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4. 3. 28. 11:10

http://www.redian.org/archive/68571





교육도 연대도 '평등'에서 시작해야

[반론] 서윤님의 레디앙 칼럼 글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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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활동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2014년 3월 21일, “반핵과 탈핵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여러분께, 질문이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아수나로 인천지부가 3월 20일에 열린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 – 김익중 교수 초청 탈핵 강연>에서 이 행사의 표어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배포한 전단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같은 내용을 온라인에도 게시한 것입니다.


그 뒤에 아수나로의 회원이며 페이스북 녹색당 그룹에도 가입되어 있던 이가 그 글을 페이스북 녹색당 그룹에 올리면서 페이스북에서 논쟁이 촉발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글을 행사 주최 단체들 중 인천환경운동연합,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YWCA 등의 홈페이지에도 올려뒀습니다.

참고로, 이 글에서 녹색당이 특별히 언급된 것은, 2012년 선거 당시 이 구호에 대해 아수나로가 문제제기한 적이 있으며 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행사 홍보물 이미지)

(사건의 발단이 된 행사 홍보물 이미지)


이에 대해 서윤님이 이런 글(관련 글 링크)을 레디앙에 쓰셨더군요. 일단 여기에서 교사와 학생 관계를 “교육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예시”라면서 끌어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탈핵운동 단체들이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있는 관계도 아니구요. 혹시 탈핵운동 단체들이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그런 관계라고 생각하신다면 정말 후덜덜, 무서운 일입니다만. 글 전체를 살펴보면 아무래도 교육 문제를 주로 이야기하고 싶었고 탈핵운동의 표어 이야기가 그냥 예시인 것처럼도 보입니다.

그런데 그럼 해당 표어에 대한 논쟁 이야기를 굳이 가져올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논변이 산만하고 예시가 부적절하며 추상적인 개념에 휘둘린 글이라 하겠습니다.



평등은 교육의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여하간 해당 글의 가장 주된 논지가 “교사와 학생은 평등할 수 없으며 위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교육을 부정하는 것이다.”라는 것이니 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서윤님은 평등이라는 개념이 너무 범위가 넓기 때문에 그런 개념을 들고 오면 여러 논의들을 무력화시킨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바로 이 글이 상위 개념들을 끌어와서 논의를 거칠게 퉁치고 있습니다.

동시에 서윤님은 한편으로는 ‘평등’이나 ‘교육’ 같은 개념을 본인이 생각하는 좁은 의미로만 쓰고 있습니다. 예컨대 ‘평등’이라는 개념 자체도 도대체 무엇이 평등인지, 같게 대하는 것이 평등인지 다르게 대하는 것이 평등인지, 사용할 때 세밀한 정의가 필요한 개념입니다. 그런 논의 없이 ‘평등’을 ‘동일’하거나 ‘등가의 교환(호혜)을 할 수 있는 관계’라는 협소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 글의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저는 이 글이 ‘역할’과 ‘위계’를 혼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생은 학교-교육에서 역할이 다릅니다. 그러나 역할이 다른 것이 곧 상하관계, 위계를 만든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역할과 자리의 다름이 교사를 학생의 ‘윗사람’으로 위치지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완전히 평등한 관계란 건, 내가 보기엔 호혜적 관계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베풂의 질과 양이 거의 동등함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라는 주장도 ‘베풂의 질과 양’을 대체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왜 그게 ‘동등’해야만 ‘평등’한 건지, 마치 자명한 것처럼 적혀 있지만 저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활동보조인은 장애인의 활동을 보조하지만 장애인에게 보조를 받는 것은 별로 없으니 장애인과 위계적인 관계를 맺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서로 평등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 안에서도 그다지 서로에게 ‘동등한 질과 양의 베풂’을 주고받지 않고 있는 경우를 더 많이 보지 않습니까?


원래 인간관계 안에서 얻는 이익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질과 양을 평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만약 교사가 학생과 함께 교육에 참여하는 일에서 보람과 기쁨과 삶의 의미를 느끼고 또 그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면, 그 관계에서 교사는 충분히 많은 것을 얻고 그 관계를 지속할 이유가 있습니다.

굳이 ‘배움’의 관점으로만 그 ‘호혜’를 평가하려 드는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현실 속에서 ‘지적 권위’ 등의 문제를 얘기한다면 같이 고민을 나눠볼 만도 하겠습니다만…. 추상적이면서도 자의적으로 정의된 호혜니 평등이니 하는 말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위계가 없으면 교육도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는 단견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등한 관계 속에서 교육을 이루려는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들(또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 서윤님에 따르면 후배, 후임자, 자녀 등과 그 상대 역할들)에게는 모욕적으로 다가올 이야기지요.

근본적으로는 ‘교사와 학생’ 관계가 없으면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그렇습니다. 일단 학습자의 경험에 중심을 둔 교육, 무형식 교육 등을 다루는 여러 교육학적 논의들이나 탈학교론의 주장을 깨끗이 무시하는 셈이지요. 혹시 지극히 ‘학교화’된 고정관념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할 수도 있겠군요. 아래 엄기호님의 논의도 역으로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평등한 관계여야 비로소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대화는 어떤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가. 평등한 관계에서만 대화가 일어나요. 너와 내가 평등하다고 가정할 때만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어요. (……) 그런데 지금 학생과 교사의 관계가 평등한가요? 우정의 관계인가요? 여러분도 처음에 교사가 됐을 땐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이번에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교사들 인터뷰를 해 보면 선한 마음으로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100이면 100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해요. 여러분 중에도 아마 그런 분들 많을 거예요. 그런데 이게 그냥 애들한테 가서 장난치고 떡볶이 사준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친구 같은 교사가 되려고 할 때 제일 필요한 게 우정의 관계이고, 우정의 관계는 평등을 전제로 하죠.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면서 학생과 교사를 평등한 우정의 관계로 안 바라봤어요. 친구라기보단 ‘큰형님’이 되려 했죠.” (엄기호, 〈당신은 학생에게 얼마나 ‘유용한’ 존재인가?〉, [오늘의 교육 제13호(2013년 3․4월호)])


엄기호님의 주장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엄기호님은 이 앞에서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평등’하다고 이야기합니다.(서윤님이 혹시 이것이 자신의 ‘상징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서 굳이 덧붙여둡니다.) 그리고 평등해야만 교육이 가능하다고 하지요.

