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8. 7. 11. 18:14



현장과 언어 사이에서

내가 인권운동사랑방과 처음 연을 맺은 것은 2006년의 일이었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마련한, 청소년인권운동의 진로를 모색하는 워크숍 자리였다. 워크숍의 결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지금의 청소년인권운동이 자랄 수 있도록 흙을 갈고 거름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은 때로는 공간을 제공해주었고 때로는 입장을 밝히고 운동론을 정제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해주었다. 그 무엇보다도 운동에 함께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가장 든든한 존재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그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 함께했던 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 활동가들은 현재는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은 인권 문제의 현장에 가서 연대하고 몸으로 부딪히기도 했고, 인권 문제에 대한 보고서나 이론서를 읽고 개념을 정리해서 소개하기도 했다. 인권의 문제의식으로 사회 현상이나 정책을 살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는 성명이나 논평을 냈다. 나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아니었지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과 같이 활동하면서 또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운동을 보고 듣고 모방하면서 인권운동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고 익혔다.

사실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인권단체가 의외로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 일이었다. 나는 한 2-3년은,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조직과 문화(대표가 없는 운영 체제, 활동가 사이의 비교적 평등한 관계, 국가 지원을 받지 않는 것 등)가 인권운동에서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마도 오늘날 인권운동계에서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원칙과 문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단체들도 적지 않으리라.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들리지 않던 이야기를 들리게 만들었다. 청소년인권운동도 그 한 예였고, 노숙인-홈리스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연대하고 활동을 하고 주거권 개념을 제기한 활동도 있었다. 과거에는 감옥인권 문제를 다루었으며, 북한인권 문제를 '한반도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 낯설었던 '사회권'을 공부하고 적용하며 더 풍부하게 만들었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함께했다. 경찰 폭력에 대응하고 집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등 인권단체로서 당연한 일도 물론 해왔다.

나에게 인권운동사랑방의 인권활동가들은, 자칫 추상적이고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인권'의 언어를 현장의 문제와 연결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 활동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 남았고, 변화로 이어졌다.



계속 넓어지고 나누어온 단체

1993년 꾸려진 인권운동사랑방이 한국 사회 인권운동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서 깊은 단체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인권운동사랑방은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고 그렇게 풍족하지도 못하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스스로 명성과 자원을 얻는 방식으로 운동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은 계속 '분열'해왔다는 것이다. 인권교육을 인권운동으로서 처음 인식하고 활동해왔던 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은 '인권교육센터 들'이 되었다. 국제인권 문서를 번역하고 '진보적 인권운동'의 이론을 만들어온 부설 인권연구소는 '인권연구소 창'이 되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주관했던 서울인권영화제도 별도의 단체로 독립하였다. 이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자기 조직을 키우기보다는 인권운동을 계속 넓혀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권운동사랑방이 후원 행사를 한다. 내가 알기론 25년의 역사 속에서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후원 행사로, 드문 일이다. 매년 후원 행사를 하면서 단체를 운영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흔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리소문 없이(?) 활동해온 인권운동사랑방의 성격을 알 법한 일이기도 하고.

리워드에 박힌 이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함께 살자. 함께 싸우자. 함께 지키자."


함께해, 주시길.



https://tumblbug.com/sarangbang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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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 가욤 ^^

    2018.09.13 02:21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4. 4. 26. 01:26

‘아동학대’ 문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바꾸는’ 것으로

공현


슬 픈 소식이 끊이지 않는 해다. 세월호 침몰로 세 자릿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청소년이다. 또한 그 바로 전에는 한 고등학교에서 폭행에 의해 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두 차례, 며칠 간격으로 일어났다. 또 그 직전에는 가정에서의 학대로 인해 청소년이 사망한 사건이 신문 기사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또 그 얼마 전에는 고등학생이 체벌로 인해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세상을 뜬 일도 있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청소년들의 죽음을 좇아다니기 바쁜, 우울한 상황이다.

워 낙 침울하고도 충격적이었던 세월호 침몰 사고 때문에 마치 한참 전 일 같지만, 바로 1~2주 전까지만 해도 여러 언론은 “○○ 계모” 등의 제목을 달고 아동학대치사 사건과 그 재판을 보도한 기사들로 전면을 장식했다.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내려진 판결이 너무 가볍다며 ‘사형’을 요구하는 시위도 등장했다. 사람들의 분노 자체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이슈가 된 사건의 가해자를 벌하는 방법과는 별개로, ‘아동학대’ 문제를 예방하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 가해자가 특별히 못된 놈이라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식의 결론에 멈춰버린다면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구조와 맥락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공식 보고된 아동학대는 6796건이고, 통계에 잡히지 않은 학대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 ‘학대’ 기준에 잡히지 않은 다른 숱한 가정 안에서의 폭력과 인권침해도 존재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부모/보호자인 사람들이 사건의 가해자들을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과연 자신들은 ‘학대’를 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달라고 하고 싶다.


청소년은 부모의 ‘것’이라는 전제


이미 방송을 통해 꽤 널리 알려졌지만, ‘아동학대’의 다수는 친부모에 의해 일어난다. 학대의 가해자가 ‘계부모’임을 강조하는 것은 편견을 강화할 뿐이다. 언론 보도 역시 재혼해서 또는 입양해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죄라고 굳이 “계모”라는 걸 강조하는 것인지, 참 씁쓸한 행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부모’의 학대에 더 분노하는 모습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죽였기에 이리도 반응이 뜨거운 것.”(트위터 아이디 @Ramirezi_ 전(前) 진보신당 청소년위원장)이라고.

