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경쟁'에 해당되는 글 65건

  1. 2013.09.12 [논평] 깔짝대는 식의 대입제도 개선안, 우리에겐 필요 없다
  2. 2011.11.16 [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3. 2011.11.14 대학입시거부선언문 (2011/11/10)
  4. 2011.11.10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5. 2011.11.08 대학거부선언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1)
  6. 2011.11.08 [나의 대학거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은 (1)
  7. 2011.11.08 [나의 대학거부] 난 대학 안가, 못가, 가기 싫어, 상관없어!
  8. 2011.10.21 투명가방끈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에 함께해주세요!!! (2)
  9. 2011.10.21 20대 대학거부선언에 함께할 분들을 모아요!!
  10. 2011.10.20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5)
  11. 2011.08.29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12. 2011.05.18 “사람이 되어라”와 “학생도 사람이다”
  13. 2011.03.05 실종신고 -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2011.03.19.) (5)
  14. 2010.06.16 [교육생각] 수월성 교육, 하려면 제대로 하라 (2)
  15. 2010.05.29 [CF] 레알 교육감 후보 기호0번 청소년 후보. 우리 공약이 실현되면? (1)
  16. 2010.04.19 일제고사 '부정행위'의 범주 차이 - 영국과 한국 사이
  17. 2010.02.20 상산고 교육의 실패 (61)
  18. 2010.02.03 학교 뚫고 인권킥! - 청소년 입시를 논하다 (1)
  19. 2010.01.22 [참세상] 교원평가, 막을까? 말까? 경쟁을 폐기할 새로운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20. 2010.01.05 청소년 소설이면서 디스토피아 SF :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걸어가는꿈2013. 9. 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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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깔짝대는 식의 대입제도 개선안, 우리에겐 필요 없다

-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


 

   지난 8월 27일, 교육부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발표하였다. 일단 이게 도대체 몇 번째 개선안인지, 또 이번 대입제도는 과연 몇 달이나 갈지, 궁금함이 앞선다. 야심차게 도입했던 수준별 수능도 1년만에 폐지를 한다고 한다. 온갖 베타테스트를 타의에 의해 당하고 있는 학생들 입장에선, 도대체 교육부는 제도를 도입할 때 충분한 준비를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우리를 가지고 노는 건지 실험을 하는 건지 짜증이 난다. 또한 이번 개선안 역시 기존에 나왔던 무수히 많은 동족들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입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내용이 전혀 아니고 학생들이 입시경쟁 때문에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들만 눈에 띈다.

 

1. 먼저 우려스러운 점 중 하나는 2017년 수능부터 현재의 문·이과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수험생들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전부 치르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입시본위제도 아래의 대다수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과목은 물론 시간표마저 수능에 맞춰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수능의 문·이과 구분 폐지는 고등학교의 문·이과 구분 폐지로 직통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고등학생들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전과목을 다 배워야 한다면, 안 그래도 공부 부담이 큰 학생들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더 늘리는 것밖에 안 된다. 게다가 일괄적으로 모든 과목을 배우도록 하는 것은 학생의 교육 선택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처럼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고 대다수 과목들은 학교가 정해주는 대로 수강해야 하는 불합리한 교육체제에서 더욱 퇴보하는 것일 뿐이다.

현행 문·이과 구분은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를 배울 기회를 제한하는 등 문제가 많기에 개선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문·이과의 선택은 실제로는 입시에 종속되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문·이과 구분 폐지는 학생들이 더 자유롭게 교육을 선택하고 참여할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문·이과 가릴 것 없이 수학, 사회, 과학 등을 모두 다 배우도록 하는 것은 개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문·이과 구분 폐지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일 방안과 함께, 학생들의 교육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2.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는 점 역시 좋게 평가해줄 수 없다. 애초에 '한국사 필수화/강화' 논의부터가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역사를 국가가 정한 내용으로 배워야만 한다는 소리와 다름 없다. 이는 곧 국가가 교육을 통해 의무적으로 사람들에게 자국․자민족 중심주의, 국가가 보는 대로의 역사관을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 양 생각되고 있지만, 사실 이는 대단히 국가주의적인 정책이다. 역사를 교양이나 비판적 시민의식의 성장을 돕는 지식으로 배우게 하지 않고 ‘애국심’과 ‘국가관’ 등을 주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사 교과서'에 비해 많이 덜해졌다고는 하나 현재 한국사 교과의 내용은 자국․자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상당히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국사 교육을 반드시 배워서 반드시 수능 시험을 치게 만들겠다는 정책을 반길 수가 없다.

  게다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 지식을 달달 외우고 있느냐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배우는지, 그리고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는지 하는 것이다. 한국사를 수능에서 필수적으로 치르게 한다는 것은 한국사를 시험용으로 ‘암기’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일 뿐이다. 이는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역사를 알게 되고 바람직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덜컥 집어넣는 것은 단순히 여론에 밀려 내놓은 대책으로 보이며, 이는 학생들의 부담만을 늘릴 뿐이다. 과연 이런 결과가 수험생의 선택의 자유마저 침해하면서 얻을 만큼 가치가 있는가?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서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강제로 배우게 하겠다는 것은 교육부가 교육의 수단으로 시험과 경쟁과 줄세우기밖에 모른다고 고백하는 꼴이다. 역사 교육의 제대로 된 모습은 학생들이 역사를 우리의 현재와 삶에 연관된 문제로 이해하고 의미 있게 공부하여 삶과 사회에 대한 지혜를 기를 수 있게 돕는 것일 터이다. 죽은 지식, 시험용 암기 과목으로 배우게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3. 물론 이번 개선안이 수험생 및 학생의 편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기존의 수천 개에 육박하는 수시 종류를 수시 4개, 정시 2개로 제한한 점과, 수시에서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것을 폐지 또는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는 나름 환영할 일이다. 적어도 뭐가 뭔지 잘 이해도 안 가는 복잡한 전형들 때문에 돈을 들고 입시 컨설턴트의 문을 두드려야 할 일은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입시 전형이 줄어들면 조금 덜 골치가 아파지고 약간 더 간편해지긴 하겠지만 학생들이 입시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지금보다 대입제도가 더 단순했던 과거에도 입시경쟁교육은 학생들을 옥죄고 있었다.

 

 

  이번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은 학생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해 본 것인지 의심스럽다. 특히 이번 개선안 역시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의 병폐를 해소할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실망스럽다. 대입제도 개선은 입시경쟁교육을 없애고 학생들이 자유롭고 즐겁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긴 대입제도 변천사에 몇 글자를 더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런 개선안은 학생들에게는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우리나라 교육은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만을 심어줄 것이다. 대입제도를 가지고 이렇게 깔짝대는 것은 학생들을 놀리는 짓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커다란, 근본적인 변화다.

 

  경쟁적인 교육은 교육이 아니며 오히려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학서열화를 없애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 원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아가 대학을 굳이 안 가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들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으므로 폐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교육은, 무늬만 교육인 채로 여전히 학생들을 괴롭히고 줄세우고 차별하는 제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교육부는 수박 겉핥기식 개선안을 내놓은 것으로 안주해선 안 되며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 노력의 첫 걸음은, 학생, 교사, 시민 등 여러 사람들이 교육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일 것이다.

 




2013년 9월 11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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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6. 01:19

[나의 대학거부] 대학은 大學(대학)이 아니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대학 거부’

김서린

대학에 입학한 것은 나의 선택,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대학거부선언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편에 앉은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며 머릿속으로 문득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교복을 입고 부모님 앞에 진지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네가 대학에 가서 굳이 공부할 생각이 없고 그냥 지금 취직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꼭 대학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때 “대학에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전혀 망설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분명히 내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바로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선택은 어떤 면에서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선택받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서 대학은 필수라고 여겼다. 나는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조차도 대학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대학을 왜 가야 하는지는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때 나는 대학이 어떤 곳인지,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막연히 대학생이 되면 자유로워지고 국․영․수 같은 주입식 교육, 혹은 죽도록 싫은 입시공부에서 해방될 것이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심지어 예뻐지기 까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수준이었다.

반면 대학을 안 가서는 안 되는 이유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졸이 받는 사회적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 전문대를 졸업한 사촌이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결국에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는 이야기, 요즘에는 대학 나와도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 가방끈이 짧으면 사람은 좋아도 교양이 없다는 이야기 등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한 목소리로 말하는 듯 했다. “대학을 가지 않은 너의 삶은 너무 고될 거야. 이제까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참으며 살아왔니? 공부를 더 하고 싶으면 당연히 대학에 가야해. 대학에 가면 너의 꿈을 펼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잘 모르겠다.”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대입을 선택했다. 고3인 내 눈에 질 높은 삶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 ‘대입’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그에 대한 나의 애증

(1)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1학년 때 가장 싫었던 것은 선배들이 강요하는 술과 노래였는데, 지금 가장 싫은 것은 선배가 된 내가 토익공부나 아르바이트로 바쁜 1학년 후배들을 불러 술 한 잔, 밥 한 끼 하기가 미안한 현실이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스펙을 쌓고 학점을 따 놓아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벅찬 등록금과 거주비용 등으로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대학생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오늘날의 대학생활이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대학생들은 무엇을 두고 경쟁하고 있을까? 대부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그런데 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작업이 모두가 노력만 한다고 다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경쟁에서는 절대로 모두가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의 존재’는 불가피하다. 준비가 미흡한 어떤 이, 이른바 낙오자는 ‘나’이거나 ‘내가 아닌 다른 학생’ 중에서 무조건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참으로 무서운 전제이다.

대학에서의 경쟁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상대평가제도’가 아닌가 싶다. 이는 내가 얼마만큼 배움의 완성을 이루어 냈는지 상관없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보다만 더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되는 것이니 학생들은 일단 다른 학생들보다만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려 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이 들었었다. 교수님들은 상대평가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수준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지만 그와는 상반되게 노트하나 빌리기도 민망할 정도로 강의실의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그러는 사이 대학 안에서 공부와 학점 사이의 간극은 커졌다.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주로 ‘학점’ 쪽이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현명하게 공부하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학점만 현명하게 받아내라’라는 주문이었다. 그 말은 “시험에 나오지 않을 부분을 붙들고 있지 말고 그럴 시간에 교수님께 가서 눈도장 한 번 더 찍어라.”라는 식이었다. 그런 말이 ‘현명하게’라는 단어를 앞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실속’이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학점 외에 토익, 토익 스피킹, 봉사활동 및 기타 학내활동, 학외활동을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해내기 위해서 공부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학생들이 겉포장에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은 겉포장이 취업경쟁의 ‘참여요건’이 되는 사회의 모습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나는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남에게 인증받기 위한 공부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내가 의도한 적도 없는 경기에서 남에게 지거나 혹은 이겨야 한다는 사실은 도서관에 앉아있는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더군다나 경쟁에 필요한 비용도 우리집 형편으론 만만치 않았고 그럴수록 나의 부담은 커져갔다. 이러한 부담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지라도 무조건 ‘안정적인’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은 열중하고 있는 이 경기에 나 혼자 의문을 가져서 괜히 이도저도 아닌 게 될까봐 두려운 적도 많았다.

(2)
대학에 와서 무조건 안 좋은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으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물론 그게 어떤 공부이든 공부도 하긴 했다. 검도 동아리에 들어서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경험도 했고 스터디 그룹에서 함께 공부하는 즐거움도 알았다. 학내기관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뿌듯함도 많이 느꼈다. 나는 나 스스로 ‘대학생활다운 대학생활’을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대학은 이제까지 젊음을 대표하는 곳이고 그만큼 에너지 넘치는 곳이다. 내가 대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대학이 그러한 에너지들을 어떻게 소모시키고 있는지가 주목해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대학에서 느낀 많은 것들이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대학의 현실은 어둡다. 그런데도 언제까지나 대학의 낭만을 노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학의 공부와는 무관한 활동들을 꼭 대학에 들어와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실은 그만큼 다양한 교육이 보장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애착과 불만이 뒤섞인 대학생활에 졸업이라는 지점이 가까워 올수록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요동쳤다. 경쟁 속에 끼어든 많은 불합리한 사건들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내가 본 많은 학생들이 생각하려 들지 않거나, 모르는 척 하고 싶어 했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자살을 하고, 꿈을 잃고, 생존을 위한 아르바이트에 허덕였다. 대학교 축제가 벌어지던 어느 날, 한창 인기 있던 노래에 맞춰 하나가 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으로는 언젠가 보았던 생동성실험에 대한 방송, 등록금 때문에 휴학을 했다는 선배의 얼굴, 대출금이 쌓여서 무섭다던 친구의 문자 메시지, 축제날임에도 사회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며 모인 달랑 두 명인 동아리원의 모습, 그리고 갖가지 기사들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대학의 진실한 모습은 무엇일까? “축제에 흥겨워하는 저 모습이 대학의 진짜 모습일까?”라고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대학생다운 행동은 바로 ‘대학 거부’

대학의 문제,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침묵하는 동안 그 폐해는 사건들로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혹은 대학에 적응하지 못 하는 소수의 문제라고 치부하며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심각해진 대학의 문제 덕분에 학교와 사회에서도 대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는 것, 물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등록금투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의 구조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다양한 학문을 추구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진짜 대학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당장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고 해도 대학은 반값으로 내린 등급별 취업자격달성소가 될 뿐이다.

나는 ‘대학생’이라면, 아니 ‘젊은이’라면 이 시대의 순수한 지성으로서 행동하여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뼛속까지 느꼈던 많은 문제들을 다른 누군가가 죽음으로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조용히 졸업한다면 나는 그 졸업장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내가 ‘진짜 대학’을 원한다면 나 역시 ‘진짜 대학생’으로 행동하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내 후배들, 내 동생들을 나와 같은 어쩌면 더 심해질 문제의 한 가운데에 방치시켜놓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이 무의미한 경기에서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대학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에 나는 대학을 거부하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가로등이 있는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거슬렀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이런 교육과 사회를 바꾸어야한다고 외치는 우리가, 가로등이 아니더라도 성능 좋은 휴대용 손전등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김서린 님은 바람 같은 여자, 얼마 전까지 대학생이었지만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고 중퇴했습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22:19:2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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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4. 10:18

대학입시거부선언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오늘 우리와 같은 청소년들 수십 만 명이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시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그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걸. 대학입시경쟁은 남의 꿈을 밟고 올라가는 전쟁이라는 걸.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의 과정이라는 걸. 이 경쟁에 미친 입시위주 교육과 불안정한 모두의 삶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사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단단한 제도에 시비를 건다. 조용히 경쟁에서 지쳐 떨어지는 대신, 경쟁에 뛰어들어 남을 짓밟고 뜀박질 하는 대신, 사회가 붙여준 루저라는 딱지를 버리고 스스로 거부자의 길을 택한다.

우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게 묻는다. 어째서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배움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해야 하고 주어지는 정답만을 외워야 하는지. 서로를 도우며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무한경쟁을 견뎌내야만 하는지. 대학은 왜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강요되고, 다양한 삶의 길이 아닌 "명문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이라 하는지. 왜 대학만이 독점적으로 ‘학력’, ‘자격’, ‘지식’을 판매하고, 대학 밖에서는 다른 배움의 길을 찾기 어려운지. 정부와 사회는 왜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우리 개개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떠넘기는지. 점점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해도 우리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늘의 불행을 저축해도 내일의 행복이 오진 않을 것 같고, 불안과 경쟁만이 이어진다. 도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런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가.

우리는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다. 우리는 낙오자라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러한 거부가 낙오가 아니라 온전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기에, 우리는 거부라는 길을 택한다. 잘못된 쪽은 우리가 아니다.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이다.

모두가 자유롭게 배우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이제는 이 교육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교육이 우리의 보편적 권리로서 존재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대학 밖에서도 다양한 배움의 길, 삶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원한다. 무한경쟁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교육을 원한다. 학력이 학벌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으며 학교가 서열화되지 않은 사회, 우리를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는 사회를 원한다.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 달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우리 사회가 모든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 사람다운 삶,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를 요구한다.

