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2014. 1. 4. 23:24



1. 우선 영화는 약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법정 드라마 요소를 기대하고 보는 관객으로선 실망스러울 거라고 생각.

물론 당시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이긴 한데... 재판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을 끊임없이 다루는 방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공도 변호인으로서 변론을 하기보다는 격앙된 분노를 보여주는 데 장면을 주로 할애한다.


80년대 남한의 인권 문제를 환기시키려는, 남영동 같은 의도라면 성공적인 편인데...


영화로서의 재미는 다소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예컨대 내부고발을 감행하는 과정이나 그 인물을 법정에 불러오기까지의 과정도 감동적으로 또는 스릴 있게 그리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함.


그래서 볼 만한 영화이긴 한데,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돈을 버는 데만 집중하고 사회에 보수적으로 순응하며 살던 주인공이 다르게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





2. 다음으로 정치적으로 불편한 점.

  아 노무현 어쩌구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이 영화에서 결국 대학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야학을 하던 학생들은 계속해서 불쌍한 피해자로만 묘사가 된다.

결국 영화가 마무리를 송우석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서, 송우석이 87년에 추도집회를 선도하고, 그 과정에서 법정에 서는 것으로 끝냄으로써 영화는 학생들을 송우석의 변화의 계기로 수단으로 삼고 지나갈 뿐이다.

실제로 부림사건 피고인들은 그런 불쌍하고 억울한 피해자로만 있던 게 아니라 민주화운동, 사회운동 등에 일정하게 기여하고 활동을 했던 주체들이 많았다. 그러나 '변호인'과 '국가폭력'을 강조하다보니까 영화는 피고인들을 긴장감 없는 불쌍하고 무력하고 무고한 존재로만 그리고 있다.


특히나 이 영화는 "법조인이라면 그래야 한다"라는 식으로 일종의 '엘리트의식'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가끔씩 시민혁명을 이야기하지만, 영화의 흐름 속에서 이 시민이란 지식인-법조인 엘리트가 되고 만다.

시대와 불의한 권력 때문에 자기 피고인을 지키지 못한 '변호인'이,

자기가 변호했던 사람 곁에서 함께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주고 앞장서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뭐, 재판 과정에선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예를 들어 출소 후에 그 학생들과 송우석이 무언가 같이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식의 마무리가 있었다면 그런 면이 희석되었을 텐데.


끝내, 그 불의한 권력을 뒤엎은 사람이 그래서 변호사들이었던가? 송우석이었던가? 노무현이었던가? 6월항쟁의 주역은 누구였던가? -- 이런 역사관에 연관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변호인 한 개인의 모습, 순응적으로 살다가 시대 앞에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던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굳이 그런 엘리트주의적 역사관으로 끝을 맺어야 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시민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흘러들어온꿈2008. 6. 2. 05:38
지금 87년 6월 항쟁에 대해 과제 때문에 조사 중입니다.
조사 중에 최근의 시위에 관해 참고할 만한 글을 발견해서 올려둡니다.

먼저, 경찰력을 마비시키려면 독하게, 질기게, 길게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래는 6월항쟁 인터넷 기념 페이지에 있는 87년 6.26 평화대행진을 기록한 글 중 일부입니다.




전국 50개가 넘는 지역에서 150만 인파가 거리를 넘쳐흘렀다. 전국 34개 지역에 6만 전투
경찰이 전국 43개 지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당시 경찰은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잦은 전국적인 시위로 최루탄 재고가 바닥나 있었던 점이다. 건조 과정을 거치지 못한 쓸
모없는 최루탄조차 생산이 달렸다고 한다. 또 하나는 무더운 날씨와 장기간의 시위진압
작전으로 경찰들의 체력 또한 바닥나 있었다.
민통련 간부들은 가두시위의 베테랑들이었는데, 가두시위에서 시위대와 맞선 경찰의
취약점을 찾아냈다. 경찰은 앞에는 하급자들이 서고 뒷줄에는 상급자들이 배치되기 때문
에, 항상 병력의 후면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정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자,
학생들은 거꾸로 기동대의 후면을 치고 빠지는 전술을 채택했다. 게다가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뛰는 학생과 중무장한 경찰의 기동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명준은 석동일의 자가용을 타고 함께 시위현장을 두루 살펴보았다. 석동일은 모 일
간지 사진기자로 있던 동생의 보도완장과 깃발, 표시판을 차에 붙이고 길 한가운데로 질
주했다.
국민운동본부의 주력들은 동대문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지만 이명준은 서울시내 전역
을 고루 살펴볼 수 있었다. 치고 빠지는 시위대와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들 속에서 경찰은
무력화되고 있었다. 마침내는 시위대가 경찰을 무장해제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해찬은 무장해제되는 경찰을 학생들이 때리지 못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할 지경이
었다.
전두환 정권에게는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군대를 동원하거나 무조건 항복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비상조치로 군을 동원하면 일시적 진압은 가능할 몰라도 사태는 돌이
킬 수 없다고 판단한 전두환 정권은 6∙29선언이라는 위장된 항복카드를 뽑아들었다.
6∙29선언은 기만적인 사기극이었으나, 직선제를 얻었다고 만족한 정치권은 이미 선
거로 달려가고 있었고, 전국을 뒤끓었던 투쟁의 열기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의 길’은 그렇게 열리고 있었고, 7월 노동자투쟁은 따로
마련되고 있었다.

