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08.06.06 04:30
문자 그대로 호외.
딱 2면으로 작성된- 일종의 긴급 찌라시랄까 --;;
내용은 대충 이명박은 그만 GG쳐라, 라는 거랑 약간의 선동 같은 것.


이런 것도 들어가 있다 ㅎㅎ



촛불용사 시민들
(원곡 : 지구용사 선가드 한국 주제가)

쥐박이 귀 뚫으러 가고 싶어도
닭장차 가로막은 광화문 광장
미친협상 대운하 학교자율화
국민 의견 쌩까는 독재의 세계

우지쾅쾅 살수차
백골단에 경찰특공대
암흑대왕 쥐박이어스

평화를 파괴하는 독재 사기꾼
나가자 행진하자 정의는 이긴다

비폭력 비폭력 촛불용사 시민들




사용된 글씨체는  한겨레결체, MD이솝,  고딩L, 은방울체였나...



자세한 내용은 다운 받아서 보시라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02 14:32
"미성년자 석방하라"의 함정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 등 구호를 외치며 촛불집회의 사람들은 거리행진을 계속하고있다. 경찰은 이것이 신고하지 않은 불법집회라고 주장하면서 행진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연행해가고 있다. 연행된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얼마 전에 또 연행된 청소년들에 대한 기사가 뜨면서 인터넷이시끌시끌하다.
  기사의 내용은 주로 '울부짖으며 끌려가는 학생들', '"집에 가고 싶어요" 여중생의 눈물', '"미성년자는석방하라!"… 끝내 모두 연행' 등의 내용이다.
  나는 최근 촛불집회와 가두시위에 몇 차례 참가했던 청소년으로서,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시위 때 경찰에연행도 한 번 당했었던 청소년으로서 이런 것들에 대해 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 '미성년자 연행'에 대한 언론의 시선은, 무고한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강제연행해가는 상황에 대한 것보다는'연약하고 어린 여중생', '눈물 짓는 어린 학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실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기사를 보면,'여중생'으로 보이는 10대가 연행버스 창문을 통해 "집에 가고 싶다"라고 외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들을연행해갔다, 는 내용인데 현장에 있던 당사자로서 말하자면 사실 그 때 그 청소년은 "집에 가고 싶다"가 아닌 "평화시위보장하라" 등 촛불집회의 정당함을 알리는 얘기를 외쳤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여중생, 중학생'이라는 이미지(?)로"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못미"라는 목소리를 담고서 '중학생', 어린 학생' 등 '약한 자의 이미지'로 비치게끔 내용을보도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을 그저 '우리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청소년을 청소년 그 자체로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에서 나는 문제를 느끼고 있다.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하고 직접자기 요구를 말하는 것에 "미성숙하니까", "위험하니까" 등등의 이유로 한계를 두고 비청소년들이 그걸 대신 해주려고한다거나 하는 것은 청소년을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는 어떤 면에서는 청소년들을 차별하게 되는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부당한 연행 자체보다는 '저 어린 애들'까지 연행해가는 것에 더 분노하고 있다.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이 집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저 어린 애들'까지도 거리로 나오게 내모는 정부를욕하며, 청소년들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예외적인 상황으로 한정지으려 한다. 여성과 남성 등 성별의 차별이 부당한것처럼, 청소년과 비청소년도 차별당하지 않는 평등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또 집회에서 시간이 늦어지거나 전경과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청소년들은 그만 집에 가지 그러냐"고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니까' 못하게 하는 '보호주의'의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고,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자주 눈에 띄는 문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그래서 내 친구는 "어른들이 무슨 죄냐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피켓을 만들어서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위험한 건 다 같이 위험하지 않은가? "미성년자는석방하라!"는 얘기도, 결국 '미성년자'에 대한 평소의 좀 차별적인 상식에 근거한 것일 뿐, '미성년자'만이 특별히석방되어야 할 논리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
 
  우리 이제 "왜 우리만 풀어주냐. 모두 다 석방하라."라고 청소년들이 피켓을 들고 참여하거나 "아이들이 무슨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가 아닌 "모두 함께 우리의 삶을 지키자", "서로를 지켜주자"는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었으면좋겠다.
 

난다
(성남 청소년인권모임 인지인, 5.17 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
Posted by 공현
흘러들어온꿈2008.06.02 05:38
지금 87년 6월 항쟁에 대해 과제 때문에 조사 중입니다.
조사 중에 최근의 시위에 관해 참고할 만한 글을 발견해서 올려둡니다.

먼저, 경찰력을 마비시키려면 독하게, 질기게, 길게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래는 6월항쟁 인터넷 기념 페이지에 있는 87년 6.26 평화대행진을 기록한 글 중 일부입니다.




