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28 "패륜적 기본소득" 격월간 사람 용으로 수정한 원고 (2)
  2. 2008.01.14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5)
걸어가는꿈2010. 6. 28. 10:58



격월간 사람에서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에 쓴 원고를 수정하여 다시 싣고 싶다고 해서 수정한 거예용.





패륜적 기본소득

공현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 노동 등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회구성원들 개개인에게 균등하게 정기적으로 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의 생계에 필요한 돈을 사회가 균등하게, 무조건적으로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개개인의 계좌에 매달 정부가 30~50만원 정도의 생계비를 입금해준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기본소득은 특히 노동 중심의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거나 차별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제도이다. 한국의 기본소득네트워크에서는 기본소득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히며 토론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장애인”, “기본소득과 여성”, “기본소득과 청소년” 등의 주제로 연속적으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 글은 6월 19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기본소득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준비해서 연 “기본소득과 청소년” 토론회에서 발제한 원고를 고쳐쓴 것이다.


가정에서의 청소년의 지위

  근대 사회에서 청소년, 아동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제도로 학교와 가정을 꼽을 수 있다.(하루 일과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학원’도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에 비해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는 잘 공론화되지 않는다. 이는 학교가 제도화된 공적 공간이며 집단적, 조직적 제도인 반면 가정은 사적 공간,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의 체벌과 가정에서의 체벌, 학교에서의 종교 강요와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 등을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최근에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활동을 이유로 대량 해직을 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교사의 정치적 자유는 학생들의 미성숙을 이유로 문제가 되지만 아무도 부모나 다른 가족의 정치활동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법 제도부터 보자. 민법에는 친권의 효력으로 친권자가 청소년을 보호, 교양할 권리의무(913조), 청소년의 거주지를 지정할 권리(914조), 징계할 권리(915조), 재산 관리권(916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부모, 후견인 등의 친권자가 정하는 곳에서만 살아야 하고, 친권자의 가치관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하며, 친권자에게 자의적으로 체벌이나 용돈 끊기, 외출금지 등의 징계를 당할 수 있으며, 재산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개정이 되긴 했는데, 민법의 친법 관련 조항에는 “자식은 친권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는 단지 법 규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의 문제이다. 극단적인 예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성적이 잘 안 나온다는 이유로 친권자에게 체벌을 당하다가 죽음에 이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모태신앙’을 비롯해서 가정에서 종교나 정치적 견해를 강요하거나 강압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개인적인 다이어리나 휴대전화 기록 등을 친권자가 함부로 보고 이를 근거로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일, 위치추적 등은 ‘부모의 사랑과 걱정’으로 정당화된다. 어느 학교에 진학을 할 것인가, 어떤 진로를 택할 것인가, 학원을 갈 것인가 등의 문제도 거의 다 친권자의 뜻이 많이 반영된 결정을 하게 된다.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은 대부분이 가정에서의 반대와 탄압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청소년 자신의 자발성이 없이 100% 전적으로 친권자의 뜻만을 관철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친권자 개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에 따라 처우가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청소년의 삶에 대해 친권자가 가지는 지배력은 상당히 강력하고, 그 지배력을 행사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선택은 대부분이 친권자들의 성향에 맡겨져 있다. 제도적․문화적 조건만으로 봤을 때는 청소년들은 ‘친권자의 소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회적 지위에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있어왔다. 아나키즘에서는 근대 사회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어 이야기한다. 꽤 유명한 아나키스트인 바쿠닌 또한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 Marc Siverstein 지음.) 페미니즘 쪽에서도 남성 가부장과 여성 사이의 권력관계에 더해서 아동에 대한 권력관계를 다루는 논의들이 있으며, 우에노 치즈코 또한 세대간의 지배 종료를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제안했던 적이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이러한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는 많은 부분 경제적인 종속성에서 비롯된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말 안 들어? 그럼 용돈 없어!”, “내 말 듣기 싫으면 나가. 여기가 니 집이냐? 니가 입는 옷 먹는 거 다 누구 돈으로 산 건데?” 용돈 뿐 아니라 의식주 전체를 친권자에게 의지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친권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압박의 수단이란 무궁무진하다. “내가 너 키우느라 들인 돈이 얼만데” 등 한국 특유의 높은 보육․교육비 때문에 (좀 넓게 잡은) 중산층 이상의 친권자들이 가지는 투자의식과 주도권 등도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정 안에서 청소년들의 지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우선 기본소득은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 또한 가정의 경제력의 일부를 담당함으로써 어느 정도 협상력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기본소득의 액수와 사회적 조건에 따라 구체적인 양상에서는 차이가 있겠으나, 일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친권자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보다 독립적이고 덜 의존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고 미래에 자신들에게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돌려주기를 바라는 친권자들에게는 투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동시에 자신들의 노인 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됨에 따라 청소년을 채찍질해서 사회 상층에 쑤셔 넣을 동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게 된다.
  친권자들도 똑같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니까 가정 안에서 경제력의 부담 정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돈이란 같은 액수더라도 어느 정도 있는 자들보다는 없는 자들에게 더 효용이 큰 법이다. 가정 안에서 가지는 경제력의 비율이 0에서 10이 되는 것은 발언권이나 협상력의 측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 모델에서는 소득이 많은 친권자들은 세금으로 그만큼 더 많은 돈을 내게 되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좀 잘 사는 가정 안에서는 경제력의 분배 효과를 가지게 된다.