----------------------------------------------------------------------

그리고 시위는 동시다발로 여러 곳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5월 31일 밤에 보니까 막 전북에서 올라와서 '전북도민여러분'어쩌구 하는 플래카드를 그대로 건 닭장차도 있더군요. 여러 지역에서, 그리고 서울에서는 여러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진행해야 경찰을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래도 같은 글 중에 일부입니다.


최저의 행동강령수준은 쉽게 합의되었다. 불끄기, 경적, 종 치기1) 등 큰 이의 없이 합의
되었다. 86년 필리핀의 2월혁명과 국내 신민당 개헌현판식 때의 시민 참여를 고려하여
쉽게 정리되었다.
전국동시다발도 쉽게 합의되었다. 이해찬은 87년 2∙7대회와 3∙3대회의 경험과 함께
정보과 경찰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흘려들은 정보를 정리하여 설명했다.

“시위를 막는 데 동원되는 경찰기동대는 3~4만이다. 이 기동대를 서울에 집중시키면 안 된다.
2∙7 때 세종로에서 집회를 하려다 기동대에 봉쇄당하자 시위는 막혀버렸다. 물리적으로 한 지역
에 집중하는 시위로는 경찰 병력을 뚫을 수 없다. 그래서 3∙3대회 때는 시위 전략을 전환시켜 동
시다발적 거점시위로 경찰 병력을 분산시켜 성공을 거두었다. 따라서 6월항쟁은 전국동시다발로
전국적인 거점을 마련하면 경찰 병력이 이동을 못 한다. 작은 시 단위, 예를 들어 천안, 안동처럼
시 단위 대학이 있는 곳은 시위가 벌어지면 최소한 1개 편제 480명을 묶어둘 수 있다. 이 전략으
로 대학이 있는 곳은 모두 시위에 참가하면‘시’자가 붙은 곳은 최소 5백 명~1천5백 명의 경찰
병력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이동을 하지 못한다. 지방으로 경찰 병력이 분산되어 서울은 2만 명이
넘지 못하게 한다. 160명 단위로 1개 중대가 편성되고, 3개 중대 480명이 1개 편제로 된다. 이 기
본편대 70개, 총 3만3천6백 명이 경찰기동대 총병력이다. 2만 명 정도의 경찰 병력으로 동시다발
적 시위를 서울에서 막을 수 없다. 서울역, 회현동(6∙10대회 당시 최대 격전지), 동대문, 신촌을
거점으로 시위를 하면 한 지역에 3~4천 명밖에 배치할 수 없다. 그 사잇길은 거의 무방비로 뚫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해찬이 분석한 경찰기동대 내막이었다.





------------------------------------------------

이건 같은 사이트의 다른 글에 있는 내용입니다. 당시 실제 참가했던 사람들의 좌담회 중 일부입니다.

우상호 :실제로 학생들이 네 군데로 나뉘어서 집결하다 보니까 경찰력이 분산됐고, 처음
에는 수백 명 나중에는 1천여 명 정도가 안정적으로 집회를 할 수 있게 됐다. 7시 30분경부
터 앞으로 밀고 쭉 나갔는데, 신세계 백화점 앞이 확 뚫리면서 적게 잡아도 2만여 명 이상
이 그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퇴계로 쪽에서도 학생들이 밀려왔다. 전경들이 일시적으로
남대문 쪽으로 밀려난 사이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백화점 앞 분수대로 모여들었다.
야, 이겼구나 하는 생각과 자신감이 밀려들었다. 사방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현장에
서 시위대에 의해 고립됐던 전경 1개 소대가 무장해제 당했다. 헬멧과 방독면을 벗겨놓
고 보니 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었다. 시위대는 최루탄 연기에 눈을 못 뜨는 그들을
분수대로 데려가서 세수를 시켰다. 그리고 모든 무기를 내려놓게 한 뒤 <아침이슬>을 함
께 불렀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일부 전경들이 눈물을 흘리다 고개를 숙였다. 지켜보던
시위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정수 실제로 지역별로 분산해서 집결하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시위가 진행된 것이
도리어 열린 공간을 만들어준 측면도 있다.




http://www.610.or.kr/ 인터넷 6월 민주항쟁 기념관의 "6월항쟁을 기록하다" 자료 중에 있는 내용입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2008년 민주화 촛불항쟁(정확한 명칭은 역사가 정해주겠지요)에 시사점이 많습니다 @_@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그때와 지금은 좀 다르죠. 그때 당시에 대학생은 거의 모두가 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치 시위에 적극 참여했고, 또 확고한 중앙조직이 이끌고 각 대학 총학생회, 단과대 학생회, 과 및 동아리로 연결되는 조직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저렇게 조직적인 시위가 가능했지만, 2008년 현재는 저렇게 하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시위대가 시위하는 법과 싸우는 법을 모릅니다. 쩝.

