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0. 12. 9. 16:07

우리, 사랑 좀 하자!

청소년 연애 탄압을 반대한다

우걱우걱



성적 자기결정권, 공부 좀 하세요.

누 군가를 사랑하고, 그와 손을 잡고, 포옹하고, 키스하고, 섹스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 중 하나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갖가지 같잖은 것들이 10대의 연애를 외설로 취급하며 열심히 짓밟는다. 그 중 하나인 억압적인 교칙들을 까발리기 위해 11월 16일에 서울에서 청소년연애탄압실태 보고회를 가졌다. 나름 성공적으로 어이없는 교칙들을 고발했다고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어라?

위 사진[설명] 11월 16일 청소년연애탄압실태 보고회


한 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고등학생 정도라면 건전한 이성교제는 가능하다고 본다. 또 이성교제와 관련된 학교 학칙들이 워낙 과거에 제정된 것이 많아 시대 흐름에 맞춰 학교 운영위 등에서 충분히 재 논의될 필요가 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과도한 걸 요구하는 학생들이 권리에 따른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줬으면 좋겠다.” 라고 덧붙였다. (출처 시사인 http://bit.ly/fAlolS ) "교칙이 과하긴 하지만 청소년의 사랑에는 당연히 제한이 있어야지."하는 투로 기사 쓰는 기자들과 이런 발언하는 관계자 님들- 성적 자기결정권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는지 모르겠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처럼 소극적인 권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구나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자신의 성과 관련된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정 집단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손잡았다고 벌점 주고, 섹스하면 퇴학시키고, 이런 게 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심지어 성폭력에 이성교제를 포함시킨 무개념 학교들이나 '자발적 성관계'를 처벌대상으로 명시한 학교들(압구정고등학교, 당곡고등학교 등)도 있으니 말 다했다. 본인이 한 “고등학생 정도라면 건전한 이성교제는 가능하다고 본다.” 라는 말에서 고등학생, 건전한 등의 단서까지도 모두 성적 자기결정권에 어긋난다는 것을 김 대변인은 과연 알 리가 없지 에휴.


청소년이 아니라 이 사회에게 의무가 있다



이 딴 식으로 연애에 있어 청소년을 비청소년과 다른 무인권적 존재로 다룰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핑계는 공부와 임신이다. 한국에는 아직도 모든 청소년의 본분은 입시공부이고, 그것을 방해할 소지가 있는 공부 외의 모든 일은 본인들의 미래를 위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는 소름 돋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청소년들 다수가 승리할 수 없는 경쟁교육의 구조 자체는 물론, 주거비용이 솟구치고 안정적이지 못한 일자리만 늘어나는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교복 입은 청소년이 손을 잡고 있거나 키스라도 할라치면 엄청난 분노를 표출한다. 학생-청소년들이 무슨 공부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들을 멍청하거나 찌질 한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임신 운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조금 더 짜증난다. 물론 임신이고 뭐고 순수한 ’우리 아이들'이 손잡고, 껴안는 걸 그냥 뒀다가 같이 잠이라도 자면 어쩌냐!...그런 더럽고 입에도 올릴 수 없는 일을!(....우리들도 그래서 태어난 아이들인 게 분명한데......음.....) 식으로 섹스라는 말만 나와도 벌벌 떠는 이상한 인간들이 있다. 그 한편에 그러다 임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 관계에는 권리만 있을게 아니라 책임도 있다고 중얼대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 말한 교총 대변인 같은 인간들이다. 역시 다 권리에 대한 몰이해가 부르는 발언이다. 애초에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어야 책임도 운운할 수 있는 법이다.

위 사진[설명] 11월 16일 청소년연애탄압실태 보고회


청 소년은 직접적으로 교칙에 의해 연애를 탄압받는 것은 물론, 원하는 때와 장소에서 사랑할 권리 또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피임교육과 피임기구 제공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임신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공포를 갖는 것이 자기결정권에 중대한 침해임은 말할 것도 없다. 결정권을 제대로 보장하게 된다면 학습노동에서 자유로운 시간, 데이트 할 장소, 피임에 대한 지식과 도구, 임신 후 출산 결정시에 각종 지원 등을 포함한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대체 청소년에게 무슨 책임과 의무를 요구할 여지가 있는가? 당신들이 근대적인 마인드로 '허용'해 주겠다는 소꿉장난 같은 연애뿐 아니라, 섹스와 출산을 포함한 사랑에 관한 포괄적인 권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애초에 우리가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부끄럽게도 권리와 책임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청소년들의 연애와 성행위를 금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임신·출산을 했을 때 필요한 지원을 할 의무가 있다. 한 번에 다 해달라고 하지 않겠으니, 우선은 방해하지나 말아 달라. 우리, 사랑 좀 하자.

