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2019. 11. 26. 11:09

[여러분이 자신을 제 선배라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 고등학생운동을 하셨던 분들에게, 청소년운동의 활동가가 띄우는 편지

 

제가 처음으로 고등학생운동에 관련된 이야기를 접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때 읽었던, 최시한의 소설집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초의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소설집이지요. 물론 거기에는 고운의 조직적 활동 모습 등이 나오지는 않지요. 하지만 학생들이 억압적인 학교와 경쟁교육에 고통받고, 저항하고, 탄압받고... 또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가 쫓겨나면서 벌어지는 일들 등을 보며, 고등학교에 다니며 청소년운동을 했던 저 자신의 경험을 이입했습니다. 두발자유를 주장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다가 교무실에 불려갔을 때는, “모든 잘못이 다 죄는 아니다. 우리는 허가받아야 할 일을 한 적이 없다.”라는, 〈반성문을 쓰는 시간〉의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대학입시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리고 몇 년 후에는 대학입시거부선언을 함께 준비하면서 “우리는 마라톤 선수가 아닙니다. 모두 승리하면 누가 패배합니까? 자기 촛불을 꺼! 그러면 아무도 패배하지 않아!”라는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에 나오는 대사를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면 고등학생운동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부터 제 운동에는 고등학생운동이 함께했었네요.

 

저는 1988년생이고, 2005년 고등학교에 다니던 중 청소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역사연구팀’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때 우리의 고민은 청소년운동에 제대로 정리된 역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뭘 했는지도 잘 모르는 채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도 하고 운동의 정당성이나 흐름도 잘 알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과연 우리가 하는 운동은 무엇인지, 누가 무엇을 해 왔는지를 찾아 나갔습니다.. 그때 역사를 찾고 정리하다가 만난 것이 고등학생운동이었습니다.

 

1987년 전후로 시작되어, 1990년대까지 이어졌던 운동. 누군가는 ‘참교육 1세대의 운동’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교육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중고등학생 운동’이라고도 부르던. 저에게는 놀라운 역사 속 이야기들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학생회 자치권, 보충수업철폐투쟁, 두발자유투쟁, 입시경쟁교육철폐, 교복부활반대... 그런 주장들은 제가 하는 청소년운동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요. 당연히 고운에 존재했던 여러 경향의 정파들이나 주장들에 제가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활동을 청소년으로서 중·고등학생으로서 하는 경험, 《나무에게서 온 편지》에 나오듯 '패륜아' 소리를 들으며 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탄압과 백안시를 당했던 경험은, 세월을 넘어 너무나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비록 제가 하는 운동은 30년 전의 고운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직계인 단체도 없진 않지만) 저의 경우에는 조직이나 사람을 직접 계승한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저는 고운이 저희의 선배(먼저[先] 했던 세대[輩]란 의미에서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30년 전에, 중고생이자 청소년으로서 변혁주체, 운동가가 되었던 수백 명, 수천 명, 어쩌면 수만 명의 사람들을 선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30년이 지난 지금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청소년이 정치의 주체라고 말하는 우리들을 후배라고 여겨 주기를 바랍니다. 자신들의 10대 때를 떠올려서라도, 지금의 청소년운동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김철수 열사의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가 인간적인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김수경 열사가 남긴 “전교조를 지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가 학교 다니기가 불편하다면, 아니 고통스럽다면 이미 그곳은 학교가 아닙니다.”라는 말에 공감할 사람들이 우리 청소년운동의 활동가들이기를 꿈꿉니다.

 

청소년운동이 나서서 고운을 기억하는 자리를 준비해 본 건 이번이 아마 처음 같습니다. 그동안 출판기념회 등 관련된 자리에 저나 다른 활동가들이 몇 번 참석하긴 했지만요. 비록 고운에 참여했던 분들이 자신을 저의 선배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참석해 주셔서 제게 선배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데는 전교조 30주년을 맞이하여서, 전교조만이 아니라 함께 나섰던 학생들도 기억하자고, 교육을 바꾸기 위해 나섰던 주체는 교사들만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는 욕심도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전교조에서도 많은 분들이 고운을 잊지 않고, 참석하셔서 함께 이야기 나누면 반갑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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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학교와 정권에 맞서 싸웠다

- 8090 참교육운동을 했던 학생들의 이야기마당 -

11월 29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 430호

 

참가 신청 : https://forms.gle/gGQyJgjifsUMZwuA6

 

30년 전 민주주의, 통일, 해방을 꿈꾼 이는 어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주적 학생회, 입시경쟁 철폐, 전교조 교사 해직 반대를 외치며 나섰던 중고등학생들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또한 그때 행동했던 사람들과 지금 행동하고 있는 청소년과의 만남을 이루고자 합니다.

 

 

이야기손님

조한진희(반다) 활동가, 다른 몸들(준)

정용주 초등 교사, 전교조 조합원

양돌규 노동자역사 한내

안수찬 한겨레 기자

김영희 연세대 교수

이수경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

 

주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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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9. 9. 29. 23:53

①편 https://gonghyun.tistory.com/1274

★ 식사

제네바에 오는 걸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한 건 식사였다. 물가가 아주 비싸다는 이야길 여럿에게 들었는데... 체류 예산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주된 요소였다. 게다가 말도 잘 안 통하는데 레스토랑에서 주문 같은 걸 잘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고. 그런 주제에 나는 또 맛있는 건 찾아 먹어야 성에 차는 인간이니...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하루 식비는 30-40CHF 정도 선(한국 돈으로 3만 6천원~5만원)에서 해결이 되었다. 그것도 같이 간 사람들에게 좀 사 주거나 적당히 괜찮은 걸 먹으면서 그랬고, 더 아끼려고 했다면 아마 가능했을 것이다. 처음엔 한 끼당 3만원까지도 각오했었는데 그보다는 덜했다.

식비를 아끼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건 역시 숙소 조식. 조식이 포함된 걸로 숙박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숙소 1층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식빵, 크로와상, 바게트, 치즈들, 버터, 잼, 과일, 시리얼, 쥬스, 커피를 맘껏 먹을 수 있었다. 거기서 배불리 먹고 나서니까 점심 등은 좀 간소하게 먹어도 됐다.

(숙소 조식)

또한 커피도 대체로 아침에 여기에서 자동 원두커피 기계로 내려서 텀블러에 담아서 들고 다니며 마셔서 돈이 들지 않았다. 본심의 진행 중에 팔레 윌송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한 번 사 마셨는데, 이때 2.1CHF이 들었다.(0.1CHF는 종이컵 값) 근데 그 한국 편의점들에 있는 그런 자동원두커피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맛은 없었다. -_- 

두 번째 요소는 '카페테리아'였다. 보통의 식당이 아니라 UN이나 기관 등에 딸려 있는 카페테리아... 한국으로 치면 구내 식당? 그런 곳들은 비교적 가격이 저렴했다. 예를 들어, 팔레 윌송 1층 카페테리아에서 베지테리안 누들과 감자튀김을 먹으니 13.5CHF였다. 보통 식당 메뉴판을 보면 음식 하나에 18-20CHF 정도는 되는데 말이다.

(팔레 윌송 카페테리아에서 먹은 베지테리안 누들 메뉴와 감자튀김. 제네바 식당들에서는 재료가 뭔지 대체로 다 메뉴판에 적어 놓고, 카페테리아에도 베지테리안 메뉴들이 한두 개씩 있어서 편했다.)

 

더 자세히 제네바에서의 식생활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월요일 점심에는 점심으로 다른 시민단체 사람들과 같이 피자를 사서 먹으며 회의를 했다. 피자와 음료 등을 적당히 나눠서 사다 보니 내가 피자 1판 값을 냈는데, 피자 1판이 30CHF였다. 그런데 피자도 1판으로 2명이 배불리, 조금 적게 먹는다면 3명도 먹을 수 있으니 꽤 저렴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채 피자로 주문했더니 가지와 버섯 등이 토핑으로 올라갔다. 피자는 매우 맛있는 편. 한국에서도 나폴리 정통 피자라고 하는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피자의 90% 정도 수준의 맛이었다.)

 

월요일 저녁에는 한국에서 갖고 온 컵라면을 먹었다. 끓는 물은... 숙소 1층에 커피 자판기가 있는데, 그 자판기에서 뜨거운 물(Hot water)을 1CHF에 팔았다. ㅎ... 그거 2컵 사서 넣으니 대충 컵라면 하나 채울 수 있더라. 그거에다 마트에서 사온 6.6CHF짜리 '밥샌드위치'(재료 구성을 보면 참치주먹밥인데, 생긴 게 샌드위치처럼 삼각형이다.)를 먹었다. 합쳐서 8.6CHF로 먹은 셈이다.