전국 50개가 넘는 지역에서 150만 인파가 거리를 넘쳐흘렀다. 전국 34개 지역에 6만 전투
경찰이 전국 43개 지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경찰은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잦은 전국적인 시위로 최루탄 재고가 바닥나 있었던 점이다. 건조 과정을 거치지 못한 쓸
모없는 최루탄조차 생산이 달렸다고 한다. 또 하나는 무더운 날씨와 장기간의 시위진압
작전으로 경찰들의 체력 또한 바닥나 있었다.
민통련 간부들은 가두시위의 베테랑들이었는데, 가두시위에서 시위대와 맞선 경찰의
취약점을 찾아냈다. 경찰은 앞에는 하급자들이 서고 뒷줄에는 상급자들이 배치되기 때문
에, 항상 병력의 후면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정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자,
학생들은 거꾸로 기동대의 후면을 치고 빠지는 전술을 채택했다. 게다가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뛰는 학생과 중무장한 경찰의 기동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명준은 석동일의 자가용을 타고 함께 시위현장을 두루 살펴보았다. 석동일은 모 일
간지 사진기자로 있던 동생의 보도완장과 깃발, 표시판을 차에 붙이고 길 한가운데로 질
주했다.
국민운동본부의 주력들은 동대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지만 이명준은 서울시내 전역
을 고루 살펴볼 수 있었다. 치고 빠지는 시위대와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들 속에서 경찰은
무력화되고 있었다. 마침내는 시위대가 경찰을 무장해제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해찬은 무장해제되는 경찰을 학생들이 때리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할 지경이
었다.
전두환 정권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군대를 동원하거나 무조건 항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비상조치로 군을 동원하면 일시적 진압은 가능할 몰라도 사태는 돌이
킬 수 없다고 판단한 전두환 정권은 6∙29선언이라는 위장된 항복카드를 뽑아들었다.
6∙29선언은 기만적인 사기극이었으나, 직선제를 얻었다고 만족한 정치권은 이미 선
거로 달려가고 있었고, 전국을 뒤끓었던 투쟁의 열기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의 길’은 그렇게 열리고 있었고, 7월 노동자투쟁은 따로
마련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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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위는 동시다발로 여러 곳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5월 31일 밤에 보니까 막 전북에서 올라와서 '전북도민여러분'어쩌구 하는 플래카드를 그대로 건 닭장차도 있더군요. 여러 지역에서, 그리고 서울에서는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진행해야 경찰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래도 같은 글 중에 일부입니다.


최저의 행동강령수준은 쉽게 합의되었다. 불끄기, 경적, 종 치기1) 등 큰 이의 없이 합의
되었다. 86년 필리핀의 2월혁명과 국내 신민당 개헌현판식 때의 시민 참여를 고려하여
쉽게 정리되었다.
전국동시다발도 쉽게 합의되었다. 이해찬은 87년 2∙7대회와 3∙3대회의 경험과 함께
정보과 경찰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흘려들은 정보를 정리하여 설명했다.

“시위를 막는 데 동원되는 경찰기동대는 3~4만이다. 이 기동대를 서울에 집중시키면 안 된다.
2∙7 때 세종로에서 집회를 하려다 기동대에 봉쇄당하자 시위는 막혀버렸다. 물리적으로 한 지역
에 집중하는 시위로는 경찰 병력을 뚫을 수 없다. 그래서 3∙3대회 때는 시위 전략을 전환시켜 동
시다발적 거점시위로 경찰 병력을 분산시켜 성공을 거두었다. 따라서 6월항쟁은 전국동시다발로
전국적인 거점을 마련하면 경찰 병력이 이동을 못 한다. 작은 시 단위, 예를 들어 천안, 안동처럼
시 단위 대학이 있는 곳은 시위가 벌어지면 최소한 1개 편제 480명을 묶어둘 수 있다. 이 전략으
로 대학이 있는 곳은 모두 시위에 참가하면‘시’자가 붙은 곳은 최소 5백 명~1천5백 명의 경찰
병력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이동을 하지 못한다. 지방으로 경찰 병력이 분산되어 서울은 2만 명이
넘지 못하게 한다. 160명 단위로 1개 중대가 편성되고, 3개 중대 480명이 1개 편제로 된다. 이 기
본편대 70개, 총 3만3천6백 명이 경찰기동대 총병력이다. 2만 명 정도의 경찰 병력으로 동시다발
적 시위를 서울에서 막을 수 없다. 서울역, 회현동(6∙10대회 당시 최대 격전지), 동대문, 신촌을
거점으로 시위를 하면 한 지역에 3~4천 명밖에 배치할 수 없다. 그 사잇길은 거의 무방비로 뚫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해찬이 분석한 경찰기동대 내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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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같은 사이트의 다른 글에 있는 내용입니다. 당시 실제 참가했던 사람들의 좌담회 중 일부입니다.

우상호 :실제로 학생들이 네 군데로 나뉘어서 집결하다 보니까 경찰력이 분산됐고, 처음
에는 수백 명 나중에는 1천여 명 정도가 안정적으로 집회를 할 수 있게 됐다. 7시 30분경부
터 앞으로 밀고 쭉 나갔는데, 신세계 백화점 앞이 확 뚫리면서 적게 잡아도 2만여 명 이상
이 그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퇴계로 쪽에서도 학생들이 밀려왔다. 전경들이 일시적으로
남대문 쪽으로 밀려난 사이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백화점 앞 분수대로 모여들었다.
야, 이겼구나 하는 생각과 자신감이 밀려들었다. 사방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현장에
서 시위대에 의해 고립됐던 전경 1개 소대가 무장해제 당했다. 헬멧과 방독면을 벗겨놓
고 보니 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었다. 시위대는 최루탄 연기에 눈을 못 뜨는 그들을
분수대로 데려가서 세수를 시켰다. 그리고 모든 무기를 내려놓게 한 뒤 <아침이슬>을 함
께 불렀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일부 전경들이 눈물을 흘리다 고개를 숙였다. 지켜보던
시위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정수 실제로 지역별로 분산해서 집결하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시위가 진행된 것이
도리어 열린 공간을 만들어준 측면도 있다.