덧붙이는 글
우걱우걱 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연애해온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30 호 [기사입력] 2010년 12월 08일 17:14:21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임신후 출산 결정시'라는 말은 임신 중절도 가능하단 얘긴가요? 임신이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출산으로 연결되는 것이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키는 행위는 당연히 살인 행위입니다. 아마 그런것을 긍정하는 뜻으로 쓰신 말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청소년은 물론 모든 인간은 말씀하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리는 언제나 무한히 누릴 수 있는게 아니라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서 제한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사랑,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수준의 논리밖에는 말하지 못 하겠죠. 청소년들의 연애, 이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청소년들의 섹스. 여기선 이야기가 다르죠. 완벽한 피임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섹스는 언제나 임신 가능성과 함께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그럼, 그 임신으로 인해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은 어떻게 할거냐는 문제가 생겨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할겁니까? 나라가 임신과 출산에 대해 지원해주면 되지 않냐구요? 현실을 보죠.

    생판 모르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도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에 책임지고 지원을 해야한다고 하셨죠? 현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구요. 그런데 왜 당사자들의 부모들은 그 지원을 해주지 않습니까? 또, 당사자들은 그것을 왜 부모에게 요구하지 않습니까? 사랑의 결실로 생긴 새 생명에게 안정적인 생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당장 자력으로 힘들다면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근데 왜 그런 사례는 정말 보이질 않나요?

    제가 아는 가장 흔하지만 가장 나쁜 청소년 성 경험의 실체는 한 쪽의 강요와 관계 유지를 위한 한 쪽의 희생입니다. 주로 희생하는 쪽이 여자 아이라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겠죠. 전 당연히 그런 부분은 강간과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임신을 전후로 해서 깨지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게 사회 탓이라고 하시렵니까?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시렵니까?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렵니까? 저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렵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이 그 결실을 맺었다는 이유로 부담되고 떠나야 하는 사람으로 변한답니까?

    또, 청소년의 모든 연애가 사랑은 아니죠. 성인도 다르지 않지만 때로는 연애를 위해 사랑도 만드는 것이 현실이죠. 그러니 '우리도 사랑좀 하자'같은 말은 쓰임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010.12.11 03:4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샤펜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왜 청소년에게만 그러시는거죠? 어른들이라고 다 준비된것 아닙니다. 충분히 그런 사례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왜 비판하지 않으시는겁니까?

      2010.12.12 13:43 [ ADDR : EDIT/ DEL ]
    • 샤펜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순순히 해주시긴 하나요? 안그런 경우가 대다수일텐데요. 그리고 청소년이 출산해서 아이때문에 열심히 살려고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티비에서 여럿봤습니다. 혹시 님이 못보신건 아니시고요?

      2010.12.12 13:45 [ ADDR : EDIT/ DEL ]
    • 클린앤

      우리나라는 여성청소년이 임신후 출산을 했을때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수없는 구조죠. 태아의 생명권도 있겠지만 여성에게 임신의 모든책임을 돌리고서는 '살인자'라고 하는건 위선인거같습니다. 임신은 남성에게도 책임이 있는거고 이사회가 원하는노동력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나라에도 책임이 있는거겠죠.

      실제로 프랑스같이 유럽국가에서는 청소년들의 임신과 출산을 국가에서지원하고있습니다. 동거 결혼까지도 지원을 합니다. 걔네는 돈이 많아서 그런다고 할수도있지만 유럽에서 청소년의 복지정책은 1인당 GDP가 1만달러를 넘을시점부터 준비하고 시행했습니다. GDP 2만달러인 우리나라가 돈이없어서 못한다는건 말이 안되죠.