화요일 점심은 팔레 윌송 카페테리아에서 먹었고, 저녁은 좀 돈을 써서... 외식을 결의한 사람들 대여섯 명이 꼬나방 역 근처 베트남 음식점에 갔다. 거기에서 두부 요리 19CHF짜리와 사이드로 주문할 수 있는 볶음면(팟타이 같은 거였다) 5CHF짜리를 해서 24CHF어치를 먹었다. 맥주도 한 잔 했는데, 이건 월요일에 피자 값을 나에게 빚진 다른 분이 사주셨다.

 

수요일 점심은 나시옹 근처에서, 굿네이버스 제네바협력사무소 사람이 소개해 준, 어떤 공공기관 1층 카페테리아에서도 샐러드 등 해서 2개 메뉴를 선택하여 18CHF으로 먹었다. 저녁은 월요일과 같은 피자가게에서, 돈을 모아서 피자로. 내가 부담한 돈은 20CHF.

(카페테리아에서 먹은 두부와 퀴노아 등이 들어간 베지테리안 메뉴. 왼쪽엔 피자라고 생각하고 주문했는데 뭔가 피자랑 달랐던... 치즈와 야채 등이 들어간 요리)

 

목요일 점심은 일정이 모두 다 끝난 뒤 숙소에서 짐을 찾아 나와서 숙소 앞 영화관-쇼핑몰에 딸려 있는 푸드코트에서 먹었다. 롤 등을 먹었는데 24CHF가 나왔다. ㅎㄷㄷ

저녁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먹었는데, 공항 안쪽의 레스토랑은 찾아보니 가격이 매우 높다고 했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뢰스티 같은 스위스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발품을 팔아봤지만 적당한 식당을 찾지 못했다. (보안검색대를 지나서 출국장엔 혹시 좀 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 바로 위에 있는 피자리아...(이름이 Al Volo Pizzeria 였던가?)에서 오믈렛을 먹었다. 가격은 19CHF. 화이트와인 1잔은 곁들였는데 이건 4CHF 정도 했다.

 

내가 마트에서 주먹밥을 사 먹었듯이, 마트에서 빵과 치즈, 롤, 그리고 과일 등을 사서 2-3명이 같이 먹으면 1인당 10CHF 이내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듯했다. 실제로 월요일 점심-저녁에 일행 중 다른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먹기도 했고.




 

★ 물가와 쇼핑

이미 적었듯이 식당 등에서 물가는 최소 15CHF, 제대로 배부르게 먹으려면 20-30CHF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트(슈퍼마켓)에서는 어떨까? 일단 비교적 저렴하다는 인상이었다. 예를 들어 생수가 숙소 자판기에서는 500ml짜리를 2CHF에 팔았는데, 마트에서는 2L짜리 생수 6개 묶음을 4CHF 정도에 파는 식이었다. 허허... 그리고 큰 환타 1병이 2CHF 정도였으니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셈. 과일이나 빵도 그렇게 비싸진 않았다.

스위스가 한국보다 임금 수준이 많이 높고, 물건들의 물가는 그렇게 비싸지 않으니, 스위스 내국인으로 살기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임금도 높고 노동력이 직접 투입되는 종류의 일(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의 가격이 비싼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일 목요일에 UN아동권리위원회 심의 일정을 모두 마친 뒤 마트에서 선물 쇼핑을 했다. 선물용 초콜렛 큰 거 6개 정도, 치즈 조금, 그리고 샤슬리 품종 화이트와인 1병 등을 샀는데도 총 60CHF 정도밖에 안 됐다. 마트 물가는 확실히 식당 등에서 겪던 것보다 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 그런데 공항에 가 보니 공항 면세점 등에서 초콜렛은 아주 많이 팔고 있었고, 초콜렛은 그냥 공항 면세점이나 마트에서 살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아 참, 그리고 편의점이 없는 것 같았다. 주유소 같은 데 딸려 있는 슈퍼마켓이 외관상 편의점과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한국에 널려 있는 24시편의점과는 확실히 다른 듯했다. COOP이나 MIGROS 같은 마트는 공항이나 기차역이나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지만 편의점이랄 만한 곳은 없었고, 끓는 물이나 전자레인지 이용을 기대했던 나에겐 아쉬운 일이었다. 주먹밥이나 롤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수 있었으면 훨씬 나았을 것 같은데. (결국 갖고 갔던 햇반 하나는 그대로 다시 들고 돌아왔다. 전자레인지 쓸 곳이 마땅치 않아서. 카페테리아들에는 전자레인지가 있기는 했다. 사전에 몰라서 못 들고 갔지만.)

 

 

★ UN아동권리위원회 심의 대응 : 위원들 미팅 등

이제 본격적으로 UN아동권리위원회 심의 대응에 대한 이야길 해 보자면...

일단 국제아동인권센터 등에서 위원들과의 소통 등을 많이 맡아 주셨기 때문에 아주 상세한 절차 같은 것은 알지 못한다는 점을 말해 두고, 실제로 내가 한 것들 등을 위주로 적겠다.

- 위원들에게 전달할 로비 문서 작성 : 이미 제출한 민간보고서나 UN아동권리위 과거 권고, 쟁점목록 등을 참고하여 위원들에게 강조해서 전하고 싶은 이슈나 이런 질문+권고를 해 달라는 요청을 정리해서 사전에 작성하고, 한데 모아서 위원들 만나기 며칠 전에 메일로 보내 두었다.

- 위원들과 미팅 : 아동권리위원회 위원들 중에서 3명인가 4명인가가 대한민국 심의를 주로 담당하는 TF팀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보고서 등 관련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우선적으로 질문 기회 등을 가진다. 나머지 위원들은 자료를 다 숙지하지는 않는 것 같고, 원한다면 심의에 참석하는 식이다.

이번에 제네바로 간 시민단체 사람들은 우선 TF팀과의 미팅 일정을 먼저 잡았고, TF팀 외의 위원들에게도 시간 되면 만나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이를 위해 아동권리위원회 위원들의 전공이나 이력, 과거 다른 국가 심의에서 주로 무슨 주제에 대해 관심 갖고 질문하는지 등을 사전 조사했고, 그 주제를 위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했다. 이번에는 18일 오전에 TF팀 위원 2명과 미팅을 가졌고, 17일에 필립 쟈페, 앤 스켈턴 위원과도 미팅을 했다. 필립 쟈페 위원은 체벌, 아동학대, 아동참여 등에 관심이 많은 걸로 파악돼서 그 주제로 이야기했고 앤 스켈턴 위원은 소년사법제도 등에 관심이 많은 걸로 파악돼서 그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 밖에도 특정 이슈에 대한 특별보고관들과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TF팀 위원 2명과 미팅)

(필립 쟈페 위원과 미팅)

미팅 요청을 하는 이메일 등 연락을 하는 데는 딱히 자격 조건은 없다고 한다. 다만 만나 줄지 말지는 위원들 맘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신뢰도가 있거나 한국 시민단체를 좀 대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잘 만나 줄 듯싶다. UN아동권리위원들은 대체로 NGO에 우호적인 태도였다. 또한 사전심의 등에서 접한 아동 당사자 이야기를 중요하게 기억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 위원들을 만나는 일정이 주로 팔레 윌송에서 진행됐는데, 팔레 윌송이나 팔레 나시옹이나 들어가려면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 사전에 온라인으로 PASS 발급을 신청했고 UN본부에서 수령했다. 근데 나는 신청할 때 현지 지형을 잘 몰라서 팔레 윌송에서 발급받는다고 신청했는데, 16일에 UN아동권리위원회 30주년 행사를 보려고 팔레 나시옹에 가서 PASS를 달라고 했더니 "당신은 윌송에서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중복으로 발급 못 해 줍니다."라고 해서 매우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좀 우겨서 어찌저찌 PASS를 받았다. 어디서 PASS를 발급받는지 등을 잘 확인해 두도록 하자.

(팔레 나시옹에서 진행된 UN아동권리위원회 30주년 행사. 빔으로 트위터 해시태그 실시간 수집해서 띄워 주길래 나도 열심히 써서 청소년 참정권 등의 메시지를 올라가게 만들었다. ㅎㅎ)

 

(나시옹의 UN본부)

(팔레 윌송. 아래는 와이파이)

(팔레 윌송 앞에는 호수가 펼쳐져 있어서 전망이 아주 좋다.)

- 현지에서 대응하러 온 시민사회단체들끼리 만나서 누가 위원들 미팅에서 어떻게 이야기할지 등을 조율했는데, 사실 이건 오기 전에 미리미리 했으면 더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일정 속에서 하려니... 그러나 사전에 일정 맞추고 회의하는 그게 잘 안 됐던 것이라 뭐,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겠고... ㅠㅠ

자료 같은 경우도 잘 수합이 안 되어서 현장에서 새로 작성하고 가공하고 그런 것이 많았고, 전달하는 일 등을 맡은 활동가들이 매우 고생하셨다. 앞으론 미리미리 준비를 잘해서 가면 좋을 텐데.

