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0. 10. 2. 09:13

어쩌다보니 청소년 관련 제 글 하나도 실린 책입니다 ^^;;



[책의 유혹]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렇게나 생생하게

『집은 인권이다, 이상한 나라의 집 이야기』,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엮음, 도서출판 이후, 2010년

손낙구

“당신은 ‘집’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나요?” 3년 전 이맘 때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웹진<진보복덕방>이 내게 물었다. 난 간단명료한 네 글자로 답했다. “걱정거리.” 다시 생각해봐도 절묘한 대답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사를 다녔을까?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손가락이 한참 접힌다. 통계청이 조사한데 따르면 한국인 셋 중 두 명이 5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있다. 수도권에서 셋방 사는 사람은 더 심해서 열 중 여덟 명이 5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그 중 다섯 명은 2년에 한번 씩 방을 옮겨가며 살고 있다.

익숙해진 걸까, 체념한 걸까. 떠돌이 삶도 수십 년 계속되면 적응되는 걸까, 힘든 일일수록 기억에서 빨리 지우는 현명한 뇌 덕분에 면역력이 생긴 것일까. 원래 한국인은 집단으로 역마살이 낀 게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아주 오랜 옛날 선조들이 유목생활을 했고 그 피가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일까…. 집 없으니 나가라면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그렇게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웹진 <진보복덕방>기사를 모아 엮은 책 『집은 인권이다, 이상한 나라의 집 이야기』에서는 대답한다, “아니다”라고.



혼자서 1,083채를 소유한 사람과 2년에 한번 씩 이삿짐을 싸야하는 무주택자에게 집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264미터높이의 <타워팰리스> 69층 펜트하우스에서 구름을 벗 삼아 사는 사람과, 땅속에서 곰팡이와 동거해야하는 (반)지하방 거주자에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같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똑같은 주택소유자라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한 채에 120억 원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과, 인천시 강화군에서 9만 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에게 집이 어떻게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집에서 황금알을 뽑아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월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데만 20년이 걸리는 사람들, 그래서 내 집 마련의 꿈도 상속해 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라한다. 왜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지,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집주인이 어떻게 세입자를 몰아세우는지, 그나마 주거 임대차보호법이 왜 빛 좋은 개살구인지,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를 얘기한다.

마치 환자가 의사에게 증상을 호소하듯 말한다. 집 없이 셋방을 떠돈다는 것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프고 시린 삶인지, 용역 깡패를 동원한 뉴타운 재개발과 강제철거에 내몰린 가난한 사람들이 왜 망루에 올라야했으며, 누가 왜 어떻게 그들을 불에 타죽게 했는지 얘기한다.

사람이 비닐하우스에 산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반)지하에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말한다. ‘소리 나지 않는 인간’, ‘관속에 누운 것 같아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인고시원 사람들과 쪽방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문손잡이가 손에 닿지 않기 때문에 문이 닫히면 꼼짝 없이 갇혀 버릴까봐 평생 방문을 닫지 않고 살고 있는 중증장애인에게 현재 한국 사회의 집이란 무엇인가 또박 또박 짚는다. 성소수자에게, 독립 하려하거나 독립을 강요당한 청소년에게 집이 얼마나 고통을 주고 있는지 호소한다. 월세나 전세 계약서도 쓰지 못하고 마음 졸이며 살아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의 집은 어떤 집인가 묻는다.

서른다섯 살이 안 된, 결혼 안 한 여성에게는 왜 전세자금을 대출 해 주지 않는지 묻는다. ‘ 홈리스주소를 정원벤치로 하여 투표권을 부여하라’는 미국 연방법원 판결을 소개하며, 우리나라에 서는 노숙인에게 집이 없다는 이유로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는 지 묻는다.

이 책의 장점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사실의 기록이란 점이다. 대다수 글은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쓴 것이다. 상당수는 말한 것을 풀어 쓴 것이다. 취재를 거쳐 기록한 것조차 거의구술에 가깝다.

셋방살이나 (반)지하방 생활의 어려움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똑같은 셋방살이 라도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 장애인, 가출청소년, 비혼 여성 등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조사나 기록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집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만큼 생생하고 자세하게담은 책은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집을 바라보고 주거권을 실현 할 수 있는 실험적 대안도 여러 가지 제시되고 있다. 대안 역시 큰 담론이나 거대 정책 차원보다는 ‘작은 시도’의 성격, 즉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인간적인 개발을 꿈꾸는 장수마을 대안 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인데, 미완의 대안이지만 매우 값진 시도다. 주택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는 물론이고 주택정책을 설계하는 정책입안자들에게 문제를 보는 지평을 넓혀주고 연구와 정책 상상력의 씨앗을 틔워 줄 귀중한 기록이다.

