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7. 1. 10. 13:24

『맛집폭격』 : 맛집 묘사 건너, 전쟁을 묻다



 



《맛집폭격》 (배명훈, 북하우스, 2014)

주의 : 책에 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맛집폭격》의 첫 장을 열면 인도 요리에 대한 묘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 뒤에는 스페인 음식 차례다. 그 다음은 또 터키 음식……. 이 소설은 곳곳에서, 특히 전반부에 이런 묘사가 등장한다. 읽다보니 배가 고파지고 군침이 고일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여기에 등장하는 맛집들은 모두 실제로 있는 식당들이기 때문에, 당장 찾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맛집’보다는 ‘폭격’ 쪽이다. 맛집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에 반응하는 위장을 달래면서 책을 읽어나가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파괴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제의식은 전쟁이다. 사실 배명훈은 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는 여러 작품들에서 확인된다.


(나는 배명훈이 밀덕이 아닐까 생각하고, 실제로 배명훈은 ‘밀덕’에 관련된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러나 배명훈의 관심은 아무래도 군대나 전쟁 무기보다는, 국가와 전쟁의 정치학·사회학·철학적 의미를 향해 있는 것 같다.)


《맛집폭격》은 배명훈의 주 장르로 알려진 SF라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배명훈스러운 작품이기는 하다. 책을 읽다보면 배명훈의 다른 작품(리바이어던이나 예비군로봇 등)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전쟁이나 국가에 대한 고찰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맛집폭격》 속에서 대한민국은 먼 나라와 미사일 폭격을 주고받는 사실상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것이 ‘전쟁’임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전쟁은 대한민국 군대에 의해 수행되는 게 아니라, 국제적 군사무기업체에 미사일 발사를 ‘외주’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배명훈이 《맛집폭격》에서 그리는 전쟁은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적이다. 전시와 평시의 구분은 흐릿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전쟁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 배명훈은 이를 근대 국가의 유래를 언급하며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전쟁이 나고 공습경보가 울리면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공습경보가 울려도 대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치가 보여서였다. 미사일이 하필 거기에 떨어질 가능성은 아직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것은 퇴근 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그렇게 일상과 겹쳐졌다.
 전시와 평시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전시가 되면 평시라는 이름이 붙은 시공간에 뭔가 본질적인 변화가 생길 거라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평시를 위해 만들어진 정부조직이나 행정기구나 금융체계가 같은 것들이 전시가 되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신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애초에 국가가 전시 태생이기 때문이었다. 평시 조직을 전시에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전시 조직을 평시에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86쪽)




‘정부’의 입장에서…

주인공 이민소는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 속해 있다. ‘에스컬레이션’은 점증(漸增)을 뜻한다. 이 경우에는 전쟁에서 서로가 군비경쟁을 하고, 주전론과 적대감이 강화되고, 서로 더 강한 타격을 가하며 전쟁이 격화되는 것을 뜻한다. 즉 확전(擴戰)이다.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무분별한 확전을 막고 서로의 가해/피해를 관리하기 위해서 피해 정도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적절한 대응 수위를 결정하는 기구이다. 책 속에서 이민소는 클라우제비츠가 ‘정부’, ‘군부’, ‘국민’으로 국가의 전쟁 관련 요소를 나누어서 본 것을 소개하면서,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정부’의 입장에서 전쟁을 관리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여기서 ‘정부’의 입장이란 현실의 정부라기보다는 이상적인, 국가의 자원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치적 기구의 위치를 뜻한다.

 “클라우제비츠 책에 나오는 절대전쟁은 그런 거야. 뉴턴 물리학에 나오는 마찰이 없는 상태 같은 거. 움직이는 물체를 가만 놔두면 어떻게 되겠느냐, 전쟁이라는 걸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되겠느냐, 뭐 그런 거지. 그렇게 내버려두면 무제한적인 폭력성 같은 게 튀어나오게 되는데, 그걸 이끌어낼 수 있는 건 국민들이라는 거야. …… 그래서 그렇게 되기 전에, 정부가 합목적성을 가지고 상황을 하나하나 따지는 편이 안전하다고. 돈 세듯이.”(139쪽)

 “우리 보고서 서론에 쓴 이야기 있잖아. 클라우제비츠 책에 나오는 정부랑 군대랑 국민 이야기.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그 셋 중 정부 입장에 설 거라는 거. ……” (183쪽)

이야기는 이민소가 자신이 알고 있는 ‘맛집들’이 연속적으로 폭격을 당하고 있음을 눈치 채는 데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맛집들은 죽었다고 알고 있는 과거의 연애 상대 송민아리가 이민소에게 소개해줘서 함께 갔던 곳들이었다. 송민아리와 이민소는 과거 국제적 군사 무기업체에서 함께 일했는데, 송민아리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민소는 송민아리가 사실은 살아있으며 대한민국과 모국가 사이의 전쟁에서 미사일 발사를 위탁받은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며, 이민소와 송민아리의 맛집이 연달아 폭격당하는 것에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른다.


전쟁만 하면 맛집은 언제 가나


소설의 결말부를 미리 말하자면, ‘군부’가 미사일 업체와 협의하여 폭격을 조종해가며 확전을 의도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 목표는 전쟁을 통해 군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사일 개발 등 군비강화에 관한 규제들을 약화·해제시키는 것이었다. 이민소는 이런 내용을 보고서에 담고 전쟁 상대인 모국가의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도 전달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그쪽은 그 정보를 가지고 뭘 좀 해볼 수 있을까요?”
 “글쎄, 그래도 거기는 우리보다 선진국이니까.”
 “선진국이라. 그게 뭘까요? 요즘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이게 공개되면 세상이 발칵 뒤집히겠다 싶은 게 공개되면 정말로 발칵 뒤집혀주는 세상. 그 위에 세운 나라. 그런 거?”
 “연약한 나라네요.”
 “나약한 나라지. 우리처럼 강인한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184쪽)



이민소는 이를 알게 되어서 폭격의 목표로 노려지게 된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이민소와 같이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서 일하던 윤희나의 도움으로 지하 벙커로 숨는다. 하지만 결국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의 진상 규명 노력에도, 확전은 막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군부’의 관점에 ‘정부’의 관점은 패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지하벙커에 숨어 있던 이민소와 윤희나가 거대한 폭발 소리와 정적을 들으면서 끝난다. 핵폭탄이었을까 의문을 느끼면서도 이민소와 윤희나는 벙커 문을 열고 상황을 확인하는 것을 미뤄둔다. 그리고 요리를 하기 위해 양파를 썬다. 조리를 위한 전기도 가스도 모두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이민소가 눈물을 흘리며 양파를 써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사라져버린 맛집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요리’가 불가능해진 상황으로 끝을 맺는, 그 대비가 전쟁으로 사라진 일상생활을 상징하는 듯하다.


《맛집폭격》의 메시지는 그래서 다분히 반전주의적으로 다가온다. 이민소나 윤희나는 딱히 반전평화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은 단지 정부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활동은 결국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각자 추구하는 ‘군부’와 ‘기업’(국제 군사무기업체)의 무책임한 폭주는 전쟁을 폭주시켜 멸망에 이르게 한다. 결국 어느 선을 넘어선 때부터는 전쟁 ― 갈등의 대립과 주고받는 폭력 ― 은 통제 불가능해질 거라는 작가의 비관적 예상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쯤에서 나는, 2016년의 영화를 꼽는다면 후보로 오르기에 손색이 없는 〈우리들〉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어째서 자신을 때리고 다치게 한 아이에게 너도 같이 때리지 않느냐고 묻는 누나 선에게 윤은 답한다. “계속 때리기만 해? 그럼 언제 놀아? 난 놀고 싶은데.” 그렇다. 전쟁만 하면 언제 맛집을 가겠는가.


나는 《맛집폭격》을,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쟁 전의 맛집과 추억을 묘사하고 전쟁과 국가와 사회에 대한 건조한 고찰과 전쟁을 관리하려는 정부 공무원의 노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쓴 반전 소설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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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4. 5. 21. 02:45





일전에 새움출판사의 『이방인』 이정서역본의 논란에 대해서

http://gonghyun.tistory.com/1057 이런 관전평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 더 진척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서 역시 한 독자로 의견을 적고자 합니다.






이정서씨의 『이방인』 번역(또는 해석)에 관한 주장은 몇 단계, 몇 갈래로 나눠서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크게 논쟁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① 『이방인』에서 레몽의 애인은 무어인("Mauresque")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아랍인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것이며 따라서 둘은 혈연관계의 남매일 수 없다. 둘은 실은 비밀 애인 관계인 것이다. (이른바 '기둥서방'설)

   ② 왜 다들 ①과 같은 해석을 도출하지 못했냐 하면, 그것은 김화영씨 등의 "오역" 때문이다. 오역 때문에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이런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이방인』을 잘못 이해해왔던 것이다.


(예컨대 이런 글에서 이정서씨는 반복해서 이를 "김화영의 오역으로 인해" "김화영 번역의 이미지" 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http://saeumbook.tistory.com/424 )


(새움 출판사 측이 종종 글을 수정하거나 지우곤 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캡쳐를 첨부해둡니다.)



이 둘은 상당히 다른 층위입니다. 이정서씨든 어느 누구든, ①이라고 『이방인』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야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 해석이 얼마나 설득력 있느냐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국인 독자들이 ①을 눈치채지 못하고 '오해'해온 것이 '번역'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며, 또 이는 다른 언어권 또는 프랑스어를 쓰는 독자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와 교차 검증해볼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 프랑스인들, 심지어 카뮈를 연구하는 프랑스인들마저도 ①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indifference님과 고마해라님 등이 프랑스의 카뮈연구회에 문의하여 답변을 받아냈고, 여기에서 카뮈연구회 측 역시 『이방인』에 등장하는 '아랍인'이 레몽 전 애인과 혈연관계인 남매라는 의견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쟁점은 명백하다고 봅니다. 아랍인들 중 한 명이 레몽 옛 정부의 남자 형제입니다. 텍스트 어디에도 그 "무어 여성" 외에 다른 무어인이 특정되어 등장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그 아랍인에게 "정부"나 "연인"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아주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 자세한 과정은 여기서 보시기 바랍니다. http://indindi.egloos.com/7134167   http://indindi.egloos.com/9001556


저는 굳이 카뮈연구회의 '권위'에 기대어 이정서씨의 '해석'이 틀렸음을 인정하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카뮈의 이방인을 꼼꼼하게 읽은 프랑스인들 역시 '기둥서방'설을 부인한다는 것은, 이정서씨의 ②번 주장이 틀렸다는 것만은 아주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확실하게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해석의 차이는 번역/오역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정당방위'설에 대한 논란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입니다.






사실 이정서씨와 새움출판사측은 이미 이런 문제들이 '번역의 문제가 아닌 해석의 문제'임을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난 해석자가 아니고 번역자이므로"

"그런 것들은 해석의 문제이지 번역의 문제는 아니라고도 하십니다."



( http://saeumbook.tistory.com/424 에서)


(http://saeumbook.tistory.com/440 의 댓글에서)


물론 번역과 해석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역자가 그 상황, 그 장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머릿속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번역에 영향을 미치고, 번역 능력과 방향에 따라 해석도 차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둘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별개의 면이 있지요.

하지만 이정서씨는 이것이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이것이 오역으로 인해 비롯된 오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창 레몽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던 중, 해석의 문제를 좀 더 제대로 다투지 않고 엉뚱하게 김화영씨의 번역을 비판하는 연재를 개시한 것에서도 엿보이는 태도입니다.






이정서씨 번역본의 여러 가지 오역들, 그리고 역자노트에서 '오역'이라며 지적한 것들의 오류나 과잉에 대해서 지적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알라딘서재에서는 jaibal 님이 조목조목 지적을 하고 있으시고, (http://blog.aladin.co.kr/717050193) indifference님이나 고마해라님 등도 댓글과 블로그 등에서 몇 가지 지적을 하셨습니다. (http://indindi.egloos.com/9008511)


이는 대체로 이정서씨 번역에 오역이 존재한다는 지적과, 이정서씨가 김화영 등의 오역이라고 지적한 역자노트 내용이 오류이거나 과잉이라는 지적으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후자의 지적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입니다.






저는 새움출판사의 태도에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새움출판사와 이정서씨 측은 이 논쟁에서 합리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미 설득력 있게 검증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고, 명백하게 자신들의 오류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사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법적인 조치' 등의 언급을 하며 논의를 위축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정서씨 개인 블로그에서 행해지길 바랐다고 하지만, 그 뒤에도 정작 이정서씨 개인 블로그에 올라오던 글들을 출판사 공식 블로그로 그대로 복사해오던 것은 새움출판사 측입니다... -_-)



새움출판사와 이정서씨가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앞서 언급한 ②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석의 차이가 과거 역자들의 번역-오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은 거짓임이 이미 거의 확실하게 검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해 자신과 다른 독자들의 작품 해석 차이가 과거 다른 역자들의 오역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공격대상이 되었던 역자들 등에게 사과해야죠.

그리고 적어도 이런 인식("해석의 차이는 오역 때문이었다")에 어느 정도 근거한 것으로 보이는,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었다"라는 홍보 문구나 역자 인터뷰의 내용, 역자노트의 일부 내용 등을 수정하고 이미 이를 구매한 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작품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자신과 다른 사람 간의 작품해석의 차이가 생긴 것이 오역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또한 새움출판사 『이방인』의 역자노트가 많은 오류와 과잉, 인격적 모욕 등이 있다는 설득력 있는 지적이 많습니다. (뱃고동 논란, 몽삐스 논란, 기타 등등)

그러므로 이후의 판에서는 최소한 이 '역자노트'를 빼거나, 아니면 이정서씨가 번역과정에서 찾은 유의미하고 오류가 아닌 내용 일부만 역자의 말 형태로 남기는 것이 온당한 처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로서도 이렇게 하고 책 값을 내리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잘못된 지적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당연하구요.

이정서씨가 애써 번역한 책 자체를 전량회수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 말도 이정서씨가 먼저 꺼냈지만) 그러나, 본인이 애써 번역했다고 하는 소설 본문에 들어간 노고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역자노트' 부분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이를 이정서씨 등이 고집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본인이 자신의 번역이 더 낫다고 자신하신다면 그냥 그렇게 본문만 내면 될 문제입니다.

다만 이는 제가 프랑스어 등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제가 상세하게 이야기할 것은 아닌 듯하고 프랑스어나 프랑스어-한국어 번역을 잘 아는 분들이 더 잘 말씀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새움출판사는 이미 자극적인 홍보로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며, 이 중 상당수는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평가해야 옳습니다.


이제 와서 팔려나간 책들을 회수하거나 환불시키기도 어렵다면, 적어도 새움출판사측이 이 사건으로 인해 어느 정도 사회적 평판이 떨어지거나,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정도의 대가는 치러야 마땅합니다.

사람들이 새움출판사나 이정서씨의 잘못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정서씨나 새움출판사가 번역자이자 출판사로서 책임감과 윤리적 관념이 있다면, 제발 부디 언행과 태도를 바꾸고 잘못을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독자 분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잘 이해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10대 때 카뮈의 『이방인』과 사르트르의 『구토』 등을 인상깊게 읽었고 좋아했던 독자로서 한달 정도 이 논쟁을 쫓아다니며 보았습니다. 며칠 정도 일이 바빠서 제대로 못 보고 있었는데 많은 일이 일어났더군요. 더 많은 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적절한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해봅니다.




첨언하여, 아동에 대한 폭력, 여성에 대한 폭력 등 가정폭력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해온 사람으로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이정서씨의 레몽에 관련된 여러 발언들은 아주 불쾌하고 또 번역/해석 논쟁과 별개로 이야기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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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여성에 대한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정서 씨 태도는 매우 불쾌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런 생각이 작품 해석과 번역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니 참 답답합니다.

    그나저나 새움지기님이 제 블로그의 주소와 닉네임도 구분 못하는 것을 보고.... 뭐랄까요.... 그냥 말이 안 나옵니다.