http://www.610.or.kr/ 인터넷 6월 민주항쟁 기념관의 "6월항쟁을 기록하다" 자료 중에 있는 내용입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2008년 민주화 촛불항쟁(정확한 명칭은 역사가 정해주겠지요)에 시사점이 많습니다 @_@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6.02 05:29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기도 하다. 예전에도 경찰은 살수차를 직격으로 사람에게 쏴댔고, 방패로 찍어댔고, 그 와중에 사람이 죽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잠잠하다가 직접 당하고 동영상 뜨고 하니까 사람들이 실감이 나는 것 같다. -ㅂ-;;
뭐 백문이불여일견이니까, 쩝.


5월 31일 시청 광장은 정말 사람이 득실득실했다.

오전 11시반부터 청소년노동인권('알바인권')에 관해 서명운동을 받고 거리상담을 나갔었고,

오후에는 잠깐 회의를 하고 다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나서 청소년인권단체 사람들이랑 같이 간 거였던지라 좀 힘들었다. 휴...


10만 촛불집회

처음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있는 쪽에서 시청광장을 봤을 때는 사람들이 시청광장만 가득 채운 줄 알고 '한 5만 되려나?' 했는데,
웬걸 가보니까 덕수궁 앞까지 인산인해다.

더군다나 시청광장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는 않지만 거의 숭례문까지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다.

10만은 넘겠군 --;;

청소년인권에 관해 열심히 만든 전단지 돈도 없어서 300장만 뽑아갔는데

10만 인파 앞에서 300장은 너무 무색했다. 그래서 일단 청소년들 위주로 나눠주기로 했다.

10만 명이 넘는 집회 인원 앞에서 가슴이 막 벅차야 할 거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정말 득실득실하게 많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ㅠ 난 정말 비뚤어졌나봐.



행진 시작

촛불집회를 하던 중, 8시였나 8시 반이었나 여하간 그쯤에 청운동사무소 쪽에서 사람들이 연행되었다고 해서

후딱 정리하고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행진을 해도 빠지는 데 한참 걸린다.

나중에 듣기로는 대략 3, 4 갈래로 빠졌던 거 같은데
가장 큰 갈래는 을지로 쪽으로 간 사람들과 다른 어딘가로 간 사람들 두 갈래였던 것 같다.  나머지는 약간 소규모였던 듯. 시청에 남아있던 사람도 상당수라고 했다.

나는 촛불집회 오려고 했는데 좀 늦게 나왓더니 교통이 마비되어서 버스가 안 다녀서 그냥 집에서 상황 모니터링하기로 한 친구와 통화하면서 시위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ㅎㅎ;


을지로를 돌아서 광화문까지 갔는데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다시 돌아서 종로3가, 인사동 쪽까지 갔는데

이건 뭐 사람이 많으니까 앞뒤에서 무슨 일이 나는지 알 수가 없다. --;; 그냥 마냥 걸을 수밖에.

걷다가 힘들어서 잠깐 앉아서 쉬면서 어느 빌딩의 화장실 가서 퀴어퍼레이드 참가할 때 입었던 치마랑을 벗고 바지로 갈아입었는데, 갈아입고 나와도 행진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에 타고 있는 분들 중에는 짜증 내는 분도 있었고 응원하는 분도 있었는데

응원하는 분한테 "함께해요~"하니까 그 분이 "차를 버릴 순 없어요"라고 해서 웃었다 퓨퓨퓨

행진하면서 아수나로랑 민들레 등의 청소년 분들이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 라고 엄청 크게 구호해서 주변에서 박수쳐주고 그랬다 쿠쿠쿠



닭장차를 넘어


인사동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에 전경차들이 막고 서있었는데 앞에서 한참을 막 하고 있어서 뒤에 앉아서 잠깐 쉬었다.

옆에는 한총련, 서총련, 남총련 등의 민족주의적인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615공동선언 이행"을 구호로 외치는 걸 보고 참 --; 고집도 세다고 생각했다. ("고시철회 주권수호"가 그 사람들의 메인구호였으나 앉아서 쉬면서 구호할 때는 공동선언 이행도 외치더라)

애국가(무려 4절까지) 부르고 대~한민국 외치는 건 여전히 짜증난다.

그런데 앞쪽에서 닭장차 뚫렸으니까 양 옆으로 가래서 양 옆에 틈새로 막 가는데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닭장차를 위로 넘어서 왔다. 예전에 민중총궐기 때도 닭장차 저렇게 넘어다녔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자 이제 곧 청와대다 하면서 또 행진 시작.

행진을 하면서 청소년들이 보일 때마다 계속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갔다.


정말 사람 많다...

그런데 삼청동(광화문과 인사동 사이. 삼청터널을 지나면 곧 청와대.)에서 경찰들이 삼청터널 가는 길을 막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대치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박진 사무소를 보면서 사람들이 "박진 불꺼라" 라며 계란 몇 개를 던지기도 했다.