저는 엄기호님의 논리 전개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런 논의가 교사와 학생 사이의 평등이라는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성실하게 성찰한 결과이며 ‘들을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사와 학생 관계가 평등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평등한 관계에서 교육이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평등은 1차적으로 우리가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징적 평등’에 불과하다구요? 아닙니다. 우리가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은 바로 실질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평등은 누군가가 더 열등하고 미성숙한 존재라는 편견을 버리는 것입니다. ‘역할’의 차이 등을 ‘위계’, ‘상하관계’로 간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등한 관계에서의 만남과 대화와 경험을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지지는 것입니다.

서윤님이 학생인권조례 공청회에서 들었다는 학생 분의 발언은 아마 그런 생각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아마 청소년운동을 하는 활동가들 사이에 큰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자크 랑시에르 등의 논의도 좀 더 붙여보고 싶은 욕심이 들지만 분량 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은 보호주의를 반영하고 활용한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표어 문제로 돌아오겠습니다. 저는 이 표어가 아이들에 대한 ‘보호주의’를 활용한 것이고, 탈핵운동 내의 아동․청소년관(觀)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후로는 그냥 ‘청소년’이라고 쓰겠습니다. 10대 또는 0대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해주십시오.)

그 결과 청소년들을 탈핵운동의 주체에서 배제하는 문구가 되었구요. 물론 이 문구 하나 때문에 청소년들이 배제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문구를 포함해서 탈핵운동,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사회 전반의 청소년관 자체가 청소년들을 배제하지요. 이 문구는 단지 그런 것을 드러내는 하나의 예시이겠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청소년이 무력하고 약한 희생자, 어른들이 책임지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불려나오고 있다고 봅니다. 청소년, 실제로 보호대상 맞습니다.

그런데 비청소년도, 실제로 보호대상이 맞습니다. 이건 누구도 모르지 않을 텐데요. 특히 방사능 물질의 경우, 정도차가 있을지언정 모두에게 해롭고 모두가 보호받아야 합니다. 왜 굳이 “아이들”을 콕 집어서 쓰는지,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지배적 관념에 편승하는 것은 아닌지 따지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론 서윤님의 말처럼 좀 더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위계’ 속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주장 아닐까요? 그것은 보호나 보장을 시혜로 보는 것이니까요. ‘보호’가 위계와 차별의 이유가 되고, 누군가를 주체에서 배제시키고 무력화시키는 이유가 되며, 누군가를 보호대상의 자리에만 위치시키는 ‘보호주의’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A4 1쪽의 짧은 글이지만, 그것으로도 우리의 문제의식이 충분히 전달되리라 믿었습니다. 사회운동을 해온 사람들이라면, 청소년 보호주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도, 적어도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차용하는 것의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제기만으로도 전반적인 청소년관을 성찰할 계기가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했던 모양입니다. 설명이 참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이 문제제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징후는 실은 2012년부터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2012년 글입니다.


“SNS에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녹색당’이란 구호가 적힌 작은 손현수막을 들고 있는 사진이 있었는데, 어떤 청소년 단체에서 이에 대해 ‘청소년과 아동에 대한 보호주의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사무처에서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생겼다. (……) 다음날 아침에는 ‘청소년과 함께 핵없는 세상을’이라고 수정된 손현수막이 사무처에 도착했고, SNS에 바로 사진이 올라갔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서 어리둥절하고 있으니깐, 옆자리에 앉아있는 청소년 운동을 했던 활동가가 말을 걸어주었다. 본인도 그 청소년 단체의 지적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들을 껴안고 가야한다고.” (송준규, 〈풀뿌리들의 놀이터〉, [공동선 104호]. (관련 글 링크) 에서 인용.)


“청소년과 함께 핵 없는 세상을!”이라니, 이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표어입니까? “아이들에게”를 바꾸다보니까 나온 괴작인 셈입니다. 게다가 “청소년과 함께”라니, 그 ‘함께하는’ 주체에서 청소년이 떨어져나왔다는 문제점은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아이를 청소년으로 바꾼다고 될 문제가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오히려 ‘어린이’보다는 ‘아이’라는 말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라는 말 자체를 갖고 태클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실로 “동의하지 않지만 그래도 청소년운동도 껴안고(?) 가야 하니까”라는 얕은 발상에서 나온 표어라고 할 만합니다. (옆자리에 앉아있었다는 청소년운동을 했다는 활동가가 누군지 궁금합니다. 저랑 면담 좀 하실래요? ^^)


저는 “아이들”이 “다음 세대”를 뜻한다는 변호가 기만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핵 없는 세상을!”이라는 표어를 보거나 들었을 때, 수백년이나 수천년 후에 40대, 50대, 60대 모습을 한 미래인을 떠올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나이가 적은, 청소년의 모습으로 떠올릴 겁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순수함, 무고함, 약함,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 결국 이 표어가 보호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며 청소년을 동정적으로 보는 관점을 활용하고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포스터와 홍보문구에서 보이듯 ‘내 아이’, ‘내 자녀’, ‘우리 아이’를 내세우는 것과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말입니다.