현지에서 거의 매일같이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회의를 했고, 위원들도 만나고 회의도 하고 매일같이 하려니 매우 피곤한 일정이었다. 회의 장소는 주로 굿네이버스 사무실, CAGI 사무실 등을 빌려서 진행했다. 급할 땐 UN본부의 카페테리아나 소파에 모여 앉아서 하기도...

(많은 회의를 한...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이 있는 건물 입구. 팔레 나시옹 근처에 있다.)

 

★ UN아동권리위원회 심의 대응 : 본 심의 현장

(팔레 윌송 앞에서 19일 오전 심의에 가려고 입장을 기다리는 중. 10시부터 심의 시작인데 NGO는 9시 30분부터 입장 가능하다고 해서 어이없어 하던 중이다. 정부 대표단은 일찍 들여보내줬기 때문...)

18일 오후 3시-6시, 19일 오전 10시-오후 1시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본 심의가 진행됐다. 심의는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위원들이 한국 정부 대표단에게 질의와 지적을 하고 이에 대해 한국 정부 대표단이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미처 답변을 다하지 못한 내용은 심의 종료 후 48시간 내에 서면으로 답변을 제출해야 한다. 한국어 동시통역이 제공된다.

본 심의 일정 중 시민사회단체들은 현장에 앉아서 (1) 속기 (2) (한국에서 모니터링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위원들에게 이런 내용 말해달라, 한국 정부의 이런 답변은 거짓이다, 같은 메시지 전달하기 를 주로 한다. 속기와 더불어 영어-한국어 통역 내용 중 잘못된 통역이나 왜곡을 잡아내는 일도 했다. 나는 속기를 맡아서 했고, 본 심의 종료 후엔 속기 내용을 바탕으로 언론에 배포할 보도자료 초안을 작성했다.

(심의가 시작되기 직전)

위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대체로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직접 위원한테 가서 말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본 심의가 진행되는 회의장에 함께 앉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중간에 가서 말을 거는 건 비교적 쉽다. 말로 다 못 하겠으면 종이에 관련 사항을 적어서 주면서 말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위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이건 사전에 미팅을 할 때 위원들에게 심의 중에 이메일을 보내도 되는지 물어봐서 오케이 한 위원들에게 쓴 방법이었다. 위원들이 노트북을 펼쳐 놓고 심의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메일을 보내면 확인을 하면서 심의에 대응하게 하는 게 가능하다. 이번 심의 때는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이야기하는 '간접체벌'이 도대체 무슨 개념인지, 그래서 한국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됐단 건지 안 됐단 건지 헷갈려하는 위원에게 간접사진 관련 사진 자료와 함께 설명을 보냈다. 다만 이건 사전에 양해를 구한 위원에게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밖에도 Child Rights Connect라는 현지 단체가 위원들과 연결 등을 주선해주기도 하고 메시지를 대신 전해준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그 단체에서 대응 방법과 절차 등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현장에서는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실제로는 이 단체를 거쳐서 위원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

질의를 하고 한국 정부 대표단이 답변을 하는 형식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느낌엔 위원들이 정부 대표단에게 의미 있는 답변을 바로 받는 걸 기대하고 질의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관심 가지는 이슈, 문제의식이 어떤 건지를 전달하고 한국 정부에게 경각심을 가지라고 촉구하는 것에 가깝게 느껴졌다. 중간중간에 답변을 추궁하기도 했고 정말 궁금해서 물은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리고 한국 정부 대표단 답변 역시 꽤나 성의가 없어서 기존에 제출했던 보고서와 답변서를 그대로 읽기도 했고,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안 내놓고 동문서답 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본 심의에서 질의가 나온 이슈는 대체로 최종 견해 중에도 언급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 영어 능력이 필요해

이번에 간 일행들이 모두 외국어 능력이 갖춰진 사람들만 있던 건 아니었고 나를 포함해서 영어로 대화를 거의 못 하는 사람들도 2-3명 있긴 했다. 그래서 영어를 좀 더 잘하는 사람들에게 순차 통역을 부탁하는 식으로 위원들에게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쟈페 위원 미팅 때 아동 참여에 대해 내가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직접 준비해서 해 봤지만... 미리 준비했음에도 너무 버벅거려서 역시 난 하지 말아야겠단 자괴감만 들었다.)

이번엔 그렇게 하긴 했지만 역시 이런 대응을 하러 외국에 가려면, 영어가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이 가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영어로 설명을 했다면 예를 들어 10문장을 말할 수 있었을 것을, 한국어로 말하고 다른 사람이 영어로 통역을 해 주려 하다 보니까, 아무리 사전에 내용 공유도 하고 준비도 했어도 6문장 정도밖에 말을 못 전한다. 그러나 위원들 미팅은 보통 1시간 이내로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고, 전달할 이슈와 내용은 너무 많기만 하다. 그러니 영어로 직접 말을 못 해서 낭비된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또한 위원들과 미팅 때는 따로 통역이 제공되지 않으므로 위원들이 하는 영어를 직접 듣고 이해해야만 한다. 나는 한 명의 위원과만 만날 때는 집중하니까 어찌어찌 내용 파악이 됐지만, 여러 위원들을 만나고 좀 넓은 데서 소리가 조금만 울려서 잘 안 들리게 되면 50% 정도밖에 내용 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나중에 다시 물어봐야만 했다.

UN아동권리위원회 같은 이런 UN인권기구 심의 대응을 가려면, 해당 이슈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하고, 또 그 전에 작성한 민간보고서나 쟁점목록, UN인권기구-체제의 성격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하지만, 그와 더불어 영어 실력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마지막으로... 같이 간 일행들 중 몇몇 분들은 자신들이 다루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 위원들이 질의를 하고 최종 견해에 반영되게 하는 것에 매우 열심이셨다. 그에 비해서 나는... 물론 내가 이야기하는 이슈가 중요하고 위원들이 알고 지적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만큼 위원들에게 하나하나 다 전하는 데 열성적이지는 않았다.(내가 전달하려고 준비해 간 이슈는 참정권, 표현-집회-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종교의 자유 + 학생인권 등이었다.)

왜냐면... 설령 UN아동권리위원회 권고가 나온다고 해도 한국 정부가 그대로 따르지도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결국 권고가 나오는 것보다도 우리가 어떻게 운동을 잘 만들어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러 이슈들이 다 중요한데,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전달하려 노력했지만, 딱 내 이슈를 좀 더 강조하려고 애쓰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막연하게... 활동가에게는 이런 국제기구가 운동에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레퍼런스일 뿐이지만, 변호사/지원자 등은 더 이런 국제기구에서의 한마디에 더 큰 기대를 품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워 보았다. UN아동권리위원회 대응 등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자세와 사고방식의 차이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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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9. 9. 29. 16:59

 

2018년쯤부터 UN(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에 대한 제5·6차 정기 심의가 진행 중이다.

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심의는 대충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진다.

국가(정부)보고서 제출 -> 민간보고서/당사자보고서 등 시민사회에서 보고서(NGO보고서, 대안보고서 등으로도 불림) 제출 -> 사전심의(Pre-Session) -> 쟁점목록(List of Issues) 질의 -> 쟁점목록 국가 답변서 제출 + 민간 추가의견서 제출 -> 본 심의(정부 대표단에 대한 질의 등) -> 아동권리위원회 최종 견해 발표

본래 5년에 한 번씩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정부에서 보고서를 늦게 낸다든지, 유엔 측 일정 문제라든지 그런 이유로 텀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한국은 2000~2003년 제2차, 2011년 제3·4차, 2019년 제5·6차 심의를 받게 되는 식으로, 심사 기간 등이 길어지고 사이 간격도 늘어져서 회차를 병합해서 심의를 진행하게 됐다.

미국처럼 자기들이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라고 큰소리 치면서도 정작 UN아동권리협약도 가입하지 않은 나라도 있고, UN아동권리협약 가입 국가들이라고 해서 협약상 의무인 정기적 보고서 제출과 심의에 성실히 응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한국처럼 심의에 잘 응하는 것만 해도 상대적으론 훌륭하단 소리도 들어 봤다. 그러나 이번에 이래저래 대응하면서 알게 된 건 정부가 보고서를 꽤나 제때 내지 않는다는 것. 단적으로 이번 심의에서도 쟁점목록에 대한 답변을 5월까지 해 달라고 했는데 한국 정부에서는 8월에야 답변을 냈다. 그런 식이니까 심의가 길게 늘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인권운동 진영 측에서는 지난 2011년 심의 때만 해도 민간 보고서 작성 등에도 거의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운동의 역량이 커져서 + 시민사회단체들 내에서 입지가 생겨서 이번에는 민간 보고서 작성에도 꽤 비중 있게 참여했고, 9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루어지는 본 심의 현장 대응에도 내가 참석하게 됐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본 심의 때 참여하여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들과 사전 미팅을 가지며 한국 상황을 알리고 강조하고 싶은 이슈를 알리기도 하고, 본 심의 현장을 참관하며 현장에서 나온 위원들의 질의나 발언, 한국 정부의 답변 등을 기록하여 언론들에 전달하기도 한다. 

