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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30 원숭이와 오소리 - 문화와 경제적 지배
딱딱한꿈2008. 1. 30. 13:29

  오소리는 원숭이가 혼자 열매를 쌓아 놓고 있는 것이 얄미웠다. 그래서 꽃신을 만들어 원숭이에게 선물했다. 원숭이는 뜻밖의 선물에 기뻐하며 꽃신을 신었다. 그 꽃신이 다 닳았을 때, 원숭이는 오소리에게 다시 꽃신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오소리는 열매를 10개 달라고 했고 원숭이는 흔쾌히 열매 10개를 주었다. 그런데 그 뒤로는 원숭이가 꽃신을 사려고 할 때마다 열매가 30개, 50개, 100개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원숭이는 꽃신을 신는 동안 발에 굳은살이 없어져 이제는 꽃신을 신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가지고 있는 모든 열매를 다 주어도 꽃신을 살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원숭이는 오소리의 집에서 머슴을 살아 주기로 약속하고 꽃신을 신을 수밖에 없었다.



 오소리는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으로, 원숭이는 소비자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은 꽃신 - 상품의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며 결국에는 소비자를 자신에게 예속시킨다.

 

 저 우화가 많은 것을 시사해주긴 하지만, 우화와 현실은 조금 다르다. 현실에서는 오소리처럼 강력한 시장지배자가 나타나기 힘들다. 공정거래법이라든가 여러가지 제재가 나타난 현대에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시장에 대해 지배력을 가진 자들은 오소리처럼 원숭이를 완전히 예속시키지 않고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범위 안에서 가격을 책정한다. 그들도 소비자들을  망하게 할 생각은 없기 때문이기도 하며, 또 그들이 지나치게 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여러 반발이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동의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문화를 통한 지배를 살피고자 한다.

 위의 우화에서 원숭이가 꽃신에 '길들여지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숭이의 발에 굳은살이 있었을 때 원숭이에게 꽃신은 생필품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오소리의 힘도 약했다. 그러나 계속 꽃신을 신으면서 원숭이의 발에서는 굳은살이 사라졌고, 어느새 꽃신은 필수품이 되었다. 원숭이가 다시 꽃신을 벗고 산다면 굳은살이 박히게 될 것이나,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본래 원숭이는 꽃신을 소비하지 않았으나, 어느새 꽃신을 소비해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원숭이가 꽃신을 신느냐 신지 않느냐는 원숭이의 생활양식 - 문화라고 부를 수 있으므로, 원숭이의 문화가 (오소리에 의해 의도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오소리에게 지배당하게 된 셈이다.

 이처럼 문화와 경제는 분리되지 않는다. 소위 '서양식'이라고 부르는 미국과 유럽 몇몇 나라들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현대 한국인들은, 그런 문화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을 소비하게 된다. 단적으로 의생활의 예를 들자면 청바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한복 입기를 꺼려한다. 편·불편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어떤 문화(서양식 옷)가 사회에 정착하게 되면 그 외의 문화(한복)는 '이상한 것'으로 보이게 되며 소비가 활성화되지 못한다. 한복을 입기 편하게 바꾼 생활 한복도 널리 퍼지지 못하는 이유에는 가격 문제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에 관련된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런 현상은 특히 유행이나 다른 사람들을 따지기 좋아하는 대중 사회에서 큰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주체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소비자"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전적으로 투명한 상태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소비자들은 문화에 물들어 있고, 특정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러므로 특정 상품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때, 소비자가 자유롭게 결정했으므로 정당하다는 주장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경제는 결코 다른 사회 영역이나 문화로부터 독립되어 있지 않으며, 문화의 흐름은 기존의 역학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경제분야에서의 소비자는 사실 다른 사회분야에도 속해있는 인간이다.)

 
 위 이야기에서 원숭이가 복수라고 생각해보자. 또, 오소리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지 않고 다소 높은 가격을 부른다고 생각해보자. 오랜 시간 꽃신을 신게 된 원숭이들은 꽃신을 신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설령 가격이 비슷한 구두가 나온다고 해도 잘 신으려 하지 않는다. 구두를 신는 것은 독특한 일부 원숭이일 뿐, 원숭이들의 전체적인 경향은 꽃신을 선호하는 쪽이 된다. 지배자는 이러한 전체적인 경향을 조작한다. 그들은 대중의 동의를 강제한다.


이제 오소리를 특정 문화권이나 특정 국가의 어떤 기업군(群)이라고 생각해보자. "문화 전파", "시장 개방"이라는 이름을 걸고 추진되는 세계화 속에는 어쩌면, 원숭이(다른 문화권의 인민들)가 꽃신을 신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려는 의도적인 계책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햄버거를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고 느끼게 하려는 계책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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