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7. 1. 10. 13:24

『맛집폭격』 : 맛집 묘사 건너, 전쟁을 묻다



 



《맛집폭격》 (배명훈, 북하우스, 2014)

주의 : 책에 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맛집폭격》의 첫 장을 열면 인도 요리에 대한 묘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 뒤에는 스페인 음식 차례다. 그 다음은 또 터키 음식……. 이 소설은 곳곳에서, 특히 전반부에 이런 묘사가 등장한다. 읽다보니 배가 고파지고 군침이 고일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여기에 등장하는 맛집들은 모두 실제로 있는 식당들이기 때문에, 당장 찾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맛집’보다는 ‘폭격’ 쪽이다. 맛집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에 반응하는 위장을 달래면서 책을 읽어나가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파괴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의 주제의식은 전쟁이다. 사실 배명훈은 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는 여러 작품들에서 확인된다.


(나는 배명훈이 밀덕이 아닐까 생각하고, 실제로 배명훈은 ‘밀덕’에 관련된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러나 배명훈의 관심은 아무래도 군대나 전쟁 무기보다는, 국가와 전쟁의 정치학·사회학·철학적 의미를 향해 있는 것 같다.)


《맛집폭격》은 배명훈의 주 장르로 알려진 SF라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배명훈스러운 작품이기는 하다. 책을 읽다보면 배명훈의 다른 작품(리바이어던이나 예비군로봇 등)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전쟁이나 국가에 대한 고찰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맛집폭격》 속에서 대한민국은 먼 나라와 미사일 폭격을 주고받는 사실상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것이 ‘전쟁’임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전쟁은 대한민국 군대에 의해 수행되는 게 아니라, 국제적 군사무기업체에 미사일 발사를 ‘외주’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배명훈이 《맛집폭격》에서 그리는 전쟁은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적이다. 전시와 평시의 구분은 흐릿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전쟁을 통제하기가 어려워진다. 배명훈은 이를 근대 국가의 유래를 언급하며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전쟁이 나고 공습경보가 울리면 뭔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공습경보가 울려도 대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치가 보여서였다. 미사일이 하필 거기에 떨어질 가능성은 아직 그렇게 높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것은 퇴근 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못하는 이유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전쟁은 그렇게 일상과 겹쳐졌다.
 전시와 평시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전시가 되면 평시라는 이름이 붙은 시공간에 뭔가 본질적인 변화가 생길 거라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평시를 위해 만들어진 정부조직이나 행정기구나 금융체계가 같은 것들이 전시가 되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신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애초에 국가가 전시 태생이기 때문이었다. 평시 조직을 전시에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전시 조직을 평시에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86쪽)




‘정부’의 입장에서…

주인공 이민소는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 속해 있다. ‘에스컬레이션’은 점증(漸增)을 뜻한다. 이 경우에는 전쟁에서 서로가 군비경쟁을 하고, 주전론과 적대감이 강화되고, 서로 더 강한 타격을 가하며 전쟁이 격화되는 것을 뜻한다. 즉 확전(擴戰)이다.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무분별한 확전을 막고 서로의 가해/피해를 관리하기 위해서 피해 정도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적절한 대응 수위를 결정하는 기구이다. 책 속에서 이민소는 클라우제비츠가 ‘정부’, ‘군부’, ‘국민’으로 국가의 전쟁 관련 요소를 나누어서 본 것을 소개하면서,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정부’의 입장에서 전쟁을 관리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여기서 ‘정부’의 입장이란 현실의 정부라기보다는 이상적인, 국가의 자원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치적 기구의 위치를 뜻한다.