누구도 집 없이는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루의 3분의 1 이상은 집에서 생활을 한다고 보면, 집에 얽힌 이야기는 사람의 생활과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람 대다수가 집 때문에 죽고 사는 마당인데, 정치와 학문은 물론이고 사회운동도 집 문제를 자신의과제로 삼는데 소홀 했던 게 솔직한 현주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각 분야에서 진정한 사회발전을 꾀하는 이들에게도 자신을 비추고 성찰하는 거울이자, 집 문제를 실질적으로 고민하고 연구 할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손낙구 님은『부동산계급사회』저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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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220 호 [기사입력] 2010년 09월 28일 23:12:2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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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9. 9. 27. 02:46




1. 주체 접근
: 철거민 중에서 아동-청소년 주체들의 경험을 아동-청소년의 위치에서 깊이있게 파고 조직화

(실현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아동-청소년이기 때문에 철거와 관련해서 얼마만큼 특별히 다른 경험을 할지는 의문. 하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있다.)




2. '인권'으로 환원하여 접근
: 철거민을 살해한 용산 사건 같은 것은 이 사회가 얼마나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청소년도 인간이다. 인간을 하찮게 보는 이 사회에 맞서 싸우자. 우와아아앙.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사실 난 논리적으로도 오류가 있다고 보지만) 뭔가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음. 말로서의 설득력은 있지만 구체적 연대의 지점은 잘 안 보임. '촛불'삘의 사람들에게라거나, 이런 접근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님.)




3. '주거권'으로 엮어서 접근
: 재개발-철거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 거품 문제(근원을 따지면 박정희 때 정책까지 거슬러올라감)가 엮여있다.
즉, 집이 주거공간이 아니고 일종의 상품처럼 생각되고, 재개발도 주거환경을 개선해서 원주민들을 더 좋게 살게 해주는 목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땅값, 집값을 올리고 투기하는 게 목적이 됨.
청소년들이 독립을 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말도 안되게 지나치게 비싼 부동산 가격.
따라서 철거민이 겪게 되는 주거권의 문제와 청소년 독립을 하려고 할 때 가출할 때 등 겪는 주거권의 문제는 하나의 뿌리다.
청소년은 집값/땅값을 올리는 재개발에 반대하며 이런 맥락에서 철거민과 같이 싸움.

(논리적으로 가장 그럴듯함. 그러나 청소년들의 주거권 같은 경우는 잘 알려진 개념도 아니고, 잠재된 문제로 존재. 주거권 침해에서부터 가족 안에서의 인권침해나 경제적 문제 등이 다 얽히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거권 문제는 숨은 원인처럼 잠재적으로 있음. 잘 인지가 안 됨...  그래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마치 교육제도에 맞서 투쟁하는 것처럼.
그리고 청소년들이 재개발을 반대하게 되는 것과, 철거민들이 재개발에 반대하면서 요구하는 것 사이에는 세부적인 요구안에 차이가 생김.)



4.



생각해보면, 철거민 투쟁 자체가 철거-점거 등 너무 급박하고 긴박한 투쟁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어서-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이고
차라리 일상적인 주거권 운동에 결합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철거민운동보다는.


4번 이후로는 뭐가 있을까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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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28

    신선함!

    2012.04.26 04:16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8. 15. 03:14

[만의 인권이야기] 독립의 꿈을 가로막는 것들

주택정책에서 주거권은 없어

민선


살만한 집에 살려면...

이번 달 말일로 현재 사는 집 계약이 끝난다. 2년 전 9월 1일 친구와 함께, 이곳 신림동 반지하 집에 둥지를 틀었다. 4개월 동안 얹혀 지낸 빈 지하방, 곰팡이 냄새가 벽마다 눅눅하게 배어있던 ‘암굴’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낑낑대며 모은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해서 내 스스로 집을 구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월세를 포함한 생활비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사 왔던 그 날 밤, 자축 술 한 잔에 뭔가 꽉 찬 기분을 느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덧 2년이 지나가 다시 집을 구하기 위해 한동안 부동산과 직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어떻게든 보증금을 좀 높여서라도 월세 부담을 줄였으면 좋겠고, 창문을 좀 열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고, 빛과 바람이 더 잘 들어왔으면 좋겠고, 자기 집에 너무 애착이 커서 건건히 간섭하는 주인집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2년 동안 지내면서 자연스레 생긴 집에 대한 바람들이다. 그런 바람들이 이루어지기에는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독립,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집을 알아보면서 예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꼭 독립해야지’ 마음은 가득했지만 이를 시도하기에는 막막해서 늘 꿈만 꿨었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좀 더 내 스스로의 삶을 살고 싶어 무작정 부모님의 집에서 나왔다. 일을 하며 모았던 돈 몇 푼에 당장 ‘집 같은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시원을 들어가 볼까 생각했지만 작은방 한 칸에서 지내기 위한 비용을 월마다 부담하게 되면 계속 고시원에서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달랑 트렁크 하나를 끌며 걷다 문득 멈춰서 빽빽이 솟아있는 건물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내 몸 하나 쉬게 할 공간이 없다는 설움, 그것이 집이란 공간을 상실했다는 첫 느낌이다. 그런 내게 지하방이지만, 곰팡이냄새가 가득했지만, 화장실이 밖에 있어 불편했지만 그래도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지하방에서의 생활은 잠자는 것 외에 없었다. 빛을 받지 못하고 눅눅하게 지내다보니 몸에서 곰팡이가 필 것 같았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살만한 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든다. 누구나 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붕과 벽으로 둘러쳐있다고 집이 되지는 않는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살만한 집이기 위해서는 햇빛도 받아야 하고, 물과 전기, 가스같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가 보장되어야 하고, 피곤한 몸을 쾌적하게 누일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있어야 하고... 물리적인 여건 외에도 부담 가능한 적절한 비용이나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 사회경제적인 여건도 충족되어야 한다.

