주의와 수직적 문화가 우리를 괴롭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적에 따라 대학에 왔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나의 진정한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학문의 다양성과 자유는 줄어들어갔습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고 경쟁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한 길만을 강요하는 교육, 수능과 입시라는 거대한 서열화의 장,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돈 때문에 성적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학에 가는 이유를 찾지 못해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순간, 그래도 괜찮다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우리를 ‘괜찮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우리는 많은 것을 겪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훌쩍 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차별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학력을 묻고, 주변의 사람들은 출신 대학을 학번을 따져 묻습니다. 남자라면 대학을 이유로 군대를 좀 미뤄보거나 고민해볼 새도 없이 열아홉, 스무 살에 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자꾸 재촉하기만 합니다. 너희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 그만큼 뭔가 남다른 성과를 내놓아보라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거나 해보려 할 때 사회는 그것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따져 묻고 재촉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대학을 그만두거나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대학 거부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대학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로 주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애써 찾아서 배우는 그 과정 뿐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듭니다.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할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합니다. 대학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사회는 차별과 배제의 이빨을 들이댑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오는 '대학중심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들 말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그러니 너희 모두 지금의 삶은 잠시 유예해야 한다고. 결국 우리는 대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 되도록 떠밀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을 가야 하는 줄 알고, 대학을 못 가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줄 알고 반강제적으로 의무적으로 대학에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결국 우리 중 다수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유예나 '88만원세대'의 삶이라는 것을. 또 우리는 압니다. 그 레이스에 서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오자, 패배자, 루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지를. 그런 현실은 자살율 세계 1위의 대한민국, 20대 사망원인 중 절반 정도가 자살이라는, 끔찍한 통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 우리가 대학을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하루하루 피 마르는 경쟁교육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교육을. 학력과 학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지금의 잘못된 기준이 사라진 사회를. 스펙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학벌․학력이 어떻든 차별 받지 않고 정당하고 충분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를.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열아홉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 "20대의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우리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의 요구와 목소리를 함께할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와 대학,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거부와 선언과 행동이 지금의 대학과 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1일

 

강현, 경성수, 고다현, 공현, 그링, 김서린, 김슷캇, 김지훈, 김희영, 난다, 박고형준, 박유리, 박주희, 시원한 형, 아즈, 어쓰, 엠건, 윤티, 은총, 이나래, 이승환, 이정은, 이해인, 임준혁, 정도(김자니), 정한얼. 지혜, 채유리, 형우, 호야 (가나다 순, 총 30명)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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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25 16:2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1. 8. 13:03

[나의 대학거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은

어쓰


(1) 작년,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청소년인권활동을 시작했다. (2) 이미 고등학교는 자퇴한 상태였고, 그렇게 나름 열심히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스무 살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3)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해가 지나 스무 살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나는 비(非) 대학생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끝.

이렇게 달랑 세 문장으로 정리되는 ‘나의 대학거부’를 글로 풀어 쓰려고 하니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한 번, 조금 더 길게 주절거려 보자면…….

1. 열아홉, 청춘?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그 때, 청소년들의 사회참여가 어쩌고저쩌고 시끄러웠던 그 해 여름, 광화문이나 시청 한 번 안 가고 나름 착실하게(?) 살다가 학교를 자퇴했다. 뭔가 뚜렷한 생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학교에서 매일매일 맞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마치 재채기가 튀어나오듯이 덜컥 저질러버린 자퇴였다.

그렇게 학교 밖에서 살아가게 된 후, 대안학교에도 가보고 이런저런 공간들에도 갔지만, 대개 아무 것도 안 하고 멍하니 살았다. 하루에 20시간쯤 자보기도 하고, 온종일 만화책만 보면서 뒹굴거리기도 했다. 한 2주일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기도 하고,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뭘 할까를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주로 음침하고 우울하게, 그리고 쓸모없게 살아갔다.

‘10대’, ‘밝음’, ‘반짝반짝한 청춘’ 따위는 대부분의 경우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적어도 나의 10대는 전혀 반짝거리지도, 보람차지도 않았던 것 같다. 뭘 해도 즐겁다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그 ‘청춘’은 나를 비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청소년인권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열아홉 살, 작년에 썼던 글들의 대부분이 ‘힘들고 막막하고 서럽다’ 로 요약되는 걸 보면 확실히 드러나더라.

처음에는, 학교를 자퇴한 걸 후회했다. 자퇴를 할 당시 수도 없이 들었던 “조금만 더 참지 그랬어”라는 말을 내가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삼 년만 더 참아볼 걸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지금 나의 이 우울함과 찌질함은 전부 다 ‘고등학교→(수능)→대학교’라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그 루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고민들을 정리하거나 추스를 틈도 없이, 어느 새 어영부영 스무 살이 됐다.

