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0. 4. 21. 04:04


전청련(전국청소년학생연합) 해산에 부쳐

(이 글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쓰는 글입니다. 제가 속한 단체의 입장과는 별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_@)
공현


전청련 해산 소식을 듣고 제 마음 속에 번졌던 감정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좀 쌩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움도 씁쓸함도 아닌 외로움이라니 말입니다. 그치만 정말로, 전청련이 해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고독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뭐, 감정을 억누르도록 사회화된 남정네라서 그리 쉽게 눈물이 나지는 않았지만요.

요즘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부쩍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봅니다.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잖습니까? 제대로 된 청소년단체라고 해봐야 흔히 쓰는 말로 한줌밖에 안 되고 말이지요. 청소년들을 보호하자, 청소년들을 선도하자, 그런 단체들은 참 많고 정부 지원도 나름 빵빵합니다. 대개 청소년단체라고 하면 바로 이런 분들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자, 청소년들이 직접 운동의 주체 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행동과 저항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청소년단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운동에 대해 고민이 들어도 그 고민을 같이 토론할 만한 비슷하면서도 다른 타자(他者)가 별로 없습니다. 어떤 활동을 같이 하자고 협력을 제안할 단체들도 많지 않습니다. 청소년운동을 한다는 건 외로운 일입니다, 아직까지는요.

그래서 전청련 해산이라는 소식이 자연스레 느끼게 하는 안타까움에, 저는 외로움을 보탭니다. 전청련이 건강한 청소년조직으로 성장하여 저/우리를 좀 덜 외롭게 해줄 수 있길 바랐습니다.(키잡?!) 전청련이 제가, 또는 제가 속한 단체들이 다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운동의 여러 역할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좀 무협지스럽게 이야기해서, 전청련이 믿고 등을 맡길 만한 파트너가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하고, 제안받고, 서로가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랐습니다.


촛불의 실패, 청소년운동의 실패

저는 전청련의 해산에서 전청련이라는 어느 한 조직의 실패 뿐 아니라 한 '시대적 사건'의 실패를 읽게 됩니다. 아마 몇 년 후면 교과서에도 나오게 될 거 같은, '2008년 촛불'의 실패입니다. 전청련은 2008년 촛불 속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여러 청소년단체들 중 하나였고, 그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조직이었습니다. 그런 전청련이 끝내 해산하는 것은 2008년 촛불이 청소년운동에 남긴 성과는 무엇이었나, 하는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2008년 촛불은 청소년들이 시작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역사와 사회의 주인이다, 아이들이 먼저 나오다니 부끄럽다... 청소년에 관한 말들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8년 촛불은 청소년운동에 뚜렷한 기여를 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일상적으로 어떻게 운동들을 만들어나가고 조직해나갈지에 대해서는 정작 무관심했던 것 때문일지, 아니면 촛불집회 안에서도 반성 없이 계속된 여러 사회적 차별들의 문제일지, 거대담론적인 촛불 프레임의 문제였는지... 그런 것까지 다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건 전청련의 해산은 2008년 촛불집회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전청련 해산은 한국 운동사회, 아니 청소년운동사회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청소년단체들, 청소년활동가들은, 왜 새로 막 생겨난 자생적인 청소년단체를 지원하는 일에 무관심했던 것일까요? 뭐 제 코가 석자니 지원이라고 해도 물질적 원조 같은 건 어려웠겠지만, 활동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자료를 제공하고 전청련 활동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운영방안, 활동방향 등에 대해 정보를 나누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전청련의 해산은 청소년운동이 현재 놓여 있는 열악한 운동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면서, 저/우리 모두의 잘못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사후약방문

사실 그동안 전청련을 지켜보면서 몇 번씩이나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하며 한두마디씩 끼어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청소년단체 사람이 와서 단체 내부 사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모양새가 나쁜 일이었고 말입니다.(물론 그 중엔 전청련 카페에서 등급이 방문객 등급이어서 글을 읽고 쓰는 게 제한이 걸려 있어서 그런 것도 있었죠;;) 결국 사후약방문 격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전청련을 지켜보면서 키보드가 근질근질거렸던 두 가지만 간추려서 적겠습니다.