우리에게 수능만을, 순응만을 요구하는 교육, 남을 밟는 것 외에 살 길은 없다고 말하는 이 사회. 이것들을 위해 희생하기에는 우리의 오늘이 너무 아깝기에. 학력과 학벌로 인한 차별과 불평등에 갇혀있기에는 우리들의 배움이 너무 소중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선언한다. 여기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노라고. 자유로운 배움을 위해, 존엄하고 안정된 인간적인 삶을 위해, 유예되지 않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 행동하겠다. 살아가겠다.


2011년 11월 10일
대학입시거부선언자들


고예솔 김민성 김재홍 김해솔 문동혁 민다영 박제헌
양현아 이찬우 이현지 임준혁 장주성 전경현 정열음
조만성 최경수 최난희 한소영 (18명)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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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10. 09:58

[나의 대학거부] 내가 배우고 느끼고 싶은 것

고예솔

나는 지금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3이다. 학년으로 고3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초등학교 졸업이 내 학력의 전부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학력인정이 안 되는 학교라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중․고졸 검정고시를 보지 않을 것이고 대학에도 가지 않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그런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은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 청소년에 대한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는 여전하다. 올해 초 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 참여했다. 조례를 제정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서명이 아니라 유권자의 서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청소년 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들었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례를 제정해 반인권적인 행동에 대한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근본적 원인이 되는 입시 위주의 무한경쟁 교육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입시거부 모임에 함께하게 되었다. 

간디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에 대해 별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학이란 가면 가는 것이고 안가면 안 가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게 행복한 것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희생하지 마라. 대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우리는 이렇게 6년간 배워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친구들은 나의 대학입시 거부 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고 격려도 해 주었지만 동참하려 하지는 않았다. 나 자신은 무한경쟁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있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것일까. 하지만 좋든 싫든 학벌만으로 평가받는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있는 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입시 따위랑은 전혀 관계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도 19세 혹은 고3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니 무언가 압박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낮에 학교나 학원이 아닌 곳에 있는 나를 뭔가를 포기한 사람쯤으로 취급하곤 한다.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나의 삶은 대학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런 질문 속에 지내다보면 나도 대학엘 가야하는 것 아닐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먹고살 수나 있을까? 하는 압박감으로 초조해지기도 한다. 무한경쟁 교육 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있다고 할 수 있는 내가 이정도로 압박을 느끼는데 그 속에 살아온 아이들이 느끼는 압박은 얼마나 심할까 싶었다. 그런 압박감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대학에 매여 있는 사회

학교 현장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환경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은 민주사회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민주적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소양을 기르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벌 위주의 사회 속에서 보다 나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학교는 대학만이 목표인 것처럼 학생들을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인권을 논의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논의로 치부된다. 교사들 또한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얼마나 보내는가로 능력이 평가되는 환경 속에서 학생들을 경쟁으로 몰아세우고 권위적으로 억압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산다. 십년 후의 행복을 위해 십년동안의 시간을 공포와 초조함으로 가득 채우고, 마음을 나누어야 할 친구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삶의 가치는 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매순간 순간이 모여서 미래가 되는 것인데 미래에만 의미를 두고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십년이 지나 좋은 대학을 나온다고 행복이 찾아올까?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학벌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 불안한 일이다. 대학졸업장이 없으면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이 사회에서 초졸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지금까지 보호 아래 살던 내가 이 문제 많고 험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더군다나 사회가 요구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걷고자 한다는 것이 두렵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대학을 목적으로 한 그런 공부가 아닌데 그것 말고 다른 배움을 추구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 건 이 사회의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다양한 꿈들이 존중되고 그들이 다양한 선택을 당당히 말하고 꿈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대학을 가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학은 지금처럼 학벌로 줄 세우는 사회에 의해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대학입시에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학교 현장에서나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이 운동은 입시위주 교육이 낳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문제제기라고 봐주면 좋겠다. 문제 당사자인 청소년들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대안을 찾고 교육의 진정한 목표를 찾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교육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답을 다시 찾아나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나는 졸업을 하고나면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살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면 귀농할 생각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많은 것을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학졸업장을 따는 일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이 아니라도 이 세상에는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 많고 거기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고예솔 님은 대안학교를 다니며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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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4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8일 15: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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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1. 8. 20:57


대학거부선언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여기,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거라고들 하고,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재촉을 받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 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수백만원의 등록금 고지서에 숨이 막혔습니다. 대학 안에도 선후배 사이의, 교수 학생 사이의 권위주의와 수직적 문화가 우리를 괴롭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적에 따라 대학에 왔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나의 진정한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학문의 다양성과 자유는 줄어들어갔습니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고 경쟁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한 길만을 강요하는 교육, 수능과 입시라는 거대한 서열화의 장,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돈 때문에 성적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학에 가는 이유를 찾지 못해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순간, 그래도 괜찮다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우리를 ‘괜찮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우리는 많은 것을 겪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훌쩍 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차별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학력을 묻고, 주변의 사람들은 출신 대학을 학번을 따져 묻습니다. 남자라면 대학을 이유로 군대를 좀 미뤄보거나 고민해볼 새도 없이 열아홉, 스무 살에 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자꾸 재촉하기만 합니다. 너희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 그만큼 뭔가 남다른 성과를 내놓아보라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거나 해보려 할 때 사회는 그것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따져 묻고 재촉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대학을 그만두거나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대학 거부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대학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로 주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애써 찾아서 배우는 그 과정 뿐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듭니다.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할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합니다. 대학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사회는 차별과 배제의 이빨을 들이댑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오는 '대학중심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들 말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그러니 너희 모두 지금의 삶은 잠시 유예해야 한다고. 결국 우리는 대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 되도록 떠밀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을 가야 하는 줄 알고, 대학을 못 가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줄 알고 반강제적으로 의무적으로 대학에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결국 우리 중 다수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유예나 '88만원세대'의 삶이라는 것을. 또 우리는 압니다. 그 레이스에 서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오자, 패배자, 루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지를. 그런 현실은 자살율 세계 1위의 대한민국, 20대 사망원인 중 절반 정도가 자살이라는, 끔찍한 통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랍니다. 대학을 강요받지 않는 사회, 우리가 대학을 진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하루하루 피 마르는 경쟁교육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교육을. 학력과 학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지금의 잘못된 기준이 사라진 사회를. 스펙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학벌․학력이 어떻든 차별 받지 않고 정당하고 충분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를.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열아홉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 "20대의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우리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의 요구와 목소리를 함께할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와 대학,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거부와 선언과 행동이 지금의 대학과 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1일

 

강현, 경성수, 고다현, 공현, 그링, 김서린, 김슷캇, 김지훈, 김희영, 난다, 박고형준, 박유리, 박주희, 시원한 형, 아즈, 어쓰, 엠건, 윤티, 은총, 이나래, 이승환, 이정은, 이해인, 임준혁, 정도(김자니), 정한얼. 지혜, 채유리, 형우, 호야 (가나다 순, 총 3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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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25 16:2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1. 8. 13:03

[나의 대학거부] 그다지 거창하지는 않은

어쓰


(1) 작년, 열아홉 살 때 처음으로 청소년인권활동을 시작했다. (2) 이미 고등학교는 자퇴한 상태였고, 그렇게 나름 열심히 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스무 살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3)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해가 지나 스무 살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나는 비(非) 대학생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끝.

이렇게 달랑 세 문장으로 정리되는 ‘나의 대학거부’를 글로 풀어 쓰려고 하니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한 번, 조금 더 길게 주절거려 보자면…….

1. 열아홉, 청춘?

2008년, 촛불집회가 한창이었던 그 때, 청소년들의 사회참여가 어쩌고저쩌고 시끄러웠던 그 해 여름, 광화문이나 시청 한 번 안 가고 나름 착실하게(?) 살다가 학교를 자퇴했다. 뭔가 뚜렷한 생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학교에서 매일매일 맞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마치 재채기가 튀어나오듯이 덜컥 저질러버린 자퇴였다.

그렇게 학교 밖에서 살아가게 된 후, 대안학교에도 가보고 이런저런 공간들에도 갔지만, 대개 아무 것도 안 하고 멍하니 살았다. 하루에 20시간쯤 자보기도 하고, 온종일 만화책만 보면서 뒹굴거리기도 했다. 한 2주일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기도 하고,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뭘 할까를 고민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주로 음침하고 우울하게, 그리고 쓸모없게 살아갔다.

‘10대’, ‘밝음’, ‘반짝반짝한 청춘’ 따위는 대부분의 경우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었다. 적어도 나의 10대는 전혀 반짝거리지도, 보람차지도 않았던 것 같다. 뭘 해도 즐겁다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그 ‘청춘’은 나를 비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청소년인권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는데, 열아홉 살, 작년에 썼던 글들의 대부분이 ‘힘들고 막막하고 서럽다’ 로 요약되는 걸 보면 확실히 드러나더라.

처음에는, 학교를 자퇴한 걸 후회했다. 자퇴를 할 당시 수도 없이 들었던 “조금만 더 참지 그랬어”라는 말을 내가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삼 년만 더 참아볼 걸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지금 나의 이 우울함과 찌질함은 전부 다 ‘고등학교→(수능)→대학교’라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그 루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고민들을 정리하거나 추스를 틈도 없이, 어느 새 어영부영 스무 살이 됐다.

위 사진:지난 10월 31일 홍대 앞 거리에서 진행된 '입시좀비 스펙좀비 할로윈행진'.

2. 스무 살, 인생

사실 스무 살이 됐을 때, 내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이라는 장소는 오히려 나에겐 그렇게 가깝거나 실감나는 장소가 아니었기에, 학교에 다닐 때의 친구들이 다들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내가 그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됐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열아홉 살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은, 딱 어느 시점이라기보다는 그냥 서서히,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계속 청소년활동을 하면서 살아가다 보니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뭐 먹고 살지?’부터 시작해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까지. 5년 후, 10년 후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나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리고 나이에 따른 위계/권력에 반대하는 소위 ‘운동판’에서 주로 생활하다 보니 나 자신도 그렇게 나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지만, 또 딱히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단지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넘어왔을 뿐인데 이렇게 어쩔 줄 몰라 하며 불안해하다니.

‘모든 건 구조의 탓이다’라는 식의 논법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런 식의 거창한 의미부여와 과장된 불안함 역시 이 사회에서 ‘스무 살’, ‘성년’들에게 요구하는 그 역할과 의무들을, 동시에 스무 살이 되는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권리와 권한 - 술/담배부터 시작해서 투표권 등 정치적 권리까지 - 들을 무시하기 힘들었던 탓이 아닐까, 라는 식의 생각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에, 같이 활동을 해오던 93년생/19살 친구들의 대학/입시거부운동이 시작되었다. 19살/고3들의 선언 외에 20대의 대학거부선언도 준비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같이 운동을 꾸려나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또 했다.

사실 어떻게 살지 모르겠고 불안하고 힘든 건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학/입시거부 운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대학을 안 가면 살기 힘들지만, 사실은 대학에 가더라도 살아남기 힘든 사회.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누가 과연 ‘나는 행복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사회는 조금이라도 외곽에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쳐내는 방식으로 아직까지는 내쳐지지 않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쟤네가 힘든 건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야. 너희는 대학에 갔으니까, 너희는 괜찮아.” 하지만, 정말 괜찮은가?

결국 문제는 어떤 한 개인이 대학에 갔거나, 가지 않았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사회가 불안하다는 것.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지기 힘들다면, 지금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렇기에 대학을 거부함으로써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보려는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것. 그래, 다 안다. 알지만.

3. 그래도?

뭐 이렇게 글을 써봤자 그런 불안함이 절대 사라지지는 않더라. 여전히 불안하고, 뭐 먹고 살아야 할 지 모르겠고,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리고 당분간, 아마도 높은 확률로 평생 이런 불안함들을 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위 사진:지난 10월 22일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대학입시 거부 뻥튀기 선전전' 중.

설령 그렇더라도, 모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그래도 내일은 조금 더 행복해질 거야’ 따위의 근거 없는 믿음으로 나를 속이면서 사는 것 보다는, 힘들더라도 그 불안을 직시하고 사는 게 조금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혼자서 불안해하며 끙끙거리는 것 보다는 “나 힘들어, 너도 힘들어? 그러면 어떻게 해 볼까?”같은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그래도 약간은 더 마음 편하더라.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에서 활동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지 않은 20대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기뻤다. 이 사회에서, 각자의 불안을 그저 혼자서 처리하라고 요구받는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추스르며 살아가고 있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어느 한 새벽, 문득 찾아오곤 하는 참을 수 없는 그 감정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잘 상상이 안됐다. 그런 얘기들을, 그런 고민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게 내가 찾은 대학거부운동의 의미였다. 일단 지금은, 그리고 당분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원해보자면, 이런 불안들을 함께 털어버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단순히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 받고 위로받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 협동조합일 수도 있고 네트워크일 수도 있는 ‘모임’을 꾸려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박하면서도 사실 엄청나게 거창한 꿈을 꾸며, 정작 그다지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은 나의 대학거부 이야기는 여기까지. 흠.
덧붙이는 글
어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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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73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2일 13:40:26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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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사이트는 내 일 밤낮의 이전 커플 조금씩 작성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은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트북이나 컴퓨터의 시스 세션 귀하의 블로그를 보니 아마도 믿고 그 또는 그녀가 유사한 것은 당신을 위해 전처 발생했다. 단지 어떤 개념에 대해?

    2011.11.26 23:5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1. 8. 13:02

[나의 대학거부] 난 대학 안가, 못가, 가기 싫어, 상관없어!

쩡열


나는 대학거부를 앞두고 있는, 학교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는 빠른 94년생인 19살이다. 아니 사실 대학거부를 앞두고 있다고 말하기는 무언가 많이 낯부끄럽다. 딱히 비장한 마음으로 준비하는 대학거부가 아니다. 그냥 갈 생각이 없어서 가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주변사람들이 놀리는 것처럼, 검정고시로 봤던 중졸이 최종학력인 나는 고졸의 학력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대학에 갈 수도 없다.

나에게 대학은…

살면서 대학에 가고 싶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꽤나 분명하게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 때 좋아하는 주변 어른들 중에 성균관대를 졸업한 사람이 많으니까 ‘나도 저기 가보고 싶어!’라고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물론, 교원대와 교대가 같은 곳인 줄 알았던 시기였다. 중학교에 가면서 슬슬 “너는 꿈이 뭐야?”라는 질문들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그때 나는 소설책 읽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작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은 당연하게 가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대학교 어느 과에 가야 하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리고는 문예창작과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시절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알아서 생활해야 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고민은 “오늘, 내일 뭘 할까?”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전에 대학에 대해 했던 고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대학에 안가겠다는 결심이 거의 굳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별로 생각을 안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대안학교에도 보냈고, 학교를 안 다니게도 했던, 이 사회에선 나름 특이한 사람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에 종종 “니가 정말 가고 싶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대학에 가라”, “니가 돈 벌어서 다녀라”, “대충 당연하게 가야 되니까 가서 놀다올 거면 지원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물론 ‘니가 돈 벌어서 다 다니라’는 말은 농담이고 으름장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말들과 내가 살아온 그 분위기가 나에게 꽤 영향을 주기는 했나보다. 게다가 일제고사 반대, 주입식 교육 반대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청소년 인권활동과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단체를 만나게 되면서는 대학이라는 것이 내 미래에 대한 고민과 구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어졌다. 나에게는 대학 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하고 싶고 궁금한 일들이 사방에 깔려있는데 대학이 뭐 중요하겠는가! 아직 먼 얘기였고, 내 관심사는 대학과 그다지 상관이 없었으니까.