  여차하면 가출할 수 있다는 것도 청소년들의 가정 안에서의 지위에 틀림없이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출은 자신이 원하는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투쟁이나 보이콧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가출을 해도 주거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제대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가출의 리스크가 컸다. 이 리스크는 가출 후에 어디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막막함과 정해진 레일에서 삐끗하기라도 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가출의 리스크를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 우선 일차적으로는 최저생계 수준의 소득이 보장되니 가출 후에도 청소년들이 독립적 생활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나아가서 기본소득의 도입은 노동시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지금처럼 취업을 위해 죽어라 스펙을 쌓아야 하고 낙오되지 않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게 될 것이며, 가정과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며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훨씬 작아지게 만들어준다. 여차하면 파업이든 태업이든 할 수 있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 큰 차이가 있듯이, 기본소득은 가출 등 가족의 틀을 벗어난 청소년들에 대한 일종의 사회안전망이 되면서 청소년들의 지위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는 청소년들의 독립 시기가 빨라지는 것도 기대해볼 수 있다. 지금 주로 청소년들, 그러니까 0~19, 20세 정도까지의 ‘미성년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친권자의 경제적 지배력이라는 점은 한국 사회에서는 20대 초중반의 사람들 다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생계에 필요한 소득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계속 돈을 모아서 주거를 마련하고 친구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시도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대학 진학의 보편화에 청년실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점점 늦어지고 있는 독립이 앞당겨진다는 것은 10대, 20대 전반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뜻한다.
  요컨대 기본소득은 더 이상 기존의 부모-자식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가족 해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권자 말 잘 듣고 나중에는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여 효도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덜어지게 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게 의존적으로 살던 관계가 좀 더 독립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가정 안팎에서의 투쟁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정에서의 권력관계들을 공론화하면서 변화시키는 청소년들의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윤리를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실로 ‘패륜적’이다.


문화적 어려움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지위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문화적인 문제나 여러 제도적인 문제들에 얽혀 있다. 민법이나 노동법 같은 데부터 넓게 본다면 교육제도나 선거연령, 사회적 인식 등까지도 모두 청소년들의 독립적인 삶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경제적 토대가 달라지면 상층 구조는 다소 오차가 있더라도 변화하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낙관하는 것은 좀 무책임하다. 기본소득 도입 자체에서부터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요인들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높다. 청소년들이 세뱃돈 압수당하듯이 기본소득을 받자마자 친권자들에게 압수당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더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몇몇 장애인 시설들이 보조금 더 타내려고 장애인들을 데려와서 보조금을 갈취하듯이, 아이 1명을 더 낳으면 그만큼 기본소득을 더 번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낳거나 입양하는 친권자들도 나타날 수 있다. 아니면 학생간 폭력에서 ‘삥’을 뜯는 규모가 커지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유괴 등의 범죄가 증가하는 일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소득 도입 초기에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판단능력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히 청소년들은 (사실은 20, 30대들도 좀 해당) 경제적 주체가 되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안 좋은 쪽으로 발휘한다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나 명품 소비 문화 등에 소득을 다 쓸 수도 있다. 지금도 빈곤층 가정의 청소년에서부터 이런 명품 소비, 신제품 소비 등의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기본소득이 청소년들의 독립에 기여하기보다는 명품이나 10대 마케팅에 주력하는 기업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다면, 친권자에게 손을 벌려서 그런 소비를 하는 것보다는 낫겠으나, 최선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보다는 문화적 변화에 더해 어떻게 경제적 주체로서 소비하는 것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을 교육할지, 이러한 소비 문화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계획해야 할 문제이다.


가능성으로서의 기본소득

  기본소득은 액수상으로는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지만, 모두에게 같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빈곤하고 더 종속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효용이 있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가정/가족 단위로만 묶여서 생각되어왔고 독립된 경제적 능력을 인정받거나 보장받은 적이 없는 청소년들은 기본소득 도입의 이해당사자 중에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전가의 보도가 아니며, 그 자체로 청소년들을 해방시킨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기본소득의 도입이 청소년들이 친권자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지금의 사회적 시선으로 본다면 ‘패륜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 중 하나일 수는 있다. 또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청소년들의 삶이나 교육에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과정 자체, 그리고 기본소득에서 청소년들(0세~19세 정도)이 배제되지 않게 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도입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경제적 사회적 독립과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역시 청소년들의 주체적인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운동과 제도는 최소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전까지는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그런 새로운 사회로 가는 가능성을 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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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ma

    밀도 높은 글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다.