탈핵을 주장하는 분들이 거론하는 것이 주로 2030년 탈핵인 것으로 압니다. 다소 유보적 입장의 정당도 2040년을 이야기하더군요. 독일은 2022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엄청나게 먼 미래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룰 수 없는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나요? 저는 실제 내세우는 정책을 봐도 그렇고, 저 표어의 효과 면에서도 그렇고, ‘아이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음 세대’를 가리킨다는 변명은 문제제기를 피해가려는 불성실한 답변일 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세대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이들’이라는 표현으로 제대로 전달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아이들’이라는 표현으로만 전달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연대’도 평등에서부터


이 글을 통해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말하자면, ‘평등’이나 ‘위계’나 ‘교육’이나 ‘아이들’ 등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쓰다가 그것 자체에 경도된 나머지 인정할 부분마저 간과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 담지는 못했지만, 저는 탈핵운동을 포함하여 환경-생태-녹색운동에 청소년보호주의나 청소년 차별의 문제가 상당히 뿌리 깊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생태-녹색운동뿐만 아니라 교육운동이나 여러 영역에도 이런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육단체, 환경단체 등이 다수 참여하는 ‘아이건강국민연대’가 청소년 게임셧다운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모습이 대표적 예입니다. 그런 문제들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청소년운동과 마찰을 빚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청소년운동은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비판을 하고, ‘평등’을 요구하겠지요. 교육뿐 아니라 연대 역시 ‘평등’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이번에 간단한 글을 하나 써서 우리의 문제의식을 전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아마 더 많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탈핵운동을 하는 분들 등이 청소년운동과 연대할 생각이 있으시다면, 우리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면, 다시 한 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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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9. 6. 20:29
“웃음 + 정치 ⇒ 변화”
[인터뷰-만화가 최규석] “진보신당, 길게 보고 길게 갔으면”



   
  ▲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
“찌질한 인생, 불가촉 루저 원빈이 온다.” 최규석의 신작 『울기엔 좀 애매한』 뒷표지의 소개 문구다. TV 드라마를 보고있자면 세상에 재벌집 잘난 아들딸들만 넘쳐나는 거 같아서 그렇지, 원빈을 비롯한 『울기엔 좀 애매한』의 등장 인물들이 엄청나게찌질하다거나 찢어지게 가난한 것 같지는 않다. 그저 평범하달까, 돈은 좀 없고.

“차상위계층 청소년들이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자기가 정말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는 힘든 상태에 처해 있는 친구들이죠. 보통들 살아가는 틀 안에는 들어와 있는데, 그 틀 안에서는 제일 밑에 있다 보니까 항상 장애에 부딪히죠.”

그런 상태나 장애라는 건 물론 돈이다. ‘김밥 극락’에서 일하는 홀어머니의 외동아들인 원빈은 학원비를 밀리고, 방학을이용해 힘겨운 아르바이트를 한다. 미술학원 만화반의 동기들 사정도 대동소이, 최저임금 시급 4천 원짜리 알바는 언감생심 꿈도 못꾸고, 얼굴 예쁜 덕에 시급 7천 원짜리 술집 나가는 은지가 그 중 ‘난 년’이다.


가난한 학원생들, 그들이 웃는 이유


“그런 거를 견디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친구들은 웃음으로 견디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의 웃음이라는 게 뭘까? 어떤사람들은 희망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통스런 현실을 잊기 위한 거짓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웃음이 두가지 역할을 모두 다 가진 거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모이면 심각한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고, 어떻게든 웃기려고만 한다고 하더라고요. 10대 남자 아이들은 웃기는게 삶의 목적에 가까운 거 같아요. 왜 그런 걸까, 고민을 했어요. 결국에 웃음의 역할이라고 하는 건 이 상황을 버티게 하는 거하나밖에 없는 거 같아요.

   
  ▲ 최규석 작가 (사진=최규석 제공)
이런 웃음에 좋은 의미를 부여하거나 나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너희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이렇게 부조리한데웃으며 넘어가려고 하느냐는 비난도 필요 없고, 웃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보인다는 투의 과장도 필요 없어요. 웃음은 그냥 필요한거죠.

이렇게 웃으며 버티다가 웃음 위에 뭔가 하나를 더해야 변화가 가능한 거지, 웃음을 빼고 그 자리에 다른 거를 집어넣으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웃음은 젊은 친구들 나름의 건강한 상태예요.”

『울기엔 좀 애매한』이 젊은 웃음을 그린 만화이다 보니 아주 재밌다. 한참 세대 차이 나는 10대 후반 아이들 이야기라고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진공에 격리된 아이들이 아니므로 당연히 부모, 학원 선생, 알바 부리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이야기가나오고, ‘그럴싸하네’라고 찬탄하게 할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원빈을 고용한 ‘광장 서림(이해찬 전 총리가 경영했던 책방과 이름이 같다. ^^)’ 주인은 산발한 머리, 꾀죄죄한 수염에 뿔테안경을 쓰고 이렇게 말한다.


최저임금, 당비 내는 자본가, 알바비 떼어먹기


“최저임금 4천 원. 몰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을 법으로 정해놓은 거야. 이런 건 알아둬야지. …난 이 미친 자본주의가 싫다. … 존경은 무슨. 짱돌 들고 투쟁하는 것도 아닌데. 옛날 얘기지. 지금은 당비나 내고 뭐.”

이렇게 말하던 서점 주인은, 실컷 부려먹은 원빈의 알바비를 떼먹고 도망가려다가 들키고는 오히려 역정을 낸다.

“그러니까 너 지금 내가 그깟 이사비 몇 푼 아끼려고 이사할 거 뻔히 알면서 널 고용했다고 그러는 거야? 와아~ 나~. 내가 목숨 걸고 이 천민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온 게 결국 더러운 자본가 취급이나 받을려고 한 거구만. 죽겠네.”

최규석은 만화 주인공들을 통해, 이런 세상을 만든 어른들을 돌려 비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서점 주인 같은 사람이 간혹 있죠. 정치적인 윤리와 현실에서의 윤리를 완전히 따로 떼놓는 사람들이 종종 있잖아요.자기들이 꿈꾸는 세상 따로,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 따로인 사람들. 그러면서도 선거철 되면 특별당비는 꼭 챙기는 사람들.

