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1. 10. 17. 16:10

(대학입시거부선언운동 포스터)
http://cafe.daum.net/wrongedu1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한다


교 육의 목적은 우리가 좀 더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은 과연 어떤가요? 사람을 점수 매기는 것, 줄 세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있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경쟁시키는 것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수능과 대입은 우리의 수학능력을 검정해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상대평가로 우리를 등급으로 나누고 줄 세우는 것일 뿐입니다. 시험은 우리를 숫자로 점수 매기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어떤 이는 숨 막히는 압박감을 견뎌내야 하고, 어떤 이는 아예 경쟁에서 밀려난 낙오자 취급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들의 가치는 점수로 성적으로 등수로 백분위로 매겨지고 있습니다. 이건 인간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상품을 위한 품평이고 경쟁일 뿐입니다. 무한경쟁은 교육이 아닙니다. 줄 세우기 무한경쟁교육에 반대합니다.



획일적인 정답만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주입식교육에 반대한다


시 험을 위한, 경쟁을 위한 교육은 우리들에게 정답을 외울 것을 강요합니다. 주어진 정답을 얼마나 잘 외웠는지, 시험을 내고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는지가 우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교육은 학생들이 함께하는 과정이 아니라 교사가 강사가 조용히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답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일방적인 과정이 됩니다. 이런 교육이 학생들이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까요? 학생들은 교육의 주체입니다. 학생들에게 이미 정해진 정답을 일방적으로 외우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답을 찾아가고 체험하는 교육이 더 좋은 교육입니다. 다양한 답을 인정하는 교육, 체험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교육, 참여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교육을 원합니다.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학 생들은 학교에서 인간으로서의 여러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두발복장단속, 숱한 차별들, 폭력들이 당연한 일상처럼 일어납니다. 학생들이 목소리를 냈다가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기도 합니다. 학생이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경쟁의 압박이나 공부 부담 그 자체가 인권침해가 됩니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수직적인 권력관계를 내면화한 학생들 사이에서도 차별과 폭력이 일어나곤 합니다. 몇몇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학교가 더 효율적으로 값싸게 학생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것은 학생인권침해의 원인입니다. 이는 인간보다 학생보다 성적이, 입시가, 성과가 더 중요시되는 비정상적인 교육의 모습입니다.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육 과정에서 우리의 인권은 더욱 잘 보장되어야 합니다.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 육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소질을 계발하고, 사람답게 더 잘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학교는 입시준비학원, 취업준비학원 같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내용들은 많은 부분이 입시나 취업에 필요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교육이 시험을 보기 위한 도구, 생존을 위한 스펙 쌓기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입시, 취업 위주의 교육은 그 내용도 우리들의 삶에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는 ‘시험 봐서 점수 매기기 좋은 것’들로 채워집니다. 그럴수록 지식은 삶에서 동떨어지게 되고, 학생들이 진짜로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교육의 목표가 입시와 취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고 바람직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식, 체험과 만날 수 있는 교육을 요구합니다.



누구나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대 학등록금은 1년에 수백만원, 학교에 따라서는 천만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대학교육은 돈 많은 사람들만이 별 부담 없이 누릴 수 있습니다. 대학 뿐 아니라 고등학교 학비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치솟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육열"은 단지 정부가 사회가 교육을 함께 책임지지 않고 개인의 부담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뜻일 뿐입니다. 어느 학교든 전반적인 교육예산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학교 시설은 열악하고, 교사의 종류와 수는 부족하고 학급당 학생수는 너무 많습니다. 교육예산 부족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좋은 교육을 누리지 못하는 원인입니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라 모두가 누리는 권리입니다. 사회에서 정부에서 교육에 많은 예산을 배정해야 합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의 완전한 무상교육, 보편적인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편견과 강요에 반대한다


한 국에서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꼭 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대학 진학율이 80%를 넘어서는 현실에서, 일단 대학에 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대학을 가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나 못난 사람 취급을 받게 됩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가정을 꾸리는 것이 ‘성공한 삶’인 것처럼 생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단 대학이라는 공인된 기관을 졸업해야만 좀 먹고 살 만하다는 경제적인 이유부터,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한 편견이나 두려움, 거부감이 있습니다. 대학은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 더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가는 하나의 선택지여야만 합니다. 대학 밖에서도 다른 많은 공부나 지식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을 모두가 가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회에 반대합니다.