    2010.06.29 03:39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8. 1. 14. 13:53


돕헤드가 상당히 의역을 한 거 같아서 원문도 구해보고 싶긴 하지만;; 뭐 여하간...


 

 

 

 

 

아나키즘과 청소년 해방

마크 시버스타인Marc Siverstein 지음



    오늘날의 사회에서 아동은 독특한 방식으로 억압되어 있지만 이들이 겪는 억압에 대해서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나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잘 모르기 일쑤다. 불평등과 강요에 기반해 아동과 성인의 관계가 이뤄진다는 사실은 보통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의 사회적 억압과는 전혀 다른 문제로 받아들여지는데, 그 이유는 아동에 대한 차별이 어떻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아동은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미성년이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거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이 아동에 대해 어떤 형태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주권과 강요하지 않음, 그리고 자유연합과 상호부조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는 아나키즘의 사상은 부모역할론, 교육일반론 그리고 아동육성론 등에서 비권위적 이론을 공식화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또한 억압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아동들이 해방을 시작하는데 아나키즘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동이 성장하면서 제일 먼저 경험하는 권위는 부모로부터 나온다. 부모는 아동이 태어난 날로부터 만 18세 또는 19세에 이를 때까지 법적으로 정당화된 보호권을 갖는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관점에서 아동과 관계를 맺는다. 부모는 아동을 소유물로 바라보는데, 그래서 아동은 양육되어야 하고, 보호되어야 하며, 적정선을 지켜야 하고, 통제되어야 하며, 규율을 배워야 하고, 선행을 했을 때는 칭찬을 받고 잘못했을 때는 체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아동에 대한 이런 식의 개념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런 생각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바라볼 뿐, 아동 역시 자율적 존재로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미하일 바쿠닌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리한다.

“아동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심지어 사회에 소속된 사회적 소유물도 아니다. 아동은 그저 자신의 미래에 소속될 뿐이다.”


    일부 부모들은 핵가족 하에서의 숨막히는 분위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자식을 과도하게 보호한다’거나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식으로 변명을 하기도 한다. 성별화된 질서가 생성되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다. 권위적인 이데올로기가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도 바로 이런 핵가족 제도를 통해서다. 핵가족 하에서 성(性)에 대해 금욕적으로 억압한 결과 아동들에게서 신경증적이고 반사회적인 인격적 특성이 생겨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자신이 가진 특정 종교(유대교, 기독교 등)나 정치적 입장(미국에서는 공화당을 지지하는가 또는 민주당을 지지하는가 등)를 자식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한다. 유대교 가정에서는 남자아이가 13살이 되면 유대교 성년식인 ‘바 미츠바(Bar Mitzvah)’라는 것을 열어야 한다고 은근히 압박하거나 또는 대놓고 강요하기도 한다. 이는 ‘남자아이가 성인이 된다’는 표시다. 하누카, 크리스마스 등은 아동이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종교적 잔치다. 자신 스스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도록 하는 기회를 아동은 부여받지 못한다.

    아이가 5살 무렵이 되면 학교에 보내지는데, 이곳은 아나키스트 밥 블랙이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아동수용소’라고 부를 만하다. 이런 기관에서 아동은 교사에 의해 주의 깊게 감시를 당한다. 교사는 아동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보고를 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아동이 어떤 식으로든 자유로운 생각이나 개인성의 징후를 보일 때마다 은근하게 또는 명시적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그것을 꺾어놓는 것이다. 아동이 ‘제대로’ 행동을 하지 않을 때는 학생주임에게 보낸다거나, 교무실에 가둬놓는다거나, 정학시킨다거나, 퇴학처분을 내린다거나 또는 낮은 성적을 주는 등의 체벌을 가한다. 사립학교 대부분에서 그리고 많은 공립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복장과 두발의 규정이 가해진다. 웃옷은 반드시 가지런히 바지에 넣어야 한다거나 허리띠를 반드시 매야 한다는 식의 조항까지 있을 정도다. 문신을 하거나 머리를 염색하거나 귀걸이나 피어싱을 하거나 또는 기타 다른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는 학생주임이나 또는 교장이 직접 나서서 호통을 치고 이를 금지시킨다.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노동자와 사장의 관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장은 회사를 소유하고, ‘행동 규정’을 마련하며, ‘생산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권위자에게 의문을 품고 반문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며, 학생들의 분노는 학생자치기구나 학교가 인정하는 학생회 등을 통해 조절된다. 이는 거대한 노동조합총연맹(미국의 경우 AFL-CIO 같은 단체)을 통해 노동자들의 분노가 조절되는 것과 유사하다. 학생자치기구가 사소한 개혁을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아나키즘이 요구하는 것처럼 학교의 존재 자체에 대해 반문을 제기하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강요와 폭력의 철폐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가 감옥과 얼마나 많은 점에서 닮아 있는가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감옥과 학교 모두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적용된다. 권위적인 구조, 복장과 두발 규정,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 정숙과 질서에 대한 강조, 금지규정을 지키기 위한 단속, 행동에 대한 규제,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는 비본질적인 보상제도, 개인 자율성에 대한 상실, 자유에 대한 억압,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것 등.

