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0. 12. 28. 22:44


2010년 12월 25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부터 『소수의견』(손아람)을 읽었다. 대개의 독서가 그렇듯이 특별한 의미를 두고 정한 날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돌이켜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이었다. 내 눈 앞 책 속에서는 사람이 죽고 재개발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조금 들자, 내 눈 앞, TV 화면 속에서는 교황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억압자들을 비판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었다.
 

12월 28일, 『소수의견』을 다 읽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지나친 관악구 신림동에는, 여전히 철거민들의 저항의 목소리가 새겨진 벽들이 헐벗고 있었다.

용산참사 국민법정에 갔을 때를 생각했다. 두발규제를 헌법소원을 내자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겹쳐 울렸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재판을 생각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3분짜리 플래시몹을 했다는 이유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끌려가던 고등학생 동료를 지키려고 하다가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되고 기소되어서 받고 있는 재판이다.지난번 재판이 끝나고 생각했었다. "이 재판은 법의 이치와 논리에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공정하거나 정의롭지는 않다." 재판이 끝나고나면, 글을 하나 써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법은 사람 위에 있었다. 그건 법이 사람 위에만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pp.422-42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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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9. 20. 18:14



법과 인권(1) : 법전문가면 인권위 들어와도 되는 거니?




사실 (1)은 인권과 법 사이의 긴장에 대해서 논하려고 예전부터 생각하던 글이었는데,
최근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사무총장 사태를 맞이하여, 시의성을 생각해서 좀 연관지어 썼습니다.

(2)는 그런 시의성에 대한 고려는 별로 없습니다만
어쨌건 이쪽 글이 옛~날부터 좀 더 쓰고 싶었습니다.

정확히는 류은숙 씨가 회의 자리에서 "운동과 정치로 풀어야 할 인권 문제를, 법에 청원하고 소송하고 진정해서 풀려고 하는" 운동방식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낸 걸 인상깊게 들은 후부터?




ㄱ. 법은 인권운동의 목적이자 대상이자 수단입니다.

죄송합니다. 낚시입니다. 설마 안 낚였겠죠;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인권활동가라면 저런 소제목에 고개가 갸우똥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갸우뚱이 아니라 갸우똥인 게 포인트..?)


그렇다고 저 말이 딱히 틀렸단 건 아닙니다. 법은 인권운동의 목적이자 수단이자 대상입니다.
다만, 그 말의 뜻은 법이 인권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이야말로 인권운동의 목적이자 수단이자 주체이자 대상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 겁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니면 "사람이야말로 인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것과 비슷한 뜻입니다.

하지만 "법은 인권운동의 목적이자 수단이자 대상이다."라고 한다면, 그 말은 법이 인권운동과 여러 부분에서 관련이 있기는 한데 이 관계가 뭔가 어중간하고 애매하다는 뜻입니다.


하나하나 짚어봅시다.

앞서 <법과 인권(1)>에서 "인권은 법이나 제도로 구현되려 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인권운동의 목적입니다. 어떤 인권을 주장할 때 그 목적은 대개 그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권운동의 목적이 법과 제도만은 아닙니다. 인권운동은 사람들의 인식, 언어, 문화, 시설, 사회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법과 제도는 그 인권운동의 구체적인 성격과 맥락 등에 따라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법은 많은 경우 어떤 인권운동의 목적이 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목적들 중 하나이더라도,  반드시 핵심적이거나 주요한 목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법은 인권운동의 대상입니다.
인권운동은 기존에 존재하는 법을 대상으로 그 법을 바꾸고 개선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넓은 의미의 법계(입법/사법/행정)을 대상으로 하여 인권교육을 하고 압박을 가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내용의 법이나 결정례 등을 이끌어냅니다.
또, 논리적으로, 법은 인권을 기반으로 성립합니다. 모든 법은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지, 혹시 침해하고 있지 않은지 인권의 눈으로 감시받아야 합니다.
미국의 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정문에는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라고 써있다더군요.
인권은 국가, 법, 정부, 기업, 사회 등에 대한 영원한 감시의 대가일 겁니다.
아- 물론 감시만 한다고 해서 인권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요 ;
법치사회에서 법이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고 정부가 움직이는 기본 장치인 이상, 법은 인권운동의 주요 대상 중 하나입니다.
인권운동은 (광의의) 법을 바꾸고 만들고 없애는 운동입니다.
그런데 인권운동의 대상은 법만이 아닙니다.
인권운동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것들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법은 그 한 일부일 뿐입니다.