대학생이 되는 건 ‘골드민증’ 같은 사회가 주는 허가증인 거야?!

안타깝게도 대학에 신경 쓸 겨를 같은 건 금방 생겨버렸다. 하하. 어느덧 18살, 학교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대학 가긴 늦었다는 감이 오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찼던 시기였다. 슬슬 내가 알던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온갖 청소년 보호법에서 자유로운 골드민증마냥, 사회가 준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받아서 생기는 혜택들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재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대학도서관이라는 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자료가, 마음껏 쓸 수 있는 그 공간이 부러웠다. 20대를 당연히 대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대학생 때는 실컷 놀기도 하는 거지~’라며 놀 수 있게 주어지는 그 시기도 부러웠고, 다른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만 찾아다녀도 될 것처럼 보는 게 부러웠다. 공부만 해도 괜찮은 시기인 게 부러웠다.

물론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다른 상황들이 떠오르긴 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대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학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 수업이 별로일 수도 있을 것이고 뭐 이런저런 우울한 대학생들의 반론 같은 것. 하지만 저 때의 고민이 품고 있던 것은 물질적인 그 무언가가 아니었다. 말로 풀려니 잘 안되지만 간단하게 말해보면, ‘유예기간’이라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대학을 가지 않는 이들은 20살이 되는 순간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안정적으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나갈 시기가 없다. 하지만 1년에 1,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한다면 사회는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붙여 안정적인 유예기간을 준다. 10대에게서 수능과 대학, 공부 이상의 것을 생각할 권리도 고민할 권리도 다 앗아가려는 이곳에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할 때에는, 제대로 고민해볼 틈도 없이 냅다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위 사진:'저공비행'(저항을 공부하는 비행 청소년들의 줄임말) 중.

비싼 응급실

대학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은 나를 너무나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난 뭘 해야 하지? 잘 모른다면 대학에 가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떻게 먹고살지? 알바도 대학생 우대하는 이 상황에서 내가 중졸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지금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그 불안의 강도가 달라질 뿐 늘 내 안에 잠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불안은 대학이 만들어내는 불안만은 아니고, 꼭 대학에 대해 고민을 하고 또 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대학에 묶여서 사고하게 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내가 현재 하고 싶은 것을 잘 모르겠고, 뭘 할지 잘 감이 오지 않을 때에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19살은 당연히 대학이라는 예제만을 끊임없이 보고 자라니까 대학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안에 들어가서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찾아보겠어!’라고 대학에 무턱대고 들어간다는 건, 늦은 밤에 응급실에 들어가 훨씬 비싼 진료비를 내야 하는 상황만큼이나 돈도 아깝고, 입안도 쓸 따름이다. 그런 식의 응급처치로 대학에 갈 바에는 조금 막막하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18살의 분노와 부러움을 지나 19살이 된 지금은, 전문적인 공부를 하려는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갔을 때에는 너무나도 반갑게 함께 공부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 청소년 인권활동 등을 하는 청소년 활동가들이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고 노력했던 ‘저공비행’도 있었다. 그리고, 알바한다고 열심히 함께하지 못하지만 ‘투명가방끈’도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의 실마리들이다.

그래서 우린 네트워크가 필요할 꺼야

대학입시거부토론회에 패널로 와주었던 지나가던 시민이 대학 진학률 80퍼센트의 이 나라에서는 곧 고졸들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그 말에 얼마 전 우연찮게 들어본 고졸 네트워크가 떠올랐다. 고졸의 학력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사람들이 모이는 네트워크라니!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대학을 가지 않고, 불안해 할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네트워크가 줄 위안과 현실적 안정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 그 행복한 상상이 정말 현실이 되게 하는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일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나를 종종 흔들어댈 것만 같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나중의 누군가가 대학을 쉽게 선택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쩡열 님은 교육공동체 나다에서 활동하는 중이며, 공부도 돈벌기도 쉽지 않은 10대 끝자락을 보내고 있습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3 호 [기사입력] 2011년 11월 02일 13:47:3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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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1. 14:35




불안하고 불행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자!


대학입시거부선언!!!!


참여대상
: 대학입시를 거부하고자 하는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3학년 학생 / 19살(93년생) 청소년들



참여방법
: 대학입시거부선언에 동참하실 분들은 첨부되어 있는 선언지를 작성하신후, 투명가방끈 공식메일로 보내주세요 (wrongedu@gmail.com)

 


작성시 주의사항

- 성함은 본명으로 적어주세요

- 핸드폰이 없으시면 연락가능한 집/사무실번호를 적어주세요



참고사항
- 별도의 선언비나 참가비는 받지 않습니다, 재정을 지원해주시고 싶으시다면 후원으로 함께해주실수 있습니다 :)

- 11월9일 수능시험 전날 오후7시부터 최종선언문과 추후 활동계획이 논의되는 <거부자총회>가 진행되고, 11월10일 수능시험일 오전10시에 <선언발표기자회견>이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날 참석이 어려운 분들도 선언에는 함께 참여하실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함께 참여해주세요/자세한 내용 추후 공지)




(선언지 작성 샘플)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 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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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0.22 10:0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10. 21. 14:31




대학, 정말 다들 가야만 하는 곳일까요?

대학이 더 큰 배움을 위한 고이 아니라 취업준비소가 되고 기업화되고 있는 현실
수백만원의 비싼 대학등록금을받아가며 졸업장, 학력 장사를 하고 있는 대학들의 모습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치열한 입시경쟁
대학을 졸업해도 먹고 살기는 만만치 않은 <88만원세대>의 현실
고졸자에 대한 차별, 출신 대학에 따른 차별이 뿌리 깊은 사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대학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합니다.
이런 잘못된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들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선언을 발표하고 운동을 하려 합니다.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 대학중심사회를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교육을 사회를 세상을 바꾸는 대학거부선언! 함께해요!

참여자격 : 20대 이상, 대학을 애초 가지 않았거나 다니다가 자퇴한 사람
참여기간 : 2011년 10월 30일까지! (11월 1일 발표 예정)

참여방법
★ 대학거부선언문 초안을 읽어본다.
☆ disuniversity@gmail.com 로 선언에 참가한다는 메일을 첨부한 양식에 맞게 작성해 보낸다.
★ (이미 자퇴를 했거나 아예 대학을 안 갔었다면 그냥 패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한다.
☆ 선언문에 대해 고치거나 덧붙이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의견을 보탠다.
★ 대학거부/대학입시거부선언 운동의 여러 활동들에 열심히 참여한다.

※ 대학거부선언은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같이 하는 활동입니다~ http://cafe.daum.net/wrongedu1





20대 대학거부선언 참여
*작성 후 disuniversity@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이        름

 

연   락   처

 

대학거부방식

대학 중퇴 // 비진학

이   메   일

 

하고 싶은 말

 

 

 

대학에 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에서,
대학에 가더라도 불안하고 불행한 이 사회에서
다시 한 번 이 사회에 하이킥을 날리고자 하는
20대들의 대학거부선언에 동참합니다.

2011년   월   일





[20대 대학거부선언 초안]

20대 대학거부선언

- 우리는 낙오자가 아닌 거부자입니다


  여기,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대학중심주의'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질 거라고들 하고,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재촉을 받습니다. 그래도 대학에 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헷갈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을 그만둔 사람들입니다. 입시에 찌들어 살던 10대를 보내던 시절에 듣곤 했던 “오늘만 견디면 내일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이야기는 그저 말 뿐.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레이스에 진입했다는 느낌만 강해졌습니다. 미쳐버릴 것만 같은 수백만원의 등록금에 숨이 막혔습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적에 따라 대학에 왔고, 수강신청을 하지만 나의 진정한 자유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졸업장을 얻기 위해 학점을 관리하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오로지 ‘명문대’라는 한 길만을 강요하는 교육, 수능과 입시라는 거대한 서열화의 장, 대학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되는 대학중심사회, 학벌사회의 폭력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돈 때문에 성적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대학에 가는 이유를 찾지 못해 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남들 다 간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스무 살이 되는 순간, 그래도 괜찮다는 우리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사회는 우리를 ‘괜찮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대학에 다니지 않는 우리는 많은 것을 겪었고, 앞으로도 겪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80%가 훌쩍 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겪은 차별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학력을 묻고, 주변의 사람들은 출신 대학을 학번을 따져 묻습니다. 남자라면 대학을 이유로 군대를 좀 미뤄보거나 고민해볼 새도 없이 열아홉, 스무 살에 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한편, 사람들은 자꾸 재촉하기만 합니다. 너희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 그만큼 뭔가 남다른 성과를 내놓아보라고.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거나 해보려 할 때 사회는 그것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도와주기는커녕 그저 바라봐주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가지 않은 것은, 더 좋은 삶, 나중이 아닌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대학 거부가 우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의 배움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대학만이 유일한 배움의 길로 주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애써 찾아서 배우는 그 과정 뿐 아니라,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견디기 힘듭니다. 앞으로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고들 하는 차별과 불이익은 우리를 더욱 막막하게 합니다. 대학에서 벗어난 우리에게 사회는 차별과 배제의 이빨을 들이댑니다.


  이렇게 이미 한 번 대학을 거부한 후에도 끈질기게 따라오는 '대학중심주의'에 치를 떨면서도,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대학을 거부하고자 합니다.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들 말합니다. 대학에 가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고. 그러니 너희 모두 지금의 삶은 잠시 유예해야 한다고. 그러나 대학에 가 본 우리는 압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를 유예해야 하고, 불안과 좌절감에 자신을 더욱 '스펙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결국 우리 중 다수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취업을 위한 또 다른 유예나 '88만원세대'의 삶이라는 것을. 또 대학에 가지 못한 사람들, 가지 않고 다른 길을 찾으려는 우리는 압니다. 그 레이스에 서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오자, 패배자, 루져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부당한지를.


  우리는 바랍니다.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하루하루 피 마르는 경쟁교육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꽃 피울 수 있는 교육을. 학력과 학벌이 행복의 척도가 되는 지금의 잘못된 기준이 사라진 사회를. 스펙을 위한 곳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고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의 전당이 된 대학을. 대학이 아닌 곳에서도 더 많은 교양과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교육을. 모든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든, 대학을 안 갔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모든 사람들이 행복이 유예된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늘이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그리하여 대학에 가는 것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위해, 우리는 열아홉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함께 "20대의 대학거부"를 선언합니다. 지금의 사회와 대학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이 거부와 선언이, 외침과 행동이 지금의 대학과 사회를, 더 나아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1년 11월 1일 (예정)


(이후 선언에 참가하는 분들의 이름을 추가해 나갈 예정입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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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10. 20. 01:33

[나의 대학거부] 고졸 스무 살, 저는 안녕합니다

호야



[편집인 주] 2012학년도 수능과 입시철을 앞두고 대학입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학력을 비유하는 ‘가방끈’을 비꼬아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을 지은 19살 청소년들이 준비하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은 입시경쟁, 학벌사회, 불안정노동, 양극화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불복종 운동이다. 진작 대학을 안 갔거나 자퇴한 사람들도 함께 <대학거부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한때는 대학에 안 가는 인생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학에 안 가고도 사지 멀쩡, 정신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대학에 안 가면 삶이 끝날 것만 같은 이 땅에서 고졸자로서 목소리를 내고자 글을 써본다.

고졸 인생의 서막

나는 사실 대학 거부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을 모아놓고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공부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 학교 학생들은 모두 대학을 목적으로 그 학교에 진학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대학에 대한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나의 제도교육에 대한 반감은 고등학교 3년간 서서히 발전을 거듭했지만 난 차마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고3 봄, 아직은 조금 쌀쌀했던 3월의 어느 날, 고려대 김예슬 씨가 대학을 자퇴했다. 나는 당시 경향신문을 보고 있었던 터라 그날 아침 1면에서 그녀의 소식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내 반응은 ‘드디어 대학생의 입으로 신자유주의가 삐걱대는 소리를 듣는구나!’ 뭐 이런 거였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을 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려워졌다. 고3이라는 멍에가 나를 죄여왔고, 더 이상 깊은 고찰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만 ‘나도 대학이 별로 맘에 안 들면 박차고 나와야지.’라고 생각한 채 다시 입시공부에 몰두했다.

나는 그때까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제도교육의 목에 비수를 꽂자.’ 나의 고3 좌우명이었다. 그 말인즉슨 일단은 제도교육에게 몸이고 마음이고 다 내주고 교대에 가서 교사가 되어 제도교육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계획은 올해 2월 1일, 정시 다군 발표가 있던 날 산산이 깨졌다. 불합격. 가, 나, 다군 정시에서 몽땅 떨어져버린 것이다.(수시는 쓰지 않았다.) 예상치 않게 틀어져버린 인생에 눈물이 나왔다. 그날 공교롭게도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에 가야했던 나는 진료가 끝나고 나오면서 신촌 대로를 질질 짜며 걸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인생, 이제 어쩔 것인가. 나는 고뇌에 빠졌다. 나는 내 삶의 1년을 또 유보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그것은 해선 안 될, 할 수 없는 짓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김예슬 씨가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도 나눔문화에서 활동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나는 1월 말부터 아수나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 나도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면서 내 인생을 대학 없이 그려 나가보자. 나는 그렇게 용기를 얻어 다시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나의 ‘고졸자’ 인생의 서막이다.

대학 거부, 그 이후_ 고난

그럼 대학을 거부한 이후에 나의 삶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먼저 고난 편. 내가 대학생이 아닌 ‘고졸 스무 살’로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고난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자퇴랑 아예 안 다닌 거는 전혀 다른 거야! 그래도 일단 가보고 결정하자.”, “재수는 훨씬 쉬워, 이미 공부한 거 한번 더 하는 거잖니.”, “1년 그걸 못 참냐.”, “사이버대학이라도 원서 넣는 게 어떠니?” “우리 언니가 대학을 안 가다니! 언니, 재수하면 안 돼? 친구들이 너네 언니 어느 대학 갔냐고 물어보면 쪽팔려.” … 고졸자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선포한 후 가족들에게서 들은 수많은 말들은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초기에는 재수를 끊임없이 종용하던 말들이 시간이 흘러서는 “돈이나 벌어라”, “언니 취직 안 해?”로 변해갔다. 나는 한순간에 집에서 가장 창창했던 사람에서 가장 무가치한 사람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지갑을 여는 어머니가 눈치를 주기 시작하고 동생에게서 멸시의 눈빛을 받는 기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가정에서의 탄압도 힘들었지만 사회에서의 차별도 피부로 다가왔다. 대학 진학자가 80%에 육박하는 이 사회에서 나는 ‘유별난’ 20대였다. 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나 강연의 이름에는 언제나 ‘대학생’이 있었고,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생이시죠?”하고 운을 뗐다. 이 사회의 ‘대학중심주의’는 도처에서 나를 공격해왔다.

대학 거부를 결심했을 때 앞으로 펼쳐질 고난은 각오했지만 버겁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가끔은 정말 대학생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의 미래가 너무나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은 취업의 관문까지는 자기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너의 미래를 그려내 보여줘!’라며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나는 기껏해야 몇 주 앞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누군가 체계적으로 닦아놓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그려낼 수 있는 미래 청사진의 양이 행복과 비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한 압박과 차별들이 대학에 안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가정과 사회 도처에 깔려있는 대학중심주의와 학벌 차별, 이제 아파하고 있지 말고 우리도 아프다고 소리쳐 보는 건 어떨까.

대학 거부, 그 이후_ 변화

이번에는 변화 편이다. 고졸 스무 살로 살아가면서 상처도 받았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학에 안 가면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던 그 압박감은 단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번엔 나에게 일어난 변화와 대학 거부에 관한 나의 생각을 풀어보겠다.