    2008.06.02 06: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인터넷을 통한 전술 지령" 등으로 이글 조중동에 실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군요. ㅋㅋ
    저런 전략까지 필요한 시점은 오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2008.06.02 1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조대협

    우리 전쟁하는거 아닙니다...
    이런 작전이나 방법론들이 도는거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순수하고 무폭력 시위이기 때문에 시위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조직적이기 보다는 좀더 순수하게 시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시위 현장에서도 일부 무분별한 시위대의 폭력행위가 있는데.. 그러지 맙시다.. 아니 옆에 있으면 말리고 싶습니다.
    시위는 적극 찬성하지만 폭력은 절대 반대입니다.

    2008.06.02 15:04 [ ADDR : EDIT/ DEL : REPLY ]
  4. 지베가

    이글을 보고 난 이번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는 많은 분들이 왜곡된 시각을 받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잘못된 정부의 선택을 되돌려야 하겠지만 그 보다 걱정되는것은 위와 같이 선동하는 사람들이다
    난 이명박 안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명박정부와 싸우고자 하는게 아니라 이명박정부의 잘못된 판단을 반대한다고 의사표현을 하고 싶을뿐이다. 우리가 지금 민주화하자고 길거리로 나가는걸로 보이나? 딴소리 하지마라...
    잘못결정된 선택을 국민의 힘으로 되돌려 보자고 주장하는것일뿐...
    전투하고 싶으시면 이라크로 가던지 해라~ 왜 우리가 형동생이고 친구였던 전경들과 전쟁놀이를 해야 하는가?
    지금 혁명하자는 거임? 놀구있네....무장해제시키고 만세를 외쳤다고? 지금도 그렇게 하자는 거임?
    지나간 세대는 지나간 세대의 방법으로...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방법으로...

    2008.06.02 15:44 [ ADDR : EDIT/ DEL : REPLY ]
  5. 아닙니다

    지금 시위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은 순수하고 무폭력이어서가 아니라, 정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워낙에 불만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87년은 조직적이었기 때문에 "불순"했던 것일까요? 그래서 국민의 지지도 못받았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더 조직적일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5월 31일 밤에도, 한 덩어리의 대열이 분명한 지침없이 종각과 조계종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지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나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도부 없음"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2008.06.02 15:46 [ ADDR : EDIT/ DEL : REPLY ]
  6. 현진

    조직력 자체를 배제해야할 근거는 저는 못 찾겠네요. 시민들의 순수한 동기에 반하는 선동은 배제되어야하지만 시민들이 그들의 행동력을 더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을 짠다면 그것에 문제는 없는 듯 합니다.
    오히려 이런 조직력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인해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게 언론의 지능적인 전략이 원하는 바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2008.06.02 15:52 [ ADDR : EDIT/ DEL : REPLY ]
  7. -_-; 전의경들을 무장해제시킨 다음에 세수시켜주고 같이 노래부르는 게 '폭력'인가요.
    저도 전쟁하자는 건 아니고 비폭력 방법론(사실 87년 6월항쟁도 거의 비폭력 지침이었습니다.)에 동의하지만,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해서 전의경들 병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거라거나 전의경들 배치된 후방으로 돌아가서 교란시켜야 한다거나, 끈질기게 해서 전의경들이 더이상 막기 어렵게 해야 한다거나, 많은 수의 시민들이 모여서 전의경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하는 건 제가 알고 있는 '폭력' 개념과는 매우 많이 다르네요.

    2008.06.02 16:5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8. 매우 좋은 글인데!? 이런 글을 몰랐다니. 퍼갈게. 공현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덧붙이자면, 나 역시 비폭력시위라고 무조건 조직력 자체를 배제시켜야한다고 생각지는 않아. 오히려 기존..이라기보다는 화염병과 죽창이 등장했던 시위방식은 지금과 같은 시위를 효과적으로 조직하지 못하지, 비장애인 남성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러한 시위방식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몰려 나오는 지금의 시위는 매우 다르니까. 그러나 어제 밧줄이 등장했던 것처럼, 대형비닐이 등장했던 것처럼, 그런 창의적인 방식들이 자꾸 나와주고 조직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안 그러면 경찰이 해산시키면서 우왕좌왕하면서 일부는 해산하고 일부는 남아있고, 그러다보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탈진되고, 해산하는 사람들은 또 그대로 자책감에 빠지고...경찰의 전략이 먹히기 십상이니까. 끝낼 때는 한꺼번에 인사하고 다시 모이자고 한 후 끝내든지, 함께 할 때는 또 함께 분산해서 하든지 등의 '전략'과 '조직' 이, 그것이 '비폭력'시위이기 때문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2008.06.03 01:21 [ ADDR : EDIT/ DEL : REPLY ]
    • 공현이라고 부르니까 이상해 ㅋㅋ --;;

      2008.06.03 01:51 [ ADDR : EDIT/ DEL ]
    • 동감해. 다만 그런 조직 방법을 누군가가 배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어떻게' 소통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가지고 갈 수밖에 없겠지;

