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0. 10. 2. 09:13

어쩌다보니 청소년 관련 제 글 하나도 실린 책입니다 ^^;;



[책의 유혹]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렇게나 생생하게

『집은 인권이다, 이상한 나라의 집 이야기』,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엮음, 도서출판 이후, 2010년

손낙구

“당신은 ‘집’을 생각하면 어떤 단어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나요?” 3년 전 이맘 때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웹진<진보복덕방>이 내게 물었다. 난 간단명료한 네 글자로 답했다. “걱정거리.” 다시 생각해봐도 절묘한 대답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사를 다녔을까?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손가락이 한참 접힌다. 통계청이 조사한데 따르면 한국인 셋 중 두 명이 5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있다. 수도권에서 셋방 사는 사람은 더 심해서 열 중 여덟 명이 5년마다 이사를 다니고, 그 중 다섯 명은 2년에 한번 씩 방을 옮겨가며 살고 있다.

익숙해진 걸까, 체념한 걸까. 떠돌이 삶도 수십 년 계속되면 적응되는 걸까, 힘든 일일수록 기억에서 빨리 지우는 현명한 뇌 덕분에 면역력이 생긴 것일까. 원래 한국인은 집단으로 역마살이 낀 게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아주 오랜 옛날 선조들이 유목생활을 했고 그 피가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일까…. 집 없으니 나가라면 나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고 그렇게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웹진 <진보복덕방>기사를 모아 엮은 책 『집은 인권이다, 이상한 나라의 집 이야기』에서는 대답한다, “아니다”라고.



혼자서 1,083채를 소유한 사람과 2년에 한번 씩 이삿짐을 싸야하는 무주택자에게 집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264미터높이의 <타워팰리스> 69층 펜트하우스에서 구름을 벗 삼아 사는 사람과, 땅속에서 곰팡이와 동거해야하는 (반)지하방 거주자에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같을 수 없다고 얘기한다. 똑같은 주택소유자라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한 채에 120억 원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과, 인천시 강화군에서 9만 원짜리 집에 사는 사람에게 집이 어떻게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집에서 황금알을 뽑아내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월세 보증금을 마련하는 데만 20년이 걸리는 사람들, 그래서 내 집 마련의 꿈도 상속해 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라한다. 왜 이사를 다닐 수밖에 없는지, 계약기간과 상관없이 집주인이 어떻게 세입자를 몰아세우는지, 그나마 주거 임대차보호법이 왜 빛 좋은 개살구인지,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를 얘기한다.

마치 환자가 의사에게 증상을 호소하듯 말한다. 집 없이 셋방을 떠돈다는 것이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프고 시린 삶인지, 용역 깡패를 동원한 뉴타운 재개발과 강제철거에 내몰린 가난한 사람들이 왜 망루에 올라야했으며, 누가 왜 어떻게 그들을 불에 타죽게 했는지 얘기한다.

사람이 비닐하우스에 산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반)지하에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말한다. ‘소리 나지 않는 인간’, ‘관속에 누운 것 같아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인고시원 사람들과 쪽방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문손잡이가 손에 닿지 않기 때문에 문이 닫히면 꼼짝 없이 갇혀 버릴까봐 평생 방문을 닫지 않고 살고 있는 중증장애인에게 현재 한국 사회의 집이란 무엇인가 또박 또박 짚는다. 성소수자에게, 독립 하려하거나 독립을 강요당한 청소년에게 집이 얼마나 고통을 주고 있는지 호소한다. 월세나 전세 계약서도 쓰지 못하고 마음 졸이며 살아야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의 집은 어떤 집인가 묻는다.

서른다섯 살이 안 된, 결혼 안 한 여성에게는 왜 전세자금을 대출 해 주지 않는지 묻는다. ‘ 홈리스주소를 정원벤치로 하여 투표권을 부여하라’는 미국 연방법원 판결을 소개하며, 우리나라에 서는 노숙인에게 집이 없다는 이유로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는 지 묻는다.

이 책의 장점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사실의 기록이란 점이다. 대다수 글은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쓴 것이다. 상당수는 말한 것을 풀어 쓴 것이다. 취재를 거쳐 기록한 것조차 거의구술에 가깝다.

셋방살이나 (반)지하방 생활의 어려움은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똑같은 셋방살이 라도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 장애인, 가출청소년, 비혼 여성 등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조사나 기록된 적이 없다. 지금까지 집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만큼 생생하고 자세하게담은 책은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집을 바라보고 주거권을 실현 할 수 있는 실험적 대안도 여러 가지 제시되고 있다. 대안 역시 큰 담론이나 거대 정책 차원보다는 ‘작은 시도’의 성격, 즉 대단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인간적인 개발을 꿈꾸는 장수마을 대안 개발 프로젝트가 대표적인데, 미완의 대안이지만 매우 값진 시도다. 주택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는 물론이고 주택정책을 설계하는 정책입안자들에게 문제를 보는 지평을 넓혀주고 연구와 정책 상상력의 씨앗을 틔워 줄 귀중한 기록이다.

누구도 집 없이는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루의 3분의 1 이상은 집에서 생활을 한다고 보면, 집에 얽힌 이야기는 사람의 생활과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사람 대다수가 집 때문에 죽고 사는 마당인데, 정치와 학문은 물론이고 사회운동도 집 문제를 자신의과제로 삼는데 소홀 했던 게 솔직한 현주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각 분야에서 진정한 사회발전을 꾀하는 이들에게도 자신을 비추고 성찰하는 거울이자, 집 문제를 실질적으로 고민하고 연구 할 수 있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손낙구 님은『부동산계급사회』저자 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220 호 [기사입력] 2010년 09월 28일 23:12:29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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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0. 8. 9. 04:35



아수나로 카페 게시판에서 "아수나로 이 빨갱이 새끼들 국보법으로 쳐넣어야 해"라고 떠드는 A씨가 있었다.
그런 A 씨에게 "이런 장애인 새끼." "서울역에서 노숙이나 할 놈"이라고 욕한 B씨에게 문제제기를 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B씨가 매우 기분이 상해서 탈퇴해버렸다.

그래서 쓴 글 쿨럭.


http://cafe.naver.com/asunaro/22460





사회적 약자를 모욕하지 않고 상대를 욕할 만한 욕들
"망할 놈"
"썩을 새끼"
"이명박 같은 새끼"
"뒈져버려"

그밖에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욕들이 가능.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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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뭐 그건 본인 마음 아닌가요? 사회적 약자는 말그대로 약자...
    어차피 약육강식인 세상에서 그런게 무슨 상관이 있는지. ~_~
    노숙자는 그런말 먹어도 싸요.
    장애인에 대해서는 좀 문제의 소지가 있긴하네요...
    근데 그러면서 든다는 예가 "이명박 같은 새끼"라는건 조금ㅋㅋㅋㅋ

    2010.08.09 04: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노숙인에 대해 편견을 많이 가지고 계시군요 ^^;; 저도 그런 편견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최대한 다시 생각하려 노력중입니다.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45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854

      이런 글들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사회적 약자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사회를 바꾸려고 활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리고 또 실제로 그런 사회적 약자들이 같이 있는 공간에서 당연히 있어야 할 최소한의 존중일 뿐입니다.

      / 이명박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잔인한, 사회적 강자의 대표 아이콘이니까요.

      2010.08.09 14:37 신고 [ ADDR : EDIT/ DEL ]
    • 사람들 편견이 문제가 아니라 노숙자 자체가 문제죠 ;;
      뭐라도 하면 될걸 왜 아무것도 안하고 손을 놓고 있죠?
      나이 지긋이 먹은 할아버님들도 일을 하시는데,
      왜 아무것도 안하고 길거리에 나 앉아서는
      남한테 피해 주면서 사는 사람들을
      고운 시선으로 봐라봐야하는지 이해가 안가는군요.
      이명박이 아무리 나라를 똥으로 굴려도
      노숙자보단 훨씬 나은 사람이죠.

      2010.08.09 21:43 신고 [ ADDR : EDIT/ DEL ]
    • "노숙인들은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자체가 노숙인 분들에 대한 편견이라는 겁니다.
      그 분들 중에는 과거에는 여러 가지 노동이나 사업에 종사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들은 왜 어쩌다가 노숙인이 되었을까요?

      노숙인 분들에 관한 인터뷰나 인권교육 자료들을 보면, 노숙인들 중에는 노숙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고, 드물게 구하더라도 노숙/빈곤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운 저임금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 많은 노숙인들이 다 디오게네스 학파인 것도 아니고;; 위험하고 어려운 노숙 상태에 계속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다수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노숙인의 증가는 IMF 구제금융 이후의 불황이나 빈부격차 등 사회적 요인들에 의한 것입니다. 그것을 개인의 책임인 양 몰아붙이는 거야말로 '편견'이 아닐는지요..;

      2010.08.10 14:01 신고 [ ADDR : EDIT/ DEL ]
    • 답답하시네... 그부분이 문제라고는 생각 안해보셨어요?
      "노숙생활을 벗어나고싶다"..이거요.
      그런 마음이 있으면 어떤거든 일단 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편의점알바같은거라도요.
      요샌 나이 드신분들도 꽤 하시던데 말입니다...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게 아니라..
      "내가 그래도 어디서 사장소리 듣던 사람인데~
      시급 사천원짜리 알바를 어떻게 해?" 대신에
      구실 하나 더 만드는거죠.

      맨날 뭐 일자리가 없네~ 실업률이 높네~~하는데
      일자리는 차고 넘칩니다.
      그대신 눈을 낮춰야겠지만요.

      2010.08.10 14:40 신고 [ ADDR : EDIT/ DEL ]
    • 보통 일자리를 구할 때는 주거가 일정하거나 용모가 단정하거나 하는 여러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군필을 우대하는 편의점도 본 적 있는데;)
      노숙인 분들은 주거가 일정하지 않고 신분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의복이나 용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채용되기가 어렵습니다. 노숙인에 대한 개나리님 같은 분들이 같고 있는 편견도 거기에 한몫하지요.
      그러면 일정한 주거를 가지고 씻고 옷도 깨끗한 걸로 사서 갈아입고 취직을 해야겠죠? ^^;; 근데 그러려면 노숙 생활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고... 이거 악순환;
      -- 물론 노숙 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들도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 방향으로 시행되는 복지/자선도 있구요. 하지만 모든 노숙인 분들이 거기에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도 아니죠.

