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3.08.25 12:55


[특집| 2008년의 ‘촛불 청소년’]그들은 2013년에 다시 촛불을 들었을까




[특집| 2008년의 ‘촛불 청소년’]촛불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2008년의 촛불 청소년의 현재 2013년의 촛불 집회 참가 여부,

그 청소년들의 현재 상황 등을 추적한 기사.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조직적, 운동적 현상이 아니라 개인적 참여 경험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아, 두 번째 링크한 기사는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기사이니 참고 삼아 보시길.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11.03.13 22:22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시험을 위한 시험, 등수를 위한 시험, 없애버려!
-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 시험을 위해 존재하는 교육을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으로!
● 줄 세우기가 목적인 시험 대신,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진단’과 ‘평가’를!


여러분들은 일 년에 시험을 몇 번 치시나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모의고사, 수능까지. 그 외에도 때에 따라 쪽지시험을 치기도 하고, 어떤 학교는 매주 주간고사나 월말고사를 치기도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적게는 일 년에 네다섯 번, 많게는 일 년에 스무 번도 넘게 칩니다. 대체로 한 달에 두세 번은 시험을 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날짜만 기다리다보면 금세 졸업을 하는 게 학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일 년에도 골백번씩 치다보면 마치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중간기말고사와 ‘학교RPG’의 최종 스테이지인 ‘수능’을 치기 위해서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이건 시험에 나오니까 꼭 알아둬”라든지 “이 부분은 수능에서 거의 안 다루니까 알아서 읽어봐”라는 말씀을 하기도 하십니다. 시험에 나오니까 중요한 걸까요, 중요하니까 시험에 나오는 걸까요? 그 ‘중요하다는 것’은 뭘 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까요? 정말 헷갈리기 짝이 없습니다.

이처럼 지금의 교육은 마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라면을 끓이기 위해 냄비를 쓰는 게 아니라, 냄비를 쓰기 위해 라면을 끓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만약 교육의 목적과 수단의 앞뒤가 제대로 맞는 얘기가 되려고 한다면, 배운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처럼 점수를 더 받으려고 공부가 재미없는 것이나 골치아픈 것이 되게 만드는 시험은 아니어야 합니다. 시험을 안 쳐도, 점수를 매기지 않아도 공부를 하는 것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도록 동기부여가 돼야 합니다.

지금처럼 시험을 치기 위해서 교육을 한다면, 시험범위에 맞춰 진도에 쫓기게 되어 교사와 학생 모두가 피곤해지는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또 시험에 잘 나오는 부분은 교과서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밑줄을 치고, 읽으면서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쩌면 학생들에게 필요할 수도 있는 것일 텐데도 대충 훑어보고 지나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또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과 같이 단순히 성적을 내서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을 없애야 합니다. 그리고 일정부분만큼 배웠을 때에 그 부분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평가를 하고 난 다음에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다시 한 번 복습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이렇게만 된다면 지금처럼 성적 때문에 고민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거나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또 학생들이 시험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매우 슬픈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시험 하나 없앤다고 해서 모두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말하는 지금의 교육이 가진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등수를 매기기 위한 시험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서로 경쟁해야만 하고,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들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평준화한다든지,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제도들이 마련돼야 하겠지요. 이 부분들은 <실종신고>의 다른 요구를 소개한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시험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교육,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아요!



입시경쟁.학벌 없는 사회, 대학 안 가도 되는 세상!

-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 명문고, 명문대 가는 건 모두의 목표일 순 없다! 학교 줄세우기 NO! 획일적 입시경쟁 NO!

● 내가 나온 학교가 내 가치를 결정하진 않는다! 학벌 학력 차별 금지!

● 대학 안 나와도 모두가 하고픈 일을 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라!