법은 인권운동의 수단입니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통해서 인권 현실을 바꿔나가는 것이 인권운동의 일부이니까요.
어떤 법을 이용해서 민형사/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피해를 구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인권운동 수단의 하나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법을 활용한 인권운동 방식은 몇 가지 더 있겠죠.
넓게 보면 입법운동 같은 것도 법을 인권운동의 수단으로 삼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권운동의 수단으로서 법은 일부일 뿐입니다.
운동의 목적, 성격, 사회적 분위기 등에 따라서 법이 운동에서 얼만큼 비중있는 수단이 될지는 다릅니다.
예를 들면 강제야자에 저항하는 운동과 부당해고에 대항하기 위한 운동, 호주제를 폐지하기 위한 운동, 지문날인제도를 없애기 위한 운동, 장애인들의 주거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 입시경쟁교육을 바꾸기 위한 운동은 각각 법을 활용할 수 있는 운동도 있고 활용할 수 없는 운동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권운동과 법은 여러 가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근데 그건 사실 법이 특별한 지위에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  법이 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인권운동과 법에 대해서 살피기 위해서는 법이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법/법학에 있어서 인권이 가지는 의미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요.)

분명한 것은 인권운동에 있어서 법과의 관련성이 그렇게 결정적이고 지배적인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ㄴ. 법은 사회적 구성물입니다.

법학 자체만을 들입다 파는 분들 중에는 간혹, 법을 법 체계 내적 논리로 쌓아올린 논리적이고 독립적인 건축물로 보는 것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뭐 법학자 분들이 그런 관점에서 법이론들을 쌓아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선 좀 다른 부분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법이 사회 속에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때로는 어떤 법이나 판결을 뒷받침하는 법 이론 같은 경우에도, 사후에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나오는 때도 있습니다. 사전에 논리적 근거가 되는 게 아니라요. -ㅇ-)

법이라는 게, 헌법이나 국제법 등의 근거에서부터 좌르르륵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단일하고 깔쌈한 건축물 같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온갖 사회적 사건, 이야기들과 권력이 작동하고 반영되면서 뒤엉켜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녀석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어떤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이고 부정의한 현실'에 부딪쳤을 때 '정의롭고 합리적인 법'에 호소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법도 현실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뭐, 그렇다고 법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을 조장하려는 건 아니지만요-----

법이 그렇게 확고하게 믿을 법한 건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불의하고 반인권적이고 잘못되어 있다면, 그 사회의 일부인 법도 잘못되어 있을 가능성이 꽤 많습니다.
(여기서 법이란 건 명문화된 법률이나 조례 등을 포함해서, 그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사법/행정 체계 등을 모두 말합니다.)

우리가 종종 잊는 것은, 국회의원이든 법률가(판검사,변호사)이든 모두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지, 단지 정치/법률전문가는 아니라는 겁니다.
판사가 한 어머니/아버지로서 자기 자식에게 체벌을 가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가정에서의 체벌 사건(학대로까지는 인정받기 어려운)에 대해 인권적인 판결을 내릴까요?
강의석 씨가 대광고를 상대로 종교수업 강요에 대해서 낸 민사소송 2심에서 패소했을 때, 2심재판 판사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종교사학과도 친분이 있다는 식으로 문제제기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데 작용하는 것은 주로 사회적 다수의 생각(편견/선입견/상식 등등 모두 포함),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의 이해관계 등등입니다. 특히 소수자 문제 같은 경우는 문제가 두드러지기 마련이겠지요.


