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 8. 30. 02:12

2012년에 옥중에서 썼던 글인데 이제야 올리네요

보호주의 비판 글이긴 한데

동시에 약간 정치적 권리 운동으로 연결되는 부분도 있구요. "어른 독재 타도"라는 문구의 발상 자체가








타도! 보호 독재, 어른 독재





  얼마 전 아이건강국민연대라는 단체가 ‘학생 스마트폰 규제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이 단체는 몇 년 전엔 청소년 게임 중독 대책이라며 청소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주창했었는데, 이번에는 스마트폰이 문제란다. 언론들이 청소년에게 스마트폰은 마약이나 마찬가지라는 식의 보도들을 쏟아내는 것도 게임 때와 판박이다.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런 ‘청소년 보호’는 오랫동안 상식이었으니까. 때론 만화로부터, 때론 술․담배로부터, 때론 성(性)으로부터, 때론 정치로부터, 아동․청소년은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는 독재 사회

  그리고 그 상식이 나를 화가 나서 미치고 팔짝 뛰고프게 만든 적이 많다. 당하는 입장에서 그 ‘보호’란 높은 확률로 금지와 규제와 차별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청소년들은 보호의 대상일 뿐이므로, 어른들은 마음대로 무언가를 규제해도 된다. 설령 그것들이 어른들은 아무 규제도 당하지 않는 것들이더라도.


  솔직히 나는 담배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일반적으로 유해한데 청소년의 흡연만 금지시키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어른들에게도 게임․인터넷 과몰입 문제가 큰데도 청소년들에 대해서만 규제 논의가 쏟아지는 건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청소년들에겐 너무나 쉽게 금지와 규제를 들이민다. 청소년운동은 몇 년 전부터 이러 문제들을 ‘청소년 보호주의’라 이름 붙이고 반대하는 활동을 해왔다.


  청소년 보호주의가 지금껏 일방적으로 득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권익과 의견을 발언할 사회적 힘이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부터 입법이나 정책 결정 과정까지,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의 결정 과정 전반에 참여할 수 없다. 심지어 자신들이 직접적 당사자인 사안에서조차 발언할 수 없다. 설령 발언할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제대로 목소리를 모으고 권리를 행사할 조직화된 세력도 전혀 없다시피 하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다른 많은 약자들에게 그러하듯, 청소년들에게 이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독재 주체로 말하면 ‘군부 독재’ 대신 ‘어른 독재’, 형태로 말하면 ‘개발 독재’ 대신 ‘보호 독재’ 치하에 청소년들은 살고 있는 셈이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거라는 그 흔한 말, 경제발전을 위해 유신독재를 한 거란 얘기와 참 닮은 꼴 아닌가?


  청소년을 규제하는 형태의 정책이 아니더라도 또는 소위 진보적이라 분류되는 정책이더라도 ‘보호 독재’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예컨대 무상급식이 그렇다. 무상급식 논쟁에선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주인공으로 표출되고 고려된 적이 없다. 학생들은 항상 수혜자나 피해자로, 차별적 급식 때문에 불쌍하게 피해를 입는 존재 같은 것으로만 나타났을 뿐이다. 또한 학생들이 급식운영 등에 참여할 권리, 음식의 질을 함께 관리할 권리, 스스로 선택하여 먹을 권리 등은 빼놓고 급식을 공짜로 주는 것만 얘기될 때, 그 밥은 어른들이 먹여주는 게 될 뿐이다. 먹는 게 아니라 먹이는, 먹여지는 밥. 인권이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민주주의여 만세

  개발 독재 비판이 개발이나 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듯, 나 역시 보호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실 모든 사람은 폭력, 차별, 착취, 궁핍 등으로부터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한다. 신체적 약자이며, 사회적 약자로 만들어지는 아동․청소년은 어떤 경우엔 더 많은 보호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는 보호, 그리고 규제와 금지로 당사자를 수동적 존재로 만드는 보호는 차별과 억압의 세련된 얼굴 아닐까. 그래서 미국의 작가이자 현대 사회의 틀을 벗어나려 시도한 사상가인 리 호이나키는 ‘아동기’를 가리켜 “근대적 형태의 면역결핍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건강국민연대 같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아이들을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는 좀 의심스럽다. 그리고 아이건강국민연대의 “국민”에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하긴 그 단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가 독재 사회인 것을, 어쩌겠는가. 그러니 다시 한 번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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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3. 10:47


청소년 입장에서 <만16세미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하는 7가지 이유



2011년 4월, <만16세미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담은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 법은 2011년 11월부터 적용이 됩니다. 이 법이 시행되면, 만16세미만(학생이라면 대개는 고1 생일 지나기 전)의 청소년들은 밤12시~아침6시까지 온라인게임에 접속 자체를 못하게 됩니다. 온라인게임을 할 때 밤12시가 지나면 강제로 자동으로 접속이 끊어집니다. 게임 열심히 잘 하고 있는데 시계가 0:00 딱 되면 팍 접속이 끊어지는 거죠. %^&*@!!! 
이 셧다운제가 왜 문제고 왜 반대하는지, 청소년 입장에서 이유를 정리해봤습니다.



1. 왜 청소년만? 이건 청소년 차별

게 임 과몰입 때문에 문제를 겪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건 16세 미만 청소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뉴스를 보면 게임 과몰입으로 아이를 죽게 했다거나 PC방에서 며칠씩 밤을 새가며 게임을 하다가 죽었다는 어른들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조사해봐도 10대보다 20대, 30대의 평균 게임시간이 더 길다고 한다. 근데 왜 16세 미만 청소년들에게만 밤에 강제로 게임을 차단하겠다는 건가? 청소년들은 나이가 어리고 선거권도 없으니까 만만하게 보고 그냥 막 금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셧다운제는 청소년 차별이다!



2. 왜 청소년을 죄다 싸잡아서 그래?

사 람들 중에는 게임 과몰입으로 밥 먹는 것도 잊고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절하게 게임을 잘 즐기는 사람도 있다. 게임은 무슨 마약 같은 게 아니라 놀이이고 문화이고 여가활동이니까. 게임 과몰입이 문제라면 게임 때문에 사는 데 문제 생긴 사람들만 대상으로 대책을 만들면 되는 일 아닌가? 게임을 즐겁게 잘 하고 놀고 있는 많은 청소년들한테까지 피해가 가는 규제를 하는 이유가 대체 뭔가? 어른들 중에 술 먹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몸을 망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어른들 모두에게 술 마시는 양이나 시간을 규제하는 정책을 하진 않는데? -_-;;; 셧다운제처럼 모든 청소년들을 싸잡아서 규제하는 방식은 불합리하다!



3. 왜 게임만 갖고서? 공부 과몰입은?