      그리고 편의점 알바를 한다고 해서 노숙 생활을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이 되진 않습니다. 현재 책정된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는 최근에도 여러 곳에서 실험했었으니 따로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회적 문제로 그런 처지가 된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장벽들을 만들어놓고, '그 장벽을 넘어서 노력하지 않으니까 니탓', 이라고 하는 게 정당한 건 아니겠죠

      2010.08.10 15:44 신고 [ ADDR : EDIT/ DEL ]
  2. 이명박 같은 새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0.08.11 12:45 [ ADDR : EDIT/ DEL : REPLY ]
  3. 비슷한 예로 영어권 국가에서 gay를 부정적 형용사로 쓰는 경우가 있죠.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여자같다"를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부장제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또 특이해보이는 행동이나 시위자를 놀릴 때 관심 받으려고 그러는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그 사람을 성노동자에 비유하는 것도 또 하나의 영어권에서의 예지요.

    '병'으로 시작해 '신'으로 끝나는 말 이건 어르신들이 자주 쓰는데 인터넷에서는 '병'으로 시작해 '맛'으로 끝나는 말로 변주됩니다. 사전적인 원래 의미를 보면 이 말도 약간은 문제가 있죠. 나와 다른 사람을 "넌 뭔가 모자란 거야" 혹은 "넌 어딘가 고장난 거야"로 보는 성향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 단어의 뜻이 그렇거든요.

    요즘은 덕후, 방콕을 욕으로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악플러로 규정하는 경우 대개 그 사람을 방콕, 히키모리, 덕후 등으로 함께 규정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사실 저는 악플이라는 말 자체도 썩 맘에 들지는 않습니다, '악의적 비방'이라는 표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거든요.

    대인관계가 부족함을 뜻하는 각종 표현을 욕으로 쓰는 경우도 문제인 것 같고, 왕따 혹은 그와 비슷한 말들을 욕으로 쓰는 경우도 참 그렇죠.

    이런 것보다는 그냥 "씨"로 시작하는 (많은 사이트에서 금칙단어인) 단어가 훨씬 낫다고 봐요. 사실 이 단어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이것도 문제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옛날의 뜻과 분리된 상태라서 괜찮다고 봅니다. 약자 끌어들이는 욕은 그럭저럭 넘어가고 "씨"로 시작되는 단어는 거의 용납되지 않는 현실.... 아 슬퍼요.

    2010.10.01 20:31 [ ADDR : EDIT/ DEL : REPLY ]
    • "병신" 같은 경우는 누구를 모자란 사람으로 지칭해서 문제라기보다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볼 때 모욕적이고 비하적이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

      흠 근데 악플러가 그런 맥락도 내포하고 있었나요? 눈치를 못 챈 저는 둔감한 건지;;

      예 사람들ㅇ느 즉각적인 '쌍욕'에는 반응할지언정 사회적인 욕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지요. 한국 사회의 인권감수성의 현주소인 것 같습니다

      2010.10.07 09:21 신고 [ ADDR : EDIT/ DEL ]
    • '악플러'라는 말은 그런 맥락을 내포하는 게 아니고 다른 이유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악의적 비방'이라는 표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봐서요 사람들이 뭔가를 깔 때에는 악의가 없는 경우가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표현이 과하면 '악의적으로 그런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문화가 아쉬워서요.

      2010.10.07 23:09 신고 [ ADDR : EDIT/ DEL ]
    • 옛날의 뜻?

      옛날의 뜻과 분리가 된다면 다른 욕들도 써도 괜찮겠네요?
      사실 그 사람의 신체 중 일부가 기능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xx라고 하진 않잖아요 다만 화의 표현이기 십상아닌가요. 결국 문제는 어원입니다.

      2012.01.17 01:56 [ ADDR : EDIT/ DEL ]
  4. 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영어에 bigot이라는 단어가 있죠. 소수자나 타종교, 타 민족에 대한 불관용을 보이는 사람이나 가부장제에 물든 사람을 모두 지칭할수 있는 영단어인데 한국어에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는 게 섭섭하더라고요.

    2010.10.01 20:56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나가는꿈2009. 10. 19. 12:46


용산국민법정에 가서 속기를 했다.

원래 안 가려고 생각했는데 속기로 섭외되어서 -_-

속기는 매우 빡셌다... ㅎㄷㄷ 왜이렇게 말들을 빨리 해 ㅠㅠ





보면서 좀 데자뷰가 들었는데, 2007년에 갔었던 YMCA 시민법정 2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YMCA 시민법정 오마이뉴스 기사 (2007.09.21.)

그때도 검사측을 맡은 사람들의 주장은 주로 "현행법대로 하자" 였는데 이번 용산국민법정 역시 거의 그런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다만 증인 분들이 가끔씩 너무 흥분하셔서리 --; 말을 잘 못알아들으시는 경우가 생겨서 답답..하다기보다는 속기하는 입장으로서 괜히 불필요하게 말을 주고받게 되는 거 같아서 손가락이 ㅠㅠ
예를 들어 "망루에 불이 나지 않았다면, 망루 주변에 옥상에 공간이 있으니 발을 디디고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화재 전에 미리 매트리스를 설치하는 문제에 관련하여 물은 듯) 라고 심문했을 때도 "불이 났는데 옥상 어디에 서있는단 말입니까?" 하는 식으로 답한다거나...?


저녁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국민법정 일정이 원래 정해진 것보다 30분 정도 밀린 탓에 배심원 평결 등을 못 보고 나왔는데

배심원 평결에서 모두 다 압도적으로 유죄가 나온 것은 좀 의아했다.

적어도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피고 변호인 측의 논변은 꽤 설득력 있었던 것 같은데.

공무원의 폭행죄는 성립한다고 치더라도  고의로 인한 살인 및 상해가 아니라 과실치사, 과실상해 정도로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살인교사죄가 성립할 수 있는 것인지도 좀 의아했다. 직접 교사라고 볼 수 있나... 뭐 이명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당연히 물어야 하지만, 그건 정치적인 거지 사법적인 건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상급 공무원, 일종의 명령권자로서의 책임 같은 거...  뭐 걸 만한 법률이 딱히 없긴 했겠다만... 쿨럭  뭔가 이런 식으로 전체 정책 방향 등을 정하는 고위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새 법이 필요하겠단 생각도.

2부인 주거권 영역에서 강제퇴거죄야 당연히 성립하는데








인민 / 시민 / 국민 / 대중의 판결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꼭 합리적인 것만이 유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근데 어쨌건 용산참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배심원 신청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중에서 배당해서 랜덤으로 뽑은 배심원에 꼭 통계적 대표성이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




국민법정에 사람들이 많이 온 걸 보고,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같이 나누는 데는 꽤 좋은 퍼포먼스란 생각도 들었다. 준비하기도 빡세지만 -_-
>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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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헝 . .. 속기 할려면 .. 어느정도 타자가 있을꺼에요 ?

    2009.10.19 17:18 [ ADDR : EDIT/ DEL : REPLY ]
    • 에에... 대충 분당 700타 정도 나오긴 하는데...
      말이 그리 빠르지 않은 분들 말하는 건 대충 말을 그대로 치면서 쫓아갈 수 있는데
      말이 유난히 빠른 분들, 미리 써온 걸 읽어내려가는 것들은 쫓아가기가 어렵더라구요 ^^;;

      2009.10.20 03:22 신고 [ ADDR : EDIT/ DEL ]
  2. 현장에서 바로 다 입력하나 보네요. 녹화했다가 나중에 입력하는 줄 알았어요.

    잘못이 있긴 하지만 살인교사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법률이 아닌 법감정만 그대로 묻어나는 이런 방식은 배심원제도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될 것 같기도 하네요.

    2009.10.20 12:0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네 다 입력했지요... 물론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다 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재판부(판사)의 조정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2009.10.20 18:44 신고 [ ADDR : EDIT/ DEL ]
  3. 시간 맞춰서 일어나긴 했는데 도저히 술이 안깨서 안갔습니다 -ㅅ-

    2009.10.21 09:54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10. 2. 14:30



10.18 용산국민법정
배심원단을 모집합니다


배심원은?
국민들이 기소 내용과 법정공방을 지켜보면서 유무죄를 판단합니다.
국민들의 참여로 평범하고 상식적인 재판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모집기간 10월 5일(월)~11일(일)
자 격 10월 18일 국민법정에 출석해 심리를 지켜보고 평결을 할 수 있는 시민
인 원 배심원 5배수 (총 250명)


선정방법은?

- 모집이 완료된 후 250명 중 50명을 무작위로 선정 (당일에 못나오게 될 사람을 고려해 예비배심원을 일정 수 선정)

- 공정한 배심원 선정을 위해 재판부의 주관 아래 기소대리인과 피고변호인이 참석한 가운데 선정

- 장애(10%이상)와 성별(여성이 절반 이상)을 먼저 고려하고, 연령대를 고르게, 직업군은 다양하게 구성되도록 선정

※ 이를 위해 배심원 신청을 받을 때 신청서에 △성별 △장애/비장애 △연령 △직업을 쓰도록 함

공개 추첨 : 10월 13일 화요일 (장소는 추후 공지)



신청 방법

배심원 신청은 이메일, 우편, 전화로 할 수 있습니다. 신청서는 용산국민법정 홈페이지 자료실에 있습니다. 우편으로 신청하실 경우 9일(금) 소인이 찍힌 것까지 유효합니다.

전화 : 02) 310-9076 메일 : court@jinbo.net
홈페이지 : mbout.jinbo.net/court
주소 : (100-809)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19 2층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웹자보 초안입니다
배심원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부탁으로 날림으로 만든 이미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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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 디자인 쫌 하시는듯

    2009.10.03 08:46 [ ADDR : EDIT/ DEL : REPLY ]
    • 있는 이미지 갖다 쓰는 거라면... 저 웹자보에 들어간 이미지들은 죄다 용산국민법정 옛날에 나온 홍보물에 들어갔거나, 인권오름에 올라간 인권만화에 나온 캐릭터들이랍니다 ---;; 고퀄이나 자작은 무리.

