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라는낙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9.09 '실태조사'라는 사업 방식에 대한 단상
  2. 2008.04.14 아동기의 신화 속에는 무언가가 있다 (by 조주은)
걸어가는꿈2009. 9. 9. 00:50


    어머니 급식당번 제도가 부당하다는 문제 제기에 관심을 보이는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를 하면 마지막으로 꼭 요구하는 사항이 있다. "지금 현재 여전히 강제적으로 급식당번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학교가 어디입니까? 그 학교를 밝혀주십시오. 학교급식 실태를 모니터링한 자료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어머니 급식당번 제도를 폐지한 이후의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나는 이러한 당혹스러운 질문을 접할 때마다 현재 사회운동이 얼마나 NGO의 역할을 넘어서는 위태로운 경계에 있는가를 실감한다. 현재 시민 단체들은 (프로젝트 형식으로 설문 조사를 하고, 통계자료를 만들고, 정책 대안을 모색하며) 정부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대행하고 있다. 그 일들은 돈을 받지 않는다 해도 국가가 해야 할 업무를 나서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NGO의 역할이란 가령 화재가 나서 피해를 입기 쉬운 곳이 있다면 그 위기 상황을 알리고 공론화시켜 국가가 이후 소방 대책을 정확히 세울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업무인 소방 대책까지 NGO에서 세우고 있는 것이다. 소방 대책까지 마련할 수 있는 사람만이 화재 신고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NGO가 국가 업무까지 대신하다 보니, 그 안에는 작은 국가 공무원 조직을 능가하는 유능한 인력과 더불어 그 인원이 활동할 넓은 공간도 필요하게 된다. 넓은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려면 사무실 관리비용과 활동가들 인건비에 대한 부담도 늘어나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재정 사업이 주요 사업의 일부를 차지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중략)...

     그리고 어머니 급식당번 폐지를 위한 모임은 학교 실태 파악이나 일상적인 감시 감독 같은 다양한 사업을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일들은 국가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조주은(2007).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pp.40-42에서.
1장 비난과 낙인의 피해의식. #05 경계를 가로지르는 운동을 둘러싼 고민과 실천.





저는 예전부터 설문조사, 실태조사, 의견조사, 이런 거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고, 제가 활동하는 단체들 안에서 누누히 말해온 적이 있습니다.

일단은 여기 인용한 조주은 씨의 글과 같은 이유가 가장 크지요.

사실 교육정책을 시행하면서, 그리고 학생들의 현재 인권 상황에 대해서 먼저 점검하고 실태를 조사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은 정부입니다. 그런데 그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행한다는 게 기분이 나쁜 것도 있구요.(사례 수집 정도라면 신고를 받고 대응하면서 할 수 있겠지만,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선다, 라는 게 말이죠.)

그리고 이 양적 조사 사업이라는 게 돈이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갑니다. 설문지 인쇄하고, 보내고, 수합하고, 코딩하고, 값입력하고, 분석하고...
(질적 조사도 능동적으로 긴 시간 하게 되면 돈 많이 드는 건 똑같지만요)

아수나로처럼 돈도 없고 일손도 없는 단체에게 어울리는 사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설문조사나 의견조사를 해서 그걸 발표하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건 뭐랄까요-
"우리는 대중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의 운동이잖아요?
근데 영 그런 건 성격에 안 맞아서 -_-;;;
그냥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 우리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이야기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게 청소년인권운동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구요.

그런 우리의 생각들이 얼마나 잘 전달되게 적절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야 뭐 있지만요.

설문조사를 해서 뭐 지금 청소년들이 가장 바꾸고 싶어하는 문제는 이거다... 라는 식으로 발표하는 운동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솔직히.
단 한 사람이라도 인권침해에 문제제기한다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그런 방식의 운동이 청소년들을 설문조사나 의견조사에 답하는 것 정도로 의사표현하는 존재로 만든다는 생각도 있고.