 


대학과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학벌차별과 학벌사회에 반대한다


이 사회에서 학력과 학벌은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습니다. 고졸보다는 대졸이, 대졸 중에서도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 더 능력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임금부터 시작해서 많은 상황에서 차별을 받게 되고, 사람들도 학력과 학벌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하곤 합니다. 이런 사회의 모습은, 모두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그리고 더 이름값 있는 대학을 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은 결코 학력이나 학벌만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습니다.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차별이 사라져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고, 평등한 기회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학력과 학벌에 대한 차별들을 금지하고 사람들의 차별적인 생각들을 바꿔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누구나 최소한의 먹고 사는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 리 사회의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배경과 학력, 학벌을 확보해둬야 좋은 직업을 가지고 소득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조금만 삐끗하면 저소득층, 빈곤층으로 추락할 거라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채찍질하고 지금과 같은 경쟁교육과 사회를 유지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습니다. 누군가 대학을 가지 않고 특출난 능력과 운으로 억만장자가 된다고 해도 그건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 오히려 그런 운과 재능이 없는 많은 이들을 대학에 목을 매야 합니다. 생존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며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집을 잃을지도 모른다’와 같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사회보장과 복지제도를 바꾸고 경제구조를 바꿔가면서,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사회를 요구합니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흘러들어온꿈2010. 3. 11. 14:22

프레시안 기사에서 글 부분만 퍼옵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25년 동안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채찍질 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다시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국가는 의무 교육의 이름으로 대학의 하청 업체가 되고,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에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하청 업체가 되었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

생 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 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우리들 20대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 체제를 떠받쳐 온 내 작은 탓을 묻는다. 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난 이걸 현장에서 봤지만...
    (아마 내일이면 학교에 의해 퇴거될지도...?) <- 늘 그래왔듯.

    2010.03.11 18:41 [ ADDR : EDIT/ DEL : REPLY ]

딱딱한꿈2010. 2. 15. 02:19







1

  한국 사회에서 우려되는 현상 중 하나가 조직의 부재이다. 어쩌면 이 말이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조직만 있고 개인은 없다, 전체주의적이다, 집단주의적이다 같은 류의 이야기들이었으니까는. 그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야기로 들리는 조직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분명 쌩뚱맞게까지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적이지 못하다는 지적과 조직이 약하다는 지적은 모두가 사실성을 담고 있다.

  여기서 조직(뭐 커뮤니티나 공동체라고 표현해도 좋다.)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자발성/자기이익/공익에 근거하여 사회적으로 구성된 집단, 그리고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정치적․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집단을 말한다. 예컨대 지역의 커뮤니티, 생활협동조합, 노동조합, 학생회, 공익단체, 정당 등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적 개념을 빌자면 이런 조직들을 '자발적 결사체'나 '시민사회' 등의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결사체들은 사회에 다양성을 증진시키고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집단적 정치 참여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도 강한 조직들은 있다. 그러나 그런 조직들은 대부분 국가 권력이나 대자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자발성에 근거하고 있는 자발적 결사체로는 보기 어렵고, 다양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개인은 없고 조직만 있다'라고 말할 때 그 조직은 주로 국가, 학교, 군대, 대기업, 지연, 학연, 그밖에 군사 독재의 부산물로 탄생했으면서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는 조직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일부 친목적 기능을 수행하는 커뮤니티들(부녀회라거나)도 여러 요인들 때문에 사회적․정치적 기능과 가능성은 미미하다 하겠다. 요컨대 지금 한국 사회는 국가․자본이 조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며, 자발적인 조직화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런 서술은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것으로, "한국은 시민사회가 약하고 국가가 강하다."라는 분석과 비슷한 의미일 뿐이다.



2

  조직의 부재는 개인의 원자화라는 결과를 낳는다. '학생운동'이라는 형태로 80년대-90년대 초에 비교적 높은 자발적 조직화율을 보여주던 20대-대학생들의 현재를 관찰하면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최근에 각광받는 "88만원 세대"(박권일,우석훈)나 "자기계발하는 주체"(서동진) 등의 논의들을 보면 각각의 이론적 틀에서 그런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라고 쓰면서 정작 아직 서동진 씨 책은 안 읽어봤다 -_- 서평만 읽어봤지;;) 그렇지만 20대의 경우에 이러한 '변화'가 더 눈에 잘 띈다는 것 뿐, 이는 비단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우 낮은 노조조직률, 껍데기뿐인 학생회, 지역 기반 운동의 부진,(지역주의적이고 국가 권력을 등에 업은 정당들을 제외한) 정당들의 적은 당원 수 등등… 우리는 한국 사회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개인의 원자화가 사회의 보수화를 불러온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거대한 사회 구조 속에서, 원자화된 개인은 사회 변화에 대한 상상을 할 수 없으며 사회 구조에 적극적으로 편입된다. 무력감 속에서. 문제들은 항상 개인화되고,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정치적/집단적 해결책은 사라지고 윤리적/개인적 해결책들만이 제시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당한 부당한 피해를 주변 사람들을 조직하여 행동하고 정치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개인으로서 제도에 의존하는 방법을 택한다. '신고'처럼 권력기관에 의한 제도적 구제를 요청하는 방식. 아니면, 자신이 사회적 권력자(또는 일종의 영웅.)가 되는 방식. 이 두 방식 모두 대단히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식들만이 '현실적'인 방식들로 받아들여진다.

  무력감이 없어야만 민주주의라는 더글러스 러미스의 지적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상황이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계급상승의 꿈이나 출세의 꿈을 꿀지언정 스스로 사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논의하여 해답을 도출해내기보다는 권리를 위임하고 권력 기관에 의존한다. 시민 사회가 약하고 국가가 강력한 상황이 역으로 국가 권력을 더 강고하게 한다는 것은 우울한 재생산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적'이라는 말은 기껏해야 공직선출권-피선거권과 선거권 이상으로 얼마나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건강하고 잘 굴러가는 정당이 없이는 국회나 정부 등이 잘 기능하기 어렵듯이, 다양한 조직들이 존재하지 않는 - 시민 사회가 약한 상황에서는 민주주의가 잘 운영될 수 없다.