    2014.05.21 09:50 [ ADDR : EDIT/ DEL : REPLY ]
    • 이정서씨가 김화영씨의 '오역'이라고 말하는 핵심적인 부분의 하나는 레몽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인데, 이야말로 번역이 아닌 해석의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이정서씨의 레몽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판단은 정말 그 기준에 동의할 수가 없어요...
      근데 indifference님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새움지기가 "indindi"라고 쓴 거 보고 애칭 같아서 살짝 웃었었습니다 ㅎㅎ

      2014.05.22 02:01 신고 [ ADDR : EDIT/ DEL ]
  2. 저는 위대한 개츠비 번역을 읽고 댓글을 남겼다가 이정서라는 사람이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순수하게 오역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방인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이방인에 사용한 같은 마케팅을 이제 영문학 번역에 다시 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해석의 문제가 아니고 영어 단어, 문구,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게다가 이방인 때와 마찬가지로 엉뚱한 해석까지 하더군요. 개츠비는 합법적으로 돈을 벌었고 그가 위대하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 독자는 모두 기존 번역물이 오역을 한 탓이라고. 아프리카에 미안한 소리지만 우리가 아프리카도 아니고 한국에 이런 수준의 번역이 나와선 안된다고 봅니다. 그 사람은 나팔이 있고 우리는 각자 소리가 작으니, 소리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요? Help!

    2017.01.26 14: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프랑스어는 못해도 영어는 좀 할 줄 알았는데 어김없이 어이없는 해석들이 난무하더군요 ㅠ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등에서 글을 기고해볼까 싶다가도, 그렇게 하는 게 결국 또 새움출판사 인지도를 높여주고 '이런 흥미로운 논쟁이 있다니 새로 번역한 걸 사야겠다'하는 식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그래도 기획이라도 해볼지...

      2017.01.28 12:08 신고 [ ADDR : EDIT/ DEL ]
    • 새움출판사에 댓글로 남기신 글들을 예고도 없이 삭제해버리곤 하니, 블로그에 댓글 남기신 건 따로 백업해두시길 추천합니다

      2017.01.28 12:09 신고 [ ADDR : EDIT/ DEL ]

흘러들어온꿈2010. 12. 28. 22:44


2010년 12월 25일,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부터 『소수의견』(손아람)을 읽었다. 대개의 독서가 그렇듯이 특별한 의미를 두고 정한 날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은, 돌이켜보면 뭔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날이었다. 내 눈 앞 책 속에서는 사람이 죽고 재개발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조금 들자, 내 눈 앞, TV 화면 속에서는 교황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억압자들을 비판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었다.
 

12월 28일, 『소수의견』을 다 읽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지나친 관악구 신림동에는, 여전히 철거민들의 저항의 목소리가 새겨진 벽들이 헐벗고 있었다.

용산참사 국민법정에 갔을 때를 생각했다. 두발규제를 헌법소원을 내자는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겹쳐 울렸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재판을 생각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3분짜리 플래시몹을 했다는 이유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으로 끌려가던 고등학생 동료를 지키려고 하다가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되고 기소되어서 받고 있는 재판이다.지난번 재판이 끝나고 생각했었다. "이 재판은 법의 이치와 논리에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공정하거나 정의롭지는 않다." 재판이 끝나고나면, 글을 하나 써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법은 사람 위에 있었다. 그건 법이 사람 위에만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pp.422-423.)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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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4. 24. 16:06




『오버 더 호라이즌』. 2004년.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만일 나에게 이영도의 장편소설 중 사람 홀리기로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별다른 주저 없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꼽으라고 한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와 『오버 더 호라이즌』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이영도가 쓴 판타지 소설 단편집이다. '오버 더 ~' 시리즈 3편이 수록된 앞부분과, '어느 실험실의 풍경'이라는 카테고리로 3편이 수록된 뒷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 「오버 더 네뷸러」, 「오버 더 미스트」 세 편으로 구성된 앞부분은 하나의 세계관과 같은 등장인물들,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연속성을 가진 작품들이다. 「골렘」, 「키메라」, 「행복의 근원」은 이영도의 데뷔작인 『드래곤 라자』에서 역사 속 인물로 등장하는 핸드레이크와 그 제자 솔로쳐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버 더 ~' 시리즈가 평범한 위트와 이야기가 적절히 섞인 단편이라면, '어느 실험실의 풍경'은 철학적인 고찰을 대마법사의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유머러스한 해프닝으로 적어낸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화장실에서, 또는 울적한 밤에 혼자 읽으며 낄낄거리기 좋다.)

( * 2001년 간행된 『이영도 판타지 단편집』에는 「오버 더 오라이즌」 등 외에 『오버 더 호라이즌』에 없는 「아름다운 전통」, 「전사의 후예」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아직 구하지 못했다. )


시공간, 여-남, 나에 대한 짤막하고 신선한 고찰들

  이 중에서 '어느 실험실의 풍경'에 속하는 세 편은 흥미로운 생각거리들을 담고 있다. 「골렘」은 시공간의 분절성을, 「키메라」는 여자와 남자를, 「행복의 근원」은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핸드레이크와 솔로쳐의 실험을 빌어 탐구한다.

 「골렘」 같은 경우는 나름대로 새로워보이는 통찰을 담고 있으나, 나의 경우는 이미 오래 전에 생각했던 문제이고(잘난 척 아님!) 또 '언어의 분절성' 같은 개념을 다룰 때 이미 곧잘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상황 설정 등에서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고 그렇게 유머러스하고 재미있지는 않기에 세 단편 중에 가장 덜 인상적이었다고 평하겠다.

 「키메라」는 작가가 페미니스트라는 평가가 나올 법도 한 이야기인데, 내가 보기엔 그정도까진 아니고 그냥 현재 세상 남정네들에 대한 위트 있는 자조에 가깝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행복의 근원」인데, 세 단편 중에서 가장 배를 잡고 웃게 만드는 이야기여서 그렇기도 하고, 그 주제의식의 비범함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나는 네가 주는 선물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네게 너를 선물할 수도 있겠지요."라는 존재의 관계성에 대한 의식은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고 말한 『드래곤 라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도 같다.




지평선과 성운과 안개 너머에 있는 것

  그러나 이 단편집 전체를 볼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표제작이 "오버 더 호라이즌"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버 더 ~" 시리즈들이다. '오버 더 ~' 시리즈는 각각 '악기 살해자', '마법사', '개양이 미확인 생명체'라는 다른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기본적인 주제의식/테마가 일관되게 존재한다. 그것은 일종의 휴머니즘이라고 불릴 만한 것인데, 굳이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여기 삶에 대한 사랑'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에는 '호라이즌'(영어로 horizon. 지평선, 수평선이라는 뜻)이라는 엘프가 나온다. 호라이즌은 지평선을 넘기 위해서 악기를 연주하고, 그 결과 악기를 '죽이는'(그 악기로 다시는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악기살해자'이다. 지평선을 넘는다는 것은 은유적으로 지금 이 세계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호라이즌(지평선)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라이즌의 삶의 목표는 '지평선(=호라이즌)을 넘는 것'뿐이며 이를 위해 어떤 것도 불사한다. 실로 구도자적이다. 티르는 바이올린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치고 호라이즌이 찾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런 호라이즌과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오버 더 호라이즌」이라는 제목은 지평선을 넘으려는 호라이즌를 가리키는 표현인 동시에, 바로 그 '호라이즌' 이상의 것을 가리킨다. 주인공인 티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건 연주될 필요 없습니다. 조용히 입 닫아야 됩니다." "왜지요?" "사람을 죽이니까."(pp.90-91.)
  "자넨 악기뿐만이 아니라 자네 자신도 죽이고 있어. 지평선을 넘을 순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보인다고 해서 전부 다 닿을 수 있는 건 아냐."(p.112.)

  호라이즌이 바라는 것, 지평선을 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삶이고 생명이고 호라이즌이 벗어나려고 하는 이 세계다. 티르와 호라이즌의 대립구도 속에서 티르는 이 세계의 가치와 삶을 긍정하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쳐서 도시를 떠나서 팔려고 했던 티르가 어느 시점에서 마음을 바꾸고 '아스레일치퍼티'를 훔쳐서 팔 생각을 버린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아스레일치퍼티' 때문에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분쟁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바뀌었을 수도 있고, 호라이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이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주제의식을 다소 모호하게 드러낸 데 비해, 「오버 더 네뷸러」와 「오버 더 미스트」는 그것을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오버 더 네뷸러」에서 티르는 수천년 수만년 동안 '마술'을 축적시키고 발전시켜 공간을 지배하고 저 성운까지 닿을 수 있을 가능성보다도, 바로 지금의 삶, 세상을 파괴하는 마법사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션을 죽인다. 「오버 더 미스트」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권력다툼에 휘말리며 '재앙의 징조'가 된 '개양이 개(천사)와 고양이(저승사자) 사이에 태어난 미확인 생명체'를 살려준다.


  "사카 둠바에서 까로 트랙스까지 7400년. 그리고 션 그웬에서 이름을 모를 누군가까지의 수만 년. 어떻게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찬성을 보내겠어. 그리고 내 짧은 팔이나마 그들의 어깨에 걸어 함께 걸어갈 거야."
  "그들?"
  "서로 손가락을 깨무는 것을 삼갈 줄 아는 자들의 곁에서."
p.207.

  '왜 즐거워하지? 또 변신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이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이지만,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남아줘. 내가 즐거워하는 것은 저승사자와 천사 때문이야.'
  '저 동물들의 무엇 때문에?'
  '살아나려고 하고 있거든.'
  ... (중략) ...
  "힘들게 깨달았습니다. 그 새끼들은 태어난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pp.326-327.


  지평선보다 더, 성운 너머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의 삶이다. 혼란스러운 안개 너머에서 분명한 것은 살려고 하는 것, 태어난 생명이다. 이 텍스트는 '지평선을 넘는 것', '성운 너머에 도달하는 것', '불길한 징조' 등등의 거대담론들을 배척하고, 지금 여기의 삶과 현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일견 '보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삶과 현실에 대한 긍정과 사랑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진보는 불가능하다. 현실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이 먼저 봐야 하는 것은 현실이다.


  『폴라리스 랩소디』(2000) 8권 마지막에 실린 송경아 씨의 해설을 보면, 송경아 씨는 작가[이영도]가 비인간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인간에게 냉소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평한다. 『오버 더 호라이즌』에 실린 '오버 더 ~' 시리즈들은 그런 송경아 씨의 지적을 수용한 것처럼(시간적으로 볼 땐 또 딱히 그렇다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작가의 태도는 이후 『눈물을 마시는 새』 등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영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책은 『오버 더 호라이즌』이다.



  비평을 마치며, 마지막 인용으로 「오버 더 네뷸러」에 나오는 오크 경전어를 적는다.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영웅, 현자, 성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멍청이, 얼간이, 바보."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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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1. 5. 19:19

한겨레21에 실렸던 추천 글의 원본...이랄까
실제로는 분량 문제로 더 간결하게 줄였고 좀 덜 박하게 보냈다.
그리고 내가 순화한 버전 이후에도 문학동네->한겨레21을 거치면서 순화된 부분도 있는 듯 -_-



김진경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10,000원


드문 청소년 SF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종종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다. 영화 데몰리션맨도 그렇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한국의 청소년 소설로서는 드물게도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토대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국의 교육이, 사회가 계속 이런 방향으로 치닫게 되면 근미래에 어떤 끔찍한 세상이 도래할지를 현실에 밀착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리얼한 SF'이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를 칭찬/추천하라고 하면 (약간의 과장을 곁들여) 청소년 소설로쓰여진 한국판 『1984』(조지 오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지하도시, 거주지역 불평등, 시계모자, 언론통제,경찰폭력, 그리고 뒤바뀐 낮과 밤.... 등등의 장치들은 독자들에게 지금 사회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장치들은 참신하기 때문에 놀라운 게 아니라, 익숙하기 때문에 놀랍다. 강남과 비강남, 임대아파트와 안 그런 아파트, 분당과 성남 등 이미 존재하는 거주지역에서 드러나는 불평등이 1구역 2구역 3구역 지하도시.. 하는 식의 소설 속 설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현실의 한국 정부의 미국 따라하기 행태는 소설 속의 미국 시간에 맞춰 뒤바뀐 낮과 밤과 직접 연결된다. 시계모자의 도입 과정은 학원과 과외에 쩔어 있고 이미 입시사교육화된 학교의 모습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 소설 속의 설정들은 새롭게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다. 곳곳에 이명박 정부라는 당장의 현실을 의식한 설정들도 눈에 띈다.


좀 아쉬운 캐릭터와 스토리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회적 현실과 설정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다보니 캐릭터가 약하다.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캐릭터의 심리, 감정에 잘 몰입이 안 된다. 캐릭터가 단순해서 '이해'는 잘 가지만 깊이가 부족하고 인상이 흐릿하다. 가끔씩은 사건 전개가 억지스러운 것 같고 개연성이 부족할 때도 있다.(예를 들어 대체 중앙시계탑 앞에 화살은 왜 계속 둔 건가?;) 어느 헐리웃 영화에선가 본 듯한 식상한 장면들이 반복될 때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런 단점들은 소설적인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불만사항이 될 수 있다. 교육문제, 사회문제를 '시간'에 대한 통찰로 대체한 것 등은 김진경 씨의 철학적 내공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런 담론적인 풍부함과 참신함에 비해 인물이나 이야기구조는 빈약한 불균형이 느껴진다. 김진경 씨가 꽤 훌륭한 이야기꾼인 건 맞지만, 아직 이런 식의 장편 소설을 박진감 있게 구성하고 끌고 가기에는 좀 내공이 부족한 것 아닐까 싶었다.


사회적 정치적 소설로 읽을 가치는 충분

어쨌건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사회적 정치적 텍스트로 읽기에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원래 SF란 사회적, 정치적 성격이 강한 장르가 아니던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교육 문제와 사회 문제가 하나로 엮여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이 소설은 청소년들이 직접 중앙시계탑을 부수는 클라이막스에서 마무리함으로써 ‘시계모자’를 없애는것(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웅변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과 저항을 강조한다.

물론 중앙시계탑이 부서졌다고 해서 소설 속의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모두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결말은 마치 작가가 독자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읽힌다.
중앙시계탑이 파괴되는 사건으로 혁명의 시위는 당겨졌다. 이 혁명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그 결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덧 :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나올 때는 좀 웃은;
뭐 어쨌건 어떤 면에서는 이 소설은 (청소년)인권운동이나 88만원세대 등의 담론들에 약간의 빚을 지고 있다.

덧2 : 이 소설을 내가 처음에 추천사 쓰려고 원고 상태로 받았을 때는 "태양이 빛나는 밤에"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지금도 그 제목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라니;

덧3 :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게, 그럼 김진경 씨는 참여정부 때 얼마나 잘 했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까는 부분 읽을 때마다. 참여정부 때 교육정책을 얼마나 잘 폈나? -_- 이명박 정부보다야 잘 했겠지만- 그건 자랑거리라고도 하기 어렵지 않을까. 김진경 씨는 얼마만큼의 자기 반성 위에 이런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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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7. 26. 01:48

영두의 우연한 현실 - 10점
이현 지음/사계절출판사




1.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우연하지 않다



  이현 씨의 청소년 소설 단편집 『영두의 우연한 현실』. 아니 세상에, 현실이 우연하단다. 이렇게 칼 같고 서늘하고 단단한 현실이 ‘우연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디 한 번 이 흥미로운 제목의 표제작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 대한 것부터 이야기해보자. 소설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책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서 「어떤 실연」에 이어 두 번째로 실려 있다.