예를 들어 '체벌'에 대한 법규나 판례들을 생각해봅시다.
가정, 학교에서의 체벌은 모두 한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과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해석에 의해서 분명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신체의 자유도 그렇고, 국제 고문방지협약에서도 체벌을 고문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초중등교육법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체적 처벌을 가하여서는 안된다"라는 식으로,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는 체벌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도 이미 이 법이라는 게 사실은 기존 사회의 분위기, 인식에 따라 좌우된다는 게 분명해보입니다.
근데 또 문제는, 이 조항을 해석하는 과정에도 사회적 인식이 개입됩니다. 체벌 관련 판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이 "사회적 상규"입니다. 사회적 상규에 어긋난 체벌은 처벌 대상이라는 겁니다. 뭐, 이런 식의 판결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일지도 모릅니다만 -_-  여하간 여기에서 체벌의 정당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교육상 불가피"한지 여부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 사회적 상규에 어긋나는지 안 어긋나는지입니다.

꼭 이 예시가 아니더라도 다른 수많은 경우에서도 우리는 법조항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법조항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적 권력 관계와 인식들이 진~하게 배어 있다는 걸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법조계는 그 특성상 보수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법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법이 사회적 권력과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며, 그리 정의롭거나 합리적이지 않기 쉽다는 것.
두번째는, 소송을 걸고 법을 가지고 법정이나 의회에서 다투는 과정 또한 단순히 법리를 가지고 다투는 게 아니라는 것. 사회적인 인식과 분위기 등을 반영한 과정이라는 것.
심지어, 입법운동을 하는 경우에도, 입법운동은 단순히 국회의원 몇 명을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문제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들을 설득하고, 그 집단들과 힘겨루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사회적 인식의 좌표를 움직이는 것이 필수불가결합니다.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위까지 올라갔다가 교총 등의 반대 움직임으로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조항이 빠진 것 등등의 사건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죠.
법은 현실을 바꾸어나가는 규범/힘을 가지고 있지만, 법이 바뀌는 것은 현실이 일정부분 바뀐 것이 반영된 것일 때도 많습니다.




ㄷ. 운동방법론 차원에서 법

운동방법론적으로 법을 수단으로 삼아서 투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좀 더 세심하게 살펴봅시다.

먼저, 법이라는 게, 전문가나 정치 엘리트 등이 아닌 인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법조항을 구성하는 법률용어들 같은 것이 지나치게 전문적이다... 같은 문제도 있고,
또 재판을 건다는 게 은근히 돈이 많이 깨지는 일입니다. (공탁금, 변호사비용 등등)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법률상 무능력자이기 때문에 혼자서 소송을 걸 수도 없죠.
그리고 법은 특성상 시간을 질질 끌기 쉽습니다. 소송 한 번 걸면 판결 나오는 데 몇 년씩 걸리는 게 드문 일도 아니죠.

특히, 소송의 경우에, 소송 걸었다가 패소라도 하면 좀 시ㅋ망ㅋ입니다.
들인 온갖 공에 비해서, 타격만 잔뜩 입는 거랄까요 =ㅂ=  뭐 모든 투쟁들이 패배할 경우에 일정한 타격이 있긴 한데, 재판은 특히 그 패배의 결과가 너무 눈에 보이게 명백해서 참 아프죠.

입법운동 같은 경우는 그나마 국회 안의 정당 의석수 상황이나 분위기 등을 고려해서 할 여지가 있을지 몰라도
소송은 그런 '정치'의 여지도 많지 않기도 하지요.


인권운동의 속에는, 알게모르게 '직접민주주의'랄까 '인민주권'이랄까 그런 이념이 녹아있습니다. 직접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고 뭐 더 민주주의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고...

소송이나 입법운동은, 이래저래 사람들에게 활력을 주고, 능동적으로 사람들을 조직하고 움직이게 하기에 참- 안 좋은 방식입니다. 거기다가 투쟁이 개인화될 위험도 있는 방식이죠.
확실하게 승소할 가능성이 높고 그걸 통해서 일정한 성과를 끌어낼 수 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소송 이후에 운동에 조직적으로 남는 것도 별로 없는데, 승소하지 못하면 잃는 건 왕창 크고, 아무래도 주저할 수밖에 없는 비효율적인 방식인 게 사실이지요.

혹시라도 법 투쟁을 지르려면, 패소하더라도 운동이 받게 될 타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인지도, 조직력 등이 있어야 하겠지요.


법을 인권운동의 수단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야 없습니다.
하지만 법을 활용한 운동이 인권운동에서 그리 효과적인 활동이 아닐 수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법은 어쩌면 그리 특별한 게 아닙니다. 그저 사회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장치 중에 하나일 뿐이죠.




