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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2. 2. 21. 22:02




주민등록제도 50주년 토론회에서 토론문으로 쓴 겁니다.
발제문이 갖가지 쟁점들을 다 정리해서... 토론문은 청소년인권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얘기로 짧게 썼습니다.





강제적 지문날인 제도와 청소년의 인권

공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 지문날인

  주민등록상 생일이 2월이었던 나는, 고3이 되어서야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는 마침 딱 고3 때부터 청소년인권운동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그 당시에도 지문날인 거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주민등록증 발급을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5년 8월, 내 주민등록증 발급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부모의 눈치를 봐야 했고, 딱히 대체할 만한 신분증을 준비해두지도 못했고, 지문날인 거부자로 주민등록증 없이 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같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청소년들 중에도 만 17세가 되는 해에 지문날인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찍고 만다. 지금 내 주변에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은 청소년활동가는 3~4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지문날인 문제 때문에 청소년활동가들은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며, 때로는 자괴감과 패배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고민할 기회라도 있는 청소년활동가들이 더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만 17세에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지문날인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지문날인을 한다. 상당수의 청소년들이 주민등록증 발급 직전까지도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찍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엄지손가락 지문만 찍으면 되는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다. 또한 지문을 날인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날인한 지문 정보가 어떻게 저장되고 관리되는지, 어디에 사용되는지 등에 대해서 자세한 안내를 받지도 못한다. 지문날인은 그냥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당연히 해야 하는 관례적인 행동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으러 가서 주민센터에서 열 손가락을 까맣게 물들이고 난 뒤에, 어떤 사람은 불쾌감이나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고 하기도 한다. 요컨대,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지문날인 제도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고 생각해보거나 스스로 고민해볼 기회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상명 교수는 발제문에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서 중요한 이슈인 본인의 동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현행 지문날인제도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강제적으로 열 손가락의 회전지문과 평면지문을 날인하도록 되어 있어 본인의 동의에 의한 수집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에서 지문날인이 주민등록증 발급과 연동되어 사실상 강제되고 있는 것은 지문날인과 주민등록증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본인의 동의 문제에 더해, 개인정보에 관한 원칙에서는 수집 목적과 범위, 이용 등에 대해서 당사자에게 알리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지문날인 과정에서는 이러한 공지조차도 전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하다못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영장을 받아 강제적으로 압수․수색을 하는 경우에조차도 압수․수색의 목적과 범위 등을 자세히 고지하도록 되어 있는데, 강제 지문날인은 그러한 절차마저도 갖추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상명 교수가 발제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문 정보를 관리하고 이용하는 데 대한 법적 근거나 제한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과도 연관된 문제로 보인다.


청소년인권 문제로서의 지문날인

  주민등록증 발급 연령은 다들 아시다시피 만 17세이고, 그렇기 때문에 주민등록증 발급시 지문날인의 문제는 청소년인권 문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주민등록제도와 지문날인 제도는 모든 국민들에게 해당하는 문제이지만, 특히 지문날인 문제에 맞닥뜨리는 것은 대체로 청소년일 때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인권 상황 전반이 이 문제에 연관되기 마련이다.

  지문날인이 그동안 커다란 저항 없이 순조롭게 유지되어온 것은 청소년들의 인권 상황 전반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청소년들이 학교 등지에서 굴욕적이고 반인권적인 처우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이 많고, 또한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떠한 발언권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문날인 제도가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어떤 문제제기를 하려고 해도 넘어야 하는 사회적 장벽들이 적지 않다.

  하나의 예를 들어, 만 17세의 청소년들은 다수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며, 대부분은 친권자나 후견인에게 사회적․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지문날인에 있어서, "행정기관의 어떠한 압력에 의해 유도"되는 경우 뿐 아니라 친권자에 의해서 유도되는 문제 역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문날인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알게 되고 지문날인 거부를 고민하게 되는 청소년들도 가장 많이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 친권자와의 관계나 친권자로부터의 압력 문제이다. 이번에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에 관련하여 주민등록번호 변경 소송에 참여하거나, 또는 지문날인 헌법소원에 참여하고자 했던 청소년들도, 법적 대리인인 친권자의 동의 문제에 걸려서 참여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또한 역으로 강제 지문날인 제도와 같이 정보인권 보장에 소홀한 사회 현실은 청소년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의 인권 전반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급식비를 미납한 학생들을 가려내는 방법으로 지문 인식기를 도입하는 방식을 검토했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으며, 다른 중고등학교들 역시 지문 인식기를 도입하려 하거나 실제로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는 곳들이 적지 않다. 또한 내가 다니던 대학교 기숙사에서도 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데에 지문 인식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굳이 지문 인식을 이용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도 굉장히 무감각하게 지문 정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문 뿐 아니라 다른 개인정보에 관해서도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관한 원칙을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나는 이 역시 개인정보를 너무 과다하게 수집하고 이용하는 주민등록제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정보인권의 하한선이 낮춰진 것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체의 인권 침해 문제 때문에도 그렇고, 사회 전반적인 인권 상황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도 그렇고, 강제 지문날인 제도를 포함하여, 주민등록제도를 인권의 기준에 맞게 개선하는 것은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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