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4

『오버 더 호라이즌』 : 지금 여기 삶에 대한 사랑

『오버 더 호라이즌』. 2004년.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만일 나에게 이영도의 장편소설 중 사람 홀리기로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별다른 주저 없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꼽으라고 한다면, 『눈물을 마시는 새』와 『오버 더 호라이즌』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이영도가 쓴 판타지 소설 단편집이다. '오버 더 ~' 시리즈 3편이 수록된 앞부분과, '어느 실험실의 풍경'이라는 카테고리로 3편이 수록된 뒷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오버 더 호라이즌」, 「오버 더 네뷸러」, 「오버 더 미스트」 세 편으로 구성된 앞부분은 하나의 세계관과 같은 등장인물들, 같은 배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연속성을 가진 작품..

흘러들어온꿈 2010.04.24

우리 사회가 아직 남자들에게 수컷 역할을 맡겨야 할 만큼 원시적이라는 사실에 고마워하도록 해라!

수호자들을 가리키는 '여신의 신랑'이라는 칭호는, 혼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나가의 사회를 놓고 볼 때 매우 기이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가의 여인은 한 명의 남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동물과 다름없는 재생산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나가의 사회에서, 이 '신랑'이라는 혼인 제도를 연상케 하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의미는 우리의 혼인 제도와 같다. 여신의 신랑이라는 칭호는 그들 수호자들이 다른 여인이 아닌 단 한 명의 여인인 발자국 없는 여신에게만 충실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렇다면 나가 사회에서 이들 수호자 집단은 동물적인 동료들에 비해 고등한 자들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의 혼인 제도가 나가들의 난혼보다 고등한 방식이라 믿는 것은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인 태도..

흘러들어온꿈 2010.02.13

이 세계가 자유를 보유하는 한 거기에 따르는 혼란은 허용되어야 한다

사회생활이 지나치게 세밀하게 조직되어서, 시인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는 이미 중대한 일이 모두 다 종식되는 때다. 개미나 벌이나, 혹은 흰개미들이라도 지구의 지배권을 물려받는 편이 낫다. 국민들이 그들의 '과격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나쁜 일이고, 또한 국민들이 그들의 '보수파'를 처형하거나 추방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나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고립된 단독의 자신이 되는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간극이나 구멍을 사회 기구 속에 남겨놓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더 나쁜 일이다 - 설사 그 사람이 다만 기인이나 집시나 범죄자나 바보 얼간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 그 시민들의 대부분은 군거하고, 인습에 사로잡혀 있고, 순종하고, 그 때문에 자기의 장래에 대해 책임을 질..

흘러들어온꿈 2010.01.20

이영도를 복기하면서

『드래곤 라자』를 복기(라고 하는 게 맞을까?)하고 있다. 직접적인 동기는 『그림자 자국』을 읽기 위해서다. 드래곤 라자 10주년을 맞아 황금가지가 드래곤 라자 애장판을 내놓으면서 이영도한테 애장판에 실을 후속작, 속편 같은 걸 부탁했는데, 이영도가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써서 줘버려서 탄생했다고 하는 책. -_-;; 그래서 『그림자 자국』을 읽으려고 대충 훑어보니까 아니 도대체 기억이 안 난다;; 이루릴이라거나 아프나이델이라거나 이름은 기억이 나는데 '어떤 캐릭터' 였는지가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드래곤 라자』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걸 처음 읽은 게 2000년인가 99년인가의 추석이었으니까 거의 10년만의 복기다. 『눈물을 마시는 새』처럼 사서 모셔놓고 두고두고 읽고 싶지만 그럴 돈은 없어서 ..

지나가는꿈 2009.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