어 른들은 게임은 하루에 2, 3시간 이상만 해도 중독이라고 난리면서 하루 12시간씩 공부하는 건 별 걱정 안 하더라? 게임 과몰입으로 정신적 문제를 겪는 청소년들보다는 시험, 공부 스트레스로 돌 것 같은 학생들이 백배는 많을 것이다. 영화나 독서처럼 게임도 하나의 취미 생활이다. 또, 게임을 열심히 해야 하는 청소년들도 있는데 그건 어떡하라는? 예를 들면 프로게이머나 연습생들, 게임 관련 일을 하려는 청소년들은 게임을 많이 열심히 하는 게 꼭 필요한 일인데... 뭐든 너무 심하게 빠지면 안 좋은 건데 게임만 갖고 이러는 건 그냥 어른들의 편견 때문 아닌가? 그런 편견을 버리고 봐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가 좋은 정책 같아 보일까?



4. 시간대 규제는 말도 안 됨

청 소년들도 여러 가지 자기 생활 패턴을 갖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원을 가거나 다른 일, 공부를 하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 딱 1시간씩 게임을 하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도 있다. 아님 어쩌다가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다음날 좀 늦잠을 자는 날도 있다. 그렇게 하루 30분만 게임을 해도 밤 12시 이후에 하면 게임 과몰입이고 문제인가? -┌  청소년들은 자기 생활 패턴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셧다운제 식으로 시간대를 정해서 언제부터 언제까진 무조건 못한다고 규제하는 건 이상하고 괴악한 정책이다.



5. '수면권'은 의무가 아닌 권리다

셧 다운제를 찬성하는 사람들 중엔 그게 "청소년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하지만 "수면권"은 의무가 아닌 권리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야 하는 거지 어른들이 강제로 재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수면권이 강제로 재워야 하는 거면, 어른들한테도 수면권이 있을 텐데 어른들의 수면권을 위해 룸살롱 셧다운제 하고 강제로 집에서 재워야 되나? ==... 수면권을 보장하고 싶으면 청소년들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이 잠을 자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거다. 요즘 세계 학생들 시간표 비교 같은 게 인터넷에서 뜨고 있다. 근데 한국만 시간표 빽빽~하다. 학교 수업을 일찍 끝내고 낮에 충분히 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면 밤엔 웬만하면 잘 거다. ㅡㅡ; 내가 몇 시에 잘 건지 결정하는 것도 내 수면권인 것이다. 셧다운제야말로 청소년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건데 어디서 권리를 보장한다고 약을 팔아?


6. 막장, 제대로 된 근거도 없는 정책

청 소년 게임 과몰입이 심각하다고들 하지만 사실 게임 과몰입에 대한 제대로 된 기준도 없다. 여러 테스트마다 기준도 다르다. 예를 들면 어떤 데선 하루에 3시간씩 규칙적으로 게임을 하면 게임 과몰입이란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던데, 상식적으로, 그게 과몰입인가? 그게 과몰입이라 쳐도, 그런 과몰입을 셧다운제로 막을 수나 있나? 셧다운제 적용 기준인 '만16세'도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 맘대로 정한 거지. ㅎㄷㄷ... 게임의 폭력성에 물든다 뭐다 얘기하지만 이것도 연구 결과가 의견이 갈리고 의심스럽다. 크아한다고 물풍선 테러 하고 다니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게 다가 셧다운제 도입이 게임 과몰입을 방지하는 데 효과가 있을 거라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부모님 주민번호를 쓰거나 다른 게임을 하는 등, 게임 과몰입엔 별 효과가 없을 거란 얘기는 많다. 별 실효성도 없으면서 청소년들이 불편하고 피해만 볼 규제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7. 셧다운제는 정부의 직무 유기를 덮으려는 꼼수!

한 국에는 청소년들은 하고 놀 만한 거리가 진짜 부족하다.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놀 거리, 문화공간 등등(어른들이 보기 좋은 놀이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청소년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은 별로 만들려고 하지도 않는다. 공부만 하라고 한다. 정부에서도 청소년 문화나 복지를 위한 예산은 맨날 부족하기만 하다. 게임만 하고 있는 게 뭐 문제가 된다면 게임 대신 할 만한 재밌고 좋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노력은 많이 하지도 않으면서 게임을 규제하려는 건 치사하다. 셧다운제는 정부에서 청소년들의 놀 권리, 문화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책임을 지지 않고, 자기들의 직무 유기를 덮으려고 부리는 꼼수밖에 안 된다!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온 라인게임 셧다운제... 물론 그냥 내가 더러워서 12시부터 게임 안 하고 말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게임을 아예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뭐 그냥 다른 가족 주민등록번호 빌려서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정부에서 청소년들을 만만하게 보고 규제하려고 드는 거가 짜증나는 겁니다. 불합리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이런 규제를 해대는 걸 그냥 두고 보고 있으면 나중엔 더 심하고 말도 안 되는 규제를 하려고 들 겁니다. 셧다운제, 우리 힘으로 꼭 폐지해야 합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http://asunaro.or.kr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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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임하다 죽은 학생보다 공부하다 죽은 학생이 더 많을 거예요.

    2011.10.23 22: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광흠

    e 노트에 소개했습니다.

    2011.10.28 14:10 [ ADDR : EDIT/ DEL : REPLY ]
  3. 대박

    대박이여 ㅎㅎㅎㅎㅎ

    2011.11.01 21:28 [ ADDR : EDIT/ DEL : REPLY ]
  4. It will be memorable information for me. It will be really useful for me in the future time.

    2011.11.19 00:10 [ ADDR : EDIT/ DEL : REPLY ]
  5. 감사감사

    이번토론주제엿는데이글보고도움많이됫어요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2012.06.09 19:18 [ ADDR : EDIT/ DEL : REPLY ]
  6. 감사합니닷

    글 감사해요ㅠㅠ,,,,,지금도 셧다운제가 실시되고 있어서 너무 불편해요.......이런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ㅠㅠ이글 올리고 몇년이지나고 지금 글올려서 글을 못보실수도 있어요유ㅠ그리구 토론에도 필요했는데 너무우우우ㅜ웅감사해요ㅠㅠ

    2019.11.05 22:1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9. 9. 16:09


[성명] 금지와 검열을 남발하는 청소년 보호주의 정책을 중단하라!