대학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만약 내가 운 좋게 그때 대학에 합격했더라면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4학년처럼, 과제와 시험에 여전히 시달리면서, 거기에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장학금을 노리려고 정말 대학 공부에 몰두하는 인생. 결국 젊음의 증표인 저항을 실현할 기회는 쥐꼬리만큼 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쥐고 있던 것을 (반강제적이었지만) 놓음으로써 변화했다.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나의 의식을 깨고 나온 것이다.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접속하여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에 소리치기 시작했다. 소리치는 것에 비해 그 반향은 아주 미약했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소리치고, 움직이면서 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가 대학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취업→결혼(가정)=행복한 인생’이라는 공식에 돌을 던지고 싶어서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대학의 존재 이유와 내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다. 분명 개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 사회인데 왜 정작 본인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기를 미루고 다들 정해진 루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대학 진학률 80%는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학에 관한 진지한 고찰 없이 그냥 너도 나도 가는 것,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는 자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의미가 아닐까?

최근 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을 보고 놀랐다. 거기의 진로 상담 부분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 명확하게 나온다. 대기업에 취직하려면 스카이(SKY;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뜻하는 은어) 중 한 곳에 들어가서 토익 몇 점을 넘기고 해외 어학연수를 가고 성형수술을 하고…. 우리는 그저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저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길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쁘다,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부딪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 나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분명 불안하고 어두컴컴한 가시밭길이겠지만, 그것이 내가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변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탈학교 예찬자가 되었다는 것일까. 나는 12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가 나에게 주는 억압에 대해서 불평만 할 줄 알았지 어떠한 거부도 하지 못했었다. 지난 9개월간 학교 밖을 나와 여러 가지 활동과 세미나를 하면서 ‘길 자체가 학교’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나는 지난 3년간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들을 이 9개월간 길에서 배웠다. 유유상종하던 학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함께 활동하면서 나의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 또한 대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공부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찾아보면 여러 가지 세미나를 하고, 함께 살아갈 방안을 모색하는 대안 공동체들이 꽤 있다. 나도 그중 한 곳과 접속하여 몇 달간 세미나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대학을 안 가면 배우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배움은 도처에 있다.

앞으로의 행보

대학에 가든 안 가든 행복한 삶에는 언제나 질문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 어디서든 나에게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이 있다면 배우게 되고, 내가 갈 길이 보인다. 그런 질문을 갖지 못한다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게 된다. 나도 한동안 갈팡질팡 했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좀 알 것 같다. 나는 불의에도 자주 침묵하고, 도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학교에 다니던 12년간 순응만을 배워서 그런지 머리는 저항하라고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나는 불의를 맞닥뜨려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 또 내 마음이 가라는 데로 충실히 갈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꼭 하고 싶었던, 한번뿐인 기회들을 날려버리는 일이 많다. 좀 더 나에게 떳떳하고 솔직한 내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아직 나는 글 외에는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음악, 미술, 춤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내 꿈은 이 정도다. 이 꿈들과 나의 질문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아직 어떤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직업이면 더 좋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비춰 주리라 믿는다. 요즘 나를 장악하고 있는 키워드는 자립과 주거권이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 상반기에 아수나로 친구들과 스쾃 운동을 해 보는걸 제안해보고 싶다.

다시 대학 거부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땅의 약 20%, 대학생 아닌 20대들이 조용히 입 닫고 사회의 흐름에 묻혀 살아간다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입을 열고, 여기 우리도 있다고 외친다면 어떨까. 무언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이번 대학입시거부 20대 선언이 개개인이 조금씩 틀에서 빠져나와 균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아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원 없이 외쳐보면 좋겠다. 부디 많은 분이 용기 내어 동참해주시길! 가지 않은 길, 분명 어려운 선택이지만 한번 뿐인 인생이라면 조금 스릴 있게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호야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8일 18:14:5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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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1.10.20 02:33 [ ADDR : EDIT/ DEL : REPLY ]
  2. 나동

    접때 중국집에서 밥 먹으면 한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었네요. 한겨레 1면 나온 거 보고 깜놀..
    앞으로 욕 많이 드실텐데 기운내시고 저처럼 맹목적이고 열광적인 팬도 있으니..ㅎㅎ

    2011.10.20 23:25 [ ADDR : EDIT/ DEL : REPLY ]
  3. Very good, thanks for sharing

    2013.01.02 14:35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1. 8. 29. 04:25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꾸는

93/고3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과 행동을 제안합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안정적인 삶, 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달리고 달리는 경쟁 속에서 허덕이며 언제 벗어날지 모를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우리들. 그 안에 우리의 행복, 다양성, 상상력 그리고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것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입시정보를 쑤셔 넣는 와중에 '비효율적인' 토론과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와 열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인서울․SKY 이른바 ‘명문대’ 간판이 없으면 기회 한 번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거대한 학벌의 벽에 좌절하고 자신의 무능력과 의지부족을 탓하며 또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를 돌린다.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고 불행하다. 88만원 비정규직 쓰나미와 학벌의 벽이 가로막은 미래에 어른들이 약속한 더 나은 삶과 행복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불안하다. 그래도 더 좋은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행복 ‘따위’는 포기해야한다는 압박에 쫓겨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오늘도 쳇바퀴를 돌린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질문할 시간도 이유도 없이 우리는 달린다. 모두가 달리는데 나만 혼자 멈춰서면 나의 삶도 멈춰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쫓겨….


하지만 우리는 용기를 내본다. 입시에 학벌에 쫓겨 교육의 목표도 인간관계의 기준도 점수가 되어버린,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대학입시를 거부한다. 우리는 어른들과 이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미래 성공’의 환상을 버리고 불행하고 불안한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전국의 93/고3들이 함께 용기를 내주길 감히 제안해본다. 이 사회가 이 교육이 그리고 우리들이 더 이상 경쟁과 학벌에 미쳐버린 괴물이 되기 전에 이 쳇바퀴를 벗어던지자!


이 견고한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무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가방끈 짧은 우리들을 향할 차별적 시선과 편견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기 내어 이 불편한 길을 걸어가려 한다. 이 길이 어른과 사회기득권층이 말하는 거짓된 장밋빛 성공스토리보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와 교육을 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입시와 취직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교육, 돈이 없어도, '명문'학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교육, 주입과 강요가 아닌 토론과 소통이 꽃피는 교육, 학력/학벌로 사람을 단정 짓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침묵하지 않는 우리의 작은 용기와 실천은 우리 사회를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꿔낼 혁명이다. 주저하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잘못된 교육을 거부하고, 잘못된 사회를 바꿔보자!


2011년8월27일

제안자 : 공기, 다영, 둠코, 따이루, 쩡열



<이렇게 함께해보아요>


1. 9월3일(토) 낮2시30분부터 서울서대문에 위치한 민주노총본부회의실에서 '대학입시거부 런칭기념회의'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무엇을 외치며, 어떻게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저항할 것인가 수다도 떨고 계획도 세우고 요구안도 만들어봅시담!


2. 93,고3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행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3일 런칭회의후에 공지될 예정입니다! 카페와 트위터를 확인해주세요



카페: cafe.daum.net/wrongedu1 / 트위터: @wrongedu / 문의: 010-7270-1900(따이루)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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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5. 18. 05:21


“사람이 되어라”와 “학생도 사람이다”


공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사람이 되어라」는 한국의 학생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학생들은 모두 사람이 아닌 원숭이이다. 교문에 커다랗게 박힌 글자가 수백 학생들의 등굣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먼저 사람이 되어라.” 먼저 사람이 된 선생님이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 학교에서 말 잘 듣고 남을 도우며 공부를 열심히 하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곳. “대학 가서 사람 되자.”라는 급훈이 걸려 있는 곳. 「사람이 되어라」에서 그리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인 원철이는 숲에서 학교 공부에는 영 흥미가 없는 자신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사람이 된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원철이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니 맘대로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해! 사람은 대학 가고 나서 되는 거야!”라고 호통을 치며 체벌을 하는 선생님. 학교를 뛰쳐나온 원철이는, 사람 안 될 거냐고 어서 학교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전 이미 사람이에요!”


나는 종종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학생인권 캠페인 같은 것을 하곤 한다. 최근에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하다보니 거의 매일 같이 3개월 동안 하루 6~8시간씩 캠페인을 했다. 그러다보면 지나가던 사람에게서 “아니, 그럼 학생이 사람이지 돼지에요?” 같은 장난스러운 질문을 심심찮게 받곤 한다. 가끔은 “「사람이 되어라」에서 보니까 원숭이던데요.” 하고 대답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말할 것도 없겠지만, “학생도 사람이다!”라는 말이 학생들이 생물학적으로, 지금까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현생 인류)가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오히려 생물학적으로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사람으로 대하라는 요구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학생을 사람대접하지 않는 사회

학생들이 사회적으로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학생 ―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폭력’을 당해도 되는 몇 안 되는 집단 중에 하나이다.(다른 집단으로는 군인 정도가 있겠다. 군인의 경우, 직접 때리는 구타는 금지되어 있지만, 얼차려나 기합은 가능하다. 교도소에 수감된 수감자들의 경우, 때리는 것이나 ‘기합’을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구속구를 채우거나 독방에 가두는 것은 가능하다.) 그나마 최근에 서울, 경기도, 강원도 등은 학교에서 체벌 완전 금지를 선언했고 교육과학기술부 또한 법령을 개정하여 학교에서의 때리는 체벌은 금지한다고 발표한 것도 큰 진전이다. 그러나 여전히 가정이나 학원에서는 반(半)합법적으로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많은 학교에서 체벌이 일어나고 또 묵인되고 있다.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서기’ 등의 기합을 받다가 목숨을 잃은 학생들까지 있는데도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기합’ 같은 형태의 ‘때리지 않는’ 체벌은 계속 허용(조장?)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학생 ― 청소년들은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권리를 원천 봉쇄당한 몇 안 되는 집단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질적으로는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절차적으로라도 의견을 제시하고 투표나 공청회나 기타 여러 형태로 자신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이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투표권을 가지지 못하며, 이에 더해서 정당 가입, 정치 활동 등을 포괄적으로 제한당한다. 최근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때문에 위헌소송을 검토하다가 안 건데, 심지어 자신의 기본권 침해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을 청구하려고 해도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또한 청소년들은 주민발의나 주민투표 등, 법적으로 유효한 서명에 참여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교육 정책이나 청소년 정책을 결정할 때 정부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절차조차 제대로 가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학생회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학생들의 ‘특별 활동’의 한 종류로 규정되어 있는 형편이다.

그밖에도 하나하나 청소년들의 ‘당연한’ 일상을 뜯어보면 참 당연하지 않은 일이 많다. 예컨대 성적이 공개되거나 성적표가 보호자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발송되는 모습이라거나,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할지 말지를 정할 때 본인의 동의를 묻는 게 아니라 보호자의 동의를 묻는 모습은 어떠한가? 학교에서 일어나는 자의적 소지품 검사는 어떠한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무작정 위험한 물건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며 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일까? 극장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고 해서 극장 직원이 관객의 휴대전화를 압수한다면, 얼마나 화가 날 것인가? 어른들이 폐에 질환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증서를 가지고 있고 담배를 살 때 폐 질환이 없으며 담배를 피어도 건강에 큰 해악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면? 종교재단이 세운 회사라고 해서 직원들이 전부 다 그 종교 의식에 강제로 참여해야 한다면?



‘덜 된 존재’와 인간 사이에서

물론 학생인권 문제는 지난 10년을 주욱 훑어보면, 많이 개선되었다. 학생인권을 외치는 사회적 운동이 시작된 지가 거의 15년 안팎이니까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어낸 뿌듯한 성과인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여러 지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성과이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숙제를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는 등 지역별로 다른 학생인권 정책을 펴면서 지역간의 격차, 학교간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어느 지역은 학생들의 학칙 개정 참여를 보장하고 어느 지역은 전혀 보장하지 않는가 하면, 같은 동네에서도 어느 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학습을 강제로 시키고 어느 학교는 완전히 자율로 하는 모양새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 어느 학교에 입학했느냐, 어느 선생님들이 있느냐에 따라서 오락가락 하는 권리라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 그건 차라리 복불복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아직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인권 문제도 많이 있다. 예컨대 UN아동권리위원회는 2003년, 한국의 지나치게 경쟁적 교육환경이 아동의 발달권 등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개선하라고 권고했던 바 있다. 두발자유, 강제적 자율보충학습, 학생자치,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쉴 권리 등 최소한의 학생인권이 어느 정도 개선되고 나면 그 다음에 부딪치게 될 주된 인권 문제는 바로 교육 문제일 것이다. 교육 정책 자체가 인권 침해가 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권리(‘알바’라고 불리는 노동의 문제나 주거권 등) 같은 문제와 청소년보호법 같은 청소년 정책의 문제도 중요한 학생인권, 청소년인권의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도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학생이 어디서 머리를 염색하느냐부터, 심지어는 강제 자율보충학습, 강제 종교의식 참여, 성적 차별 등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옹호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얘기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학교 안에서 기본적인 언론․표현의 자유, 양심․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하는 것을 가지고서도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교육 정책의 문제나 정치적/경제적 권리 등을 이야기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상상하기도 두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게, 깊게 가져보면 어떨까. 청소년들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 참여 등, 이미 유럽, 남미 등 여러 다른 나라들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북서유럽 또한 68혁명 등 학생들의 많은 요구와 행동, 그리고 사회적 갈등을 겪으면서 학생인권 상황이 개선될 수 있었다. 1968년 수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고 시위를 하는 68혁명의 와중에 영국의 청소년들이 발표했던 요구안을 보면 지금의 한국 학생들이 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자유롭게 조직을 결성․가입하고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 없이 학교나 교사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의 동의서는 학생 의사가 아니므로 정당하지 않다”, “우리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체벌은 없어져야 한다”, “양심에 반하는 종교교육이나 예배는 거부돼야 한다” 등등. 한국 역시 학생들, 청소년들의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외침과 행동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원숭이’, 아니 ‘덜 된 존재’(미성년자) 취급받는 학생 ― 청소년들이 ‘사람’이 되는 제대로 된 길일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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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3. 5. 00:06



실종신고

제대로 된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찾습니다>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
1년에 몇 번씩 학생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시험, 그리고 오직 시험을 위한 교육.
이명박 정부 이후 시험지옥은 나아지기는커녕 대놓고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시험을 위한 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등수에 목매게 하는 시험이 아니라
자신이 과거보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는 평가와 진단이 필요합니다.
 
대학 안 가도 먹고 살 수 있게 하라!
획일적 경쟁을 부추기는 줄세우기 없이 모든 학교는 평등해야 합니다.
대학 나와야 사람 대접 받고 그나마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는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학력·학벌로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육예산 확보하여 누구나 쾌적한 학교를!
한국의 교육예산은 너무 짭니다. 학생들은 누구나 쾌적한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 돈 문제로 배움을 포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육예산을 늘려서 쾌적한 학교를 만들고, 초중고대학까지 무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에겐 권력을, 학교에는 민주주의를!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학교의 운영은 그 어떤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의견수렴이나 공청회 정도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학교 운영과 교육정책에 대해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참여권과 결정권이 있어야 합니다.
 
규제와 폭력 대신 자유와 소통을!
학생은 존엄한 인간이기에, 하교는 때리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교육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체벌, 두발복장규제, 강제야자 등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불합리하고 반인권적인 억압들은 모두 사라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먼저 인간으로 생각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합니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제대로 된 교육, 행방불명된 학생인권을 함께 찾으러 가요!

3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청계광장 옆 서울파이낸스센터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www.asunaro.or.kr) / 후원 :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서울본부



다른 곳에도 많이 퍼날라주세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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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등학교는 중간고사가 없어졌어요 그런데 더욱 힘든건 매달 단원평가를 해서 평가한다고 하니 더 고달프다는거죠

    2011.03.05 00:1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저 "중간기말부터"는 하나의 대유적 표현이고 ^^;
      여하튼 점수 매기고 등수 매기는 시험을 없애자는 거죠

      2011.03.11 09:57 신고 [ ADDR : EDIT/ DEL ]
  2.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 모르겠습니다.