서점 주인을 등장시킨 건 딱히 진보진영의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예요. 남들처럼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나쁜 어른들일 뿐이예요. 자신이 바라는 것과 현실을 분리시켜서는 안 되죠.”

최규석의 전작들에도 자취방을 소굴 삼은 대학생들이나 취업시험에 사그라드는 인생들이 자주 출몰한다. 그가 읽는 88만원세대의 현실은 무엇일까?


임금격차와 입시지옥, 그리고 돈과 꿈


“임금격차가 심화된 게 이런 학생들 생활을 어렵게 하는 제일 큰 원인인 거 같아요.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이돈으로만 몰리니까, 더 좋은 직장을 얻어야 되고, 더 좋은 직장을 얻으려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점수가 좋아야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굉장히 큰 공포에 짓눌려 있는 거죠.

이 친구들의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꿈의 종류에 따라서 드는 돈의 액수가 달라진다는 거가 문제예요. 화가라거나 연주자라는꿈이 엄청난 꿈이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당연히 꿀 수 있는 꿈이잖아요. 이런 당연한 꿈을 꾸는데, 지출할 수 있는 돈의 액수에따라 그 꿈이 좌우되는 구조가 문제죠.”

   
  

대학등록금이 없어 재수하게 된 은수의 자취방에 찾아온 동생 준수는 집안 형편도 모른다고 형을 타박한다.

“철이 없는 건 형이지. 형한테는 엄마 아빠보다 만화가 더 중요하지. 나 같으면 대학이고 뭐고 벌써 때려치우고 공장 갔다. … 그냥 형 보면. 나한테 꿈이 없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

스물이 채 안 된 아이 입에서, 꿈이 없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세상. 최규석은 어떻게 하고 싶을까? 그가 웃음 위에 더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웃음 다음에 플러스 알파는 당연히 구조적인 부조리에 눈을 뜨는 거고, 바꾸기 위한 노력이겠죠. 그거밖에 없잖아요. 여럿이 힘을 모을 수 있으면 더 좋겠고, 하다못해 공부만 조금씩 해도 엄청나게 많이 바뀌겠죠. 정치에 대한 공부, 시민으로서의 당연한권리에 대한 자각을 해야죠. 이 만화 주인공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받고 있는 거잖아요.”

   
  

‘결론은 버킹검’이라고 해서, 정치가 쉬운 건 아니다. 정치의 발견이 어려운 만큼이나 정치에서의 도전은 힘겹다. 최규석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밑바닥의 고민이 세상이다


“심상정씨 사퇴한 다음에 정치 얘기는 잘 몰라요. 찍어야 할 사람 사퇴해서 찍을 사람 없었고, 투표장 가서는 유시민씨 찍었던 거 같아요. 심상정씨가 어떻게 하실지는 앞으로 지켜봐야죠.

진보신당 분들에게서 가끔 연락이 와요. 저 하는 일이 만화 그리는 거니까 그런 부탁에 당연히 응하기는 하는데, 안타까운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저뿐만 아니라 당에 몸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당장 써먹기보다는 키워서 써먹어야죠. 핥고 핥아서 단물다 빠지면 나중에 못 써먹잖아요.

   
  
우리가 워낙 어렵다 보니 갑갑함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어차피 하는 고생인데, 길게 보고 길게 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직접 당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죄송하지만, 진보진영이라는 게 원래 고생스러운 거잖아요.”

최규석 작가는, 『사채꾼 우시지마』와 『자학의 시』라는 일본 만화가 리얼리티가 뛰어나다며 <레디앙> 독자들에게 읽어보길 권했다.

“이 만화는 사람들이 형이상학적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는 현실적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줘요. 밑바닥의 고민들을 이어붙이기만 해도 얼마든지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방법론을 보여줘요.”

‘재미있는’ 노동운동 장편만화를 구상 중이라는 최규석 작가와의 인터뷰는 9월 1일 오후에 최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부천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진행됐다.



2010년 09월 04일 (토) 08:49:35 이재영 기획위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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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제로 학교에선 애들 웃기려고 학교다닌다는 평을 듣는 아이들이 몇 있더랬지요..

    2010.09.07 00:05 [ ADDR : EDIT/ DEL : REPLY ]
    • ㅎㅎ 저도 같은 반에 몇 명..
      그런 분들이 있어서 학교 생활이 즐겁긴 한데

      2010.09.09 22:57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09. 12. 7. 16:59


버거세트 값도 안 되는 청소년 시급


마음 따로 얼굴 따로…“항상 웃어야”


[짱돌토크] 10대들의 ‘알바’ 뒷담화…“우리도 노동자예요”



겨울방학과 본격적인 아르바이트 시즌을 앞두고, 이번 ‘짱돌토크’는 10대 청소년들의 ‘알바’ 이야기를 준비해봤다. 주변을 둘러보면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주유소 등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이들은 왜 알바를 할까.이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레디앙>은 어른들의 문제에 가려져, 잘 조명되지 않았던 청소년들의 노동현실을당사자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봤다. 이야기꾼으로 참석한 ‘짱돌’들은 현재 ‘커피숍 알바’를 하고 있는 김해솔양(17세)과 ‘패스트푸드점 알바’ 등의 경험이 있는 윤혜진 양(18), ‘옷가게 알바’ 등을 해본 한소영 양(17)이다.이들은 현재 고등학교 재학중이거나 탈학교 학생이다.



청소년 노동자들의 실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 2,200원짜리 ‘헐값 노동’을 한 사연부터, 자신의 감정과는 달리 손님들한테는 항상웃어야 하는 애로사항, 선생님이나 부모님 모르게 알바를 하게 된 이유, 가게에서 만들다가 실패한 와플을 저녁으로 먹은 사연까지다양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또 알바를 뛰는 주변 친구들의 고민도 생생히 전했다.  