      2009.10.04 15:48 [ ADDR : EDIT/ DEL ]
  2. 일단 신청서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뽑혔으면 좋겠네요.

    2009.10.06 05:44 [ ADDR : EDIT/ DEL : REPLY ]
  3. 오오 이거 당신이 만든거였어?우ㅋ왕ㅋ

    2009.10.07 01:21 [ ADDR : EDIT/ DEL : REPLY ]
  4. 리잔느

    랄랄라 시험... ㅁㄴㅇㄹ

    2009.10.07 18:4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9. 27. 02:46




1. 주체 접근
: 철거민 중에서 아동-청소년 주체들의 경험을 아동-청소년의 위치에서 깊이있게 파고 조직화

(실현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아동-청소년이기 때문에 철거와 관련해서 얼마만큼 특별히 다른 경험을 할지는 의문. 하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있다.)




2. '인권'으로 환원하여 접근
: 철거민을 살해한 용산 사건 같은 것은 이 사회가 얼마나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청소년도 인간이다. 인간을 하찮게 보는 이 사회에 맞서 싸우자. 우와아아앙.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사실 난 논리적으로도 오류가 있다고 보지만) 뭔가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음. 말로서의 설득력은 있지만 구체적 연대의 지점은 잘 안 보임. '촛불'삘의 사람들에게라거나, 이런 접근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내 취향은 아님.)




3. '주거권'으로 엮어서 접근
: 재개발-철거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부동산 거품 문제(근원을 따지면 박정희 때 정책까지 거슬러올라감)가 엮여있다.
즉, 집이 주거공간이 아니고 일종의 상품처럼 생각되고, 재개발도 주거환경을 개선해서 원주민들을 더 좋게 살게 해주는 목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땅값, 집값을 올리고 투기하는 게 목적이 됨.
청소년들이 독립을 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말도 안되게 지나치게 비싼 부동산 가격.
따라서 철거민이 겪게 되는 주거권의 문제와 청소년 독립을 하려고 할 때 가출할 때 등 겪는 주거권의 문제는 하나의 뿌리다.
청소년은 집값/땅값을 올리는 재개발에 반대하며 이런 맥락에서 철거민과 같이 싸움.

(논리적으로 가장 그럴듯함. 그러나 청소년들의 주거권 같은 경우는 잘 알려진 개념도 아니고, 잠재된 문제로 존재. 주거권 침해에서부터 가족 안에서의 인권침해나 경제적 문제 등이 다 얽히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주거권 문제는 숨은 원인처럼 잠재적으로 있음. 잘 인지가 안 됨...  그래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마치 교육제도에 맞서 투쟁하는 것처럼.
그리고 청소년들이 재개발을 반대하게 되는 것과, 철거민들이 재개발에 반대하면서 요구하는 것 사이에는 세부적인 요구안에 차이가 생김.)



4.



생각해보면, 철거민 투쟁 자체가 철거-점거 등 너무 급박하고 긴박한 투쟁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어서-
끼어들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이고
차라리 일상적인 주거권 운동에 결합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철거민운동보다는.


4번 이후로는 뭐가 있을까나?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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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28

    신선함!

    2012.04.26 04:16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09. 8. 15. 03:14

[만의 인권이야기] 독립의 꿈을 가로막는 것들

주택정책에서 주거권은 없어

민선


살만한 집에 살려면...

이번 달 말일로 현재 사는 집 계약이 끝난다. 2년 전 9월 1일 친구와 함께, 이곳 신림동 반지하 집에 둥지를 틀었다. 4개월 동안 얹혀 지낸 빈 지하방, 곰팡이 냄새가 벽마다 눅눅하게 배어있던 ‘암굴’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낑낑대며 모은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해서 내 스스로 집을 구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월세를 포함한 생활비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사 왔던 그 날 밤, 자축 술 한 잔에 뭔가 꽉 찬 기분을 느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덧 2년이 지나가 다시 집을 구하기 위해 한동안 부동산과 직거래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어떻게든 보증금을 좀 높여서라도 월세 부담을 줄였으면 좋겠고, 창문을 좀 열고 지낼 수 있으면 좋겠고, 빛과 바람이 더 잘 들어왔으면 좋겠고, 자기 집에 너무 애착이 커서 건건히 간섭하는 주인집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2년 동안 지내면서 자연스레 생긴 집에 대한 바람들이다. 그런 바람들이 이루어지기에는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독립,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요즘 집을 알아보면서 예전 기억들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꼭 독립해야지’ 마음은 가득했지만 이를 시도하기에는 막막해서 늘 꿈만 꿨었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좀 더 내 스스로의 삶을 살고 싶어 무작정 부모님의 집에서 나왔다. 일을 하며 모았던 돈 몇 푼에 당장 ‘집 같은 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시원을 들어가 볼까 생각했지만 작은방 한 칸에서 지내기 위한 비용을 월마다 부담하게 되면 계속 고시원에서만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달랑 트렁크 하나를 끌며 걷다 문득 멈춰서 빽빽이 솟아있는 건물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내 몸 하나 쉬게 할 공간이 없다는 설움, 그것이 집이란 공간을 상실했다는 첫 느낌이다. 그런 내게 지하방이지만, 곰팡이냄새가 가득했지만, 화장실이 밖에 있어 불편했지만 그래도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지하방에서의 생활은 잠자는 것 외에 없었다. 빛을 받지 못하고 눅눅하게 지내다보니 몸에서 곰팡이가 필 것 같았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살만한 집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든다. 누구나 집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붕과 벽으로 둘러쳐있다고 집이 되지는 않는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살만한 집이기 위해서는 햇빛도 받아야 하고, 물과 전기, 가스같이 생활에서 꼭 필요한 서비스가 보장되어야 하고, 피곤한 몸을 쾌적하게 누일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있어야 하고... 물리적인 여건 외에도 부담 가능한 적절한 비용이나 지역사회와의 연계 등 사회경제적인 여건도 충족되어야 한다.

위 사진:대한주택공사 홈페이지에 그려진 도시에는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재산권으로서의 집, 딱 그만큼인 현실

집다운 집에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허리가 휘다 못해 부러질 것처럼 무겁다. 아끼고 아껴 독하게 저축을 한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점유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온다. 살만한 집에 살고 싶다는 꿈, 이것이 현실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 “집값 상승이 심상치 않다”, “서민들이 내 집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보도는 한 숨만 더 깊이 쉬게 한다. 그리고 우리를 한 숨 짓게 한 상황에 대한 책임은 바로 부동산 투기부양정책만 적극적으로 펼친 정부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집은 재산권을 보장하는 수단이고, 집에 대한 정책은 재산권을 강화하는 정책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강부자’들에게 선물로 준 종합부동산세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각종 개발 규제 완화는 집값 폭등과 그에 따른 전세 값 폭등을 초래했다. 대출을 받든, 월세로 허덕이면서 살든, 좀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주를 하든 그 몫은 고스란히 ‘집을 소유하지 못한 죄’가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2년 뒤 나는...

단지 공급과 수요, 가격 조정만 고려하는 주택정책에서 적극적으로 ‘주거권’을 보장하는 정책, ‘누구나’,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집 때문에 고단한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살만한 집, 집다운 집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데, 2년 뒤 집은 나에게 또 어떤 부담으로 다가올까.


덧붙이는 글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65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12일 17:38:52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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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방에 거주하는 가정인데요

    우리도 나름대로 적적하고 외로운 사정이 있어 서로 이해되는 사람이 있다면

    식구처럼 지내보고 싶어서 올렸어요

    오는분에게도 경제적으로든 잠시 휴식을 취하든 도움이 되면 좋구요

    어떤 사정이든 서로가 자세한 대화후에 만나보고 결정하면 좋겠어요

    풍요롭게 살아서도 아니며 단지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는것이 아니라 우리도 식구가 늘어사는 재미도 느끼고 해서 좋을것같아서에요

    생활비부담없이 무료로 거주하며 내집처럼 편하게 지낼분이면 좋겠어요

    http://blog.daum.net/rufchqhdms00/28

    블로그에 오셔서 긴 내용 읽어보시고 연락주세요

    진지하게 올리는 글이니 장난성이나 함부로 올리는 추측성오해의 덧글 올리지 말아주세요..물론 단순히 이글만 보시는분 입장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어요.하지만 꼭 필요한분도 계시고 서로 도움이 되기도 하답니다^^

    2009.08.16 12:12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9. 8. 11. 00:49