"먼저 대학이나 가라." "대학 안 나오면 알바, 비정규직밖에 못한다." "명문대 가야 사람 대접 받는다." ……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안 들어본 고등학생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지금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대학 입시를 위해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학을 향한 경쟁은 계속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 좋은 중학교에 가야 합니다. 학창시절 12년 동안 강요받는 인생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버린', '학교에서 내놓은' 취급을 받곤 합니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상위권, 중상위권 학생들도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도 목포에서 한 고등학생 분이 분신 자살을 시도했는데 그 이유 역시 성적 등 스트레스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떤 대학에 갔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이 사회에서 학벌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학벌은 수입이 높은 직업을 가지는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나 사회 상류층에서 좋은 학벌은 이제 ‘기본’이 되어 그 이외에 쌓아야 할 스펙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SKY대학을 졸업해도 정말 작은 부분까지 남보다 위로 올라서야만 그나마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SKY대학을 안 나와도, 고졸이어도, 잘 먹고 살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고, 학생들은 이 불안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위해, 경쟁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입시경쟁에 바둥거려야 합니다.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사람은 남을 생각하는 사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학벌을 가지고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 보기 좋은 것, 부모가 시키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만 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큰 일이 나고 인생을 망칠 것처럼 가르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12년을 단 한 가지의 기준으로 단 하루 만에 수능이라는 방법으로 평가당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창시절 내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 남보다 위에 설 궁리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교육은 학생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자발적이고 흥미 있는 것이 아닌, 불안에 밀려 꾸역꾸역 해야 하는 강제 노역으로 바뀝니다.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학벌이 없는 사람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는 사회의 풍조를 바꾸려면 대학을 획일적으로 줄세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꿈은 ‘좋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인생의 한 선택지일 뿐 절대적인 것일 수는 없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 학생들은 누구나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은 서열 없이 평준화해서 어느 대학이라도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존중받고 원하는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모든 사람들이 학벌과 상관없이 노력하기만 하면 생활하기에 알맞은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한국처럼 대학진학율이 높은 사회, '대학 나오는 게 당연한'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모든 중고등학생들의 목표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인 것처럼 교육하는 나라도 별로 없습니다. -_-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대학을 안 나온 사람들도 충분히 사람답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나마 한국과 비슷하다는 미국이나 일본도, 대학에 진학할 뜻이 있는 학생들 외에 다수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목매달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안 나와도 된다고, 자기가 원하는 삶의 방식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학벌과 학력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학생들이 먼저 오로지 좋은 학벌만을 향해 달리기를 강요하는 지금의 교육제도를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한테 돈 좀 내놔!!

-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 화장실에 온수는 좀 나오게! 학교 시설 개선, 좀 더 쾌적한 학교를!

● 학급당 학생 수 줄이고 교직원을 더 뽑아서 좀 더 나은 교육을!

●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실현, 나아가 미친 대학 등록금도 무상으로 ㄱㄱ!


학교 다니면서 "우리 학교 시설 너무 좋다~"라고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물론 진짜로 시설도 좋고 번쩍번쩍한 학교도 있지만 그런 학교는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냉난방도 제대로 안 해주는 학교, 따뜻한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학교, 탈의실이나 동아리실도 없는 학교, 운동장도 작거나 없는 학교, 급식이 형편없는 학교, 화장실이 낡거나 부족한 학교가 태반입니다. 심지어 밖에서 보이는 운동장이랑 외관은 엄청 좋아 보이게 꾸며놨는데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학교도 있습니다.

시설뿐만이 아닙니다. 별로 넓지도 않은 한 반에 30~40명의 학생들이 같이 생활해야 하고, 교사들의 수도 학생들과 진지하게 교류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 이런 시설, 이런 교육환경의 학교에 다니는 데 교재비, 교복비, 급식비 해서 얼마나 돈이 많이 드나요? 고등학교는 또 등록금을 1년에 4번, ·40만원, 50만원씩 내야 합니다. 헐 -_-

왜 그런지 이유는 뻔합니다. 한국 정부가 교육에 쓰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예산을 GDP(국내총생산. 그러니까 한국 안에서 1년 동안 총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들이느냐 하는 겁니다. 한국의 경제규모를 알려주는 수치입니다.)의 6%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예산은 2009년에 GDP의 5.0% → 2011년 4.55%로, 늘어나기는커녕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 수가 부족하고 시설도 안 좋은데, 정부에서는 돈 아낀다고 교사 채용도 거의 안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핀란드,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의 선진국들은 이미 학교 시설 등이 대체로 갖춰져 있어서 시설 마련에 돈을 크게 쓸 일이 없는데도 GDP 대비 5.5% 정도의 교육예산을 매년 쓰고 있습니다. 학교도 교실도 더 늘려야 하는 한국은 당연히 그보다 돈을 더 써야겠죠?)