물 론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처럼 되어 있는 것과 ‘아동학대’가 가능한 가정 안의 권력관계 자체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목숨이 위험하거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잔인하고 특출난 사례가 아니면 사람들은 가정 안에서의 인권침해에 관대하다. ‘아동학대’ 사건의 배경에는 가정 안에서 친권자와 청소년 사이의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자기 것’이냐 ‘남의 것’이냐가 아니라, 부모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제 자체가 문제이다. 어느 부모가 ‘나쁜 주인’인 것만을 탓하지, 부모가 ‘주인’이 되는 상황 자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아동학대’는 계속될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낳는 조건들을 뿌리 뽑아야

사 정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라는 말보다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Children)’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을 듯싶다. ‘학대’라는 표현은 마치 정도가 아주 심한 것이나 악의적인 것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단순히 정도의 문제이거나 특별히 악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며, 신체적․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의 문제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청소년에 대한 폭력’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 애들은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사랑의 매는 폭력이 아니다.” 같은 말을 한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치사 사건의 가해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한다. 그런데 이 둘이 종종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실로 역설적이다.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는 사회 환경이야말로 ‘학대’를 허용해주는 든든한 ‘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아동폭력에 대한 유엔 연구(The United Nations Study on Violence against Children: A/61/299)」(2006)는 서두에서부터 “아동에 대한 폭력이 ‘전통’ 또는 ‘훈육’이라는 명목 하에 성인들로부터 정당화되어 일어나는 것을 중단”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위 사진[사진 설명] 유럽평의회 체벌금지 캠페인 포스터

“내 아이인데 무슨 상관이냐.”, “남의 집안 일이니 신경 꺼라.”라는 식의 태도. 자식 양육은 친권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가치관. 그리고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친권자에 의해 삶과 권리를 규제당해도 된다는 생각. 특히나, 그 바탕에 좋은 뜻이나 애정이 있으면 괜찮다는 생각. 청소년들은 ‘평등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함부로 대해도 좋은 존재가 되어버린 현실. 이런 것들을 뿌리 뽑는 것이야말로 가정에서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에 대한 양육 방식은 친권자의 재량이라고 쉬쉬할 것이 아니고, 모든 체벌을 비롯한 폭력적인 양육 방식에 대한 확실한 금지 선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람직하고 비폭력적인 관계 맺기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알리고 교육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공부 잘 시키는 우등생을 만드는 부모 되기에 대한 책은 많지만 정작 비폭력적이고 인권적인 부모 되기, 부모 자식간 관계 맺기에 대한 논의는 빈약한 곳이다.

올 해 하반기에 시행을 앞두고 있는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은 아동학대의 정의를 형법상 폭행이나 상해죄 대상 전반까지 포함함으로써 사실상 가정체벌금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행정부나 사법부가 이를 그렇게 해석해 줄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친권자의 ‘징계권’을 들어 사회 상규상 허용될 만한 수준의 체벌은 정당행위라고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서울만 해도 서울 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에 의해 가정체벌이 금지되었고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역시 일부 명문화되었으나, 이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있다. 진지한 논의와 과정을 통해서 가정 체벌금지를 선언하고 가정에서의 청소년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부터 출발해보면 어떨까. 가정을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제도이자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으로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집을 나와서 ‘어쩔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같이 활동하는 청소년활동가들 중에는 의외로 가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장기간 준비까지 해서 가출을 감행한다. 직간접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결심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구타이든, 폭언이든, 감금이나 협박이든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대개 그들의 편이 아니다. 경찰에 신고를 하면 경찰들은 대개 그들을 친권자가 있는 집으로 돌려보낸다. 폭력을 당한다고 호소를 해도 경찰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집 나온 청소년은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경찰의 의무인 것처럼. 하긴 경찰 입장에선 아주 틀린 일처리도 아니다. 민법에 따르면 친권자에게는 ‘거소지정권’이라는 것이 있고, 친권 상실이 되지 않는 한 친권자에게는 청소년이 있을 곳을 지정할 권리가 있다.

가출 등의 적극적인 탈출과 저항을 시도하지 않더라도, 경찰이 가출한 청소년을 잡아가지 않더라도, 어쨌건 집을 나가서 혼자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같이 살아야 하며 버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 청소년들이 놓인 처지인 것이다. 친권자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다보니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 친권자가 폭력을 가하든 어떻든 간에 같이 살아야만 하는 현실. 이판사판으로 혼자 살아보겠다고 집을 나왔다가는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기 십상이라는 것을 모두 느끼고 있다. 눈에 보이는 ‘가출’이 사회경제적 하층 가정에서 많은 것은 어차피 잃을 것이 별로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아 동학대’에 대처하는 제3자들의 입장에서도 비슷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당장 폭력을 당하고 있는 청소년을 가해자와 떼어놓고 싶어도 그 뒤에 청소년의 삶을 충분히 지원하고 책임질 만한 자원도 없다. 그리고 사회적 시선으로 보나, 법제도적 측면에서 보나, 친권자(특히 친부모)에게서 청소년을 떼어놓는 일을 감히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칫하면 무책임하게 가정을 깼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마저 있다.