      2008.06.04 07:29 [ ADDR : EDIT/ DEL ]
  9. 너이자식

    지금 현재 전투경찰과 의무경찰대원들이 집회참가자들에게 무력행사로 진압을 하는 것이 큰문제라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본인또한 해양경찰로 군복무를 해왔습니다....일반경찰대원들은 일선에 투입되어 전투아닌 전투를 치루게 되는데요....그로인해 피곤하고 매우 힘든것도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맞지않는 데모진압이 아닌가 싶습니다.....평화적으로 집회한다면 폭력적으로 집회를 무력화시킨다면 그것은 형평성에 어긋난 방법이겠지요!!!
    하지만 집회참가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것은 전의경 대원들의 진압버스를 강제적으로 파손시키려하거나 고의로 진압버스위로 올라가서 서로의 위험성만 높이고......전의경들도 사람이기에 서서히 지쳐가면서도 분노가 생기겠지요!!!
    본인이 해양경찰로 복무할때 저희는 전의경들이 데모참가자들과 상대를 하듯이 바다경찰은 불법어선들과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 너무 무식하여 심지어는 흉기까지 소지하여 해양경찰대원들을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허락도 없이 침범하여 조업을 하는 그리고 우리 함선이 다가오자 그들은 우리에게 위협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중국어선이었습니다.....이들에게 인권이 필요한가요!! 우리의 주 목적은 해양의 모든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바다경찰이었지요!! 전의경들도 폭력경찰이 이나라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발된 경찰대원들이랍니다....
    지난 날 TV에서 데모를 하는 사람들과 이와 대치하고 있던 전의경들에게 위험한 물건들을 집어던지고 전의경들은 데모참가자들의 무차별 공격에 구타만 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이를 악용하여 데모참가자들은 전의경들을 무작정 때리고 심지어는 진압버스까지 불타워버리는등 불손한 시위가 많이 벌어졌습니다.....전의경들은 부상을 당하고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데 언론에서는 데모하다가 다친 참가자들만 싸고 돌았어요!!! 그러니 우리나라가 삐걱거리고 위태러웠죠!! 특히나 치안문제에서는 말이죠!!! 이 모든것은 상관이나 정치판에 몸 담고 있는 작자들이 잘못이지 진압하는 전투경찰과 의무경찰들이 무슨 죄가있겠습니까?? 다 피끓는 젊은이들이고 귀한 아들들인데 말이죠!!!


    본인도 바다경찰로 전역하였으므로 사실대로 적는다면 전의경들을 길거리에서나 어디에서 만났을 때는 매우 반갑기도 합니다.....소속은 틀려도 말이죠!!!

    그렇다고 전의경대원들의 폭력진압을 두둔하는 것은 아닙니다....무조건 무력행사로 제압한다는 것은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불손한 집회는 당연히 폭력진압으로 전개해도 용서가 될것입니다....그리고 이 집회는 양측의 감정조절 실패로 빚어진 사건이라 생각합니다..........전의경들을 생각해서라도 몇날 며칠 잠도 못자고 힘들었을 텐데.....그리고 여러 집회참가들도 많이 힘들텐데 서로가 조금만 이해해서 단 하루만이라도 집회는 중단했으면 합니다

    2008.06.03 02:32 [ ADDR : EDIT/ DEL : REPLY ]
    • 전의경 분들이 정말 힘들고 짜증나고 자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명령에 불복종하지 않는 이상은,
      전의경 분들이 지쳐서 나가떨어지고 더이상 정권을 비호할 무력이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는 끈질기고 독하게 계속해야 할 겁니다.

      자신이 스스로 불복종할 능력을 잃어버렸다면, 그건 이미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 전의경에 대한 폭력은 반대하지만, 그 분들을 배려해서 시위를 쉬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현재 위치는 정권의 도구일 뿐이니까요. (뭐 옛날부터 그랬지요.)

      그리고 '불손한 집회'라고 무작정 폭력진압해도 된다는 건 무슨 망발인지, 참 슬프군요.

      2008.06.03 11:38 신고 [ ADDR : EDIT/ DEL ]
  10. 떠오르는 몇가지..
    97년이던가.. 한총련 출범식이 원천봉쇄되면서 아예 모두 산개해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타격을 했다고 하는데 경찰에서 별 뾰족한 대응을 못했었다 하구요.(가방에서 꺼내 던지고 튀면 그걸 잡을 방법이 묘연..) - 이건 그냥 주워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지 않구요.
    99년 시애틀 투쟁에 대한 평가에서 시위대에 특정한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에, 시내 곳곳에서 이루어진 시위로 도로가 마비되었고 경찰들이 대응할 수 없었다 하구요. 결국 각료들이 회의장소로 갈 수가 없어서 회의가 무산되었다던..
    03년 부안에서는.. 밤에 촛불집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되면 모두가 골목 곳곳으로 흩어져 전경들과 싸웠고.. 일부 사람들은 아에 시가지 외곽으로 빠져서 전경버스를 태운다든지 수송되는 밥을 막아버린다든지 했었어요. 또 한번은 집회를 하려는데 광장을 막아버리니까 그 자리에서 '고속도로로 가자'이런 이야기가 나와서 사람들이 우루루 들판을 가로질러 고속도로를 점거해버리기도 했었구요. 당연히 전경들은 이것들에 대응할 수 없었어요.
    06년 CPA투쟁때도 그곳에 다녀온 분의 이야기가 오토바이를 탄 시위대가 도로를 휘저어 교통을 마비시켰고 또 어떤 시위대는 가서 철도를 끊어버렸다고 해요. 이런 산발적인 전개 이후에 사람들이 대규모로 나오기 시작했다구요.
    이런 건 우연한 몇 사건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전술적인 측면이기도 하지만 - 국가를, 지엽적으로는 조직된 폭력을 어떤 식으로 넘어설까에 대한 고민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듯해요. 전경에 맞서는 게 그들과 똑같이 조직된 폭력이어야 하는 질문과 또 그만큼 조직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의문 - 지금도 1기동대는 화염병 투척 훈련을 한다는데..