어른들은 맨날 우리에게 너희는 미래의 새싹이고 잘 자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들이는 노력을 보면 그런 건 다 거짓말이거나, 우리들을 공부시키려는 낚시 같습니다. 우리를 진짜로 생각해주고 있다면 당연히 교육에 돈을 좀 더 들여야 하지 않나요? 4대강 삽질할 돈, 좀만 빼서 학교 화장실에 따뜻한 물 좀 나오게 하고 급식 질 좋게 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부동산 투기하는 어른들한테 세금을 좀 더 걷어서라도 고등학교 등록금을 초등학교, 중학교처럼 공짜로 하고, 미친 듯이 높은 대학 등록금도 낮춰서 공짜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 선진국으로 유명한 핀란드는 한 반 20명쯤 학생들과 2명의 교사가 수업을 운영하곤 한다고 합니다.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한 반 20명에 교사 1명, 아니면 한 반 30명에 교사 2명 정도는 되어야 좀 나은 교육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돈이 없다는 건 핑계입니다. 한국의 경제력은 이미 세계 10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개드립에 따르면 한국은 G20을 개최한 선진국입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좀 더 쾌적한 학교에서 교육에 참여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요구합니다. 학생들이 더 편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학교, 학생들이 더 나은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교실 환경, 모든 학생들을 위한 무상교육을. 단순히 경제규모가 얼마다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교육, 좋은 교육환경이라는 면에서 만족하고 자랑할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죠?






내가 다니는 학교운영, 내가 결정한다!


-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 표현의 자유 등 민주적 권리 보장은 기본 중의 기본! 

● 생활규정부터 수학여행 일정까지, 학교운영에 학생참여권 보장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데, 왜 대한민국의 학교에는 민주주의가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걸까요? 작년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후보 한 명이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는 연설문을 썼다고 학교가 그 내용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주었지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회가 학교의 체벌실태를 고발한 신문을 발행하려 하는 것을 교장이 막았습니다. 성적이 낮으면 학생회장, 학급회장(반장)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이래놓고도 학교는 뻔뻔하게도 민주시민을 양성한다고 자처합니다. 이렇게 반민주적인 학교에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걸까요? 학교 내에서의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학교의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이나 주장을 했다고 압력을 주거나, 징계를 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행위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선거 출마에 자격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 안에서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게다가 학생회는 할 수 없는 것만 왜 이리 가득한 걸까요? 화장실에 휴지 놓는 것조차 교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학생회가 노골적으로 학생들의 권익에 반하여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요.


학생회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은 학교운영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활규정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수업은 이런 식으로 하는게 좋다,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 아니냐, 수학여행은 어느 장소로 언제 가는게 좋을 것 같다, 등등 학생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운영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고, 결정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의 예산 등을 심의하는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들은 학부모, 교사 등과 함께 동등한 권한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학교에서도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곳은 아니었죠. 수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요구하고 외쳤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나서서 권력을 쟁취하고 학교민주주의를 요구할 때입니다.



학생도 인간이다! 두발자유 등 인권 보장!

- 규제와 폭력 대신 존중과 소통을


● 두발복장자유화, 강제자율․보충학습, 소지품 압수 중단!
● 성적․외모․돈․장애․성 등에 의한 차별 중단!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을!
● 학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체벌금지, 언어폭력 금지, 벌점제 폐지! 학생을 무시하고 통제하고 패는 교육이 아니라 존중하고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을!
●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생인권 침해 합법화 방안, 갖다 버려!
●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 등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 마련!

학생도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그러니까 학생도 사람으로서의 권리,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지금도 많은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두발규제, 복장규제, 언어폭력 등 많은 폭력과 반인권적인 통제들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여온 끝에, 그리고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서울에서는 체벌금지가 발표되면서, 학생인권 상황이 다소 개선된 학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대다수 중고등학교에 두발복장규제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또한 강제적으로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시키고 아침 7시, 7시 반까지 등교하게 하는 학교들도 많습니다. 수업시간 중 사용만 약속을 만들고 조심하게 하면 될 것을 휴대전화, 음악기기, 전자기기, 책 등을 아예 금지하거나 압수해버리는 모습도 여전합니다. 쇠파이프로 죽도로 목도로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오리걸음’ 같은 체벌을 하는 학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차별하고, 벌점을 통해 생활 하나하나까지 점수로 규제하며 학교에서 내쫓는 모습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자율화’라며 학생인권 문제를 학교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니, 이젠 체벌을 허용한다고 하고 학교장이 학생의 인권을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면서 학생인권 침해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인권은 학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모든 학교가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선입니다. 지방자치가 각 지역에서 살인, 강도, 폭행을 합법화할지 처벌할지 알아서 하게 하는 게 아니듯이, 인권은 학교장의 손에 그렇게 맡겨질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과 같은 모든 학교가 지키게 할 제도가 필요한 겁니다.