   
  ▲ 왼쪽부터 한소영 양, 윤혜진 양, 김해솔 양 (사진=손기영 기자)


청소년들이 알바를 하게 된 이유도 다양했다. 이들은 부모님에게 자유로워지기 위한 일종의 ‘독립 자금’ 마련부터, 학교에서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여가활동비, ‘사고’를 친 뒤 뒷수습을 위한 자금 마련 등의 이유를 들었다. 또 소비문화 및 사회적빈곤의 확산도 청소년들을 ‘생계 전선’으로 내모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좌담회에참석한 청소년들은 “우리들도 노동자”임을 강조하며, 학교에서 교칙으로 무조건 알바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건전한 직업의식을형성하도록 ‘노동인권 교육’이 필하다고 밝혔다. 또 사업주에게도 청소년들을 노동자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번‘짱돌토크’는 지난 3일 저녁 청계광장 주변 모 커피숍에서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 * *

- 어떤 알바를 했나?

김해솔 = 저는 올해 처음으로 알바를 해봤다.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테이크아웃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체인점이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커피숍이다. 시급 4,000원을 받으면서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일을 한다.”

한소영 =중 3 때인 지난해 처음 알바를 했다. 그 때 동대문에 있는 옷가게에서 일을 했다. 손님들한테 사이즈를 물어보고 옷을 골라주는일을 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하고 일당으로 25,000원(시급 2,200원 수준)을 받았다. 힘들어서 며칠뒤에 그만뒀다. 당시 돈을 많이 받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완전히 ‘착취’였던 것 같다.  당시 최저임금이3,770원이었다.



10시간 넘게 일하고 25,000원 받아

올해에는 워크넷이라는 곳에서 ‘전화알바’를 했다.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을 상대로 ‘이번에 인턴을 뽑을 거나 정규직을 채용할거냐’ 그런 걸 물어봤다. 오전 8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고 일당 45,000원을 받았는데, 제가 미성년자인 사실이 들통이 나서 며칠 못하고 잘렸다.그밖에도 다른 곳에서 하루 동안 ‘주거조사 알바’도 해봤다.  

   
  ▲ 한소영 양 (사진=손기영 기자)
윤혜진 = “첫 알바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의 하루짜리 ‘전단지 알바’인 것 같다. 이후에도다양한 알바를 했지만 올해에는 시급 4,000원을 받고 모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고, 엑셀 작업을 하는 ‘사무보조 알바’도해봤다. 일당 2만원 수준으로 하루에 3시간 반 정도 일했다.”

- 알바를 하는 이유는 무언가.

해솔 =부 모님과 이런 저런 문제로 싸우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으로부터의 ‘간섭’과 ‘도움’을 줄이기 위해 알바를시작했다. 요즘은 적금을 들고 싶다는 생각에 돈을 열심히 모으고 있다. 일종의 ‘독립자금’이다.(웃음) 당장은 힘들겠지만, 월세방을 마련해 보고 싶다.

주변 친구들은 용돈이 필요해서 알바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게 있지만, 그걸 사고 싶어도 경제권자인 부모님이 반대를 하면 사기 힘들다.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 전반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 알바를 하는 경우가 있다.”

소영 =저 같은 경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활동하는 것을 좋아해 차비가 많이 든다. 또 먹는 데에도 돈을 많이 쓴다.(웃음) 스트레스를먹는 것으로 푸는 것 같다. 특히 학생들은 시험 기간만 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험 전에필통이나 노트를 새것으로 바꾸는 친구들도 있다.

시험이 끝나면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들이 많다.특히 시험기간 전후로 돈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돈을 쓰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알바를하는 것 같다. 또 요즘 청소년들이 소비문화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 같다. 사고 싶은 것은 많아지는데, 갖고 있는 돈은 항상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은 항상 부족"

혜진 = “학교를 그만둔 뒤부터, 부모님한테 용돈을 달라고 말하기 미안해진 것 같다. 욕심 같아서는 이것저것 배우고 싶고 돈이 필요한데, 부모님들은 거기에 돈쓰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다. 수능을 위한 공부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다.

주변 친구들 중에 ‘사고’를 쳐서, 그 돈을 갚기 위해 알바를 하는 경우도 있다.(웃음)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났을 때, 학교기물을 파손했을 때, 솔직히 부모님한테 말하기 좀 그렇다. 그래서 몰래 알바를 뛰게 되는 것 같다.

또 TV을보면 예쁜 연예인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 성형을 위해 알바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학교에서 여자들끼리 모이면 성형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누구누구를 닮고 싶다는…. 그리고 집안형편 때문에 알바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 점점 살기가어려워지니까, 이제 부모님뿐만 아니라 청소년들까지 사회에 나가 돈벌이를 하는 것 같다.”

- 알바 현장에서 겪었던 힘들었던 점은?  

   
  ▲ 윤혜진 양 (사진=손기영 기자)
해솔 = 보통 남학생들의 시급이 높은 편이다. 어떤 고깃집은 시급으로 여학생은 2,500원을 남학생은 5,000원을 준다고 들었다. 둘 다 하는 일도 거의 비슷한데….

또 편의점 야간 알바는 보통 남학생들만 뽑는다. 여학생들도 시급이 센 편인 야간 알바를 하고 싶지만 뽑아주는 곳은 거의 없다. 여학생들은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여학생 시급, 남학생의 '반토막'

소영 = 요즘청소년들 사이에서 인력업체에 가서 막노동을 하는 알바가 유행이다. 비교적 하루에 많은 돈을 벌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서똑같은 일을 해도 청소년은 돈을 어른의 절반정도 밖에 받지 못한다. 물론 여학생들은 써주지도 않는다.

예전 에편의점에 면접을 보러갔는데, 제 나이를 물어보더니 연락처만 적고 가라고 했다. 물론 이후에 연락은 없었다. 사장님들은 청소년이면알바를 금방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면접에 가면 ‘6개월 이상 할 수 있느냐’고 꼭 물어 본다.