늦게 온 다른 사람을 데리러 광화문까지 갔었는데

사람들이 세종로 쪽에서 계속 걸어서 효자동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정부종합청사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끝없이, 끝없이 차도를 점거하고 효자동 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이런 게 거리의 대중정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정말 이명박은 퇴진이다, 하는 생각도.


그렇게 시위하는 사람들은 삼청동 쪽에 한 팀, 효자동 쪽에 한 팀이 있었다. 듣기로는 양쪽 합쳐서 4, 5만 정도.



"세탁비 세탁비"


효자동 쪽에서는 물대포, 소화기가 등장했다는 이야기와 최루탄이 나왔다는 이야기(나중에 사과탄인가 소화기로 확인됨;)까지 나왔다. 그러더니 좀 있으니까 이쪽에서도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 오른쪽에 있었는데 오른쪽은 다행히 물을 안 뿌려서 처음엔 안 맞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물에 맞고 추위에 떨며 뒤쪽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던 중 같이 온 사람들을 잃어버려서 막 찾으러 다니는데, 원래 물대포가 한대였는데 갑자기 두대가 나오며 양쪽 방향으로 물을 뿌려서 나도 물에 쫄딱 젖었고,
오기가 생겨서 그자리에서 머리를 팔로 막고 버티고 서서 직격을 계속 맞았다.

사실 물대포가 수압이 세긴 해도 머리(얼굴)를 보호하고 침착하게 버티면, 체중이 한 50kg 이상만 되어도 버틸만 하다.

물대포 때문에 다치거나 쓰러지는 경우가 크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머리나 얼굴을 직격 당해서 다치는 경우가 있고 (이건 좀 심각하게 다친다 ㅠ)
다른 하나는 물을 갑자기 맞아서 놀라거나 물을 다리 쪽에 맞아서 넘어지는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을 피하려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밀리거나 아니면 바닥이 물에 젖어 있어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경우다.

미리 쏘는 걸 알고 머리를 보호하고 단단히 버티고 서있으면 크게 다치진 않는데, 문제는 엄청 춥더라는 거다 -_- 맞았을 땐 멀쩡하다가 추위 때문에 실신하거나 체온이 떨어져서 의료팀 찾은 사람도 많을 거다...

정말 5월이 아니라 8월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체온이 떨어지면 체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퀴어퍼레이드 때 입었던 치마랑 남방을 꺼내서 도로 입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탁비 세탁비" "온수 온수" "맥주 맥주" 등을 구호로 외치며 경찰들과 계속 대치하고 있었다. ㅋㅋㅋ



비폭력은 무엇인가?


여하간 그러다가 오른쪽에 있는 닭장차 앞를 두드리며 경찰에 항의의 뜻을 표시하다가,

차를 밀까 했는데 앞에 있는 사람들이 이 차 안에 전경이 있다고 밀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경찰들 위험하니까 나오라고 막 소리질렀는데 안 나오길래 문을 강제로 열고 나오라고 했는데

그랬더니 옆에서 막 어떤 사람들이 와서 발로 차서 문을 닫으면서 막 비폭력으로 해야 한다고 화를 냈다.(발로 차서 문 닫는 것도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ㅡㅡ)
그러면서 "당신들 운동권이야?" 막 그랬는데, 내가 인권단체 활동가고 소위 '운동권'인 것도 맞긴 하지만 그때 거기에서 닭장차 확 밀어버리고 싶어한 게 다 운동권이었던 것도 아니고 문 연 게 다 운동권이었던 것도 아닌데 , 게다가 '운동권'이더라도 비폭력주의자나 평화주의자도 많고 나도 그렇게 되려고 하는데, 좀 화가 났다.

아무래도 그 분들은 문 열고 전경들을 끌어내서 막 때리려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때 우리 뒤에서는 막 문 열리니까 병 던지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뭐 그럴 위험이 전혀 없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앞쪽에서 문 열었던 사람들은 전경들한테 어서 위험하니까 나오라고 하면서 열었던 사람들이다.

듣자하니 효자동 쪽에서도 사람들이 전경 두 명인가 끌어내니까 몇몇 사람들이 막 때리려고 그러는 걸 못 때리게 말리고 보내줬다고 하는데,
뭐 삼청동 쪽이라고 효자동과 크게 다를 것도 없을 거고 적어도 그럴 만한 자제력과 정신은 있는데 아무래도 그분들은 사람들을 불신하는 거 같다 ㅎㅎ


나중에는 닭장차를 물병으로 두드리면서 항의하는 걸 가지고서도 하면 안 되지 않냐고 비폭력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나는 정말 "폭력"이란 말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폭력은 "사람"이나 "생명"에게 행사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닭장차를 두드리거나 미는 게 왜 폭력이란 말인가? 그걸로 사람이 다치지 않게 나오고 비키라고까지 하고 있고, 또 사람이 비키기 전이라면 나도 밀 생각은 없다.
힘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면, 애초에 촛불집회를 하거나 행진을 하면서 도로 막고 다른 차들 못 다니게 막는 것도 폭력이다. 스크럼을 짜는 것도 폭력이다. 대체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폭력'이라거나 '평화'시위는 뭘까?