학교는 사육이 아닌 교육을 해야 합니다. 교육은 고통이 아닌 소통이어야 합니다.

두들겨 패거나 벌점을 매기는 교육이 아니라 소통하고 대화하는 교육. 숨통 트이는 교육. 잘못을 하면 두들겨패거나 쫓아내는 게 아니라 잘못을 알게 하고 민주적, 합리적인 처벌과 예방을 하는 학교. 학생들을 같은 머리 같은 옷 안에 가둬두고 획일적인 성적으로 차별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다양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교육. 막말과 욕설이 아니라 서로 간의 존댓말과 친밀함, 예의가 있는 교실.

불가능하다구요? 꿈 같은 소리라구요? 최소한 학생도 인간이고 인격체라는 걸 인정하고, 두발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부터 보장해나가기 시작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학생도 인간이라는 그 당연한 진실을, 현실로 만듭시다.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10.02.15 12:53

야간집회 금지가 위헌적이라는 헌재의 판결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오후 10시 이후 금지 안을 내놓은 한나라당 의원들.
설 연휴 지나자마자 국회에서 심의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집회의 자유를 위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호외] 집시법 개정 고작 “3~4시간 더 하게 해 주겠다”고?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의 집시법 개정안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로 제한

최은아


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집시법 10조 야간집회금지 조항에 대한 개정안을 속전속결로 통과시킬 계획임이 알려져 각계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집시법 10조 야간집회금지 조항은 지난 9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조항이다.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경찰서장의 허가 조항을 삭제하고, 옥외집회시위의 금지시간을 종전의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서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로 규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2월 16일(설 직후 화요일)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진형 의원안을 상정하고, 2월 17일(수) 법안소위에서 논의해 2월 19일(금)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켜 국회 본회의로 보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학자들과 인권사회단체들은 이 법안의 실질적 효과는 집회가 금지되는 시간대를 현행보다 다소 줄인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아주대 법학과 오동석 교수는 “시간제한을 두는 발상은 일종의 후견주의와 같다. 시간 제한을 두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집회시위 자유란 사회적인 공감대를 확대하기 위한 소통의 자리이기에 시간을 제한하지 않더라도 집회시위 주최측과 참가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유성 활동가는 “한나라당의 안은 집회를 지금보다 기껏해야 3~4시간 더 하게 해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집회시위 효과를 최대한 달성하기 좋은 시간대를 선택할 자유를 포함하는 것이다. 만약 야간이라서 우려가 된다면 질서 유지인을 둔다든지 소음규제를 한다든지 보완조치를 두면 된다. 그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대에 아예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권의 내용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므로 위헌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 입법례를 보더라도 야간집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시간 제한을 두는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뿐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한국의 집시법과 유사한 신고제 체제를 갖춘 영국, 독일, 프랑스의 경우 야간집회를 일률적, 시간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야간집회를 제한해야 할 이유로 거론되는 사생활의 평온이나 주요국가기관의 안전 및 교통소통, 소음 규제의 필요성 등은 현행 집시법의 다른 규정에 의하여도 충분히 규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집시법 개정에 대응하는 인권사회단체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우선, 강기정의원 및 이정희 의원실은 긴급토론회를 2월 16일(화) 오전 10시에 국회 의원회관 125호에서 주최한다. 또한 인권단체연석회의와 한국진보연대는 2월 16일(화) 오후 1시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의견서 발송과 항의 메일 및 팩스 보내기 운동 등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 2009년 9월 24일 헌법재판소는 현행 집시법 10조 야간집회금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집시법 10조는 2010년 6월 30일까지 효력을 유지하고 개정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7월 1일부터는 효력을 상실한다. 당시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사전허가제를 금지하고 있는 헌법 제21조제2항에 비추어 일반적 금지규정과 관할경찰서장의 조건부허용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제10조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허가제도로서 위헌이며, 타인의 법익침해 가능성을 이유로 모든 야간집회를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이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장소․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야간이라고 해서 집회를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집시법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또 다른 집회시위 자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최은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90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12일 22:09:29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9.06.12 20:23

[디카로 물구나무] 인권영화제는 OUT?