사람-활동-조직 : 모든 운동단위에 다 적용되는 이야긴 아니겠지만, 저는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조직을 운영하는 경우에 일반적으로는 사람-활동-조직 순으로 사고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사람이 먼저 있어야 무엇이든 할 테니 활동하는/활동할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그 다음에는 활동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운동단체의 존재 목적은 결국 이 활동을 하는 데 있습니다. 활동이 없으면 유령단체가 되고 죽게 되는 것이고, 활동이 있으면 어떻게든 단체/조직의 목숨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운동에는 자전거 같달까 베르누이 효과 같은 성격이 있거든요.(이런 자연과학적 비유;) 활동을 하고 계속 굴러가는 조직이 넘어지지 않고 공중분해되지 않고 주위에 흡인력을 발휘하며 계속 생명력을 얻습니다. 피가 아니라 피의 흐름이 '생명'인 것처럼 말이지요.
조직구성은 그 다음입니다. 조직은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 같은 것입니다. 누가 무슨 일을 맡고, 운영은 어떤 절차로 하고, 이런 것들은 활동을 하고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부수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청련을 보면서 계속 걱정했던 것은, 활동보다는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느 자리를 누가 맡고 어느 부서를 어떻게 인사 배치하고, 어떻게 그럴듯해보이는 조직을 만들까 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는 것처럼 보였던 점입니다. 그리고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직을 만들어가고,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토론 속에서 전청련의 지향점과 목표를 합의하는 식이 아니라 계속 노선을 어떻게 해야 하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운동은, 물론 뭐 입이나 손가락이 중요한 역할을 하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발과 얼굴로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그런 점에서 저는 참 못난 활동가지요.) 발로 뛰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고 홍보하고 행동하면서 이루어지는 게 운동입니다. 서로가 대단한 노선이나 투쟁의 방법론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건 운동에서 부록 같은 겁니다. 조직내에서 누가 의장을 맡을까 하면서 하는 선거 같은 것도, 일종의 부록입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그 단체/조직의 성격을 정하는 거니까요. 저의 관점에서는 전청련은 '3기 지도부가 출범하지 못해서' 해산하는 게 아니라,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어서' 해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활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청련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전청련이 좀 더 활동 중심적으로 꾸려지고 움직였다면 더 오래 존속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생단체 : 전청련은 촛불집회의 열기 속에서 처음 시작하는 단체/조직 치고는 돈이든 사람이든 비교적 풍부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비교적' 그렇다는 것뿐, 전청련은 안정적인 재정 운영 방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이런 활동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활동이 어렵고 어떻게 할지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전청련이 좀 더 신생단체로서 다른 단체들, 다른 운동들에 손을 벌렸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제가 아까 '다른 단체 사람이 와서 왈가왈부'하기가 부담스러웠다고 했는데요. 차라리 전청련 활동가들이 다른 단체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활동에 대해 물어보고 고민을 나누었다면 어땠을까요? 개별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단체 차원에서 다른 단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인터뷰해서 전청련 활동에 참고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재정 문제나 여러 인맥 등도 그런 식으로 여러 단체들과 친해지고 활동에 후원을 얻고 비품을 빌리고 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거구요. 그래서 전청련이 너무 '갖춰진 조직'으로서 폼을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이 결국 전청련이 위기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해산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전청련 해산 이후

전청련 해산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전청련이 해산하지 않도록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되돌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전청련 해산 이후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별로 달라진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안서에 적을 단체가 하나 빠진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2008년 촛불 이전과 똑같다고 생각하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과, 있다가 없는 것은 다릅니다. 청소년운동의 조건과 지형도 다릅니다.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되는 것 같은 무게감을 느낍니다.

전청련 해산 이후라는 말에는 동시에 촛불 이후라는 말도 숨어 있습니다. 전청련의 해산은, 청소년운동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어떤 길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따져묻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우리는 활동으로 그 질문에 답해야 할 것입니다.