3

  운동의 영역에서, 조직의 부재는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일정 이상의 규모를 가진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 운동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들은 극단적으로 좁아진다. 제도적인 기구들에 의존하는 대응, 이슈파이팅, 입법운동 등등... 파업 등의 방법도 거의 무력화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는 더 두드러지는 문제점이다. (한국의 운동들이 많은 경우 입법운동에 치중하게 되는 것은 이런 우울한 현실 탓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민 없는 시민운동" 같은 말들이 시민단체를 비난하려는 의도로만 사용되는 것은 다소 부당하다. 단체들의 운동 방식을 더 개선하기 위한 연구들도 있어야겠지만, 한국 사회 전체가 조직화가 안 되는 판에 그것을 단체들만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른바 '대중'들과 접촉할 수 있는 경로들이 매스미디어와 거리선전 등 외에는 거의 없는 상황은 운동 주체들에게 끊임없이 두통이나 과로 같은 건강상의 문제들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고 있다.

  조직화되지 않은 대중들의 자발적 봉기가 가장 건강하다는 식의 주장은 낭만주의자의 근거 없는 환상이다. 비조직 대중들의 자발성을 역설하는 사람에게, 나는 "아 물론 사람들에게는 그런 자발성이 있죠."라고 말해준 다음에 그런 '대중들' 속에서 기존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현실들을 수없이 많이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논의할 수 있는 구조[조직/공론장]조차 없는 막막한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임을 과거의 사례들을 들어가며 들려줄 수 있다.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든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개개인들의 자발성은 촛불집회처럼 일시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아무리 암울하고 원자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도 인간에게는 바람직한 사회성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는 하겠지만, 그 자체만으로 지속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팬클럽이나 인터넷 카페, 동호회 등의 조직들이 촛불집회에서 한 활동들을 연구해보는 게 더 나을지도.)

  그리하여 우리의 과제는 조직화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조직이 없다면 조직을 만들면 된다. 긴 시간이 걸리고 매우 어려운 일이더라도, 여하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만일 조직이 없는 이 현실이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하고 조직화되는 경험을 함으로써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면, 청소년 대중 조직화나 청년 조직화 등은 장기적인 해결책 중 일부를 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대 때 조직화를 경험하고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해결 방식을 경험한 사람들이 30대 40대 50대 60대...(후략)... 가 되어도 조직화되기 쉽다고 가정한다면, 혹은 한나 아렌트 표현대로 '정치적/공적 자유'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면 말이다.(과거 20대 때 학생운동[조직화]을 경험한 사람들이 꼭 그 이후에 조직화되어 있느냐, 하는 반문이 분명 가능하며, 따라서 이걸 주된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건 매우 뻘쭘한 일이다. 동시에 추진되는 다양한 해결책 중 하나 정도의 위치로 이해해야 한다.) 어쨌건 그런 류의 가정을 하지 않더라도, 10대든 20대든 30대든 40대든, 0대든 80대든, 조직화는 필요한 일이니까.

  여하간, 그리하여, 문제는, 조직화다.






(네스티캣 님의 미디어다음 연재 웹툰, 트레이스에서....)







# 이 글에서 '조직화'나 '조직'을 사람에 따라서 '함께하기'라고 읽든 '공동체'라고 읽든 딱히 반대하지는 않겠다.
Posted by 공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무척 공감하는 글.

    그런데 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조직화에 신경쓰기 보다는 촛불을 미화시키고 다시 촛불이 일어나길 소망하는데만 급급한걸까?
    그렇게 하는게 (마음이든 몸이든) 편해서?

    2010.02.15 10:54 [ ADDR : EDIT/ DEL : REPLY ]
    • 혁명적 상황이란 게 조직화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별 부담없이 나서는 상황인 건 맞는 말 같은데, 그렇지만 조직화가 일정 이상 되어 있지 않으면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보이는데 말이지-
      마음과 몸이 편해서라기보다는; 당장 정부에 대응은 해야겠는데, 조직화라는 건 성과를 보려면 길게는 10년을 내다봐야 하는 일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싶기도 -_-;

      2010.02.15 12:50 신고 [ ADDR : EDIT/ DEL ]
  2. ㄹㄷ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지킴이 내 병은 내가 고친다

    2010.09.22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3. 곰돌

    이 글이 나왔을 땐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 와서야 이해하겠다는 -_- 모종의 성장이 있었던건지, 여하간 멍청했고 (지금도) 그러한 거 같단 건 사실인둡 흑

    2011.02.08 00:36 [ ADDR : EDIT/ DEL : REPLY ]
  4. 곰돌

    읽을 때 마다 몹시 다른 느낌들이 느껴지는군요...

    2012.03.18 22:42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