나는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서 비폭력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다수가 참여하기 쉽게 하거나 도덕적 정당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비폭력이라면,
오히려 5월 31일~6월 1일 새벽 시위에서 6, 7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상황 변화 없이 계속 대치하는 것 때문에 한 게 없다고 지겨워하고 짜증내면서 집에 간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_-
난 폭력도, 싸우는 것도 싫어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바라지도 않지만, 여하간 그자리에서 구호만 외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아님 정말로 완전 비폭력으로 길바닥에 드러눕거나 연좌해버리거나...


* 그나저나 예비군복 입고 온 분들은 대체 왜 온 건지 잘 모르겠는 게; 그렇게 환호를 받으며 오면 정말 확 전경들이랑 뚫어버리거나 아님 제대로 막거나 해야 하는데 별로 그러는 거 같지도 않고;;; -_-
앞에 있던 사람 말로는 다른 사람들을 다 뒤로 밀어내면서 자기들끼리 스크럼을 짜는데, 그게 방어선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오히려 시위대의 이동을 저지할 때도 있다고 한다. 끙- 그렇게 환호 받을 만큼 예비군복 안 입은 사람들보다 예비군복 입은 사람들이 뭘 잘하는 거 같지도 않고,
그리고 솔직히 예비군복 퍼포먼스에서 나는 성별분업과 결합된 군사주의 정치가 읽혀서 불편한데-
에효

"싸이 하냐?"

하도 추워서 편의점이라고 갔다 오려고 가는데 편의점 바로 앞을 닭장차들이 막고 있었다.

슈퍼가 있긴 했지만 이미 따뜻한 먹을 거나 마실 거는 삶은 계란 빼곤 동이 난 상태.

사람들 몇몇이 닭장차 앞에서 항의하는데 전의경들이 오히려 플래쉬 터뜨려가며 채증하더라 -_-
편의점 보내달라는데 웬 채증이여

사람들이 "싸이하냐? 사진은 왜 찍어~" "싸이에 올리게?" 이러면서 항의했다 ㅎㅎ

그리고 막 "돈 줄 테니, 안 보내줄 거면 말보로 라이트 좀 사다줘요" 이러면서 대치하는데

에효 결국 자판기에서 생강차만 좀 뽑아갔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고 택시타고, 오토바이 타고 온 분들이 김밥이랑 라면 등을 사오셨더라.

ㄱㄺㄹ이 집에 갔다가 밤 늦게 택시 타고 다시 온 사람들은,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닐까 하는 농담을 하여 웃음을 주셨다 -_-


"살인무기 물러가라"


물대포에 맞아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으로 실려나갔다. 처음 부상자 발생했을 때 부상자 실어나를 길을 열어달라고 사람들이 막 그래서 비켜섰는데, 눈치 없이 기자들이 막 그 길 한가운데에 서서 카메라로 부상자들을 찍으려고 하다가 사람들의 질타를 받고 쫓겨났다. YTN은 특히 사다리 세우고 찍다가 욕 먹었다 --;

그중에 눈에 정통으로 맞고 안구출혈로 실려갔던 분이 있었는데,

새벽녘에 그 사람이 실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웅성웅성거렸고

"살인무기 물러가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 구호에 왠지 눈물이 났다.

울면서 구호를 했고, 목은 쉬기 직전이었지만-



정말 닭장차 몇 번 흔든 거 말고는, 닭장차 위에 올라가서 있던 거 말고는 눈에 띌 만한 뭐도 못해보고 경찰들 앞에 서있었고, 전의경들 서있는 데다가 막 종이학 주면서 한 시위였는데

물대포에 맞아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피나고 오들오들 떨고




사람들은 동이 터오자 "아침밥 아침밥" "아침밥은 청와대에서" 를 구호로 외치기 시작햇지만, 전의경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이 청와대가 아니라 다른 데로 급히 피신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ㅂ-

나는 그때 프랑스 혁명이 생각났다.

프랑스 혁명 때 민중들은, 다른 곳에 있는 루이16세의 궁전까지 쳐들어가서 루이16세를 파리로 데리고 간다.

이명박을 끌어내서 목을 벨(루이16세처럼) 생각은 당연히 없지만,
적어도 그 인간 면상이나 보고 싶다.

처음엔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주로 외치던 사람들이,
전의경들이 물대포 쏘고 하자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주 구호로 삼고 이제 "협상무효 고시철회"는 거의 안했다.

그만큼 열받았다는 증거다... -_-




아침 7시 무렵에 오후에 할 다른 일(+너무 졸려서 일어서서 졸다가) 때문에 먼저 나와서 친구 집에서 잤다.

그리고 인터넷을 켜보니,

내가 간 후에 또 난리가 났었다.

전에 우스개소리로 난 연행 안 당하는 신이 내렸다고 했는데 정말인가 ... -ㅂ-;;;;;

동영상을 방패로 찍고 난리가 났다. 아침에 있던 사람에게 전해듣자니 무슨 영화 찍는 거 같았다고 한다. 영화 제목은 "화려한 휴가"...

경찰특공대인지 뭔지 하는 것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
밤동안 나는 87년 6월 항쟁에 관한 과제를 마쳤다.

또 동이 터온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5.30 05:39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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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 겨우 다 만들었네 ㅠㅠㅠ

아 그런데 두번째 장은 글자 수가 좀 많은데

줄이려고 애를 써봤지만 어렵군요 음음...