청소년 독립 불가능 사회



  먼저, 청소년들이 독립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겪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현재의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독립은 아주 어려운 노릇이고, 대개는 부모-보호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가정에서 살게 된다. 가정이 얼마나 많은 청소년인권침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공간인지는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몇 년 전에 개정이 되긴 했는데, 사실 민법의 친법 관련 조항에는 “자식은 친권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런 식의 조항이 있었다. 설령 민법에서 그런 표현 자체는 수정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청소년들의 그런 현실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이렇게 부모-보호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처지는 청소년인권 문제의 중심에 위치한다. 논리적으로는, 학교에서 교사들이 청소년들을 ‘지도’할 수 있는 것조차도 부모-보호자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보호자는 대리인으로서 청소년에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을 결정할 권한이 있다. 생활, 이후 삶의 진로 그 무엇도 부모-보호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정말로 모 씨처럼 가출을 결행하지 않는 이상은. 그렇기에 청소년들은 부모-보호자의 선의에 의존해야만 하는데, 부모-보호자가 항상 믿을 만하거나 사랑스럽거나 신뢰가 가는 상대일 수는 없는 게 또 현실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독립’은 청소년들의 이런 처지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대안이 그렇듯이 이 또한 실현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우선은 역시 돈 문제. 2009 아동청소년종합실태조사 보고에 따르면 9-11세 중 5만원 이상의 용돈을 받는 건 2.6%에 그쳤다. 12-18세에 5만원 이상의 용돈을 받는 건 28.5%에 불과했다. 5만원 미만의 용돈 중에서 필수적으로 쓰게 되는 돈을 좀 쓰고 그 나머지를 아무리 저축해봤자 쓸 만한 독립 자금이 되는 건 요원해 보인다. 일을 하고 싶어도 만15세가 넘어야 노동을 할 수 있고, 임금은 쥐꼬리보다 좀 많은 정도이다. 게다가 부모-보호자에게 “17살 때부터 나가서 살고 싶으니 취직을 할 수 있게 보호자동의서를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오냐, 그래라.” 할 부모-보호자가 얼마나 있을까.
  사실 한국 사회에서 ‘독립’은 0대, 10대뿐 아니라 20대 초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주거비다. 보증금 500에 월세 30만원 정도는 되어야 쓸 만한 집을 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엄청 작은 원룸이나 고시원, 매우 건강에 안 좋은 반지하(라지만 저 가격 이하면 거의 지하다. 서울 기준으로 500에 30이 보통 반지하-지층 방) 신세를 져야 한다. 보증금이 없어서 그런 곳에 들어가더라도 1달에 꼬박꼬박 20~30만원씩이 주거비로 지출되는 건 웬만한 정규직이 아닌 한 경제적으로 꽤 부담이 된다. 수도권 지역 특히 서울의 경우 집값 문제가 더 심각하다.
  게다가 민법상으로는 만19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은 원칙적으로는 혼자서 집 임대차 계약 같은 것을 맺기가 어렵다. 계약 자체가 효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호자가 와서 쏼라쏼라 하면 무효화될 수 있기 때문에 대개는 12살이나 16살 쯤 되어보이는 청소년이 와서 집 계약을 맺으려고 하면 보호자에게 연락부터 하려고 할 것이다. 뭐 간혹 그냥 둘러대면 뚫리는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결국 만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뭐 부모-보호자가 갑부여서 초기자금을 왕창 받지 않는 게 아니라면, 독립할 수 있는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경로는 ‘그룹홈’(공동생활주거) 뿐인데, 수가 매우 적고 자격도 제한적이며 정부 지원도 열악하다.
  청소년들의 독립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이지 않은 시선, 독립적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당수 청소년들의 상황(소위 ‘소녀-소년가장’이거나 빈곤층이거나 해서 혼자서 생활을 꾸려가본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의 수는 많지 않다.), 고립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도시적 삶의 문제 등등 그밖에도 고려해야 할 문제는 널려 있다. 이는 뭐 음모론적으로 말하면 청소년들의 독립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가정에 종속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더 분석적으로 이야기하면 청소년들의 독립 같은 건 아예 상상하거나 염두에 두지도 않고 구성되어 있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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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청소년독립팀에서 짧게 쓴 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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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본소득네트워크에도 올려주시면 감읍할듯 'ㅅ'

    2009.08.11 12:14 [ ADDR : EDIT/ DEL : REPLY ]
    • 올렸습니다-만, 도움이 될지 @_@;;

      2009.08.11 12:57 신고 [ ADDR : EDIT/ DEL ]
    • 실은 얼마전 대학생사람연대 실천단 신문에 게재한 기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서 말입니다.

      <해방적 기본소득>

      돈이 없어서 굶어죽고, 학교급식비 못내서 눈칫밥 먹어야 하고, 직장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어제의 동료에게 몽둥이를 들이밀고, 우리 아이 학원 보내기 위해 남의 부모를 직장에서 쫓아내야 하는 이 시대에, 기본소득은 최소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과 양심의 해방을 약속한다.
      기본소득은 강제된 관계로부터의 해방 역시 약속한다. 노동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비자발적 피부양자가 스스로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독립성을 약속한다. 배우자의 선택, 부모자식 관계의 선택에 있어 금전적 장애만큼은 확실히 사라질 수 있다.
      근본적이진 않아도, 기본소득이 가져오는 작고 많은 해방들은 근본적 해방으로 나아갈 거대한 추진력이 될 것이다. 공권력의 폭력에 분노하면서도 내일 출근시간 때문에 참아야 할 필요도 없고, 부당한 노동과 비양심적 노동의 강요에 조금 더 용기 있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투표일 종일근무를 강요하는 반민주적 상사에게 타이거 어퍼컷을 날릴 수 있게 될 것이다.

      2009.08.11 18:43 [ ADDR : EDIT/ DEL ]

흘러들어온꿈2009. 6. 23. 21:42
[기고]세들어 사는 자유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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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치마네 집
추측하건대 우리 가정은 독일에서 중산층쯤 될 것이다. 소득이 적으면 세금도 적은 나라에서, 우리가 번 돈의 절반 정도만 우리 지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아하니 우리는 어쩌면 중산층 중에서도 약간 안정된 축에 속할지도 모른다. 총수입의 30%가 세금으로 나가고, 20%는 건강보험과 연금으로 나간다(나머지 20%는 고용주가 부담). 중소기업에서 평사원으로 첨단기기를 개발하는 남편이 우리 수입의 대부분을 벌어들인다. 프리랜서로 고건축을 실측하고, 틈틈이 글을 쓰는 나는 돈도 많이 못 벌거니와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경제계획을 세우는 데에 쓸모가 없다.

우리는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벌려고 머리를 싸매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재산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돈보다는 시간을 벌겠다는 개념으로 살았다. 그때 우리는 남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생활하느라고 알뜰하게 절약하며 사는 습관을 들였다. 그때의 최저생활비를 쓰던 습관이 가계가 안정된 오늘까지도 변함 없이 유지되고 있으니, 우리는 지금 돈이 항상 남는 인생을 살고 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돈 쓸 일이 적어서 그렇다.

그런 연유에서 나는 새로운 일감이 들어오면, 그 일로 인해 버는 돈의 액수보다 그 일로 인해 향상되거나 감소되는 삶의 질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 남편과 나는 돈 안 되는 일이라도 마음만 있으면 오랜 시간 정성을 바칠 수 있고, 신념만 있으면 내 돈 들이는 일에 망설임이 없으니 이 세상에 무서운 게 적은 편이다.

운명처럼 주어진 가난과는 달리, 스스로 선택한 가난은 불편하지 않다. 곤궁한 분야와 도수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선택한 가난'은 '가진 자의 호사'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떤 수준부터 '가진 자'가 되는 것일까? 각자 결정할 몫이다. 가진 건 희망 하나 밖에 없었던 빈털털이 학생부부 시절부터 우리는 '가진 자'라 자처했다.

이렇듯 우리 부부가 돈과 물질에서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독일의 임대용 주택 제도에 있지 않나 싶다. (독일의 임대용 주택에는 개인소유의 월세주택과 국가나 공영기관이 관장하는 임대주택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운다는 '내 집 장만'이라는 일생의 계획이 우리에겐 없었다. 빈손으로 만나 가정을 이룬 젊은 부부가 통일 독일의 지독한 불경기의 터널을 헤쳐나가느라고 곤궁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국제결혼 커플인데다가 앞으로 각자 전공을 살려 일을 할 희망을 가지고 있었므로 나중에 어디에 가서 어떻게 살게 될지, 미래가 불투명했다. 이 불투명한 미래를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희망으로 받아들였다. 되도록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우리에겐 집을 사서 어딘가에 정착한다는 발상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또한 독일에 살면서 굳이 내 집을 살 필요도 없었다. 독일은 임대용 주택의 보급율이 높고 세입자의 권리가 잘 보장되어 있는 편이어서 내 집 없이 사는 일에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처럼 보증금이 자주 올라서 정기적으로 몫돈을 마련해야 하거나 쫓기듯 이사를 다녀야 하는 형편이라면 우리도 이를 악물고 내 집부터 장만했을 것이다. 내 집이 없다하여 세입자의 인권, 즉 인간의 주거권이 무시되는 사회에서라면 우리는 같은 돈을 가지고도 자유 운운할 여지도 없이 생존투쟁에 내몰렸을 것이다.

독일에선 총가구의 57%가 자기 소유가 아닌 임대용 주택에 살고 있다. 이는 EU의 임대용 주택 평균 보급율인 37%을 훌쩍 웃도는 수치로서 그리스나 스페인의 20%와 비교하면 근 세 배나 된다. 유럽에서 독일보다 임대용 주택 보급율이 높은 나라는 65%의 스위스가 유일하다. 독일과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잘사는 나라축에 속한다. (이상 2001년도 통계)

독일에는 전세라는 제도가 없다. 전부 월세다. 입주할 때 월세의 2-3배 되는 금액의 보증금을 집주인이나 은행에 맡겨 두었다가 이사나갈 때 하자가 없으면 도로 돌려받는다. 집의 위치, 상태에 따라 월세의 적정가격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독일의 가정에선 평균적으로 매달 408유로를 월세로 지출하고 이는 가계순수입의 23%에 달한다. 임대용 주택의 크기가 평균 70평방미터이니 평방미터당 6유로 정도 되는 셈이다. 그러나 월세는 지역에 따라 값이 차이가 나고, 같은 도시에서라도 위치와 건물 상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뮌헨의 중산층이 사는 주거지의 월세는 평방미터당 10유로 정도 된다. 가난한 가정에는 주거보조금이 지급된다. 총 가구의 9%에 달하는 3백4십만 가구가 국가로부터 주거보조금을 받고 있다. 가난한 사람도 숨을 쉬고 밥을 먹어야 하듯이, 가난한 사람도 인간답게 주거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월세를 인상하는 수준과 방법도 법의 제약을 받으며, 해약하는 조건도 엄청나게 까다롭다. 때문에 집주인이나 어떤 국가정책도 세입자를 함부로 쫓아낼 수 없다. 게다가 1년에 80유로 남짓하는 회비를 내고 세입자 조합에 가입하면 임대용 주택의 모든 사안에 대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세입자 조합에선 회원을 대신하여 법정투쟁을 벌여주기도 하고, 국가정책이 세입자의 권리를 유린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지 감시하고 여론화한다. 이런 이유에서 독일의 평균 세입기간은 12년이다. 한번 이사 들어가면 보통은 강산이 한 번 변하도록 산다는 뜻이다. 21년 이상 한 집에서 사는 가구도 전체의 4분의 1이나 된다. 그러니 세입자가 바로 그 공간의 주인인 셈이다.