이번에 내가 민간 보고서 작성 등에도 적극 참여했고 또 일주일쯤 시간 내서 스위스를 다녀올 여건에 있었던지라 가게 됐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외국어라고는 영어도 거의 잘하지 못하고! 또한 해외여행이라면 질색을 하며 거의 가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내 해외여행 경력은 아주 어릴 적에 패키지 여행이나 학교 수학여행 등을 간 걸 다 포함해도 중국, 일본, 태국 총 3회밖에 되지 않는다. 뭐 이것도 꽤 호사스러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여하간 외국 여행 경험이 풍부하다곤 할 수 없다.) UN아동권리위 대응 관련 내용 준비만 해도 벅찬데, 나는 스위스 행을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야 했으니... 게다가 스위스에 관광 목적으로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검색해 보면 꽤 찾을 수 있었지만 나처럼 UN 대응을 해야 해서  간 사람들의 경험담 같은 건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블로그에 간단히 대략적인 여정과 제네바에 머무는 팁을 써 둔다. 다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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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편

스위스행이 좀 급하게 정해져서,  거의 출발이 3주 정도 남은 시점에서 항공편을 예약해야 했다.

9월 18~19일이 대한민국에 대한 심의 일정이었고, 17일에 위원들과 사전 미팅 일정 등이 잡힐 예정이었다. 그래서 늦어도 16일에는 도착해야 했다.

알아보니 스위스 제네바까지 가는 교통편 선택지는 두 가지 되는 듯했다.

(1) 취리히 직항을 타고 취리히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제네바로 간다.

(2) 어딘가(이스탄불, 모스크바, 파리, 기타 등등...)를 경유하여 제네바 공항으로 간다.

안 그래도 외국 여행 무서워하는데 취리히 공항에 내려서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탈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가격이 더 저렴했기 때문에, 경유해서 제네바로 가는 비행기 표를 찾아봤다. 가격과 시간 등을 감안해서 정한 건 러시아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가는 것은 15일 오후 1시쯤 인천공항에서 출발, 모스크바공항에서 1시간 30분 정도 간격을 두고 환승하여 제네바 공항에 현지 시각 오후 8시 반(한국 시간 새벽 3시 반)쯤 내리는 걸로. 오는 것은 19일 오후 9시(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4시)쯤 출발, 모스크바공항에서 5시간 30분 정도 간격을 두고 환승하여 인천공항에 한국 시간 20일 오후 10시 반쯤 내리는 것.

비행시간은 총 13-14시간 정도 걸리고 거기에 비행기 환승에 걸리는 시간을 더하면 총 여정 시간이 나온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어서 잘 몰랐지만, 좀 불안해서 아에로플로트 하나의 항공사로 비행기들을 통일해서 티켓팅을 했다. 총 비용은 97만원 정도 나왔다. (활동하는 단체에서 모금을 하여 공금을 지원받았다.) 나중에 알아 보니 환승 때 수하물이 별 문제없이 비행기에 실리게 하려면 한 항공사로 통일하는 게 더 낫다고 하더라. (서로 다른 항공사 비행기여도 제휴된 항공사면 잘 바꿔 실어 주기도 하지만...)

길디 긴 비행 시간을 견디기 위해 노트북에 게임, 전자책 및 종이책 등을 챙겨 갔다. 잠도 많이 잤고. 기내식은 잘 나왔지만 대부분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생선 중 2개씩 옵션이 있고 선택하는 식이다. 채식을 원한다면 티켓팅하고 체크인할 때 미리 요청할 수 있다던데 그런 걸 미처 몰랐다. ㅠㅠ 그래서 페스코에 가까운 채식을 노력하는 입장에서는 생선 옵션이 없을 때는 그냥 굶거나, 빵만 달라고 해서 먹었다.

인천-모스크바 때 기내식 안내
생선 요리가 메인인 기내식들. 샐러드 등에 곁들여진 고기류는 그냥 조금씩만 먹었다.

 

인천-모스크바-제네바 여정 중 환승 과정에서 소소한 사고가 일어났다. 안 그래도 환승 사이 시간이 1시간 30분 가량으로 길지 않았는데, 인천-모스크바 비행기가 30분 정도 연착해 버린 것이었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환승 과정에도 여권과 티켓 등을 보여주고 보안 검색을 한 번 더 받아야 하며, 게다가 모스크바 공항은 엄청- 대단히- 더럽게 넓다. 그래서 환승 과정에서 정말 숨이 턱까지 차도록 달려야만 했다. 오후 5시 20분부터 탑승, 50분 출발(러시아 시간)인 비행기였는데, 5시 45분에 간신히 탔다. 헥헥... 모스크바 공항 환승을 할 때는 2시간 이상 간격을 두시길 ...

모스크바 공항은 엄청 넓은데 안에 이런 술집들과 식당들과 면세점 등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제네바 공항에 도착했는데, 수하물로 맡긴 내 트렁크 가방이 오질 않았다. 환승 사이 시간이 너무 짧아서 짐이 미처 안 실렸던 것. 제네바 공항에서 수하물 담당하는 곳에 가서 내 짐이 안 왔다고 하자, 알아보고서 짐이 다음날(16일) 오전에나 온다고 하며, 짐이 오면 숙소로 보내 주겠다고- 숙소 주소를 적어 놓으라고 했다. 헉스. (이 모든 과정에서 나는 영어도 잘 못 했기에, 같이 간 변호사님이 영어로 대신 대화를 해 주셨다.) 짐은 결국 16일에 묵고 있는 숙소에 잘 도착했다.

 

★ 숙소

숙소는 호텔 체인인 ibis에 묵었다.  ibis budget Geneve Aeroport 라고, 제네바 공항에서 버스로 4정류장쯤 떨어져 있었다. 숙소도 당연히 내가 예약한 건 아니고... 아동권리위 심의 대응을 준비해 주신 공익변호사 단체 두루, 국제아동인권센터의 분들이 함께 예약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압도적 감사...)

 

숙소는 CAGI라는 제네바에서 시민단체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단체인지 기관인지...에서 일부 후원을 해 주었다. 덕분에 내가 묵은 방은 1인실인데 1박에 110스위스프랑(CHF)만 자부담했다. 이것도 꽤 비싸다 생각했지만, 현장에 가서 호텔 앞에 붙어 있는 요금표를 보니 1박에 200CHF 정도는 기본이더라. 무서운 스위스 물가...

15일에서 19일까지 4박 440CHF만 자부담했으나, CAGI의 지원이 없었다면 숙박비가 2배로 나갔을 것이다.

숙소는 한국의 좀 깔끔한 모텔이랑 큰 차이는 없었는데, 몇몇 차이가 있다면, 방 안에 냉장고가 없고, 기본 음료 같은 것도 구비되어 있지 않으며, 커피포트 또는 물 끓이는 전기 냄비 등도 없다.(포트가 없어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식사 부분에서 말하겠다.) 헤어 드라이어도 없다.(헤어 드라이어는 프론트에 말하면 준다.) 그리고 샤워룸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 침대가 2층 침대형으로 위에 1개 더 붙어 있었지만 쓸 일은 없었다.

수건은 갖춰져 있으며 매일 새 걸 준다. 샤워룸엔 비누와 바디워시 겸 샴푸인 게 함께 비치되어 있었다.

아 참, 전기는 한국과 전압에는 큰 차이가 없어서 쓸 수 있지만, 꽂는 콘센트의 모양 등이 달라서 꽂을 수가 없다. 따라서 해외여행 용 트래블 어댑터를 준비해 가야 한다. (나는 트래블 어댑터가 트렁크 가방에 들어 있었기에 첫날에는 노트북 충전도 잘 못 했다. 휴대전화는 USB포트로 충전했다.) 숙소 와이파이는 잘 된다.

스위스 숙소 ibis의 전기 콘센트.