 “클라우제비츠 책에 나오는 절대전쟁은 그런 거야. 뉴턴 물리학에 나오는 마찰이 없는 상태 같은 거. 움직이는 물체를 가만 놔두면 어떻게 되겠느냐, 전쟁이라는 걸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되겠느냐, 뭐 그런 거지. 그렇게 내버려두면 무제한적인 폭력성 같은 게 튀어나오게 되는데, 그걸 이끌어낼 수 있는 건 국민들이라는 거야. …… 그래서 그렇게 되기 전에, 정부가 합목적성을 가지고 상황을 하나하나 따지는 편이 안전하다고. 돈 세듯이.”(139쪽)

 “우리 보고서 서론에 쓴 이야기 있잖아. 클라우제비츠 책에 나오는 정부랑 군대랑 국민 이야기.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는 그 셋 중 정부 입장에 설 거라는 거. ……” (183쪽)

이야기는 이민소가 자신이 알고 있는 ‘맛집들’이 연속적으로 폭격을 당하고 있음을 눈치 채는 데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맛집들은 죽었다고 알고 있는 과거의 연애 상대 송민아리가 이민소에게 소개해줘서 함께 갔던 곳들이었다. 송민아리와 이민소는 과거 국제적 군사 무기업체에서 함께 일했는데, 송민아리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민소는 송민아리가 사실은 살아있으며 대한민국과 모국가 사이의 전쟁에서 미사일 발사를 위탁받은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며, 이민소와 송민아리의 맛집이 연달아 폭격당하는 것에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른다.


전쟁만 하면 맛집은 언제 가나


소설의 결말부를 미리 말하자면, ‘군부’가 미사일 업체와 협의하여 폭격을 조종해가며 확전을 의도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 목표는 전쟁을 통해 군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사일 개발 등 군비강화에 관한 규제들을 약화·해제시키는 것이었다. 이민소는 이런 내용을 보고서에 담고 전쟁 상대인 모국가의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도 전달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그쪽은 그 정보를 가지고 뭘 좀 해볼 수 있을까요?”
 “글쎄, 그래도 거기는 우리보다 선진국이니까.”
 “선진국이라. 그게 뭘까요? 요즘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이게 공개되면 세상이 발칵 뒤집히겠다 싶은 게 공개되면 정말로 발칵 뒤집혀주는 세상. 그 위에 세운 나라. 그런 거?”
 “연약한 나라네요.”
 “나약한 나라지. 우리처럼 강인한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184쪽)



이민소는 이를 알게 되어서 폭격의 목표로 노려지게 된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이민소와 같이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에서 일하던 윤희나의 도움으로 지하 벙커로 숨는다. 하지만 결국 에스컬레이션 위원회의 진상 규명 노력에도, 확전은 막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군부’의 관점에 ‘정부’의 관점은 패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은 지하벙커에 숨어 있던 이민소와 윤희나가 거대한 폭발 소리와 정적을 들으면서 끝난다. 핵폭탄이었을까 의문을 느끼면서도 이민소와 윤희나는 벙커 문을 열고 상황을 확인하는 것을 미뤄둔다. 그리고 요리를 하기 위해 양파를 썬다. 조리를 위한 전기도 가스도 모두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이민소가 눈물을 흘리며 양파를 써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사라져버린 맛집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요리’가 불가능해진 상황으로 끝을 맺는, 그 대비가 전쟁으로 사라진 일상생활을 상징하는 듯하다.


《맛집폭격》의 메시지는 그래서 다분히 반전주의적으로 다가온다. 이민소나 윤희나는 딱히 반전평화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은 단지 정부의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활동은 결국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각자 추구하는 ‘군부’와 ‘기업’(국제 군사무기업체)의 무책임한 폭주는 전쟁을 폭주시켜 멸망에 이르게 한다. 결국 어느 선을 넘어선 때부터는 전쟁 ― 갈등의 대립과 주고받는 폭력 ― 은 통제 불가능해질 거라는 작가의 비관적 예상이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쯤에서 나는, 2016년의 영화를 꼽는다면 후보로 오르기에 손색이 없는 〈우리들〉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어째서 자신을 때리고 다치게 한 아이에게 너도 같이 때리지 않느냐고 묻는 누나 선에게 윤은 답한다. “계속 때리기만 해? 그럼 언제 놀아? 난 놀고 싶은데.” 그렇다. 전쟁만 하면 언제 맛집을 가겠는가.