    2008.06.13 17: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1. 인간의 잔인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아예, 나 죽었다 하고 빌붙지 않으면 모를까, 조금씩 엇데면 상대방은 더더욱 치열하고 잔인하게 먹잇감을 짓이겨 들려고 합니다...이미, 현 정부는 기름 창고에 수류탄 한알 까 넣었다고 보아도 그리 크게 과장 되지 않았다고 보아 지는군요...불에는 불로 막아야 합니다...물로는 막을수가 없지요...우리 예비군들, 다들 이런 교육 받았으리라 생각 됩니다...전경이 우리를 적으로 본다면 이건 이미 한강을 건너간 것이지요...쥐새끼는 청와대에 있습니다...우리가, 몰리는 쥐 가될 수는 없습니다...현직 기자를 폭행하고 사진기를 부수는 경찰은 이미 경찰이 아닌 폭도 입니다...이라크에서 이런 행태가 반복되었었지요...취재중인 외신기자들이 저격병에 의해서 두개골이 산산히 조각 나는걸 보면서 이겄은 이미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는...그래서 이라크가 현실적으로 재기 불능이지요...물론 그 잘난 미국이 모두 저질러 놓은 일들이고요..."미국식 민주주의의 발현"이라는 기치 하에...죽일 놈들...우리도 조직력을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 더 많은 국민들이 부상당할 겄이며 조만간 사상자가 발생하리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게 유추가 가능합니다...조직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2008.07.15 17:0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08. 6. 2. 05:29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기도 하다. 예전에도 경찰은 살수차를 직격으로 사람에게 쏴댔고, 방패로 찍어댔고, 그 와중에 사람이 죽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는 잠잠하다가 직접 당하고 동영상 뜨고 하니까 사람들이 실감이 나는 것 같다. -ㅂ-;;
뭐 백문이불여일견이니까, 쩝.


5월 31일 시청 광장은 정말 사람이 득실득실했다.

오전 11시반부터 청소년노동인권('알바인권')에 관해 서명운동을 받고 거리상담을 나갔었고,

오후에는 잠깐 회의를 하고 다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나서 청소년인권단체 사람들이랑 같이 간 거였던지라 좀 힘들었다. 휴...


10만 촛불집회

처음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있는 쪽에서 시청광장을 봤을 때는 사람들이 시청광장만 가득 채운 줄 알고 '한 5만 되려나?' 했는데,
웬걸 가보니까 덕수궁 앞까지 인산인해다.

더군다나 시청광장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는 않지만 거의 숭례문까지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다.

10만은 넘겠군 --;;

청소년인권에 관해 열심히 만든 전단지 돈도 없어서 300장만 뽑아갔는데

10만 인파 앞에서 300장은 너무 무색했다. 그래서 일단 청소년들 위주로 나눠주기로 했다.

10만 명이 넘는 집회 인원 앞에서 가슴이 막 벅차야 할 거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정말 득실득실하게 많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ㅠ 난 정말 비뚤어졌나봐.



행진 시작

촛불집회를 하던 중, 8시였나 8시 반이었나 여하간 그쯤에 청운동사무소 쪽에서 사람들이 연행되었다고 해서

후딱 정리하고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 행진을 해도 빠지는 데 한참 걸린다.

나중에 듣기로는 대략 3, 4 갈래로 빠졌던 거 같은데
가장 큰 갈래는 을지로 쪽으로 간 사람들과 다른 어딘가로 간 사람들 두 갈래였던 것 같다.  나머지는 약간 소규모였던 듯. 시청에 남아있던 사람도 상당수라고 했다.

나는 촛불집회 오려고 했는데 좀 늦게 나왓더니 교통이 마비되어서 버스가 안 다녀서 그냥 집에서 상황 모니터링하기로 한 친구와 통화하면서 시위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ㅎㅎ;


을지로를 돌아서 광화문까지 갔는데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다시 돌아서 종로3가, 인사동 쪽까지 갔는데

이건 뭐 사람이 많으니까 앞뒤에서 무슨 일이 나는지 알 수가 없다. --;; 그냥 마냥 걸을 수밖에.