* 차라리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권교육을 많이 뛰거나,
인권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법조계로 들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
그럴 재주와 의욕이 있는 분들이 있으면 딱히 말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영 @_@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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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9. 14. 23:17




ㄱ. 법과 인권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존재합니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인권은 법이 성립하기 위한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원리이자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뭐 사회 교과서에도 종종 나오지만...) 자연권, 자연법 등등의 이름으로 인권은 근대의 법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법이 만들어지는 최우선 목적은 바로 사회 구성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법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근거도 바로 인권입니다.
인권을 보장하고 존중하고 증진시키는 법은 좋은 법이고, 인권을 침해하고 무시하고 저해하는 법은 악법입니다.
(행정법이라거나 꼭 이런 틀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일단 "법이 인권을 침해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라는 건 모든 법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법과 인권이 긴장관계에 있다, 라는 말은 원론적으로 말하면 뭔가 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권이 법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원론적이고도 이상적인 관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인권보다는 법이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단 법에는 강제력이 있습니다. 경찰력을 비롯한 다양한 물리적인 폭력과 시설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이 있지요.
또한 법은 그것이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강한 '동의'를 얻고 있습니다.
일종의 헤게모니랄까요.
그 '동의'가 노골적인 준법에 대한 교육이나 선전으로 이루어진 것이든,
안정적인 국가-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든,
대의민주주의라는 절차 속에서 나오는 환상이든.....
(물론 모든 법이 그런 건 아닙니다. -ㅂ- 특히 돈 많은 사람들, 권력 있는 사람들일수록 자기들한테 불리한 법은 그냥 씹고 벌금 내고 말지 뭐, 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어쨌건 인권이 하나의 '담론', '주장'으로 생각된다면, '법'은 현실의 규범이고 강제력 있는 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아직 법이나 제도로 구현되지 못한 인권은 법이나 제도로 구현되려 하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법은 인권 실현을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인권이 반영된(또는 반영되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법은 인권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점하게 됩니다.


인권과 법이 이처럼 각각 다른 부분에서 서로에 대해 우월성을 가지기 때문에 인권과 법은 미묘한 긴장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인권이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법을 검증하면서 "훗 내가 너보다 잘났음" 이러고 있을 수도 없고
법이 인권을 완전히 쌩까면서 "훗 넌 그냥 말만 많을 뿐. 힘은 내가 있음" 이러고 있을 수도 없는...
뭐 그런 거죠.





ㄴ. 인권과 법의 동일시?


하지만 흔히 우리는 좀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아니, 일반적인 현상이니까 그리 이상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사람들이 '인권'과 '법'을 동일시하는 현상 말입니다.

흔히 인권 전문가라고 하면 '~~변호사'를 생각하거나 '~~ 법학 교수'를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인권을 잘 안다고 하면 뭔가 형법이나 헌법, 국제법 같은 것들에 대해서 꿰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달까요.


여기에는 뭐 아마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단은...
흔히 인권단체나 인권운동이라고 하면 양심수나 장기수라거나... 아니면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고 재판도 제대로 못 받는 사람들이라거나, 그런 사람들을 위한 활동이라고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이미지는 70-80년대 한국의 사회운동-민주화운동 속에서 '인권'을 내세운 운동이 해온 역할이 주로 그런 것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계적으로도 앰네스티나 그런 인권단체들이 주로 하는 일이 그런 것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일의 특성상 주로 변호사나 법률가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변호사나 법률가가 아니더라도 그런 활동을 하려면 법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 역사적으로 만들어져온 이미지가 법과 인권이 동일시되는 하나의 원인이겠지요.



두 번째로는, 앞서 말했듯이, 인권과 법은 미묘한 긴장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묘한 긴장관계라는 게 외부에서 보기엔 잘 안 느껴진단 말이죠 -_-;;

뭐랄까요. '일반인'(인권에 대한 문외한, 상식인.)이 보기에는...
법이 인권 같고 인권이 법 같습니다. -_-;;
국제인권조약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거나 세계인권선언 어쩌구 하는 거나
헌법 어쩌구 하는 거나 형법, 집시법 어쩌구 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거죠.