전청련에 몸 담았던 분들에게는, 전청련 해산에 너무 좌절하고 상처받지 마시라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은 저도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니 '학생인권공동행동'이니, 여러 모임을 만들었다가 흐지부지되거나 해산시킨 일이 여러 번입니다. -_-; 그런 시행착오와 실수 속에서 활동가들이 단련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전청련 게시판의 해산에 관한 공지를 보니, "이 공지글이 게시된 직후 단체 전환을 하고자하여 새로운 단체를 만들고 홍보하는 것을 인정함."이라는 문구가 있더군요. 전청련 분들 중에서 계속 청소년운동을 할 의지가 있는 분들이 앞으로도 밑바닥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으로 활동을 만들어가면 참 좋을 것입니다. 아수나로로 오셔도 환영하구요. (퍽!) 언제나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밑바닥 중 하나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게, 청소년운동의 조건상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전청련 해산에 안타깝고 외로운 마음을 전합니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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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기 대표 하던 여학생이던가 이뻤는데 (야...)

    2010.04.22 01:55 [ ADDR : EDIT/ DEL : REPLY ]
    • 음; 전청련 의장이 3명인가 있어서 누굴 말씀하시는진 모르겠지만;;;;

      2010.04.22 12:33 신고 [ ADDR : EDIT/ DEL ]
  2. 선경이요...? 의장은 의장대행까지 3명이 있었고 여자는 한명이었다는ㅋㅋㅋ 아 선경이하고 조직 내의 비하인드 스토리 쩔어욬ㅋㅋ

    2010.04.22 12:54 [ ADDR : EDIT/ DEL : REPLY ]
  3. 개인적인 생각은 이래요. 고병권 씨가 「추방과 탈주」에서도 언급했지만 촛불은 합법이냐, 비합법이냐에서 고민하다가 사그라들었다고. 촛불이 무의미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크고 묵직한 화두를 던졌죠.) 6월 이후 부터는 태생적 한계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청련의 경우는, 이미 사후약방문이 되었지만 먼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 기자로서 크게 관심을 못 둔 점 (카페에 가입은 했었는데, 방문자 수준에서 끝이었죠.) 에 대해서 크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기존 단체들에 자문을 구하거나, 연대 활동을 해서 활동에 대한 모색이 더 있었으면 더 오래 갈 수 있었을 까요.

    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인데. 촛불 시위로 인해 생겨난 단체 대부분은 '우리는 (기존 단체와) 다르다'를 외쳤지만, 그 선명성에 너무 올-인을 하다보니 점차 활동이 밋밋해지고 결국은 해산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작년 선거에서 경주 지역 후보로 나왔던 채수범 씨 (아고라에서 '한글사랑나라사랑'으로 활동했죠.) 를 보고 식겁했어요. 단순히 '나는 촛불 시위에 참여했고' ' 이명박에 반대한다' 외에는 아무런 공약도, 지점도 없다니! 이명박 정권의 행동이 문제라는 사실은 느꼈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할지. 즉, 방향 설정에서 난조를 겪었다고 봐요.

    아무튼, 전청련의 해산에 대해 큰 아쉬움을 느낍니다. 별 관심을 주지 못해서 더욱 죄송합니다.

    추신. 청소년활동가네트워크 측에서는 전청련과 접점이 없었나요? 네트워크가 어떤 단체인지 정확히 몰라 함부로 속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네트워크 측에서 전청련에 도와주자- 이런 식의 반응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2010.04.22 13:21 [ ADDR : EDIT/ DEL : REPLY ]
    • 합법/비합법, 폭력/비폭력, 조직/대중 구도 속에 사그라든...