다행히도 반복되는 사건과 관련 단체들의 노력으로 새로 제정된 「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학대’를 인지하면 바로 임시보호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필요한 기관이나 예산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그리고 청소년에 대한 가정에서의 폭력을 더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이 자신의 뜻에 따라 집 밖으로 나와서도 ‘어쩔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친권자에게만 삶을 의존하는 선택지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도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가정을 넘어선 공동체이든, 임시 주거와 생활이 가능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든, 복지제도와 적절한 노동 시스템이든.

나는, 자신을 억압하고 위협하고 폭행하는 사람과 같이 살지 않을 권리는 인권이자 주거권의 일종으로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제적 인권체계 역시 가족을 보호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훨씬 강하다. UN아동권리협약은 “부모나 현지관습에 의한 확대가족, 공동체 구성원, 후견인 등 법적 보호자들이 아동의 능력과 발달정도에 맞게 지도하고 감독할 책임과 권리가 있음을 존중해야 한다.”, “아동이 이러한 권리(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부모나 후견인이 아동의 능력 발달에 맞는 방식으로 아동을 지도할 권리와 의무를 존중해야 한다.”라는 등의 조항을 통해 부모․보호자․가족의 권한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제도나 친권자의 권한 등에 근본적으로 비판을 가하는 청소년인권운동은 현행의 국제적 인권 기준조차도 바꿔야 한다. 가정·가족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하나의 제도이다. 가족 안에서의 권력관계와 인권침해 문제를 드러내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가족제도 자체를 바꾸는 것. 그것이 가정에서의 ‘청소년에 대한 폭력’ 문제에 대처해가는 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인권오름 제 390 호 [기사입력] 2014년 04월 24일 11:52:51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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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11. 6. 09:56
한반도인권 뉴스레터
16호 | 2009년 11월 6일
제목 부제목
자유로움의 권리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조항으로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에 있어 자유란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현재의 자유권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권리를 갖는다는 추상적인 수준을 넘어서, 다양한 조건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갖추면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권의 내용 각각을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사고하게 되면, 인권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게 된다. 전체 사회의 맥락을 세심하게 읽으면서, 인권의 불가분성, 인권의 상호의존성 등 인권의 성격을 놓치지 않고,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감수성을 가질 때, 자유권의 실현은 가능해진다.

그러나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대한민국(남한)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을 뿐, 정작 진정으로 한반도에서 자유권을 실현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양측 정부 모두 자유권의 본래 의미와 원칙들을 무시한 채, 개별 규정이나 특수한 사례들만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유권의 개념을 왜곡하게 되며, 이는 결국 남과 북에 살고 있는, 한반도 주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수십 년에 걸친 식민지배와 민족 간의 전쟁, 세계 유일의 분단상황, 최후의 냉전지대 등 매우 특수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가진 한반도에서 자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자유권을 말하기 위한 조건

자유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

북 한과 남한은 상대의 인권상황을 거론하면서, 개별 권리가 지향하는 인권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상대의 인권상황을 거론함으로써 서로의 인권발전에 발전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보다는 그저 비난의 결과로서 양측의 갈등만 고조된다. 이를테면, 논란이 되는 북한의 공개 처형 문제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의미한 탁상공론을 반복하게 만든다. 인권적인 입장에서 사형의 문제가 무엇인지, 또한 사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의 문제는 무엇인지 날카롭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와 같은 인권의 원칙이 필요하다. 이미 국제적으로 잠정적 사형폐지국 대열에 들어선 남한에서의 사형재개 요구 문제 역시 이러한 원칙을 바탕에 두고 접근할 때 인권적인 해결 방향이 도출될 수 있다. 사형의 완전폐지와 같이 확고한 원칙이 없는 채로 서로의 상황을 비난하는 것은 인권을 핑계로 한 지엽적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양심수 또는 정치범의 경우에 있어서도, 양심수와 정치범은 단 한 명도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인권적 원칙이 될 수 있다. 2008년 국제사면위원회 연례보고서가 남한에 대하여 "최소 8명의 양심수가 여전히 구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남한 법무부는 “이른바 양심수는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변명을 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소위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유무와 수용소 내부에서의 가혹행위 등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 역시 양심수와 정치범을 만들어서는 안되며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남북이 함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상대의 인권문제와 함께 스스로의 인권문제를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남 한과 북한은 서로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엄격한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스스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거나 심지어 왜곡, 은폐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은 “우리식 인권”이라는 표현으로 외부로부터 제기되는 문제제기들의 많은 부분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남한의 경우에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에서의 인권위 등급이 하향조정될 가능성이 있고 이미 국제적으로 남한의 인권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데도, 정책기조나 국정운영의 방향을 수정할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북 서로에 대한 문제제기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고 서로의 문제제기가 갈등을 유발하게 될 뿐이다. 스스로의 인권문제를 성찰하는 가운데 상대방과 함께 인권의 실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반도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른 인권과의 상호연관성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이 주장하는 ‘인권’의 개념은 굉장히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전해가는 인권의 모습을 사실상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 개념이 ‘우리식’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권 영역과 시혜적 성격을 강조한 나머지 자유권 및 저항권, 발전권, 환경권 등 다양한 인권문제들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에 비해 남한은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 형식이 갖추어진 것만 강조할 뿐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용산참사와 같이 그와 관련된 인권 현안은 무시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의 자주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핵무기 개발을 이용하는 북한도, 북한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며 식량 및 비료 지원을 중단하는 남한도, 파편화되지 않은 인권, 인간답게 살기 위한 총체적인 조건으로서의 인권을 고민하여야 한다. 인권의 불가분성 혹은 상호연관성을 고려하지 않는 자유권 타령은 그저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비난에 불과하다.