근본적으로,
인권은 법이 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고,
법이 인권을 (뭐 일단 명목상으론;;) 실현하려 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둘이 딱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편의주의랄까 뭐 그런 문제도 있습니다. 우리가 '인권 전문가'를 찾는다고 하면 누구를 찾아야 할까요?
인권활동가를 찾아가면 좋겠지만, 인권활동가라는 건 말 그대로 인권에 대해서 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막말로 그 분야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있고 권위 있는 견해를 말할 수 있다는 어떤 보증이 없습니다.(저야 그다지 그렇게는 생각 안하지만)
특히 그 사람의 타이틀이나 직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정부 관료들이나 언론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냥 ~~ 활동가 ⓜⓦⓛ 이런 건 뭔가 제대로 된 보증처럼 보이지가 않겠지요.
그래서 쉽게 찾게 되는 게 ~~ 변호사, ~~ 교수(특히 법조계 쪽)입니다.
그나마 인권이랑 가까운 분야가 법이니까요.
언론 인터뷰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든, 인권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법조계를 찾게 되는 건 그런 맥락이 있는 것 같습니다.





ㄷ. 그러나 법과 인권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법과 인권 사이에는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법조계 사람들은 법, 그리고 법과 관련된 인권들은 좀 알지 모르죠.
하지만 인권 현장, 인권의 현실, 법이 되지 못한 수많은 인권 담론들에는 무지합니다.

현실에서는 법이 인권을 침해하거나 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실정법을 강조하는 논리와 인권을 강조하는 논리는 종종 부딪치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인권은 '인권현장'(현실의 삶)과 법-제도를 연결하는 매개의 역할을 합니다.
사람들의 피해 경험, 감정, 고통, 어려움, 불만, 그런 것들이 인권의 언어로 이야기되면서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자 법-제도에 대한 개선 요구로 나타나게 됩니다.
인권이 법, 제도, 문서, 이런 것들에만 너무 익숙해지게 되면 이런 현장감을 잃게 됩니다ㅣ.



인권과 법 사이에는 긴장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런 긴장 관계는 꼭 필요합니다.


'인권'이 무작정 실정법에 휩쓸려 다닌다면 그게 어떻게 인권일 수 있겠습니까?
인권이 법과 제도, 문서, 선언, 조약, 그런 것들만 보고 있으며 사람들의 삶, 행동과 떨어져 있으면 어떻게 인권일 수 있겠습니까?

법을 감시하고 검증하는 기준으로서 인권이 존재하는 이상 인권은 법과 다른 것으로 거리를 두고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ㄹ. 사족 같은, 그러나 이 글을 쓴 계기;;;

: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된 현병철(민법 전문 법학자)이나,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김옥신(상법 전문 판사 출신 변호사)이나,

참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사실 그 이전에 안경환 위원장이나 김칠준 씨도 법학자-변호사 파티이긴 했습니다만 -_-
(물론, 그나마 김칠준 씨는 철거나 노동 등 여러 인권 현장들에 대한 경험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밑에 첨부한 성명서에 나온 대로 '법 전문가'로만 핵심 라인이 꾸려진 인권위.
더군다나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인권 자체에 대한 활동 경험은 전혀 없는...

그런 인권위가 법에 대한 긴장과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지금 위원장인 현병철 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준법'과 '법집행'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ㄹㄹ
솔까말, 현병철은 '중도' '무색' 위원장이라기보다는, 그냥 보수 우익 기득권 -_-



그리고 이번에 내정된 김옥신 씨가 판사 시절에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적이 있는데,
이는 둘 중에 하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김옥신 씨가 반인권적 반공 의식이 투철하여 저 빨갱이 새끼들 당연히 처벌해야지, 라고 생각했거나
(2) 판사로서 존재하는 실정법에 따라서 재판하는 게 당연하지 뭐. 라고 생각했거나

둘 중에 (1)이라면 더더욱 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되어선 안 되고,
(2)라고 하더라도 인권과 법 사이의 긴장감, 거리감은 지켜질 수 없을 것입니다.