홍이

13회 인권영화제 숨은 이야기 하나

13회 인권영화제의 개막식이 열리던 6월 5일. 서울 파이낸셜 빌딩 앞 관광안내소 옆에 난데없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불법 폭력시위 비호 ‘청계광장 인권영화제’ 반대 캠페인이라면서 <북한인권 외면하는 ‘인권영화제’ OUT>, <전․의경 인권 무시하는 ‘인권영화제’ STOP>이라 되어있다. 이 또한 표현의 자유니까 현수막을 써붙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용을 곱씹어보면 텅 비어 있다. 아, 정말 보수집단의 논리는 이렇게 모두 천편일률적이고 비약이 심할까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마치 마법의 주문같다.^^


인권영화제가 불법 폭력시위 비호한다고?

캠페인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권영화제는 불법 폭력시위를 비호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편견에 휩싸여 있는가. 불법=폭력이라는 마법 같은 연결고리를 만들어 모든 시위를 반대하고 있다. 인권영화제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그 내용을 마법 같은 주문으로 왜곡하지 말라.

더구나 인권영화제가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때문이다. 법에 의하면 인권영화처럼 등급분류심의를 면제 받으려면 사전 심의제도 같은 면제추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전심의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에 인권영화제는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상영관을 구할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

실제로 준비과정에서 인권영화제가 처음 청계광장 사용신청을 내고 승인을 받았던 것은 이미 지난 1월과 2월 사이였다. 그런데 영화제 개최 이틀을 앞두고 갑작스레 승인이 취소되고 다시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서울시설관리공단이 내놓은 근거도 ‘불법집회로 변질우려’였다. 모든 표현을 불온시하고 불법시하는 태도는 현수막을 만든 단체나 공단이 내놓은 이유와 너무나 닮아 있다. 결국 말도 안 되는 이유라고 여론의 비판을 받자 청계광장 사용 재승인으로 결말이 났지만 말이다.

북한 인권과 전․의경 인권

자칭 보수 우파라는 이들이 끊임없이 진보 단체들에 대해 비난하고 매도하는 내용들이다. 왜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지…….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당신들이나 잘 하세요!!”라고 일갈하고 싶은 심정이다.

인권영화제에서 북한 인권을 다룰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번 영화제를 기획한 이들의 몫이다. 더구나 인권영화제를 준비하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북한 인권을 고민하고 활동해온 역사는 사랑방이 결성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 갈만큼 짧지 않은 시간이다. 최근에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하는 북한 인권 정기검토 때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외면한다고 하는 것은 악의적인 왜곡이다. 보수집단이 ‘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북한인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와 다르게 보고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북한인권이 심각한 상황이니 한국 인권 문제를 외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야 말로 문제 있는 집단이 아닐까. 과연 이들은 인권의 보편성은 알고나 있는 걸까?

현행 전․의경 제도에 대한 문제점 역시 사랑방을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여러 해 동안 지적해왔다. 전․의경들의 인권침해는 단순히 흥분한 시위대들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하는 일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노예에 가까운 무임금 노동과 전․의경 내부 지휘관들에 의한 물리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전의경의 인권을 옹호하는 기본적 태도이다. 전․의경 폐지를 꾸준히 이야기해온 인권활동가들을 두고 외면했다고 하닌 섭섭할 따름이다.

더구나 전․의경제도는 법률상의 애초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대부분 정권의 안위를 보호하려는데 이용되어 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현행 전․의경제도가 헌법과 각종 인권기준에 부합하는가와 이들을 오로지 진압의 도구로만 이용한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이다.

전의경제도 폐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전․의경 인권을 얘기하는 어불성설을 하는 당신들, 거짓말은 이제 그~만!