  (사실 다 읽고 나서 이 배치 순서에 좀 의구심이 들었다. 「어떤 실연」은 괜찮은 내용이긴 하지만 제일 앞에 실리기엔 ‘끌림’이 좀 부족한 것 같고,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 실린 다른 이야기들의 분위기와도 다소 이질감이 느껴진다. 혹시 소재가 비교적 무난하고 덜 부담스럽기 때문에 제일 앞에 넣은 건 아닐까?)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평행우주론이랄까 다중우주론이랄까, 그런 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평행우주론”, “다중우주론” 이런 말만 들으면 굉장히 자연과학적인 이야기일 것 같겠지만, 이 이야기는 지극히 사회적이다. 영두와 영두의 차이는, 영두 아버지의 손가락이 공장에서 프레스기를 돌리다가 손가락이 잘렸느냐 안 잘렸느냐, 하는 0.3cm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손가락이 잘린 세계에서 영두의 아버지는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해고당하고 끝내 막노동 공사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영두의 집은 빈곤층이 되고, 영두는 ‘불량아’가 된다. “영두는 인생이, 한 마디로 ‘씨팔’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세계의 영두가 ‘좀 더 넉넉한 뒷바라지’를 받고 “기억력이 비상”해서 열심히 논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인생이, 한 마디로 노란 풍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나는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세계의 영두가 반드시 행복하다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상대적으로 손가락이 잘린 세계의 영두보다 여유 있고 나은 삶을 살지는 몰라도.)

  그러나 「영두의 우연한 현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현실이 사실은 그리 우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은 마치 두 영두의 차이가 0.3cm 차이, 그 ‘우연하게도’ 손가락이 잘렸냐 안 잘렸냐의 차이에서 온 것처럼 쓰고 있다. 그러나 0.3cm의 우연이 두 영두 사이를 이토록 극명하게 갈라놓은 것은 결국 이 사회의 문제이고 일종의 필연이다. 산재보험은 대체 어디로 간 건가? 고용보험이라거나 복지 정책은? 안전망이 지극히 취약한 이 사회는 그러한 작은 우연,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손가락이 잘리느냐 안 잘리느냐 했던 건 정말 0.3cm의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0.3cm의 우연을 이토록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만든 것은 결국 필연이 아닌가? 요컨대, 우연은 필연 위에서만 의미 있는 우연이 될 수 있다는 결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막바지에서 영두는 “난 우주라는 게, 엄청 대단한 건 줄만 알았어. 우리가 절대 어찌해 볼 수 없는, 높고 튼튼한 철벽 같은 거 말이야. 그런데 이제 보니까 아니네. 우주라는 거, 매트릭스처럼 그냥 우리를 둘러싼 허상인 거야. 우리는 그 허상에 내몰려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 너와 나의 현실이라는 것도 그래. 우린 그게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 보려고, 혹은 거기서 벗어나 보려고 아득바득…… 웃기는 일이야.”라고 말한다. 그래, 우주-현실의 단단함을 의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새로운 상상력을 주니까. 주어진 조건 속에 갇혀서 생각하지 않고 조건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새로운 삶을 열어주니까. 하지만 우주-현실이 단단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중의 우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편의점 뒷문을 발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우주-현실 속을 ‘아득바득’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은 필연 위에서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에서 아쉬운 것은 그것뿐이다. 우주-현실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영두가, 다시 단단한 자신의 우주-현실의 안으로 자신을 던지는 과정까지는 미처 그리지 못한 것.




2. '오답 승리의 희망'은 진행형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오답 승리의 희망」은 사실 내가 이 책을 얻게 된 이유이자 읽게 된 이유이다. 실제의 오답 승리의 희망 편집진 중 한 명으로서, 오답 승리의 희망을 소재이자 제목으로 삼고 있는 소설을 어찌 안 읽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사계절 출판사에서 공짜로 주기까지 했는데… (사실 이름에 대해서 저작권료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긴 했지만 이현 씨가 1만원 후원을 해주시기도 했고 책도 2권 공짜로 얻었고 책 덕에 홍보도 많이 됐고 해서 그냥 서로 윈윈이다.)


  읽으면서 사실 좀 짠했다. 전단지 하나 돌리고 붙이는 게 쿵쾅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심호흡을 해가며 혹시 지문이라도 채취할까봐 장갑까지 끼고서 몰래몰래 하는 일이어야 했던 그 고등학교 때. 그랬는데도 이미 찍혀있던 나는 학생부실로 불려가서 태연자약한 얼굴을 연기하며 누가 한 건지 모른다고, 우와 이런 것도 뿌렸군요, 하는 쇼를 해야 했지. 비록 나는 같이 못했지만, 2006년 3월, 오승희 창간호를 학교 안에 돌리던 나르샤-전북청인모 사람들의 심정도 「오답 승리의 희망」에 나오는 이오구나 곽정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아, 이오구는 좀 심하게 사차원 캐릭터라서 약간…) 물론 지금도 학교들의 상황이 그리 다른 건 아니다.

  「오답 승리의 희망」은, ‘청소년자유언론 오답 승리의 희망’이라는 소재에 2008년을 수놓았던 촛불집회(그리고, ‘촛불소녀’.)라는 배경을 덧붙이면서 새로운 결을 가지고 태어난 이야기다. 이현 씨는 “어느 보수적인(반인권적인) 고등학교 안에서 오답 승리의 희망이 배포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충실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좌절했던 ‘촛불소녀’ 곽정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간다. 그 과정에서 학교 안에서 언론·표현의 자유, 소지품 검사 문제, 강제야자, 입시경쟁, 체벌 등등 온갖 학생인권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스케치된다. 이야기의 마무리를 가벼운 위트로 끝맺는 그 여유와 솜씨에는, 정말 이현 씨도 숙련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오답 승리의 희망」에는 다소 위험한 오류가 있다. 2008년의 촛불이 과연 ‘청소년인권’과 연결이 되었을까? “전에 다니던 학교는 소지품검사 거부운동도 하고, 두발자유화 서명운동도 하고 그랬어. 쉬는 시간이면 마우스를 복도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면, 알 만하지?”라는 이오구의 대사를 보면 청소년인권에 대한 의식과 2008년 촛불-반이명박의 의식이 연속선상에서 자연스레 배치되고 있다. 오답 승리의 희망과 촛불집회 참가를 자연스레 연결 짓는 것도 그렇다.

  그전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분명히 2008년 촛불집회에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참가하면서 ‘운동’을 시작하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참여의식을 가지게 된 청소년들(말하자면, ‘촛불소녀’든 ‘촛불청소년’이든) 중 대부분은 오히려 학교에서는 조용히 지내는 경우가 많다. “쉬는 시간이면 마우스를 복도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분위기와 “두발자유화 서명운동”을 하고 “소지품검사 거부운동”을 하는 분위기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고 연속선상에 있지 않았다. ‘민주주의’, ‘반MB’, ‘광우병소고기’, ‘국민주권’, ‘굴욕-졸속협상’을 외치던 목소리들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이야기로도, 학교 현장에서의 투쟁으로도 잘 이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건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다. (나는 청소년인권운동의 역량과 조직이 매우 부족한 탓도 있지만, 거시적인 투쟁, 지사적인 투쟁이 가지는 한계, 그리고 2008년 촛불이 내재하고 있던 한계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현 씨가 이 둘을 너무 쉽게 연관지은 것은, 뭐 이현 씨 자신의 소망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촛불에 나온 청소년들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십대들-‘촛불세대’들을 포장하기 바빴던 어른들의 시선이 답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촛불의 경험으로 ‘깨어있는’ 청소년들은 한층 늘었고 이 청소년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할 거라는… 촛불집회에서 보인 청소년들의 모습은 사회에 적극적·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었다는 데서 오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 “촛불소녀” “촛불세대” 등의 담론에서 과잉된 청소년에 대한 대책 없는 이미지가 좀 느껴졌다고 하면 나의 과민함인가?



  어찌 되었건 「오답 승리의 희망」에서 아직 오답은 승리하지 않았다. 앞으로 곽정과 이오구가 만들어갈 투쟁이 어떤 투쟁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투쟁이 현재진행형임은 확실하다. 곽정이든 이오구든 오승희에 글 좀 투고해주거나 편집진으로 좀 참여해주면 좋겠다.




3.  그밖에, 자세히 다루지 못한 다른 4편에 대해

- 「빨간 신호등」은 청소년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내용 중 하나. 좀 강간-섹스 후에 곧장 제주도로 가서 며칠 간 못 만나고 돌아와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설정이 약간 작위적인 면이 있다. 남성 청소년의 시선에서 이 사건을 그린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치적인 의미랄까 계몽적인 의미랄까, 그런 면에서는 좋지만 이야기상으로는 그렇게 끌리지는 않는다.

- 「로스웰주의보」는 내 마음에 드는 단편이다. 이런 식의 서술 방식도 좋아하고, 이런 식의 상상력도 좋아한다. 식상한 맛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이런 식의 상상력-설정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게 전혀 자연스럽지 않고 매우 이상한 모습이라는 문제제기에는 좋지만 현실을 약간 은폐하거나 왜곡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이따위로 살아야 하는 건 사실 외계에서 날아온 ‘푸라푸라’ 때문은 아니다.

- 「어떤 실연」. 『우리들의 스캔들』 때도 느꼈지만 이현 씨는 여성 청소년들의 1인칭 시점에서 재미있는 문장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어떤 실연」도 좀 그렇다. 평범한 청소년들의 평범한 갈등과 평범한 사랑과 평범한 실연 이야기… 라고만 말할 순 없지만 뭐 대략 그렇다. 다른 이야기들과 비교하면 좀 밋밋한 맛이 없지 않아 있다.

- 「그가 남긴 것」은 장례식을 소재로 해서 그런가 이청준의 『축제』를 연상시키긴 했지만 맥락은 많이 다르다. 이현 씨 본인의 세대 때문인가, IMF 이후 가족의 모습과 관계라는 것이 이현 씨 소설에서 좀 빈번하게 나오는 모티브 같다. “다음에는 아빠하고 딸 말고 다른 사이로 태어나자, 응? 뭐든 좋으니까, 미워하지 않는, 그런 사이로 태어나자, 응? 친구라도 좋고 연인이라도 좋고……. 아니, 그래. 우리 남으로 태어나. 그냥 지하철에서 우연히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 그런 사이로 태어나. 그러면 나, 아빠 미워하지 않을 거 아니야, 그치?”하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가족은 서로 사랑하는 따뜻한 공간이라는 것은 환상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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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1. 18. 12:59



문학동네에서 "태양이 빛나는 밤에"라는, 김진경 씨가 쓴 청소년소설의 추천글을 부탁해서 쓴 짧은 추천글...

솔직히 추천글은 거의 안 써보고 비평글만 써봐서, 비평처럼 되어버렸지만;;;

근데 이거 벌써 공개해도 되나?
에이 원고 본문 공개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태양이 빛나는 밤에 뒤표지에 이 추천글이 다 실리는 것도 아니니, 이렇게 올려둬도 별 문제 없겠지;;; 문제 있으면 문학동네 분이 덧글이라도... 쿨럭

근데 문학동네가 생각해보니까 최근에 '혀' 표절 문제가 있고,
김진경 씨도 생각해보니까 예전에 전교조에 쓴소리한답시고 뻘소리 좀 했던 사람이고 -_-;
소설도 딱 100% 맘에 드는 건 아닌데 현재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일정한 의미가 있고 뭐 그렇게 나쁘진 않아서 추천의 글을 썼는데

흠;; 쓰고 나니 뭐- 에이 상관 없겠지






  『태양이 빛나는 밤에』는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니, 알레고리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좀 직설적이니까, 그냥 과장적인 판타지 정도라고 해둘까? 소설은 한국의 교육이, 사회가 계속 이런 방향으로 치닫게 되면 어떤 끔찍한 세상이 되어갈지를 그야말로 현실에 밀착한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청소년 소설로 쓰여진 한국판 『1984』(조지 오웰)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다.
  지하도시, 제1구역, 2구역, 3구역 등의 분리/불평등과 시계모자, 언론통제, 경찰폭력, 그리고 뒤바뀐 낮과 밤 등등은, 매우 현실적인 상상력이 낳은 장치들로 독자들에게 지금 사회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특히 이 소설 곳곳에는 이명박 정부라는 당장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의식하고 설정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이런 현실성은 이 소설의 다소 약한 캐릭터, 가끔씩 부족한 사건 전개의 개연성, 어느 헐리웃 영화에선가 본 듯한 식상한 몇몇 장면 등의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매력 포인트이다.
  마지막으로, 중앙시계탑을 부수는 클라이막스에서 소설이 마무리되는 것은, 교육문제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즉, 시계모자(교육문제)를 없애는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첫 단추이며 거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중앙시계탑이 부서졌다고 해서 이 소설에서 그려진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태양이 빛나는 밤에』는 혁명(이렇게 불러도 무방하리라)의 첫 걸음까지만을 그린 이야기이고, 그 이후에 작중의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길은 더 길고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이런 결말은 어쩌면 작가의(동시에 우리의) 무의식 중의 불안이 반영된 것은 아닐지, 그래서 그 벅찬 첫 걸음에서 결말을 지어버린 것은 아닐지 싶기도 하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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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결국이렇게

    2008.11.18 14:58 [ ADDR : EDIT/ DEL : REPLY ]
  2. 이카루스

    으하핫... 문학동네 '관계자'입니다 ~ 공현님이 벌써 사전선전 작업(?)에 착수하셨네요 ^^;
    뒤표지 글 공개 무관하구요...멋진 비평 다 못실어 드려 아쉽네요.
    지금 표지 작업하고 있답니다. 표지는 내용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뽑아보려고 하고 있구요.

    서점 매대에 가기 전에 받아볼 수 있도록 할게요. 주소 보내 주세요~~~

    2008.12.01 15:57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8. 1. 13. 22:57

 서기 2005 7/9 토요일 저녁 20시에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느낌.
그 전까지 쌓여오던 짜증과 나 자신 및 세상에 대한 분노, 안타까움, 현대에 대한 애증이 한순간 끓어올랐다.
PC방으로 달려가서 자판 앞에 앉아 21시 55분까지 자판을 두들긴다.
채 다 못 쓰고 다음날 다시 두들긴다.
그렇게 이틀만에 다 써버렸다... OTL
 

 

덧. 7/11 약간 불완전한 부분 수정.
     8/21 상동

   

 

 

 

 





신세기 수기(新世紀 手記)


  오늘밤은 검은 비가 내린다. 옛날에도 눈을 맞으면 옷이나 우산에 검은 자국이 남는 일은 있었지만, 요즘 내리는 비는 아주 노골적으로 검다. 풀잎 위에 맺힌 빗방울도 검고, 밖에 나가면서 썼던 우산도 온통 더럽혀져 있다. 그 검은 성분들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에이치투에스오스리, 에이치엔오스리, 산업먼지, 그런 것들만으로 그런 빛깔이 나올까. 그 검은 빛조차 흐릿하기만 한 검은 비.
  애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니 고양이 울음소리다. 고양이 울음소리는 어린애와 비슷하다고 한다. 옛날에 들은 바로는, 고양이는 아이가 태어나는 날에 지붕 위에 올라가 아이의 혼을 훔쳐간다고도 한다.
  방에는 컴퓨터가 없다. 컴퓨터는 믿을 수 없다. 독일에는 감시 카메라가 늘었다고 한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에는 감시 카메라가 별로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저기 어딘가에 그런 것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팔면서 그들은 그 안에 그런 것들을 숨겨두는 건 아닐까. 나는 극단적으로 방 안에 가전제품을 들여놓는 일을 꺼리고 있다. 그러나 가전제품을 들여놓지 않더라도, 그들이 나를 감시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오늘 저녁에는 아르바이트가 없다.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주섬주섬 양말을 신는다. 지금 방바닥에는 개미가 없는 듯하다. 전에는 방바닥을 살피면 집에 사는 조그맣고 빨간 개미들을 서너 마리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집주인은 집안의 개미들을 박멸하겠다며 개미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개미들을 없애지 말아달라고 하고도 싶지만 하숙비도 가끔 밀리는 주제에 그렇게 말하자니 너무 뻔뻔한 듯하여 말하지 못하고 있다. 개미가 없는 곳에는 바퀴벌레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양말 곁을 기어가던 개미를 떠올린다. 더듬이를 흔들며 꼼지락거리던 그것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개미 굴 속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미시의 어둠 속에는.
  발목까지 덮는 바지를 입고, 손등까지 덮는 웃옷을 입고, 안경, 모자, 마스크를 쓰고, 얇은 장갑 한 켤레까지 끼고 밖으로 나선다. 만년필과 나이프와 하모니카도 잊지 않는다. 친구들의 유품. 들고 다니는 것에 별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몸에서 떼어놓고 싶지는 않다. 만년필과 나이프 같은 경우 휴대하는 게 편할 때도 있다. 삶이 지긋지긋해질 때 나이프를 보면, 그 섬뜩한 광택이나 삶과 죽음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얇은 경계선의 이미지에서 오싹한 기운을 느끼고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삶에 대한 욕망이 깨어난다든가...
  흰 우산을 들고서 나선다. 계단을 내려간다. 아래층, 주인집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온다. 여러 가지 소리도 들려온다. 자동차 소리, 종소리, 기차 소리, 총소리, 신음소리, 이야기소리.
  이 도시에서, 흰 우산은 인공위성과 비행기만 떠있는 검은 하늘의 조그만 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육안으로는 관측되지 않는 육등성.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로 가고 싶지. 어디로 갈까. 고양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골목을 걷는다. 골목에는 노란 가로등이 켜져 있다. 골목의 조명을 좀더 밝게 바꾸지 않는 것이 예산 부족이나 그런 이유가 아니란 것은 모두가 안다. 첨단 카메라는 그런 조명에 그리 구애받지 않는다. 검은 비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는 검은 비 속에서 더 사람들을 잘 찍을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발표로는 몇몇 우범지역에만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하지만 그 지역이 어디인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것을 설치한 자들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꿰뚫는 시선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확실한 일 아닐까. 몸뚱아리는 카메라 앞에서 광대 짓을 하고 있다. 날 바라보는 검은 관찰자는 웃고 있을까. 아니다, 검은 관찰자는 웃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은 너무도 깨끗하고 밝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나는 어디론가 간다.