위 사진:지난 10월 31일 홍대 앞 거리에서 진행된 '입시좀비 스펙좀비 할로윈행진'.

2. 스무 살, 인생

사실 스무 살이 됐을 때, 내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이라는 장소는 오히려 나에겐 그렇게 가깝거나 실감나는 장소가 아니었기에, 학교에 다닐 때의 친구들이 다들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내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열아홉 살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은, 딱 어느 시점이라기보다는 그냥 서서히,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계속 청소년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뭐 먹고 살지?’부터 시작해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까지. 5년 후, 10년 후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리고 나이에 따른 위계/권력에 반대하는 소위 ‘운동판’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나 자신도 그렇게 나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또 딱히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단지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넘어왔을 뿐인데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며 불안해하다니.

‘모든 건 구조의 탓이다’라는 식의 논법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런 식의 거창한 의미부여와 과장된 불안함 역시 이 사회에서 ‘스무 살’, ‘성년’들에게 요구하는 그 역할과 의무들을, 동시에 스무 살이 되는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권리와 권한 - 술/담배부터 시작해서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까지 - 들을 무시하기 힘들었던 탓이 아닐까, 라는 식의 생각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에, 같이 활동을 해오던 93년생/19살 친구들의 대학/입시거부운동이 시작되었다. 19살/고3들의 선언 외에 20대의 대학거부선언도 준비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같이 운동을 꾸려나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또 했다.

사실 어떻게 살지 모르겠고 불안하고 힘든 건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학/입시거부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대학을 안 가면 살기 힘들지만, 사실은 대학에 가더라도 살아남기 힘든 사회.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누가 과연 ‘나는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외곽에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쳐내는 방식으로 아직까지는 내쳐지지 않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쟤네가 힘든 건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희는 대학에 갔으니까, 너희는 괜찮아.” 하지만, 정말 괜찮은가?

결국 문제는 어떤 한 개인이 대학에 갔거나, 가지 않았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사회가 불안하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지기 힘들다면, 지금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대학을 거부함으로써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보려는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 다 안다. 알지만.

3. 그래도?

뭐 이렇게 글을 써봤자 그런 불안함이 절대 사라지지는 않더라. 여전히 불안하고, 뭐 먹고 살아야 할 지 모르겠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리고 당분간, 아마도 높은 확률로 평생 이런 불안함들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위 사진:지난 10월 22일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대학입시 거부 뻥튀기 선전전' 중.

설령 그렇더라도,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 거야’ 따위의 근거 없는 믿음으로 나를 속이면서 사는 것 보다는, 힘들더라도 그 불안을 직시하고 사는 게 조금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 불안해하며 끙끙거리는 것 보다는 “나 힘들어, 너도 힘들어? 그러면 어떻게 해 볼까?”같은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그래도 약간은 더 마음 편하더라.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서 활동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지 않은 20대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기뻤다. 이 사회에서, 각자의 불안을 그저 혼자서 처리하라고 요구받는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어느 한 새벽, 문득 찾아오곤 하는 참을 수 없는 그 감정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잘 상상이 안됐다. 그런 얘기들을, 그런 고민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게 내가 찾은 대학거부운동의 의미였다. 일단 지금은, 그리고 당분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원해보자면, 이런 불안들을 함께 털어버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단순히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 받고 위로받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 협동조합일 수도 있고 네트워크일 수도 있는 ‘모임’을 꾸려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박하면서도 사실 엄청나게 거창한 꿈을 꾸며, 정작 그다지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나의 대학거부 이야기는 여기까지. 흠.
덧붙이는 글
어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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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3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2일 13:40:2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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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사이트는 내 일 밤낮의 이전 커플 조금씩 작성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트북이나 컴퓨터의 시스 세션 귀하의 블로그를 보니 아마도 믿고 그 또는 그녀가 유사한 것은 당신을 위해 전처 발생했다. 단지 어떤 개념에 대해?

    2011.11.26 23:5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27. 07:45

[나의 대학거부] 4년의 공장 제련기간을 거부한다

레쓰



나는 전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아니 이제는 학교를 잘린 전문계고 고등학교 학생이다. (졸업을 불과 몇 개월 남겨두고 무단결석이라는 엄청난 행위를 감행하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계속 여러 인권운동, 사회운동에 참여해왔고,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났다. 하지만 입시교육이나 대학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도, 대학에는 일단 갈 생각을 한다. 나도 기존의 권위주의, 군사문화, 이성애중심주의, 마초 쩌는 이 ‘학교’라는 시스템을 잘 버텼고 수없이 많은 체벌과 욕설 속에서 큰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나름 길들여졌기 때문이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고3인 내 주변에 넘실거리는 입시의 물결 속에 조용히 휩쓸려 수능을 보고, 대학교에 들어갈 줄 알았다.

