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논평] 깔짝대는 식의 대입제도 개선안, 우리에겐 필요 없다

공현 2013. 9. 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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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깔짝대는 식의 대입제도 개선안, 우리에겐 필요 없다

- 교육부의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에 대한 우려와 비판


 

   지난 8월 27일, 교육부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발표하였다. 일단 이게 도대체 몇 번째 개선안인지, 또 이번 대입제도는 과연 몇 달이나 갈지, 궁금함이 앞선다. 야심차게 도입했던 수준별 수능도 1년만에 폐지를 한다고 한다. 온갖 베타테스트를 타의에 의해 당하고 있는 학생들 입장에선, 도대체 교육부는 제도를 도입할 때 충분한 준비를 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우리를 가지고 노는 건지 실험을 하는 건지 짜증이 난다. 또한 이번 개선안 역시 기존에 나왔던 무수히 많은 동족들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입시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내용이 전혀 아니고 학생들이 입시경쟁 때문에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걱정되는 부분들만 눈에 띈다.

 

1. 먼저 우려스러운 점 중 하나는 2017년 수능부터 현재의 문·이과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수험생들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을 전부 치르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입시본위제도 아래의 대다수 고등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과목은 물론 시간표마저 수능에 맞춰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수능의 문·이과 구분 폐지는 고등학교의 문·이과 구분 폐지로 직통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고등학생들이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전과목을 다 배워야 한다면, 안 그래도 공부 부담이 큰 학생들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더 늘리는 것밖에 안 된다. 게다가 일괄적으로 모든 과목을 배우도록 하는 것은 학생의 교육 선택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처럼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고 대다수 과목들은 학교가 정해주는 대로 수강해야 하는 불합리한 교육체제에서 더욱 퇴보하는 것일 뿐이다.

현행 문·이과 구분은 문과와 이과라는 구분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교과를 배울 기회를 제한하는 등 문제가 많기에 개선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문·이과의 선택은 실제로는 입시에 종속되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문·이과 구분 폐지는 학생들이 더 자유롭게 교육을 선택하고 참여할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문·이과 가릴 것 없이 수학, 사회, 과학 등을 모두 다 배우도록 하는 것은 개악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문·이과 구분 폐지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일 방안과 함께, 학생들의 교육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서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2.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는 점 역시 좋게 평가해줄 수 없다. 애초에 '한국사 필수화/강화' 논의부터가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역사를 국가가 정한 내용으로 배워야만 한다는 소리와 다름 없다. 이는 곧 국가가 교육을 통해 의무적으로 사람들에게 자국․자민족 중심주의, 국가가 보는 대로의 역사관을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인 양 생각되고 있지만, 사실 이는 대단히 국가주의적인 정책이다. 역사를 교양이나 비판적 시민의식의 성장을 돕는 지식으로 배우게 하지 않고 ‘애국심’과 ‘국가관’ 등을 주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국사 교과서'에 비해 많이 덜해졌다고는 하나 현재 한국사 교과의 내용은 자국․자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상당히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한국사 교육을 반드시 배워서 반드시 수능 시험을 치게 만들겠다는 정책을 반길 수가 없다.

  게다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 지식을 달달 외우고 있느냐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배우는지, 그리고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는지 하는 것이다. 한국사를 수능에서 필수적으로 치르게 한다는 것은 한국사를 시험용으로 ‘암기’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일 뿐이다. 이는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역사를 알게 되고 바람직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덜컥 집어넣는 것은 단순히 여론에 밀려 내놓은 대책으로 보이며, 이는 학생들의 부담만을 늘릴 뿐이다. 과연 이런 결과가 수험생의 선택의 자유마저 침해하면서 얻을 만큼 가치가 있는가?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서 시험을 통해 학생들이 강제로 배우게 하겠다는 것은 교육부가 교육의 수단으로 시험과 경쟁과 줄세우기밖에 모른다고 고백하는 꼴이다. 역사 교육의 제대로 된 모습은 학생들이 역사를 우리의 현재와 삶에 연관된 문제로 이해하고 의미 있게 공부하여 삶과 사회에 대한 지혜를 기를 수 있게 돕는 것일 터이다. 죽은 지식, 시험용 암기 과목으로 배우게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3. 물론 이번 개선안이 수험생 및 학생의 편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기존의 수천 개에 육박하는 수시 종류를 수시 4개, 정시 2개로 제한한 점과, 수시에서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것을 폐지 또는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는 나름 환영할 일이다. 적어도 뭐가 뭔지 잘 이해도 안 가는 복잡한 전형들 때문에 돈을 들고 입시 컨설턴트의 문을 두드려야 할 일은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입시 전형이 줄어들면 조금 덜 골치가 아파지고 약간 더 간편해지긴 하겠지만 학생들이 입시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다. 지금보다 대입제도가 더 단순했던 과거에도 입시경쟁교육은 학생들을 옥죄고 있었다.

 

 

  이번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은 학생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해 본 것인지 의심스럽다. 특히 이번 개선안 역시 지금의 입시경쟁교육의 병폐를 해소할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실망스럽다. 대입제도 개선은 입시경쟁교육을 없애고 학생들이 자유롭고 즐겁게 교육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긴 대입제도 변천사에 몇 글자를 더하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런 개선안은 학생들에게는 입시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우리나라 교육은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감만을 심어줄 것이다. 대입제도를 가지고 이렇게 깔짝대는 것은 학생들을 놀리는 짓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커다란, 근본적인 변화다.

 

  경쟁적인 교육은 교육이 아니며 오히려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대학서열화를 없애 대학을 평준화해야 한다. 원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대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아가 대학을 굳이 안 가도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근본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등수를 매기기 위한 모든 시험들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으므로 폐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의 교육은, 무늬만 교육인 채로 여전히 학생들을 괴롭히고 줄세우고 차별하는 제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교육부는 수박 겉핥기식 개선안을 내놓은 것으로 안주해선 안 되며 입시경쟁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 노력의 첫 걸음은, 학생, 교사, 시민 등 여러 사람들이 교육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일 것이다.

 




2013년 9월 11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