    2011.03.05 01: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

    의무교육으로 강제되지 않을 뿐, 유치원도 교과부가 관리 감독하는 학교입니다. 생애 초기교육 질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초중고등학교 뿐만 아니라 유치원 또한 무상교육이 실시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2011.03.11 10:1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6. 16. 17:33

피엡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교육담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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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성동구청 관내 11개 중학교 1,2학년 학생 40명을 대상으로 한 '성동 영어수월성교육' 개강식이 광희중학교에서 열렸다.


수월성 교육, 수월하게 교육받는건가?

몇 년 전부터 '수월성 교육'이라는 말이 뉴스나 신문에서 심심치않게 들려온다. '수월성 교육'이라니 얼핏 듣기에는 무척이나 좋은 정책처럼 들린다. '수월성 교육'을 하면 '수월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수월하게 교육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사실 '수월성 교육'의 '수월'은 '수월하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단어이다. '수월성 교육'은 ‘Excellence in Education’의 번역어로, '수월성'은 빼어날 수와 넘을 월 자를 써서 새로이 만들어낸 단어이다. 그렇다면 수월성 교육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수월성이란 개별 학생이 개인 내적으로 자신의 적성, 소질, 잠재력 등을 최대한 계발시킨 상태"라고 정의된다(고형일, 2006). 그러나 실제 수월성 교육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월성을 내세운 정책이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볼 필요가 있다.

Q. 수월성 교육이란 무엇인가.
A. "현재는 보통 학생이나 영재나 한 교실에 섞여 공부한다. 그러나 제대로 교육하려면 학생의 수준에 맞게 나눠 가르치는 게 바람직하다. 수월성 교육은 특정 분야에 우수한 학생이 능력을 더 높일 수 있게 차별화된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소수의 학생에 대한 집중교육을 의미하는 엘리트 교육과는 다르다."

Q. 수월성 교육 대상자는...
A. "전체 초중고교생 800만명 중 영재교육 대상자 1%와 일반학교의 상위 4% 등 모두 5% 정도인 40만 명이다. 영재학교, 영재학급, 영재교육원에서 배우는 학생과 과학고, 외국어고, 예술고 등 특수목적고 학생은 영재교육 대상자다. 일반 학교의 수월성 교육 대상자는 수준별 이동수업,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 과정, 집중이수과정, 심화학습 이수인정제(AP·Advanced Placement) 등에 참가하는 학생이다.
(동아일보 2004-12-23 보도)

결국 수월성 교육이 실제로는 '모든 학생들의 재능 계발'이 아니라 '우수한 학생이 능력을 더 높일 수 있게' 시행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고교의 학력차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존의 고교 평준화 기조에서 벗어나 '공부 잘하는 학생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수월성 구조를 강화"하겠다고 이명박 당선자가 2007년 대선 직후 밝힌 것에서도 확인된다(연합뉴스 2007-12-24 보도).

요컨대 교육학적으로 정당화되는 '수월성'의 개념이 '모든 학생들의 재능을 계발하여 뛰어나고 개성있는 존재로 만든다'는 것에 가깝다면, 실제 정치적으로 이야기되거나 교육 현장에서 '수월성 교육'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루어지는 교육들은 '상위권 학생들을 선발하여 그 능력을 더 계발시키도록 집중 투자'하는 것에 가깝다.

수월성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이러한 '수월성 교육'은 경쟁을 더욱 심화시킨다. 특목고, 자사고 등이 생겨나면서 이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월성 교육 정책들은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따로 모으고 계속해서 서열을 확인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 높은 서열이 되기 위해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는 건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다. 이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확대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이 훨씬 더 심해질 뿐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특목고와 자사고에 들어가길 원하는 건 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공급을 늘리면, 그 늘어난 특목고·자사고 사이에서도 서열이 생기면서 더 높은 서열의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더 심한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강화, 재생산하는데 기여한다. 교육시스템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특목고·자사고에 입학하는 학생들 다수가 중상류층 이상이거나 전문직 부모를 두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한겨레 2009-09-14 보도). 그런데 교육에 이러한 사회경제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무시하고 능력(성적)에 따라 차별적 교육을 하겠다고 하면, 결국 교육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될 뿐이다. 수월성 교육의 결과 나타나는 사교육의 성행이나 특목고·자사고의 높은 학비 등도 이러한 불평등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수월성 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만이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만듦으로써, 성적에서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킨다. 수월성 교육으로 인해 성적에 근거한 분리·서열화가 이루어지면 상위권 학생들에게는 피그말리온 효과(1), 하위권 학생들에게는 낙인 효과(2) 등의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다양한 학업성취도의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을 할 경우 전체적으로 학업성취도가 향상되고, 수준별로 나눠서 교육을 할 경우 전체 학업성취도는 하락하지만 상위권 학생들 일부만 성적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들을 보더라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프레시안 2009-10-07 보도).

그래도 수월성 교육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수월성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 중 대표적인 것이 "전지구적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에 경쟁을 하지 않고서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겠는가" 따위일 것이다. "국가의 구성원들이 죽도록 불행하더라도 경쟁을 하는 것이 더 중 요한 것이냐"는 의문은 잠시 미뤄 두자. 이 논리는 일종의 말장난을 치고 있다. 대놓고 "경쟁은 스포츠에나 필요하지, 교육엔 필요 없다"(피터 존슨, 핀란드 교장협의회 회장)고 말하는 핀란드가 국가경 쟁력 순위에서 여러번 1위를 차지한다는 것만 보더라도, '국가경쟁력'이라는 것이 무조건 경쟁을 열심히 한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교육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며 국가경쟁력에 종속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이런 관점을 취하더라도 현재 한국에서 '수월성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는 경쟁은 오히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게 만든다. 학생들의 능력을 오직 성적만으로 판단하기에, 학생들은 획일적인 시험의 틀 속에 갇혀 창의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수월성 교육에 반대하는 것이 학생·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취향에 맞는 교육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데, 수월성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모든 교육이 평준화되어 있다면 그러한 선택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실제 교육현실에 대해 눈감고 있다. 학생들이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대학들을 보자. 과연 선택인가?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최상위권 학생은 A대학, 상위권 학생은 B대학, 중위권 학생은 C대학. 이것을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월성 교육은 원래 이런게 아니다!

미국영재학회 회장인 조이스 반타셀 바스카는 "수월성이란 사회적으로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영역에서 이상적인 기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과정과 수행"을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 앞서 말한 "수월성이란 개별 학생이 개인 내적으로 자신의 적성, 소질, 잠재력 등을 최대한 계발시킨 상태"라는 정의를 보더라도 알 수 있지만, 교육학자들은 결코 '수월성 교육'을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들을 분리시켜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집중 투자'하는 것이라 여기지 않았다. 모든 학생들의 각기 다른 재능을 발전시키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수월성 교육인 것이다.

사람들의 재능을 발달시키는 것은 '인권'이 교육에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UN아동권리협약> 제29조 1항은 아동교육은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 신체적 능력을 최대한 계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제대로 된 의미의,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은 '인권적인 교육'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이 '수월성 교육'이란 말이 '반인권적인 교육' 차별과 경쟁으로 얼룩진 교육 아닌 교육을 옹호하는 데 이용되고 있는 것은 이토록 어이없는 일이다.

진정한 '수월성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학생들은 성적과 관계없이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다. 한 반의 학생 수는 지금보다 훨씬 적어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공통된 학습내용을 배운 후 자신의 실력에 따라 보충·심화과정을 선택하여 공부하고, 교사는 교실 안을 돌아다니며 학생들 개개인을 지도해준다. 그러면 교사가 가르쳐 줄 능력이 안 되는 분야의 공부는 어떻게 할까? '교육 바우처' 등의 제도를 이용하여 외부 기관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은 대사관이나 문화원 등에 쿠폰을 내면 그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나아가서, 학생 스스로 시간표를 짜서 공부하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자전적 소설 <창가의 토토>에 나오는 '도모에 학원'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여 운영하였다.

나는 '수월성 교육'에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적극 찬성한다. 수월성 교육, 하려면 제대로 하라.


<각주>
(1) 피그말리온 효과 :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
(2) 낙인 효과 : 특정인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면 그 사람은 그 평가에 위축되어 결국 그 평가대로 되어버리고 마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 피그말리온 효과와 반대되는 개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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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거 종이잡지론 없고 웹진으로만 만드는 거였어?

    2010.06.17 10:07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5. 29. 09:4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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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교초에 홍대앞이네 ㅋㅋ

    2010.06.03 00:0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4. 19. 12:53

위기의 학교 저자 닉 데이비스는 '거대한 사기'로 명명한 영국의 '시험 게임'에서 성적을 조작하는 다양한 수법들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다. 우선 시험대비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 파악하여 연습하기 등을 지적한다. 이 수법들은 한국의 학교에서는 게임 아이템으로도 볼 수 없는 것들이다. 0교시, 강제보충, 강제야자, 모의고사, 기출문제, 밤샘학원, 족집게 과외 등 우리에게는 이미 관행화되어 있는 규칙이다.

(우리교육 2009년 3월호 p.121.
「1%만을 위한 시험 게임을 중단하라 - 서울시교육청 '일제고사 꼴찌'가 의미하는 것」 (조진희 서울 영일초 교사) 中)


이 부분을 읽으면서 뭔가 한국 교육은 정말 막장 테크구나...라는 생각을 찐하게 했습니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경쟁 교육 정책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대이고 일제고사니 학력미달이나 학력향상이니 국제경쟁력이니 하는 말들이 국경을 넘어 유통되는 시대라고 하여도...-_-

유럽권도 아니고 영미권에서도 '시험대비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 파악하여 연습시키기'를 성적 조작, 부정행위로 본다는 말입니다.
즉 정상적인 교육으로 수업을 하고 지식을 전달하고 학습을 시켜서 그렇게 생긴 능력으로 시험을 보게 하는 게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한 공부'를 시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부정행위이고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라는 거죠.

조진희 씨도 적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성적 조작이나 부정행위 축에도 들어가지 않고 아주 일상화된 '교육'입니다.
시험대비 강제 보충수업, 기출문제 풀기, '출제유형'에 맞춘 문제집 풀기......
이런 걸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은 직접 답안지나 성적표에 교사가 손을 대서 조작을 해야 비로소 '조작'이라고 한다는... 쓸데없는 데 엄격하군)



그저께는 이런 기사까지 났더군요.

영국 학교장 1만명, ‘학력평가 거부’


영국의 교장들이 특별히 착해서는 아닐 거 같고, 영국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황을 볼 필요 + 영국에서는 교장들이 어떻게 선출되나를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의 교장들은
교사 -- (교장 말 잘 듣고 근무평정 잘 받아서 승진) -- 부장 교사 -- 장학사 -- 교감 -- 교장 
뭐 이런 식의 라인을 보통 타고, 교육관료들 세계에서 위에 말 잘 듣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런 현실을 바꿀 대안으로 교장임명제(정부에서 하는 교장 돌려막기 짝퉁 말고), 교장선출보직제 같은 게 나오는 거구요.


기사 내용으로 볼 때 저 교장단들이 특별히 인권의식이 있거나 좌파적인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다만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위치에 서있다는 내용은 곧잘 눈에 띕니다. 한국에서는 현장교사-교장이 그렇게 가까운 관계가 아니란 걸 생각해보면... 일단 저런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긴 하군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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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꿈2010. 2. 20. 03:16


내가 평소에 밝히기 꺼려하는 내 경력은,
내가 속해있는 대학교와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다.
대학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테고.


나는 '상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냥 이니셜처리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 허울 좋은 학교의 명예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밝히기 싫어서 - 그냥 쓰기로 했다.)

'수학의 정석'을 써서 번 돈으로 만든 사립학교라는데,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수학의 정석으로 번 돈을 가지고부동산이라거나 여하간 어떤 불로소득으로 만든 거 아니냐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있었다. 정석 판 돈만 가지고서는 학교 못만든다는 나름의 계산과 함께. 물론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는 학생들 사이의 괴담일 뿐이다. 지배자-권력자에 대한 피지배자들의 일반적인 태도.


나는 말하자면 자립형사립고 1세대로, 노무현 정부가 자립형사립고를 공인하고나서 시범운영으로 지정된 6곳인가 7곳의 자사고 중 한 곳인 상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솔까말, 자사고가 뭔지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던 때고, 막 인문학 가르치고 양서 읽기 한대서 대안학교 같은 건 줄 알았어욤 ㅠㅠ  --> 같은 자기 변명은 줄이고...)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최소한 상산고 교육을 경험한 입장에서는 '자사고 교육'은 실패했다고 느낀다.

아니, 뭐 제대로 말한다면 한국 교육의 실패를 논해야겠지만 -┌

여기서 실패라는 건 입시 성적, 입시 결과를 놓고 하느ㅏㄴ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상산고가 명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교육의 목표'가 달성되지 못했음을 지칭한다.
어차피 한국 고등학교들의 목적이 그 고등학교의 교훈이나 교육기본법에 나온 민주시민 양성 등의 교육목표가 아님은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일단 자기들이 그렇게 내세우고 있으니 과감하게 '실패'라고 말해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서울대에서 뭐를 지냈다고 하던 교장은 뭐 명문 사립고(말하자면 미국이나 영국에 있는 그런 삐까번쩍한)를 만들고 싶다고 했지만 (애초에 그것은 얼마나 계급적인 꿈이던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_-;;;;;) 학교 운영은 결국 한국 학교적 한계를 그다지 벗어나지는 않았다.
(--- 사실 교장의 언행부터가 모순인 게, 교장은 외국 명문고 학생들은 따로 두발복장규제 같은 거 안해도 알아서 단정하게 잘 하고 다녀서 규제를 않는 거고 니네는 그렇게 못하니까 별 수 없이 규제하는 거란 식으로 말한 적이 있는데, 일단 그 외국 이야기가 사실인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러한 규범을 벗어나는 사람에 대한 관용이 전제된 상태에서 문화적으로 규범이 형성되는 것과 학교에서 불관용을 전제로 규범을 강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두발복장규제를 온존시키고 있고 체벌도 은근 빡세게 존재하고 있었고) 전근대적인 형태의 교육 방식과, 근대적인 입시 경쟁의 모순이 있는 상황에서, 인간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지성을 갖춘 사람을 길러내겠다는 식의 교육 목표나,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은 '상산인의 헌장' 따위는 연설문이나 학교 홍보물을 꾸미는 장식품 이상이 되지 못했다.

※ 상산고에서 학생들에게 도덕적 마음을 길러준다며 꽃동네 전교 사회봉사를 보내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인간성'이나 '도덕'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격리해서 수용하는 이런 시설들은 장애인권의 관점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그 '인간성'이란 대단히 비인간적인 동정, 우월한 입장에서의 자선 따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니었을까. 사회 지도층의 아량, 동정이란 참 비인간적이다.

개인연구, 양서읽기, 가창시간 등 그나마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덜 입시 종속적인 성격의 특수 교과목들은 논술 대비용으로 취급받거나 아니면 학생들에게 입시 공부를 위한 자체 자습 시간 정도로 취급 받을 뿐이었다.