  최근, 정부의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에 대한 통제가 심각하다. 지난 5월 제정된 '청소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도'와 그 직후 이루어진 청소년들이 게임을 이용할 때 엄격한 보호자 동의 확인을 거치도록 한 법 제정은 대표적이다. "술", "감기약"(항정신성 약물이란다!) 등의 단어만 들어가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하고 "사람들 햄버거를 처먹으며 나를 비웃어 미간을 찌푸리지마 동정은 됐고"(일통 「거지」) 등의 노래가 내용이 염세적이고 비속어를 쓴단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하는 청소년보호위원회 및 음반심의위원회의 블랙코미디스러운 검열은 더더욱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이밖에도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자의적 등급 심의, 그리고 이번의 청소년 '멀티방' 및 복합게임장 출입 금지 법 제정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처럼 연이어서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보호주의적 정책들을 정부가 계속 밀어붙이고 있으며, 입법부인 국회에서도 이를 견제하려는 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국회가 '꼰대'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청소년들의 놀 권리와 문화적 권리를 침해하고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반인권적이다. 청소년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들을 자유가 있다. 문화를 사회가 공익을 이유로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러 의견이 분분한 주제이며, 청소년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놀이에 대해 '합리적이고 필요 최소한의' 제한만을 가하더라도 논란이 있을 수 있는 판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에서는 자의적이고 불합리하며 폭압적인 규제들을 강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청소년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코딱지 만큼밖에 안 하면서 청소년들의 생활에 대해 금지, 금지, 금지만을 늘려가고 있다. 이러한 청소년 보호주의 정책들은, 어른들이 보기에 '학생답고 단정해' 보이는 모습을 만들기 위한 두발복장규제와 질적으로 다를바 없다. 거기에는 청소년들의 삶과 권리에 대한 진지한 고려는 없고,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어른들의 틀 안에 가둬두려는 욕심 뿐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만의, 또는 지금 이러한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는 주무부처로 지목받고 있는 여성가족부만의 문제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셧다운제도가 처음 국회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무렵의 일이었다. 청소년보호법으로 대표되는 청소년 문화에 대한 통제, 보호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음반심의, 게임심의 등이 자의적 기준과 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비판은 계속 제기되었다. 수년 전에는 상대적으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심의·검열이 이루어져서 문제가 잘 불거지지 않았던 것 뿐, 그 방식과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하다는 문제는 그대로이다. "모든 문화 예술 행위는 반드시 성경(기독교)의 잣대로 심판된다"(강인중 현 음반심의위원장)라고 대놓고 말하는 괴악한 인물이 심의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설령 '상식적인 어른들'이 심의를 한다고 해도 그 근본적인 문제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거나 청소년들을 염려하는 어른들의 목소리는 높지만, 청소년들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너무나 작은 사회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청소년들 자신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사회에 참여하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는 결국 청소년들을 어른들의 눈으로 재단하고 통제하려고만 하는 정책들로 이어지고 있다. 부처 개편에 따라 보건복지가족부, 여성가족부 등을 오가며 청소년 정책을 입안해온 관료들의 꼰대성도, 그리고 청소년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면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거의 듣지 않거나 요식적으로만 듣는 모습도, 모두가 계속 반복되어온 문제인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보호"를 내세우며 청소년들 자신의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통제와 금지를 외치는 청소년 보호주의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들을 강행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 특히 그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를 규탄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청소년들의 복합게임장 출입 금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도, 보호자 동의 확인 등 청소년들의 놀 권리, 문화적 권리를 무시하는 정책들을 즉각 폐지하라!

1. 자의적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음반, 게임, 영상 등에 대한 검열을 중단하라!

1. 청소년들의 삶과 문화를 통제하는 청소년보호법을 폐지하고, 대신 청소년을 포함하여 사람들에게 유해한 사회 환경을 없애가고, 청소년들의 인권과 삶의 질과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라!

1. 청소년 정책을 '가족'의 관점, 보호주의적 관점에서 만드는 지금의 체계를 버리고, 청소년을 주체로 보고 청소년의 삶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위한 체계를 도입하라!

1. 청소년들에게 전면적으로 청소년 관련 정책 및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라!


2011년 9월 8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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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6. 18. 06:27
경희대 교지 고황 81호에 실은 글입니다.  http://www.khkh.net/








학생인권조례, 보호와 인권이 대립되지 않는 교육을 꿈꾸다




차별의 가장 부드러운 얼굴?

혹시 선생님… 당신은 환자를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까…? 약하고 불쌍한 환자들을 정의의 아군인 자신이 지켜주고 있다…. 그 감각이야말로… 바로 차별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차별이란 누군가를 업신여기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환자를 지키려하고 있어요…. 이것도 어떤 의미론 차별입니다…. 즉 당신은 환자를 자신보다 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위선입니다….
- 사토 슈호,『헬로우 블랙잭 9』


  “‘보호’의 반대말은 뭘까요?” 내가 인권교육이나 강연을 나가서 곧잘 던지곤 하는 질문이다. 나오는 대답들은 여러 가지다. “비보호”(교통표지판?), “방임”, “방치”, “책임”, 그리고, “자유”나 “인권”까지. 이 중 뭐가 정답일지 고민하는 것은 부질없다. 애초에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리 답이 나오기 마련일 질문이기 때문이다. 보호를 하는 입장의 사람인지, 보호를 받는 입장의 사람인지,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보호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지, 여러 입장과 생각에 따라서 ‘반대말’은 다르게 그려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통해 한 번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보호”의 반대말이 “자유”나 “인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보호라면, 그건 그리 좋은 보호가 아니라고. 누군가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존재, 약한 존재, 못난 존재로 생각할 때, 차별은 시작된다. 보호 또한 비슷하다. 보호는 자신보다 못하고 약한 존재에게 해주는 것일 때가 많다. 또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 보호는 차별의 가장 부드럽고 세련된 얼굴이 된다.

  ‘차별의 가장 부드러운 얼굴로서 보호’는 청소년들의 삶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청소년보호법을 생각해보라. 얼마 전 국회에서는 만16세 미만 청소년들이 밤 12시 이후에 온라인게임을 할 수 없게 강제로 접속을 차단하는 이른바 ‘셧다운제’가 담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누가 봐도 분명히 청소년들을 규제하는 형태의 제도인데도 ‘보호’의 이름을 달고서 청소년들을 게임으로부터 보호하겠다, 청소년들의 수면권을 위한 것이다, 라고 입법 이유를 말하는 역설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한, 2003년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보호법은 동성애를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하고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 등에 청소년 접속을 제한했다. 청소년들이 혹시 ‘사고’라도 칠까봐 보호하기 위해서 이성교제를 금지하고 스킨쉽을 처벌하는 학교의 교칙 같은 것들도 ‘보호’가 어떻게 인권침해로 나타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예이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등 촛불시위가 일어나는 일대를 청소년 통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청소년들을 불법 시위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라는 조갑제 씨의 드립 역시 ‘보호’가 ‘차별’이자 ‘규제’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학생인권조례, 존중과 참여로 보호를 넘어