위 사진:대한주택공사 홈페이지에 그려진 도시에는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재산권으로서의 집, 딱 그만큼인 현실

집다운 집에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질 것처럼 무겁다. 아끼고 아껴 독하게 저축을 한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점유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온다. 살만한 집에 살고 싶다는 꿈, 이것이 현실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 “집값 상승이 심상치 않다”, “서민들이 내 집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보도는 한 숨만 더 깊이 쉬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한 숨 짓게 한 상황에 대한 책임은 바로 부동산 투기부양정책만 적극적으로 펼친 정부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집은 재산권을 보장하는 수단이고, 집에 대한 정책은 재산권을 강화하는 정책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강부자’들에게 선물로 준 종합부동산세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각종 개발 규제 완화는 집값 폭등과 그에 따른 전세 값 폭등을 초래했다. 대출을 받든, 월세로 허덕이면서 살든,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주를 하든 그 몫은 고스란히 ‘집을 소유하지 못한 죄’가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2년 뒤 나는...

단지 공급과 수요, 가격 조정만 고려하는 주택정책에서 적극적으로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책, ‘누구나’,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집 때문에 고단한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살만한 집, 집다운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데, 2년 뒤 집은 나에게 또 어떤 부담으로 다가올까.


덧붙이는 글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65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12일 17:38:52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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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방에 거주하는 가정인데요

    우리도 나름대로 적적하고 외로운 사정이 있어 서로 이해되는 사람이 있다면

    식구처럼 지내보고 싶어서 올렸어요

    오는분에게도 경제적으로든 잠시 휴식을 취하든 도움이 되면 좋구요

    어떤 사정이든 서로가 자세한 대화후에 만나보고 결정하면 좋겠어요

    풍요롭게 살아서도 아니며 단지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것이 아니라 우리도 식구가 늘어사는 재미도 느끼고 해서 좋을것같아서에요

    생활비부담없이 무료로 거주하며 내집처럼 편하게 지낼분이면 좋겠어요

    http://blog.daum.net/rufchqhdms00/28

    블로그에 오셔서 긴 내용 읽어보시고 연락주세요

    진지하게 올리는 글이니 장난성이나 함부로 올리는 추측성오해의 덧글 올리지 말아주세요..물론 단순히 이글만 보시는분 입장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어요.하지만 꼭 필요한분도 계시고 서로 도움이 되기도 하답니다^^

    2009.08.16 12:12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7. 16. 11:33


http://www.culturalaction.org/webbs/view.php?board=houseagent&id=183
진보복덕방에 쓴 글

같은 주제의 글
“청소년만을 위한 임대주택이 있으면 좋겠어” 자립을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 세현 씨 이야기