대결구도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남한과 북한정부가 국가안보와 공공질서 등을 근거로 인권을 침해하는 것에는 남북 서로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남한에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는 오랫동안 북한의 존재 때문에 정당화되어왔다. 민주화나 인권을 위한 요구는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고문을 하는 방식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었고, 그러한 인권침해는 북한의 존재로 인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그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비사회주의그루빠검열’ 등을 통해서 인민을 처벌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북한사회가 인권적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행위이다. 특히 남북 서로를 빌미로 한 국민에 대한 광범위한 감시와 사찰은 사상과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다.

상호체제와 이념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함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

남 북관계에서 인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권 향상에 대한 진정성이 필요하다.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상대의 체제와 이념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한반도 인민의 자유를 신장시킬 수 없다. 비록 북한이 국제인권레짐에 속해있더라도, 판이하게 다른 역사와 사회구조를 가진 서구 자유주의 사회에 적합하게 발전된 인권형식들까지 아무런 고민없이 강요할 수는 없으며, 거꾸로 사회주의 체제가 인권침해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도 없다. 어떠한 국가도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 완전한 국가가 없는 현실에서, 서로 다른 역사적 정치적 배경을 가진 두 나라가 서로의 체제와 이념을 존중하는 바탕에서 서로의 인권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할 때, 한반도에서 자유권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인권상황을 돌아보고 함께 자유로워져야

군 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정부가 서로의 자유권 상황을 비난할수록 결국 한반도 주민의 자유권은 왜곡되고 축소된다. 이럴 때일수록 자유권이 등장해야만 했던 역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유권은 국가안보, 사회질서, 체제 수호 등을 핑계삼아 국가가 저지르는 인권침해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소중한 권리개념이지, 국가들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고, 국가가 ‘너희들의 자유는 여기까지다’라고 제한하기 위한 눈가림수도 아니다. 한반도에서 남북이 상대의 자유의 권리를 얘기하기에 앞서, 자유를 말하기 위해 필요한 인권의 조건들을 반드시 먼저 확인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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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9. 10. 10. 03:26

[논평]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1. 우리는, 성범죄가 특히 여성에게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주는 반인권적이고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범죄라는 점을 확인합니다.


1. 우리는, 아동의 인권 보장은 사회의 중요한 의무이며, 아동의 권한 강화라는 맥락에서 아동에 대한 특별한 지지와 지원,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1. 우리는,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 법률에 따른 엄격한 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가해지는처벌이 권력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서 이루어지거나,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고개별적/개인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 역시 분명히 합니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 모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매우중요한 기준입니다.


1. 우리는, 조OO 아동 성폭력 사건 역시 피해아동에 대한 심각한 반인권적 범죄라고 판단하며, 가해자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생각합니다. 더불어 아동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사회 모든 영역에서 함께 노력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1. 동시에 우리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기관과 보수적인 언론들이, 형벌의 경중 문제만을 부각시키면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문제제기되었던 성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 개혁 등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것에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남성의 각종 성범죄에 대해서 매우 관대하고 제대로 된 처벌조차이루어지지 않았던 사회적 경향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채 개별 아동 성범죄 사건의 ‘처벌’에 대해서만 치중하는 것은 위선이라고평가합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이 보이는 반인권적인 인식과 행동, 정치적 의도에 대해 우려를 느낍니다.


1. 우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 실제로 성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 및 교육,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지원 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정부기관이 그저 분노한 여론에 편승하여 전자발찌의무기한 착용이나 보호관찰제도의 확대, 화학적 거세 등의 자극적이고 손쉬운 ‘처벌 강화’의 방편들, 하지만 근본적이지도인권적이지도 않은 미봉책들을 꺼내어놓는 모습은 실망과 우려를 동시에 갖게 합니다.


1. 또한 우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려는 정부기관과 언론들이 성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에대해서는 관대하면서, 아동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술에 취한 상태에서 동석한 여성을 성추행했던 최연희(현 18대 국회의원, 무소속,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2심에서벌금5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함으로써 사실상 무죄를 선언했던 사법부의 판결과, 그 성추행이 술 때문이라며 술잔을 망치로 깨는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박진(현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관대했던 언론들을기억합니다. 우리는, 언뜻 엄격해보이면서도 사실 전체적으로 남성이 저지르는 성범죄에 대해 매우 관대한 이러한 사회분위기 속에서아동에 대한 성범죄 역시 절대로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런 사회 속에서 피해자 아동은 성장하는 동안 점점 더 심한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현재 정부기관과 언론의 무책임함과 위선적인 모습을 확인하게됩니다.


1. 우리는, 이런 반인권적인 ‘처벌’ 중심의 논의가 일정한 정치적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정부는, 몇몇 특정한불법행위에 대해서만 형벌을 과도하게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집회 또는 시위, <아동> 성범죄 등에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고 형벌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기업이 저지르는 부당노동행위나 탈세 등의 불법행위, 고위공직자의 위법행위나 업무상 책임 등에 대해서는 법을 느슨하게 적용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차별적으로 법을 이용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사회를 통제하려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의도는 결국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낳게 됩니다.


1. 우리는, 성폭력의 근절이 매우 어려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통감합니다. 남성 위주의 권력사회 속에서 성폭력은 곳곳에서 일어나며,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막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폭력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분노를 부추기는 것은 더더욱성폭력의 예방을 어렵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아동 성폭력 사건이 또 한 차례 공론화된 것이, 부디 정부기관과 언론,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성폭력의 본질과 예방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9년 10월 8일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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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12. 20:23

[디카로 물구나무] 인권영화제는 OUT?