사실 지금 제가 맡아서 하고 있는 실태조사 사업은 좀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제안한 거지만;)
2006년 이후로 사실 학생인권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진 적이라고는 전교조 지부 등에서 지역적으로 소규모로 조사한 것밖에 없고...(수도권에서 광범위하게 참교육연구소가 시행한 학생인권 실태조사도 2006년이더라구요?)

지금 시점에서 학생인권 상황이 어떤가 궁금하긴 한데
그리고 이게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에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궁금한데
그걸 조사해주는 곳이 아무데도 없잖아요.
교육부나 교육청이 해줄 것 같지도 않고.... 뷁뷁
희망에서도 사실 학생의 날 맞아서 제일 바라는 게 뭐냐, 이 정도로만 조사하지 학생인권 실태 전반을 알아본단 식으로는 조사를 잘 안하니까.

또, 2006년에 교육전략21인가 하는 데서 인권위 프로젝트 받아서 조사한 조사는
대체 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체벌을 경험한 학생이 6%밖에 없다고 나오고.(이게 가능한 수치인지 -_-;;;)
조사 항목 같은 것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뭐 교칙 전반에 대한 수용 정도나 징계 방식에 대한 의견이나 그런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대표적인 학생인권 침해라고 꼽히는 것들에 대해 꼼꼼하고 명확하게 질문을 제대로 안했더라구요.


어쨌건, 그래서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정부가 도저히 하지를 않고, 그렇다고 다른 데서 제대로 해주는 곳도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

뭐 학자-연구자적 느낌으로 접근하면 재미있게 분석하고 보고서 써볼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건 손이 많이 가는 실태조사 진행하면서 그냥 투덜투덜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흘러들어온꿈2008. 4. 14. 02:01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조주은) 책 3장 중에서 발췌

 

(청소년인권운동 같이 하는 청소년들과 보려고 타이핑했습니다 헥헥; 혹시 저작권에 문제가 되어서 출판사나 저자가 문제제기를 하면 삭제하겠습니다.)

 




아동기의 신화 속에는 무언가가 있다

      2003년, 대학 캠퍼스 구석구석에는 이라크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는 대자보가 나붙고, 인터넷 공간 곳곳에는 전쟁에 관한 토론방과 사진, 동영상들이 넘쳐났다.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 대자보에는 병원에서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거나 고통으로 울부짖는 이라크 어린아이의 사진들이 있었다. 전쟁의 폭력과 참상을 알리는 대자보 가운데 사람들을 가장 많이 모이게 했던 것은 피해 받은 어린아이들을 전시한 사진전이었다. 전쟁의 공포와 육체적인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라크 어린아이의 울음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스멀스멀 궁금증이 일었다. 이라크전의 피해자 중에는 여러 민간인이 있을 텐데, 왜 우리는 장애인이나 노인보다 어린이가 받는 고통에 더 민감한 걸까? 그리고 왜 그것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는 것일까?

     이것은 근대화와 산업자본주의의 싹이 트면서 부각되기 시작한 아동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관련이 있다. 16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동, 어린이 같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어린이를 위해 고안된 장난감이나 특별한 이론들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작은 어른이었고 그렇게 다루어졌다.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어 계급이 분화되기 시작하면서 아동에 대한 이론과 상품이 쏟아졌다. 아동 관련 서적들의 모든 전제, ‘어릴 때 결정된다’류의 이론들과 그것을 자극하는 상품들이 그것이다. 몇 세 때 지능이 완성되고 몇 세 때 인격 형성이 마무리된다는 이론들은 결국 아이와 관련된 모든 문제와 책임을 이 시기에 아이와 함께 보내지 못한 어머니들에게 전가시킨다. 만약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못하거나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면, 혹은 지나친 말썽쟁이가 된다면, 그에 대한 일차적인 원인은 어린 시기에 아이와 함께 집에 머물면서 적절한 자극과 애정어린 보살핌을 주지 못했다고 간주되는 어머니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게다가 완벽한 아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의모든 어머니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반성 중이다.