덧붙이는 글
홍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56 호 [기사입력] 2009년 06월 10일 19:32:11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7.0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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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0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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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종로에서 "쥐덫놓기" 1인시위를 하고 나서(사진은 사진기를 다른 사람 가방에 맡겨뒀는데 못 찾아서 나중에 업로드)
시청광장에서 문화난장도 같이 하고
인권단체 천막에서 경찰폭력 대응 카드도 접고
청소년 피켓도 들고 있고 오승희 호외 등도 나눠주고 하면 노닥거리다가
저녁에 행진을 했다.
사람이 끝도 없었다. 숭례문 어귀에서 다른 일행을 만나려고 잠시 행진 옆에 비켜서서 서있었는데,
원래 우리가 가장 뒤에 처져 있는 쪽이었는데 우리 뒤에도 사람들이 끝도 없이 꾸역꾸역 나왔다.

행진을 하면서 아수나로&나다 사람들은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의 구호도 (우리끼리만) 열심히 외쳤고
뭐 그랬다.
안국동까지 갔다가 경찰차 막혀 있어서 세종로까지 돌아왔다.
돌아와서 할 일도 없어서 맥주 마시고 컵라면 먹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앞쪽이 매우 시끄러워져서
마시던 맥주만 마저 다 마신 다음에 세종로 중심 쪽으로 갔고,
그렇게 언론과 인터넷에서 난리를 떠는 그놈의 '폭력시위' 현장에 있었다.

있다가 나왔다.


*
폭력이라는 말은 너무나 단순하고 선명하다.
폭력시위, 평화시위. 폭력/비폭력. 폭력반대. 얼마나 간단하게 구분짓는 말들인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삭제한 말들인가.

우리는 구체적인 현장에서의 수많은 맥락들과 기준들을 읽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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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글이 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서울 광화문의 그 현장에 같이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내 감정과 내 논리와 내 질문들을 제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이 글이 누군가를 '추궁'하는 글인 것은 맞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답을 요구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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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새벽, 세종로 사거리 현장은 소화기분말이 마치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고
닭장차는 온통 유리창이 깨지고 바퀴가 빠져서 주저앉아 있었다.

의료진은 소화기 분말을 맞은 사람들은 물 안 마시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어서 물을 억지로라도 마시라고 하면서 생수통을 들고 다니고 있었고
인권단체들의 인권침해 감시단은 사람들에게 물병 던지지 말라고, 물병 던진 거 주워서 경찰들이 다시 던져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다친다고 외치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쇠파이프인지 깃대를 부러뜨린 것인지 나무막대기인지를 들고 버스 안을 막고 있는 전의경들의 방패를 (심각하게, 진지하게, 깨지라는 듯이) 두드리고 있었고
버스 위에 올라가 있는 전의경들에게 호스로 물을 "찌끄리는"(이정도 표현이 적절해보일 정도로, 애처로운 물줄기였다;;)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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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그런 질문에 반드시 대답을 해야 한다면 나는 1차적 책임은 이명박에게, 그리고 경찰에게 있다고 말할 것이다.
청와대로 가는 길만 무조건 사수한다는 방침인지 뭔지,
애초에 행진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바리케이트 같은 걸로 닭장차 지붕 위까지 방어하며 세종로를 막아둔 경찰들,
그리고 전의경들을 위험한 곳에 배치해두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전의경들이 위험한 곳에 있으니 배치를 바꾸라고 아무리 가서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지휘관들',
소화기를 미친듯이(정말 미친듯이) 뿌리고 무조건 사람들을 막으려고만 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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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닭장차를 부수는 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진하는 걸 막으려고 닭장차를 세워두는 게 폭력일지는 몰라도, 지나가기 위해서 닭장를 끌어내거나 닭장차 철창을 뜯어내고 넘어가려고 하는 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여기서 '폭력'이라는 건 '협의의 폭력'이다. 폭력은 매우 광범위하고 다의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호스로 물을 뿌리는 건 정말 살수차-물대포에 맞서는 자그마한 저항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병을 던지고(그리고 그 물병이 위치에너지까지 더해서 돌아오고-_-)
쇠파이프 등으로 직접 전의경들을 공격하고
그러는 것을 나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단순히 이름붙여진 행위들로 폭력을 부른다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그 현장이 폭력적이었다고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들(전의경들과 시위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이 감정적으로 매우 '흥분'되어 있었고, (사실 상황상으로 그럴 만도 하지만)
전의경들이 물병을 던질 때 시위하는 사람들은 온갖 욕을 다 했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밧줄을 던지고 물을 뿌리고 깃대를 휘두를 때 전의경들은 온갖 욕설을 다 했고
그런 것들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 냉소하거나 욕을 했기 때문이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한 민주적인 통제나 소수의 의견이 개진될 여지조차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적'과 '아'를 너무나 분명하고 선명하게 구별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쇠파이프로 때리고 방패로 찍는 것도 폭력이지만, 이러한 상황 그 자체가 광범위한 폭력을 구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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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폭력의 책임을 묻는 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런 상황에서-
차라리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왜 이 꼴인지부터 물어야 할 텐데

나는 촛불시위가 '변질'되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때 그 상황을 내 스스로 견디기 어려웠을 뿐이다.