홍이

13회 인권영화제 숨은 이야기 하나

13회 인권영화제의 개막식이 열리던 6월 5일. 서울 파이낸셜 빌딩 앞 관광안내소 옆에 난데없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불법 폭력시위 비호 ‘청계광장 인권영화제’ 반대 캠페인이라면서 <북한인권 외면하는 ‘인권영화제’ OUT>, <전․의경 인권 무시하는 ‘인권영화제’ STOP>이라 되어있다. 이 또한 표현의 자유니까 현수막을 써붙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용을 곱씹어보면 텅 비어 있다. 아, 정말 보수집단의 논리는 이렇게 모두 천편일률적이고 비약이 심할까하는 생각이 밀려든다. 마치 마법의 주문같다.^^


인권영화제가 불법 폭력시위 비호한다고?

캠페인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권영화제는 불법 폭력시위를 비호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편견에 휩싸여 있는가. 불법=폭력이라는 마법 같은 연결고리를 만들어 모든 시위를 반대하고 있다. 인권영화제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 그 내용을 마법 같은 주문으로 왜곡하지 말라.

더구나 인권영화제가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현행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비법)’ 때문이다. 법에 의하면 인권영화처럼 등급분류심의를 면제 받으려면 사전 심의제도 같은 면제추천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전심의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에 인권영화제는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상영관을 구할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

실제로 준비과정에서 인권영화제가 처음 청계광장 사용신청을 내고 승인을 받았던 것은 이미 지난 1월과 2월 사이였다. 그런데 영화제 개최 이틀을 앞두고 갑작스레 승인이 취소되고 다시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서울시설관리공단이 내놓은 근거도 ‘불법집회로 변질우려’였다. 모든 표현을 불온시하고 불법시하는 태도는 현수막을 만든 단체나 공단이 내놓은 이유와 너무나 닮아 있다. 결국 말도 안 되는 이유라고 여론의 비판을 받자 청계광장 사용 재승인으로 결말이 났지만 말이다.

북한 인권과 전․의경 인권

자칭 보수 우파라는 이들이 끊임없이 진보 단체들에 대해 비난하고 매도하는 내용들이다. 왜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지…….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당신들이나 잘 하세요!!”라고 일갈하고 싶은 심정이다.

인권영화제에서 북한 인권을 다룰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번 영화제를 기획한 이들의 몫이다. 더구나 인권영화제를 준비하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북한 인권을 고민하고 활동해온 역사는 사랑방이 결성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 갈만큼 짧지 않은 시간이다. 최근에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하는 북한 인권 정기검토 때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외면한다고 하는 것은 악의적인 왜곡이다. 보수집단이 ‘인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북한인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와 다르게 보고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북한인권이 심각한 상황이니 한국 인권 문제를 외면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세력이야 말로 문제 있는 집단이 아닐까. 과연 이들은 인권의 보편성은 알고나 있는 걸까?

현행 전․의경 제도에 대한 문제점 역시 사랑방을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여러 해 동안 지적해왔다. 전․의경들의 인권침해는 단순히 흥분한 시위대들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하는 일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노예에 가까운 무임금 노동과 전․의경 내부 지휘관들에 의한 물리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전․의경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야말로 전의경의 인권을 옹호하는 기본적 태도이다. 전․의경 폐지를 꾸준히 이야기해온 인권활동가들을 두고 외면했다고 하닌 섭섭할 따름이다.

더구나 전․의경제도는 법률상의 애초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대부분 정권의 안위를 보호하려는데 이용되어 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현행 전․의경제도가 헌법과 각종 인권기준에 부합하는가와 이들을 오로지 진압의 도구로만 이용한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이다.

전의경제도 폐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전․의경 인권을 얘기하는 어불성설을 하는 당신들, 거짓말은 이제 그~만!


덧붙이는 글
홍이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56 호 [기사입력] 2009년 06월 10일 19:32:11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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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6. 3. 20:56



지난 2, 3월 이전부터 점찍어놓고 있었고 시설관리공단에 사용료까지 다 납부해서 사용 허가를 받았던
제13회 서울인권영화제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1996년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씨가 구속되고 상영장 대여가 금지되는 등의 온갖 탄압을 뚫고서
인권을 옹호하는 영화, 인권을 말하는 영화, 그리고 상영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인 영화들을 상영해왔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무료란 것!? *_*)

사전심의-검열에 반대하면서 심의를 받지 않고 상영해왔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작년부터는 심의 없이는 상영관 대여가 안 된다고 하여 마로니에 공원에서 야외 상영을 하면서도
인권영화제는 자신의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사전심의에 응하지 않고, 상영관을 대여하지 않으면서 청계광장에서 야외 상영을 하려 했는데
이에 대해서 갑자기 이틀 전에 불허 통보가 난 것입니다.


광장에서 집회를 하든 추모를 하든 퍼포먼스를 하든 다 잡아가는 이명박 정부 경찰.

이젠 영화 상영도 안 된다고 막는군요 ㅠㅠㅠㅠ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현재 다른 장소를 알아보면서 긴급 회의 /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한나라당 정부에서 모든 광장, 모든 거리는 경찰 사유지 같습니다.