걷다가 힘들어서 잠깐 앉아서 쉬면서 어느 빌딩의 화장실 가서 퀴어퍼레이드 참가할 때 입었던 치마랑을 벗고 바지로 갈아입었는데, 갈아입고 나와도 행진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에 타고 있는 분들 중에는 짜증 내는 분도 있었고 응원하는 분도 있었는데

응원하는 분한테 "함께해요~"하니까 그 분이 "차를 버릴 순 없어요"라고 해서 웃었다 퓨퓨퓨

행진하면서 아수나로랑 민들레 등의 청소년 분들이

"어른들이 무슨 죄냐 청소년이 지켜주자" 라고 엄청 크게 구호해서 주변에서 박수쳐주고 그랬다 쿠쿠쿠



닭장차를 넘어


인사동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에 전경차들이 막고 서있었는데 앞에서 한참을 막 하고 있어서 뒤에 앉아서 잠깐 쉬었다.

옆에는 한총련, 서총련, 남총련 등의 민족주의적인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615공동선언 이행"을 구호로 외치는 걸 보고 참 --; 고집도 세다고 생각했다. ("고시철회 주권수호"가 그 사람들의 메인구호였으나 앉아서 쉬면서 구호할 때는 공동선언 이행도 외치더라)

애국가(무려 4절까지) 부르고 대~한민국 외치는 건 여전히 짜증난다.

그런데 앞쪽에서 닭장차 뚫렸으니까 양 옆으로 가래서 양 옆에 틈새로 막 가는데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닭장차를 위로 넘어서 왔다. 예전에 민중총궐기 때도 닭장차 저렇게 넘어다녔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자 이제 곧 청와대다 하면서 또 행진 시작.

행진을 하면서 청소년들이 보일 때마다 계속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갔다.


정말 사람 많다...

그런데 삼청동(광화문과 인사동 사이. 삼청터널을 지나면 곧 청와대.)에서 경찰들이 삼청터널 가는 길을 막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대치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박진 사무소를 보면서 사람들이 "박진 불꺼라" 라며 계란 몇 개를 던지기도 했다.

늦게 온 다른 사람을 데리러 광화문까지 갔었는데

사람들이 세종로 쪽에서 계속 걸어서 효자동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정부종합청사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끝없이, 끝없이 차도를 점거하고 효자동 쪽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이런 게 거리의 대중정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정말 이명박은 퇴진이다, 하는 생각도.


그렇게 시위하는 사람들은 삼청동 쪽에 한 팀, 효자동 쪽에 한 팀이 있었다. 듣기로는 양쪽 합쳐서 4, 5만 정도.



"세탁비 세탁비"


효자동 쪽에서는 물대포, 소화기가 등장했다는 이야기와 최루탄이 나왔다는 이야기(나중에 사과탄인가 소화기로 확인됨;)까지 나왔다. 그러더니 좀 있으니까 이쪽에서도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 오른쪽에 있었는데 오른쪽은 다행히 물을 안 뿌려서 처음엔 안 맞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물에 맞고 추위에 떨며 뒤쪽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던 중 같이 온 사람들을 잃어버려서 막 찾으러 다니는데, 원래 물대포가 한대였는데 갑자기 두대가 나오며 양쪽 방향으로 물을 뿌려서 나도 물에 쫄딱 젖었고,
오기가 생겨서 그자리에서 머리를 팔로 막고 버티고 서서 직격을 계속 맞았다.

사실 물대포가 수압이 세긴 해도 머리(얼굴)를 보호하고 침착하게 버티면, 체중이 한 50kg 이상만 되어도 버틸만 하다.

물대포 때문에 다치거나 쓰러지는 경우가 크게 세 가지인데,
하나는 머리나 얼굴을 직격 당해서 다치는 경우가 있고 (이건 좀 심각하게 다친다 ㅠ)
다른 하나는 물을 갑자기 맞아서 놀라거나 물을 다리 쪽에 맞아서 넘어지는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을 피하려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밀리거나 아니면 바닥이 물에 젖어 있어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경우다.

미리 쏘는 걸 알고 머리를 보호하고 단단히 버티고 서있으면 크게 다치진 않는데, 문제는 엄청 춥더라는 거다 -_- 맞았을 땐 멀쩡하다가 추위 때문에 실신하거나 체온이 떨어져서 의료팀 찾은 사람도 많을 거다...

정말 5월이 아니라 8월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체온이 떨어지면 체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퀴어퍼레이드 때 입었던 치마랑 남방을 꺼내서 도로 입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탁비 세탁비" "온수 온수" "맥주 맥주" 등을 구호로 외치며 경찰들과 계속 대치하고 있었다. ㅋㅋㅋ



비폭력은 무엇인가?


여하간 그러다가 오른쪽에 있는 닭장차 앞를 두드리며 경찰에 항의의 뜻을 표시하다가,

차를 밀까 했는데 앞에 있는 사람들이 이 차 안에 전경이 있다고 밀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경찰들 위험하니까 나오라고 막 소리질렀는데 안 나오길래 문을 강제로 열고 나오라고 했는데

그랬더니 옆에서 막 어떤 사람들이 와서 발로 차서 문을 닫으면서 막 비폭력으로 해야 한다고 화를 냈다.(발로 차서 문 닫는 것도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ㅡㅡ)
그러면서 "당신들 운동권이야?" 막 그랬는데, 내가 인권단체 활동가고 소위 '운동권'인 것도 맞긴 하지만 그때 거기에서 닭장차 확 밀어버리고 싶어한 게 다 운동권이었던 것도 아니고 문 연 게 다 운동권이었던 것도 아닌데 , 게다가 '운동권'이더라도 비폭력주의자나 평화주의자도 많고 나도 그렇게 되려고 하는데, 좀 화가 났다.