여하간 김옥신이든 현병철이든, 그냥 좀 지들이 안 맞는 줄 알면 알아서 관두란 말야 -_-




* 추신 : 그리고 김옥신 변호사가 대기업의 고문 변호사 출신이란 것도 참 불편하구만요. =_=











프레시안 기사   "인권위 법률가 중심주의를 버려야"

경향신문 기사   인권단체들, 인권위 사무총장 ‘부자격자’ 주장


<성 명 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반'인권위원회인가!

- 반인권적 김옥신 변호사, 사무총장 내정 철회하라! -


' 무자격 도둑취임, MB하수인'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9월 14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서 김옥신 변호사를 사무총장에 제청할예정이라고 한다. 현 위원장의 격에 맞는 인선기준이 아닐 수 없다. 무자격자가 무자격자를 국내외 인권기준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골랐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가인권위의 황폐화이다.

김옥신 변호사는 상법 전문가로서 기업의 고문 변호사로 주로 활동해왔다. 민법 전문 위원장에 상법 전문 사무총장이라, 이들의 이력 자체가 인권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인권의 근본가치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잔인한 정치경제적 관행에 대해 따져 묻는데 있다. 이것이 인권이 가진 잠재성이다. 인권문외한의 도를 지나쳐 사회경제적 강자의 편에 서있던 이들이 국가인권위를 점령하여 인권의 잠재성까지 갉아먹으려 하고 있다.

현 위원장은 계속되는 자격 논란에 국가인권위의 역사와 그간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호언한바 있다. 과연 그런가? 김옥신 변호사는1999년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시절, ‘민족사랑청년노동자회’란 청년단체를 이적단체로 규정, 회원 7명에 대해국가보안법으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국 가보안법은 유엔과 국제인권단체 등 국제인권사회에서 수차례 폐지를 권고한 대표적 인권악법이고,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또한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김 변호사의 사무총장 임명은 이런 국내외 조류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로 그 자체가 인권을 조롱하고있다.

또한 우리는 차기사무총장 후보가 '법률가'라는 점을 깊이 우려한다. 국가인권위는 설립 초기부터 위원장과 사무총장에 ‘변호사’ 혹은 ‘법학교수’를 계속 임명해왔다. 인권은 법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의 이러한 ‘법률가 중심주의’는 자칫 인권을 법의테두리에 가두고 인권의 사각지대를 향한 인권의 상상력을 무디게 할 위험성이 있다.

법학전문가, 법률 중심주의를 벗어나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역량을 찾으려는 인선 기준이 요구된다. 더구나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인권에 대한 호소가 이명박 정권의 소위 ‘법치’ 강조 하에서 억압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인권 길들이기, 법의 잣대로인권을 판단하려는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

더불어 계속 지적돼온 인선과정의 투명성과 검증절차의 부재 문제가 또 되풀이됐다. 현병철 위원장에 이어 김옥신 변호사도 깜짝 인사,뒤통수치기 인사이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되풀이하려는가. 국제인권기준에 걸맞는 인선기준과 절차를 마련할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한다.


현병철 위원장은 김옥신 변호사 사무총장 내정을 당장 철회하라! 김옥신 변호사 또한 본인의 자격 없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나라! 더 이상 인권을 우롱하고 모욕하지 말라!

우리 인권단체들은 현 국가인권위 위원장과 무자격자의 무자격자 사무총장 임명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국가인권위 설립 투쟁에 버금가는 국가인권위 지키기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주인은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세계의 시민들이지, 정권이나 그 하수인들의 것이 아님을 경고한다.



현병철 위원장은 김옥신 사무총장 내정 철회하라!

김옥신 내정자는 스스로 물러나라!

무자격 도둑취임 현병철 위원장 사퇴하라!

이명박 정부는 국가인권위 독립성 훼손 중단하라!