참세상 기사

인권영화제도 안돼

서울시설관리공단 인권영화제 장소 "청계광장" 불허 통보

안보영 기자 coon@jinbo.net / 2009년06월03일 16시41분

13회째를 맞는 인권영화제가 개막을 코앞에 두고 장소불허 통보를 받았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4일 인권영화제 측에 "최근 본장소에 대한 시국관련 시민단체들의 집회장소 활용 등으로 부득이하게 시설보호 필요성이 있어 당분간 청계광장 사용이 제한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 청계광장 사용을 막았다.
▲  13회 인권영화제 포스터
이번 시설관리공단의 불허 통보는 경찰과의 공조 속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에 따르면 시설관리공단의 불허 통보 전에 서울시경은 인권영화제 측에 연락해 "장소를 불허해도 영화제 할거냐"고 물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시설관리공단은 독립적으로 판단했다고 하지만 독립적 판단이 아니라 경찰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인권영화제는 상영관으로 일찍이 '청계광장'을 점 찍었다. 이번 인권영화제의 제목 또한 '인권영화제, 촛불 광장에 서다'이다.
서울시설관리공단의 불허통보에도 인권영화제는 제 날짜에 맞춰 5일부터 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인권영화제 측은 영화제 장소와 향후 일정 등에 대해 현재 논의중이다.
인권영화제 측은 '영화를 통해 인권의 가치를 나누고 인권의 홀씨를 날린다'는 영화제 취지에 맞게 올해 인권영화제는 "촛불의 광장이던 청계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관객을 만날 것"이라고 했으나 그 여정은 벌써 험난하다.



















인권영화제 주최측에서 공지가 나왔습니다.
청계광장 강행!
부당한 탄압에 맞서서, 온몸으로 싸우는 영화제입니다.

6월 5일 저녁 7시 개막식입니다!












추추신 : 서울시설관리공단에서 다시 입장을 번복하여 인권영화제를 허용했다고 합니다.
오늘이 개막식인데, 오늘 아침부터 경찰의 말도 안 되는 부당한 광장 봉쇄와 방해로 시간이 지연되기는 했지만 예정대로 인권영화제가 진행되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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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쥐에게 인권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건 무척 어렵네요.

    2009.06.04 01:35 [ ADDR : EDIT/ DEL : REPLY ]
  2. 완전 쫄았나 봅니다. 제대로 켕기나 봐요

    2009.06.04 08:3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3. 6. 17:25
<논평>



노테스트(notest)가 보여준 가능성


  

일제고사 폐기를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농성장을 4일 저녁 종로구청과 경찰들이 침탈했다. 지난 25일 새벽 침탈 이후 벌써 두 번째다. 청소년 ‘보호’와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다는 국가권력이 나서서 청소년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 하지만 청소년들은 순순히 ‘입 닥치지’ 않고 지금도 거대한 교육청의 횡포에 맞서고 있다.

일제고사의 문제점이 잇따라 드러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10일 예정되어있던 일제고사를 31일 이후로 미루었다. 표집집단에 해당되는 0.5% 학교만 시험을 치르며, 나머지 학교는 시도교육청에 따라 자율적으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일제고사를 전면적으로 치르겠다고 발표했고 다른 시도교육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숱한 비판에도 일제고사를 강행해왔던 교과부가 결국 ‘일제고사의 자율적 시행’을 발표했지만 ‘자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일제’고사의 ‘자율’적 시행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방침이다.

일제고사는 본질적으로 반교육적인 정책이다. 이러한 점은 성적 조작 파문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일제고사가 학생들을 성적으로 줄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제고사 결과 발표 이후 교육과학부와 교육청이 내놓은 정책 방향도 성적에 따라 학교별로 예산 및 인사 상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성적이라는 결과만을 교육 평가의 유일한 잣대로 들이대니 성적 조작도 필연일 수밖에 없다.

교육은 배우는 주체의 삶을 다양한 수단과 기회를 통해 풍요롭게 하기 위한 목표를 갖는다. 새로운 앎을 접할 때의 즐거움을 깨닫는 과정,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깨우치는 과정 그 자체가 교육이다. 시험을 통해서 이미 획일화된 학업의 성과를 평가하고 그것이 교육의 최고 목적이 되는 현실에서는 교육의 가치를 결코 실현할 수 없다. 시험이나 평가가 아니라 자기가 서있는 지점을 학생들 스스로 다양하게 점검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시험은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시험 시간에 질문도 가능한 교육사회도 있다지 않은가.

이 점에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농성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 이름(www.notest.kr)은 두드러진다. 일제고사가 끼칠 교육적 폐해에 대해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사이 청소년들은 일제고사뿐만 아니라 모든 시험의 폐지(노테스트, notest)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시험 성적이 교육의 최고 목적이 되어 있는 교육 현실에서 교육적 가치에 어긋나는 시험을 지속할 이유가 있을까. 지금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험이라는 획일적인 성적 평가에 대한 괴로움이 아니라 스스로를 진단할 수 있는 지혜와 진단의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청소년들은 교과부가 발표한 0.5% 표집집단에 대한 시험평가마저도 거부하며 참된 교육의 권리를 스스로 옹호하고 있다. 누구도 이를 대신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나서 이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영화 ‘배틀로얄’에서는 오직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인다. 잔혹한 현실판 ‘배틀로얄’에 맞서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는 이들의 외침은 우리 사회를 절멸에서 구할 희망의 메시지다. 오늘도 찬바람을 맞으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청소년들은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2009년 3월 6일