하 지만 우리들도 한곳에서 오랫동안 일하기를 원하다. 솔직히 일부 사장님들이 알바 청소년들에게는 말을 막하거나 힘들게 부려먹는 등그만둘 수밖에 없는 여건을 만드니까 그런 것이다. ‘빨리 그만 둔다’는 식으로 말하기 전에, 이런 것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해솔 = “지금 작은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는데, 사장님이 저녁식사는 보통 가게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한다. 그런데 자꾸 눈치가 보여서, 제가 만들다가 실패한 와플 등을 먹게 된다.(웃음)

소영=사무보조 알바를 했던 제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알바 첫날에는 직원들이 음식점에서 점심을 사줬는데, 둘째 날부터는 ‘자기돈으로 알아서 점심을 사먹으라’고 했다고 한다. 직원들은 따로 점심을 먹으로 간 것이다. 그 친구는 너무 황당해 하고 힘들어했다.



저녁식사는 '실패한 와플'로

혜진 = 예전에는 햄버거를 안 먹었다, 제 입맛이 고급이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하지만 모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했을 때, 배가 너무 고파서 어쩔 수 없이 햄버거 같은 ‘나쁜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리고 오전에 알바를 할 때는 아침식사로 베이컨이 들어간 머핀을 먹었다. 솔직히 그것도 몸에 안 좋은 음식인데…(한숨)

해솔 = 커피숍에 사람들이 엄청 몰릴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빨리 커피를 달라’고 보챌 때는 정말 짜증이 난다. 그래도 항상 웃으면서 주문을받아야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는 식당이나 커피숍에 가면 직원들한테 ‘빨리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제가 그분들의 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소영 = 전화조사 알바를 했을 때, 높은 직책을 가진 분 옆에서 일을 했다. 대기업에 전화하는 일이어서 자리 배치도 그렇게 한 것 같다. 눈치가 보이고감시를 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점심시간만 빼고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는데, 정말 숨 돌릴 시간도 없었다. 또 가끔대기업 인사팀에 전화를 할 때, 알바생이라는 이유로 마구 대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상냥하게 전화를 걸어야 해야 했다.  


   
  ▲ 좌담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장난을 치며 웃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혜진 =

“예 전에 사무보조 알바를 할 때, 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 저를 뽑을 때부터 여학생이라는 것을이용했던 것 같다. 이상하게 처음에 청소나 설거지를 시키더니 주급을 주는 날 저를 앉고 애인이 되어달라고 했다. 그만두겠다고하니까 ‘주급을 두 배로 올려주겠다’고 했다. 사장이 저를 돈으로 사려는 느낌이었다.



애인이 되어달라는 사장님


그런데 당시의 상황이 마음속으로는 정말 불쾌하고 짜증이 났는데, 돈을 받는 날이어서 그런지 ‘막말’을 하지 못했던 것같다. 사장이 돈을 안 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 자신이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된다.”

-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나?

해솔 =처음에 알바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화를 많이 내셨다. 차라리 용돈을 올려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이 자존심이 상해서그러신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부모님 몰래 알바를 구했다. 두 달쯤 지나니까, 부모님도 제가 알바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결국 저를 포기했는지 이후 그냥 내버려뒀다.

소영 = 제가 다니는 학교는교칙으로 알바가 금지돼 있다. 알바를 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선생님 몰래한다. 알바 때문에 보충수업에 빠진다는 말은 꺼낼 수도없다. 인문계 학교여서 그런지 학생들이 돈을 버는 것보다 공부하는 걸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알바가 불건전하거나 나쁜 일도아닌데, 학교에서 이해를 했으면 좋겠다.


알바가 금지된 학교…"나쁜 일도 아닌데" 

정규수업 시간은 어쩔 수가 없지만,알바 시간을 학교에서 배려해주면 좋겠다. 보통 아침 7시 정도에 등교해, 야자 등 보충수업까지 하면 밤 10~11시가 된다.그러면 방학 때 말고는 알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자꾸 학교에서 알바를 못하게 하니까, 학생들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친구들도 있는 것 같다.”

- 현재 어느 정도 받나?  

   
  ▲ 김해솔 양 (사진=손기영 기자)
소영 = 제 친구가 현재 모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인턴기간이라고 1시간에2,000원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쯤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점장한테 직접 말을 하기가어려워서 편지를 썼다고 한다.


해솔 = 사장님한테 돈을 올려달라고 하면, 잘릴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든다. 내년에는 최저임금이 110원정도 더 오르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보통 저녁 7시에 알바가 끝나는데, 어제는 퇴근시간에 사람들 많이 와서 1시간을 더 일했다. ‘1시간을 더 일했다’고 사장님한테 말해야 하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체크를 해줘서 다행이다.



“돈 올려달라면 잘릴 것 같아”

혜진 = 제가 일했던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한 버거세트는 기본적으로 4,000원이 넘었다. 그런데 제 시급으로는 버거세트 하나도 사먹지 못한다는생각에 서글펐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버거세트를 몇 백 개씩 팔았지만, 그렇게 일을 해봤자 제가 받는 시급은 버거세트 하나도사먹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혜진 = 알바를 하는 청소년들도 노동자다. 하지만 사장님들은 우리를 노동자라고 생각을 하지않는 것 같다. 그냥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일꾼’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 우리들은 정말 ‘저급’도 안 되는 존재인것 같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없는 것 같다.


해솔 = 특히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알바생의 ‘고용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다. 겨우 최저임금 정도 밖에 모른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을 꺼려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소영 = 학교에서 최저임금 문제 등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을 했으면좋겠다. 이런 교육이 잘 이뤄지면 사회에 나가서 어려움이 생겨도 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알바조차 못하게하고 있다. 오로지 국어, 영어, 수학 이런 것만 죽어라고 가르친다. 알바 문제는 학교의 책임도 있는 것 같다.