나름 아수나로에서 고심과 논의 끝에 만든 전단지 디자인입니다...
촛불집회나 촛불문화제 등등에 가서 뿌릴 내용으로;;

 
아앍 거의 밤을 샜더니 죽을 거 같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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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소’가 무서운 우리?


   광우병은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공장식으로 사육하면서 동물 뼛가루를 넣은 사료를 먹였기 때문에 전염되었다는 게 유력한 추측이에요. 사람이 광우병에 걸리면 초기에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다가 뇌에 구멍이 뚫리면서 죽어가요, 아직까진 전염을 막는 방법도, 치료법도 없어요.
 
   쇠고기를 안 먹으면 되지 않냐구요? 젤리, 과자, 알약, 화장품 등등 정말 많은 물건에 소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물질이 들어기요. 이건 그만큼 인간이 가축들을 많이 착취해왔다는 소리인 동시에, 고기를 직접 먹지 않더라도 광우병에 전염될 위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또, 헌혈로 전염된 사례도 있어요.
 
   광우병은 이윤을 더 남기려고 동물들을 착취해온 인간이 만든 끔찍한 병인 셈이죠. 우리가 요새 쇠고기가 20개월이 어떻고 30개월이 어떻고 떠들지만, 원래 소의 수명은 20년 정도란 걸 아시나요? 광우병에 걸린 소들은 “미친 소”가 아니라 “아픈 소”에요. 미친 건 차라리 인간/육식문화/축산업일지도 몰라요.
 


미쿡산 쇠고기만 문제야?

   우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요. 미쿡에서 수입해 오는 쇠고기가 분명 광우병 위험이 높거든요. 사람들의 의견을 캐무시하고 사람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불법이라며 폭력을 써서 잡아가기나 하고,‘장관고시’를 강행한 2MB 정부에는 정말 화가 나고, 정부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국 소들도 광우병으로부터 100% 안전하진 않아요. 고급 한우를 제외하면, 한국산 쇠고기 중 상당수가 소로 만든 사료를 먹은 닭, 돼지 등을 다시 갈아서 소에게 먹이는 절약정신(?)으로 사육돼요. 거기다 한국정부는 안전할 거라면서 광우병 검사를 미국보다도 대충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결코 한국도 광우병으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닌 거죠. 어쩌면 문제는 어느 나라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진 쇠고기냐이죠.


 학교급식! 넌 안전하냐?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알려주지도 않고, 확인도 어려운 지금의 급식제도!  이런 급식을 다수의 청소년들이 먹고 있어요. 한 번 일 터지면 대박으로 터질 수 밖에 없는 단체 학교급식은 광우병을 넘어 모든 위험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요.
   유전자변형식품, 광우병 쇠고기, 농약과 항생제 등으로 쩐 채소들과 고기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고 먹는 사람들. 먹거리 생산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긴 하지만, 급식은 더 불안해요.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데, 먹는 게 이 상태이니 안습 ㅠ_ㅠ


사람들의, 특히 청소년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안!

 1) 안전하고 저렴한 식재료가 필요해!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먹거리 생산과 직영급식을 위한 정부의 재정적&제도적 지원!
기를 수 있는 건 학교나 공동체에서 직접 생태적으로 기르기!
지역 학교들이 함께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식재료를 저렴하게 산지에서 사오기!
 
2) 알 권리와 참여할 권리!
이 음식에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재료가 들어있는지 모두 알게 하기!
식재료를 사오는 과정, 음식이 만들어지고 이동되는 과정 등이 투명하게 공개!
급식을 먹는 사람들이 직접 모든 과정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마련!



청소년도 정말 미치겠다 -_-

    광우병에 걸리는 소들은, 좁은 곳에 갇혀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등을 주입당하며, 양이나 소나 돼지나 닭이나 오리 등을 갈아 만든 동물성 사료를 먹으며 사육당해요. 그러다가 뇌에 구멍이 뚫리며 주저앉게 되고, 결국 살해당해 먹히거나‘처분’되죠.
   많은 한국의 청소년들은, 좁은 교실, 두발복장규제, 시간표의 틀 속에 갇혀서, 입시 지식을 주입당하며, 옆의 친구와 약육강식 (약자의 고기를 강자가 먹는) 의 경쟁을 벌이며 사육당하죠. 그러면서 마음과 머리에는 구멍이 뚫리고 건강을 쫌 해치게 되며, 결국 이 나라를 위한‘인적자원’이 되죠.


공부+경쟁 더 빡세게 시키겠다는 정부, 뭥미?

    성적이라는 획일적 기준을 갖고 경쟁시키고 차별하는 교육, 명문대 가는 것과 취직 잘 하는 게 목표인 교육 때문에 이미 우리는 죽을 맛이에요.
   근데 2MB 정부는 고교서열화, 영어몰입교육, 학교자율화 등 경쟁과 공부를 더 빡세게 하고, 학생들과 학교를 서열화하는 정책을 내놨어요. ㅠ 거기다 학교자율화 정책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두발복장규제, 체벌, 0교시와 보충수업, 강제종교수업 등도 제한을 덜하겠다는 거니까... 완전 어이상실!