    이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온다. 아동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이와 같은 특정한 종류의 억압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점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작업장--학생들은 패스트푸드 점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착취를 경험한다--에서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자신이 부모와 성인들로부터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그것이 부당하지는 않은지 이야기해보자. 계급에 대한 자각은 필수적이다. 아동이나 청소년은 자신이 하나의 독특한 계급으로서 억압을 받는다는 계급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억압하는 계급은 삶의 조건에 대해 명령을 내린다. 아나키스트들의 국제노동조직인 '세계산업노동자회 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의 규약 서문을 알기 쉽게 바꿔서 말해보면,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은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구체적으로 조그만 방식으로 불복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예를 들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거부하거나, 학교가 강요하는 종교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 또는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할 때, 과제의 주제로 청소년 운동의 역사 또는 엠마 골드만이나, 학교에서 아나키스트 동아리를 만들고 반전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는 이유로 정학을 당한 15살 학생 케이티 시에라Katie Sierra 등을 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들 앞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해보자. 이는 노동자들의 작업거부나 태업과 비슷한 방식의 불복종이다. 학교 바깥에서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등 스스로를 교육시켜보자. 자신의 생각을 담은 전단지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학교에 붙일 수도 있다.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소책자나 잡지를 만들어 학교에 돌릴 수도 있다. 학생들의 수업거부, 동맹휴학 또는 ‘길거리를 되찾자’ 등의 방식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엽적일 수도 있는 문제들 예를 들어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 등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접하면서 더욱 급진적이 되어 문제의 뿌리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지역의 한 아나키스트 동아리는 근처 개훈련장에 붙어 있던 ‘복종을 가르칩니다’ 라는 문구를 떼어내 한 고등학교에 펄럭이도록 붙여놓았다. 이런 행동은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부모들과 학교 당국은 예전에는 별로 저항을 받지 않고도 지나갔던 것들이 이제는 학생들로부터 저항을 일으키게 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학생을 감시하고 통제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그런 권력이 도전을 받으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학생은 전처럼 형태가 없는 한 무리의 온순한 양떼가 아니라 계급의식을 갖고 지성을 갖춘 젊은 청소년들로 조직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젊은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인을 영원히 없애나갈 것이다.

   아나키즘은 청소년 해방에 있어서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강요와 폭력에 반대하는 아나키즘의 기본 원칙은 청소년이 처해 있는 노예와도 같은 속박상태에서 청소년이 자유로워지는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청소년의 해방에 있어서 아나키즘은 부모의 강요를 제거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방이 아니라는 통찰을 제공한다. 즉 청소년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대안을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이중권력 전략’의 좋은 예이다. 새로운 사회는 낡은 사회의 껍질을 벗고서 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약골 번역)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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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ItemID=1994

    위에 번역된 거 원문이 여기 있더라고....

    2008.01.14 15:4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돕헤드

    의역은 하지 않았는데... 원문을 거의 그대로 직역을 했어.

    2010.05.08 20:28 [ ADDR : EDIT/ DEL : REPLY ]
    •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두발 규제 등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외국에도 강제야간자율학습이 있어요?;;

      2010.05.08 22:28 신고 [ ADDR : EDIT/ DEL ]
    • 원문에서 찾아보니 그 부분은 (curfew, uniform etc)라고 되어 있네요; curfew는 야간 외출금지, 통금 같은 거니까 야간강제자율학습이랑은 좀 다르고 가정이나 기숙사 등에서의 귀가시간, 외출금지시간에 가까울 듯해요 @_@

      돕이 번역을 이상하게 했다거나 원문을 왜곡시켰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강제야자'가 외국엔 없을 텐데 --; 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읽으면서 ㅎㅎ;

      2010.05.08 23:17 신고 [ ADDR : EDIT/ DEL ]
  3. 2016 희년 청소년 해방 선포
    https://www.facebook.com/jubilee.free

    2016.09.11 21:0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