2009년 12월 07일 (월) 09:13:03 손기영 기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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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기랑 윤티랑 어쩔겨 쿨럭

    2009.12.07 16: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처럼 사진을 못찍는 기자한테 걸려야 사진이 운좋게 안실리기도 하고 그런 거십니다.

    2009.12.07 17:27 [ ADDR : EDIT/ DEL : REPLY ]
  3. 이리될 것을 알면서도 난 왜 사진을 찍었지;;; 아- 요즘 이래저래 참 다운;;

    2009.12.07 22:27 [ ADDR : EDIT/ DEL : REPLY ]
  4.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그렇다!

    여러분들도 노동자동지들이다.

    여러분들의 돈 벌고 싶은 권리가 있다.

    2009.12.17 00:55 [ ADDR : EDIT/ DEL : REPLY ]
  5. 반한나라당유격전투쟁단대장

    내가 지원해 주겠다.

    혼자 몸이겠지만

    2009.12.17 00:55 [ ADDR : EDIT/ DEL : REPLY ]
    • 투쟁단 대장이시라면서 왜 혼자몸이신지 ㅎㅎ;;;;;; 우선 감사드리지만- 음... 1명의 지원보다는, 좀 더 시스템적,운동적,조직적으로 접근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2009.12.17 17:18 신고 [ ADDR : EDIT/ DEL ]

지나가는꿈2009. 3. 24. 11:53

특별히 블로고스피어에서 이슈가 되는 떡밥들에 대한 포스팅은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떡밥들 중에서도 나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거나
내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발언할 만한 거리가 있는 내용에 대해서만 글을 쓰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정명훈 씨 관한 떡밥들은 내가 발언할 만한 거리가 별로 없는 쪽에 속하고,

그래서 딱히 말을 하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글을 주욱 읽어보다보니 좀 황당스러워서 짧게 남긴다 -_-;



정명훈 씨의 반응이 '상식적'이라고 하는 글도 봤고, 밤 늦게 찾아간 사람들이 무례하고, 그거 가지고 기사 올리는 게 또 전도했다가 거절당해서 열받은 전도인 같다는 글도 봤고, 이런 건 기사가 아니라는 글도 봤는데, 뭔가 핀트가 어긋난 것 같다.

* 현재로서는 레디앙 기사 외에 이 건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없으므로, 레디앙 기사에 써있는 팩트들이 사실이라는 전제 속에 쓴다.


1. 이런 건 기사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 기사란 어떠해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고 있는 게 오히려 블로그 미디어, 인터넷 언론의 추세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또 페미니즘적 관점에서건 일종의 리버럴리즘의 관점에서건 정형화된 기사의 틀을 벗어나서 자신의 언어로, 그리고 감정을 다루는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목수정 씨의 해당기사는 '종이신문'에 싣기에 적절하진 않다. 왜냐하면 군더더기가 많고 분량이 많아서 지면에 실으려면 낭비가 심하다고 느낄 테니까.
그러나 인터넷 언론에선 그런 부담없이 글을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너무 종이신문 중심의 '기사 문화'(일종의 형식화된 글쓰기일 수 있는데)에 익숙해진 건 아닌가 싶다.
목수정 씨의 글을 보다 보면 좀 과하게 격한 것 같은 부분도 있긴 한데,(예컨대 호텔 종업원에 대한 묘사 등) 그 부분에 대해 나는 감정적이거나 사적 감정이 표현되어 있다고 해서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런 비난에 약간은 부당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기에 비판할 것이다. '감정적인 글'인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2. 정명훈 씨의 반응이 상식적이라는 것에 대해  : 늦게 찾아간 것에 대한 상식적인 반응이라면 "밤 늦은 시간이니까 날 밝은 후에 다시 찾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게 상식적 반응이 아니라 -_-
따라서 이 문제는 밤 늦은 시간에 갑작스레 찾아갔냐 안 찾아갔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명훈 씨의 말 속에 담겨 있는 그 사람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에 대한 문제이다.
정명훈 씨가 밤 늦게 찾아왔으니 날 밝은 후에 오시라고 했는데 그걸 가지고 쫓겨났다, 정명훈은 사상의 오물 종합세트다, 라고 글을 썼으면 오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아니잖은가?
아, 물론 어떤 사람들이 쓴 걸 보면 단지 그런 류의 상식의 문제 뿐 아니라 정명훈 씨의 말 그 자체가 상식에 속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다지 그게 '상식' 같진 않다. "그 사람들이 노래를 얼마나 잘한다고, 그 사람들을 꼭 구해야 돼요?" --> 이런 게 상식적 답변인 걸까? 부당한 해고를 당했을 때 "꼭 구해야 돼요?"라고 묻는 게?
아님 내가 아는 상식이 잘못되었나? 하긴 상식은 대개 보수적인 사회의 인식을 담고 있고, 그렇기에 부르디외는 사회학자는 상식과 타협해선 안 된다고 하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나는 기독교인들이 전도를 하다가 만난 사람에게 저런 식으로 비난을 당하고 그 사람이 정명훈 씨처럼 말을 했다면 얼마든지 씹는 글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명을 요청했는데 거절당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정명훈 씨가 드러낸 생각의 편린들과 태도에 경악한 것 아닌가?
정명훈 씨가 당연히 서명을 해줘야 하는데 지지를 해줘야 하는데 안 해줬단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방식과 태도가 문제인 것 아닌가?