      // 전청련 내부 상황 자체가 외부에서는 잘 알기 어렵게 개개인간의 갈등과 다툼으로 흘러간 측면이 있어서;;
      뭐 지금 와서야 이런저런 '만약에'를 내놓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먼저 손을 내밀지 난망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뚜렷하게 어떤 점에 곤란을 겪는지를 알 수 있었다면 먼저 돕자는 이야기도 나왔을 법한데... 네트워크 회의 때 딱 전청련을 꼽진 않았으나 다양한 청소년운동에 관한 모임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왔었으니;

      2010.04.23 10:26 신고 [ ADDR : EDIT/ DEL ]
  4. 브르르르럽 별 괴상한 일 많았죠

    2010.04.24 21:37 [ ADDR : EDIT/ DEL : REPLY ]
  5. Hyun

    별 괴상한일 많았죠. 그리고 공현님의 말씀에 상당부분 동의하기도 하고요. 근데 야우리시민님 말에는 상당한 왜곡을 조장할수 있는 이야기가 있네요...에휴. 이래서 소문이 무서운 것이죠. 여튼 전청련은 새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공현님이 여러가지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상당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ㅋ

    2010.05.27 01:11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4. 6. 17:17


아 글 제목 초 길어...

여하간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국청소년학생연합'에서 본 글 때문입니다.
전청련에서는 요즘 한~창 논쟁을 하고 있는데요.

뭐 생긴 지 얼마 안 된 조직(2008년 5월에 생겼고, 실질적으로 단체-조직의 틀을 갖춘 지는 정말 얼마 안 되었죠.)이다보니 이래저래 운영모델이나 방식이나 지향에 대해 이야기할 부분들이 많을 테고 요즘 싸우는 것도 그런 '고비' 중에 하나인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재미있게(어두운 욕망.-_-)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른 단체 사람으로서 그 논란에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고 보기에도 안 좋을 거 같아서 끼어들지 않고 있지만, 글을 읽다보니 아수나로에 관한 언급이 있어서 말이지요

아수나로에 대한 언급
: "아수나로 등의 단체들은 보면 알겠지만 평가하자면 아나키스트적이다. 그러다보니 단결조직된 학생행동조직체를 만들 수 없고, 그에따라 새로운 단체의 필요성을 느껴 전청련을 단결학생행동조직체로서 끌어가려한다."



뭐 저게 전청련 전체 의견이란 것도 아니고 그냥 저 문장을 보고 나니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적는 겁니다. 즉 이 글은 전청련과 사실은 직접적 관련은 전혀 없습니다 ㅎㅎ
사실 예전에 버스 안에서 했다가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고 묻어버렸던 생각이랑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라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겁니다. 전청련 분들이 읽고서 혹시 참고하실까 싶긴 한데 뭐 그건 그 분들 개개인의 자유에 맡기고...

그래서 오늘 쓰려는 글은 '운동조직에서 민주주의와 관료제 또는 대의제의 문제' 뭐 이런 겁니다.
옛~날에 관련해서 인권오름에 '대표'가 '문제'다 라는 글을 쓴 적이 있긴 한데, 당시에는 청탁 받고 급하게 쓰느라 그리 정리된 의견을 낸 것은 아니었다지요.



*
먼저 아수나로가 '아나키즘'적이라고 칭해지는 주된 이유는...
아무래도 '지부'는 있는데 '지부장'도 없고, 전체 '대표'도 없고 '의장'도 없고 '위원장'도 없는 구조 때문일 것입니다.
'총회'나 '전체온라인회의'도 사실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시키는 '활동회원'이기만 하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평의회 형태로 되어 있고 말이죠.
지부별, 또는 온라인 업무 관해서 '담당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담당'이 '직위'나 '명예'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귀찮은 일 해주는 사람 정도 인식이라서...

그리고 이런 운영을 뒷받침하는 가장 대표적 논리는 바로 '민주주의'입니다.(또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가능한 한 대의제의 폐해를 경계하고 수직적인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는 정신에 입각하여,
일이 '위임'되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아수나로의 입장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상시적인 '대표'나 '~장'은 필요 없다는 거죠.
그리고 아수나로에서 활동회원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수나로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뭐 그런 원칙이랄까요.

--> 이렇게만 보면 굉장히 원칙주의적인 것 같죠?