청소년운동을 열심히 해온 청소년 중에는 대학에 자기가 활동해온 경력들을 제출해서 수시나 특별 전형, 입학사정관제 등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도 있다. NGO(엔지오, 비정부기구) 활동 전형이 있는 성공회대학교 같은 곳에 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학에 활동한 경력을 낸다고 다 붙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대학에 간 경우가 없진 않다. 어떤 사람은 그런 모습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아 “활동 팔아 대학 간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청소년 활동가들의 현실을 자조하는 의미에서, 때로는 그렇게 대학에 간 본인이 말하기도 한다. 나도 그냥 조용히 활동한 경력을 팔아 대학에 가려고 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은 역시 성공회대학교였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성공회대학교. 단지 그 학교에 NGO 활동 전형이 있고 몇 명의 청소년 활동가들이 그 대학에 청소년운동 경력을 통해 입학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성공회대가 표방하는 이념을 동경했기 때문에 “나는 저 대학에 들어가리라, 반드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도 하나의 수험생으로 고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위 사진:5차 희망버스에서 대학입시거부를 외치다


반값등록금 집회와 대학의 현실

당연히 대학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대학 진학에 대한 회의를 부채질한 것은 바로 등록금 집회였다. “반값 등록금 실현하라!” 이렇게 외치는 대학생들의 현재 모습보다도, 대학을 졸업한 그 후, ‘대졸’의 생활이 눈에 더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풍족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직업의 질과 소득, 임금은 양극화되고 있었고, 취업 경쟁에 매달리고, 취업을 하더라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씩 등록금을 내느라 받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 7, 8년의 세월을 보내는 선배들을 보았다.

그렇게,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대학생들의 현실을 보고 들으면서 과연 한국에서 대학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는 굳이 빚을 내가면서까지 대학을 다니는 것일까. 왜, 대학 교육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대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리도 목숨 걸고 대학을 가려 하고 있을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토록 동경했던,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성공회대 또한 내가 대학입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줬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일까. 교수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바로 그 대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사건들이 일어났고,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던 학생들에게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 사건도 일어났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은 학교 운영 전반에서 인권과 평화를 존중하고 실현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학교의 특색을 만들고 학교를 꾸미는 상품 포장일 뿐인 것일까? 과연 성공회대에 진학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성공회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엄청난 동경이 무너지면서, 또 다시 내가 과연 대학을 가야 하는가, 가고 싶은가 되새겨보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제련되는 상품이길 거부한다

대학이 여러 잘못을 저지르고, 학생들을 탄압하고, 기업화되는 것은 성공회대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념이 사라진 대학교, 언론의 자유가 사라진 대학교, 학문의 자유가 사라진 대학교.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교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런 의미들마저 잃어버린 그런 대학에 가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문 끝에 얻은 답은 간단했다. 그런 대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취업을 위한 1등급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위 사진:레쓰.
나 는 그런 ‘나의 상품화’에 반대한다. 김예슬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고 대자보에 썼듯이, 상품의 길이 아닌 인간의 길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년간 대학교라는 이름의 공장에서 또 다시 제련되는 것에 불과한 이 현실, 더 좋은 스펙 상품이 되기 위해 등록금과 시간을 갖다 바쳐야 하는 현실에 반대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생들의 현실 뿐 아니라, 우리들, 청소년들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보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계속 상품화 되는 과정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교육이 점수 매겨지고 등수 매겨지는 무한경쟁의 과정이지는 않은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초중고를 경쟁 속에 보내는데, 그렇게 가게 된 대학마저도 경쟁 속에 상품화되는 과정이 되어버렸다.

이 무한경쟁 사회에서 대학입시거부는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대학진학률 세계 최고, 80%가 대학을 나오는 이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고 살겠다는 선언이니 말이다. 운동사회 내부에서조차 학벌을 따지는 이 현실. 그렇지만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나와 같이 이 운동을 하는 다른 누구는 서울대를 자퇴하고, 누구는 수능을 거부한다.