      나쁜청소년의 성경험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닌거같네요;; 그리고 모든 연애가 사랑이 아니라고하시는데 그건 너무 주관적인 말씀같고 사랑이라는 것의 기준이머고 어디까지 사랑을 보냐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인거같습니다..

      2010.12.12 14:52 [ ADDR : EDIT/ DEL ]
  2. 아직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청소년들이 성지식을 잘 알지 못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말에 십분 공감을 합니다. 청소년의 사랑, 그리고 섹스가 일방적으로 탄압당하는 것도 인권 침해의 유형이라는 점도 공감합니다. 그러나 지적해주신것처럼 아직 청소년들의 성을 지킬 수 있는 교육이나 기구가 전무한 상태에서 그냥 우리 자유롭게 사랑을 하게 해달라, 또는 조금 더 극단적으로 우리도 성관계를 자유롭게 갖게 해달라 라고 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어른들이 무조건적으로 연애를 못하게 규칙을 정해놓는 것도 문제지만 그냥 손 놓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가 나서서 청소년들의 연애가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도움을 주자는 것이지요.

    2010.12.11 14:31 [ ADDR : EDIT/ DEL : REPLY ]
    • 어른들과 청소년의 경우가 어떻게 다른건지요?
      어른이라고 해서 성교육을 받고 성지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인데

      2010.12.12 12:05 [ ADDR : EDIT/ DEL ]
    • 홍도봉

      청소년과 어른 둘중에 어느쪽이 더 성지식이 많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보세요 계속해서 시대에 맞춰서 변화되는 성교육을 받는 학생들과 성교육받지 않고 조금씩 까먹어가는 어른 그 사이에 누가 더 잘 알고있을까요

      2010.12.12 12:38 [ ADDR : EDIT/ DEL ]
    • 클린앤

      청소년들의 연애의 올바른 방향은 어디일까요 ㅇ.ㅇ;; 그리고 어른들이 손놓고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하지않을까요 ^_^? 청소년이 미성숙하고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보호주의적관점인거같네요

      딱히 성관계를 위험하게 볼것도없을거같네요. 기본적인 성교육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요

      2010.12.12 14:56 [ ADDR : EDIT/ DEL ]
  3. 다래우리

    이 문제는 어른과 청소년을 구분하지 않는것, 그것이 주요한 논제가 되어야 할것. 이 문제를 단지 청소년의 교제문제로만 국한시킬경우, 문제는 끝이 없을것. 김예슬이 고대를 나가며 말하던게 있었음.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한가", 이 문제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건, 이문제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한가"

    2010.12.13 03:1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11. 17. 15:57



아수나로에서 어제 발표한 거구요
담당한 분이 쓰러지셔서 도중에 제가 땜빵으로 밤새가며 자료 정리를 했던 ㅠ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48998.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1171213131&code=94040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79115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9269

http://www.suwon.com/news/articleView.html?idxno=60054


관련기사들입니다 ^^;



==============================
==========================================================================================

사랑은 19금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의 사랑에, 성에 인색하다. 청소년들의 성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으면서도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논의는 부족하기만 하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도 단편적으로 알 수 있듯이, 학교들은 학생들의 사랑과 성을 금지하고 처벌하기에만 급급하다. 때로는 입시공부를, 때로는 학생다움을 내세우며.


그러나 사랑할 권리는 하나의 인권이다. 사랑하는 감정, 성적인 행위와 마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이자,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사생활의 자유이다. 「2008청소년인권선언」에서는 제8조에서 “청소년에게는 나이와 성적 지향(동성애, 이성애 기타 등등),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짝사랑하고 연애하고 성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도 제16조에서 아동은 사생활에 대해 자의적이거나 불법적인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최근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민단체들이 추진한 바 있는 광주 학생인권조례안에는 사생활과 개인 정보의 보호 부분에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둘러싼 감정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하여 청소년들의 사랑할 권리 보장을 꾀하고 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역시 사생활의 자유에 관한 조항에서 “학생의 교우관계에 간섭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사랑할 권리,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폭력과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인 동시에 실현을 위해 경제적 사회적 능력이 필요한 사회권이기도 하다. 학교의 연애 탄압에 문제제기하는 것은 청소년 성적 자기결정권 실현을 위한 첫 걸음일 뿐이다. 사랑이 ‘19금’이 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는 정신적․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법적․경제적 이유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안습 상황,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책임감을 기르지 못하는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교육청들, 학교들은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학칙들을 폐지하라.