숙소가 좋았던 점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아침마다 빵이나 시리얼 등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제네바의 호텔 등은 대부분 제공하는 거라던데, 제네바 트랜스포트 카드를 준다. 이게 있으면 제네바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 대중교통

말이 나온 김에 대중교통 이야기. 제네바 대중교통은 버스, 트램(노면전차) 등이 있는데, 한 정류장에서 버스나 트램이나 같이 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잘 구분을 안 하게 되고 대체로 번호로 기억을 하게 되더라... 길을 찾는 데는 주로 구글지도를 이용했지만, 구글지도가 노선번호는 대체로 정확하게 알려줬으나 정류장 위치 등을 잘못 가리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제네바의 트램

제네바에서 교통비는 별도로 들지 않았다. 먼저 공항에서 자판기 같이 생긴 거에서 버튼을 누르면 대중교통 무료 패스를 발급해 준다. 80분인가 90분인가 유효하다고 쓰여 있다. 그걸 갖고 숙소로 가면 숙소에서 앞서 적었다시피 트랜스포트 카드를 준다. 그 카드에 적혀 있는 기간(주로 숙박 날짜와 동일하다) 동안 대중교통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제네바 한가운데의 레만 호(엄청 커서 처음 보고 바다인 줄 알았다)를 다니는 배도 탈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이러한 카드를 얻지 못한 경우에는, 정류장 등에 티켓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으니 필요한 표를 구입해서 타야 한다.

제네바 대중교통은 별도로 요금을 내거나 비접촉식카드 등을 찍거나 하지 않는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와서 문 열리면 그냥 타면 된다. 느낌으로는 사실상 무상교통이란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실 완전히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불시 점검으로 적절한 트랜스포트 카드나 티켓을 갖고 있는지, 버스/트램에 검사원이 타서 검사를 한다고 한다. 검사했을 때 카드나 티켓을 소지하지 않고 있으면 10만원쯤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스위스 사람들은 정기권 같은 걸 사서 갖고 다닌다고 한다.

UN아동권리위원회 관련 일정은 주로 팔레 윌송Palais Wilson(UN인권고등판무관 사무실이 있다. 과거에는 UN 제네바 본부가 여기에 있었다.)과 팔레 나시옹Palais des Nations(현 UN 제네바 본부)에서 진행되었다. 관련 단체들도 팔레 나시옹 근처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공항-숙소-팔레윌송-팔레나시옹 이렇게 4곳을 줄창 오갔다.

팔레 나시옹은 Nations, 나시옹이라고 하는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여러 버스와 전차 등이 다닌다. 팔레 윌송은 호수 옆에 있는데, 교통이 좀 불편하다. 꼬나방Cornavin 역으로 가서 좀 더 골목으로 들어가는 버스로 환승을 하든지... 꼬나방 역에서 1번 버스를 타고 고티에Gautier라는 정류장에 내리면 팔레 윌송 입구까지 가깝다. 아니면 꼬나방 역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가든지... 호수 옆에 있는데 좀 다니기가 불편하다. 팔레 윌송과 나시옹 사이를 오갈 때는 15번 트램을 자주 탔다. 이래저래 꼬나방 역이 매우 크고 버스/트램 등이 많이 다니므로 환승할 때 자주 들르게 되었다. 

 

★ 언어

큰 의미는 없지만 내가 얼마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나 말하는 의미에서 언어 이야길 하면... 나는 스위스는 스위스어를 쓰는 줄 알았다. 제네바에 가서 버스 안내 방송 등을 들으며 '프랑스어랑 스위스어랑 참 비슷하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냥 프랑스어를 쓰는 것이었다. ㅎㅎ... 

스위스는 지역에 따라 프랑스어, 독일어 등이 쓰이는데, 제네바는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에 속한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프랑스어가 많고... UN 본부 직원들도 프랑스어만 할 줄 알고 영어는 잘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혹시 제네바를 오가며 사용할 언어를 준비한다면 프랑스어 공부를 해 가시는 게 좋을 듯.

그러나 기초적인 소통은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어찌저찌 되기는 했다. 우리 일행도 프랑스어 할 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영어로 대체로 소통이 되었다.

 

-

이후에는 식사, 물가, 그리고 UN 아동권리위원회 대응 과정 등을 설명하겠다.

 

 

②편 https://gonghyun.tistory.com/1275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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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19. 7. 23. 11:00


차라리

가장 슬픈 눈물은
눈물의 이유를 들어도
아무도 이해못할 눈물

차라리 안구가 말랐더라면
목을 울릴 공기가 없었더라면
숨이 멎으면 코를 훌쩍이지 않을 텐데
피가 멎으면 가슴이 들썩이지 않을 텐데

가장 슬픈 눈물은
흐르든 마르든 삼키든
아무도 상관없는 눈물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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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모래앞

    와.. 이런 시들을 왜 책으로 안내죠?

    2019.10.02 16:58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8. 12. 19. 18:23




[빽빽 프로젝트 후원 참가 호소 글]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의 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더해주세요!
- 공현


*
“아수나로/투명가방끈은 상근활동가가 누구예요? 누구한테 연락하면 될까요?” 못해도 열 번 정도는 들었던 질문 같습니다. 오랫동안 간단하게 “XXX예요.”라고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2006년부터 활동해온 아수나로나, 2011년에 만들어진 투명가방끈이나, 2016년 무렵까지 상근활동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상근활동가를 두기 위한 노력 끝에 겨우 생기긴 했지만, 월급은 10–50만원 정도로, 반상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단체 재정 규모를 보면 ‘여기까지 키운 게 어디냐’ 하는 뿌듯함도 들지만, 또 오르는 최저임금과 물가와 집 임대료 등을 보다 보면 도저히 쫓아가지 못하는 우리 임금 수준에 한숨이 나옵니다.

아주 가끔은 모욕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상근활동가도 없고 대표도 없으면 그냥 동아리 같은 거 아닌가요?” 물론 대표, 운영위원회, 이사, 이런 것들이 있어야 단체라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상근활동가가 있었다면, 한 달에 2-3번 모이는 것으로 활동이 운영되지 않고 상시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쉽게 우리가 어엿한 단체임을 주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
연대 단체들과 회의를 할 때면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체 활동가들은 보통 평일 낮 시간을 선호합니다. 그때가 그분들이 단체 근무를 하는 시간이니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전업 활동가가 없다 보니,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수업 때문에 안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따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일 때문에 안 되고……. 평일에 기자회견이나 대외적 행사 같은 것을 하려 하면, 실무를 챙길 사람도 빠듯합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과외/여가 활동’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공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평일-낮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도 말이죠.


*
<어느 신문 읽는 청소년인권 활동가의 의문>
(브레히트의 시 패러디)

누가 네 개의 광역지자체에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게 했는가?
신문에서 그대는 교육감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교육감들이 조례를 작성했는가?

몇 번이고 벌어지는 학생인권침해
누가 세상에 알리고 대응했는가?
활동가들이 관공서 건물에 앉아 있었던가?

국가인권위는 많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권고를 했다.
누가 진정을 내고 공론화했던가?
국회의원들은 학생인권법안, 청소년 참정권 확대 법안들을 발의했다.
그들이 혼자서 법안을 추진했던가?

두발자유가, 청소년 참정권이 공중파 TV 토론에서 다뤄지던 날 밤, 왜 활동가들은 패널로 초대받지 못했는가?
언론사 페이지에서 검색해보면 청소년인권에 관한 소식들이 잔뜩 나온다. 누가 그것들을 쓰고 말했는가?

조중동은 누구를 ‘운동권 고등학생/청소년’이라고 딱지를 붙였는가?
교육부는 누가 집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공문을 보냈던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청소년인권이 새삼스레 거론된다.
누가 이 문제를 잊히지 않게 이야기해왔던가?
그 밑에 누구의 삶이 있는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
저는 청소년인권운동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고,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있었기에 두발자유가 이슈가 되고, 체벌금지가 논의되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선거 연령 하향을 포함해서 청소년 참정권이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많은 학교들에서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규정과 관행을 개선하기도 했고, 청소년인권침해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줌으로써 많은 청소년들에게 최소한의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주적 직선제 학생회를 요구했던 1980년대의 투쟁과 교육 민주화와 사회 변혁을 위해 나섰던 운동을 우리가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보철투’가,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가 인간적인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고등학생 정치 활동 쟁취’를 외쳤던 문제의식이 지금의 청소년인권운동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운동이 실체를 가지고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람이 이어져야만 합니다. 이 운동이 계속되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인권운동에 터를 잡고 성장하는 활동가들이 정말 필요합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가로서 수십 년을 활동하고 인정받는 그런 활동가들이요. 학생인권을 개선시킨 것이 누구냐, 물으면 교육감들보다도 먼저 떠오를 그런 활동가들이요.