세입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그가 몸 담은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이 싹트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여지를 건물 또한 제공해야 한다. 독일의 임대용 주택은 아파트든 연립주택이든 단독주택이든, 개인 소유의 월세주택이든 국가가 관장하는 임대주택이든, 완전히 빈 집으로 임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세입자는 목욕탕과 화장실, 그리고 벽과 바닥만 정비된 빈 집에 들어와 가구는 물론 전등까지 자기 취향대로 달아서 쓰다가 나중에 이사 나갈 때 다시 떼어서 들고 나간다.

건물의 수명이 인간의 수명보다 길다는 전제하에, 각양각색의 취향을 가진 사용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는 건축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독일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할 때 나는 주택설계 시간에 '공간의 유동성'이란 단어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암만 특정한 건축주를 위하여 설계한 건물이라 할지라도, 나중에 그 집에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서 살 때에 다른 방식으로 가구를 배치하고 다른 성격의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인간의 보편성을 염두에 둔 유동적인 설계라야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학생들이 설계를 해가면 교수들은 남의 집 침실과 맞붙어 있는 거실을 도면에서 찾아내어 굵은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며 소음문제로 이웃 간에 불화를 조성하는 요소라고 가르쳤다. 건축으로 인해 이웃 간에 또는 가족 간에 특정한 관계가 강요되기도 하고, 건축으로 인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친해질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사실을학생들은 자신들이 실지로 설계해 간 도면을 바탕으로 배웠다. 학생들이 주거단지를 설계하면 교수들은 크고 작은 면적의 가구들이 적절하게 섞였는지, 다양한 형태의 주거가 가능한지를 검사하며, 빈부가 양분되고 게토로 변하는 현상은 건축가의 책임이라고 가르쳤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일의 임대용 주택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주거공간으로서 온전히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이면에는 이렇듯 전문가 교육에서부터 세세한 법규의 입안과 실행에 이르기까지 세입자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관성 있는 국가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내각이 수없이 바뀌는 와중에도 이런 정책이 초지일관 고수되는 그 바탕에는 인간의 주거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두텁게 깔려 있다.

독일의 실정을 더욱 실감나게 보여드리기 위해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자. 한국에서 보낸 시간의 두배가 되는 35년을 독일에서 살면서 난 여러 형태의 임대용 주택을 경험했다.

내가 청소년시절에 부모님과 함께 살던 첫 아파트는 당시 서독의 수도였던 본 외곽의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연립주택이었다. 우리까지 모두 네 가구가 살았는데 70년대에 지은 평범한 건물이었지만 교수나 변호사라는 이웃의 직업으로 보아 중류 이상의 주거환경이었던 것 같다. 이웃들이 참 친절했다. 한번은 집주인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우리가 길 쪽으로 난 테라스에 빨래를 널어서 법을 어겼다는 경고장이었다. 나는 그때 독일어가 약해서 옆집에 사는 변호사에게 들고 가서 물어봤더니 그는 그 자리에서 집주인에게 편지를 써서, 테라스와 길 사이에 있는 나무를 당신이 세입자의 허락 없이 베어낸 이후로 빨래가 보이는 거라고, 당신 잘못이라고 대신 항의를 해줬던 것이 생각난다.

그에 반해서 우리는 참 저자세였다.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게 되어 집을 비워줄 때 우리는 엄청나게 법석을 떨며 집을 수리해줬다. 내부의 벽만 흰색으로 칠해주면 되는 것을 부모님은 집주인이 트집을 잡아 2달 월세에 준하는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까봐, 아니 혹시 더 많은 돈을 덤테기 씌울까봐 겁이 나서 많은 친지들에게 민폐를 끼쳐가며 벽 뿐 아니라 라지에터와 문까지 새로 칠하고, 마루바닥도 기계로 싹 갈아서 반짝반짝하게 니스칠을 해놓았다. 그때 집주인이 너무 놀랍고 좋아서 입이 떡 벌어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칼스루에 공대에 입학하면서 나는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다. 남녀학생 15명이 한 단위를 이루어 부엌과 화장실, 샤워실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나는 처음에는 남학생들이 옆 칸에서 샤워하는 것이 영 거북했는데 나중에는 샤워하면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할 만큼 스스럼없어졌다. 학생들은 부엌에 딸린 식탁에서 늘 만났고 주말에는 돈을 모아 함께 요리를 하기도 했다. 마침 서구의 젊은이들 사이에 자유분방한 기운이 물결치던 때라 우리는 문란하다면 문란하다고 할 파티도 열면서 참 재미나게 살았다. 나는 9평방미터의 작은 독방에다 2층짜리 가구를 만들어서 아래층은 침대로 위층은 널널한 제도책상으로 썼다. 그 방에서 토끼도 기르면서 한 일 년 잘 살다가 편싸움에 말려들어 지지고 볶다가, 마침 남자친구가 자기 부모님 집의 위층에 있는 방 두칸짜리 집이 비게 되었다고 꼬시는 바람에 기숙사에서 나왔다.

새로 이사간 동네는 칼스루에 변두리에 있는 서민들의 마을이었다. 어느 집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다 하면 아줌마들이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어 큰 소리로 소통하며 재빠르게 전파하는 마을이었다. 내가 이사간 집은 50년대에 지은 서민용 주택이었고 한 층에 한 가구씩 세 가구가 살았다. 집주인인 남자친구네는 2층에 살았고 1층과 3층은 세를 주었다. 내가 살았던 3층은 비스듬한 지붕 밑 공간으로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예쁜 집이었다. 창가에 놓은 화초가 물만 주어도 탐스럽게 자랐다. 화장실은 옛날 주택이 그렇듯이 층계의 반을 내려간 곳에 붙어 있었다. 마당에는 식용으로 기르는 토끼장과 비둘기장이 있었다. 건물 뒤쪽에 바짝 붙어서 남자친구의 이모네 집이 있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이모부는 젊은 시절에 집 짓는 문제로 크게 싸운 이후로 평생 서로 말을 섞지 않고 살았다. 몇년 후에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집을 찾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집 거실에서 기르던 토끼와 잉꼬를 남자친구에게 주고 나왔다.

다음번 집은 대학식당 게시판에 붙은 쪽지를 보고 찾았다. 학생들 여럿이 아파트 하나를 빌려서 방 하나씩 쓰고 사는 주거공동체였다. 물리과 남학생 셋이서 살다가 하나가 결혼으로 나가게 되어 후임을 구한다는 쪽지에는 되도록이면 여학생을, 그것도 요리가 취미인 여학생을 희망한다는 소리가 적혀 있었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이렇게 오해 받기 딱 좋은 쪽지를 게시판에 붙여놓은 두 남학생들을 만나보니 정말로 순진했다. 마침 남성에게 지쳐 있던 나는 나이도 어리고 어리버리 순진무구한 남학생들을 보고 안심했다.

그 집은 1850년대에 지은 노동자용 주택이었다. 그 동네는 집값이 싸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이 많이 주거했다. 1층에서 양품점을 하는 이태리인 라이아노씨가 가끔씩 베르디의 오페라를 밖에까지 들리게 크게 틀어놓을 때는 여기가 독일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2층과 3층에는 대학생들의 주거공동체가 있었고, 4층에는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노동자 가족이, 5층 꼭대기에는 집주인의 조카인 대학생이 혼자 살았다. 손바닥만한 뒷마당의 한 구석에는 해가 안 드는 꽃밭이 하나 있었는데, 다른 곳에 사는 집주인 아줌마는 그래도 자주 와서 정성껏 가꿔주었고, 우리는 마당에 앉아서 다른 층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꽃을 바라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나는 이곳에서 보냈다. 같이 사는 남학생들과는 마치 오누이처럼 지냈다. 그들의 친구들인 물리과 학생들과 내 친구들인 건축과 학생들이 노상 북적거리는 집에서 우리는 파티도 많이 했다. 빨갛게 고추장 양념해서 오븐에 구운 삼겹살과 야채튀김은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잘 살다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내가 그 중의 한 남학생과 정분이 난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남학생과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골치가 아파서 그 집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신문 광고를 보고 집을 구했다. 새로 이사간 집의 1층에는 아들만 여덟을 둔 가난한 트럭운전사의 가족이 살고 있었고, 2층에는 건축과 남학생 한 명과 내가 살았다. 그 남학생의 복도를 통해서 내 공간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는데, 화장실은 함께 썼지만 각자 부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은 완전히 따로 한 셈이다. 1823년에 수공업자가 지은 오두막집인 그 집에는 목욕탕이 없어서 나는 근처의 수영장에 다녔다. 옛날 고리짝에 가난한 사람이 지은 집답게 얼마나 외풍이 세고 추운지 부엌에 있는 유리컵에 밤새 쩡쩡 금이 갔다.

그래도 이 집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취 있는 집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낡은 마루바닥을 사포로 갈아내고 하얗게 페인트 칠을 했다. 내가 직접 만들거나 길에서 주워온 가구를 이용해서 깔끔하고도 정다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일에 나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벽, 천장, 바닥은 물론 문짝과 창틀까지 하얗게 칠한 옛날 집에서 웅웅대며 달아오르는 석탄난로라니! 이렇게 완벽한 나의 왕국이라니! 창밖에 눈이라도 흩날리는 날이면 나는 난로 위에서 주전자가 자글거리고 노란 테이블보 위의 연두색 찻잔에서 김이 소르르 올라오는 분위기에 취해서 책을 읽다말고 나도 몰래 한숨을 쉬었다.