  2010년 10월, 경기도에서는 한국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인권의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 그리고 개선 방안을 담은 최초의 법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 이후 서울, 광주, 전북, 전남, 강원도, 경남, 충북, 제주 등 여러 지역에서 교육청이나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얼마 전 서울시민 1%의 서명을 모은 주민발의가 성사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미성숙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학생들을 성인과 동등하게 취급하려는 인권 포퓰리즘이라고 사설까지 써가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아일보가 2010년 7월 2일에 실은 사설을 보면 마지막 문장이 이렇다. “학부모와 교사들이 실력 열정 도덕심을 가져야만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다.” 인권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단다. 이런 논리는 ‘보호’가 ‘인권’의 반대말, 즉 ‘차별’이 되는 정점을 보여준다.
(덧붙여 말하자면, 동아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방임’이라고 표현하며 오도하고 있지만, 사실 학생인권조례 안에는 학생들의 권리로서 폭력과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학생들이 필요한 상담이나 교육, 복지, 보호를 제공받을 권리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보호가 차별이 되지 않는 경계선, 보호가 인권의 반대말이 아니라 인권의 동반자이자 부분집합이 될 수 있는 그 경계선은 바로 ‘존중’에 있는 것이 아닐까? 보호를 받는 사람을 약하고 못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할 때, 일방적인 규제나 시혜가 아니라 보호받는 사람의 참여 속에서 그 의견과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때, 보호받는 사람이 주체가 되고 권리로서 보호를 누릴 때, 보호는 비로소 ‘차별의 부드러운 얼굴’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학생인권조례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차별적인 청소년보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실마리를 본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격을 존중하도록 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보장, 학생들의 학교 운영 참여 보장, 교육정책에 대한 참여와 의견 반영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는 학칙을 개정하거나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을 보장받으며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고 여론을 형성하며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교육청 역시 학생참여위원회 등의 기구를 통해서 교육정책을 결정할 때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비록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인권과 교육과 관련된 분야에만 적용되지만, 이러한 제도는 앞으로 한국 사회에 학생들, 청소년들의 실질적 참여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청소년특별회의, 청소년참여위원회 등 이른바 ‘청소년 참여 기구’가 있어왔지만 실질적으로 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보다는 일부 모범생들의 스펙 쌓기로나 사용되는 등 처음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권리이자 (교육청과 학교 등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작은 교육정책에서부터 시작해서 초중고등학생들, 그리고 청소년들이 자신들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참여할 수 있게 되는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예측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학생인권조례가 단순히 학생들에게 인권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주체적인 활동을 촉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 학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 반영을 위해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한 사례들이 늘고 있다.

  작년 부천 소사고등학교에서는 학칙개정심의위원회 회의에 학생들의 참관을 거부당하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연일 시위를 하면서 회의 참관을 관철시켰고 학생들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된 학칙을 이끌어냈다. 최근 남양주 가운고등학교에서는 학칙 개정을 위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전혀 밟지 않던 학교 측을 상대로 학생회에서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학칙 개정을 하도록 요구하여 학생들의 요구가 반영된 새로운 학칙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인권은 보호와 대립되지 않는다.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에, 인권과 대립되는 보호란 것은 그 사람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보호라는 말이다. 그런 보호는 ‘차별의 부드러운 얼굴’이라는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존중과 참여로 보호주의를 넘어서는 길, 보호와 인권이 화해하는 교육, 학생인권조례로 열어가고자 하는 학교와 사회의 모습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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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2. 17. 10:10



청소년의 놀 권리, 시간적 공간적 사회적 조건,

그리고 게임 셧다운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놀이로서의 게임

  이제 나도 청소년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민망한 이십대중반, 스물네살이 되긴 했지만, 그나마 청소년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이야기해보자면,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게임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호들갑을 떠는 어른들이 다소 생뚱맞게 느껴진다. 게임은 청소년들의 삶에서 하나의 문화이자 일상이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시절엔 쉬는 시간마다 학교 컴퓨터에 붙어 앉아서 ‘피카츄 배구’를 하며 반 최강자를 가렸었고, 방과 후 친구들과 단골로 놀러가는 곳은 PC방이었다. 순발력이 떨어져서 ‘레인보우식스’나 ‘서든어택’은 못해봤지만 ‘스타크래프트’라면 이런 나도 해봤고, 이른바 MMORPG라면 ‘어둠의 나라’나 ‘마비노기’도 꽤 오랫동안 플레이 했었다. 지금도 나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긴 회의를 하다가 중간에 20분쯤 쉬는 시간을 가지면 사무실 컴퓨터에서 같이 ‘카트라이더’나 ‘크레이지아케이드’를 하며 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관련해서 인터뷰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그럼 게임의 순기능은 뭔가요?” 나는 솔직히 이런 질문이 불편하다. 컴퓨터 게임이 주된 놀이 문화가 아니었던 시절, 아무도 청소년들이 ‘숨바꼭질’이나 ‘얼음땡’을 하고 노는 것에 대해서 순간적인 판단력과 관찰력과 추리력, 그리고 체력을 길러주는 운동이라는 식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었다. 아무도 ‘말뚝박기’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비교하는 표를 만들거나 토론하지 않았었다. 꼭 이런 놀이들을 불러들이지 않더라도, 아무도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에게 영화 감상의 순기능을 굳이 따져묻지 않는다. 물론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게임과 숨바꼭질과 영화감상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게임의 경우에만 그 “순기능”을 정당화할 것을 요구받는 것은 다소 부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게임을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지 않고 무섭고 해로운 어떤 것으로 미리 전제해놓는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없는 취급을 받는 것 같지만, 엄연히 한국이 1991년에 가입한 국제인권규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제31조
1.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
2. 당사국은 문화적∙예술적 활동에 마음껏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증진하며, 문화, 예술, 오락 및 여가활동을 위해 적절하고 균등한 기회 제공을 촉진해야 한다.

  즉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청소년들에게 ‘놀 권리’를 하나의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청소년들에 관련된 인권 기준의 경우 이 권리는 문화적 권리나 여가권 등으로 표현된다.) 게임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위한 하나의 놀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놀 권리가 사람이 사랍답게 살기 위한 인권의 일종이라는 것,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에 더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라는 것 역시 인정하자. 그러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며 노는 것을 어떻게 대우해야 할지, 더 바람직한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들이 처한 조건

  특히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게임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온라인게임이 쉽게 대중화되고 ‘과몰입’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들이 관련되어 있다.