우리가 꿈꾸는,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꿈꾸는 운동이 먼저 만들어져야 하고, 우리가 꿈꾸는 운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제가 최근 함께 새로 만들고 있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은 바로 그렇게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가로 계속 삶을 꾸려가고 터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활동가조직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의 전문성과 안정성이 있는 활동가들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더 크고 깊어진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드는 것을 꿈꾼다면, 꿈꾸었다면, 활동가의 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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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도요? 내가 누군가의 삶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도요?”
“그건...... 그건 지병 같은 거요. 그냥 앓고 사는 거요.”
- 웹툰 《송곳》

13년 동안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저는 참 많은 사람들을 운동으로 끌어들였고, 또 떠나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을 사는 것이니,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책임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 사람들이 청소년인권운동 안에 어떠한 지속 가능한 전망이 없었기 때문에 운동을 지속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제가 그런 전망을 마련하지 못하고 다른 직장을 구해 임노동과 활동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20여 년 전, 30여 년 전에는 어땠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지 않습니까. 경제는 발전했지만, 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먹고살기는 더 어려워졌다... 경쟁과 불안정의 시대다... 그 말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인권운동을 열심히 할수록 구직과 생존의 경쟁에서는 더욱 불리해지고 그만큼의 시간과 기회를 잃게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우리 운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삶을 만들어내고 조직해내는 것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청소년인권운동을 계속하며 살 길이 없고 어느 순간 그만두고 다른 먹고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면, 계속 함께 운동을 하자고 손을 붙잡는 것도 미안한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에 전념하는 것이 누군가의 삶을 망치는 거라는 두려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좀 더 뻔뻔해지고 싶습니다. 아니, 적어도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계속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는 정도의 기대는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는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들의 인건비를 마련하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후원 참가를 약정했습니다.

저의 애정, 자부심, 책임감, 미안함, 두려움……. 그중 무언가에라도 공감하시는 분들은 꼭 참여해주십시오. 하실 여건이 안 되시는 분은 주변에 많이 소문이라도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기 후원 신청 안내 : http://cafe.daum.net/Life2010/8JLE/187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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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꿈2018. 12. 13. 00:45


모든 비는 눈이었다

모든 비는 한때 눈이었다
세상보다 먼저 온기를 만나
조금 일찍 흘러버린 눈물

그러니 모든 슬픔도 한때는
반짝이는 기쁨이었을지 모른다
말라버린 뒤뜰을 덮어줬던

녹아서 질척해진 빗물만이
땅속까지 적실 수 있듯이
아름답기만 하던 우리의 시간들도
체온을 만나 숨결에 부딪혀
아픔으로 슬픔으로 눈물로 흐르고

비로소 나는 너에게 스민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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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8. 12. 12. 23:47

올해에만 능력주의 비판 주제로 글을 한 4-5번 쓴 것 같다.

몇 개 모아둔다.

보면 알겠지만 서로서로 겹치는 부분(자기표절)들이 제법 된다.

한 번 전체를 다 망라하는 글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48982


시험 성적에 따른 차별, 당연하다고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6월 평등UP ①] 사회적 배경과 불평등한 현실을 간과하는 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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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와 차별의 동학을 어떻게 깰 것인가

 

공현

 

공교육이 차별의 생산지라는 모순

 

특정한 차별이 다른 여러 차별들의 뿌리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초기에 체험한 차별이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의 차별일 가능성은 높다. 사람들의 생애 주기 속에서 차별 경험의 출발점에는 공교육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교사나 학생 개인의 편견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학교에서 보편적으로 차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학교 구성원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학교교육의 원리 자체가 정상과 비정상을 분류하고 기준에 따라 사람을 평가/서열화하여 차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학교는 정상적인 발달 단계에 따라오지 못하며 학교가 요구하는 학습을 소화해내지 못하는 학생들을 장애인으로 분류하는 역할을 해왔던 바 있다. (박정수(2018), 〈우리, 혹은 장애인에게 ‘학교란 무엇인가?’〉, 《오늘의 교육》 42호 48쪽.)

학교교육이 만들어내는 차별의 핵심에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있다. 모두에게 제공되는 학교교육은 그것만으로 최소한의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처럼 간주되며, 학교교육 안에서의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하고 지필고사 등 평가를 통해 나온 점수와 순위는 곧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학교에서는 능력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도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그리고 암묵적으로 가르친다. “개인이 받는 교육의 양과 종류는 능력의 척도로 여겨지며 동시에 직업적 적격성 및 직업과 관련된 물질적인 보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사용된다. 교육은 능력주의의 핵심 동력이다.”(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2013), 김현정 옮김(2015), 《능력주의는 허구다》, 사이, 45쪽.)

교육권은 인권의 중요한 내용이며, 교육권을 실현하는 제도로서 공교육은 평등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공교육이 차별이 정당하다는 이데올로기를 학습시키고, 심지어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이는 학교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서열화와 차별은 학교 졸업 이후까지도 학력·학벌 차별 등의 형태로 이어진다. 또한 학교교육의 이러한 현실은, 평등의 개념과 감각을 익히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속성을 반영하고 재생산한다. 학교에서 사람들은 평등보다는 공정, 능력과 자격에 따른 차별을 배운다.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한 자, 좋은 일자리를 갖지 못한 자, 성공하지 못한 자는 그만한 노력과 능력이 없어서 자기의 선택과 책임에 따라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 이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능력주의, 메리토크라시는 개인의 능력(=merit)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분배하는 보상과 인정 시스템을 말한다.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이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때의 능력은 지능과 노력의 합이라고 정의했다.(성열관(2015), 〈메리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 마이클 영의 논의를 중심으로〉, 《교육학연구》 제53권 제2호.)

이후 미국의 기능주의적 사회학에서는, 사회적 공헌과 성과·실적에 따라 사회적 보상과 지위 분배가 일어나는 것을 산업사회의 특징으로 보았다. 다니엘 벨은 후기 산업사회가 교육 수준과 성과에 따라 차등된 소득과 지위를 얻는 능력주의 사회라고 주장했다.(권성민·정명선(2012), 〈실력주의의 이해와 비판적 고찰: 교육, 선발 및 정치적 맥락을 중심으로〉, 《인문학논총》 제30집.) 능력주의는 때로는 측정된 지능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차별하는 체제를, 때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나 실적에 따라 차별하는 체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한 마이클 영은 이를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했는데, 능력주의로 인해 인간이 평등하다는 신념이 사라지고 사람들은 차별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또한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가 파국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능력주의가 능력을 상속, 세습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상류계급을 세습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며, 상류계급에서 능력이 낮은 자식에게 편법적으로 지위와 특권을 세습하려고 하는 모습이 나타나서 능력주의가 혁명으로 전복되리라는 것이었다.(성열관(2015), 앞의 논문.)

그러나 돌아보면 이러한 전망조차 다소 낙관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능력주의는 이미 능력이 있으면[지능이 높으면] 성공한다가 아니라 역으로 저 사람이 성공한 것은 무언가 특출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능력/노력이 부족했던 거겠지하는 식으로, 현실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더 많이 작동하고 있다. 게다가 능력이 세습되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사회 현실 속에서도, ‘능력에 따른 신분 상승의 공정한 기회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뿐이다. 자식에게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능력 인증과 지위를 제공하려는 행태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철저한 능력주의를 바라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던 소위 국정농단게이트의 중요한 고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인이 그 자식을 명문대에 부정 입학시켰다는 의혹이었다. 이에 분개한 사람들이 요구한 것은 더 공정하고 투명한 능력주의사회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에 대해 반대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박근혜 게이트의 비유를 들고 나오는 것은 이러한 동학을 드러낸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차별이 생기는 것이고 이러한 불평등은 정당하다는 능력주의는,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노동자를 관리·통제하는 핵심 이데올로기이다. 동시에 능력주의는 제도적 장치와 인력 배치 및 선발의 원리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체제라고도 할 수 있다. 능력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내부에서 작동하면서 자본주의를 정당화한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가 평등을 대체하면서,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는 움직임도 다시 능력주의로 돌아오게 되는 상황에 빠졌다. 능력주의는 분명히 차별이지만 차별로 인식되지 않고 오히려 평등’, 더 정확히 말하면 공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학력·학벌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개인의 진정한 능력/실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고졸 성공 신화로 치환되는 것이 대표적 예이며, 대학입시제도에 대해서 공정성을 요구하며 정시 확대를 주장하고 지역균형선발 등에 반감을 보이는 것도 또다른 예일 것이다.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 이외의 평등을 상상하고 이야기하고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희망적인 것은 능력주의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주장이 2000년대 이후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맥락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능력주의는 허구이고 완전하고 진정한 능력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능력주의는 허구다(원제는 The Meritocracy Myth로 미국에선 2004년 출간되었고 한국에는 2015년 번역 출간되었다),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원제는 Success and Luck으로 2016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한국에는 2018년 번역 출간되었다)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능력주의가 민주주의/공화주의에 해악이며 능력주의 원리를 극복해야 한다고 그 폐해를 강조하는 것이다. 강준만의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가 대표적이고, 장은주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역시 능력주의가 민주주의와 충돌하고 교육에서 능력주의 원리를 극복해야 민주주의 교육이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학계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발견되며, 대중적으로도 과거에 비해 능력주의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늘어나고 있다.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담론을 비꼬는 노오오오오력등의 신조어가 이를 방증한다.