대학입시거부가 정말 미친 짓일까? 사람들은 기억이나 하고들 있을까 모르겠다. 올해, 한 고등학생이 성적을 이유로 분신자살을 기도했던 사건을. 몇 년 전 초등학생이 도복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던 사건을.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정말 미친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이 미친 경쟁교육을 견뎌내고 대학에 가도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다. 다시 미친 경쟁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정말 미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청소년 수십 명 수백 명이 입시경쟁으로 목숨을 끊고 꿈을 잃어도 기사거리조차 되기 힘든 이 나라에서 정말 미친 것이 뭔지, 사람들이 우리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듣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레쓰 님은 19살, 중졸과 고졸에서 간당간당하며,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진보신당 청소년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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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2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26일 11:58:3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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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광흠

    e 노트에 소개했습니다^^

    2011.10.28 14:0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20. 01:33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호야



[편집인 주] 2012학년도 수능과 입시철을 앞두고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비유하는 ‘가방끈’을 비꼬아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을 지은 19살 청소년들이 준비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 학벌사회, 불안정노동, 양극화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불복종 운동이다. 진작 대학을 안 갔거나 자퇴한 사람들도 함께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한때는 대학에 안 가는 인생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학에 안 가고도 사지 멀쩡, 정신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대학에 안 가면 삶이 끝날 것만 같은 이 땅에서 고졸자로서 목소리를 내고자 글을 써본다.

고졸 인생의 서막

나는 사실 대학 거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모아놓고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공부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모두 대학을 목적으로 그 학교에 진학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나의 제도교육에 대한 반감은 고등학교 3년간 서서히 발전을 거듭했지만 난 차마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3 봄, 아직은 조금 쌀쌀했던 3월의 어느 날, 고려대 김예슬 씨가 대학을 자퇴했다. 나는 당시 경향신문을 보고 있었던 터라 그날 아침 1면에서 그녀의 소식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내 반응은 ‘드디어 대학생의 입으로 신자유주의가 삐걱대는 소리를 듣는구나!’ 뭐 이런 거였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을 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려워졌다. 고3이라는 멍에가 나를 죄여왔고, 더 이상 깊은 고찰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나도 대학이 별로 맘에 안 들면 박차고 나와야지.’라고 생각한 채 다시 입시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그때까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제도교육의 목에 비수를 꽂자.’ 나의 고3 좌우명이었다. 그 말인즉슨 일단은 제도교육에게 몸이고 마음이고 다 내주고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되어 제도교육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계획은 올해 2월 1일, 정시 다군 발표가 있던 날 산산이 깨졌다. 불합격. 가, 나, 다군 정시에서 몽땅 떨어져버린 것이다.(수시는 쓰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틀어져버린 인생에 눈물이 나왔다. 그날 공교롭게도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야했던 나는 진료가 끝나고 나오면서 신촌 대로를 질질 짜며 걸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인생, 이제 어쩔 것인가. 나는 고뇌에 빠졌다. 나는 내 삶의 1년을 또 유보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것은 해선 안 될,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김예슬 씨가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도 나눔문화에서 활동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1월 말부터 아수나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면서 내 인생을 대학 없이 그려 나가보자. 나는 그렇게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고졸자’ 인생의 서막이다.

대학 거부, 그 이후_ 고난

그럼 대학을 거부한 이후에 나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먼저 고난 편. 내가 대학생이 아닌 ‘고졸 스무 살’로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고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자퇴랑 아예 안 다닌 거는 전혀 다른 거야! 그래도 일단 가보고 결정하자.”, “재수는 훨씬 쉬워, 이미 공부한 거 한번 더 하는 거잖니.”, “1년 그걸 못 참냐.”, “사이버대학이라도 원서 넣는 게 어떠니?” “우리 언니가 대학을 안 가다니! 언니, 재수하면 안 돼? 친구들이 너네 언니 어느 대학 갔냐고 물어보면 쪽팔려.” … 고졸자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선포한 후 가족들에게서 들은 수많은 말들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초기에는 재수를 끊임없이 종용하던 말들이 시간이 흘러서는 “돈이나 벌어라”, “언니 취직 안 해?”로 변해갔다. 나는 한순간에 집에서 가장 창창했던 사람에서 가장 무가치한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지갑을 여는 어머니가 눈치를 주기 시작하고 동생에게서 멸시의 눈빛을 받는 기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가정에서의 탄압도 힘들었지만 사회에서의 차별도 피부로 다가왔다. 대학 진학자가 80%에 육박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유별난’ 20대였다.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나 강연의 이름에는 언제나 ‘대학생’이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생이시죠?”하고 운을 뗐다. 이 사회의 ‘대학중심주의’는 도처에서 나를 공격해왔다.