이 집에서 사는 동안 나는 그 정분난 남학생과 결혼을 했고, 신혼을 여기서 보냈다. 내가 임신을 하자 우리는 아쉽지만 새 보금자리를 찾아야 했다. 아무리 내 취향에 맞는 집이라고 해도 목욕탕도 없는 추운 집에서 아기를 기를 수는 없었다. 이 집은 우리가 이사 나간 몇 년 뒤에 문화재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철거되었다. 훗날 문화재 주택에 관한 내 박사논문이 좀 더 일찍 나왔더라면 이 집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싶어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또 한편으론 문화재에 대한 안목이 없던 시절에 오리지날 마루바닥을 박박 긁어내고 흰 페인트칠을 해버린 나의 무지가 무안스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 다음에 이사간 집은 10가구가 사는 전형적인 임대용 주택이었는데 큰 길가에 있어서 면적에 비해 월세가 쌌다. 하지만 방음이 잘 된 창문을 닫으면 차길의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고, 그 큰 길만 건너면 성의 아름다운 공원과 호수와 숲이 나왔으므로 우리는 그 집을 사랑했다. 집 앞의 공원을 우리의 개인 공원인양 늘 애용하고 자랑했다. 처음으로 더운 물이 나오는 목욕탕이 있는, 제대로 된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얻은 기쁨에 우리는 공간 꾸미기에 정성을 바쳤다. 그 공간에 딱 어울리는 가구를 우리 손으로 만들었다. 좋은 가구를 살 돈이 없기도 했지만 파는 가구 중에서 맘에 드는 것도 없었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남편은 큰 아이가 동생의 방해를 받지 않고 레고놀이를 할 수 있도록 방에 층을 하다 더 만들어 주었다. 그 집에서 우리는 아이 둘을 낳고 10년 이상을 살았다. 소시민 공무원들이 주를 이루는 이웃들은 깐깐해서 가끔 트러블이 생기긴 했지만 대체로 선했고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잘해줬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아침이면 우리집 현관문 앞에는 누가 갖다놓았는지도 모르는 초코렛 선물들이 수북히 쌓여 있곤 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뮌헨에 새 직장을 구했다. 남편은 6개월의 수습기간 동안 혼자서 뮌헨에 살기 위하여 손바닥만한 방 하나를 얻었다. 그 방에는 침대와 옷장 냉장고가 구비되어 있었으므로 임시거주처로서는 알맞았다. 그렇게 가구가 딸린 방의 경우엔 세입자 보호법이 적용되지 않아서 집주인이 아무런 이유 없이 2주일의 말미를 주고 해약할 수 있다.

남편의 수습기간이 무사히 끝나고 전가족이 뮌헨으로 이사하려고 했을 때 칼스루에의 옛 집을 해약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10년 이상 산 세입자의 경우 해약통고 기간이 쌍방 9개월이나 되었다. 오래 거주한 세입자를 집주인이 갑자기 쫓아내는 것을 막자는 것이 그 취지인데, 형평성을 따르다 보니 세입자들이 갑자기 이사 나가기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우리는 후임 세입자를 우리가 직접 찾아서 대주고 먼저 나올 수 있었다. 그후에 개정된 법에 의하면 집주인과 달리 세입자들은 항상 3개월의 해약통고 기간만 지키면 된다.

당시에 뮌헨에선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여서 우리는 집을 찾느라고 고생했다. 아직 칼스루에에 살던 내가 신문을 보고 전화를 돌려서 집주인이나 복덕방에 시간약속을 해놓으면 남편이 퇴근 후에 집을 보러다녔다. 좀 괜찮다는 집은 세입자들이 어찌나 몰리는지 가망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케이블티비와 주차장이 없다는 점, 거실로 쓸 큰 방이 없다는 점 때문에 경쟁이 덜 심했다. 우리는 어차피 티비와 자동차가 없고, 공간상의 약점 정도는 건축을 하는 부인이 충분히 카바할 수 있다는 남편의 설명에 집주인이 혹해서 우리에게 집을 빌려주었다. 남편의 회사가 근처에 있어서 내가 집에 있는 날은 남편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와서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을 온 식구가 함께 하는 날이 많다.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집은 1900년에 지은 5층짜리 문화재건물인데, 약 20가구가 서로 눈인사만 하는 정도로 간격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나는 윗집 할머니와 크게 싸운 적이 있는데 지금은 서로 마주치면 인사는 하는 사이가 되었고,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면 나나 아이들이 받아서 들어다주기도 한다. 1층에는 변호사 사무실과 디자이너 사무실이 있다. 아이들이 딸려 네 식구나 되는 '대가족'은 우리 밖에 없고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커플이거나 독신들이다. 각 집의 면적도 30평방미터에서 100평방미터까지 다양하다. 지하실에는 세탁기가 없는 세입자들을 위하여 동전 넣고 작동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서 우리도 이불보를 빨거나 빨래가 밀릴 때에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집에 들어와 살면서 이 공간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가구를 설계하고 직접 만드느라고 2년 이상 정열을 바쳤다.

우리가 다음에 살 집은 어쩌면 뮌헨 교외의 단독주택이 될 수도 있고, 시내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건물의 상층일 수도 있고, 어쩌면 노인과 장애인이 공동으로 주거하는 공동체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를 언젠가 우리가 모시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이들이 둘 다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고 우리 부부 둘만 남으면 더 작은 아파트로 줄여서 갈 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변화하는 상황에 적합한 임대용 주택을 구하게 될 것이다. 자가용이 없는 우리가 자동차 조합에 가입하여 자동차가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상황에 맞는 사양의 렌트카를 빌려쓰듯이.

그리고 그 다음에 남편과 내가 살 집은 벌써 정해져 있다. 뮌헨 시내에 있는 우리 소유의 연립주택이다. 우리는 지금 다달이 은행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연금만으로는 우리 세대의 노후가 심히 불안하니 다른 방법의 노후대책을 병행하라는 정부의 권고도 있고, 나중에 자식들이나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적어도 오십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우리가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늙을 것일지를 결정하고 경제적인 계획을 세워서 준비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어서 우리는 드디어 내 집을 사기로 한 것이다. 노년에 월세라도 굳으면 그게 어디냐?

비싼 집을 장만하느라고 오랜 시간 쪼들리며 사는 것은 인생에서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서 본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내 또래의 독일 친구는 무리해서 집을 사느라고 어린시절의 행복을 앗았던 부모에게 한이 맺혀서 유산을 받자마자 복수하듯이 그 집을 팔아치우기까지 했고, 또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집 한 채씩 물려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느라고 대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의 학비를 제대로 대주지 않아 두고두고 사이가 벌어진 것도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형편에서 매달 편안하게 갚아나갈 수 있는 금액을 미리 정하고 그 한도에서 집을 찾았다. 그랬더니 그 돈으로 (우리가 임대용 주택에 내는 월세에 준하는 이자를 무는 대출금으로) 살 수 있는 집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임대용 주택에 비해서 형편 없이 수준이 낮았다. 그때 우리에겐 저축했던 돈이 좀 있어서 집값 전액을 대출할 필요도 없고, 또 당시의 주택대출 이자율이 4%미만으로 낮았는데도 그랬다.

그러던 중에 우리 부부는 어떤 집을 발견하고 한 눈에 반했다. 뮌헨 시내 빅투알리엔 재래시장 근처에 있는 고옥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또 가격이 보통보다 4분의 1정도 싸다는 점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싼 이유는 그 집이 빈 집이 아니라 지금 다른 세입자가 살고 있어서 그랬다. 그런 집에는 소유주가 당장 들어가서 살 수 없다는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건설회사가 그 건물을 통째로 사서 보수공사를 벌일 때 거기 살던 일부 세입자들은 보상금을 받고 집을 비워줬고 일부 세입자들은 보상금을 마다하고 그 집에서 계속 살기로 했다. 건설회사는 그 건물을 주택별로 분할해서 따로따로 팔았는데 빈 집은 비싸게 팔았고, 세입자가 있는 집은 싸게 팔았다.

주인이 단 한 사람이었던 건물이 여러 명의 소유주에게 분할, 매각되는 경우에 기존의 세입자들은 향후 10년간 그 집에서 살 권리를 가진다. 세입자 보호법의 일환이다. 즉 지금 사더라도 앞으로 10년 후에나 우리가 그 집에 이사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내 집 장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재산 증식'의 범주로 분류되어 세금에 대한 불이익도 많았다. 재산을 증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본다면 이 집은 구매가격에 비해서 월세가 터무니 없이 낮아서 영 손해나는 장사였다. 그렇지만 재산 증식이 목적이 아니라 직접 거주하려는 목적을 가진 우리에겐 그 집이 노후의 보금자리로서 마음에 들었으므로 우리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에 이르렀다.

꽃을 사들고 우리의 세입자에게 인사를 하러 갔던 날, 우리는 기절할 뻔했다. 우리의 세입자는 돈 잘 버는 젊은 회계사라는 건설회사 직원의 말과는 달리, 나이가 60세 된 가난한 화가였던 것이다. 고령의 세입자는 더욱 각별하게 법으로 보호 받는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이 노인네들에게 특별히 힘들다는 사실을 감안해서이다. 그러므로 10년 후면 70이 되는 우리의 세입자는 그가 원하는 한 영원히 그 집에 살 권리가 있는 셈이다. 소유주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의 행사란, 시에서 책정한 적정수준으로 월세를 유지하는 길 뿐이다. 만약 10년 후에 그가 내는 월세가 시세보다 훨씬 낮으면, 그는 같은 월세로 어디 다른 데 가서 비슷한 수준의 집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고, 그것은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고 법대로만 살면 별 큰 손해는 없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우리는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나서 겁이 났다. 그리고 우울했다. 그간 긍지를 가지고 지켰던 자유로운 정신은 다 어디로 날아가 버리고, 우리가 여차하면 얼마나 손해를 보게될지 계산기를 두드리며 전전긍긍했다. '우리가 이 돈을 어떻게 모은 건데, '하는 생각마저 들며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혔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의 세입자는 우리에게 상당히 적대적인 태도로써 우리의 죄의식마저 자극했다. 남편과 나는 신경이 곤두서서 집 얘기만 나오면 늘 큰 소리를 내며 다퉜다.