아무래도 그 분들은 문 열고 전경들을 끌어내서 막 때리려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때 우리 뒤에서는 막 문 열리니까 병 던지고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뭐 그럴 위험이 전혀 없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앞쪽에서 문 열었던 사람들은 전경들한테 어서 위험하니까 나오라고 하면서 열었던 사람들이다.

듣자하니 효자동 쪽에서도 사람들이 전경 두 명인가 끌어내니까 몇몇 사람들이 막 때리려고 그러는 걸 못 때리게 말리고 보내줬다고 하는데,
뭐 삼청동 쪽이라고 효자동과 크게 다를 것도 없을 거고 적어도 그럴 만한 자제력과 정신은 있는데 아무래도 그분들은 사람들을 불신하는 거 같다 ㅎㅎ


나중에는 닭장차를 물병으로 두드리면서 항의하는 걸 가지고서도 하면 안 되지 않냐고 비폭력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나는 정말 "폭력"이란 말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기는 하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폭력은 "사람"이나 "생명"에게 행사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닭장차를 두드리거나 미는 게 왜 폭력이란 말인가? 그걸로 사람이 다치지 않게 나오고 비키라고까지 하고 있고, 또 사람이 비키기 전이라면 나도 밀 생각은 없다.
힘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면, 애초에 촛불집회를 하거나 행진을 하면서 도로 막고 다른 차들 못 다니게 막는 것도 폭력이다. 스크럼을 짜는 것도 폭력이다. 대체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폭력'이라거나 '평화'시위는 뭘까?

나는 인간에 대한 존중으로서 비폭력 자체가 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다수가 참여하기 쉽게 하거나 도덕적 정당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비폭력이라면,
오히려 5월 31일~6월 1일 새벽 시위에서 6, 7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상황 변화 없이 계속 대치하는 것 때문에 한 게 없다고 지겨워하고 짜증내면서 집에 간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_-
난 폭력도, 싸우는 것도 싫어하고 불필요한 충돌을 바라지도 않지만, 여하간 그자리에서 구호만 외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진 않는다.

아님 정말로 완전 비폭력으로 길바닥에 드러눕거나 연좌해버리거나...


* 그나저나 예비군복 입고 온 분들은 대체 왜 온 건지 잘 모르겠는 게; 그렇게 환호를 받으며 오면 정말 확 전경들이랑 뚫어버리거나 아님 제대로 막거나 해야 하는데 별로 그러는 거 같지도 않고;;; -_-
앞에 있던 사람 말로는 다른 사람들을 다 뒤로 밀어내면서 자기들끼리 스크럼을 짜는데, 그게 방어선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오히려 시위대의 이동을 저지할 때도 있다고 한다. 끙- 그렇게 환호 받을 만큼 예비군복 안 입은 사람들보다 예비군복 입은 사람들이 뭘 잘하는 거 같지도 않고,
그리고 솔직히 예비군복 퍼포먼스에서 나는 성별분업과 결합된 군사주의 정치가 읽혀서 불편한데-
에효

"싸이 하냐?"

하도 추워서 편의점이라고 갔다 오려고 가는데 편의점 바로 앞을 닭장차들이 막고 있었다.

슈퍼가 있긴 했지만 이미 따뜻한 먹을 거나 마실 거는 삶은 계란 빼곤 동이 난 상태.

사람들 몇몇이 닭장차 앞에서 항의하는데 전의경들이 오히려 플래쉬 터뜨려가며 채증하더라 -_-
편의점 보내달라는데 웬 채증이여

사람들이 "싸이하냐? 사진은 왜 찍어~" "싸이에 올리게?" 이러면서 항의했다 ㅎㅎ

그리고 막 "돈 줄 테니, 안 보내줄 거면 말보로 라이트 좀 사다줘요" 이러면서 대치하는데

에효 결국 자판기에서 생강차만 좀 뽑아갔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고 택시타고, 오토바이 타고 온 분들이 김밥이랑 라면 등을 사오셨더라.

ㄱㄺㄹ이 집에 갔다가 밤 늦게 택시 타고 다시 온 사람들은,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닐까 하는 농담을 하여 웃음을 주셨다 -_-


"살인무기 물러가라"


물대포에 맞아서 많은 사람들이 부상으로 실려나갔다. 처음 부상자 발생했을 때 부상자 실어나를 길을 열어달라고 사람들이 막 그래서 비켜섰는데, 눈치 없이 기자들이 막 그 길 한가운데에 서서 카메라로 부상자들을 찍으려고 하다가 사람들의 질타를 받고 쫓겨났다. YTN은 특히 사다리 세우고 찍다가 욕 먹었다 --;

그중에 눈에 정통으로 맞고 안구출혈로 실려갔던 분이 있었는데,

새벽녘에 그 사람이 실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웅성웅성거렸고

"살인무기 물러가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 구호에 왠지 눈물이 났다.