   우리는 국가를 위한 인적자원도 아니고, 죽은 듯 지내는 시체들도 아니에요. 정부가 할 일은 교육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지금의 뷁스런 교육을 개혁하는 거예요. 우리는 우선은 한 줄로 서열화된 학교 구조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요. 청소년들의 교육권, 행복, 다양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쟁적 교육을 그만두고, 다양하고도 평등한 교육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2MB 정부는 상수도, 의료보험 사영화(민영화) 등 안 그래도 팍팍한 생활이 더 빡세질 정책들까지 추진하고 있어요. 우리는 인권보장과는 완전 반대로 가고 있는 무개념 정부 때문에 갑갑해서 목이 맬 지경 -_ㅜ

청소년은 평등한 정치적 주체!
 
    청소년들에게도 정치적인 권리가 있어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고, 집회시위의 자유가 있으며, 정치 활동을 할 권리가 있어요.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도 있어요.

   이런 권리들을 씹어가며 교육청, 학교, 경찰에서는 청소년들의 집회 참가 등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축시키고 우리를 교실, 학원, 집에 가둬두려 하고 있죠. 때로는 집에서 우리의 활동을 막기도 해요. 많은 학생들에겐 공부 압박도 장난 아닌 게 사실이구요 -_-; 요새는 특히 막나가는 경찰들에게 잡혀갈까봐 무섭기도 하죠.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나서서 외쳐야 해요. 우리의 행복과 권리를 위해, 그리고 무개념 정부의 짜증나는 행태를 고치기 위해. 더많은 민주주의(예컨대“국민소환제”?)를 요구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하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부탁드려요.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반말을 쓰거나 하지 마세요. 그리고“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등, 우리를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경향의 피켓들은 자제해주세요. 우린 마냥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cafe.naver.com/asunaro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5.28 04:41
그간 촛불집회는 여러 차례 참가했었지만,

지난 토요일 저녁 거리행진이 시작된 이후로 참가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로 구호는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은 물러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함께해요 민주시민" 정도였다.


그런데 그동안 참가했던 사람들에게 들어온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무슨 차에다가 커다란 앰프 같은 걸 실어서 '선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부터 참가하던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전에는 저런 게 없었다고 하며 저 사람들 뭐냐고 했다.

도중에 명동 롯데백화점 쪽 길에서는 유턴을 두 번이나 해서 완전 우왕좌왕 -_-;

차가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서 천천히 가게 되니까, 계속 차 속력에 맞춰서 천천히 가라고 했다. ;;

그러다가 명동을 왜인지 한 바퀴 돌고 을지로2가 사거리 쪽으로 가는데 전의경들이 길을 막고 있으니까,

모여서 뭉쳐서 천천히 뚫고 가자고 막 모이라고 해서 모였는데

앞으로 가다가 갑자기 전의경들 앞에서 또 유턴했다 -_-;;;;


나도 뭐 경찰이랑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싸우는 게 더 안 좋을 수도 있고)

뭉쳐서 뚫자고 막 모이게 하더니 바로 앞에 가서 유턴하고 뒤로 돌아서 명동길로 들어가자고 하는 건 뭥미...


여하간 명동성당이 있는 명동길로 접어들었는데
명동길 반대쪽 끝에 CGV 있고 한 데도 경찰들이 막고 있었다.
그러니까 "명동성당 명동성당"한다.

하여, 명동성당으로 가려고 돌아서 가니까 우리은행 사거리에 경찰들이 또 진을 치고 있고 시위하던 사람들은 밀리오레 쪽으로 가 있었다.

유턴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사람 수가 줄어드는 거 같았다 -_-;

특히 전의경들 앞에서 유턴할 때마다, 그 전의경들 앞에 남는 사람들이 있었다.


밀리오레에서 앉아서 어떻게 할지 토론을 하자고 하는데 경찰들이 쫓아와서 일어났는데,

앞에 스크럼 짜고 경찰이랑 대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뒤에서 사람들이 큰길 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뛰어다니며 경찰이랑 대치한 사람들한테 앞으로 행진해 가자고 이야기하는데,

그 차와 앰프를 끌고 온 사람들 같은 사람들 4~5명은 둥글게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더라. 지나가다가 잠깐 들린 말은, 대충 뭐 대부분 사람들이 가면 뒤에 남은 사람들도 따라올 거라고 -_-+
약간 화가 났었다.

명동에서 그렇게 도망치듯이 나와서 숭례문을 타고 다시 시청으로 가는데-
그 차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어디에서 갖고 나온 차였을까;;


그런데 시청 도착하니까 앞에 전의경들이 바글바글했다.
시위하던 사람들은 플라자호텔 앞에서 전의경들에게 포위되었는데
잠시 긴장된 분위기가 흐르다가 전의경들이 포위를 풀었고,

그때 청계광장으로 가서 집회를 정리하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어서 경찰에 그렇게 말을 하고 쏼라쏼라를 해서 경찰이 청계광장 가는 쪽 길을 열어줬다.
(이때, 처음 시작할 때는 2천은 넘어 보이던 사람들이 어느새 200~300 정도로 줄어 있었다.)



전의경들이 청계광장 가서 정리하라고 비켜주니까 사람들이 다 안심하고 횡단보도 건너서 가는데

갑자기 시청 광장에 전의경들이 막 뛰어다녔다.
난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정리하고 해산한대니까 전의경 몇 부대를 돌려보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시위 대오를 2~3 조각으로 나누면서 전의경들이 줄을 맞춰 사람들을 포위했다.