◆ 학교와 가정에서 실효성 있고 인권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라. 청소년들이 성에 관한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하라.

◆ 정부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사회적 캠페인 및 교육을 실시하라.

◆ 정부는 임신․출산을 한 청소년이 출산․양육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을 마련하라.

◆ 정부는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마련하고 사회적 제도를 개선하라.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저도 이 기사들이 매우 안타깝더군요. 갈길이 너무 멉니다.

    2010.11.18 15: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를 가만히 두란말이야~ 나도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
    그들이 하고싶은 말이 아닐까요.. 전 왜 그때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 까요.

    2010.11.21 05: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0. 4. 12. 15:53


이건 분명 언짢고 신경 거슬리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기에는, 또는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얘기를 안듣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니 말이죠. 어른들은 여러분에게 날마다 그런 말을 하지요. 그리고 거기에 대해 여러분이 의문을 제기하면 해당되는 법조문까지 증거로 제시하면서, '여기 이렇게 적혀 있기 때문에 어른인 우리는 이 일을 해도 되지만 청소년인 너는 아직 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합니다. 어른들은 그걸 '청소년 보호'라고 부르며 그런 법조문은 '미성년자 보호법'이라고 부릅니다. 부모와 청소년기의 자녀들은 서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자주 입씨름을 벌입니다. 이때 부모님 쪽에서는 자신들의 권리를 '부모로서 자녀를 돌보고 보살필 권리'라고 설명하고, 자녀 쪽에서는 '부모의 폭력'이라고 비난합니다. 이들이 폭력이라고 말할 때는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통틀어 글자 그대로 '폭력'을 의미하지요. 비상시엔 부모님이 정말 물리적 폭력을 가하기도 하니까요.

어른들은 물론 청소년들을 성적인 면에서도 통제하고자 합니다. 성적인 것을 청소년에게 허용한다면 어떤 것을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또 문제죠. 그러나 어떤 일을 '금지'하는 것은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복종하도록 통제할 수 있을 때, 또 말을 안 들으면 처벌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지요. 이 점에서 오늘날 도덕 교육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지극히 일반적인 규범을 따르고자 합니다. 모든 종류의 천박하고 부도덕하고 도가 지나친 정열에 대해서는,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직접 맞서 싸우는 방식으로 애초부터 그 싹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1858년에 당시의 영향력 있는 어떤 교육자가 작성한 글입니다.어떤 정열의 싹을 질식시켜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겠지요.

"사춘기에 발생하는 양성간의 성행위는 자위행위와 유사한 동기를 갖는다. 외형적으로는 그 행위가 헤테로섹스의 기본적인 인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함께 자위행위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기계적인 성욕해소방법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1979년에 역시 이름 있는 교육자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바이어른 카톨릭 주교회에서 발표된 이 글을 쉬운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춘기의 소녀와 소년이 성행위를 하는 것은 자위행위를 할 때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겉으로는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싶은 자동적인 욕구를 둘이 함께 푸는 것일 뿐이다." 청소년들의 애정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이지요.

  (중략)

여러분이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유형에 속하게 될지는 여러분이 '철없는' 첫사랑의 경험에 편을 드느냐, 그런 따위를 거부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정의롭지 않은 일에 대한 분노, 거짓말과 사기에 대한 혐오도 역시 '미성숙'에 속하는 표현입니다. 세상에서 '성숙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필요에 따라서는 부정행위에 동조하고 거짓에 눈을 감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은 흔히 생명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미성숙한 사람들만이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이 '미성숙' 쪽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한 사람들은 나이가 든 뒤에도 이제까지의 인습을 뒤흔드는 항상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섹스북』(귄터 아멘트 지음. 이용숙 옮김. 박영률출판사) 에서 발췌






근데 이 책에서 아주 옛~날에 발췌해둔 거라서 몇 페이지에 있던 건가는 찾을 수가 없네요;;;
그 책 자체도 지금 다른 사람 줘버렸고...
절판돼서 새로 살 수가 없어요 ㅠ_ㅠ