그러다가 결정이 시간이 왔다. 우리가 집을 사기 전에 건설회사에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이는 동안 거기 사는 세입자들은 삶의 질에 지장을 받는 만큼 월세를 탕감받았는데, 공사가 끝났으니 월세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림과 동시에 적정월세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인상해야할 시점이 온 것이다. 스스로 셋집에 사는 우리로서는 그 돈을 받아야만 은행의 빚을 갚아나갈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집을 살 때 지불한 공사비를 월세에 포함시킬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겐 있었다. 마당과 지하실을 정비하고, 엘리베이터와 발코니를 새로 설치함으로써 주택의 질이 확실하게 상승되었기 때문이다.

공사비를 감안해서 법대로 계산기를 두드렸더니 월세가 한꺼번에 두 배로 뛰는 수치가 나왔다. 나도 살림하는 사람인데 한꺼번에 두 배는 너무하지 않은가? 그래 봤자 적정월세를 넘지 않는 금액이지만 혹시 우리의 화가 가족은 갑자기 그 돈을 낼 수 없어서 스스로 나가지는 않을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일이 아닌가? 우리에게도 우리의 재산을 정직하게 지킬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내 머리속에서 오락가락했다.

남편이 재촉하듯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또 부부싸움이 날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내심 그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대답을 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재산을 정직하게 지킬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남편은 뜻밖에도 망설였다. 잠시 후에 그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한꺼번에 두 배는 너무하지 않은가? “
나는 고개를 번쩍 들고 남편의 눈을 쳐다봤다. 그가 내 눈길을 피했다.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래, 한꺼번에 두 배는 너무하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남편을 안아주고 싶었다. 그간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평생 힘들게 모은 공동의 재산을 소홀히 여긴다고 상대가 화낼까봐 겁이 나서, 자기 생각이라기보다는 상대의 의중이라 추측되는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대의 속물근성을, 아니 상대의 마음에 비치는 내 속물근성을 부끄러워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렇고 저런, 치사하거나 고상한 사고의 터널을 거쳐서 우리의 자세를 정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월세를 10년에 걸쳐 서서히 올려나가기로 결정했다. 10년 후에 적정월세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기로 했다. 우리는 자선사업을 하려고 집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정당한 방법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 또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 정도라면 세입자인 상대편과 소유주인 우리의 손해를 적절히 분배하는 공정한 선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건의 당사자들인 세입자와 소유주가 각기 손해를 봤다면, 도대체 이익은 누가 본 것일까?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때 가서 우리의 세입자가 계속해서 그 집에서 살겠다고 한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가 적정월세를 내는 한 우리는 그 돈을 받아서 다른 임대용 주택에서 살면 되기 때문이다. 혹시 또 아는가? 강산이 한번 변한다는 그때쯤 되어서 우리는 그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

가진 게 하나도 없었던 젊은 시절부터 '가진 자'라 자처했던 나는 나이를 먹어 생활이 나아지면서 도리어 '잃을까봐 겁내는 자'의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잃을 것이 있는 오늘날 ' 가진 자'의 자긍심을 지키는 일이 진짜로 가난했던 지난날보다 더욱 어려움을 고백한다.

우리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약간의 금전적 손해를 감수함으로써 우리는 '가진 자'의 자긍심을 되찾고 내 집으로 인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나는 우리 세입자에 대한 죄의식은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 법적으로 지은 죄가 없더라도 내가 그들의 공간을 빼앗은 것을 인정하고 미안해 하는 것이 사람된 도리라 생각한다.

어떤 국가정책이 내 재산을 불려주는지에만 정신이 팔려서, 내 재산을 불리는 과정에서 주거권을 잃은 사람들이 다섯 명씩이나 참혹하게 죽어나가도 법치를 들먹이며 나와 상관 없다고 자위하는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겁내는 자'가 되어 영원히 허덕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싸다. 각자 결정할 몫이다. 그러나 더 이상의 가난을 선택할 여지가 없이 정말로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잊지는 말고... 그들의 기본권이 유린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에 대한 위협이라는 사실을 아주 잊지는 말고...



SH공사 사보에 송고한 글의 원본입니다.
출처: 빨간치마네집 블로그(http://www.hanamana.de/hana/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188&Itemid=1)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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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8. 11. 12:39

꿈꿔봐! 우리들의 독립을

[인권교육, 날다] 독립을 위한 청소년들의 고개 넘기 프로젝트

고은채
함께 사는 사람이 있는 것, 혈연이 아니라도 서로 의지가 되는 가족을 구성하고 사는 것은 행복이고 기쁨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가족이라도 혈연이라도 같이 사는 것이 괴로운 일이 될 수 있음은, 교과서 같은 데는 나오지 않지만 또 하나의 진실이랄까. 어릴 적 가출은 이루지 못할 로망으로, 충동으로 이해되곤 한다. 곧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쯧쯧…’ 혀를 차며 지적되는 것이 청소년의 가출이다. 하지만 이 역시 꼭 그렇지만은 않다. ‘충동’과 ‘고생’으로 단정 짓기엔 몹시 불쾌한, 저마다의 배경과 사정이 있다.

날개달기

매달 한 차례씩, 청소년과 함께하는 인권교육(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을 기획하면서 나온 여러 주제 중에 ‘가출 그리고 독립’은 인권교육의 새로운 주제였다. ‘독립이 권리야? 가출은 개인의 선택이잖아.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은? 이렇게 착취해도 괜찮은 사회야?’ 이리하여 만들어진 보드게임!

위 사진:달마다 하는 청소년 인권 놀이터 ‘빨강물고기’

집을 나서며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며 청소년의 독립적 삶을 위해 사회가 보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 특히 가출과 독립을 혼자만의 문제, 온전히 개인이 해결해야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온 문제의 시작을 바꿔보기로 했다. 각자 부딪치게 되는 상황을 스스로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을 사회가 책임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 “당장 오늘 저녁 집을 나온다면? 어디서 하룻밤을 보낼까? 찜질방? 친구 집?” 힘들 것이라는 막연한 가출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최종적으로 독립적 삶에 도달하는 ‘부루 마블 가출 버젼’의 주사위를 함께 던져보자.

더불어 날개짓 1

보드게임 판과 주사위, 이동 말 등을 준비한다. 보드 판에는 게임의 요소를 더해 ‘지갑을 잃어버려서 3칸 뒤로’나 행운 ‘친구 집에서 한 달 동안 숙식 해결’을 넣도록 한다. 주사위를 1,2,3(4,5,6도 1,2,3으로 바꿈)만 표시하면 거의 대부분의 모둠이 보드 판 곳곳을 거쳐 갈 수 있다. 그리고 집을 나설 때 마주치는 어려움 10여 개를 쪽지에 적은 다음 주머니나 상자에 넣어둔다.

위 사진:가출하고 해결해야 하는 쪽지들

2~3명씩 모둠을 구성해 전체 게임에 참여하는 모둠이 네 모둠을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 한 모둠씩 주사위를 굴려가며 말을 이동한다. ‘고개 넘기’에 말이 걸리면 주머니에서 쪽지를 한 장 뽑아 쪽지의 문제를 해결한다. 알고 있는 방법을 동원해 모둠에서 해결을 모색한다. 한 번 뽑은 쪽지는 진행에 따라 한 번 더 풀어보도록 주머니에 도로 넣을 수 있다. 두 번 정도.

위 사진:부루마블 가출 버젼 : ‘꽝’ ‘장기자랑’ ‘원하는 말이랑 바꾸기’ 등과 같이 숨은 고개를 만들면 더 흥미롭다.


• 밤에 잘 곳이 없어 : 친구 집 찜질방은 못 가는데…
• 얹혀살던 친구 집에서 더 이상 재워주기 곤란하다고 한다.

“친구 부모님이 재워주는 거 반대하면, 공부 잘하는 친구라고 하면 좀 더 잘 수 있어. 전에 친구 가출했을 때, 내 친구가 공부 좀 했는데 아주 잘한다고 했더니 엄마가 자도 좋다고 했거든.”
“한 달만 봐 달라고 사정해보자. 설마 잘 데도 없다는데 내쫓을까?”
“고시텔은 어때? 알바해서….”
“고시텔에 가려면 하루 종일 알바 해야 돼. 학교는 어떡하구.”“단체를 활용하는 거야. 인권단체한테 재워달라고. 하하”

•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할 비용이 없어 ㅠ.ㅠ
“데이트는 돈 안 드는 데 찾아보는 거야. 도서관 같은 곳.”
“먹는 건 어떻게 해?”
“아! 촛불집회 가면 먹는 것도 주잖아. 볼 것도 있고, 걷기도 하고, 시간도 잘 가. 짱이다.”
“먹는 거는 대형 마트 시식코너!”
“근데 차비는 들잖아. 적어도 2천 원은 들어.”
“그럼, 집에서부터 행진하라고 해. 하하.”

• 이가 아픈데 치과 갈 돈도 없고, 보험증 없어서 괜찮나?
“아픈 건 참을 수밖에 없어.”
“후원을 모으는 거야. 자유발언 같은 데서 가출했다고 말하고, 아프다고 후원해달라고 하면 어때?”
“보건소가면 돈 들어?”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자. 의사 아는 사람 없어?”
“야, 우리가 의사를 아는 사람이 어딨어! 우리 나이에 의사를 알기가 쉽냐?”
“아프면 불쌍하다.”

•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하는데 부모동의서가 필요하네.
• 아르바이트 저임금 노동착취 + 인권침해

“아르바이트, 동의서 없으면 안 돼?”
“난 전에 알바 할 때, 동의서뿐만 아니라 노동부 장관 허가서도 있어야 했어. 만 15세 미만이래서.”
“위조하면 그 다음엔 어떻게 돼?”
“동의서 위조해서 내도 어른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해.”
“그러면 어떻게 해?”
“가짜 어른 섭외하면 되잖아.”
“근데 그거 불법이지?”