  우선 그 첫 번째는 시간적 조건이다. 세계적으로 긴 학습시간과 높은 사교육 비율은 청소년들이 여가시간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중간중간에 20분 30분 정도의 ‘짬’을 제외하면 밤늦게야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다수의 청소년들이 집에 와서 바로 컴퓨터를 켜고 짧은 시간만에 할 수 있는 게임을 최선의 놀이로 택하게 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두 번째는 공간적 조건이다. 여기에서 공간적이라는 것은 청소년들이 놀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OECD 국가 중에 아동복지비 하위권을 자랑하는 한국에서는, 지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즐기며 놀 수 있는 시설이나 공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청소년 문화의 집이나 청소년수련관도 전체 청소년들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학원 간판은 거리를 메우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놀고 즐길 문화를 제공하는 공공시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있더라도 시간적 이유나 입시 문제 등등 여러 이유로 청소년들이 잘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세 번째는 경제적 조건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경제력을 가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경제적으로 거의 전적으로 ‘친권자’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 노동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해도 제약이 많으며 그 임금음 대단히 낮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놀이를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이기 어렵고 저렴한 비용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온라인이나 게임의 세계로 수요가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는 한국에서 콘솔게임이나 패키지게임은 많이 죽고, 일단 처음 시작할 때는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며 돈을 쓰더라도 몇 백원 몇 천원 수준으로 조금씩만 쓰면 되는 온라인게임이 득세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심리적 조건이다. 입시나 장래 진로에 대한 불안 등 한국 사회에서 현재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는 적지 않다. 또한 청소년들은 사회적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 의미있는 한 주체로서의 삶이 막혀 있다. 실제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많은 것을 억압당할수록, 그리고 사회 활동에 의미있게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할수록, 게임과 같은 가상의 컨텐츠에 몰입하기 쉽다. 얼마 전에도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등과 공격적 행동이나 일탈 행동 사이의 연관관계를 밝힌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스트레스와 게임 몰입 사이의 연관관계 역시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 유엔사회권위원회 역시 한국의 청소년들이 학업 스트레스 등으로 우울증과 주의력결핍장애가 증가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권고한 바 있다. 단순히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 전반, 청소년들의 삶의 질 전반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이 논란이 되는 와중에, 항상 논의의 중심에서 빠져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이다. 사실 앞서 서술한 청소년들이 처해있는 조건의 문제 또한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얼마나 시간적․공간적․경제적․사회적으로 자기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일부 게임 과몰입 등의 문제에 대응하겠다고 청소년들의 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 놀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규제하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적절한 방식일까? 또한 게임과몰입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 맞춘 대응이 아니라 나이(16세)를 기준으로 모든 청소년들에 대한 셧다운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 역시 모든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을 경시한 처사인 건 아닐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논의에서 청소년들의 삶 전반에 대한 상황을 좀 더 이야기해볼 필요를 느끼는 이유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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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격하게 공감해요 +_+

    2011.02.18 14:42 [ ADDR : EDIT/ DEL : REPLY ]
  2. 지나다

    '게임일반'이 아닌 '현재 한국의 온라인게임'에 대한 평가도 필요할 것 같고..
    놀이로서 게임이 등산이나 공놀이 등과는 달리 기업이 만들어 논 '게임세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해하지 않는 게임을 만들도록 하는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물어 규제의 필요성을 따지는 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습니다.
    온라인게임이 또 하나의 사회라면 그 사회를 더 나은 세계로 만드는 것 역시 활동의 영역이 아닐까요?

    2011.02.19 02:59 [ ADDR : EDIT/ DEL : REPLY ]
  3. 지나다// 등산이나 공놀이는 건전한 놀이, '현재 한국의 온라인게임'은 해로운 놀이... 라는 건가요? 어떤 문화의 이롭다/해롭다를 윗선에서 논해 '주는' 것 자체가 저에겐 권위주의와 억압의 출발점처럼 보이는데요. 데스메탈처럼 파괴적이고 정서에 해로운 음악을 차단하고 클래식처럼 정서를 함양하는 음악만 들으라는 그런 통제와 논리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잖아요.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히는군요.

    한발 양보해서 실제로 '현재 한국의 온라인게임'이 보여주는 면모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할지라도, 부정적인 놀이가 부정적인 현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현실이 부정적인 놀이를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한참 훌리건의 악영향이 컸을 때, 아마 셧다운제 같은 논의대로라면 축구의 폭력성과 중독성이 훌리건을 만드니 티켓 구매 제한을 뒀을 겁니다. 하지만 축구가 훌리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축구로 분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미 구성된 공격성이 훌리건을 만든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왜 게임은 똑같이 보지 않을까요?

    디스이즈게임(http://www.thisisgame.com)에서 웹툰을 연재했던 원사운드님이 남기신 명언이 있습니다. "시바... 오락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http://www.thisisgame.com/board/view.php?id=211702&board=&category=106&subcategory=2&page=1&best=&searchmode=&search=&orderby=&token=) 놀이에 '순기능'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낡아빠진 꼰대들의 발상이라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글쓴 분께 격한 찬성 날립니다.

    2011.02.19 10:36 [ ADDR : EDIT/ DEL : REPLY ]
  4. 지나다

    동조자// 남의 블로그에서 논쟁하는 것이 죄송하지만, 조금 덧붙여봅니다.
    항상 '온라인게임사의 사회적책임'이나 '온라인게임의 규제'를 이야기할때면 듣게되는... '왜 게임을 유해하다/비건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이야기.. 그래서 미리 '아니요. 게임은 유해하지 않습니다. 단지 '유해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매번 하게되는군요.
    과자하나에도 아이들의 장난감에도 햄버거에도 많은 규제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이 유해하기때문에 이런저런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하지않도록 '잘만들어라고' 규제를 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게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규제의 방법으로 '셧다운제'를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현님의 글의 취지-청소년들이 게임을 놀이로 즐기게 된 여러 조건들-에 대해서도 공감합니다.

    "시바... 오락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음... 이건 참.. 뭘로 만들어진지도 모를 햄버거를 먹으면서 "맛있으면 됐찌 뭘따져" 처럼 들리는 군요. 햄버거가게 사장님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소비자이겠군요.

    2011.02.19 14:04 [ ADDR : EDIT/ DEL : REPLY ]
  5. 지나다 & 동조자 /
    온라인게임을 비롯해서, 게임을 규제하거나 게임 기업에게 자신들이 만들어낸 게임에 관해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규제의 방식이 게임 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더군다나 게임 하는 사람 일반이 아닌 게임 하는 사람 중 나이를 기준으로 일부 집단만 선정해서 규제한다는 건요. 셧다운제는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들이 게임을 하는 걸 규제하는 걸로밖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인 거 같습니다. 결국 셧다운제에 찬성하는 청소년들조차 하는 이야기는 "우리는 규제를 받아야 해!"가 되어버리죠. 참 우울한 제도입니다.


    + "오락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라는 말의 맥락은 굳이 햄버거에 비유한다면 이런 이야기일 겁니다. "몸에 좋은 현미쌀밥을 먹으렴. 니가 햄버거를 먹는 특별한 이유나 햄버거 먹는 것의 순기능을 증명하렴." "햄버거 먹는 데 이유가 어딨어! 맛있어서 먹는 거지!"