대학 거부를 결심했을 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은 각오했지만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가끔은 정말 대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은 취업의 관문까지는 자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너의 미래를 그려내 보여줘!’라며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나는 기껏해야 몇 주 앞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누군가 체계적으로 닦아놓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그려낼 수 있는 미래 청사진의 양이 행복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한 압박과 차별들이 대학에 안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가정과 사회 도처에 깔려있는 대학중심주의와 학벌 차별, 이제 아파하고 있지 말고 우리도 아프다고 소리쳐 보는 건 어떨까.

대학 거부, 그 이후_ 변화

이번에는 변화 편이다.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학에 안 가면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던 그 압박감은 단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번엔 나에게 일어난 변화와 대학 거부에 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겠다.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운 좋게 그때 대학에 합격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4학년처럼, 과제와 시험에 여전히 시달리면서, 거기에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장학금을 노리려고 정말 대학 공부에 몰두하는 인생. 결국 젊음의 증표인 저항을 실현할 기회는 쥐꼬리만큼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쥐고 있던 것을 (반강제적이었지만) 놓음으로써 변화했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나의 의식을 깨고 나온 것이다.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리치는 것에 비해 그 반향은 아주 미약했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소리치고, 움직이면서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대학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취업→결혼(가정)=행복한 인생’이라는 공식에 돌을 던지고 싶어서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대학의 존재 이유와 내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분명 개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 사회인데 왜 정작 본인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기를 미루고 다들 정해진 루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대학 진학률 80%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학에 관한 진지한 고찰 없이 그냥 너도 나도 가는 것,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는 자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의미가 아닐까?

최근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을 보고 놀랐다. 거기의 진로 상담 부분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온다.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스카이(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뜻하는 은어) 중 한 곳에 들어가서 토익 몇 점을 넘기고 해외 어학연수를 가고 성형수술을 하고…. 우리는 그저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길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부딪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분명 불안하고 어두컴컴한 가시밭길이겠지만, 그것이 내가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탈학교 예찬자가 되었다는 것일까. 나는 12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가 나에게 주는 억압에 대해서 불평만 할 줄 알았지 어떠한 거부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9개월간 학교 밖을 나와 여러 가지 활동과 세미나를 하면서 ‘길 자체가 학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지난 3년간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을 이 9개월간 길에서 배웠다. 유유상종하던 학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나의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 또한 대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공부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찾아보면 여러 가지 세미나를 하고, 함께 살아갈 방안을 모색하는 대안 공동체들이 꽤 있다. 나도 그중 한 곳과 접속하여 몇 달간 세미나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대학을 안 가면 배우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배움은 도처에 있다.

앞으로의 행보

대학에 가든 안 가든 행복한 삶에는 언제나 질문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이 있다면 배우게 되고, 내가 갈 길이 보인다. 그런 질문을 갖지 못한다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게 된다. 나도 한동안 갈팡질팡 했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불의에도 자주 침묵하고, 도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학교에 다니던 12년간 순응만을 배워서 그런지 머리는 저항하라고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나는 불의를 맞닥뜨려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 또 내 마음이 가라는 데로 충실히 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꼭 하고 싶었던, 한번뿐인 기회들을 날려버리는 일이 많다. 좀 더 나에게 떳떳하고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아직 나는 글 외에는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내 꿈은 이 정도다. 이 꿈들과 나의 질문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아직 어떤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직업이면 더 좋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 주리라 믿는다. 요즘 나를 장악하고 있는 키워드는 자립과 주거권이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상반기에 아수나로 친구들과 스쾃 운동을 해 보는걸 제안해보고 싶다.

다시 대학 거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땅의 약 20%, 대학생 아닌 20대들이 조용히 입 닫고 사회의 흐름에 묻혀 살아간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입을 열고, 여기 우리도 있다고 외친다면 어떨까. 무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이번 대학입시거부 20대 선언이 개개인이 조금씩 틀에서 빠져나와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아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원 없이 외쳐보면 좋겠다. 부디 많은 분이 용기 내어 동참해주시길! 가지 않은 길, 분명 어려운 선택이지만 한번 뿐인 인생이라면 조금 스릴 있게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호야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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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8일 18:14:5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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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0.20 02:33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동

    접때 중국집에서 밥 먹으면 한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었네요. 한겨레 1면 나온 거 보고 깜놀..
    앞으로 욕 많이 드실텐데 기운내시고 저처럼 맹목적이고 열광적인 팬도 있으니..ㅎㅎ

    2011.10.20 23:25 [ ADDR : EDIT/ DEL : REPLY ]
  3. Very good, thanks for sharing

    2013.01.02 14:3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8. 29. 04:25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 문의: 010-7270-1900(따이루)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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