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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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08. 10. 21. 17:32


북한인권을 보는 새로운 시선,

한반도인권 뉴스레터
준비 10호

참을 수 없는 어떤 '인권의 보편성'의 가벼움
보수 '북한인권' 단체들의 '인권의 보편성' 담론 비판


준비 10호 | 2008년 10월 21일  


이번 18대 국회에는 두 개의 ‘북한인권법안’이 제출되어 있다. 하나는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북한인권법’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한나라당의 황진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도 두 개의 ‘북한인권법’이 한나라당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결국 제정에는 실패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지난 국회에서와는 달리 ‘북한인권법’의 순조로운 제정이 예상되고 있다.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갖고 있고 이명박 정부 역시 ‘북한인권’ 문제를 주요한 사안으로 언급해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북한인권’을 주요한 의제로 다뤄온 보수 북한인권 단체들의 경우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가장 주요한 논거 중의 하나로 인권의 보편주의적 특성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성찰하지 않는 ‘인권’이 도리어 얼마나 해악적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북한인권’과 인권의 보편성?

보수 북한인권 단체들은 “인권의 보편성에 따라서 북한에서도 똑같이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황진하 의원이 대표발의한 ‘북한인권증진법안’도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 모든 이에게 보장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로 제안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인권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권의 보편성’은 인권의 가장 주요한 속성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인권 보장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로서의 인권은 의심의 여지없이 인권의 제1명제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사회 상황과 역사·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등장하고 변화한 ‘인권’의 개념

‘인권’은 고정불변의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인권 개념은 서구 사회에서 근대의 출현과 더불어 등장한 개념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등장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기존의 왕과 귀족의 절대권력을 부정할 수 있는 이념을 필요로 했고, 공장에서는 땅과 영주에 얽매여 있는 농민들 대신 자신의 노동력을 ‘자유롭게’ 팔 수 있는 노동자를 원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격변의 시기에 기존의 절대권력에 의한 인신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노동력을 팔기 위해 땅과 영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이동의 자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재산권 등의 근대적 개념의 인권이 등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신흥 부르주아들은 기존의 권력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인권의 보편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적 인권에서도 여성과 식민 노예들은 동등한 권리 주체에서 배제되었다. 즉,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인권의 역사에서 본 ‘보편성’ 논쟁

그 후 역사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인권의 내용은 많이 달라졌다. 특히 1948년 발표된 유엔 세계(universal, 보편적)인권선언은 적어도 선언적으로는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동등한 인권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특히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세계대전으로까지 비화된 독일의 인종차별적 악랄한 ‘반보편주의’인 자민족절대주의에 대한 강한 부정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반보편주의에 대한 부정으로서 보편성의 강조는 이러한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세계인권선언조차도 구체적인 실현에 있어서는 모든 사회에서 동일하게 실현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논란을 빚어왔다. 세계인권선언의 서구 중심적 보편주의에 대한 비판도 그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인권의 보편성이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되지 못하고 ‘단일한 내용의 인권이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는 단선적인 맥락으로 이해되어버리면, 인권이 오히려 제국주의의 도구로 전락할 뿐임이 역사적으로 무수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아무리 선의라고 하더라도, ‘인권’이라는 이름의 반인권적 과정과 결과라는 역설이 발생한다.*

인권학자인 마카우 무투아는 “보편주의적 신조와 교의를 창조하려고 들면 서로 다른 성격의 사회들을 파괴하거나 고사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인간존엄성을 위한 국제적 합의를 도출하려면 신중하게, 열린 마음으로, 복합성을 존중하면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 증진을 위해서 외부에서 찍어 누르듯이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인권침해적 상황에 대한 사회적 의미와 목적 그리고 그 결과를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현지인들의 견해를 직접 들어본 후 대화와 이해를 통해 현지인들이 스스로 그러한 상황을 조절하거나 없앨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모든 사회에서는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보편적 원칙을 지지하지만, 각 문화의 다양성과 상이성을 인정하고 각 문화가 보편인권을 자신에 맞는 방식대로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사회에 따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 상대주의 주장은 오히려 독재정권이 자신의 반인권적인 행태들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이용되어 오기도 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보편성과 상대성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이 놓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국제사회는 이러한 논의들을 반영해, 1993년 비엔나 국제인권대회의 선언문은 인권의 보편성을 재확인하면서도 “국가와 지역적 특성의 중요성, 그리고 역사적·문화적·종교적 배경을 유념해야 한다.”(제5조)고 규정했다.*

보수 북한인권 단체들,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성찰적인 태도 가져야

한 보수 북한인권 단체 인사는 “북한인권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며 “북한인권 주장은 인권의 보편성에 따라 북한에도 똑같이 보편적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일 뿐”이라고 훈계하듯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인권의 보편성이 그렇게 단순하고 자명하기만 하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역사와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보수 북한인권 단체들과 ‘북한인권법’은 인권의 보편성을 앞세워, 다른 체제를 갖고 있는 북 사회에서도 종교·집회·언론의 자유 및 자유주의 정치체제, 시장경제 등과 같이 자본주의 사회와 동일한 내용의 인권이 ‘똑같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물론 종교·집회·언론의 자유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자유권, 사회권, 민주적 정치체제 등과 같은 모든 인권의 목록들은 반드시 북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각각의 권리 목록에 어떠한 내용을 채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한다. 인권의 보편성에 따라 북에서 인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북의 사회·문화·역사적 상황들이 전제된 상황에서 북 인민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인권의 내용들을 채워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외부자들은 북 인민들이 인권의 주체로서 스스로의 힘을 강화하고 자신들의 인권을 요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권의 보편성을 지지하면서도 인권 상대주의와 인권 제국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성찰적인 인권의 보편성’의 태도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북한인권’에만 관심 있는 차별적인 ‘보편성’