비록 내가 다닌 학년은 자사고 1기로서 뭔가 미묘한 집단이라서, 특목고에는 가기 좀 미묘하면서도 성적이 좋거나 아니면 특출난 장기 분야가 있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재밌는 친구들도 꽤 많이 만났지만, 이런 경향은 해가 갈수록 점점 사라지고, 성적이 좋은 모범생, 상류층의 학생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게 내가 재학 중에도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보면 나는 어쩌면 상산고 최대의 수혜자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입시 성적으로가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여하간 나는 상산고 전대미문의 잉여+민주 만화동아리에 있었던 데다가, 방학 특강 시간에 공산당선언이나 미셸 푸코를 배우고, 다양한 형태의 아나키스트/좌파/무신론자/자유주의자/열린우리당지지자/민주노동당지지자/자연과학자/경제학자/수학자/작가/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만화가/프로그래머 등등을 만났으니까 말이다. 나는 상산고에서 글쓰기 능력과 독서, 많은 대화와 토론을 겪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학교가 공식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조건들은 2-3년이 흐르면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공식적 학교 시스템으로부터 내가 받은 것으로 가치 있는 것은 논문 두 편 쓴 경험 외에는 없었다고 말하면 건방져 보일까? 좋은 교사들은 몇 명 있었지만 그뿐.
부모님은 내가 안 쫓겨나고, 학교 안 그만두고 무사히 졸업한 것만으로도 상산고여서 가능했다고 하지만, 그런 걸로 감사하고 좋아하기는 너무 좀 그렇지 않은가.





자사고가 입시기관화하는 것은, 대입에 종속된 중등교육에서 학교 서열화에 따른 것인 동시에 학부모, 학생들의 욕망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입시기관화된 자사고들은, 지금도 SKY에 몇 명씩은 꼭 보내는 꽤나 성공적인 입시기관인 동시에(이미 성적 높은 애들 뽑아서 SKY 몇 명 더 보냈다고 하는 게 자사고의 우수함 때문인지는 차치하고--) 교육의 실패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지는 않나 싶다.


마치 내가 상산고에서 만난 학생들은 대개 좋은 학생들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뭐 어느 학교, 어느 집단이든 수백명 이상 단위가 되면, 꼭 맘에 드는 사람만 있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뭐랄까. 어설픈 엘리트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기분이랄까. -_-;;
자기가 자사고 학생이고 사회 지도층 ━ 간혹 지식인이라는 어설픈 허영을 가진 사람들. 세계 속에 자기의 위치를 직시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을 객관성과 양비론의 우위 속에 감추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간단한 예로, 대입제도에 내신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내가 불리해서,  내 이해관계 때문에 싫다고 하지 않고 온갖 말을 붙여가며 경쟁력이 어쩌구 공정성이 어쩌구 하는 것) 발로 뛰면서 현장 - 세계를 겪어보지도 않았으면 한 발 물러나서 여러가지 것들을 평가하고 시험 문제 풀듯이 사회문제를 풀려고 하는 학생들. 그러면서 봉사나 무슨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위한다며 하는 것이 가치있는 일이나 하나의 소양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 누군가가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의 삶을 위해 행동에 나설 때 그것을 말로는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같이 행동할 줄은 모르며, 이러쿵저러쿵 비평할 줄만 아는 사람들. 너무 쉽게 얼마든지 비겁해질 수 있는 사람들. 자기가 비겁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런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고, 이런 경향은 내 다음다음 학년이 더 심한 거 같아 보였고, 만약 입시기관적 성격이 더 강화되어 간다면 자사고에서 그런 학생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만약, 수천명인지 수백명인지를 먹여 살릴 거라고 하는 이 '엘리트', '사회지도층'들 중에 저런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게 된다면 말이다.


참 내 입장에서는 입시교육기관화된 부분에서 이미 상산고 - 자사고는 격한 실망의 대상이었다.
내가 어설프게 일구어놓은 청소년인권운동의 조직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도 자사고의 특성상 이미 예상한 일이긴 한데,(물론 내 잘못도 있고.)
아예 대놓고 기숙사에서의 단체기합, 체벌 문제 등으로 여러 번 학교와 마찰을 빚은 인권동아리 활동에 압력을 가하고 허가를 내주지 않던 모습에서 이미 자사고는 근대적 자유주의와 다양성조차 포기한 보통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공간으로 봐야 하겠지. 약간의 정도차이가 있을 뿐.

자사고가 입시기관화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실패'들은 어차피 자사고들에만 책임을 묻긴 힘들겠지만서도 (모든 학교와 교육시스템, 사회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



그냥 상산고 교육과 그 교육의 결과물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늘어놓고 싶은 계기가 있어서.


-- 그런데 내가 졸업하고 난 이후에 입학한 분들 중에서도 내 이름과 일화들을 아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던데, 지금도 아는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느덧 졸업한 지도 4-5년 됐으니










어쨌건 결론 :: 그러니까 자사고 늘리지 말라고 이명박이든 뭐든 -_-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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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댓글입니다

    2010.10.17 23:31 [ ADDR : EDIT/ DEL : REPLY ]
  3. 남준혁님 화이팅 ㅎㅎ

    뭐 임마

    2010.10.21 00:43 [ ADDR : EDIT/ DEL : REPLY ]
    • 남준혁 님에 관련된 글은 되도록 남준혁 님의 블로그니 미니홈피나 트위터 등에 남기심이 전달이 빠를 듯합니다 ^^;

      2010.10.21 10:21 신고 [ ADDR : EDIT/ DEL ]
  4. 대...단하시네요....이렇게나 비판을 받아도 하나하나씩 이성적으로 반박하신다는게
    이 어린 중 3에게는 경이로운 따름입니다...
    교육의 실패 정말 이 글을 읽어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2010.10.22 22:42 [ ADDR : EDIT/ DEL : REPLY ]
  5. 그런데..이미 원서는 낸데다가.. 주위의 기대도 크고... 대한민국의 교육에 세뇌되어온지라.... 기존의 입시제도에 반해서 싸우기는..힘들것 같네요...하아..어쩌다가 위선자가 되버린건지..

    2010.10.22 22:43 [ ADDR : EDIT/ DEL : REPLY ]
    • 상산고에 안 가고 다른 보통 고등학교에 간다고 해도 입시교육의 현실이 그리 많이 바뀌는 건 아닙니당.
      - 웅 님 혼자서 어떤 윤리적 결단을 내리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어떤 정치적 사건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하는 게 맞겠죠 ^^;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2010.10.26 00:16 신고 [ ADDR : EDIT/ DEL ]
  6. 남준혁 미친놈 ㅋㅋ

    ㅋㅋ

    2010.10.25 01:13 [ ADDR : EDIT/ DEL : REPLY ]
    • 남준혁 님에 관련된 글은 되도록 남준혁 님의 블로그니 미니홈피나 트위터 등에 남기심이 전달이 빠를 듯합니다 ^^;

      2010.10.26 00:16 신고 [ ADDR : EDIT/ DEL ]
  7. 감사합니다~

    2010.10.29 00:59 [ ADDR : EDIT/ DEL : REPLY ]
  8. 31기

    선배님 글을 하나하나 읽으면 정말 감탄밖에는 나오지 않네요 ^^
    비록 저희 학교에 대해 그닥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지적해주시니 저희학교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고 들어 갈 수 있게 되었네요
    자기 학교라고해서 무조건 좋다고 눈에 딱 보이는 잘 못된 점도 가려버린채로 '난 이 학교를 나왔어'라는
    헛된 자부심을 가지지 않는 제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자사고건 자율고건 일반고건 특목고건 답이 나오질 않는군요
    자기들은 개선한다고 개선하지만 그게 다른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 있고,
    그것을 개선한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도구일뿐일 수도 있겠죠.
    전 이렇게 답이 나오질 않는게 사람 개개인의 다양성 떄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들어가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될지 어떤 마음으로 지내게 될지.. 학교의 특성이 저의 특성과 비슷하길 바랄 뿐이죠


    '

    2010.12.20 17:19 [ ADDR : EDIT/ DEL : REPLY ]
    • 개개인이 바라는 교육의 상의 차이가 있더라도, 사회적으로나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교육의 가치로 이야기되는 기준은 있는 거니까요.
      그 기준에 맞춰서 비판하고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 혹은 그 기준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나아지지 못하겠죠? ^^;

      2010.12.31 09:08 신고 [ ADDR : EDIT/ DEL ]
  9. 잘못 선택된 진학

    상산고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검색 중에 읽게 되었습니다.
    공현님의 성향이라면 상산고 보다는 대안교육특성화고에 다녔어야한다는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로를 잡다보니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이라고 봅니다.
    이 글을 읽게 되는 중학생들이 있다면 다음의 글을 보고 신중한 선택을 해 보시길...
    고등학교 부터는 본인의 선택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결과이므로 인성과 존엄성과 자율을 우선 가치에 둔다면
    인가 받은 23개 대안교육특성화고 중에서 진학을 선택하시는 것이 행복한 진로의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부산 지구촌고 연제구 거제1동 www.glovillhigh.org 사립
    대구 달구벌고 동구 덕곡동 www.dalgus.net 사립
    인천 산마을고 강화군 양도면 www.sanmaeul.org 사립
    광주 동명고 광산구 서봉동 www.kdm.hs.kr 사립
    두레자연고 화성시 우정읍 www.doorae.hs.kr 사립
    경기대명고 수원시 권선구 www.daemyoung.hs.kr 공립
    이우고 성남시 분당구 www.2woo.net 사립
    한겨레고 안성시 죽산면 www.han.hs.kr 사립
    전인고 춘천시 동산면 www.jeonin.hs.kr 사립
    팔렬고 홍천군 내촌면 www.kwhce.go.kr/pallyeolh 사립
    충북 양업고 청원군 옥산면 www.yangeob.hs.kr 사립
    한마음고 천안시 동면 www.hanmaeum.hs.kr 사립
    공동체비전고 서천군 서천읍 www.vision.hs.kr 사립
    세인고 완주군 화산면 www.seine.hs.kr 사립
    푸른꿈고 무주군 안성면 www.purunkum.hs.kr 사립
    영산성지고 영광군 백수읍 www.yssj.hs.kr 사립
    한빛고 담양군 대전면 www.hanbitschool.net 사립
    경북 경주화랑고 경주시 양북면 www.hwarang.hs.kr 사립
    간디학교 산청군 신안면 www.gandhischool.net 사립
    원경고 합천군 적중면 www.wonkyung.hs.kr 사립
    지리산고 산청군 단성면 www.jirisan.hs.kr 사립

    세상의 부조리와 부당함을 고치고자 한다면 자기가 속한 조직을 바꾸려하지 말고 그 이전에 자신의 선택이 바뀌어여 하며, 한 사람의 사회적 역할 수행 속에서 수고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생각이 고여있지 않도록 첨부해 보았습니다.

    2010.12.30 17:15 [ ADDR : EDIT/ DEL : REPLY ]
    • -_-; 저는 단순히 '학교가 저에게 맞지 않았다'가 아니라 여러 가지 보편적 일반적 사회적 가치 기준들에 비추어서 교육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만. 그걸 그런 식으로 마냥 상대화시켜버린다면 사회 현상에 대한 비평이나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_=
      왜 모든 학교들은 대안학교처럼 될 수 없는지,(대안학교가 꼭 나은 것도 아니지만) 그리고 자립형 사립고 상산고등학교의 교육은 어때야 하는지 등을 질문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건 있는 대로 두고 개개인이 그 중에 선택하라는 식으로만 요구하는 건 일종의 구조적 폭력이죠.

      세상의 부조리함과 부당함을 고치려면 자기가 속한 조직이든 자기가 속한 사회이든 부조리하고 부당한 것을 바꾸려고 해야겠죠. ㅇㅇ

      2010.12.31 09:05 신고 [ ADDR : EDIT/ DEL ]
  10. 물리대

    안녕하세요 상산고 25기였고 1학년때 아침 등교때 한번씩 형 피켓들고 시위했던거 봤던 학생입니다 ㅎㅎ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학교란 단체 자체가
    어짜피 이미 나이 많은 기득권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단체임을 감안 했을때
    아무리 그들이 진보적인 생각을 하려고 해도
    청년들의 그것을 따라 올 수 없다는게 개인적 의견입니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서포트는
    어느정도 올바른 사고와 지식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학생들을 뽑는 것과
    그들이 스스로 토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형의 말씀처럼 별 이상한 허영과 자기잘난 맛에 사는 친구들도 봤습니다만
    제 주위에는 -제가 운이 좋아서인지- 대부분이 나름의 꿈과 생각이 있는 학생들이였습니다

    2011.01.17 21:43 [ ADDR : EDIT/ DEL : REPLY ]
    • 저는 제 판단에서 건강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나름의 꿈도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아요- 그 사람들도 모두 '나름의 꿈과 생각'이 있죠. 그 꿈과 생각의 성격과 방식에 대해 가치판단을 할 뿐.

      학교를 비롯하여 기존 사회 체제 일반에 대한 지적에는 일리가 있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자사고라는 시스템의 문제는 그 이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2011.02.02 20:00 신고 [ ADDR : EDIT/ DEL ]
  11. 평소 아수나로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계신 공현님이 제가 곧 졸업할 학교의 선배님이었다는 사실에 놀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저희 학교에서 위와 같은 청소년 인권 운동의 아픔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공현님이 그 운동을 이끈 일종의.. 선구자(?)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세상은 좁다는 사실을 여러 번 느끼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요ㅋㅋㅋㅋ 사실 자사고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사고의 필요성을 잘 못느끼는 저로서는 공현님의 생각에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앞으로도 몸 건강히 활동해주세요, 선배님! ^^

    2011.02.03 19:27 [ ADDR : EDIT/ DEL : REPLY ]
  12. 유호준

    학교의 대입성적이 학교의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는것은 아니겠죠...

    2011.03.30 18:42 [ ADDR : EDIT/ DEL : REPLY ]
  13. 유호준

    저도 대입성적으로 놓고 보았을때 상산고보다 낮지는 않은 학교에 다니지만...
    확실히 공현님의 의견처럼 비록 소위'상위 엘리트'들이 성적이 좋아 좋은 대학에 갈 수는 있지만...
    꼭 그사람이 도덕적이거나 민주사회의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역할을 감당할수 있는것은 아닌것 같아요...
    칸트가 말했듯이"좋지 않은 공동체에서 그 구성원에게 훌륭한 도덕성을 기대할수 없다"가 현실에도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학교에도 비록 자신들이 수많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더 커다란 '의'를 위해 그것을 암묵적으로 표출하고 있지 않거든요...
    뭐... 그래도 대학가는것이 더 우선이다라는...
    참... 안타까운 사고이죠...

    2011.03.30 18:49 [ ADDR : EDIT/ DEL : REPLY ]
  14. 이공계 못간 1인

    학생의 당연한 권리인 '계열 선택권'. 본인은 2학년 여학생 이공계반이 꽉차서 들어가질 못했다. 억울했다.........................
    한국을 이끌어갈 이공계생 양성이 이사장의 바람이자 학교의 바람이기도 한걸로 익히 알고있는데............................ 상산고 행정처리에 개실망! 문과 1반으로 하고 이과 3개반으로 구성하면 될 것이 아니더냐............................. 아니면 강의실 많은 신강의동도 있는데 왜 그건 활용 안하냐....................................
    개 억울............................
    지금 입시에선 비교내신(수능)도 안된다...................................
    카이스트나 포항공대가 학생부만 보기 때문이다..............................
    내인생 종침......................

    쓰벌...........................후배들한테 필사 노력했는데 개-따당함......................
    그것때문에 급식실에서 밥도 못먹고............................................


    이현구 교장 정말 실망..............
    정진호 교감 욕나와
    곽진영 -_-ㅗ 내 양서활동기록은 왜 잃어버리냐-_- 학생들이 잘 가지고 있지 못한다면서 일괄적으로 다 걷어가고, 복학하고나선 없다고 주지도 않고....................

    정진호 정말 설득 안간다................... 이공계 지원생이 너무 많아 성적순으로 7명 잘랐다면서, 6명은 설득시키고, 1명은 수학꼴찌인데 지가 죽어도 성적올릴 수 있다고 이과 가고싶다고 해서 보내서................... 6,7반 각각 40, 41명........... 나보고 한반 정원이 40명이라며................ 그 한반에 나좀 껴넣어주면 안되냐? 정원 41명으로 맞추게.