사실 결국 "성숙"한 것은 더 우월하고 "미성숙"한 것은 더 열등하다는 관념 자체가,
그 '성숙'과 '미성숙'을 구성하는 내용들이 대체 뭔가 꼼꼼히 살펴보면 뒤집히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하죠. 결국 모든 인간은 미성숙할 뿐이고, 살아가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어떤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권력의 문제라고.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걸어가는꿈2008. 8. 19. 22:4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성-청소년, 보호주의에 묻힌 성적 자기결정권

난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촛불집회에서 연행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혹시 아실까 모르겠어요. 그 때 기사가 났었는데, 대부분 기사 내용이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는 여중생...' 뭐 이런 식으로 기사가 났어요. 근데 사실 전 집에 가고 싶다고 울부짖고 그런 적 없는데, 그 때 언론들에서는 모두들 '집에 가고 싶어요, 무서워요, 저 보내주세요 흑흑... 한 여중생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았었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어린 10대 소녀로, 그 기사들은 절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청소년은, 보호해줘야 할 약자,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에요. 언제부터 나는 누군가가 지켜줘야 했을까요? 왜 나는 보호받아야 할 어린 소녀일까요? 연행당할 때 '미성년자는 풀어줘라!'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10시 이후에는 집회에 남아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할 때, 항상 따라오는 건, 내가 '청소년'이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청소년이라 못하고, 안되는 게 굉장히 많아요. 일단 술 담배 마음대로 못 삽니다. 찜질방도 10시 이후로는 보호자 없이는 출입 못 하구요. 숙박시설도 보호자가 없으면 마찬가지로 잠 못 자구요. 그래서 청소년들은 밖에 나와도 잘 곳이 없어요. 이 모든 것들은 다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서 라는 건데, 그 유해환경에 '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선거에서 당선돼 우리가 다시 한숨 쉴 수밖에 없게 만든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관계를 한 학생은 퇴학시킬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청소년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의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청소년은 아직 판단력이 미숙하고, 경험이 부족하고, 그렇기 때문에 유해환경에 쉽게 물들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는 약자인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호해주겠다는 말 속에 권력 관계가 있는 거고, 보호라는 말로 포장된 통제나 억압, 지배가 있게 됩니다. 보호라는 말로 차단시켜 놓음으로써 격리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이구요.
보호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보호만 싹 없앤다면 여러 문제들이 생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보호만 하는 것이 맞나? 그것은 현상 유지를 위한 방책이지, 해결을 위한 노력이 아니지요. 어느 선에서 차단만 시켜놓는 미봉책입니다. 예를 들면, 청소년 유해 환경이라고 했을 때 뭔가가 유해 하다면 유해 환경 자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건데 그것을 출입 금지로만 그냥 금기시 해놓는 것. 성을 이야기 하자면, 그러니까 성을 금기시하는 이유는, '너희들, 잘못하면 임신할 수도 있으니까'인데, 지금 사회에서 청소년이 임신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낙태'를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청소년들은 비청소년들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낳아서 어쩔건데?'가 되어버리는거죠. 또 사회적인 시선들, '아니, 저 어린 것들이.' 하는 비난의 눈길. 하지만 청소년들이 임신 했을 때, 낳아서 양육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닐까요? 임신을 하면 인생이 불행해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을 통제해서 막겠다는 것은 문제를 덮어 놓거나 어느 선에서 눌러버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성을 금지했을 때, 보호하려 했을 때 보다 청소년의 임신율, 낙태율, 이런 것들이 수치상 줄어들 순 있지만 사라지는 것은 아닌거고, 청소년의 행복과도 거리가 멀어지지요. 또 사실 낙태 비율만 놓고 보자면, 기혼 여성의 낙태율이 제일 높다고 해요. 임신을 하고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해 아이를 지워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양육 문제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양육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고 있는 사회의 문제인거죠.
다시 보호주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여자니까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밤이 위험해지는 환경, 밤에 범죄 위험(성폭행, 납치, 살인 등..)이  높은데, 범죄의 위험성에 대해 CCTV설치 정도로 해결하려는 것이나, 위험하니까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들. 그 위험한 상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밤길 이야기는 '여성에 대한 보호'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보호의 대상'이 됩니다. 비청소년이 되어도, 여성인 경우 집 안에서 외박을 금지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연행 사건에 대한 기사의 내용도, 실은 그 청소년이 남성 청소년이었다면, 그런 식의 기사는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호'에 있어서, 청소년 사이에서도 성별의 차이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성, 섹스에 관해서는 나이보다 성별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청소년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보호주의'라는 것에 '성적자기결정권'은 묻히게 됩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아직 당연한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인정받지 못하고, 주위에 숨겨야 될 것만 같은 분위기, 청소년이 섹스하기엔 사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없는 것들, 등등. 하지만 성에 대한 통제가, 청소년의 성을 금기하는 것도 있지만 비혼이란 범주에 청소년이 속한다고 본다면, 20대일지라도 비혼일 경우는 섹스했다고 하면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청소년이더라도 비혼부는 없고, 비혼모는 있지요. 임신후 결과에서, 여성 청소년에게만 더 많은 성적 통제가 가해지고, 남성 청소년의 경우는 다른 얘기가 되는 것이구요. 남성 청소년의 성경험이 여성 청소년보다 일찍 시작한다는 통계도 있고 경험에 대한 해석에서도 여성 청소년보다 남성 청소년에게 훨씬 관대하게 적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의 차이. 결혼을 중심으로 봤을 때, 결혼하지 않았다는 게 여성 청소년에게 훨씬 크게 적용하지요. 혼전순결에 대한 사회적 강박 같은 걸까요? 
사랑니라는 영화를 보면 여성 학원 교사가 남자 아이와 여관을 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텔 종업원이 비난을 할 때는 그 여성에게 비난을 가합니다. 20대, 30대 남성과 10대 여성이 할 때에도 도덕적 비난의 대상은 일반적으로는 여성에게 가게 됩니다. 그 때는 '저 발랑 까진 어린 것이...'라는 얘기가 되는 거지요.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아직도 쉬쉬하는 사회. 보호를 위한 건가요? 그렇다면, 그 보호를 거부하겠습니다. 이제는 당당히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위험 속에서도 권리를 외치다