 

  어디에서 오든, 어디로 가든, 난 골목을 지날 때면 묘한 것들을 만나게 된다.
  첫 번째 것은 미묘한 부재다. 골목을 지나다가 내가 홧김에 술병을 던져서 깨뜨리면 그건 얼마 안 있어 사라진다. 걷어찬 돌멩이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마치 골목의 가로등 빛에 녹아버리는 듯이. 내가 발로 걷어찼던 담벼락에는 발자국이 남아있지 않다. 존재는 순간이다. 그에 비해 부재는 영속적이다.
  두 번째 것은 유령이다. 사람들의 유령. 친구들의 유령. 나는 오늘도 민수의 유령을 지나친다. 철순의 유령을 지나친다. 정구의 유령을 지나친다. 순희의 유령을 지나친...... 유령들은 나를 보고 있지 않으며 각자의 일에 열중하지만, 항상 나를 응시한다. 유령들의 시선은 나를 꿰뚫진 않는다. 그저 나를 더듬는다. 유령들은 편한 것 같기도 하다. 죽을 때와 달리 피도 흘리고 있지 않다. 난 그들을 애써 못 본 체 한다.
  번화가로 나오자 고양이 소리가 멀어져간다.
  담배연기를 입에 문 사람이 PC방에서 나온다. 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다. 다른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다. 담배 불빛이 순간 깜빡거린다. 아이스크림에서 한 방울, 설탕물이 떨어진다. 그는 마스크를 쓴 나를 힐끗 곁눈질하더니 무표정한 채로 지나친다. 아이스크림을 한 번 핥더니 담배연기를 다시 한 모금 문다.
  나는 선불한 뒤 컴퓨터 앞에 앉는다. 얼룩진 우산을 바닥에 내려둔다. 마스크는 벗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서 표정을 보이는 일은 썩 불안하다.
  게시판은 시끄럽다. 누군가가 또 한 마디 한 모양이다. 댓글 수가 수백을 헤아리고 답글이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Re : ,  Re : , Re : ....... 커다란 글씨. 색이 들어간 글씨. 욕설. 혹은...... 나는 머리를 의자에 기댄다. 오늘도 분노로 키보드를 두들기기를 포기한다. 집을 나설 때 몸을 지배하던 개미와 바퀴벌레와 고양이에 대한 사고의 흐름은 단절되고 흩어진다. 심호흡을 해보지만 담배연기만 폐부로 들어와서 미간만 좁혀질 따름이다.
  나는 시간도 다 채우지 않고 PC방을 나온다. 검은 비가 내리고 있다. 유령들이 서있다. 유전자 조작되어 검은 비에 견디는 나무들이 서 있다. 아직 비 때문에 죽었다는 인간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인류도 유전자 조작되었을지 모르겠다. 나무 그림자들이 휘어있다.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유령들을 지나친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고는 깡통을 골목에서 지근지근 밟아버린다. 어차피 곧 사라지리라. 곧...

 

  하숙집에 돌아와서 우산을 휴지로 닦는다.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쓰레기통에는 수북하게 검은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나는 방바닥에서 개미를 찾는 일에 열중하기로 한다.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방바닥에 엎드린 채 쌓아둔 책 더미를 헤집으며 개미를 찾던 나는 고개만 살짝 든다.
  주인 부부다. 주인 부부는 대머리다. 늙은 부부다. 불을 켜놓고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내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학생. 그들은 나를 학생이라고 부른다. 집 컴퓨터가 좀 이상한데 좀 봐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밖에는 검은 비가 오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가서 주인집에 들어간다. 주인집에는 소파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고 컴퓨터가 있다. 전축이 있고 홈 시어터가 있다. 나는 마루에 놓여 있는 컴퓨터를 엄지발가락 끝으로 켠다. 부팅 중에 화면이 검게 되며 정지해버린다. 나는 문득 그 검은 화면 속에 흐릿하게 흔들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 듯하다.
  컴퓨터에 대해 이런 저런 것들을 배운 것은 정구에게서였다. 정구는 신세대였다. 그런 점에서는 민수와는 정반대였다. 민수는 상당히 구닥다리였지만 정구는 새로운 것에 민감했다. 민수가 포크를 부를 때 정구는 얼터너티브락을 불렀다. 민수가 통기타를 칠 때 정구는 컴퓨터로 음악을 조합해냈다. 그렇게 달랐는데도, 신기하게도 그 둘은 꽤 친한 사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화면 속 얼굴들이 희미해져 간다. 다시 한 번 부팅시켜서 검은 화면 속에 떠오르는 그 얼굴들을 보고 싶지만, 옆에서 바라보는 늙은 눈 넷이 부담스럽다. 부팅 도중에 키보드를 두들겨서 설정으로 들어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손본다. 뭔가 꼬여있다. 꼬인 것이 잘 풀리지 않는다. 난 꼬인 것을 풀고 싶은 걸까. 글자가 깨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역시 글자가 깨진다. 모니터는 다시 검어진다. 그 뒤에서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 컴퓨터 모니터를 부수고 그 사람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깰 것인가 깨지 않을 것인가. 풀 것인가 풀지 않을 것인가.
  주인 부부에게 고치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하숙집을 서둘러 나온다. 컴퓨터 고장도 어차피 금방 없던 일이 될 것이다. 뒤에서 쳐다보는 주인 부부의 묘한 눈길을 느낀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울린다. 문득 지극히 현대적인 괴담을 떠올린다. 요즘 주택가에서 점점 늘어나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아이가 울고 있는 것처럼 가장해서, 그 아이의 울음소리에 무슨 일이 있나 나오는 사람들을 잡아가려고 쳐놓은 함정이다. 이 시대는 그런 사람들을 제거해가며 이루어진 것이다. 그 증거로 목이 쉬도록 온종일 짖던 동네 개들은 하나하나 없어지고 있다. 개들이 고양이를 쫓아내기 때문이다. 어둠을 짖는 개들은 하나하나 잡혀나가고, 갇혀나가고, 죽어나가고 있다.

 

  나는 그대로 그 골목으로 간다. 골목에는 가로등이 있고 감시 카메라가 있고 부재가 있고 유령들이 있다. 컴퓨터 속의 것들은 너희였니.
  유령들은 문득 고개를 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골목 밖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린다. 정적은 아무 곳에도 없다. 한 방울, 두 방울, 검은 비가 이마에 떨어진다.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감촉의 비가 내리려는 듯하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조금씩 커진다.
  정적이 있다. 자동차 경적 소리가 멎었다. 비가 멎었다. 갑자기 유령들이 입을 열려 한다.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느릿느릿, 영화의 슬로우 모우션처럼. 골목 구석에 유리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깡통이 찌그러져 있다.
  갑자기 무서워진다. 혼란스러워진다. 달린다.

 
 

  골목을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다. 검은 비. 요즘은 집을 하얗게 짓지 않는다. 검은 비에 맞으면 온통 얼룩이 남기 때문이다. 오히려 집을 지을 때부터 얼룩 비슷한 무늬를 넣는다. 어떤 건물들은 군복 같기도 하고, 위장복 같기도 하다. 그들은 그것을 현대적인 감각의 건축미학이라고 부른다.
  비를 맞는 건 몸에 좋지 않아, 학생. 집 앞에는 못보던 탁한 검은 빛의 차 한 대가 주차되어있다. 교통 혼잡은 증가하고, 주차공간은 부족해져 가지만 자동차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우산을 들고 대문간에 나와서 서있다. 거기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애매하게 대답한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던 걸까. 이 집 자식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있다고 하던데, 혹 오늘 돌아오는 걸지도 모른다. 그와의 사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애초에 별로 얼굴 마주칠 일도 없는 데다가 나는 대개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것이다. 미소를 띠고 있는 아주머니 곁을 지나쳐 계단을 올라간다. 비 때문인지 몸이 끈적거린다.
  계단을 다 올라가기 전,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분명히 나올 때 불을 껐었는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본다. 방 안에서 사람의 모습이 움직인다. 하나. 둘. 한 마리. 두 마리. 계단 아래를 본다. 주인 아저씨가 서있다.
  학생, 그러니까 왜 가출 같은 걸 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난 주인 아저씨의 비웃음인지 동정일지 모를 묘한 웃음을 피해 계단에서 뛰어내린다. 계단은 담 바로 위에 있기 때문에 한 번 도약으로 담까지 넘어 집 밖, 골목으로 몸이 떨어져 내린다. 몸을 묶어놓는 중력 가속도의 감각. 귓가를 스치는 공기. 2층 정도 되는 높이에서 뛰어내린 탓에 발바닥이 저려온다. 다행히 발목을 다치거나 하진 않은 모양이다. 대신 떨어지는 순간 몸을 구부리며 충격을 줄이려다가 그만 무릎에 팔목을 찧었다. 발보다 오히려 팔목이 아프다. 아직 뛰기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쁘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기가 무섭다. 잡힐 것 같다.
  역시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었던 걸까. 잡히게 되면 나는 어디로 보내질까. 다시 할머니 집에 갇힐까. 아니면 감옥으로 보내질까. 정신병원으로 보내질까. 소위 조금 '왼쪽'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다 정신병자로 취급받는다는 소문도 있었지. 정신 없이 달리는 도중에 산발적으로 질문들이 떠오른다. 비가 얼굴을 때린다. 점점 끈적거린다. 피부가 근질거린다. 이 비를 맞는 것만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어느새 비가 내리지 않는다. 나는 다시 그 골목에 서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유령들도 그 골목에 서있다. 가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가로등 불빛이 휘어진다. 유령들이 내게 걸어온다.
  왜, 왜 나만 살아남은 거지. 숨을 고르면서 중얼거린다. 작은 중얼거림이지만 이 골목에는 크게 울려 퍼진다. 유령들에게는 똑똑히 들릴 것이다.
  너희에 비해서 나는 아무 것도 잘 하는 게 없고,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나를 가둬놓고 품안에서 기르려는 할머니만 남아있는데, 이렇게 무능한데, 어째서 너희가 죽고 나는 산 거지. 이런 쓸모 없는 녀석이. 친구들은 내 중얼거림에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공터가 사라졌어. 우리가 모여서 떠들던 공터가. 이제 없어. 밀어버린 거야. 온통 건물들이 빽빽하지. 빌딩 숲이야. 도심이야.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곳이야.
  철순이 이야기한다. 철순은 죽을 당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사차량에 치어버렸을 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터는 이미 사라졌어. 뭐가 어쨌건 우린.
  정구는 중얼거리다가 말을 끊는다. 정구는 투신했다. 그것이 자살이었는지 타살이었는지, 그런 건 제대로 판명되지 않는다.
  우리 노래는 팔리지 않았고 순희의 시도 읽히지 않았지. 정구가 만든 인터넷 포럼은 엉망이 되어있어.
  민수는 기타를 손에서 놓아버린다. 터엉.... 기타가 땅에 떨어지면서 울린다. 민수는 겨우 없는 일자리에 위장취업했다가 산업병으로 죽었다.
  가로등이 깜빡거린다. 조금 전까지 쫓아오던 그들은 이제 쫓아오지 않는 걸까.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까 부딪힌 팔목이 부어있는 걸 깨닫는다.
  그럼 너희는 왜 여기 있지? 내가 중얼거린 말에 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썼던 시구를 기억해? 골목은 도시의 중심. 도시의 중심은 간판이 화려한 시내도, 대학로도, 시청도 아냐. 이런 골목들이지. 도시에서 죽은 우린 도시의 중심을 떠돌고 있어. 세기, 너도 여기를 떠돌고 있구나.
  모두가 죽은 뒤, 순희는 약을 먹었다.
  여긴 아무도 오지 않아.
  여긴 감시 카메라가 없어.
  여긴 죽은 개들의 장소니까.
  여긴 폐허니까.
  여긴 정적이 있고 여유가 있고 망가짐이 있지.
  나는 가만히 땅바닥에 앉는다. 혹사시킨 다리에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깨진 병조각. 찌그러진 깡통. 더럽혀진 벽. 휘어진 가로등.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뒤에서는 그들이 쫓아올 텐데.
  이제 아침이슬 따윈 없어. 아침에 풀잎을 봐. 풀잎에 맺힌 건 온통 끈적거리는 검은 이슬이지. 그걸 이슬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만성적인 스모그에 가려 태양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더위의 정체는 알 수 없지.
  MIB가 쫓아올 거야. 세기, 넌 정신병원으로 가겠지. 이 도시에서 우리는 미친놈이니까. 잠수함 속의 토끼는 미쳐 날뛰는 거니까.
  MIB.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내가 무슨 외계인이라도 된단 말일까. 그것은 정구 특유의 농담이다. 그들은 무엇인가. 그들은 그것인가. 그들은 있는가.
  우린 졌어.
  그 말과 함께 비가 내린다. 유령들이 사라졌다. 가로등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경적이 다시 들린다. 몸이 끈적거린다.
  빌어먹을.
  땅을 짚고 일어선다. 시멘트로 된 도로가 질척거린다. 고양이 울음소리.
  피부를 덮은 검은 빗방울이 답답하다. 답답함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머리로 피가 몰린다.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낸다.
  빌어먹을!
  부어오른 쪽 팔뚝에 옷 위로 나이프를 댄다.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지만 눈을 질끈 감고 나이프를 당긴다. 옷과 함께 살이 베이는 감촉이 섬뜩하게 전달된다. 다듬어진 통증이 내달린다. 눈을 조심조심 떠보자 꽤 깊게 베인 듯 피가 제법 나온다. 검은 빗방울이 상처에 흘러 들어가자 한층 상처가 쓰라려온다. 통증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만약 칼로 베인 상처 안에서 피가 아닌 검은 기름이 흘러나왔다면 나는 정말로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숨이 더 가빠진다.
  팔을 들어올린다. 피가 흘러내려 옷을 적신다. 숨은 점점 가빠진다.
  이제 이슬이 없다면 앞으론 이 피로 대신하겠어! 듣고 있냐! 여기엔 피가 흐르고 있단 말이다!
  공허하게, 외침이 메아리친다. 뒤에서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왼쪽에서 뛰고 있는 심장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Posted by 공현
TAG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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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주인공이름이 신세기 ㅋㅋㅋㅋㅌㅋ

    2014.07.02 12:49 [ ADDR : EDIT/ DEL : REPLY ]
  2. 와..
    주인공과 친구들의 과거를 좀 더 살을 붙이면 엄청난 소설이 나올 것 같은데..!
    마지막에 손목을 그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게다가 뛴다니.. ㅋㅋ 피가 충분히 많을까 걱정되네요 저는 피가 많이 없어서. 아니 왜 이걸 걱정하고 있지!)