2009년 9월 14일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사) 대구여성의전화,(사)대구여성회,(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사)실로암사람들,경산이주노동자센터,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광주여성단체연합, 광주여성민우회,광주여성의전화,광주여성장애인연대,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광주인권운동센터,광주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광주장애인가족복지회,광주 장애인가족지원센터,광주장애인교육권연대,광주장애인부모연대,광주장애인지랍생활센터,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광주장애인총연합회,광주전남문화연 대,광주전남미디어행동연대,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광주전남불교협의회,광주전남진보연대,국가인권위독립성수호를위한교수모임,다산인권센터,대 구KYC,대구경북민주화계승사업회,대구경북민주화교수협의회,대구경북양심수후원회,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대구경 제정의실천시민���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대구시민공익법센터,대구여성노동자회,대구이주연대회의,대구장애인연맹(대구DPI),대구참여연 대,대구환경운동연합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광주전남연대회의,민주노동당대구시당,민주노동자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지 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대구지부,민주주의법학연구회,밝은세상,열린케어장애인자립생활센터,영남대인권교육연구센터,오방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우리복지시민연합,우리이웃장애인자립생활센터,울산인권운동연대,인권교육센터'들',인권실천시민행동,인권연구소'창;,인권운동사랑방,인권운동 연대,장애인정보문화누리,장애인지역공동체,전국교수노동조합대구경북지부,전국여성노동조합대구경북지부,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정신대할머니와함 께하는시민모임,진보네트워크센터,진보신당광주시당,진보신당대구시당,참교육학부모회광주지부,참교육학부모회대구지부,천주교인권위원회,청소년인 권행동'아수나로',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지렁이',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학벌없는사회광주모임,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한국기독교교 회협의회(KNCC)대구인권위원회,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대! 구지회,한국비정규교수노조경북대분회,한국사회당대구시당,한국성폭력상담��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민우회,한국인권행동,한마음장애인자립생활 센터,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09.9.14현재 전국 86개단체)


법과 인권 (2)는...

인권운동을 하면서 법을 활용하게 되는 것과 법에만 기대는 법만능주의적 태도에 대한 검토
법의 사회적인 의미 등등.
사실상 "법과 인권운동" 같은 내용으로 써볼까 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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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ㅉㅉㅉㅉ

    ㅋㅋㅋ 인권과 법의 긴장?.ㅋ 법 이전에 존재하는 선험적 권리또한 "자연법"에 의해서 법으로 논의될수 있는것이고 그러한 자연법을 국가가 구체화한게 법이란다...그리고 민법에서 보호하는 개인의 재산권이 인권과 상충된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물이 있지 그 소유물이 침해당했을때 그것을 보호해주는 논리가 어째서 인권과 상충되지?...대한민국 민사소송에서 피고가 죄다 정부.재벌.부자만 있는줄 아나 보지?...강도 도둑 사기꾼.파렴치한 대다수가 너들 보다 못사는 사람이면..그네들이 니껄 몰래.사기쳐서.혹은 강제로 가져가면...그걸 법으로 찾아오는 과정이 인권에 배치된다는 생각이면..내가 한번 가져가보지...오히려 너들 같은 가난하고 무식한 것들일수록 법 없으면 어디서도 보호 못받지....원래 냉대받고 사는 늬들 현실에서의 법의 역할을 생각해 봐라..ㅋ

    2010.11.03 12:21 [ ADDR : EDIT/ DEL : REPLY ]
    • ? 이 글을 읽으셨다면 여기서 말하는 '법'이 '실정법'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제대로 글을 읽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근데 여기에서 제가 재산권에 관한 내용을 쓰진 않았는데 ^^; 다른 글을 보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다른 글이라면 어떤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뭐 저는 '재산권'은 인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생존권',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권리'이나 '사생활의 자유' 등이 인권이고 재산권은 그러한 인권의 실현을 위한 부수적인 권리의 지위로만 인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강도, 도둑, 사기꾼 등의 범죄가 인권 문제가 되는 건 재산권 침해 자체라기보다는 그 행위가 우리의 생명이나 생활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그건 인권 문제라기보다는 가치의 사용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문제에 가까울 수도 있겠죠?)

      모든 재산권(소유권, 점유권 등) 행사가 언제나 인권과 상충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재산권을 인권인 것처럼 보는 관점이 사회적으로 재산을 가지지 못한 약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수단이 된단 거지요. 그래서 2008인권선언도 재산권은 권리가 아니라는 식으로 명시하는 게 아니라 주거권이 재산권보다 우선하고 평등권이 재산권보다 우선한다는 식으로 재산권이 다른 인권을 침해하는 걸 정당화하는 데 쓰이는 걸 막는 형태로 조항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계신 의문은 법과 인권(2)로 쓴 것에서 인권운동과 법의 관계에 대해 쓴 걸 읽으시면 많이 풀릴 겁니다 ^^; 근데 무엇보다 보통 "긴장"이라고 하는 건 무언가를 쌩까거나 무시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복잡한 관계가 있다는 의미로 쓰는 겁니다만. 법을 논하시기 전에 글을 찬찬히 잘 읽어주시면 좋겠군요.