공현


청소년 성폭력 사건의 그 ‘특별함’

  청소년(아동) 성폭력 사건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분명 웬만한 청소년 성폭력 사건들은 남성과 여성의 성별 권력(물론 구체적 사건에 따라 +a가 있다.) 속에 일어난 여타의 성폭력 사건과 그리 다르지 않은 성폭력 사건일 텐데, 청소년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특별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사람들은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이고 비청소년-‘성인’이 가해자인 사건(예컨대, 최근에는 혜진 씨 예슬 씨가 피해자였던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는 천인공노(天人共怒), 인면수심(人面獸心) 등 한자어를 써가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면서도 집에서 무슨 변태 성욕의 증거가 발견되었다면서 가해자를 열심히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타자화 한다. 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주의를 발동시켜서 성폭력 범죄자들을 더욱 빡세게 처벌하겠다는 법률 개정 검토를 하고, 부모들은 아동 성폭력 피해 예방을 위해 밤길 조심하고 처음 보는 낯선 사람 조심하고 등등의 조심 사항들을 내놓는다.
  아동-청소년이 가해자인 사건(예컨대, 대표적인 것이 2004년에 있었던 밀양에서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 공론화되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가벼운 처벌이 내려지는 것에 대해 사회적인 비난이 커지며, ‘미성년자’들의 ‘충동적인’ 범행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고 청소년들의 ‘미성숙’함이 강조된다. 청소년에 대한 음란물 규제와 같은 조치도 항상 따라 다닌다. 최근에 있었던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에서도, 정부에서 검토한다고 한 조치는 결국 ‘음란물 규제’가 아니었던가?
  분명히 아동-청소년들의 성폭력 사건은 대개 성별 권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 ‘전형적인’ 성폭력 사건이다. 아동-청소년들의 사회적 약자로서의 지위가 반영된 경우도 많지만,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성별 권력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책임 전가라거나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것을 금기시하는 모습도, 여타의 성폭력 사건들과 비슷한 모습들도 종종 보인다. 그러나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이 사회의 태도는 아동-청소년들의 특수한 위치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아동-청소년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청소년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청소녀/년의 성적 결정권”이란 이름으로 특별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청소년에게 위험한 성