    2014.07.02 12:54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08. 1. 11. 14:24

2005년 여름즈음에 쓴,


"쨍!"  그러니까는... 문학상 마감일에 맞춰서 다 써보겠다고 열심히, 열심히 치면서 지금까지 써온 소설들을 마구 짜깁기한... 좋게 말하면 지금까지 작품들의 총체? -_-;;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김수영의 이 선언(?)에 대해서 혹자는 "현실은 참여의 풍자, 무참여의 해탈 사이의 양자 택일을 요구한다"라고 해석하곤 합니다. 풍자가 아니면 자살,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 오늘도 풍자해내는 주인공을 만들어내지 못해서 결국 파괴와 죽음의 상태에 이르는, 해탈해서 미쳐버린 주인공을 만들어냅니다...








파본의 해탈



  "쨍!"
  박살남. 산산조각. 그런 느낌으로 하얗게 흩어지는 조각들. 땅에 널브러진 수박조각. 번지는 물기.
  유리 깨지는 소리에 놀란 듯 잠시 멍하니 있던 소녀는 천천히 몸을 쪼그린다. 소녀는 먼저 유리조각을 하나하나 맨손으로 집어서 모은다. 깨진 접시에 그려져 있던 꽃이 날카롭게 꺾여 있다. 접시 속에 갇힌 꽃이 답답하다. 조각을 주워 모으는 소녀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어느새 베었는지 소녀의 왼쪽 검지 손가락마디에서는 피가 나고 있다. 소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불안한 눈길로 밤 12시까지는 혼자 있을 집 안을 살피며 접시를 주워 모은다.
  소녀가 접시를 깨는 일은 오래간만이다. 소녀는 얼굴을 찌푸린다. 소녀는 접시를 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난다. 감기는 일상적이다.
  접시조각을 모두 부엌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소녀는 순간 멈칫하더니 그 조각들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손가락에서 흘러내린 피가 간혹 한 방울씩 바닥에 떨어진다. 소녀는 소녀의 피로 새로 그려진 빨간 꽃무늬들과 함께, 접시조각들을 아파트 밖에 있는 쓰레기장에 버린다. 쓰레기들로 잘 덮어서 접시조각들이 보이지 않게 한다. 그러고 나서야 손에 어린 붉은 빛을 알아차린 듯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살짝 핥는다. 조금 흐려진 붉은 색깔이 손가락에 번진다.
  띠띠띠 띠-.
  집 앞에서 별 의미 없이 초인종을 눌러본다. 잠시 깨져나간 운명을 감상한다. 초인종의 전자음은 참 가볍게도 베토벤을 연주한다. 운명이 울리는 동안 소녀는, 벽에 붙어있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계단에 켜진 노란 불이 얼룩진 벽면과 거울의 금들을 타고 번지고 있다. 입시학원가구할인판매…… 전단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문이 비친다. 방학동안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비친다. 검은 눈동자가 비친다. 처진 눈가가 비친다. 살진 편인 볼에 여드름자국 몇이 비친다. 오므린 입술이 비친다. 얼굴이나 몸에 비해 길고 얇은 목이 비친다. 벽이 비친다. 벽에 있는 돌기들에는 때가 끼어있고 먼지 덩어리가 매달려 있다. 벽은 불빛을 받아 오렌지색을 띠고 있다. 지저분한 분위기다. 구석에는 빈 우유 상자와 담배꽁초가 흩어져 있다. 벽에는 오줌 얼룩도 있고 가래침 얼룩도 있다. 핏자국 같은 것도 있다. 눌려 죽은 벌레의 날개는 벽에 박제되어있다. 붉은 피가 같이 묻어 있는 것은 모기 시체다. 거울의 금 부분에서 비친 형상들은 일그러진다. 금이 가고 여기저기 먼지가 낀 거울 속에서 시간도 잠시 흐릿해진다.
  소녀는 오른손을 넣어 우편함을 뒤적인다. 금속빛, 회색, 차가움, 그 위에 붉게 쓴 우편함이란 글씨가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선명하다. 의류할인판매80%세일새개장폐업창고대방출. 자극적이고 요란한 전단지 몇 장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우편함 입 속에 손을 넣어 샅샅이 훑어본다. 매끌매끌한 종잇장이 두서넛. 노란 종이에 파랗고 까만 글자. 수도요금지로, 우유대금지로. 손에는 요금지로용지들 뿐이다.
  소녀는 왼손 검지를 핥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방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어지럽게 울렁이는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억지로 자리 잡고 누운 소파다. 세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는 소파다. 나무 무늬 팔걸이에는 땅콩 껍질 조금과 사탕 포장지가 놓여있다. 땅콩 껍질들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들로 부서져 있다. 사탕 껍질은 가운데가 비스듬히 찢어진 오렌지에 녹색 잎사귀를 달고 있다. 언제쯤 먹고 버려 둔 건지 소녀는 기억하지 못한다.
  반대쪽에는 강아지 인형 하나가 놓여있다. 노란색 몸에 검은 귀를 가진 강아지 인형의 얼굴은 웃고 있다. 덥수룩한 털을 가진 인형은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 소녀는 개를 기른 적이 있다. 작은 시츄였는데, 배를 만져주면 누워서 네 다리를 늘어뜨리곤 했다. 몇 년 전부터 없다. 흰 살을 드러내고 있는 문짝의 나무 합판은 그 흔적이다. 그 이후로 소녀의 부모님은 동물을 기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인형만을 사줄 뿐이다.
  돈은 돈 대로 들고, 잘 죽잖아. 인형 같은 게 낫지, 차라리.
  소녀는 전단지들을 쓰레기통에 쑤셔 박는다. 휴지를 몇 장 뽑아서 바닥에 점점이 남아있는 핏자국 몇을 벅벅 긁어낸다. 수박도 깨끗이 닦아낸다. 붉은 색 개미 한 마리가 벽을 기어가는 것이 눈에 띈다. 더듬이를 흔들며 꼼지락거리는 그것은 퍽 귀엽다. 소녀는 간혹 개미들을 한참동안 들여다보곤 한다.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에서 끼익거리는 소리가 난다. 작은 방에는 갈색 책상 하나 침대 하나 녹색 옷장 하나가 좁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녀가 몸무게를 싣자 침대 매트리스가 억눌린 신음을 토한다. 열려 있는 옷장 안에서 약상자를 찾아본다. 아까 감기약을 꺼내 먹었었는데, 어디다 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타이레놀은 별 효력이 없다. 그러다가 소녀는 자신이 상처가 났다는 걸 모르고 있을 때는 아픔도 잘 의식하지 못했는데 상처를 본 뒤에야 아프다고 느끼는 것이 문득 우습게 여겨져 약상자 찾기를 그만둔다. 조금 갑갑함을 느낀다. 약상자 대신 옷을 찾아본다. 검은색 장식 없는 수수한 짧은 소매 셔츠가 눈에 띈다. 바지는 조금 헐렁한 검은 코르덴이 잡혔다. 소녀의 아버지는 소녀가 클 것이라면서 좀 큰 옷들을 사주지만, 옷들은 소녀에게 항상 크다. 바지 아랫단이 바닥에 쓸린다. 발뒤꿈치에 밟히는 것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습관적으로 책상 앞에 앉았지만 소녀는 손을 놓고 멍하니 주위를 둘러본다.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쨍-. 접시 깨지는 소리. 귀울음이 조금 울린다.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둘러본다. 문득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을 보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햇빛 속에 먼지가 빛나고 있다. 하얀 점들이 빙글빙글 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모레가 개학이었지. 그리고…
  소녀는 자판위에 손을 가져가 아무 키나 누른다. 검게 죽어 있던 컴퓨터 화면이 깜빡거리며 살아난다. 소녀는 하얗게 떨고 있는 화면을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쁘게 숨을 쉬는 화면. 신경을 긴장시키는 검은 글자의 떨림. 소녀는 고개를 휘휘 젓고 눈을 깜박이며 귓가에 울리는 접시 깨지는 소리를 떨치려 한다. 소녀는 문득 졸음이 의자 등받이에서부터 등을 타고 머리로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고개를 흔들어 어떻게든 졸음을 쫓아본다. 소녀는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아무렇게나 두들겨 무의미한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만들어냈다가 지우기를 되풀이한다. 한숨을 살짝 쉰다.
  서울에서 태어나 성격이 부드러우신 아버지와 다소 엄하신 어머니 밑에서…
  상투적이야, 작게 중얼거리며 지워버린다.
  집이 망해서 빚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때 시골로 야반도주를 하여 몇 달 동안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시골 생활을 했는데, 그때 평소 바라왔던 시골 생활을 만끽했음에도 자신이 시골 아이들 속에도 진정으로 섞여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솔직하게 썼다가 어머니에게 혼났던 것을 떠올린다. 책상 위에 삐딱하게 엎드린다.
  어릴 적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귀한 접시를 깨고…
  점점 더 자기소개서가 엇나가는 것을 자각하고, 소녀는 눈을 감아 버린다.
  의욕없음의욕없음의욕없음의욕없음의욕없음의욕업
  소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이런 문자열들을 화면에 띄웠다가 다시 지운다. 머릿속 한 부분이 마비된 것 같다.
  소녀는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지만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을 만한 문장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자기소개서는 일종의 광고라고 소녀의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소녀는 자신이 과연 팔려나갈 가치가 있는 상품인지 의심스럽다. 팔려나가는 게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대학교가 지원자를 선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1,0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로 기술하여 주십시오.
  소녀는 그 문장을 보면 노려보며 자판을 신경질적으로 때린다. 귓가에 환청처럼 전에 가식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예, 고객 여러분께 저희가 오늘 소개해드릴 상품은……. 그 너머로 접시 깨지는 소리가 찡― 하고 울리고 있다.
  소녀는 문득 생각이 난 듯 마우스 커서를 들이밀고 컴퓨터 폴더 속을 뒤적거린다. 그러다가 문서 파일 하나를 연다.



  구석진 골목길 가로등 아래나 공터 등에는 저절로 조그만 쓰레기장 같은 것이 만들어지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와 같은 내용의 조잡한 간판이 나붙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만들어 줄 사람도 없는 버려진 곳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쓰레기장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놓여 있곤 한다. 음식물. 비닐. 깡통. 유리병. 휴지. 구멍 난 양말. 깨진 유리조각. 컵라면 용기. 책.
  분리수거 같은 것은 무시한 채 널려있던 쓰레기들 속에서 문득 네모난 무엇이 일어섰다.
  검고 수수한 표지에 먼지가 묻어있다. 책장 틈에는 생선뼈다귀가 끼어 있다. 싸구려 종이로 만들어진, 제법 두께 있는 책이다.
  그것은 파본이었다. 파본. 인쇄·제책이 잘못되거나 파손되거나 하여 온전하지 못한 책을 이른다. 파본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것은 그 중에서도 심각한 편이었다. 97, 98쪽은 두 장씩 있었으며 100쪽은 누락되어 있었다. 100쪽 이후로는 글자들이 조금씩 뭉개져 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접힌 채 잘못 잘린 책장의 남는 부분이 세 조각, 삐져나와 있었다.
  그것은 약 5개월 전 서울의 출판사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흘 전 대학교 앞 한 서점 서가에서 팔렸다. 그것을 샀던 사람은 화를 냈고, 출판사에 문의해서 새 책을 얻었다. 파본인 그것은 버려졌다.
  그것은 본래부터 호기심 많은 책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만든 사람에게 찾아가 어째서 자신은 파본이 된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자신의 탄생이라든가 본질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그런 그것에게 그것에 붙어 있던 생선뼈다귀가 말해줬다.
  수도에는 커다란 출판사가 있어. 모든 책은 그곳에 있는 장인의 손에서 인쇄되어 나오지.
  그 이야기는 그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수도로 가기로 했다.
  다른 책들은 보통 자기 힘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에게는 삐져나온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들은 서가에 꽂혀 있을 때는 접혀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고 또 그것 자신도 그 부분을 자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을 샀다가 버린 사람이 그 부분을 펴둔 채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그 잘못 잘린 종이 부분이 세 방향으로 넓게 삐져나와 있었다. 그것은 그 부분을 다리처럼 움직여서 천천히 기어갔다.
  그것은 사람들 발길에 차이거나 찢어지지 않게 길 구석으로만 다녀야 했다. 동네 아이들 손에 잡혀서 딱지가 될 뻔한 일도 있었다.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 붙들린 적도 있었다. 자동차에 몰래 올라타기도 했다. 비가 오면 젖지 않게 건물로 들어가서 피했다.
  여기일 거야.
  여전히 생선뼈다귀를 낀 채, 더욱 꼬질꼬질해진 책은 마침내 아주 높이 솟아 있는 건물 앞에 이르렀다. 그곳은 인쇄소까지 한 건물에 있는, 거대한 출판사였다.
  1층에서는 인쇄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실례지만, 장인은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그것은 한쪽에 쌓여있는 책들에게 물어봤다. 책들은 깊이 잠들어 있어서 대답해주지 않았다.
  2층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뭔가 많은 종이들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실례지만, 장인은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아무도 그것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너무 바빴다.
  그것은 낑낑대며 가까이 있는 책상 위로 올라갔다. 계속 다리 역할을 해준 삐져나온 종이 부분은 이젠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책상 앞에서는 단발을 단정하게 늘어뜨린 여자 한 명이 원고를 읽고 있었다.
  실례지만, 장인은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여자는 슬쩍 고개를 들어 그것을 봤다. 그러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넌 더럽구나. 그 생선뼈다귀는 뭐니? 이런, 게다가…
  여자는 그것을 위아래로 뜯어보는 듯했다.
  넌 파본이구나.
  예. 파본입니다. 그래서 장인에게 왜 제가 파본인지 물어보러 왔습니다.
  왜 파본이냐니? 그런 데 이유 같은 건 없어. 파본은 그저 파본이야.
  여자의 미간에 더 깊은 주름이 파였다.
  장인님은 꼭대기 층에서 이 출판사의 모든 걸 조율하시지. 사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장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완벽한 능력에 대한 경외를 표하는 거야. 그분의 손으로 움직이는 이 출판사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이거든. 지금 파본이 그런 분을 만나겠다고?
  그런 완벽한 곳에서 왜 파본이 나온 걸까요?
  어… 글쎄. 음….
  턱을 괴고 고민에 빠진 여자를 두고 그것은 책상에서 뛰어내렸다.
  3층, 4층, 5층…. 그것은 계속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은 계속 이어졌다.
  이 건물은 대체 얼마나 높은 걸까?
  그것은 질문했다.
  글쎄.
  생선뼈다귀는 그렇게만 말했다. 그에 대한 답은 어차피 둘 다 모르는 일이었다.
  낮, 그리고 밤. 다시 낮. 다시 밤. 그것은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생선뼈다귀는 계속 그것에 끼어 있었다.
  좀 지치는군.
  결국 그것의 다리가 모두 너덜너덜 닳아서 못 걸을 즈음, 그것은 꼭대기에 도착했다.
  더 이상 계단이 없군. 그럼 여기가 꼭대기겠지?
  아마도.
  그것은 닫힌 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기다렸다.
  낮, 그리고 밤. 다시 낮. 다시 밤. 며칠이 지나고, 문이 열렸다. 염소수염을 기르고 배가 나온 노인이 나타났다.
  실례지만, 혹시 여기가 꼭대기입니까? 그리고 당신이 장인이십니까?
  오.
  노인은 그것을 보았다.
  여긴 꼭대기가 아니란다.
  그것은 실망했다. 이제는 더 이상 기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 뒤편으로 또 다른 계단이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은 장인에게까지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난 장인이라고 불리지.
  그것은 안도했다. 이제는 더 이상 기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것은 장인에게까지 온 것이었다.
  16세기에 태어나서 18, 19세기쯤부터 그런 이름으로 불렸지. 아마도. 좀 기억이 희미하군. 그래, 무슨 일이지?
  왜 제가 파본인지, 왜 제가 파본으로 태어났는지 알고 싶어서요.
  흠, 그것, 어려운 질문이구나.