나는 《맛집폭격》을, 전쟁의 참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쟁 전의 맛집과 추억을 묘사하고 전쟁과 국가와 사회에 대한 건조한 고찰과 전쟁을 관리하려는 정부 공무원의 노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쓴 반전 소설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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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3. 9. 29. 10:37

http://www.ohchr.org/EN/NewsEvents/Pages/DisplayNews.aspx?NewsID=13797&LangID=E






1. 어제인 9월 27일 유엔 인권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양심적 병역거부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에서 유래하는 권리이며, 모든 정부는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결의했네요.
2. 재미있는건 이 만장일치에 한국 정부도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표결 전에 한국은 징병제이며 법으로 인정하기 않기 때문에 이 결의를 온전하게 지지하기는 어렵지만 결의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며 찬성한다는..
3. 이 소식을 전했던 메일은 이렇게 끝나네요.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 없이 평화로운 사회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 It is not possible to live in a peaceful society without the recognition of our right to be a conscientious objector to military service.
5. 이 결의 과정에서 한국정부의 유체이탈 화법이 독특한데, 사실 전세계 병역거부 수감자의 90%가 대한민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을 위한 결의안이라고도 할 수 있는죠. 이걸 실행할 수는 없지만 찬성은 하겠다는 말은, 외교적 수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네요.
6. 유엔 인권이사회 병역거부 인정 결의안(A/HRC/24/L.23) 중 흥미로운 점이, 분쟁 이후의 사회에서 병역거부 권리가 인정되는 것은 "평화정착"의 과정(as part of post-conflict peacebuilding)으로 본다는 점.
7. 병역거부는 전쟁 시기에, 전쟁 직후에 더욱 많아집니다. 전쟁의 참상, 그 속에서 강요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절감하기 때문. 전쟁이 끝난 후에, 더 이상 싸우기 싫다고 하는 이들을, 그 감정을 '권리'로서 보호하는 것. 이걸 평화라고 본 것입니다.
8. 전쟁이 끝난 후에, 그 전쟁 상대를 증오하며 더 많은 군대, 더 많은 무기를 갈구하고 이것에 반대하는 가진 이들을 적이라 낙인 찍는 사회는 아직도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닌 거죠. 맞습니다. 한국사회의 이야기입니다.






병역거부자이고 병역거부와 평화운동 등으로 논문 쓰셨던 임재성 씨 트윗 twitter.com/@beindp 에서 인용합니다.


관련 기사는 아직 못 찾겠군요.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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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1. 2. 4. 01:49


예전에 한 두달 전에 전쟁없는세상에서 써달라고 해서 쓴 글.
거기 소식지가 나온 후에 뒤늦게 올립니다.




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살




  내 나이도 어느새 20대 중반. 스물하고도 세살이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볼 때마다 군대는 언제 가느냐 혹은 어떻게 하느냐 라고 묻곤 한다. 심지어 청소년인권에 관한 강연을 나가도 그런 질문이 꼭 한 번씩 들어온다. 좀 떨떠름해하면서도 아마도 병역거부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반응은 삼분된다. “용감하다”, “대단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무리 그래도 징역 사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고 하며 걱정하고 다른 대체복무를 찾아보라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 부류는 병역거부가 뭔지도 잘 몰라서 “군대 안 갈 수도 있어요?”라거나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데?”라고 묻는 사람들(주로 군대 문제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라거나)이다.


병역거부의 불이익?