“가출”과 “독립” 사이 - 청소년의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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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너 도 나도 집 걱정 하는 시대지만 청소년이 집 걱정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주거정책. ‘혼자 살 나이’가 아니라고 쳐다보는 사회를 ‘혼자’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이다. 여전히도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청소년 주거권. 하지만 너무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청소년 주거권이다. <진보복덕방 14호>에서는 "청소년 주거권"에 대한 생각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청소년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은 아직 낯설고, 그 내용이 분명하지가 않다. 아직 정리된 이야기거리들과 지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소년의 주거권과 관련하여 딱히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혹은, 관련된 사건이 있었더라도 주거권 문제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의식주 중에서도 ‘결식아동’이나 ‘급식’을 비롯하여 아동·청소년의 먹거리에 대해 사람들이 쏟는 지대한 관심에 비하면, 청소년들의 주거권 문제가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놓고 청소년들의 주거권에 별 문제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청소년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이 낯선 것은 주거의 문제를 가족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며, 청소년들은 그 가족-가정에 종속되어 있는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진지하게 주거권의 주체로 고려되어 본 적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주거권의 주체는 일단 비청소년들(‘어른들’)이며, 청소년의 주거권 또한 어른들의 주거권에 종속되어 있다. ‘거소결정권’이 친권의 일부로 당연하다는 듯 명시되어 있는 민법만 보더라도 이런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주거권은 단순히 누구나 발 뻗고 누워서 잘 수 있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주거의 최소한일 뿐이다. 주거권은 안정적인 집, 안전한 집, 가능한 한 좀 더 편안한 집, 내가 원하는 생활방식, 집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 등의 내용을 포함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생활을 옮기거나 조정할 수 있는 권리까지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주거권이라면, 청소년들의 주거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의 주거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다. 바로 “가출”과 “독립”의 문제이다. 우리는 “독립”이라는 말과 “가출”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한다. 독립과 가출은 분명히 다르긴 하다. 지금까지 살던 집/가정을 떠난다는 것은 같으나, 독립은 어느 정도 지속적이거나 영구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가출은 일시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보통 사용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판단적 부분도 있어서, 독립은 보통 정당한 것,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지칭하는 데 반해 가출은 일탈적인 것, 잘못된 것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가출이란 말에는 집요하게 청소년이 따라다닌다. 국어사전 예문에도 “가출 청소년”, “집안 형편이 어렵자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그는 가출을 감행하였다.”, “어머니는 가출한 아들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이런 것들만 나와 있으며, 정부에서는 청소년 가출에 대한 통계를 따로 낼 정도이다. 비록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이를 위반하는 일종의 무책임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가장의 가출”이나 “어머니의 가출” 같은 말이 사용되긴 하지만, 가출은 여전히 주로 청소년의 것이다. 가출이란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부정적 가치판단까지 포함해서.

이런 말 쓰임의 배경에는 청소년은 가정의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그리고 청소년은 ‘독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성년자’라는 말로 표현되는 청소년들의 ‘미성숙’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현실적 제약이다. 앞서 내가 “가출”은 보통 일시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상, 가출로 명명되는 청소년들의 가정 탈출(다른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저항)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우며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주거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가출 청소년들에 대해 국가가 제공하는 ‘쉼터’(6개월~1년 머무르는)는 청소년들에게 당장 먹고 잘 곳을 주긴 하지만 지속적인 주거일 수 없으며, 현재의 ‘그룹홈’은 그 수가 매우 적고 지원도 열악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쉼터 등은 아무래도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의 성격이 강하니까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치고, 청소년들의 ‘독립’ 문제에 관해 본격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뭐 집 문제라는 게 항상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돈일 것이다. 눈 깜빡할 새 몇 백, 몇 억씩 오르는 집값이나 전세값, 보증금과 임대료 등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민사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계약 자체를 맺기가 어렵다. 청소년 알바라는 게 대부분 저임금이라서 돈 벌기 어려운 건 말할 것도 없고, 주택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다.

여러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책, 『88만원세대』에서는 첫 챕터에서부터 ‘독립’이 20대 후반까지도 지연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독립이란 얼마나 요원한 일이겠는가? 말이 나와서 말인데, 『88만원세대』의 첫 챕터는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라는 제목으로 청소년들의 경제적 조건과 주거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읽다보면 역시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만다.

결국 이 사회에 살아가는 다수 ‘정상적인’ 사람들의 주거 사이클은, 청소년기에는 어떤 불만이나 독립에 대한 욕구가 있어도 가정에 종속되어 살다가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경제적/주거적으로 독립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간혹 이 사이에 학교 진학 등을 이유로 경제적으로는 가정에 종속되어 있지만 집을 떠나서 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런 주거 사이클을 벗어나려 하지만 이를 사회는 거의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가출과 같은 형태의 주거 저항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 의해 청소년들의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대로 꺼내지지도 않은 채, 침묵 속에 묻히고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신화 밑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나,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들 집값 걱정하는 시대이다. 정부에서는 집값을 낮추겠다고 호언장담하고 그래도 내집마련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거복지정책'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여러 가지 이유로 배제를 경험하는 소수자들의 주거권 현실을 살펴본다면 주거권 실현이 집값잡기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거복지정책'은 오히려 배제를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고 있다. 누구에게 어떤 집이 필요한 지를 묻지 않고 상품만을 찍어내는 주거, 부동산정책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도 없을 뿐더러 주거권 실현도 기대할 수 없다.

<진보복덕방>에서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여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사례들을 짚어보면서 그 현실과 쟁점에 대한 연속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장애인주거권(9호), 노숙인주거권(10호), 주거용 비닐하우스촌 거주민주거권(11호), 뉴타운사업(12호), 동성애자 주거권(13호)의 현실과 쟁점을 살펴보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편적 주거권 실현을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편집자 주]


2008년07월15일 13:49:3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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