  글은 여기에서 끝이다. 소녀는 의자 밑에서 주섬주섬 휴대전화를 주워든다. 머뭇머뭇 숫자를 하나하나 누른다. 매너모드에 억눌린 전화기는 버튼이 틱하고 눌리는 단조로운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기억에 의지해 10자리 수를 완성해나간다. 소녀는 친한 사람들의 연락처는 휴대전화 메모리에 맡겨두지 않고 외워둔다. 통화 버튼 위에 엄지를 올려놓고 잠깐 심호흡을 한다. 꾹― 필요이상으로 길게 통화를 누른다. 액정화면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림이 나타난다. 0:01, 0:02, 초세기. 유행한다는 컬러링 하나 없이, 뚜― 뚜― 하는 단순한 신호음이 울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에― 그러니까, 희진이구나.”
  소녀는 살짝 안도한다. 소녀는 전화를 걸 때마다 어떻게 운을 떼야 좋을지 막막하다. 저쪽에서 먼저 알아들어준 것에 안도한다.
  “응. 어떻게 지내?”
  “뭐 나야. 대학도 방학이고. 집에서 책이나 붙잡고 뒹굴거리고 있지. 요새 말로 방굴러데시라고 하던가. 무슨 일이야. 연락 안 하던 녀석이.”
  소녀에게는 그 말이 조금 탓하는 것처럼 들린다.
  “평소에 연락 안 해서 미안. 음, 그런데 선배가 저번에 쓴 글 말인데….”
  다소 험하게 써온 LP-8200의 통화감은 약간 멀다.
  “어떤 거 말하는 거?”
  귀에 휴대전화를 밀어붙이다시피 하며 목소리를 잡아낸다.
  “왜, 그 교지에 낸다고 쓰고서 결국 안 냈던 거. 파일 제목에 ‘파본 이야기’라고 달려있는 거.”
  “응, 뭐라고? 아, 그거….”
  “그 이야기 완성된 걸로 있어?”
  “너한테 완성본 없어?”
  “응. 내 건 도중에 끝나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러니까… 파본이 계단을 다 올라가서 만나서 질문을…….”
  “아, 거기인가. 뭐, 알았어. 메일로 보내줄까?”
  황급히 대답한다.
  “아니. 저….”
  컴퓨터 화면은 어느새 검은 바탕에 윈도우 로고가 떠있는 화면보호기로 전환되어 있다. 벽을 타고 기어가는 붉은 개미에 시선을 준다. 덤으로 파리 한 마리가 창틀을 기고 있다. 귀에 울리는 유리 깨지는 소리를 떨쳐내듯이 말을 내뱉는다.
  “지금 만날 수 있을까?”
  “응? 뭐…. 그러지. 그럼…”
  대강 시내 편의점 한 곳에서 약속을 정한다. 앞으로 30분. 소녀는 화장실에 가 거울 앞에서 얼굴에 묻어 있는 잠을 대강 씻는다. 어째서 씻어야 하는지 같은 건 따지지 않는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자고 일어나면 얼굴을 씻으라고 배웠을 뿐이다.
  소녀에게 선명한 기억은 무언가의 일로 혼날 때뿐이다. 무언가가 나머지 투명 수채화 같은 즐거운 기억들을 죄다 불투명한 색으로 덧칠한 건지도 모른다. 세수를 하며 머리카락이 목 뒤에 조금 있는 화상 흉터를 가리도록 잘 정리한다. 오른쪽 귀 뒤쪽에 있는 꿰맨 자국도 한번 만져 본다. 소녀가 어렸을 때, 집 부엌에서 작은 불이 나서 이 상처를 입었을 때의 기억도 약간의 통증과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혼내는 어머니의 모습뿐이다.
  소녀는 검은 구두를 골라 신고 집 밖으로 나온다.
  소녀는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벽에 붙어있는 벌레 시체 자국들의 숫자를 센다. 모기 한 마리. 파리 한 마리. 파리는 좀 드문 일이다. 모기 두 마리. 하루살이 한 마리. 모기 세 마리. 하루살이 두 마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룩들도 많다. 아무래도 모기가 가장 많은 것 같다. 녹색으로 불이 들어와 있는 비상구 표시가 보인다. 그 안에서 하얀 사람이 뛰쳐나오려고 하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그 안에 정지해 있을 뿐이다.
  생태계의 균형을 운운하며 벌레들을 다 죽이면 안 된다는 사람들도 모기들은 다 죽이고 싶어 하겠지. 하지만 모기약을 팔기 위해서라도 모기들을 완전히 박멸하는 일은 없을지 몰라.
  소녀는 계속 걸어간다. 문득 걸음을 멈춘다. 바닥에는 얇고 반투명한 날개가 구겨져 있다. 주름 잡힌 동체에는 별 손상은 없어 보인다. 여름이면 창틀에 쌓인 어제, 하루살이들처럼, 일상적으로 흩어져 있는 죽음들 중 하나를 바라본다. 조금 전에 벽에 덕지덕지 도배되어있는 그런 죽음들을 일일이 세면서 지나쳐왔듯이. 적자생존. 인형이 살아남는 세상.
  잠자리들을 멸종시키지 않는 목적은 아이들에게 붙잡히게 하기 위한 걸까.
  소녀는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옷을 입고 골목길을 지나간다. 갑자기 소녀는 걸음을 멈췄다. 머리 위로 무언가 동물 같은 것이 휙 지나가는 듯한 기척. 소녀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본다. 하얀 달이 슬쩍, 구름 사이에서 턱 끝을 내밀었다. 소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큰길로 나오자 갑자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소녀는 조금씩 젖어간다. 간판들과 상호들이 소녀 곁을 떠다닌다.  전봇대에는 전단지들이 간판을 대신하고 있다. 전파사, 철물점, 다방, 편의점, 병원, 미용실, 배관공, 동물병원……. 다시 걸음이 멈춘다. 25시. 사랑하는 동물. 가족 같은 동물―. 상투적인 선전문구가 유리벽에 스티커로 붙어있다.
  약간 걸음을 재촉하다보니 커다란 역 간판이 보인다. 마침 기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요란한 소리가 역 밖까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02한일월드컵 공의 모습 위에 글자가 빛난다. 역 광장을 간판불이 조금 어둡게 밝히고 있다. 간판에 박혀있는 공이 비에 가려서인지 희끄무레하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그 아래를 지나다닌다. 낮에는 조금은 더 선명했을 것이다. 검은 그림자 몇이 저 어둠 속에서 움직인다.
  소녀는 사거리에서 하얀 줄무늬 횡단보도를 건너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검은 아스팔트는 찻길인 것 같아서 하얀 선만 밟는다.
  옷가게, 병원, 이런 저런 간판불빛들이 희미하게 지나간다. 시내라면 여러 번 돌아다녀봐서 머리보다 걸음이 알고 있다. 이쯤, 하면서 고개를 들면 알고 있는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앞에 노란 간판이 보인다. 비는 그쳐가고 있다.
  편의점에 들어서도 종업원은 특별히 인사를 하지 않는다. 편의점 안에서는 이미 그 사람이 와있다. 여전히 긴소매 옷을 고집하고 있는 듯하다. 대학에 가더니 기르기 시작한 머리는 이제 어깨까지 온다. 그런 느낌이 소녀에겐 약간 낯설다. 그 사람은 컵라면을 한 손에 들고서 인사를 해온다. 소녀도 멋쩍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저런, 다 젖었네.”
  “선배도….”
  “뭐, 나야 항상 그렇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갑자기 보자고 하구.”
  그 사람은 대뜸 그렇게 묻는다.
  “그냥 좀….”
  소녀는 진열대에서 삼각김밥을 하나 꺼내서 돈을 치른다. 편의점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는 것이 어딘지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 점원은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선배.”
  “응?”
  “전에 말한 그 친구 분은 어떻게 하고 있어? 그, 디자인과에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한다던가.”
  “뭐, 아직도 이래저래 불만이 가득하지. 자기가 왜 구걸을 해야 하냐면서.”
  “에에.”
  “구걸이라. 결국 회사 입장에서 사원이란 것도 일종의 상품 아니겠어. 채용해서 잘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니까. 카탈로그랄까 광고랄까. 그런 게 입사원서나 이력서의 성격이겠지.”
  컵라면에 나무젓가락을 담그며 말을 잇는다.
  “소비자는 상품을 소비하지만 가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소비자의 구매력이야말로 역시 일종의 상품일지도 모르겠네.”
  “…….”
  소녀는 잠깐 동안 말없이 삼각김밥을 먹는다. 참치마요네즈맛이 부드럽게 혀에 닿는다. 비에 젖은 옷이 몸에 차갑게 달라붙는다.
  “선배는, 대학 들어갈 때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썼어?”
  “자기소개서라…. 너도 그럴 때인가 그러고 보니.”
  후루룩. 라면을 입안에 넣는 소리가 잠깐 말소리를 가로챈다.
  소녀는 그 사람에게 어중간한 감정을 품고 있다. 존경하는 언니라는 느낌일 수도 있고, 동류의식일 수도 있다. 다만 소녀에게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삼순이라고 부르지 않는 몇 안 되는 또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소녀는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 같은 것을 별명으로 삼고 기뻐할 생각은 없다. 소녀는 단순히 김희진이라는 이름 때문에 김삼순으로 불리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그 사람과는 고등학교 때 같은 동아리에 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인기드라마 때문에 소녀는 보통 삼순이로 불리고 있었다. 외모도 닮았다고 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대학에 들어가면 성형수술이라도 하자고 하지만 소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자기소개서라. 뭐, 자존심과의 타협이었지.”
  잠깐 삼각김밥을 먹으며 옛날 생각을 하던 소녀는 오른쪽 입술 끝만을 밀어올리고 말하는 그 얼굴로 시선을 돌린다.
  “대학 입맛에 맞는 사람처럼 비쳐지게 쓸 것이냐, 아니면 내가 쓰고 싶은 대로만 쓸 것이냐. 결국 뭣도 아닌 어중간한 자기소개서를 만들어냈지만. 하긴 애초에 대학을 간 것 자체가 자존심과의 타협이었으니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는 협박에 굴한 걸까, 난.”
  표정은 더욱 비대칭적으로 일그러진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든다.
  “선배의 그 이야기 자체가 자기소개는 될 수 없을까.”
  그 사람은 그 말을 듣더니 놀라는 기색도 없이 소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 대학교에서는 보통 부정적인 자기소개서는 싫어한다고 하던데. 뭐, 다 그런 것이려나.”
  “역시 상품 소개, 란 건가…. 그럼, 대체 우리는…”
  그 사람은 응, 하며 소녀의 말을 자른다. 고개를 끄덕이고 라면을 마저 삼킨다.
  “그래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엔 말야. 대학을 나오고서도 항상 주변에는 고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나름대로 자존심인 거겠지, 그게. 아직 취직도 못했지만 그래도 계속 서류에는 고졸이라고 내고 있어. 그게 공문서 위조로 걸릴 일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
  “그게 언제까지 갈진 모르겠지만. 난 영원히, 굶어 죽더라도,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 그 사람도, 그리고…”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소녀를 보지 않는다. 눈앞의 허공을 바라보는 가는 눈매 속에서, 컵라면을 들고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있는 모습에서 조금 어두운 냄새가 난다. 그 사람은 이제 혼잣말을 하고 있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
  소녀는 그 사람의 목이 길다는 걸 새삼 느낀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 그 사람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예전에도 종종 들었다는 게 기억난다. 소녀는 무심코 자신의 가느다란 목에 손을 가져간다.
  편의점의 에어컨 공기가 춥게 느껴진다. 비에 젖은 몸이 살짝 떨린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옷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비는 그쳐 있다. 소녀는 거리를 걸어오며 가로등과 간판들에 의지해서 글을 읽는다.



  노인은 그것을 집어 들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더니 어느 한 층에서 멈췄다.
  그 층에는 커다란 방 하나만 있었다. 커다란 창문이 있었고 의자와 책상이 하나씩 창가에 놓여 있었다. 노인은 그것을 책상 위에 두고는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다.
  완벽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것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결점이 없는 것이겠죠.
  보통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러나 결점이 없는 것은 결점이란 요소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완벽하지 않은 것 아닌가?
  생선뼈다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완벽한 체제를 위해서는 파본과 같은 완전하지 못한 요소가 필요하지. 그래, 자네는 자네 친구인 그 생선뼈다귀처럼, 우리의 소비자들에게는, 체제에는 별 쓸모도 없는 물건이야. 그러나 그런 쓸모없는 물건, 잘못된 물건이 있어야만 체제는 완벽해지는 거라네. 고유의 가치 같은 게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건 우리가 알 바 아냐. 자네는 무가치한 것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만들어진 거야.
  그것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우리는 일부러 완벽한 체제에 반(反)하는 존재들을 만들지. 아주 조금. 그것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할지니. 완벽이란 모순된 것이지.
  그것은 조용히 노인의 깡마른 얼굴을 바라봤다. 뱃살과는 대조적인 얼굴을.
  창문 하나가 갑자기 검게 변했다. TV로 변한 창문은 1층 인쇄소의 한 구석인 듯 보이는 곳을 비췄다. 그곳에서는 기계들이 종이를 삐뚤빼뚤하게 자르고, 책의 한 면을 찍지 않고, 글자를 뭉개가며 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래, 자네는 일부러 파본으로 만들어진 거야.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대량으로 똑같은 책을 찍어내지. 그리고 거기에 약간의 변화를 줘. 일단 요즘은 보통 좋은 지질에 화려한 표지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자네처럼 수수하고 옛날 느낌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지. 그건 단지 취향을 맞춘다는 걸까. 그것만으로는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아. 파본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별로 없지만, 그런 좋아하지 않는 물건도 있어야 다양성이 있는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은 생각을 하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답했다. TV 속에서는 변함없이 파본이 생산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렇군요.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밖으로 나갈 텐가? 자네 같은 무가치한 책은 이 출판사에 있어선 소용이 없으니. 아, 이젠 걸어갈 수 없겠군…. 그럼, 자, 안녕히 가게.
  노인은 그것을 창밖으로 던졌다.
  오래간만에 즐거웠다네.
  노인의 작별인사를 뒤로 하고 그것은 비에 젖으며 떨어져 내렸다. 오랜 시간을 낙하해서 그것은 땅에 닿았다. 그것은 이미 죽은 책이었기 때문에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종이가 비에 점점 더 젖어갔다. 싸구려 종이에서 잉크가 번져갔다. 생선뼈다귀는 떨어지면서 어딘가로 튀어나갔다. 검은 물이 흘러내렸다.
  비에 불은 종이가 자동차 바퀴에 산산이 찢어졌다.