  그렇다. 청소년에게 성(性)은 위험한 것이다. 이 말은 어쩌면 여성에게 성은 위험한 것이다, 라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여하간 청소년들에게 성은 위험한데, 하나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때문(가해/피해 모든 면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에게 성행위는 금기시되며 그러다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난감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위험은 연령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아동-청소년 성폭력에 특히 민감한 이 사회(이게 과연 ‘약자에 대한 폭력에 분노’하는 ‘순수’한 마음일까?)에서는 아동-청소년 성폭력만 특히 강조되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은 특히 위험하다. 하나는 ‘자라나는 새싹들’인 청소년들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충동적’이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이 인식 안에는 청소년에 대한 이중적인 고정관념들이 이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성이 위험한 두 번째 이유는, 청소년들의 성행위는 이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성행위를 금기시하는 데는,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신세망친다, 라는 사회경제적 지위의 문제와 더불어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가 부여하는 생애주기-나이주의(나이주의라는 말은 여기선 매우 복합적으로 나이에 따른 권력과 위계를 뜻함과 동시에 나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생애주기의 의미를 지닌다.)의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다. 고등학교 때인가 국어 선생이 “어른”의 어원이 성행위를 경험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청소년들이 성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가 정한 청소년들의 틀과 지위를 벗어나는 일이기에 위험하다.
  최근 인기 도서인 『88만원 세대』를 보면 첫 챕터에 “첫 섹스의 경제학,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 10대들이 섹스를 하지 못하는 경제적인 문제를 구구절절 분석해놨는데, 옳은 소리이긴 하지만 청소년들의 성행위를 금기시하는 것이 꼭 경제적 지위의 문제만은 아니다. 30대 기혼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경제적 여건이 매우 곤란한 경우 주변에서는 걱정을 하고 염려스러워 하긴 하겠지만, 10대 미혼(비혼) 여성이 임신을 한 경우에는 비난과 좀 다른 스트레스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청소년 안의 성별 권력

  그런 이야기로 원고의 반절을 쓰고서도, 또 청소년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청소년’의 특수성을 생각해야 하지만 동시에 청소년들 안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존재한다. 청소년이 가해자인 성폭력 사건들도 충분히 그런 점을 보여주고 있고, 일상적으로는 수업 시간에 남성중심적인 성적 농담을 통해 친밀한 공모 관계를 형성하는 남성 교사와 남성 학생들의 관계를 봐도 그렇다. 최근에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성구매를 한 남성 청소년들에 대해 교사가 통제를 잘못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언론이나 사람들을 봐도 남성의 성욕은 통제할 수 없다는 식의 판타지는 계속된다.(물론 거기에는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성숙한’ 성인들이 관리해야 한다는 의식도 같이 있다.)
  또한, 바로 요 앞에서 청소년들에게 성이 금기시되고 있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 또한 남성 청소년의 경우와 여성 청소년의 경우가 다르게 취급되며, 미혼/기혼 기준 또한 여성 청소년들에게 매우 강하게 적용된다. 남성 청소년들의 성행위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난다의 발제에 충분히 자세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으니까 이만 줄이겠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

  그래서, 도대체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 않은 이 토막난 원고의 끝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발제라는 게 원래 시원한 답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 함께 토론할 이야기거리를 꺼내보자는 것이니 속 시원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고 인정되어야 한다. 비록 아동권리협약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홀대받는 권리이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권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성적 권리라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성에 대해 알 권리, 성평등(동성애나 성전환 등을 포함한)에 대한 권리 기타 등등을 의미한다. 비록 청소년의 성적인 자유가 힘 있는 남성 청소년들에게 단순한 자유주의나 프리섹스로 오인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청소년 안에서 성적 권력 관계가 엄존하기에 수많은 고민들이 필요하더라도, 청소년의 성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청소년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있다, 라고 하면 “그래 당연하지. 하지만…”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도 청소년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하면 매우 과민하게 반응한다. 왜 이 사회는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까? 그것이 그토록 위험한가? 그것이 정녕 그리도 위험하다면, 그것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적어도 그 사람들이 18세 이전에 섹스를 하면 자궁에 질병이 생길 확률이 몇 배 높아지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유 때문에 ‘위험’하다는 건 아닐 테니까.) 청소년들에게는 성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성을 권리가 아닌 보호와 통제, 위협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때 청소년들은 그리 행복하지도 못할 것이고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A4를 3페이지나 낭비했다는 것은 죄악인가?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