*
뭐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래도 '인권운동'하는 우리인데 민주적이어야지" 어쩌구 하는 당위적 접근으로 얘기하긴 참 쉽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당위에 그다지 동의하진 않습니다.
'인권운동'하더라도 대의제나 관료제 할 수 있는 거지 뭐. 해선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데?  -- 뭐 이런 심정?

그래서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왜 손쉬운 피라미드형 구조 또는 '지부장' '대표' 뭐 이런 걸 둬서 책임소재를 확실히 하는 구조 대신에 이런 운영방식을 택하고 있는지 뭐 그런 것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의견(그러니까 현재 아수나로 같은 운영 방식의 장점)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생각들 같은 걸 적은 겁니다.




*
우리는 보통 실리와 명분을 분리해서 생각합니다만
저는 '명분'이란 것도 결국 '실리'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라서요.
우리가 어떤 명분을 취한다면, 그건 그 명분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되기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이렇게 '대표'도 없고 그렇다고 무슨 '집행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단체가 커지기도 힘든 이런 시스템을 택한 데에는 나름의 실리가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
우선 첫 번째로 아수나로는 아직 그다지 덩치가 크지 않습니다.
아니 청소년(인권)운동 전반이 그리 덩치가 크지 않죠.
그래서 사실 아직 그다지, '관료제'라는 방식이나 '대의제'라는 방식이 딱, 필요한 건 아닙니다.
기껏해야 100명 남짓 정도이거나 100명 이내면 충분히 대의제를 취하지 않더라도 소통과 운영이 가능한 규모죠.
하물며 아직 수십명 단위인 아수나로는 어떻겠습니까.
한 1000명 단위가 되면 혹시 또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규모에서는 오히려 관료제적인 운영 방식을 취하는 게 비효율적입니다.
임기 다 되었다고 선거를 해서 교체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상시적으로 하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닌 부서들이, 단지 그 부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따로 회의를 해야 하는 등등.
거기다가 '~~장'이나 '대표' 같은 직위를 놓고 명예욕에 따라 별 의미 없는 다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때그때 '~팀'을 꾸려가며 팀제로 운영하거나, 절차를 간소화하고 실질적으로 활동가들이 전부 되는 만큼 결합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운영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
두 번째로, 경험적으로 볼 때 '덩치가 크고' '관료제화된' '대중조직'들에서 나타나는 폐해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전교조나 민주노총을 보면, '지도부'(중앙이건 지부건 지회건)와 그냥 조합원들 사이에,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까진 아니어도 '넘삼벽'(넘기 힘든 삼차원의 벽)이 있는 것 같더군요 -_-;
관료제-대의제는 때로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슨에 나온 말("우리가 대표를 뽑는 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야!")처럼, 그 결과 조직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큰 거리를 벌려놓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덩치가 큰 '대중조직'이 된다고 해서, 우리 중 일부가 '핵심 활동가'이자 '간부'가 되고, 일부는 그냥 집회나 행사 있을 때 동원되는 '회원'이 되는 그런 조직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아수나로에 '활동회원'으로 적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기 삶 속에서 청소년인권에 관해 좀이라도 고민을 하고, 자기 생업에 바쁘더라도 여유 시간 중 일부라도 청소년인권에 관한 활동을 직접 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길 바라지요.

전교조처럼 '전교조 같지 않은 전교조 교사'들이 많은 그런 조직이 되고 싶진 않달까요.

요즘 민주노총이 '식물조직'이란 류의 말이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가입되어 잇는 조합원이 몇만이건 몇십만이건, 그게 실제로 일정하게 공유된 인식 위에서 공동의 행동으로 조직되지 못하면 그 조직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할 수 없단 거죠. 그런데 관료제가 강화된 조직은 이런 식물조직이 될 위험성을 더 안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식물조직은 오히려 규모가 작은 살아있는 조직보다 못합니다. 기껏해야 조합원들이 내는 회비 덕분에 돈만 많달까요.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부분이 아니더라도 여기저기 덩치는 크기 때문에 거쳐야 할 의사결정의 단계와 절차들은 많고, 근데 정작 죽어 있기 때문에 논의는 안 되고,
그래서 제대로 된 일은 아무것도 못하고, 따로 깊이 있는 토론 과정 없이 지도부 독단으로도 할 수 있는 기자회견이나 관성적인 작은 활동 같은 것들만 하는 괴상한... 말하자면 '돈많은 지도부만의 활동조직' 같은 게 될 수도 있는...?