    안그래도 문과에서 공부해봤는데 적성 안맞아서, 새로운 길을 못찾아서 괴로워 휴학한 애한테.... 교장 교감 문과담임도 다 내 사정 알고 있으면서.........

    언론에는 이공계 양성하고 싶다고 그렇게 선전해대면서
    그만큼의 인원 수용하지도 못할꺼면 왜 그렇게 홍보하냐-_-



    난 이것이야 말로 상산고 입시교육+인성교육의 실패라고 본다.(학교 졸업하고 성격이 다혈질로 변했다. 과학연구원이 꿈이었던 것 만큼.. 난 정말 착하고 순수=바보병신이었던 것 같다) 정말 학교에 배신감 느낀다. 내가 학교에 자살 못한게 한이 된다.

    과학고 커리큘럼 비슷하게나마 들을 수 있을것 같아서 왔는데,,,,,, 2학기때 계열바꿔 들으면(고급과목) 이수단위를 다 채우지 못해 인정도 안됀다.......


    집에 오고나선 그 스트레스때문에 죽을 뻔했다. 속은 타들어가고, 잇몸은 녹고, 자궁도 녹고, 눈알은 튀어나오고, 혀는 부풀어 오르고, 머리카락은 술술 빠지고,,,피부도 엄청 얇아졌다. 이마엔 주름살하나가 희미하게 생겼다. 얼마나 약해졌으면 앞아랫니가 손으로 만져보니 돌아갈 지경..

    ㅆㅂ 덕분에 난 잉여생활을 하고있다.
    덕분에 내 고등학교생활은 눈물투성이었다.........

    전학을 갔어도 아마 별로 안좋았을 것이다. 울동네에서 상산고갔다가 동네학교로 전학온 사람이 왕따당했다는 소문을 들어서이다.(일반고 애들은 걔가 내신딸라고 왔다고 안좋아했다.) 담임은 그당시 '셔틀빵'얘기를 해댔고,,,


    이공계 가고싶은 사람 절대로 가지 마삼. 상산고는 이공계생 양성하고 싶다면서 교장교감담임이 능력제로임.
    그만큼 이공계생 양성하고싶다면 학생들 수요에 맞추어 반편성을 제대로 해야할 것임.

    2011.07.23 04:36 [ ADDR : EDIT/ DEL : REPLY ]
  15. 이공계 못간 1인

    플러스!!!! 상산고 교육의 실패!

    내가 후배들한테 들은 것.
    사복차림의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high-waist바지를 입고 왔다. 반 애가 지 친구들한테 하는 말-"일반고 애들은 짧은 미니스커트 입고 다닌대"
    보이나? 이게 바로 교육의 실패다. 일반고 애들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내가 학교수업 안듣고 잠만 잤다고 일반고 애들로 분류한거다. '헐 뭐야 저렇게 분류하는건 뭐지?'
    아 정말........ 앉은자리 양 옆에서 놀려대고, 이동수업때 옆에 앉았다고 기분나빠해 욕하고........ 2학년 2학기때는 어떤애 2명이 나한테 찾아왔다. 한명이 뭔가 참을수 없을정도로 열뻗치게끔 놀렸다. 근데 그 애 뒤로 걔친구가 핸드폰으로 그 과정을 찍고있었다. 난 그걸 보고 참았다. 그때문에 화병을 얻었다....
    물을 많이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정수기에 누가 가래침을 거기다 묻혀놓았다.
    3학년때는 정말 가관이었다. 혼자 복도를 지나가는데 그새끼가 뒤에서 친구들한테 '가슴만지고싶다'라고 했다.

    이래저래 학생부에 말하긴 했는데, 잘 처벌은 됐는지 모르겠다. 걍 '지윤아 앞으론 하지 마라'정도였을걸? 과연 징계나 징벌을 받았을까?
    (나도 참 바보다. 내가 그 친구년도 도서관에서 공부할때 따로 불러서 핸드폰 달라고 해서 확인해봤다. 그땐 왜그랬지... 그걸 증거삼아 학생부에 내야하는건데... 거기서 지워버렸다. 정말 바보같다.)
    이런애들이 꼭 고려대 의대생 성폭행 가해자와 비슷하지 않나?

    2011.07.23 05:40 [ ADDR : EDIT/ DEL : REPLY ]
  16. 재학생입니다

    실패했다? 저는 대입면으로 보든, 교육면으로 보든, 학생이 아닌 단순한 청소년으로서 보더라도 저희 학교처럼 좋은 분위기의 학교는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서열화? 그런 것은 어딜가든 학생 개인의 마음가짐이라 생각이 드네요. 상산고와서 엘리트주의에 빠질만한 애들은 일반고에서 전교1등이라는 맛에 빠져살 애들이구요. 오히려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학교는 놀라울 정도로 학생을 위해주고 학생들은 모두 자유롭고 존중받는 분위기 속에서 건전하게 자알 경쟁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상산인의 헌장은 허영이 아니라 그냥 '국기에 대한 맹세'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 않을까요? 진실이 아닌 물은 마시지 않고, 선하지 않은 과일은 탐내지 않으며, 이런 걸 허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선배님은? 꽃동네 봉사활동을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지도층의 아량정도라고 치부해버리는 것 또한 이해가 안가네요. 대부분의 학생은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하고 오거든요.. 그냥 학생답게 봉사도 다니고 공부잘하는 학생이니까 공부잘하는 학교와서 학생답게 청소년답게 그냥 자알 생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축복이라 생각하며 누리는 곳을 선배님께선 너무나도 비꼬인 눈으로 보시네요. 그동안 생활하시기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상산인 중엔 선배님처럼 베베꼬인 마음으로 뒤에서 욕이나 하고다니는 사람들보단 다른 곳에선 얻지 못했을 좋은 경험에 좋은 추억을 얻고 졸업하는 사람들이 더 많답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적었어요. 그땐 그랬나요? 지금은 안그러는데.

    2011.08.20 17:54 [ ADDR : EDIT/ DEL : REPLY ]
  17. 이 글을 읽고

    서울대 자퇴생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에 실린 기사를 읽고 여기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고등학교 선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검색해 봤는데, 맞군요. 뭐,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는건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 글을 읽어보면 마치 상산고 교육만이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글을 쓸때 자극적인 타이틀이 있어야 관심도 끌고 하겠지만, 위에서 지적된 문제들이 비단 상산고만의 문제일까요? 이 글에서 상산고만의 문제인양 적힌게 읽기에 거부감이 드네요.(상산고는 다른 학교에 비해 규제가 적었으면 적었지, 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가지더... 꽃동네 봉사 말이지요... 기관 자체가 뭐 어떤 사람에게는 안좋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꽃동네 봉사하러 가는것까지 잘못된 것이라 여기시다니...; 그리고 그러한 봉사활동이 사회지도층의 아량이라니...(봉사하는 것은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를들자면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이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았을때 기득권으로 보일 수 있다 하더라도 봉사하는 곳에 가서는 모두가 보통의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봉사를 하면서 난 사회지도층으로서 아량을 베풀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들의 봉사활동을 쓰레기처럼 취급하시는 그 사상의 틀 자체가 비틀려 있으신게 아닌가 싶네요. 마지막으로 상산고를 졸업한 사람들이 갖는 자부심을 엘리트 주의라는 말로 우습게 만들어 버리시는데, 자신이 상산고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 해서 다른 상산고 졸업생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을 틀린 것이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닐까요? 단지 선배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인데 말이지요.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연히 다른의미인데 많은사람들이 언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있어서 혼용되어버리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011.10.23 16:56 [ ADDR : EDIT/ DEL : REPLY ]
  18. 님의후배되겠사옵니다 ㅋ

    오오 잘 읽었습니다.
    1. 솔직히 상산인의 헌장을 아는 자가 없지요. 간판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입학초기 오리엔테이션때 잠깐 보고, 학교복도지나가다 잠깐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아는 자도 거의 없더군요

    2. 그리고 꽃동네때 겪은 저에겐 약간 충격적인 일이 있습니다.
    정말 장애인격리수용소같았어요. 거기서 3년씩이나 일했다는 한 남성분이 있더군요.
    뭐 여기에 온지 3년밖에 안되었다고 말씀하셨지만, 3년 나름긴건데,
    분명 몸만 불편하고 정신은 온전한 ㅇㅇ의 방에서 봉사활동을 했었지요 ㅋ
    그런데 거기서 제가 어깨를 주무르던 할아버지가 그 3년동안이나 꽃동네에서 일한 사람보고 저에게 하던말,
    "저 사람은 우리 학생 학교 선생님인겨?"
    헐 정말 그냥 무관심을 베푸는 곳인가요 아나 신경질났지요. 그리고 선배님 말대로 저역시 장애인들을
    연민으로조차밖에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에서 반성을 하였습니다. (인생 상담도 해줄 정도로 질좋은 경험을 많이 해온 듯 한 사람 한명 봄. 그냥 그사람이 막 하는 소리였을수도있고)

    3. 저희때도 그랬습니다. 선배때는 어떘는지 모르겠지만, 전교1,2등해서 날고 긴다는 애들도 떨어지는 이 학교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저희학교는 600명이였고 중학교가 평균적으로 약 500명있다고 쳐서
    운이좋던 나쁘던 붙었다고 칩시다. 분명 상위 1%이내 아닌가요?근데 고등학교와서
    모의고사를 보면 심지어 4등급(전교 뒤에3~4명) ->실제로 성적표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분명 상위1%갖고 주무르는데, 한국 사회에 맞춰 돌아가는 상산고꼐서 300명거의 다 스카이 카이스트 의치한의대 가아죠
    이 학교가 학생을 망치고 있다고 보는 선배님의 말씀에 반절이상 호감이 갑니다.

    4.개인연구, 양서읽기, 가창시간 등 그나마 보통의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덜 입시 종속적인 성격의 특수 교과목들은 논술 대비용으로 취급받거나 아니면 학생들에게 입시 공부를 위한 자체 자습 시간 정도로 취급 받을 뿐이었다.
    아하 ㅋ 이것역시 공감했습니다. 음악시간이면 어김없이 뮤지컬하나 틀어주고 나가버리는 선생님, 노래를 가르치기 귀찮아서 자습을 하라는 선생님, 양서 역시 비효율적인게,(저는 지금2학년이지만 제대로 읽은책이 딱 한권,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입니다. 수싑권중에서 한권, 그것도 정말 재미있어서 읽은 겁니다.) 그 과제 빈칸 채우기만 하려고 그부분만 읽거나,
    친구거 베끼거나 아예안하거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저도 그일원입니다. 그시간에 공부해야죠. 참고로 전 어렸을때 (이 학교를 준비하기위해 학원이란걸 다니기전)
    아침 6시에 (마침 상산고기상시간과일치하군요) 일어나서 할짓이없어 책을 읽다 책에 빠진 사람입니다.
    헌데 중2때부터 손을 뗄수밖에없었죠. 저는 그때 뭣모르고 의식이 깨어있기 전이라서 그런지(물론 지금도 다깬건 아니지만)정말 공부만하게되었습니다. 여유속의 책이아닌 무언가 과제를 하기 위한책이 싫어서 그냥 베끼는 일원이되었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군요.(물론 제잘못도 있고)

    5. 아 ㅋ맞다ㅋ 이제 기숙사에선 단체 기합 그런거 없어졌어요 무슨 수련회도 아니고 ㅋㅋㅋ
    그냥 사감들이 가볍게(?) 학생 벌점주는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나름 나아진걸로 보아야하나욬ㅋㅋㅋㅋ

    6. 아ㅋㅋ 그리고 이사회에선 상산고가 나름 성공인것같습니다.왜냐하면
    이 사회에선 그런 사람들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죠.(ㅠㅠ 선배님 입장에선 속터질듯;;)
    님꼐서 불만이신건 전체적으로 볼 때 그런 걸 원하는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네요 ㅋ

    7. 아 그리고 짜증나는 경우 있음.
    공부를 진짜 잘해서 전교 1,2등으 ㄹ우리학교에서 먹는애가 성격이참 ㅄ이라고 걔랑다니는 친구들이 그러더군욬
    그래도 공부잘하는 애한테 붙고 싶은가봐여
    공부만 잘하면 뭐든 잘되게 하는 이사회를 비판하시는 건가요?아님뭐지;;;

    8. 아 궁금한거는 자립형을 그만만들라고 하셨는데, 만들었을 때와 안 만들엇을 때
    님이 생각하는 어떤 차이가 생길것 같나요? 답변좀여 ㅋ

    9. 그리고 비겁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사용하셨는디 ㅋㅋ
    제가 여기서 하고싶은 말은 일명 "입상산" 입니다. 물론 소문도 참 빨리도네 라는 뜯도 있지만,
    뒤에서도 뒷담 까고 앞에서도 그사람 뒷담까는 그런 비겁한 사람들을 비판하고싶은건가요?
    하기야 그것때문에 제가 화가 난 적이 있는데, 막상 앞에서 대꾸할 용기들이 없었더군요
    정말 말로만 조잘조잘거리는 용기없는, 용기있는 척하는 아가들을 수십명이나 봐왔지요.
    그런 아가들중에는 나름 대외적인 아이들이 있습니다.
    근데 입지만 잘 잡았지, 막상 성격은 ㅄ인 애들이 있습니다. 약자앞에선 비인간적으로 강해지려하고
    강자앞에선 비인간적으로 약자가되더군요. 아첨 ㅋ
    그리고 그렇게 공부만 해대서 사회성(말이 좋아그렇지, 사실 사회성 좋은척하는 애들이 대다수)이 떨어지는 아가들이
    공부잘하면 정치판에 끼워주니까 그들의 성격이 정책에 반영이 되는거겠죠? -아 참고로 전 대놓고 사회성 안좋은편~
    보통인듯(아 내가판단하고앉았네 ㅋㅋ;;;)
    사실 자립형에 들어가서(제 밑부터는 자율형으로 바뀝니다 ㅋㅋㅋㅋㅋ) 부모와 떨어지고
    나태한 학생들을 보고 배워가는 아이들이 많지요. 마치 중학교때는 공부가 자기를 막아주는
    방어작용을 했는데,(공부잘하면 노는 애들이 쉽게 못건드는 그런거??)여기엔 그런 애들이 없으니까
    딱히 방어막이 필요없어서 공부를 덜하는 현상도 일어나고...(음 논지에서 벗어났지만)
    뭐 방어를 목적으로 공부한 애들은 목적이 이상한거지만;;
    걔네들이 인문계를 갔으면 역시 방어작용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셩격을 소신껏 가꿨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싶은건가요?
    아님말구여;ㅋㅋㅋ

    9. 뭐 상산고 뿐만이 아니죠 ㅋㅋㅋㅋ 님이 비판하고 싶은것의 일부뿐임ㅋㅋㅋ

    10. 아 그리고 도서관에 이런 글이 붙여져있더라?
    이성과 교제시 1차경고 2차 부모님 소환 3차 뭐 퇴학....? 미1친거니 ㅠㅠㅠㅠㅠㅠ
    이성교제=공부덜하게 된다
    이건또 뭔말이여.. 이거 교장쌤이 붙ㅇ니고 간거같던데 밑에 교장 올림 이었나??써져있었음
    청소년의 인권을 무시한다고 볼수 있겠죠??

    11. 아 그리고 ㅋ 교지 편집부라는 동아리에서
    일명 "선생님 대상 모의고사"를 만들어서
    선생님들이 현재 학생들의 문화에 대해 얼만큼 알고있느냐를 물어보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번은 달랐지요.
    1번은 급훈에 달려있는 4가지
    "웅지의 성취인 뭐시기 사회인 탐구적 어쩌고"
    뭐 가르치는 입장에서 5지선다 객관식 이었고
    5개중 4개를 체크하면 맞는건데
    거의 다맞을줄 알았는데
    거의 다틀리더라 ㅡㅡ;;
    물론 학생의 문화를 아는 사람들은
    젊은 선생님들뿐이고 ㅋㅋㅋ
    지엽적인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고
    그냥... 선생님들부터
    무언가가 잘못되었더랍니다 ㅠㅠ...