    / 게임이나 놀이 문화의 내용이나 바람직함에 대해 논의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요.

    2011.02.22 17: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딱딱한꿈2010. 12. 21. 16:41


- 예전에 한 번 쓰려고 기획했지만 결국 쓰지 못한 리포트랄까, 소논문 중에 이런 주제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금욕은 과연 배타적인 것인가. 소비하는 소비자와 금욕적 노동자 이 모순적인 둘을 짜맞추는 것이 자본주의의 인간 교육은 아닌가?" 뭐 이런 문제의식인데,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하는 소비 주체와 금욕적인 노동 주체의 형성에 관한 사례 분석"이라고 해야 할까.


- 주로 휴대전화 문제 관련해서 했던 생각인데,
스스로 좌파적이라고 하는 교사들이나 활동가들 중에서는 "청소년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규제하는 것을 반대한다."라는 요구가 휴대전화 이동통신 자본의 손에 청소년들을 무책임하게 던져주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즉 그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규제하는 것은 소비를 절제할 줄 알게 하는 것이고 이것은 반자본주의적/대안적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근데 진짜 그럴까?


- 금욕적이고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인간은 근대 자본주의가 요구한 참고 절약하고 축적하고 노동하는 노동자 상에 가깝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를 많이 하는 소비자들이 필요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 장면에서는 이런 금욕적 존재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공장이나 직장에서는 이러한 금욕적 자기 통제(노동시간 중에는 휴대전화나 메신져 등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 시간을 엄수할 것 등등)가 요구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규제하는 것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규제하는 것과 닮아 있다."
즉 학교의 휴대전화 규제나 학생 통제는 전혀 대안적이지도 반자본주의적이지도 않다. 그건 오히려 "일터에서는 묵묵히 규율을 지키며 일을 하고 일터를 벗어나면 소비자가 되는 노동자인 동시에 소비자인 자본주의적 시민"의 모습과 일치한다.



-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관해서 그것이 결국 "게임 소비의 자유"를 외치는 것이며 게임업계나 자본주의적 욕망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비판을 보았다. 그러나 그 비판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은, "그럼 청소년을 (게임에서든 휴대전화에서든)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대안적/반자본주의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서 '소비'='자본주의적'이라는 단순한 도식만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을 그런 식으로 통제하는 것은 외려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재생산되기 위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훈육은 아닌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이야말로, 아동/청소년을 구분하고 억압하고 차별하고 보호해온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방식 아닌가??



- 사실 모든 인간은 소비하고 향유해야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자본주의적인 방식이든 뭐든지 간에 먹고 일하고 노는 등 모든 것들은 소비되고 향유되는 것이다.
그 소비가 다만 화폐로 거래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원론적으로 접근하면 게임은 놀이의 일종이다. 인간은 놀지 않고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라서 돈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놀이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대안적 방식으로 돈을 쓰지 않는 다른 놀이 문화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은 바람직하겠지만 말이다.



- 상품이 좋은지 나쁜지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해서 규제할 수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반적 사실이다.
무조건적인 판매와 소비의 자유를 주장할 사람은 없다. 당연히 사람에게 해로운 상품은 규제될 수 있다.

하지만 왜 그게 굳이 일반적인 모든 시민들이 아니라 '청소년'인가? 또, 게임에 관해서라면 게임의 내용이 과연 인류 보편의 가치-인권이나 평화 등-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고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왜 게임을 밤에 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인가? 게임은 그 자체로 마약이나 독극물 등등 만큼이나 유해한가? 청소년의 경우에 밤 시간에 하는 게임은 일반적으로 유해하단 말인가?

청소년의 문화적 자기결정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청소년들의 참여와 주체 형성을 통해서, 혹은 대안적 문화와 놀이가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것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게 "청소년에 대한 교육적 책임의 방기"라는 언설은, 역시 청소년들의 입장은 무시하는 꼰대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단순히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에 그치지 말고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적 놀이 문화나 시설, 제도, 여건을 요구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면 그건 당연히 옳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강제야자/보충수업에 반대하고 학원과 사교육을 비판하고 입시경쟁교육을 폐지하려고 하고 청소년 문화에 관한 예산과 정책에 그렇게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 자체가 소비의 자유를 옹호하고 기업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것이며 자본주의적 입장이라는 식의 주장은 청소년의 인권 문제와 자본주의 문제 사이의 상호작용을 무시한 단견이다.



- 다른 사람이 어떤지는 몰라도, 나는 '분류적으로는 좌파'에 속하겠지만, 어떤 좌파적 도그마("소비는 나쁘다"거나)가 우선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의 경우에는 어떤 사회가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인가, 어떤 사회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할 기회가 보장된 사회인가 등등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며 그런 생각들이 결과적으로 좌파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나는 처음 운동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청소년인권활동가일 뿐이다.



- 게임업계의 이해관계와 청소년들의 이해관계가 갈리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http://gonghyun.tistory.com/806   여기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밖에 2010년 12월 22일 토론회에서 발표될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사의 발제문 또한 일독해보신다면 청소년보호정책의 노림수와 문제에 관해 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문화 영역에서 자본주의적 문화를 극복하는 방식은 '공략하기보다는 낙후시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오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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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12. 21. 16:20



[22일 토론회 때 발제문]
(여기에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주최로는 참여한다고 한 적 없는데 좀 착오가 있는 거;;)




셧다운제 안에 청소년의 삶은 있는가


공현(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함으로써 밤 12시부터 6시까지 청소년들의 온라인게임 이용을 강제로 차단하는 ‘셧다운제’ 도입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규제의 기준 연령은 16세이다.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으나 두 정부 부처가 합의를 했고, 그냥 내버려둘 경우 국회를 통과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는 벌써 5년도 전에 처음 그 이야기가 나왔던 제도인데, 나올 때마다 그 문제점이나 실효성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어서, 특히 게임 업계의 반발로 도입되지 못했다. 여기에서 우선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제도를 도입하지 못했었던 이유가 청소년 집단의 반발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 부처에서든 국회에서든 셧다운제 도입과 관련해서 청소년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자리가 마련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청소년들이 대체로 온라인게임을 밤 12시부터 무조건 차단시키는 것에 찬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한국 사회가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청소년들의 의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청소년들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일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이라는 결정 속에서는 게임 업계의 사정이나 청소년선도보호정책의 가치관은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청소년들의 삶과 생각은 누락되어 있었다. 청소년들의 인권과 주체성에 관한 고려는 없었다. 따라서 정책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래 토론회에서 발제는 주장을 전달한다기보다는 토론할 ‘꺼리’들을 발굴하고 제시하는 일이다. 그러니 여기에서는 셧다운제에 관한 명명백백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청소년들의 삶과 인권의 관점에서 셧다운제를 비판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방향과 문제의식을 잡아가도록 하겠다.