 

공정을 넘어, 그리고 효율을 넘어

 

나는 우선 능력주의가 평등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능력주의는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일률적 평가로 능력을 측정하여 선발한다는 방식의 효시격인 과거시험제도도 내세웠던 것은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었지, 모든 선비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것 따위는 아니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능력주의에서 수단일 뿐이다. ‘진정한 능력주의는 불가능하고 능력주의는 평등이 될 수 없으며, 능력주의는 선발하는 측(국가, 기업, 학교 등)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문제의식을 가진 여러 사회세력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능력주의가 평등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왜 존재해야 하는가? 결국은 능력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은 효율성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더 큰 권한을 가지고 결정과 지휘를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며, 적당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에 맞는 역할과 기능을 하면 사회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효율성의 논리가 모든 것을 결정해서도 안 된다. 일단은 자본주의 안에서도 능력주의가 적용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나누고, 능력주의 원리에 제한을 걸며, 평등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는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의 능력에 맞추어진 논의의 초점을 사회와 제도로 옮겨가면서 이루어질 것이다. 교육과 같은 공공영역이 대표적으로, 학생 개인의 학습 결과를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국가와 사회와 학교의 교육의 의무를 먼저 물어야 한다. 노동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개별적인 차별의 원리와 제도를 바꾸어나가는 싸움은 다양한 현장에서 벌어질 것이다. 제일 처음 언급한 학교교육에서 시험성적에 따라 학생을 차별하고 입학 기회를 다르게 부여하는 현실을 바꾸는 것 등이 주요한 과제이다. 그 외에도 능력주의를 내세운 여러 사회적 차별과 싸우고 이를 시정하고 다른 원리를 심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차별금지법이 하는 기능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것이나 제도를 바꾸는 일 등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중요하다. 경쟁과 차별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하지만, 어떠한 경쟁이고 그 결과 어떤 가치의 분배가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은 사회 체제의 문제이며, 국가는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대학입시제도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이고, 1995년에는 기업들의 입사 필기 시험 폐지를 정부가 요구하기도 했다. 국가는 능력주의 체제에서 무슨 능력을 평가하고 어떻게 보상을 할지를 정한다. 어떤 교육과정으로 어떤 지식으로 어떤 내용으로 시험을 치르고 자격을 부여하느냐 하는 것은, 국가가 어떤 능력을 사람들이 학습하고 수련하게 할지 어떻게 인력을 관리할지 하는 의도를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다.(이경숙(2017), 시험국민의 탄생, 푸른역사, 95-99.) 국가에 대해 교육과 평가, 선발과 차등 과정 등에서 능력주의를 약화시키거나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 요구하고 얻어나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내세웠던 기회는 평등할 것, 과정은 공정할 것,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표어는, 비록 평등을 직접 언급하고는 있지만 결코 대안은 될 수 없었다. 이 표어는 능력주의 세계관을 아주 잘 담고 있다. 평등한 것은 기회이고 결과가 아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회-과정-결과의 도식 자체가 개개인간의 경쟁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것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의 대표적인 비유는 달리기 등의 경주이다. 이때 우리는 출발선(기회)이 같았는지, 규칙(과정)은 공정한지, 그리고 이로부터 도출된 승패(결과)가 정당한지를 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나 삶은 개개인이 참가하는 경주나 시합이 아니다. 경주나 시합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부일 뿐이다. 사회 전체를 경주로 보면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속도와 타임을 재기 위한 시험과 평가로 삶을 채워나가야 하고, 일방적인 평가의 권력은 가려지게 된다. 평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경주 바깥과 주변을 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경주의 세계관을 벗어나 다른 세계관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미래의 이상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현실을 파악하고 세계를 설명할 말을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권운동이 능력주의를 넘어 다른 평등을 이야기하려면 우리가 어떠한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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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 기관으로서의 학교교육

 

공현

 

 

국가가 공적으로 교육을 책임지는 학교교육 제도가 중요한 진보였고 보편적인 교육권의 보장에 기여한 측면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사람들의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목적과 동시에 이 사회가, 때로는 국가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중성이 있다. 교육이 인간의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을 길들이고 도구화하는 과정이 되는 것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가진 인적 자원을 학교에서 훈련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할 때도 노골적으로 드러나곤 한다. 하지만 폭넓게 보면 기성 사회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체제를 의심하지 않는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화시키는 것 자체가 교육이 체제 유지를 위해 인간을 수단화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무엇을 위한 시험과 평가인가

 

이 때문에 우리는 학교에서 종종 교육적이지 못한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각종 비민주적인 문화나 통제는 말할 것도 없다. 때로는 학교교육의 본질이라고 여겨지는 요소들조차 대단히 비교육적이다. 예컨대 우리는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라고 믿으며, 시험 성적에 따라 칭찬 또는 꾸중을 듣고, 차별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시험 성적에 따른 차별은, 모든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와 권리를 보장하는 데는 역행하는 조치이다. 또한 시험을 잘 치는 것이 공부의 목표가 되는 것은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시험은 본질적으로 통제 수단이자 어떻게 통제받을지를 배우는 수단이다.”(이경숙(2017), 《시험국민의 탄생》, 187쪽.) 또한 시험은 본디 교육할 의무는 묻지 않고 응시자 개인이 학습한 결과만 따지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교육권이라는 보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국가와 사회의 책무를 숨기고 교육을 개인의 노력과 자격의 문제로 탈바꿈시킨다.(이경숙(2017), 《시험국민의 탄생》, 27쪽.)

필기시험을 통해 객관적인 점수를 산출할 수 있으며 이 점수가 개인의 능력을 반영하고 있고 이에 따른 차별은 정당하다는 믿음은 학교교육 기간 동안 끊임없이 우리가 학습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공부하고 시험 치는 것이다 보니, 그러한 방식은 어느새 일반적인 방식이 되어 간다. 한 소설가는 이를 놓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상급 학교에 가는 방법뿐이야. (……) 아는 방법은 상급 학교로 가는 방법뿐이고. 더 이상 갈 학교도 없으니 방법은 두 가지지. 탯줄을 부여잡고 빈둥거리거나 세상을 온통 학교로 만들거나. (……) 시험 치고 등수 매기고 높은 점수가 목적이라고 믿고.”(이영도(2005), 〈봄이 왔다〉.) 결국 학교 밖에서도 공정한 시험에 의한 평가와 선발이 가장 정당한 방법인 것처럼 여겨지기에 이르렀고, 우리는 채용에서도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믿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각종 시험에 도전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시험이나 검사, 평가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평가라는 행위 자체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가치를 따지고 반성하는 데 필수불가결하다. 현황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한 불완전하지만 유용한 수단으로서 시험이나 검사는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평가, 권력에 의한 평가 앞에서 인간은 왜소해지고 통제받는 존재가 될 위험이 있기에, 평가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조심스러움 대신 평가와 평가를 통한 경쟁이 당연하고도 바람직하다는 이데올로기가 들어서 있다.

 

모든 인간들에게 평가할 권리가 있다. 합리적이고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한 건강한 평가를 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 그러나 평가가 권력화되면 평가는 사회와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모든 인간에게 편재하는 평가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독점물이 된 평가 앞에서 피평가자는 구속받는 존재가 되고, 마침내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인간 정신을 파괴당한다. (이경숙(2017), 《시험국민의 탄생》, 358쪽.)

 

 

능력주의 기관으로서의 학교

 

시험을 중심으로 하여 학교교육이 학습시키는 가장 체제 유지적인 이데올로기가 바로 능력주의(meritocracy)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빈자와 부자 사이의 불평등, 부의 격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돌아보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빈곤은 개인의 탓이다.” 이러한 믿음이 성공한 기업가들이나 이른바 자수성가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끊임없이 전파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무언가 결함이 있을 거라고 의심을 받게 된다. 그리고 사실 이는 학교에서부터 친숙해지는 논리이다. “똑똑하고 노력을 한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는다.” “네가 공부를 못 하는 것은 너 자신의 탓이다.” 오직 혼자서 임해야 하는 지필 시험과 같은 과정은 그런 믿음을 확인시키는 과정이다. 학교는 지금의 사회가 불평등한 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 능력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전파하고 있다. 이러한 “(메리토크라시) 체제의 교육에서는 학력과 성적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능력의 지표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가능한 한 높은 학력을 얻는 것이며 또 그 높은 학력에 걸맞은 적격자를 찾아내기 위해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이 되고 만다.”(장은주(2017),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67쪽.)