    12. 청소년 인권, 선배가 중요시 여기는(원래 만인이 당연히 중요시해야지만) 인권 인듯싶네요
    제가 님을 잘 몰라서...
    청소년들이 인권을 무시당하는 예는 무엇들이 있으며,
    그렇게된 사회적 이유는 어떤것들이 있는지좀
    말해주세요...


    13. 아 하여간 아까 8번정도에 있는 질문처럼,
    자립형이 없어지면 나타날것같은 긍정적인 현상이나
    그로인해 장기적으로보았을때 예상되는 변화되는 사회적 현상을 말해주세용 ㅋㅋㅋㅋ

    2011.10.28 23:16 [ ADDR : EDIT/ DEL : REPLY ]
  19. 안녕하세요 상산고 30기 재학생입니다.
    공현님의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제 닉네임이 상산예찬인데,, 본명과 결부시켜 지은 이름이니 굳이 찬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사고 1기 이후로 적잖은 것이 바뀐듯 합니다.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많네요..ㅎㅎ

    네, 단도직입적으로, 상산고 교육은 실패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에게는요.
    여느 학교처럼 간판(?)만 내세우죠...


    하지만 모든 학생이 다 같지는 않다는걸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절대다수의 가치관이 대입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소수의 학생들도 있지요...

    저는 상산고의 자유와 교육을 만끽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사람들 중의 한 명입니다...

    제가 느낀 음·미·체 과목의 수업과 양서읽기/개인연구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생각만큼 제시된 지향점에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체육은 최근에 체육활성학교? 로 지정되어서 저는 요즘 체육시간에 완산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답니다;;;)(물론 체육시간은 굳이 이러지 않아도 잘 굴러가긴 했지만요^^;;) 양서읽기와 개인연구의 경우는 개인이 참여하기 나름인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는 양서를 잘 안 읽는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 읽는게 학교 교육의 실패는 아니잖아요??(아, 자꾸 이 윗 댓글에 대한 반박을 하는 것 같긴 하네요;;)
    개인연구도 좀 더 체계적이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훈련으로 저에게 있어서는 입시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제 미래에 있어서도 상당히 도움을 주는 수업으로 생각합니다.(대부분의 친구들이 이 시간을 버리긴 했습니다...)


    제한된 시간동안 글을 쓰려니 힘드네요(기숙사 자습시간중입니다...) 횡설수설..ㅎㅎ
    결론은...
    상산고의 교육이 왜곡되고 그로 인해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 그 속에서도 제 갈길을 찾아가는 소수의 학생들이 있고, 그런 기회를 준 학교에게 감사하고있는, 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2011.10.28 23:40 [ ADDR : EDIT/ DEL : REPLY ]
  20. 이 글에 아직까지 덧글이 달리는거 보니 너도 진짜 흥하긴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내 입장에서는 (다른 전주시내 고등학교에 비해) 상산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자립형사립고 진행을 통해 노무현이 애당초 꿈꿨던 수월성 교육의 이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상황에서 영국식 차터스쿨이란 개념도입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겠나 싶다. 차라리 '과학교육의 창달'이라는 과고 정도나 애초의 설립 의도를 아직까지는 쫓아가고 있다고 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2011.11.27 12: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1. 지나가다

    민주주의 관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에 비해 한마디로 시스템이 후집니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에 바탕한 고도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갖춘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집단관계 시스템을 갖춘 사회를 비교해서 우월을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현재 우리사회는 서양 민주주의 시스템을 우월하다고 믿고 점점 따라가고 받아들이는게 대세이지만 민주주의를 꿈으로 삼고 인권을 절대진리로 믿는 것은 미신이나 다름 없습니다. 민주주의도 개인이 종속하게 되는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 바깥을 볼 수 힘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미신에 근거해 자신이 속한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고 부수려는 노력을 어떻게 봐야될지는 한마디로 난감합니다. 길지않은 인생 열린 시각을 가지고 주위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관용적인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2013.03.27 10:0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2. 3. 12:20

학교뚫고 인권킥! – 청소년, 입시를 논하다

숨막히는 한국의 입시경쟁, 과연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는걸까요?
입시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세상을 원하고 이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해봐요!

2010년 2월 7일 일요일 오후 2시~5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지하철 2호선 센텀시티역)
장소가 좁아 선착순 20명만 받습니다.
신청게시판 http://bit.ly/schoolkick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http://asunaro.or.kr








- 우리가 너무 쉽게 접하게 되는 그릇된 생각은, '교육'과 '공부'라고 하면 현재와 같은 방식의 것 ― 즉 입시나 취업을 위한 공부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학생들이 하는 공부의 내용이나 이유에 대해 의문시하는 것을 막으며 그저 '면학', '노력'하라고만 이야기한다.
- 실제로 교육(학교든 학원이든)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육 내용과 방식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려는 의지를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신비롭기까지 한 일이다. 학생들-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아예 의견을 개진할 통로도, 권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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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0.02.04 13:13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0. 1. 22. 11:37

하병수 (경기 토평중 교사)  / 2010년01월21일 16시54분



교원평가가 처음 거론된 것은 95년 5월31일 김영삼 정부가 교육시장화 정책을발표하면서부터다. 교육시장화정책 계승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는 2000년 교직발전종합방안에 교원평가를 포함해 공식적인 논의를시작하였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교육개혁의 주도권이 무기력하게도 시장 세력에게 넘어가면서 교원평가논의는출범초기부터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중심이 되어 교원평가 연구안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2005년에대대적인 여론화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여론전에서 일정한 승리감을 맛본 시장 세력과 교육 관료들은 48개 교원평가시범학교를강제하면서 사실상 교원평가를 학교개혁의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곰비임비 교원평가 시범학교를 늘린 결과 전국 1만개 학교 중에3164개교(09년 현재)가 교원평가 시범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이건 시범학교가 아니다. 교원평가의 단계적 적용이라 보면 된다.
법안마련을 위한 6자협의체 구성제안(10월12일)과 교원평가 강제실시를 위한 시・도별 교육규칙 제정을 위한교과부자문회의(1월8일)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들이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성격상 늦은 감이 있기도 하다. 촛불정국이시기를 늦춰놓았을 것이다. 다만, 교원평가를 진행하려는 자들의 시나리오에 국민들뿐 아니라, 경쟁교육에 비판적인 단체들도 중심을잃은 채 서서히 포섭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원평 가에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문제(평가주체), 수업 외 평가지표 추가문제(평가영역), 인사와 보수와 연계문제(평가결과) 등다양한 문제에서 부침의 과정이 있긴 했으나, 95년 애초 교원평가를 도입하려던 시장 세력들은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건재함을자랑하며 정권의 배후에서 또는 전면에서 시장화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표면적인 교원평가 도입목적은“교원의 질을 높여 공교육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여기에는 교원평가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제나 솔직한(?)이명박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성격이 분명해진다. “학생도 경쟁하고 학교도 경쟁하는데 교사만 경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교원평가도입목적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은 “경쟁하는 교사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든다. 현재로서는 교원평가가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을 일류학교로의 진입에 더 경쟁적으로 노력하게 만들 것이다. 교원평가를 바라보고, 대하는 모든 주체들도현재의 입시교육시스템 속에서 교원평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선 “학생, 학부모, 학교장”은 보다 좋은 학교로의 진학목표를 도와줄 교사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이 입시교육에 밀려난 지 오래다. 당장의 학교교육에 이해관계가 없는 “국민”들도 ‘철밥통 교원’을 깨고 ,저마다 한 자락씩 간직하고 있는 ‘추억속의 못난이 교사들’을 단칼에 자를 수 있는 정책을 기대한다. 결과가 약간 부정적이라하더라도 철밥통은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고, 이상한 교사는 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교원평가를 찬성하게 만든다. 당사자인“교사”들은 무기력할 뿐이다. 학생들과 입시 경쟁 속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야자보충을 거부하지 못한다. 경쟁신화를 깨지 못하고 있는교사는 자신에게 강요되는 경쟁에도 무기력할 뿐이다. 현재 무기력한 교사들을 번뜩이게 하고 선명한 길로 이끌어가야 할 교원노조조차 교육시장 세력의 시나리오에 스멀스멀 먹히고 있다. 대중조직이니, 대중의 생각과 대세에 따라야 하는 듯 말이다.


경쟁교육이 만들어낸 비참한 한국교육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입시경쟁교육의 질적인 비약에 결정타가 될 교원평가를막고 경쟁을 폐기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단단해진 시장 세력들의 시나리오에 대적할 만한 것으로말이다. 교원평가도입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국민들의 경쟁신화를 부추기고, 교사들의 무기력과 패배감을 만연시킬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개혁을 추진하기에 어려운 조건을 만들게 될 것이다.

입시경쟁에 지쳐있던 학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 남한산초등학교 등 공중파를 탔던 혁신적인 학교들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시장 세력들의 표면적인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교사가 노력해야 학교가 변할 수 있다.”
하 지만 교사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극과 극이다.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낸 혁신학교의 공통점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학생회를 만들어주어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형식화 시키지 않고 자기자녀의 부모로서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을 함께 아우르는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의 학교참여를 이끌어낸 점, 교사들은 교육과정 운영에온전한 권한이 부여되고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권한을 갖고 협력하는 것이다. 또한학생들의 성적경쟁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자기평가와 일상적인 활동평가를 중심으로 평가본연의 역할을 가게 만들었다. 일체의 경쟁을비교육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자기주도성을 신뢰하고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일관성 있게 만들어가고 있다.
교원평가는 이러한 노력과 상호모순적인 수밖에 없다. 일제고사와 입시경쟁교육과 어울리는 정책이다. 경쟁교육의 강도를 드높이고 있는정책입안자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려고만 하게 만든다. 다소간의 긴장을 줄 수 있지만 그게 전부다.오히려 좋은 정책이 끼어들 틈조차 막은 채 학교를 정체시키고 후퇴시킬 뿐이다. 철밥통을 깨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면교원평가 정책은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철밥통을 깨려하는가를 더 생각해보자. 직업과 신분의 안정은 교직뿐만아니라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며, 자기 직업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바탕이다.


한 낱 교원평가를 놓고 아웅다웅 할 때가 아니다. 현재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이 살아 숨 쉬는 학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1만 여개의 모든 학교가 그렇게 될 수 있다. 이미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 내용을 정책으로 만들 주체들이바뀌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이다. 주체를 바꾸려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그것은 권력을 바꾸는 문제이기에 당장 쉽지 않다. 현재교육개혁을 주도하는 세력들은 이전 정권에서도 세력을 행사해왔다. 다만, 이명박 정부는 교육시장화를 주도하는 세력에게 엄청난 힘을실어주고 있을 뿐이다. 교원평가를 둘러싼 싸움은 경쟁교육을 심화시키는 사람들과 경쟁교육을 반대하고 인간화교육을 추구하는 사람들간의 다툼이다. 인간화 교육프로그램은 충분히 있으니, 이를 현실화 시킬 시나리오를 짜고 당장 무기력에서 떨쳐 일어나길 희망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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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0. 1. 5. 19:19

한겨레21에 실렸던 추천 글의 원본...이랄까
실제로는 분량 문제로 더 간결하게 줄였고 좀 덜 박하게 보냈다.
그리고 내가 순화한 버전 이후에도 문학동네->한겨레21을 거치면서 순화된 부분도 있는 듯 -_-



김진경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정가 10,000원


드문 청소년 SF

디스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종종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다. 영화 데몰리션맨도 그렇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한국의 청소년 소설로서는 드물게도 이러한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을 토대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국의 교육이, 사회가 계속 이런 방향으로 치닫게 되면 근미래에 어떤 끔찍한 세상이 도래할지를 현실에 밀착한 상상력으로 표현한 '리얼한 SF'이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를 칭찬/추천하라고 하면 (약간의 과장을 곁들여) 청소년 소설로쓰여진 한국판 『1984』(조지 오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지하도시, 거주지역 불평등, 시계모자, 언론통제,경찰폭력, 그리고 뒤바뀐 낮과 밤.... 등등의 장치들은 독자들에게 지금 사회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장치들은 참신하기 때문에 놀라운 게 아니라, 익숙하기 때문에 놀랍다. 강남과 비강남, 임대아파트와 안 그런 아파트, 분당과 성남 등 이미 존재하는 거주지역에서 드러나는 불평등이 1구역 2구역 3구역 지하도시.. 하는 식의 소설 속 설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현실의 한국 정부의 미국 따라하기 행태는 소설 속의 미국 시간에 맞춰 뒤바뀐 낮과 밤과 직접 연결된다. 시계모자의 도입 과정은 학원과 과외에 쩔어 있고 이미 입시사교육화된 학교의 모습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 소설 속의 설정들은 새롭게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연장선상에 있다. 곳곳에 이명박 정부라는 당장의 현실을 의식한 설정들도 눈에 띈다.


좀 아쉬운 캐릭터와 스토리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회적 현실과 설정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다보니 캐릭터가 약하다.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캐릭터의 심리, 감정에 잘 몰입이 안 된다. 캐릭터가 단순해서 '이해'는 잘 가지만 깊이가 부족하고 인상이 흐릿하다. 가끔씩은 사건 전개가 억지스러운 것 같고 개연성이 부족할 때도 있다.(예를 들어 대체 중앙시계탑 앞에 화살은 왜 계속 둔 건가?;) 어느 헐리웃 영화에선가 본 듯한 식상한 장면들이 반복될 때는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런 단점들은 소설적인 재미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불만사항이 될 수 있다. 교육문제, 사회문제를 '시간'에 대한 통찰로 대체한 것 등은 김진경 씨의 철학적 내공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런 담론적인 풍부함과 참신함에 비해 인물이나 이야기구조는 빈약한 불균형이 느껴진다. 김진경 씨가 꽤 훌륭한 이야기꾼인 건 맞지만, 아직 이런 식의 장편 소설을 박진감 있게 구성하고 끌고 가기에는 좀 내공이 부족한 것 아닐까 싶었다.


사회적 정치적 소설로 읽을 가치는 충분

어쨌건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사회적 정치적 텍스트로 읽기에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원래 SF란 사회적, 정치적 성격이 강한 장르가 아니던가?)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교육 문제와 사회 문제가 하나로 엮여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이 소설은 청소년들이 직접 중앙시계탑을 부수는 클라이막스에서 마무리함으로써 ‘시계모자’를 없애는것(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웅변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과 저항을 강조한다.

물론 중앙시계탑이 부서졌다고 해서 소설 속의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모두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결말은 마치 작가가 독자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읽힌다.
중앙시계탑이 파괴되는 사건으로 혁명의 시위는 당겨졌다. 이 혁명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그 결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





덧 :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나올 때는 좀 웃은;
뭐 어쨌건 어떤 면에서는 이 소설은 (청소년)인권운동이나 88만원세대 등의 담론들에 약간의 빚을 지고 있다.

덧2 : 이 소설을 내가 처음에 추천사 쓰려고 원고 상태로 받았을 때는 "태양이 빛나는 밤에"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지금도 그 제목이 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라니;

덧3 : 읽는 내내 불편했던 게, 그럼 김진경 씨는 참여정부 때 얼마나 잘 했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까는 부분 읽을 때마다. 참여정부 때 교육정책을 얼마나 잘 폈나? -_- 이명박 정부보다야 잘 했겠지만- 그건 자랑거리라고도 하기 어렵지 않을까. 김진경 씨는 얼마만큼의 자기 반성 위에 이런 소설을 세상에 내놓았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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