청소년의 삶에서 게임이란?

  청소년의 생활에서 게임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뭣 때문에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는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질문은 다소의 오류를 포함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가 열린 지가 20년이 다 되어 가고 있고,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 등이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꽤나 오래된 일이다. 게임 과몰입은 청소년들 뿐 아니라 비청소년들의 경우에도 심심찮게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렇다. “왜 청소년들의 게임만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양적으로 청소년들에게 게임 과몰입이 통계적으로 더 많기 때문일까 아니면 청소년들을 보는 시선의 문제일까. 혹은 둘 다일까.
  그러나 어쨌든 지금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셧다운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우선은 청소년들의 삶에서 게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사실 청소년기를 벗어난 지 3년도 안 된 나 또한 게임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 일단 내가 청소년기에 게임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니, 게임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시간 관리가 용이한 놀이였던 것 같다. BB탄 총을 가지고 놀거나 모형을 조립하거나 레고를 가지고 노는 등 여러 가지 놀이를 했지만, 모형이나 레고는 한 번 산 걸로 계속 놀려면 질리기 때문에 새 것을 사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친구들과 같이 노는 데 적당하지 않았다.
  사실 게임과 비슷하게 재미있고 같이 놀 수 있었던 건 축구 등의 스포츠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스포츠는 대체로 (하는 시간도 그렇고 하고 난 뒤에 지쳐서 쉬는 시간도 그렇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며 공간이나 도구를 필요로 한다. 나는 시간이 있고 장비를 살 수 있고 팀 등 여건이 된다면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한 번도 야구를 배우거나 해본 적은 없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가장 간편하고 돈이 덜 드는 편이며 시간 면에서나 공간 면에서나 가장 효율적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게임이었다. 내 주위의 친구들을 생각해봐도, ‘게임’이라는 분야 자체에서 매니아 파워를 발휘하며 오덕질을 하는 몇몇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비슷한 이유로 게임을 즐기고 그것을 공통의 놀이 코드이자 문화 코드로 가지고 있었다.
  여가 시간에 할 놀이를 고르는 것 하나에 뭐 그렇게 시간과 비용과 조건을 따지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긴 공부 시간을 기록하고 있고, 또 지역 사회에서 적절한 문화 시설 등도 가지지 못한 상황, 그렇다고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이 청소년들의 상황이다. 이런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은 차라리 인권침해라고 할 만하다. UN아동권리협약에서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 “문화적․예술적 활동에 마음껏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증진”해야 한다고 하며 청소년들의 놀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 속에서 게임을 규제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특히 게임의 내용도 아니고 게임을 하는 시간을 규제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게임과 컨텐츠의 내용이 인류 보편의 가치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하고 대안적인 좋은 놀이로서 게임을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게임을 ‘상품’으로만 보고 청소년들이 밤에 온라인게임을 하는 것만 규제하겠다는 것은 청소년에 대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청소년들의 시간을 학교에서 학원에서 집에서 세세하게 통제하는 것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말이다.


‘과몰입’ 혹은 ‘중독’의 기준은 무엇인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에서 가장 큰 전제는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런가? 아니, 그 이전에 누군가가 게임 과몰입인지 중독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정확히 뭘까? 국회 연구 자료에 따르면 그 기준은 ‘하루에 3시간 이상씩 한달 이상 게임을 한 경우’ 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에 하루에 3시간씩 게임을 하는 것은 적절한 여가 선용 수준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게임 과몰입이나 중독은 약물 중독 등과는 다르게 그 판단에 더 많은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어떤 활동을 얼마만큼 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스케쥴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냐에 따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미칠 수 있는 게임 시간의 기준도 달라질 것이다. 잠자는 것 밥 먹는 것도 잊고 게임에만 몰두하거나, 현실과 게임 설정을 심각하게 혼동하는 등의 경우에는 문제가 비교적 명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현재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이 꼭 그런 것들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게임 과몰입, 중독을 판별하는 기준은 적절한가? 아니면 좀 더 분명하고 문제적 병리적인 경우만 다루어야 하지는 않을까? 게임 과몰입, 중독은 과연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소설책을 하루에 5시간씩 읽는다고 해서 ‘소설 과몰입’, ‘독서 중독’이라고 하며 치료하거나 고치려 들지는 않지 않는데 게임과 소설 사이의 차이는 뭘까? 혹시 청소년들과 비청소년들의 경우에 게임 과몰입, 중독을 이야기하는 기준이나 정도가 좀 다르지는 않나?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게임 과물입, 중독으로 인한 사건과 사고는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데 비청소년들을 위한 게임 과몰입, 중독에 대한 대책은 충분하긴 한 건가? 청소년 게임 과몰입을 말하면서 셧다운제를 도입하려고 드는 속내에는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 놀이의 일종인 게임을 무슨 마약 보듯이 하는 태도, 청소년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등등이 전혀 없는 것인가?


어른들의 이해관계, 청소년들의 이해관계

  지금까지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비롯해서 게임에 대한 규제에서는 부모/보호자 집단, 청소년보호론자들, 게임 업계의 이해관계들만이 반영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정작 이 문제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외면되어 왔다. 그 결과가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그리고 게임 과몰입과 중독에 대한 청소년 당사자들의 이야기나 비판적 검토 없이 어른들의 일방적 시선으로 만들어진 셧다운제이다.
  게임업계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반대하고 있고, 청소년들도 대부분 이 셧다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둘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게임업계는 게임에 대한 규제를 어디까지나 상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때문에 게임업계는 게임 이용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는 일괄적 규제는 반대하면서도, 부모/보호자들에게 청소년들을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내용의 ‘자율규제’로 돈을 내주는 부모/보호자들과 협상하려고 하고 있다. “당신의 자녀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지는 않는지 과도하게 하지는 않는지 당신이 감시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릴 테니 너무 걱정 말고 자녀가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경제적 권리를 많이 가지지 못한 현실은 여기에서도 반영된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는 셧다운제를 국가가 도입하든 부모/보호자가 도입하든 큰 차이가 없다. 청소년보호론을 내세우며 이번에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역시 그 속에 부모/보호자가 청소년들의 게임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담고 있다. 결국 청소년 당사자를 둘러싼 정책이, 청소년의 의견과 인격은 전혀 존중하지 않은 채 어른들의 입장 속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다. 내가 여기에서 던진 질문들은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것이다. 그것들은 청소년들의 입장을 존중하고 고려하면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꼭 고려되어야 할 질문들 중 일부이다. 청소년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서는 어떤 제대로 된 대책도 나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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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nschooling에 참여했던 어떤 사람은 "내 동생은 취미로 게임을 하는데, 내가 취미로 X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게임이나 X나 그것을 통해 배울 것은 있고 관련 재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죠. (X가 뭐였는지 까먹었음)