  소녀는 글을 다 읽고 씁쓸하고도 묘한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잊고 있던 귓가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현기증은 점점 심해진다. 손가락의 상처가 아파온다.
  비를 맞았기 때문인 걸까.
  어두운 골목길.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문득 그 사람이 해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래, 요즘 도시전설이랄까. 그런 괴담이 유행하는 것 같더라.
  너무나도 현대적인 괴담. 요약하자면 하나는,
  요즘 주택가에서 자주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아이가 울고 있는 것처럼 가장해서, 아이의 울음소리에 무슨 일이 있나 나오는 사람들을 잡아가려고 쳐놓은 함정이다. 이 시대는 그런 사람들을 제거해가며 이루어진 것이다. 그 증거로 목이 쉬도록 온종일 짖던 동네 개들은 하나하나 없어지고 있다. 개들이 고양이를 쫓아내기 때문이다. 어둠을 짖는 개들은 하나하나 잡혀나가고, 갇혀나가고, 죽어나가고 있다.
  라는 것이다.
  소녀는 몸을 떨게 만드는 오한을, 서늘한 느낌을 애써 잠재워보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건 괴담이라기보다는….
  다른 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도시의 빌딩 숲에 사는 현대판 모글리가 있다는 소문. 마치 도둑고양이나 떠돌이 개처럼 먹을 것을 구하며,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도시에서 야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아의 이야기.
  이 이야기라면 소녀도 예전에 친구들에게서 들어봤다.
  슬프다고 할까, 무섭다고 할까. 진열장 속에서 꿈꾸는 낭만일까.
  갑자기 소녀는 걸음을 멈췄다. 머리 위로 무언가 동물 같은 것이 휙 지나가는 듯한 기척. 소녀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본다. 하얀 달이 슬쩍, 구름 사이에서 턱 끝을 내밀었다. 소녀는 비를 맞은 뒤 몸이 안 좋기 때문인지 심하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다.
  그 사람은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한 걸까.
  소녀는 다시 밤길을 걸어간다. 아파트가 보인다. 쓰레기장이 보인다. 달이 제 모습을 다 드러낸다.
  그리고 쓰레기장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그림자는 쓰레기 속을 뒤적거린다. 소녀는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가슴을 붙잡고 애써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 한다.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그걸 바라보고 있다. 소녀는 자신이 얼마나 그렇게 서있었는지 휴대전화시계로 시간을 확인해보고 싶지만 달빛과 그림자는 소녀를 굳어진 그대로 못박아둔다.
  그림자는 한참을 부스럭거린다. 마치 느릿느릿 춤을 추듯이 쓰레기봉투 사이를 돌아다닌다. 건물 그림자에 가렸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그런 움직임이 반복된다. 그림자는 때론 어딘가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론 주위를 살펴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달이 구름 사이로 숨었다. 갑자기 그림자가 사라졌다.
  소녀는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한참 후에야 주위를 살피고서 천천히 걸음을 옮겨본다. 가슴은 계속 두근거리고 있다. 두근거리는 것에 비례하여 현기증이 심해진다. 걸음도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 그림자가 소녀가 상상 속에서 본 것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있던 것인지 소녀는 알 수 없다. 쓰레기장의 쓰레기봉투들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지만 그것이 어떤 짐승의 소행인지는 알 수 없다. 쓰레기들 속에서, 소녀는 자신이 버렸던 접시 조각들을 발견하고는 허리를 굽힌다. 그 조각들을 집어 올리는 손은 두근거리는 가슴에 맞추어 떨린다.
  소녀는 그 조각 몇을 들고 집에 돌아온다. 아무도 없는 집에 초인종을 눌러본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들끓는 이마 속에서 단어들이 흘러간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바닥에 조각들을 던져 놓는다. 작게 울리는 소리. 가슴은 계속 두근거리고 있다.
  소녀는 자신의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해본다. 잘 되지 않는다. 소녀가 초경을 하고 까닭모를 수치심을 느낄 때보다 더 두근거리는 가슴. 중학교 때 짝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었을 때보다 더 두근거리는 가슴. 어질어질한 머리. 아픈 손가락. 차가운 몸. 큰 옷.
  소녀는 가만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접시조각 중 손바닥만한 것 하나를 들어 벽에 던진다.  조각은 더 작은 조각들로 부서진다. 소녀는 접시 조각들을 부순다. 숨이 가빠지려는 걸 애써 억누르며 서두르거나 하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부순다. 건조대에 있던 접시도 두세 개 꺼내서 깨뜨린다. 접시 조각들이 사방으로 튄다. 접시에 그려져 있던 꽃들은 소녀의 손길에 다 꺾여버린다. 갑자기 기억난 듯 문 밖으로 나가서 비상구 표시도 발로 차서 부순다. 그 안의 사람이 그제야 뛰쳐나온다. 다시 방에 돌아와서 접시를 부순다.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그렇게 한참 유리를 잘게, 잘게 조각낸다.
  길게 숨을 내쉰다.
  지친 소녀는 방에 들어가서 피가 흐르는 손으로 그 사람의 글을 컴퓨터에 타이핑하기 시작한다. 소녀는 그 결말을 고쳐버릴 생각이다.
  소녀는 오늘 그 사람이 한 마지막 말을 상기하며 자판을 두들긴다.
  “한 시인이 이렇게 말했지.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노인은 그것을 창밖으로 던졌다.
  그러나 그것은 떨어지던 도중에 아래층 창틀에 걸려 건물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 방에는 난로가 피워져 있었다. 그것은 생선뼈다귀에게 무어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생선뼈다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약간의 조각을 비틀어 난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비록 비에 조금 젖은 종이였지만 불은 잘 붙었다. 그것은 불이 붙은 채로 난로 밖으로 굴러 나왔다.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출판사는 며칠 동안 불탔다.



  소녀는 자기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아 방바닥에 눕는다. 붉은 개미 몇 마리가 소녀의 팔다리로 기어오르는 간지러운 느낌을 어렴풋이 느낀다.
  예, 선배.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에요.
  한참 뒤, 소녀의 부모님이 들어와서 온통 흩어져있는 접시 조각들을 보고 뭐라고 외치는 것이 들려온다. 하지만 소녀는 또렷하지 못한 의식으로, 다만 귀울음이 들려오지 않는 것에 안도하며 계속 누워있을 뿐이다. 소녀에게는 역시 큰 옷을 입고서, 쓰러져있을 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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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08. 1. 8. 01:26

등장인물 두 명짜리 소설... 이라.

자살시도를 안 해보고 썼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해볼 수도 없잖아요...;;





날기를 잊지 않은 거북이에 부침

 

 


“그럴까?”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좋은 카운슬러인지는 의문이다.

“사랑, 이라… 글쎄,”

가끔은 어느 쪽이 상담을 해주는 쪽인지 모르겠다. 그는 마른 사람이었다.

“너희와는 좀 세대가 안 맞겠지만 말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사랑이 사람을 외롭게 만든단 말이 있는데 말야……”

몇 번 만나면서 알았다. 그는 묘한 인용을 즐겼다. 그는 마른 사람이었다. 유일하게 풍성하다는 느낌을 주는 곳은 긴 머리카락뿐이었다.

“나도 자살은, 실제로 해본 적은 없거든? 그러니까,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해.”

자살을 부추기는 것 같은 말이었다. 아무래도 카운슬러라는 입장에서 하기엔 부적당한 말이 아닌가 생각해보지만,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

그는 이제 묵묵히 앉아있었다. 붉은 석양에 물든 표정이었다. 역시, 그는 좀 지나치게 말라있다고 생각했다.

 

 


나 는 옥상이 오렌지빛 색조에서 어두운 남색 혹은 검은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옥상과 함께 오렌지빛에서 어둠으로 변해 가는 공기 속에 가만히 잠겨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황혼 무렵과는 달리 이젠 밤이라는, 시간이 영원토록 멈춰있는 듯한 느낌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흘러가는 구름도 없는 맑은 하늘은 더욱 그런 정체감을 느끼게 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자살 중에는 투신자살이 많다고 한다. 왜일까. 의문이 일지만 내가 일일이 알아보러 다닐 수도 없고, 무엇보다 그럴 의욕이 없다. 습관적인 호기심에 의문이 떠오르지만 그 의문의 답을 찾고자 하는 의욕은 전혀 일지 않아서 의문은 물거품처럼 그저 피어올라 의식의 수면에서 팡, 하고 터지며 아무 것도 남기지 못했다. 옥상 입구 쪽을 돌아보았다. 문득 생각해본다. 지구에 묻혀있는 화석연료라든가, 여러 지하자원들은 나날이 소비되어 가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인류가 쓸, 어떤 에너지도 남지 않는 건 아닐까.

 

 


오늘도 대강은 어제 같았다. 두서없는 상담이 이어졌다. 그럭저럭, 조금은 되는 대로 대답했다. 날이 맑았고 바람이 창문으로 불어 들어왔다. 주로 말하는 건 그 사람, 의사 쪽이었다.

“아아, 나도 남자친구가 있는데 말야, 요즘은 날 어쩐지. 데이트하자해도 잘 안 들어주고…”

오늘따라 푸념이 길었다. 사는 게 힘든 모양이다. 사람들은 다 사는 걸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아직 푸념할 힘이라도 남아있다는 건 나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창 밖에선 연못가에 심어진 키 큰 풀들이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었다.

푸 념이건 뭐건 이렇게 찾아와 주는 게 내심 싫지 않다. 이런 자그마한 대화도 없으면 질식해버릴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그런 류 ― 무료와 권태의 공기가 병실 안에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느낌이 싫다. 무섭다. 왜 독방을 준건지 사정은 잘 모른다. 아마 부모님이 정하신 거겠지만, 그 이유는 역시 모르겠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조금 차가우시다고, 생각한다.

“역시, 따분한 이야기인가?”

“아뇨, 좋아요.”

최소한 권태보다는.

“그런가. 흐음, 평소 지내는 건 더 따분한가보구나. 그럼 말야, 책이라도 읽어보는 게 어때?”

의사는 날카롭기도 했다. 가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정곡을 찌르곤 했다.

책, 책이라.

 

 


이 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도 별로 느껴지는 게 없었고, 다만 그 아이를 생각할 때에만 구토감 비슷한 게 가슴으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역겨움 같은 게 아니라 다만, 차오르는 슬픔인지 절망인지 외롬인지 모를 감정이 너무나도 가슴을 꽉 채워버려서 목구멍을 넘어 입 밖으로 오열이 되어 튀어나올 듯하게 되어 버리는 탓에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매번 태연한 척 있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정말 울고 싶을 때에도 울지 못하고 멍하니 있곤 한다. 그건 어릴 때부터 들어온 질질 짜지 말라는 주위 어른들의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해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속은 뒤엉켜버린다. 기분이 나쁠 땐 위염도 자주 일으키곤 했던 걸 생각해보면, 내 몸은 내 정신상태에 잘 반응하는 체질이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에서 달을 찾아보았으나, 구름이 낀 것인지 그믐날인 것인지 달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쌀쌀한 공기 속에 꼼짝 않고 있느라 굳어버린 몸을 일으켜 난간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명절에 큰집에서 술을 몇 잔 마셔봤을 때처럼 조금 어지러웠고,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머릿속, 한 부분이 마비된 것 같다. 난간에 이르러서는 다시 문 쪽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걷는 데에, 그리고 이렇게 중얼중얼 생각하는 데에 쓰는 힘, 어쩌면 그것이 내게 남아있는, 마지막인 것이다.

 

 


오늘은 의사가 선물을 들고 왔다. 향기 풀, 허브 화분이었다.

“라벤더야. 저번에 안 좋은 꿈을 꾼다고 했었지? 라벤더 향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한 번 가져와 봤지. 잘 기르라고. 그럼, 자, 오늘도 해볼까.”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악몽을 꾼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의사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환자는 침대에 반쯤 앉아있었다.

“말 그대로, 그저 악몽이에요.”

얼 마 전부터였다. 의사는 카운슬러 같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와 내가 처음 만난 건 5월이었다. 얼마 전은 6월이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의사도 평범하다거나, 상식적이라거나, 그런 말이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고분고분하고 성실한 환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았다.

“뛰어내리던 그 날의 꿈이니까, 아무래도, 악몽이겠죠?”

의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난 간혹 그가 정말 제대로 상담을 하려고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제대로 상담을 해줄 생각이 없다고 한들 어떤가. 어찌되었건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주면 좋은 것이다. 상담보다는 말벗이 되어주는 것이 내겐 어쩌면 더 좋은 것이다. 모두가 날 비난하고, 또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예전에 있었다. 그런 느낌조차 어느 샌가 익숙해져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항상 위태위태했다. 그러니, 그런 것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꿋꿋할 수 없었다.

엎어놓은 소설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날개.

 

 


손 으로 잡은 난간은 차갑다. 내가 아무리 꽉 붙잡아 봐도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시멘트는 차갑다. 내 손이 아무리 따뜻해도, 난간은 차갑다. 차가운 난간 위에 서서 생각한다. 날지 못해서 죽는 사람들은 죽기 직전 몇 초라도 날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살 방법엔 투신자살이 많은 것이다. 정답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되니까, 그거면 됐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왜 꼭 한국에 투신자살이 많은 걸까? 그야 한국에는 날지 못해서 죽는 거북이들이 많으니까 그런 것이다. 아래층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아마 불 켜진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거짓말과 진실이 적당히 뒤섞인, 다른 사람이 정해준 몇 권의 책에 매달려서 혹은 그 책을 또 늘여 써놓은 것에 매달려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소리 없이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다들 거북이다. 하지만 날 것을 자기도 모르는 새에 포기해버린 거북이다. 꾸준히 달려서 토끼를 능가한다는 신화에 속아 난다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고, 경주로에 매여서 열심히 기어가는 거북이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도, 하늘을 나는 것도, 자신의 본분도, 그리고 이상도 잊고, 이 획일적인 지상의 경주로에 매여 언제쯤 경주에서 이길까, 하는 거북이다.

 

 


“자살미수는 자살 자체와는 다르게 취급한다고 하지만, 글쎄 자살미수도 결국 자살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자기 멋대로 갑자기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살미수엔 세 가지 유형이 있다지. 정말 자살할 생각이 없이 시위처럼 하는 경우.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중간하게 한 경우. 정말 죽으려고 했다가 행인지 불행인지 살아난 경우. 그래서, 넌, 어느 쪽?”

“글쎄요.”

모르겠다. 겨우 세 가지 보기지만 자신이 없었다. 다섯 개 중 하나도 잘 찍었었는데, 지금은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망설여진다.

“음. 5층에서 뛰어내렸으니, 충분히 치명적이라고 생각해. 이 경우, 그러니까 세 번째 아닐까.”

자문자답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럴 바에야 내게 물어본 이유는 뭘까? 바람에 풀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파리 한 마리가 창틀을 기고 있었다.

“무거운 이야긴 이만하자, 지겨워 보이네. 그래서, 네 꿈 이야기나 계속 들어볼까.”

지루해하는 걸 알아차리곤 화제를 돌린다.

“음, 그러니까. 그 날은, 수업이 끝나고부터 쭉 옥상 위에 있었어요. 가방이고 유서고, 다 들고서.”

어 느 날인가는 선생님과 싸웠었다. 그 선생님이 뭔가 애들에 대해 자기 멋대로 말했었고, 나는 그런 사소한 문제에도 기를 쓰고 따졌었다. 그 때, 나는 학교의 바람을 학생들의 의사인 양 위장하지 말라고 악을 썼었다. 사람들은 내가 싸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트집을 잡는 것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것이 내게는 무척 신경에 거슬렸을 뿐이다.

“멍하니 있다보니 해가 졌고 밤이 되고 야자도 시작되었고”

또 어느 날인가는 학생회장과 싸웠었다. 나는 학교의 개에 지나지 않는 학생회 따윈 차라리 없어지라고 말했다. 내 항의에는 응응, 하고 맞장구치면서, 정작 학교에는, 선생님들 앞에선 아무 말도 못할 바에는, 대체 왜 있느냐고 몰아붙였었다. 퇴학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항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그렇게 물었다.

“계속 멍하니 있다가 하늘을 한 번 보고”

날개. 날개는 하늘을 날기 위한 것이다. 넓은 하늘을 혼자 나는 것은 고독하겠지. 여하간에 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또 할 수만 있다면 날고 싶기도 했었다. 되도록이면, 함께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지만,

“뛰어내렸었죠.”

확실한 건, 날기 전에도 외로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상에서 고독할지언정 차라리 날고 싶었다. 나 따위와 함께 날아줄 사람 같은 건 없다는 것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날고 싶었다. 혹은, 날 수 없었다. 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숨 을 들이마시고 밥을 먹는다. 내 세포들은 태연히 호흡을 해낸다. 심장이 뛰고 피는 돈다. 하지만 내 안의 의욕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릴 때 이미 다 죽었다. 아니, 사실은 그 전부터 거의 다 사라져 있었다. 남은 건 이산화탄소와 물과 같은 종류의, 특별한 냄새도 색도 맛도 없는 희미한 감정들뿐이었다. 더 이상 태울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 언젠가는, 지구엔 자원이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우주도 산일(散逸)하여 열사(熱死)하는 것이다.