      2010.11.06 11:32 신고 [ ADDR : EDIT/ DEL ]

흘러들어온꿈2009. 5. 28. 17:31
천주교인권위원회 뉴스레터 교회와 인권 2009년 5월 156호

 
[칼럼] 시인과 법

2009년 05월 27일 (수) 21:59:28 좌세준(인권위원, 변호사) chrc@chol.com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행복하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 / 시인은 그래도 행복하다
세상이 법 없이도 다스려질 때 / 시인은 필요 없다
법이 없으면 시도 없다

시 인 김남주의 <시인>이라는 시입니다.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시절, “네 벽에 가득 찬 것은 모두 어둠뿐인” 광주교도소에서 종이와 연필이 주어지지 않아 빈 우유곽에 못으로 시를 쓰면서도 시인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요즘 세상을 볼라치면 세상이 다시 몽둥이로 다스려지는 듯합니다. ‘법’은 또 어떤가요. ‘법’ 축에도 못 드는 ‘고시’라는 놈이 법 중의 법 ‘헌법'에 나와 있는 국민의 건강권을 유린하더니, ‘마스크를 쓰고 집회하면 처벌한다’는 법을 만든다고 합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은 업무방해요,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이니 구속이랍니다. 설을 일주일 앞둔 서울 한복판 재개발 철거현장에는 ‘법치질서의 확립을 위해’ 경찰특공대가 투입되었습니다. 100여일이 지났음에도 희생된 가족들을 땅에 묻지 못한 유족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5년입니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시인이 다시 살아온다면 유족들의 손을 붙잡고 이렇게 한마디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법이지요 / 목에 걸면 그것은 / 부자들에게는 목걸이가 되고 / 가난뱅이들에게는 밧줄이 되지요”

요즘은 시집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지던 시절에는 그래도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것 같은데요. 시인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세상이 된 것도 아니요, 시인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온 것 같지도 않은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해방 공간의 전위시인 유진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시인이 되기는 바쁘지 않다. 먼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시는 그 다음에 써도 충분하다. 시인은 누구보다도 먼저 진정한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세상이 법으로 다스려질 때가 참 민주주의 세상이요, 그런 세상을 먼저 만들어 놓고 나서 시를 써도 늦지 않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과 이상을 파괴하는 억압이 존재하는 한 시인은 언제나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전령(傳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와 민주주의의 통일 선언입니다. 그러하니 세상이 몽둥이로 다스려질 때에도 시인들은 민주주의를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한’ 것입니다. 법이 아니라 총검과 몽둥이가 세상을 다스리던 시절, 김남주 시인은 자신의 시가 억눌린 자와 민중들의 손에 건네져 읽혀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나는 바란다 총검의 그늘에 가위 눌린 / 한낮의 태양 아래서 나의 시가 / 탄압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기를 /......./ 그들이 나의 시구를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 뜨거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젖까지 차올라 / 각성의 눈물로 흐르기도 하고 / 누르지 못할 노여움이 그들의 가슴에서 터져 / 싸움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기를”

김남주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법 없이도 다스려지는 ‘더 좋은 세상’이 온다면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시인은 아예 필요 없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판, 검사나 변호사는 다 실업자가 되겠지만, 모든 이들이 ‘행복한’ 세상일 것이니 그런 세상도 한 번 꿈꾸어 볼만하지 않습니까. 그런 세상보다는 덜하지만 우선은 법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도 아니면 법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 그대로 ‘물처럼 흐르는’ 법. 결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거슬러 흐르지 않으며, 때론 굽은 모래톱을 곧게 펴기도 하고 “오뉴월 더운 날에는 농부의 시름 덜고 /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는” 고마운 물과 같은 법으로 다스려지는 그런 세상 말입니다. 시인이나 우리들 모두 ‘그래도 행복한’ 그런 세상 말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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