울면서 구호를 했고, 목은 쉬기 직전이었지만-



정말 닭장차 몇 번 흔든 거 말고는, 닭장차 위에 올라가서 있던 거 말고는 눈에 띌 만한 뭐도 못해보고 경찰들 앞에 서있었고, 전의경들 서있는 데다가 막 종이학 주면서 한 시위였는데

물대포에 맞아서 사람들이 쓰러지고 피나고 오들오들 떨고




사람들은 동이 터오자 "아침밥 아침밥" "아침밥은 청와대에서" 를 구호로 외치기 시작햇지만, 전의경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이 청와대가 아니라 다른 데로 급히 피신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ㅂ-

나는 그때 프랑스 혁명이 생각났다.

프랑스 혁명 때 민중들은, 다른 곳에 있는 루이16세의 궁전까지 쳐들어가서 루이16세를 파리로 데리고 간다.

이명박을 끌어내서 목을 벨(루이16세처럼) 생각은 당연히 없지만,
적어도 그 인간 면상이나 보고 싶다.

처음엔 "협상무효 고시철회"를 주로 외치던 사람들이,
전의경들이 물대포 쏘고 하자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주 구호로 삼고 이제 "협상무효 고시철회"는 거의 안했다.

그만큼 열받았다는 증거다... -_-




아침 7시 무렵에 오후에 할 다른 일(+너무 졸려서 일어서서 졸다가) 때문에 먼저 나와서 친구 집에서 잤다.

그리고 인터넷을 켜보니,

내가 간 후에 또 난리가 났었다.

전에 우스개소리로 난 연행 안 당하는 신이 내렸다고 했는데 정말인가 ... -ㅂ-;;;;;

동영상을 방패로 찍고 난리가 났다. 아침에 있던 사람에게 전해듣자니 무슨 영화 찍는 거 같았다고 한다. 영화 제목은 "화려한 휴가"...

경찰특공대인지 뭔지 하는 것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
밤동안 나는 87년 6월 항쟁에 관한 과제를 마쳤다.

또 동이 터온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노동자

    노빠들 많이 오던데요. 무얼 기대하셨어요? ㅋ

    2008.06.02 18:14 [ ADDR : EDIT/ DEL : REPLY ]
    • 물결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이 많이 오면 뭘 기대해야 하는 걸까요? (태클이 아니고, 제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면 듣고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2008.06.21 10:02 [ ADDR : EDIT/ DEL ]
  2. 그 멋진 전단지를 300장밖에 못 뽑았다니, 정말 마음이 아프오-
    내 조만간 또 후원을.....; (적자인생이여.)

    2008.06.04 07:23 [ ADDR : EDIT/ DEL : REPLY ]
  3. 물결

    '예비군복' 부대에 대하여: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공현님 말고 공현님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자제력과 이성적 판단력을 공현님이 보장할 수 없다면 - 당연히 보장하기 힘들죠 - 불의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고 믿습니다.
    한열이의 죽음이 뇌관의 역할을 했던 건 맞지만, 한열이가 그 역할을 노리고 스스로 희생을 택했던 건 아닙니다. 누군가를 또다른 한열이로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었는지 모두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리력 앞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물리적인 힘이 강한 사람들이 희생을 막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굳이 마초이즘으로 몰아가는 일도 너무 편협한 시각이 아닌가 합니다. 대부분이 아직 20대인 그들 예비군복 청년들보다 더 초라하고 한심한 사람들은 입으로만 쉴 새 없이 폭력을 선동하는 386넥타이들이고, 그 사람들의 추억을 재현하는 데 우리 중 누구라도 제물로 바치는 건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촛불집회의 가장 큰 힘은 운동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시민들의 공감과 응원이겠지요. 그들과 멀어지는 순간 풍전등화가 되고 맙니다.

    2008.06.21 10:13 [ ADDR : EDIT/ DEL : REPLY ]
    • 뒤에서 입으로 떠들고 있는 아저씨들에 대해서도 절~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이 글에서 굳이 그 사람들에 대해 논쟁할 필요는 없겠지요. 문제의 초점은 예비군복 입은 아저씨들이니까요.
      저는 또 하나의 이한열 씨가 나오길 바라지 않는다고 그리고 바라는 마음이 있더라도 스스로 검열할 것이라고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폭력'에 대해 '폭력'(물리력)으로만 맞설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상상력의 빈곤 아닐까요? 그리고 예비군복 입은 아저씨들의 행위로 인해 오히려 더 위험한, 위태한 순간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저의 편견일까요? 그건 제가 보장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한다면, 예비군복 입은 아저씨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이성적'(??)이고, 효율적이며, 그리고 그런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박수받고 환호받고 싶어해서 하는 짓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보장해야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걸 보장하라고 요구하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수만명이 모이는 집회장에서, 이미 수십명 수백명이 되어버린 예비군복 입은 아저씨들에게 그런 걸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요.

      촛불집회의 힘이 운동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시민들의 공감과 응원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운동과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도 '평범한 시민'이니까요.

      2008.06.22 20:39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