또한 ‘북한인권’을 중심으로 주장하는 보수진영의 인권의 보편성 주장은 오직 북에서의 인권의 보편적 실현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역시 보편성을 거스르고 있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북에서도 인권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북의 인권 현실에만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보수진영은 우리 사회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진영이 주장하는 것처럼 북에서도 인권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은 옳은 말이지만 보편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인권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 역시 당연하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인권현실은 우리가 직접적인 주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책임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침해 현실에 대해 침묵해왔고 심지어는 인권침해의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지속되고 있는 인권침해에 대해 가해하거나 침묵함으로써 동조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안 중 하나인 국가보안법의 존재에 대해 보수진영은 찬성하고 지지해왔다. 인권침해 가해자가 다른 사회의 인권침해를 지적하는 위선적인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권의 보편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위배하는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권의 보편적 실현의 어려움

인권의 보편성은 인권의 원칙 중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다. 노숙인, 빈민, 장애인, 여성, 청소년/녀,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도 인권의 주체인 ‘인간’이라면 인권의 보편성에 따라 이들의 권리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의 권리는 너무나도 쉽게 부정 당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 이주노동자들을 추방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인간사냥 강제단속, 차별을 금지한다고 하면서도 보수진영의 반대에 부딪혀 성적지향, 출신국가 등의 차별 사유를 삭제한 채 제정을 추진해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을 오히려 조장했던 차별금지법안 등의 현실은 인권의 보편적인 실현이 중요하면서도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북인권 현실은 인권의 보편성을 고민할 때 여러 가지 맥락에서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보수 북한인권 단체들이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인권의 보편성’은 스스로가 자신의 논리를 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다. 그렇다고 북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것이 인권의 보편적 실현을 위한 대안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하다. 다만 인권을 가장한 반인권이 판치고 있는 요즘, 성찰하지 못함으로써 왜곡하고 해악을 끼치기 보다는 진지한 고민으로 차분히 보편적인 인권의 실현을 모색해나가는 태도가 오히려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 * 부분 「인권의 문법」에서 일부 인용(「인권의 문법」, 조효제, 후마니타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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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띄엄띄엄 날라오는데-

좋은 글이 있어서 퍼다 둔다.

(링크를 걸고 싶지만 딱 싸이트가 있는 건 아니다. 공동 발행하는 각 단체들의 싸이트나 메일링에 있는데...
http://www.sarangbang.or.kr/bbs/list.php?board=north-hanbando-newsletter  일단 사랑방 쪽 게시판 주소를 링크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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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2. 11. 04:07

[논평] 대체복무제 제도화 앞에 놓인 과제


인권운동사랑방

18일 국방부는 「병역이행 관련 소수자」의 사회복무제 편입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종교적 사유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할 계획이라는 것이 발표의 주된 내용이다. 이로써 평화적 신념에 따라 ‘총을 들지 않겠다’는 청년들이 총을 들지 않는 대신 감옥에 가게 되는 반인권적인 상황이 끝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이번 발표를 환영한다.

하지만 국방부의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허용 방안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우선, 종교적 사유뿐만 아니라 정치적·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역시도 대체복무가 허용되어야 한다. 종교적 사유와 정치적·평화적 신념은 동일하게 ‘총 대신 평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사유와 정치적·평화적 신념을 구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국방부는 종교적 사유든 정치적·평화적 신념에 의해서든, 평화의 가치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할 것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또 이번 발표에서 국방부는 ‘입대 전’의 병역거부만을 허용하고 ‘복무 중’과 예비군의 병역거부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병역거부의 시기를 ‘입대 전’과 ‘복무 중’·예비군으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종교나 평화적 신념은 군 입대 전과 후를 차별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방부는 군 기강 와해 소지가 있고 군복무 경험자의 진정성을 신뢰하기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복무 중’ 병역거부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지만, 국방부가 든 이유는 오히려 군대 내 인권을 증진해야함을 역설하고 있을 뿐이다. 군대 내 인권이 증진된다면 군 복무와 종교·평화적 신념이 경쟁할 일은 없을 것이다.

대체복무 기간을 일반 현역병의 2배 수준인 36개월로 정한 것도 문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 기간의 1.5배를 넘으면 징벌적 수준에 해당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는 평화적 신념에 대한 권리로서 보장해야할 문제이지 병역거부에 대한 징벌이 되어선 안된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 점은 국방부가 여전히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이번 조치도 ‘소수자의 권리’ 구제 수준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도 실현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대체복무제 도입의 단초가 마련된 점에만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병역거부를 인권으로 본다는 것은 단지 총을 거부하는 대신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개인적 차원의 신념 유지 혹은 권리 구제 수준 정도로 그칠 수 없다. 그것은 외부의 위협을 핑계로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해온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적 신념을 확산하는 계기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소수자에 대한 시혜’로 한정하고 있는 이번 국방부의 조치는 하나의 진전이지만 미흡하기 짝이 없다. 대체복무제의 제도화를 앞두고 평화적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운동의 과제를 다시금 벼릴 때다.
인권오름 제 72 호 [입력] 2007년 09월 19일 14:18:0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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