  나는 용감하다고 말하는 분들이나 걱정하는 분들에게는 “군대에서 2년이나 감옥에서 1년 6개월이나… 징역이나 징병이나 뭐 비슷하지 않겠어요?”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농담이나 위안이 아니라 진담이다. 병역거부가 나한테 그렇게 큰 불이익이나 피해가 될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징역에는 휴가가 없다는 것, 그리고 전과자가 된다는 게 문제일 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뭐 일반적인 기업에 취직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국가공무원이라거나 변호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병역거부 경력이 그렇게 결격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병역 미필의 전과자는 기피할 테니 좀 어려울 듯한데, 병역거부를 하기 전에 그런 문제에 관해서 운동을 미리미리 해둬서 좀 바꿔둬야 할지 어떨지 고민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 운동 같은 것에 좀 짬이 나면 해볼 텐데. 모든 병역거부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나처럼 병역거부가 그 이후의 삶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삶을 설계하고 있던 사람에게는, 병역거부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약간은 가벼운 문제로 느껴진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반대의 문제이다. 내가 지금의 신념과 생각대로 병역거부를 하고 징역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그 이후에 오히려 걱정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병역거부가 일종의 훈장이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하고 있는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든 다른 사회운동을 하든, 아니면 작가가 되든, 병역거부라는 나의 부가속성을 ‘팔고’ 싶은 욕망이 계속 따라다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병역거부를 하겠다고 한 내 말을 여러 차례 들었던 부모님이 (이미 설득하는 건 포기하심) “그런 게 니가 하는 운동 뭐 그런 거에서는 명예로운 일이니?”라고 물어보셨다.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나는 그런 것이 특별하게 명예로운 일로 대접받지는 않는 운동이 건강한 운동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전과자라고 하니까 생각난 게, 어차피 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관련해서 광화문 거리 인도에서 3분간 멈춰있는 플래시몹을 하다가 청소년이 체포되는 것에 저항해서 공무집행방해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일단 경찰의 체포가 부적법했다고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도 유죄가 나오지 않을까 싶고 그러면 나는 어차피 전과자다. 이명박 정부에서 인권운동한다는 게 다 이렇지 뭐 싶기도 하고, 어차피 빨간 줄 그은 거 병역거부도 좀 부담이 적겠군 싶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려나?



인생의 터닝포인트

  쨌든 요즘은 병역거부 문제를 생각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병역거부가 그냥 군대의 문제가 아니라 군대 대학 생계 3가지 문제가 엮여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자퇴하고 병역거부를 하고 싶어 하는 나와 대학은 졸업하고 병역거부를 하라는 부모 사이의 갈등이고, 좀 더 자세하게 보면 대학과 군대에 매여서 단체 상근이든 뭐든 자유롭게 하지도 못하고 독자적으로 경제력을 갖추지도 못하고 있는 꼬인 상황의 매듭을 어떻게 풀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래도 병역거부는 받아들이신다니 좋은 부모님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병역거부는 네 뜻대로 하게 해줬으니 대학은 우리 뜻대로”라는 식으로 내 삶을 가지고 흥정을 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만 하다. 대학과 군대를 따로 떼어놓고 풀 수 있으면 더 쉬우련만, 이미 나이가 차버린 나는 대학을 그만두거나 졸업하는 즉시 병역거부의 결단을 내려야 하니까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당장 뭔가 경제력이 있으면 부모님과 싸워서라도 마음대로 해버릴 텐데 경제력이 생기려면 대학과 군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니 아놔 이거 어쩌란 건지.

  올해 들어서는 돈도 없고 갑갑한 마음에 “아 씨발 답이 안 보이는데 그냥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며 한두 번 자살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살면서 못 먹어본 게 많고 애인도 있고 청소년운동에서도 할 일이 많고 등등의 변명을 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병역거부를 대체 ‘언제’ 할 것이고 대학은 어떻게 하고 할 것이냐 등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 이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내 나이는 스물하고 세 살이고,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에야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그런 게 좀 구체적으로 보일 것 같다. 그래서 병역거부는 내 인생 설계에서 일종의 터닝포인트로 설정되어 있다. 총총.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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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다

    총총. 별총총.

    2011.02.05 23:22 [ ADDR : EDIT/ DEL : REPLY ]
  2. 용용

    훈장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게 너무 와닿아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운동 외에는 다른 걸 보지도 않았고 보려하지도 않았고 이 활동-인권옹호,라고 해야하나-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인권활동가들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이나 입시거부, 병역거부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움이나 응원같은 감정보다도 멋지다, 부럽다는 마음이 앞섰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도 그런 마음이 다 사라지진 않았어요. 아직까지 검정고시를 볼 필요성을 못느낀다는 이유로 안보고 있지만, 그 안에는 '나는 너희들과 같아지기 싫어'라는 우월해지고 싶은 감정도 분명 있는 것 같거든요.. 아직 모르겠어요 내 진심이 뭔지 뭐가 맞고 틀린건지. 내가 뭔지 모르겠어요.

    우연히 들어왔다가 글 잘보고 가요 공현. 총총.

    2011.04.06 01:39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