“꿈에서도, 비슷해요. 시작은 그 날, 옥상 문을 열면서부터죠. 뛰어내리면 이렇게 죽지도 못할 거란 걸, 저는 모르는 채죠. 전 그 날에 멈춰 있는 건지도 몰라요. 악몽이라지만, 사실은 별 거 없어요.”

잠시 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나로선 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한다. 그러다가 의사는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그런데 말야. 좀 잘 먹어둬. 그렇게 말라서야.”

걱정해주는 말에 힘없이 웃어 보이며 인사를 대신한다. 어느새 꽤 많이 자란 머리카락이 눈을 간질이는 게 조금 성가시게 느껴진다.

 

 


끓 어오르고 있다는 건―, 잔잔한 물 속에 용해되어있던 기체들이 하나하나 나오고 어쩌면 물 자체도 안에서부터 증발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물거품은 물의 부력으로 떠오를 수 있지만 표면까지 와선 허무하게 터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은, 공기보다는 무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펑. 나는 물거품과 같은 류이고, 지금은 터져 버리려고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거품이 터져 버리면 그 껍질을 이루고 있는 물은 다시 물로 돌아와 버리고 속에 있는 공기만 날아가 버린다. 21g. 물거품에서 무엇이 태어난 때는 하늘의 피와 정액이 섞인 바다 물거품 같은 특별한 것에서 뿐이었고, 평범한 물거품의 운명은, 그것뿐이다. 거의 터지려는 순간이라 그런지 안의 공기들이 요동치는 것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고 기억들이 머리 속을 떠다녔다. 더욱 가슴이 답답하다.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가 있었고,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천진하게 교과서, 그래, 특히 도덕 교과서 같은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자라던 때가 있었고, 언제부터인가 애국심 같은 건 내팽개쳐버리고, 반항적이고 냉소적으로 사는 자신을 자각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고백 받았던 때가 있었고, 주위를 적으로 돌려가며 무모하게 싸우면서도 그 아이에게 기대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던 때가 있었고, 그 아이가 나에게서 떠나던 때가 있었다. 나는 좀더 가벼워야 했던 걸까? 무거운 데도 날겠다고 하는 내가, 그렇게 자꾸 자기에게 기대는 내가,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다시 문을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십몇 년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온 나, 이제는, 지쳤다. 그리고 지금.

 

 


“결국 말야, 이상이란 건 이룰 수 없는 걸지도 몰라.”

오자마자 불쑥 그런 소릴 한다.

“왜냐하면 이상이 이루어지면 현실이 되잖아. 그럼 이상주의자는 분명 또 다른 이상을 세울 거라고. 눈물을 마시는 새, 라는 소설에 나오는 말인데, 소망은 발전하는 거라잖아.”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휘청대는 모습이다. 마른 몸은 아무래도 위태로운 것이다.

“이상(理想)은 현실에 대한 이상(異常), 이라면 결국 현실과 이상은 대립하는 걸까. 하지만,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도 재미없잖아. 난, 좀더, 좀더 짊어지고 싶을 뿐인데 말이지.”

한 오페라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한다. 그리고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둘의 의미는, 다르다지만, 결국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둘 다 갈대다. 이런 이상한 소리를 남에게 지껄일 정도로, 인간은 갈대다. 휘청휘청.

“‘우리는 난장이라구요!’”

원래는 악을 써야 할 대사를,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이상한 속삭임이 되었다.

의사가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난 살짝 양 입 꼬리를 올려 보였다. 의사는 내 손의 책을 보았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의사도 웃었다.

“거북이나 난쟁이나….”

그 혼잣말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불안하다. 내가 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반복한다. 나는, 지금 여기, 이 병실에서, 나는.

의사는 들고 온 자그마한 오뚝이 인형을 밀면서 장난을 쳤다. 나무를 깎아 만든 오뚝이는 작은 여자애 모습이었다.

“허브는, 잘 기르고 있어?”

그 말에 창가를 돌아보았다.

“이런, 이런. 시들시들하잖아.”

내 눈길을 따라 창가를 본 의사가 말했다.

“물을, 안 줬으니까요.”

왜, 하고 물어온다.

“그건”

부모들은 항상 자기가 낳을 아이에게 태어나고 싶은지 물어보고 낳을 수 없다. 분명,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 와 저 녀석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저 녀석이 살고 싶다고 하면 물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처럼. 그러니 난 별수 없이, ― 그래 별수 없이 별수 없이― 내 멋대로 하겠다. 지금 난 저 녀석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저 녀석이, 살아 있는 게, 좋은지 안 좋은지, 알 수 없으니까.”

 

 


어 쩌면 투신자살이란 날고 싶은 것 뿐 아니라 시위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신자살이란 꽤나 화려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분신자살을 하지 않느냐, 하면 그 쪽은 더 아플 것 같으니까. 결국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을 죽는 일에서도 저울질 해보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니, 인간이란 교활한 생물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모든 생물이란 자기 살아가는 데 있어서 교활할 수밖에 없으리라. 죽는 일도 사실은 삶의 일부니까는. 뭐. 나는 내 죽음 또한 일종의 항의로 남아줬으면 했기 때문에 꽤 정성들여 작성한 장문(長文)의 유서 하나를 책가방 밑에 놔두고는 난간 위에 올라서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신문에는 또 뭐 잘못된 입시 교육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고교1학년 여학생 자살 어쩌구 하겠지만, 기사를 그렇게 쓰더라도 유서 정도는 제대로 전달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고 크고를 떠나서 시체는 꽤나 자극적이다. 사람들은 죽음이란 것에 쉽게 반응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삶을 긍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삶을 부정한다는 상황이 매우 중대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니까 유서란 것은 웬만한 사설 같은 것보다 감정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별 것 아닌 푸념도 유서라는 제목이 붙으면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찬다. 사실 나는 유서에 입시 스트레스니 하는 말은 써놓지 않았다. 다만, 두 발로 서있는 인간과 거북이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다 써놓았을 뿐이다. 지금, 나는 딱히 삶을 긍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삶을 긍정해야 하는지, 부정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것이 옳으리라. 다만 나는 지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살고 싶지도 않았고 또 내일이란 것도 두렵기만 했다. 날려고 하는 거북이는 날기를 포기하고 달리려는 거북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스템에서는 명백한 오류였다. 모두가 외면했고, 나는 오류였다. 하늘 이곳저곳으로 눈길을 기웃거려보아도 달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달빛으로 광합성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텐데. 뒤를 돌아본다. 옥상문은 내가 닫아놓은 그대로로, 여전히 열리지 않는다. 난간에서 싸늘한 감각이 올라온다. 내 체온은 쌀쌀한 밤공기 앞에 얼마나 미약한가. 다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이를 악 물고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불교 쪽엔가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눈을 떴다.

결국, 뛰어내려버렸다.

아침햇살이 창문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는, 뭔가 다른 결말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던 걸까?

“엄마….”

무심코 중얼거렸다. 머리 속에서 울리는 이상한 노이즈 같은 게 느껴졌다. 이명(耳鳴)일까.

“여.”

문이 열리면서 의사가 들어왔다.

“흐음, 잘 잤어? 자고 있을 줄 알고 놀래키려고 했는데 벌써 일어나 있네.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한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파리는 내가 눈을 돌릴 때마다 창틀이나 벽에 붙어있는 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보였는데, 볼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이상한 파리다. 벌레 날갯짓이 들리는 것 같았다. 성가셨다. 지금은, 상대할 기분이 아니다.

“뭐야. 어제는, 항상 무표정으로 있다가 처음으로 웃어서, 좀 나아진 줄 알았더니 오늘 보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잖아. 어쩐지, 전보다 더 기분 나빠 보이네. 그 뚱―한 표정. 혹시 몸이 안 좋아?”

그러고 보니, 어제는 웃기도 했던 것 같다.

“뭐, 됐어. 차차, 나아지겠지. 흐응, 아직도, 죽고 싶어?”

“그럴 힘도, 없는 것 같은데요.”

우울증 환자는 자살하기 쉽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자살을 시도할만한 에너지가 없다는 식의 생각은 착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우울증이 아니다. 하염없다. 이름하자면, 무력.

처 음,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는, 살았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죽으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그럴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절망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이런 게,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묘하게 신경질이 났다. 꿈이 생각났다. 이명이 들린다.

시끄러워. 그만 앵앵대.

“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하.

오늘 의사는 어쩐지 유쾌해 보였다. 기분 나빴다.

“음, 저기 말야. 그러고 보니 난 네 상담자 주제에 네 부모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부모? 파리가 움찔했다. 다리를 비비고 있었다.

“부모님은, 퇴원할 때까진 안 오실 걸요. 퇴원한 다음은, 글쎄 어쩌실까요? 오실지, 안 오실지.”

파리채를 휘둘러서 파리를 죽여 버리고 싶어졌다. 거슬려.

“처음, 입원했을 때, 한 번 찾아오셨어요. 그 때, 울면서 뺨을 한 대 때리시고는, 뭐라고 하시고는, 가버리셨어요. 그 뒤론, 안 오시네요.”

남의 일인 양 말한다. 날개가 부르르 떨렸다.

“아마 평소에도 학교에서 선생님과 싸웠다 어쨌다 일이 많았는데 자살 기도까지 하니까. 내놓으신 게 아닐까요.”

파리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고 느꼈다. 애써 침착하게 말한다. 세계가 가볍게 일렁거렸다. 아침 이슬은 연못가의 풀잎에 살짝 매달려서 곧 떨어질 것 같았다.

더 이상 묻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화가 났다.

“저기, 괜찮아?”

아무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안 보이려고 고개를 숙였다. 왜 손 닿는 곳에 파리채가 없는 걸까. 잠깐 무거운 정적. 머리 속에선 노이즈가 계속 들린다. 가슴속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구토감.

“이제, 이제 그만둬요….”

제발.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애초에,

“응?”

“어차피,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서 말 밖에 들어줄 수 없으면서. 그러면서…”

아무것도 아니면서.

신 경질. 이 사람은 나와 사실 별 관계도 아니면서 너무 가까이에 있다. 너무 많이 말했다. 의사와 환자란 입장. 외로움. 그리고, 비슷함. 그런 것들. 내가, 정말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던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결국 못한 말이 얼마나 많은데. 이 사람은 멋대로 아는 척, 결국 난 뛰어내려 버렸는데도, 아무도 날 잡지 않았는데도.

튀어나올 것 같다. 신경질이 났다. 이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도.

다시 무거운 공기.

창 밖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뒤섞인 말소리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 병문안이라도 온 걸까. 병원은 밖과 유리되어있다. 병실은 또 병실 밖의 병원과도 유리되어있다. 나의 방은 유리되어 있다. 이중으로 갇힌 속에서 내게 그나마 허락된 면회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 난, 상담 정도가 고작이지만, 말야. 그래도, 그래, 그래도,”

숙이고 있는 머리에 하얀 가운이 닿았다. 가운에서는 냄새가 났다. 깨끗이 빨고 나서 햇볕에 널어 말린 빨래 같은 냄새. 풀잎에 맺혀있던 이슬이 굴러서 연못에 똑하고 떨어지며 파문을 남겼다.

 

 


옥상에 올라와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멍하니 있다.

그 날처럼, 오렌지빛에서 어둠으로.

거북이, 아니 자라였나. 일단 거북이라고 하자. 난 그 이름이 더 좋으니까.

거북이가 새에게 발톱에 매달고 날게 해달라고 했다가 떨어진 이야기.

누군가는 독수리가 일부러 그랬다고도 하고, 실수로 떨어뜨렸다고도 한다.

배신이냐, 아니면 단순히 좌절이냐. 어느 쪽이건…, 그래 어느 쪽이건 날고자 하는 데에 겪은 좌절이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혹시 떨어진 거북이가 요행히 살았다면, 그 거북인, 다시, 날려고 했을까?

 

 


“술, 많이 드셨나요?”

“아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의사는 술을 먹고 저녁 무렵에 와선,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어제 아침엔 말야, 데이트 갈 예정이었는데 말야.”

혀는 꼬여있지 않았다. 그다지 많이 마신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그대로 차였어. 아우우. 이대로, 콱 죽어버릴까?”

이 사람은 말라 있다. 나만큼이나. 어쩌면, 술김에 저질러버릴 지도 모를 일이지.

“그런데, 뛰어내리면, 아프냐?”

“예.”

“역시, 그런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온 모습이 위태해 보였다. 내 어깨가 좁기 때문이기도 하다.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흔들흔들 거리는 머리. 작게 웃음이 나왔다.

“뭐가 웃기냐.”

팔을 휘휘거리는 술주정이 어린애가 떼쓰는 같다.

잠시 투덜거리며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밤바람이 묘하게 쌀쌀했다. 술을 깬다며 열어놓은 창문이었다.

“선생님은 참 돌팔이시네요. 환자 방에서 주정이나 부리고.”

“상관하지 마, 임마. 의사라고 사람 아니냐.”

잠시 티격태격. 확실히, 의사치고는 이상한 의사다. 젊기 때문일지도.

의사의 머리는 여전히 내 어깨에 얹어져 있었다. 어지러우니까, 라고 말했다. 나, 사실은 술 잘 못 마시거든. 자주 마시긴 하는데.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술을 마셔야만 하는 세상이란 건,

“그거 알아요? 나도 이상한 여자애지만, 선생님도 충분히 이상해요. 의사 같아 보이지를 않는다구요.”

“자주 들어. 그런 말.”

묘하게 당당하다. 어른이란, 그런 걸까. 이런 사람을 만난 것도, 묘한 인연일 것이다.

“참. 며칠 전에 말야. 웬 남자애가 네 병실 앞을 얼쩡거리더라.”

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화제를 바꾸며 운을 떼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의사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붙잡아서 이야기는 들었는데”

바람이 은근히 불어왔다. 창문을 닫고 싶어졌다.

“흐응. 뭐, 그랬어.”

그러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눈앞이 흔들거리는 걸 느꼈다. 살짝, 어깨에 닿아있는 의사의 긴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어봤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에선 비누 냄새와 술 냄새가 함께 풍기고 있었다.

 

 


다시 날려고 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 거북이, 그 거북이라면.

‘선생님은, 어떻게 살 수 있어요? 살 힘이 나요?’

‘글쎄, 살 힘이라. 어디선가 읽은 것도 같은데, 술에서 그런 힘이 난달까. 하하.’

의사와 언젠가 했던 이야기였다.

의사는 아침에도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뚝이를 살짝 밀어봤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 두 달 입원한 동안 선물을 두 개나 받았다. 오뚝이는 다시 일어섰다.

어쩌면, 대단한 거다.

난간 위에 앉아 봤다. 조금, 위태로웠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또박또박 혼잣말.

“괜. 찮. 아.”

하 늘을 봤다. 보름달이 떠있었다. 독수리는 일부러 떨어뜨린 건 아닐 거라고 믿는다. 그 아이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 그 사람 좋음이, 날 감당하지 못했을 뿐이다. 부모님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거다. 그래, 내가 삐뚤어진 거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오늘은 하늘에 보름달이 있다. 난간은 여전히 차갑다.

차가운 난간 탓에 검은 하늘에 달빛이 희뿌옇게 번졌다. 또 눈이 빨개지겠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너무 자주 우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아.”

두 손을 위로 뻗었다. 구름이 흘러갔다. 보름달은 계속 있었다. 난간에서 내려와서 빙글빙글. 백척간두에서, 진일보다. 엔트로피라는 좀 지루한 책도 말하지 있긴 하지 않은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할 날도 오긴 할 것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꽉 움켜쥔 난간이 차갑다.

집에 돌아가자.

내일은, 화분에 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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