    한편, 자유학교로 유명한 섬머힐 스쿨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놀이를 계획합니다. 그래서 놀이에 관해서는 청소년에게 맡겨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이나 비청소년이나 놀 시간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건 그렇고, "게임하는 청소년을 어찌할꼬", "게임 속 폭력 무섭도다" 등의 구호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상황들이 많지요. 예를 들어, 사장님들의 골프는 "이런 건 배워둬", 하지만 온라인 골프는 "쯧쯧쯧 할일이 그렇게 없소?". 또, 미국의 모 의원이 게임의 폭력성을 우려하면서 동시에 각종 전쟁을 지지하며, 미군에서 훈련용으로 비디오게임을 이용하는 상황. 또, 학교에서 총쏘기게임은 "폭력 따라하기"라며 규제되지만 태권도는 가르쳐주는 상황. 그리고 성적 경쟁, 몸값 올리기 경쟁이라는 등수놀이 게임에 던져진 우리들의 정신은 피폐해져가는가 등.

    2010.12.22 22:2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삶에서 놀이-여가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정말로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회화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런 것들이 필요한 시대 같습니다.

      2010.12.26 00:14 신고 [ ADDR : EDIT/ DEL ]

걸어가는꿈2010. 4. 26. 18:28

'청소년 온라인 게임 셧다운제' 반대 성명입니다~~

이것들은 툭하면 금지하고 시간제한 걸고...

그 열정으로 두발규제랑 체벌이랑 입시경쟁을 좀 금지해봐라 ㅋㅋ




[성명]

청소년의 문화적 권리를 제한하고, 문화적 표현물을 이중 규제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 법률안을 철회하라!



지난 4월 21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민주당 최영희 의원 등이 발의한 <청소년보호법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청소년보호법의 개정 법률안은 인터넷 게임 이용자의 회원 가입 시 청소년인 경우 친권자의 동의를 의무화하고, 친권자가 청소년 게임 이용시간을 제한하고자 할 때 시간에 관계없이 청소년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한할 수 있으며,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시간의 청소년 게임 이용을 의무적으로 금지하고, 인터넷 게임 중독에 관한 경고문구를 표시하고, 청소년회원가입자의 친권자에게 게임의 특성, 등급, 결제정보, 이용시간을 통보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 한 청소년보호법 개정법률안은 최근에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에 대한 법적인 규제 조처로 볼 수 있다. 물론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이 청소년의 자아형성과 다양한 문화 활동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지만, 이번 청소년보호법의 개정법률안은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을 ‘과몰입과 그 부작용’의 잣대로만 대입하여 너무 과도하게 규제하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임 과몰입이 단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여러 연령대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음이 여러 사건을 통해 증명되어왔다. 게임 과몰입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건강한 놀이문화를 갖고 있지 못한 현대 사회의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회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에 대해서만 게임 이용시간을 제한하고 청소년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문화를 즐길 자유를 원천 봉쇄하는 이와 같은 조치는, 청소년들을 미성숙하다고 간주하고 청소년들의 자기결정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발상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회와 정부가 이 문제의 중요한 당사자들인 청소년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는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거치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또한 청소년에게 게임은 가장 중요한 놀이문화 중의 하나이다. 게임을 통한 청소년의 놀이문화 형성이 모두 부정적인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게임을 통해서 새로운 공동체를 경험하고 치열한 입시 교육에 받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건전한 오락물로 존재해온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게임을 즐길 문화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청소년들이 누려야할 문화적 기본권과 그들만의 놀이문화의 형성을 일부 게임 과몰입 현상에 따른 불미스러운 사회문제로 환원시켜 철저하게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게임이용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문화적 주체로서의 청소년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청소년보호법의 개정법률안이 확정되어 법적 효력이 발생하게 되면,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에 대한 자율적 권리는 사실상 박탈당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이용 시간을 강제로 제한당하고, 게임이용에 대한 모든 정보를 통제당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에 대한 자기 권리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람들의 지나친 게임과몰입을 조절하고 건전하게 게임을 이용할 수있도록 게임이용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안이다. 그러나 이번 청소년보호법의 개정법률안은 게임이용환경을 개선하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의 권리를 사실상 박탈하겠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점은 청소년보호법의 개정안이 문화적 표현물에 대한 지나친 이중규제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현재 게임이용에 대한 규제는 전적으로 문화적 표현물을 전문적으로 심의하는 게임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와 게임 기업들의 자발적인 규제조치를 통해 서이루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게임사들 스스로 자율규제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청소년보호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규제 법률과 장치들을 무시하고,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를 사실상 박탈하는 수준의 강도 높은 규제안을 제안한 것이 과연 타당하고 합리적인지 묻고 싶다.


청소년의 게임이용에 대한 사회적 접근은 ‘청소년보호론’의 관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게임이용을 위한 자율규제와 공적인 등급제도 존재한다. 여성가족부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배타적이고 강압적인 청소년보호론을 관철시키기 위해 청소년들의 게임이용의 자율적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려는 이번 조치를 조속히 철회하기 바란다.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의 진정한 해결은 이러한 법적인 규제를 관철시키려는 방식보다는 청소년들의 문화를 좀 더 내밀하게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선택권을 보장하는 문화교육을 통해서만, 그리고 청소년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다양한 놀이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문화적 인프라를 만듦으로써만 가능하다. 현행 법제도 속에서도 해당기관인 게임등급위원회의심의 강화와 해당 기업인 게임사에서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음에도 청소년의 자율성을 전면 부정하는 무리한 규제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불합리하다. 청소년의 게임이용에 대한 강제 규제를 밀어붙이기보다, 청소년들이 문화적 권리와 행복한 삶을어떻게 하면 제대로 누릴 수 있을지 그 방안을 담은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2010년 4월 26일

관악동작학운협, 교육공동체나다, 다산인권센터, 문화연대, 범국민교육연대, 인권교육센터 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진보교육연구소, 청소년다함께, 청소년인권행동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평등학부모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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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중 규제가 문제가 아니라...그냥 규제 자체가 문제인것 같지만...?
    -제목이 혼동을 일으킨달까. 내용은 그렇지 않다만

    2010.04.26 22:16 [ ADDR : EDIT/ DEL : REPLY ]
    • 내가 지은 제목이 아니라...(응ㅇ????) 애초에 청소년단체에서 썼다면, 이중규제나 이런 건 논의의 초점이 될 수 없지

      2010.04.27 00:40 신고 [ ADDR : EDIT/ DEL ]
  2. …만화는 진흥법 제정마저 지들끼리 싸우다가 (그 광경을 카페에서 직접 목도했죠. 가관이었습니다.) 결국 계속 청보법의 늪으로. 휴우.

    2010.04.27 14:3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