3. 음악인? : 나는 정명훈 씨가 100% 음악인으로서 반응했다면, 만약에 그 합창단 분들이 실력이 부족해서 잘린 거라면, 정명훈 씨가 그 사람들에게 음악 실력을 더 갈고 닦으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동의하진 않지만, 정명훈 씨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을 않는다면. 그러나 정명훈 씨의 말은 결국 예산 문제, 라는 거였고, 그건 경영자나 자본가의 입장이다. 결국 '음악인'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만한 반응은 아닌 셈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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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어;;

    으잉?? 관련 글읽어보니 아무런 약속도 없이 새벽에 무작정 처들어가 도와달라고 구걸한거 같은데;;; 당연히 까칠하게 나오지 않나?? 무슨 부처도 아니고;;;

    2009.03.24 13:41 [ ADDR : EDIT/ DEL : REPLY ]
  2. 정명훈-정명박

    새벽에 무작정 쳐들아가 구걸을 하다니? 예술가들을 거지로 취급하는 정명훈과 마인드가 똑같으시군. 그쪽에서 고용한 알바가 이제 좀 넉넉하게 풀렸나본대. 공연 끝나고 극장에서 만났고, 비서가 호텔주소 알려줬고, 불어가 불편하다기에, 그 사람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떠난다기에, 한국어 본 갖다주려고 간거였고, 정명훈도 이미 어떤 사안인줄 알았던거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는 그가 서명을 했다 안했다가 아니다. 사실 "서명을 해달라"라는 말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그가 예술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 사실 그는 미국인이라고 하는 것을 이번에 알긴했다, 지나치게 비상식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고, 불필요하게도 그것을 쏟아냈기에 그걸 세상에 알렸던 것이다.

    2009.03.24 18:30 [ ADDR : EDIT/ DEL : REPLY ]
    • 아 그럼

      정명훈은 노코멘트 할 자유도 없구나.
      그리고 한국어 본만 놓고 온겁니까? 서명 해달라고 기다렸자나요. 무언의 압박처럼. 참 진보도 구시대적인 생각들이 많은듯. 자기 생각대로 안되면 저런 글이나 싸지르고 ㅉㅉ

      2009.03.26 00:19 [ ADDR : EDIT/ DEL ]
    • 그냥 노코멘트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 같고 저런 글이 나왔을 것 같지도 않은데요?
      단순히 '자기 생각대로 안 되었다'가 아니라 정명훈 씨가 어떻게 반응했고 어떻게 말했나, 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 같습니다. 본문 중에도 썼는데 제대로 안 읽으신 듯?

      2009.03.26 15:23 신고 [ ADDR : EDIT/ DEL ]
  3. 나도 이 떡밥 보고 매우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대부분의 글들은 정명훈 씨의 옳고 그름은 어떻든 간데 목수정 씨는 무조건 잘못했다, 뭐 이런 식으로 끝나더라고;;;

    2009.03.24 23:55 [ ADDR : EDIT/ DEL : REPLY ]
  4. 어이쿠

    늦게 찾아간 것에 대해서는 "내일 와주세요."지만..
    이건 늦게 찾아가서 생난리를 피운 상황이죠.
    (새벽 한시에 처들어가서 호텔 직원하고도 옥신각신한걸 난리가 아니면 도대체..)

    합리화시키기 좋게 팩트를 변형시키는 건 위험하다고 봅니다.

    2009.03.25 02:48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럼 늦게 찾아가서 생난리를 피운 것에 대해 "늦게 찾아와서 생난리를 피우는 건 무례한 거고, 부당한 것이니 다음에 와라. 아니면 당신들의 무례함 때문에 당신들 말은 ㄷ듣기 싫다"라고 해야겠죠. 그런데 그 정명훈 씨가 한 말은 그 이야기도 아닌데요?

      2009.03.25 16:57 신고 [ ADDR : EDIT/ DEL ]
    • 공현<<님 말도안되는 소리하지마요

      참나.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지만 한대 맞으면 나도모르게 주먹 나가는게 사람아닌가.
      먼저 때려 놓고 세계적 지휘자가 주먹질을? 이런 개새끼 엿이나 먹어라 오물새꺄 하고 글을 남기는게 이성적입니까? 아무리 고상한 말을 남겨도 참 레디앙은 치졸하다는 것에 한표를 줄 수 밖에 없네요.
      그리고 왜 레디앙 글이 다들 중립적이고 공정한 글이라고 생각하지? 자기 멋대로 편집해서 올린 것 뿐인걸.

      2009.03.26 00:16 [ ADDR : EDIT/ DEL ]
    • 밤늦게 찾아간 게 무례할 수도 있지만, 그게 "때렸다" 수준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만약에 찾아간 분들이 정명훈 씨에게 정명훈 씨가 그 분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무례한 언사 등을 했다면 또 모르겠는데, 주먹질-주먹질로 비유할 수는 없는 문제 같습니다. 그리고 호텔직원하고 옥신각신할 때 정명훈 씨는 없던 상황이고, 또 그 '옥신각신' 정도가 정명훈 씨의 언사 등과 동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레디앙 글이 별로 공정하거나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글은 감정적ㅇ니 글이죠. 하지만 감정적인 글이더라도 그 글이 최소한 사실관계를 왜곡하지 않고 있고 자기 글이 감정적이고 당파적인 글이란 걸 드러내고 있다면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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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정명훈 씨가 잘못했다, 또는 찾아간 분들이 잘못했다, 등을 판단하거나 주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자세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글은 정명훈 씨 사건에 대해 이야기되는 것들에 대한 '메타' 의견입니다. 이 점은 분명히 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네요.

      2009.03.26 15:21 신고 [ ADDR : EDIT/ DEL ]
  5. 이명박만만세

    정명훈 자신이 부당해고를 주장하고 노조의 도움을 받아 복귀 한 것을 생각 하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올챙이적을 생각 못하는 인격적 장애가 있는 것이지요. 싸이코패스나 사이소패스와 다른 점이 없어 보입니다.

    2011.01.20 19:07 [ ADDR : EDIT/ DEL : REPLY ]
    • ; "싸이코패스"를 그렇게 쉽게 타자화하고 비난의 언어로 삼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보긴 합니다만-

      음냐. 정명훈 씨가 보기엔 자기가 당한 건 부당해고이고 그 단원들이 당한 건 부당해고가 아니었나보지요 에휴 -ㅂ- 정명훈 씨는 확실히 자신도 '노동자'라는 의식은 없는 거 같습니다.

      2011.02.02 20:06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