*
나는 동기에 대해 묻고 싶다.

안국동에서 경찰버스에 막혀서 행진이 답보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민주노동당 깃발이 많이 펄럭이던 곳에 있던 사람들이 '골목으로 청와대에 가자'라고 외쳤고
나와 같이 있던 사람들 중에 두 사람도 그쪽을 따라갔다.
그때 상황이 정신이 없어서 묻지 못했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왜 어떤 생각에서 그들과 함께 갔는지 묻고 싶다.

또한 세종로에서 상황이 점점 가열되고,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그런데도 닭장차는 끌어내려고 하고 (더 위험하다.)
경찰이 직접 진압(또는 연행/체포)될 가능성이 높아가는 상황에서
시청으로 돌아가자고 했고 시청으로 다 같이 돌아가려고 하는데
도중에 세종로 중심에서 환성이 터지자(아마 닭장차를 끌어낸 거라고 추측한다.)
다시 거기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또, 그 사람들은 전화를 해서 시청광장으로 오라고 이야기했을 때는 좀 더 "구경"한다고 하거나 좀만 더 "보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왜 어떤 생각에서 거기로 돌아갔는지, 그리고 어떤 구경을 하고 싶었는지 묻고 싶다.

항상 폭력의 최전선에서 '몸빵'을 하고 있는 동지에게, 거기에서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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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현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가?
폭력의 현장의 최전선에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거나 폭력의 한 관련자가 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가?
혹은 자극적인 어떤 폭력에 대한 흥미와 관심과 호기심 - 그것이 직접적인 '쾌'이건 일종의 '숭고'(sublime)이건, 혹은 비탄이건 - 의 충족을 욕망하고 있진 않은가?
일상과 다른 것, 색다른 것을 원하고 있진 않은가?
어떤 '역사적'(역사가 종종 폭력적이라는 것은, 폭력적인 것은 역사라는 역으로 대치된다. 역사를 구성하는 강렬한 '사건'은 종종 폭력적인데, 사람들은 종종 폭력적인 것을 강렬한 '사건'으로 오해한다.) 순간에서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기타 등등의 이유로 도망쳤다는 자책감을 회피하기 위한 것인가? 현장에 있기 위해서인가?
무력감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폭력을 택하기 위해서인가?

나는 앞서 열거한 이런 것들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여기에서 나는 "올바르지 않은" 이란 말의 사용을 피한다.) 자기만족감 추구라고 생각한다. 폭력의 관망자, 혹은 폭력의 행위자로서 동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폭력 현장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서 기록하는 자체에 부정적이진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을 두드러지게 편집하고, 그 편집된 것들을 향유하는 방식에 반대한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그 사람들의 동기를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저런 추측을 해볼 뿐이다.
나의 동기는 폭력적 현장을 최대한 피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폭력을 '즐기려는'(여기서 즐긴다는 말은 단순한 '쾌'가 아닌 복합적인 뜻이다.) 마음이나 현장에서 도망침에서의 '죄책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대개는 그렇게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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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기록(혹은 기억)하고 전달하기 위해서
다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폭력을 막기 위해서,
(그러나 그 현장에서 폭력을 막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폭력은 보통 매우 압도적인 힘으로 존재한다. 그 폭력을 막는 것은 또다른 압도적인 힘일 수밖에 없다. - 그 힘이 폭력의 형태를 띠건 좀 더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형태를 띠건. 그렇기에 우리는 다수의 거대한 힘을 원한다. 전의경들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이유로 그 현장에 머무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런 일들은 괴롭고 '끔찍'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구경하기 위해 혹은 좀 덜 노골적인 표현으로 보고 있기 위해 있던 사람들에게, 보고 싶어하던 사람들에게, 그러한 목적 의식이 있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모르니까 묻고 싶다.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