한 50명 정도가 고립된 곳이 있었고, 달랑 5~6명만 갇혀 있는 곳이 있었고, 나머지는 다 밖에 있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바깥이었는데

시청광장 앞에 있는 무대 위에 50여 명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평화시위 보장하라, 그러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에워싸고 있는 전의경들 주변에서 항의를 하고 있었다.

시청광장 잔디 위, 그리고 인도에 있던 사람들을 이렇게 가둬놓는 이유가 뭐냐, 평화시위 보장하라...

남대문경찰서장이란 사람이 기자들 나오라고 그러고, 밖에서 항의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기자들 나오지 말라고 나오면 연행할 거라고 하고... 여하간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무대 위에서 촛불들고 서 있던 사람들을 전의경이 갑자기 포위했다.

도대체 200명 정도 사람들한테 전의경만 몇 부대가 투입된 건지 모르겠다. 내가 본 것만 족히 1000명은 되어보였다.

거기서도 난리가 난 마당에-

전의경들이 사람들을 포위하고 연행해가려고 하는 곳 주변에서도 또 무슨 소란이 일어나서 막 가보니까

전의경들이 포위망 바깥에서 있던 사람들 중에 청소년 세 명을 포위망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한 명은 구했는데 다른 두 명이 끌려 들어갔다. ㅠ

끌려간 두 명이 아는 사이였기에, 정말 막 분해서 눈물이 났다.

무대를 포위했던 전의경들은 포위망을 풀고 갔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연행이 되었다.

오늘 하루만 연행자가 110명이 넘는다고 한다.

하루하루 연행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위도 계속되고 참가하는 사람들은 줄지 않는다.

나는 연행된 청소년 분들 관련해서 변호인 알아보기라거나 등등을 하다가, 그리고 시청역에서 자유발언 및 토론을 사람들이 계속 하는 걸 보고 듣다가,

지금에야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비를 많이 맞았다.

내일은 초곰 쉬면서 전단지나 만들어야겠다 -_-



이 땅의 민주주의가 죽었다고들 하지만

뭐 사실 경찰은 예전부터 이런 식이었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맨날 이런 식의 경찰들과 맞부딪쳐왔다.

어차피 민주주의는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고

지금 좀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공현
걸어가는꿈2008.05.25 12:03

  시위를 '진압'한답시고 경찰에서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37명을 연행해갔다. 그게 새벽의 일이다.
  나는 아침 8시반에 일어나서, 5시부터 2통이나 와있는 문자를 보며, 그리고 인권활동가들의 메일링으로 와 있는 긴급 소식을 보며, "이게 무슨 소리지?"하며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아마 오늘내일이 기점일 것이다.
  1987년 6월 혁명이 가져온 절차적 민주주의와 최소한의 국민주권을 부정하려는 명백한 '반혁명'(6월 혁명에 대한 '반')에 대한 반동이 가능할지, 가능하지 않을지는 오늘내일을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지나치게 서둘렀다.
자신들이 받은 지지율이 '반사이익'에 가깝다는 것,
그리고 제도권 정치에 대한 불신과 먹고 살기 바쁜 데서 온, 낮은 투표율과 정치적 무관심의 혜택을 입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건지 어떤지-

적어도 87년 이후로, 혹은 김영삼 정부(김영삼 정부는 민주정부로 칠 수 없고 0.5로 쳐야 한다고 하지만) 이후로 조금씩 이어져 온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정치문화, 사회구조들을 정권교체 직후에 너무 빠르게, 노골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6월 혁명에 대한 반혁명이다.

(* 그러나 87년 하반기 노동자 대투쟁에 대한 반혁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87년 노동자 투쟁에 대한 반혁명은 이미 신자유주의화, 비정규직 증가, 외환위기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만일 사람들이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들을 접하고 거기에 분노를 느껴서 더 많이 거리로 나온다면,
우리는 아마도 최소한의 민주주의와 최소한의 국민주권을 부정하려는 반혁명을 몰락시키는 역사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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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쉬움은,
이런 상황이 4월 총선 이전에만 있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역시 선거는 인민의 뜻이 제도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한 차례 걸러내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다.

설령 이명박 대통령이 하야하더라도 국회의 절대 과반은 한나라당(+친박연대+자유선진당)이다.

이런 뷁.

결국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하야시킨 다음에는 한나라당이 장악한 국회랑 싸워야 하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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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상황을 예측할 수 없다.

과연 이것이 '반동'에 맞서서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쌓아온 기만적이지만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체제를 '지키는' 것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민주주의까지 나아갈 것인지
혹은 거기에도 미치지 못하고 단지 한나라당 정권을 어렵게 만들고 견제하는 데 그칠 것인지

 
난 이미 이 운동이 자본주의적 축산업 구조라거나, 교육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개혁(정책의 하나로 대학평준화 등을 포함한)이라거나 그런 데까지 나아갈 거라는 기대는 거의 버렸다.
이 흐름은 그것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차라리 나는 여기에서 국민소환제나 집시법 개정을 기대하겠다. (대통령 사퇴는 보너스로)


그럼, 나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Posted by 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