• 학교에 갔는데 교사가 가출한 걸 알고 집으로 보내려 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학교로 찾아왔다.
• 등교문제, 교복과 책, 준비물, 급식비, 등록금

“가출한 거 학교에 얘기하면 안 되겠지?”
“당근이지. 집에 끌려가. 그리고 가출은 교칙 위반이야.”
“학교에서 거짓말 해야겠네”
“다니면서는 계속 거짓말 하겠지. 급식비 못내도 거짓말, 준비물 못 가져가도 거짓말, 근데 학교 다니기 쉽지 않겠다. 잘 데도 없는데 학교 다닐 생각할까?”

• 가출했는데 돈도 떨어지고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흑
“잘 데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옷도 꼬질꼬질 하면…” “최악이다”
“집에서 엄마 통장이라도 들고 나와야 하는 거야? 참.”
“왠지 계속 불법으로 간다, 우리.”
“그러게 점점…. 정당한 방법은 없나?”
“야, 우울해진다.”

신나게 시작한 가출 여행이 점점 심각해진다. 웃으면서도 우울함이 배어 나오는 청소년의 가출 일기에 빨리 게임을 끝내도, 마냥 환호성이 나오지는 않는다. 게임이 끝날 때쯤이면 가출해서, 독립해서 당당히 사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우리 현실에 착잡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출, 할 게 못되는구나’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출의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보다 가출의 정당성이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에. 오히려 청소년이 집을 나와서 정당하게 살 수 없는 사회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이래도 되는 거야?!!”

더불어 날개짓 2

위 사진:독립을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들! ‘사회’와 ‘나’로 나눠서 생각해봐요~

독립을 희망하는 청소년이 준비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사회는 청소년의 독립적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각 모둠별로 각각의 리스트를 만들도록 한다. 그중 제일 중요한 것, 으뜸인 것은 다른 모둠이 퀴즈로 맞춰보도록 색지로 가리고, 발표를 한다.

사회에서 준비·제공해야 할 것들
· 노동할 수 있는 조건 / 안정적이고 질 높은 일자리
· 주거 공간 : (정부의) 직접적인 제공 / 안정적인 주거 공간(무상)
· 청소년을 위한 의료보험 (청소년은 의료비 공짜?) / 학교, 사업장 등 건강검진+치료
· 교육… (쩜쩜쩜; 왠지 그냥 지금의 교육은 아닌 것 같아) / 교육개혁, 무상교육, 입시폐지
· 교통비+공과금 무상 또는 할인?

이외에 청소년이 스스로 독립을 위해서 준비해야할 것들로는 ‘독립에 대한 의지와 뻔뻔함’ ‘시간관리’ ‘인간관계’ ‘깡’ ‘요리실력’ 등을 뽑았다. 또 청소년의 알바 저임금으로는 잠자리는커녕 세끼 식사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 가출한 청소년도 학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고, 현장학습 가면 입장료 내야 한다는 사실, 의무교육인 중학교도 급식비 못 내면 식판 안 준다는 거, 청소년이라고 절대 공과금 같은 것은 깎아주지 않는다는 거 등등 8개월째 가출 중, 독립을 꿈꾸는 청소년의 이야기는 적나라한 현실을 들춰낸다.

끄덕끄덕 맞장구

서로의 평화를 위해 차라리 집을 나와 사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혼자 사는(또는 혈연이 아닌 구성원들과 함께 사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안타까움’ 그리고 ‘불안’이다. 가출이든 독립이든 청소년은 ‘이렇게 혼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청소년의 독립적 삶이 가능한 사회는 꿈꿔 본 적이 없다. ‘안타까움’은 그저 안타깝게, ‘불안’은 그저 불안으로 안은 채 지낸다. 그러나 그들은 꿈꾼다. 저들의 안타까움과 불안을 딛고 자신의 독립을!

덧붙이는 글
고은채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 상임활동가입니다.
수정 삭제
인권오름 제 114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29일 17:08:58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했던 독립-_-; 그나마 좀 잘 되었던 것 같아서 좋았었지 훗;;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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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08. 7. 16. 11:33


http://www.culturalaction.org/webbs/view.php?board=houseagent&id=183
진보복덕방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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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만을 위한 임대주택이 있으면 좋겠어” 자립을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 세현 씨 이야기




“가출”과 “독립” 사이 - 청소년의 주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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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너 도 나도 집 걱정 하는 시대지만 청소년이 집 걱정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주거정책. ‘혼자 살 나이’가 아니라고 쳐다보는 사회를 ‘혼자’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이다. 여전히도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하는 청소년 주거권. 하지만 너무도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 청소년 주거권이다. <진보복덕방 14호>에서는 "청소년 주거권"에 대한 생각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청소년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은 아직 낯설고, 그 내용이 분명하지가 않다. 아직 정리된 이야기거리들과 지점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소년의 주거권과 관련하여 딱히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혹은, 관련된 사건이 있었더라도 주거권 문제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의식주 중에서도 ‘결식아동’이나 ‘급식’을 비롯하여 아동·청소년의 먹거리에 대해 사람들이 쏟는 지대한 관심에 비하면, 청소년들의 주거권 문제가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놓고 청소년들의 주거권에 별 문제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청소년의 주거권이라는 개념이 낯선 것은 주거의 문제를 가족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며, 청소년들은 그 가족-가정에 종속되어 있는 부수적인 존재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진지하게 주거권의 주체로 고려되어 본 적이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주거권의 주체는 일단 비청소년들(‘어른들’)이며, 청소년의 주거권 또한 어른들의 주거권에 종속되어 있다. ‘거소결정권’이 친권의 일부로 당연하다는 듯 명시되어 있는 민법만 보더라도 이런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주거권은 단순히 누구나 발 뻗고 누워서 잘 수 있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주거의 최소한일 뿐이다. 주거권은 안정적인 집, 안전한 집, 가능한 한 좀 더 편안한 집, 내가 원하는 생활방식, 집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관계 등의 내용을 포함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생활을 옮기거나 조정할 수 있는 권리까지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주거권이라면, 청소년들의 주거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의 주거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있다. 바로 “가출”과 “독립”의 문제이다. 우리는 “독립”이라는 말과 “가출”이라는 말을 구별해서 사용한다. 독립과 가출은 분명히 다르긴 하다. 지금까지 살던 집/가정을 떠난다는 것은 같으나, 독립은 어느 정도 지속적이거나 영구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가출은 일시적인 것을 가리키는 데 보통 사용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판단적 부분도 있어서, 독립은 보통 정당한 것,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지칭하는 데 반해 가출은 일탈적인 것, 잘못된 것이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그런데 이 가출이란 말에는 집요하게 청소년이 따라다닌다. 국어사전 예문에도 “가출 청소년”, “집안 형편이 어렵자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그는 가출을 감행하였다.”, “어머니는 가출한 아들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이런 것들만 나와 있으며, 정부에서는 청소년 가출에 대한 통계를 따로 낼 정도이다. 비록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조하며 이를 위반하는 일종의 무책임한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가장의 가출”이나 “어머니의 가출” 같은 말이 사용되긴 하지만, 가출은 여전히 주로 청소년의 것이다. 가출이란 말 속에 포함되어 있는 부정적 가치판단까지 포함해서.

이런 말 쓰임의 배경에는 청소년은 가정의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그리고 청소년은 ‘독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성년자’라는 말로 표현되는 청소년들의 ‘미성숙’에 대한 이데올로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현실적 제약이다. 앞서 내가 “가출”은 보통 일시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상, 가출로 명명되는 청소년들의 가정 탈출(다른 주거를 요구하는 일종의 저항)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우며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주거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가출 청소년들에 대해 국가가 제공하는 ‘쉼터’(6개월~1년 머무르는)는 청소년들에게 당장 먹고 잘 곳을 주긴 하지만 지속적인 주거일 수 없으며, 현재의 ‘그룹홈’은 그 수가 매우 적고 지원도 열악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쉼터 등은 아무래도 ‘가출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의 성격이 강하니까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치고, 청소년들의 ‘독립’ 문제에 관해 본격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 뭐 집 문제라는 게 항상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돈일 것이다. 눈 깜빡할 새 몇 백, 몇 억씩 오르는 집값이나 전세값, 보증금과 임대료 등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민사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계약 자체를 맺기가 어렵다. 청소년 알바라는 게 대부분 저임금이라서 돈 벌기 어려운 건 말할 것도 없고, 주택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다.

여러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책, 『88만원세대』에서는 첫 챕터에서부터 ‘독립’이 20대 후반까지도 지연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에서 독립이란 얼마나 요원한 일이겠는가? 말이 나와서 말인데, 『88만원세대』의 첫 챕터는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라는 제목으로 청소년들의 경제적 조건과 주거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읽다보면 역시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만다.

결국 이 사회에 살아가는 다수 ‘정상적인’ 사람들의 주거 사이클은, 청소년기에는 어떤 불만이나 독립에 대한 욕구가 있어도 가정에 종속되어 살다가 2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경제적/주거적으로 독립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하겠다.(간혹 이 사이에 학교 진학 등을 이유로 경제적으로는 가정에 종속되어 있지만 집을 떠나서 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소수의 사람들이 이런 주거 사이클을 벗어나려 하지만 이를 사회는 거의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가출과 같은 형태의 주거 저항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 의해 청소년들의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대로 꺼내지지도 않은 채, 침묵 속에 묻히고 있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신화 밑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나, 방향은 다르지만, 모두들 집값 걱정하는 시대이다. 정부에서는 집값을 낮추겠다고 호언장담하고 그래도 내집마련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거복지정책'을 준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여러 가지 이유로 배제를 경험하는 소수자들의 주거권 현실을 살펴본다면 주거권 실현이 집값잡기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거복지정책'은 오히려 배제를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고 있다. 누구에게 어떤 집이 필요한 지를 묻지 않고 상품만을 찍어내는 주거, 부동산정책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도 없을 뿐더러 주거권 실현도 기대할 수 없다.

<진보복덕방>에서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여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사례들을 짚어보면서 그 현실과 쟁점에 대한 연속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장애인주거권(9호), 노숙인주거권(10호), 주거용 비닐하우스촌 거주민주거권(11호), 뉴타운사업(12호), 동성애자 주거권(13호)의 현실과 쟁점을 살펴보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편적 주거권 실현을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편집자 주]


2008년07월15일 13:49:38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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