아수나로는 이미 지금도 활동회원들 사이의 동일성이랄까, 생각의 교류랄까, 뭐 그런 걸 어찌할지 고민투성이인데 말이죠.
지부들 사이의 소통도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관료제-대의제적 요소를 조직에 도입하는 건 위험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이 보완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죠.




*
전 아수나로가 '아나키즘적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뭐 결과적으로 현재 운영되는 형태는 다분히 아나키즘적이군요.

저는 '권력'이라는 게 아예 없는 관계라는 건 사실 전혀 소통이 일어나지 않는 관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수직적 관계가 많은 조직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수평적 조직, 뭐 그런 건 또 죽었거나 죽음과 삶 사이를 오가는(-_-) 애매한 조직이라고 생각해서요.

그래서 "수직적 관계가 없어야 하니까"라기보다는
"수직적 관계로는 활동회원들의 활발한 활동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공식화된 직위들을 만드는 걸 부정적으로 보는 거죠.

언제나 실질적인 활동이 먼저고, 절차나 틀, 형식은 그 위에서만 고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절차나 틀, 형식이 실질적 활동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안 될 말이겠죠?

요컨대 저는 아나키즘적인 조직 운영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제가 아나키즘의 이상사회 구상에 동의하는 면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나키즘들에 100% 항상 동의하는 건 아니니)
제가 생각하는 지금 상황에 맞는 조직 운영이 결과적으로 아나키즘적인 운영인 뭐 그런 상황?

다른 아수나로 활동회원 분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요.




*
뭐 사실 딱히 아수나로가 반드시 어떤 직위나 대표나 이런 게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말이죠.

구체적인 방식 면에서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생각해야겠지만
만약에 덩치가 일정 이상으로 커질 것 같고 필요해진다면 직위라거나, 대의제-관료제적 요소를 일부는 도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요소를 도입하는 게 항상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민주주의도 형식으로 판별하기보다는 실제 그 시스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어떻게 의견이 소통되고 반영되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식이 언제나 대의제-관료제적 요소가 배제되어야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런 요소가 위험성이 있다는 건 항상 염두에 둬야겠지만요 ㅎㅎ

활동 분야별로 나누든가, 아니면 뭐 언론이나 소식지를 운영하는 부서를 따로 둔다든지,
뭐 아니면 지부 관리 문제상 지부장 비스무레한 걸 두거나
여하간 이런저런 요구와 결정들이 앞으로 활동해가면서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최소한 아수나로가 4~5개 이상의 지부가 안정적으로, 한 지부당 10명 이상의 활동회원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활동회원들과 지부 사이에 의견-생각 교류가 활발히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활동회원들이 일정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는 과정을 확립하고...
뭐 그런 규모와 시스템이 갖춰진 이후에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뭐 사실 가장 이상적인 건 아수나로 뿐 아니라 아수나로와 긴밀하게 연결을 맺고 있으면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는 여러 수십명 규모의 청소년모임들이 생겨나고 그 모임들과의 네트워킹이 잘 되는 것일 테지만요.
그게 안되면 아수나로가 그자체로 일종의 대중조직...이라고 불릴 만한 천명 단위가 활동하는 정도의 조직이 되는 것도 하나의 길로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도 같기도 하고 쩝.


덧 : 아수나로 활동회원들 중에서(아 뭐 활동회원이 아니더라도 의견을 다실 수 있지만---) 이 글에 대해 다른 의견인 분도 꽤 있을 듯한데, 무플보다는 차라리 반대 의견이 좋아요 ㅋㅋ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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