     어린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특별하고 섬세한 보호와 훈육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아동기의 신화는 일하는 기혼 여성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여성들은 ‘제일 중요한 시기에 애하고 같이 있어줘야 할 것 같아서’ 입덧 때문에 정류장마다 내려 구토하면서도 견디며 직장을 계속 다녔건만 출산 후 기어이 사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아동기 신화는 일터와 삶의 공간이 분리되면서 가정에 남게 된 중간계급 여성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다.



근대의 제왕으로 등장한 어린이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각별한 보호와 애정의 대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안의 심각성과 폭력성을 ‘피해 받는 어린이’를 통해 가장 절실히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아내 구타의 심각성을 알릴 때 순진무구한 자녀가 받게 될 악영향을 이야기하고,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을 때 ‘단결 투쟁’이라는 네 글자를 빨간 머리띠로 두른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이 그렇다. 따라서 이라크 전의 경우에도 이에 반대하는 논리로 힘의 정치니 신자유주의 세계화니 군수 자본가 따위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전시 상황에서 고통받는 소녀, 병원에서 붕대를 감고 고통스럽게 젖을 빠는 어린아이의 사진 한 장이면 반전 시위장으로 뛰어들 수 있을 정도로 어린아이의 위치는 특별하다.

     착취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자본주의사회에서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고, 보호받을 필요가 있으며, 연약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라는 언표의 이면에는 ‘그토록 귀한 이를 지켜냐애 할 누군가’가 있다. 이때 특히 소중한 존재가 아이일 때는 사회와 국가의 책임보다 가족의 개별 책임, 그(부모) 중에서도 콕 집어 어머니(여성)의 책임이 강조된다. 백지와 같은 어린아이를 일차적으로 보호하고 지켜야 할 존재는 여성, 어머니라는 모성 이데올로기는 사회 곳곳을 관통하고 있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과도한 밀착은 기혼 여성들이 노동자로서 정체성을 갖는 데 혼란을 초래한다. 기혼 여성이 자아 성취 욕구 때문에 어린 자녀를 떼어놓고 일하면 이기적인 엄마로 비난받지만, 갓난아이의 병원비 마련 등 어머니 노릇을 위해 노동을 하면 감동적인 일로 칭송받는다.

   

아동기에 대한 새 개념이 아이와 어머니 모두 해방시킨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아이들이 먹을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는 온갖 이유들로 아이들 일상에 넘치는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이 넘치는 관심도 아이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적인 관심 아닐까? 장애인, 어르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비장애인 성인 남녀도 좋은 먹거리를 먹으며 우리 사회의 애정 어린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은가? ‘아동에 대한 각별한 보호와 투자를 해야 한다’는 논리 뒤에는 ‘아이들은 다음 세대를 책임져 나간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아이들은 미래의 일꾼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좋은 음식을 먹고 훌륭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비장애인 중심주의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장애 아동을 다시 배제시킬 위험성을 품고 있다. 더불어 어린이에 대해 과도한 보호와 애정을 강조하는 일은 어머니들로 하여금 불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할 수 있고, 그런 보살핌을 받는 아동의 삶 또한 행복하다고만 할 순 없다. 아동기의 신화를 활용해 “내 아이는 달라요”라는 기치를 내거는 유아용품들은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에게 선택을 둘러싼 갈등을 안겨주는가?


     나는 이라크전과 한국군 파병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만 “단지 그곳에 어린이가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 현장에 있는 어런이는 전쟁 반대의 다양한 이유 중 하나가 되지만, 그 논리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또 다른 착취를 빚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아동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아동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동기의 발명으로 아이와 어른의 세계가 분리되었지만, 아동이 어른의 세계에 통합된다면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훌륭한 아이란 누가 어떤 기준에 의해 정한 것인가? 공부 잘하고 예의 바르다는 것이 좋은 교육을 받았다는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 것인가? 좋은 어머니란 어떤 어머니인가? 좋은 아버지는 어떠해야 하는가? 아동(기)에 대한 정의는 변화하고 있는 시대 현실을 반영하여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새롭게 내려져야 한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