학교교육의 현장은 이와 같은 능력주의의 원리와 보편적 교육권의 원리가 공존하면서 충돌하는 장이다. 그래서 성적에 따른 차별을 비판하거나 경제력과 성적과 장애 여부 등에 관계없이 학생들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제기된다.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폐지하거나 축소한 최근 한국의 사례라든지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것을 금지하는 다른 국가들의 예 등은 보편적 교육권의 원리가 관철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한국의 교육에서 능력주의 원리가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작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이다. 또한 보편적이고 평등한 교육권의 원리가 강한 사회라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의 교육 제도라면 능력주의 원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능력주의 체제 속에서 학교교육이 단지 능력주의의 원리를 학습시키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복합적인 의미로 능력주의에서 대단히 중요한 기관이다. “개인이 받는 교육의 양과 종류는 능력의 척도로 여겨지며 동시에 직업의 적격성 및 직업과 관련된 물질적인 보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사용된다. 교육은 능력주의의 핵심 동력이다.”(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 김현정 옮김(2015), 《능력주의는 허구다》, 45쪽.)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는 초·중등 교육의 기회는 곧 그 자체로 기회의 평등을 실현한 것처럼 착시 효과를 만들며 능력주의를 정당화한다. 그러면서 학교교육에서 뛰어난 성적을 얻음으로써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통해 공정한 경쟁 과정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가. “학교교육은 적은 특권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 비해 많은 특권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성공 기회와 좀 더 적은 실패 기회를 준다.”(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 김현정 옮김(2015), 《능력주의는 허구다》, 56쪽.) 경제적 차이는 사교육을 포함한 다양한 교육 기회와 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여유의 차이를 낳는다. 가정환경의 문화적 자본의 차이나 지역 간의 격차는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익히는 지식과 생활 태도의 차이를 낳고, 학교에 다니는 중에도 숙제와 각종 스스로 수행해야 하는 과업들을 해결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사회적 자본의 차이는, 상류층의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기회를 얻거나 다른 도전을 해 볼 여지를 준다.

이처럼 가정환경과 지역 격차 등 다양한 사회적 조건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학교는 성적과 입시의 결과가 학생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게 꾸며준다. 이를 통해 평등을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 불평등에 반발하는 당연한 마음은, ‘공정한 경쟁이나 동등한 출발선을 바라는 것으로 갇히고 만다. 학력·학벌에 의한 차별이 노력과 능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 생각된다. 학교는 능력주의를 정당화하는 알리바이이면서 능력주의를 실현시키는 장치이기도 한 것이다.

 

 

능력과 자격을 묻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결국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적대로도 이어진다.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에서 강준만은 한국 사회의 갑질문화가 능력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장은주 역시, “메리토크라시는 우리 사회를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모욕 사회로 만든다고 지적한다.(장은주(2017),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74쪽.) 능력이 없는 자는 차별받아도 된다고 하는 사회는 소수자에게도 불리한 사회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소수자란 사회적 권력과 자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에, 능력을 갖추기 더 어려운 이들이기도 쉽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안에서는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시정 조치나 우대 조치 역시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개인의 능력과 자격을 먼저 입증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혜택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차별에 맞서는 운동 자체가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로 여겨지고, 소수자들은 무임승차자로 비난을 받게 된다. 페미니즘 운동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반감 등 상당수는 여기서 기인한다. 대학입시에서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들어온 이들을 지균충이라고 구분하고 모욕하는 모습은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와 같은 책에서 이미 숱하게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능력/노력이 부족했던 거겠지하는 식으로, 결과를 정당화하며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여, 성공하지 못한 자들은 발언하고 문제제기할 자격도 없다는 식으로 작동할 때도 많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얼마나 평등에 익숙하지 못한지를 방증한다. 사실 학교교육에서도 우리가 주로 보아온 평등이란, 계급과 사회적 여건 등을 삭제한 채로, 똑같은 교복(제복)과 커리큘럼 속에서, 시험 성적만은 온전히 개인의 능력이라는 허구의 믿음 속에 공정한 경쟁과 차등 대우를 해주는 것이지 않았던가. 현실의 격차와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이를 가리고 오직 개인의 재능과 노력만을 평가한다는 능력주의는 실제로는 개인을 사회적 현실로부터 떼어낼 수 있다는 불가능한 자유주의적 믿음을 전제로 한다. 현실의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인식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나 집단적 노력은 능력주의 자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최근 대학입시제도 개편을 이야기하면서 학생부종합전형은 불공정하며 수능 시험이 더 공정한 방식이라는 주장이 다수 언론을 통해 제기되었고 결국 교육부가 수능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내놓은 것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공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교육제도와 입시의 고통에 대한 불만이, 다시 능력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왜곡되는 과정 역시 잘 보여주었다. ‘평등이 아닌 공정을 요구하게 되는 이러한 모습은, 박근혜 대통령을 대학입시 비리 문제로 성토하던 촛불집회에서부터,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슬로건과 스탠스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능력주의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물론 종합적 대응과 정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선은 능력주의의 핵심을 흔들기 위해서라도 학교교육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학교교육의 결과와 학력·학벌이 정말 능력을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 중 대부분은, 학교교육과 입시가 현재 자본주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능력을 배양하고 평가하고 있느냐 하는 의문에서 비롯되고 있지, 능력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학교교육이 아니더라도 능력주의가 능력을 측정하고 서열화하는 평가와 시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변함없을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상상을 해 보자면, 이러한 회의론은 무능한 국가가 주관하는 학교교육 대신 더 사적인 교육 시스템이나 개인이 알아서 대비해야 할 시험과 도전의 과정의 비중이 커지는 것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하는 것으론 부족하며 능력주의 원리에 대한 극복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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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바란다면 자격/능력을 증명하라고?

 

공현

 

 

 

메리토크라시, 테스토크라시

 

한국은 아마도 전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험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나라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제도를 능력주의,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고 하는데, 아니다.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능력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되는 암울한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썼을 때, 그 메리트는 그래도 꽤 넓은 의미의 능력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단 하나의 능력만이 필요하다. 요령을 터득하여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푸는 능력이다. 이것은 메리토크라시가 아니라 시험주의, 곧 테스토크라시(testocracy).

시험이란 제도는 공정하지도 않지만, 설령 그것이 공정하다고 한들 최악의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극도의 긴장과 경쟁 속에서 인간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그 결과를 통해 한 사람의 능력에 대해 알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으며, 잘해야 가장 운이 좋은 인간들에게 더 큰 운을 가져다줄 뿐이다. 심지어 이 과정을 통해 운을 자신의 능력이나 권력으로 착각하게 되면 재판거래 같은 것이 생겨난다.

이관후, 시험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한겨레 20181120

 

2018년 봄,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면서 국회 앞에서 거리 농성을 하고 여러 활동을 하고 있던 중, 활동 소식을 전하는 단체 페이스북 페이지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고등학생들은 선거권 주려면 투표소에서 시험 쳐서 후보 이름이랑 공약 3개 이상씩 써서 맞추면 투표할 수 있게 하자.” 선거권을 나이 기준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뭐 시험이라도 치러서 부여해야 하느냐는 소리는 자주 들어봤지만 아예 구체적으로 저렇게 시험을 치게 하자는 소리는 처음 들어봐서 제법 신선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험으로 자격을 입증해야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사고방식의 표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겨울, 대학수학능력평가, 수능 시험 시즌이 왔다. 수능 시험은 우리 사회 최대의 정기적 시험 이벤트이자,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교육의 상징과도 같다. 수능 얼마 전부터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은 대학입시거부선언자를 모집하는 홍보 활동을 진행하고 13명의 거부선언자와 함께 수능 시험일에 대학입시거부선언을 발표했다. 홍보 활동을 활발히 한 덕분인지 SNS나 언론 등에서 여러 반응들이 돌아왔는데, 매번 들어왔던 말이긴 하지만 유독 수능 전과목 1등급 받고 서울대라도 합격하고 나서 거부한다고 해야 인정해 주지’, ‘공부 못 하는 주제에 거부한다고 하는 건 자기 변명과 같은 말들이 기억에 남는다. 언론 인터뷰를 할 때도 기자들은 거부선언자들에게 성적을 물어보곤 한다. 체제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 너희가 그렇게 목소리를 낼 만한 자격이 있는가묻고, 시험 성적으로 자격을 증명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관후의 지적대로, 시험은 학교교육만이 아니라 온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가 되었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에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 공채로 입사한 정규직 직원과 공채 시험에서 탈락한 취업 준비생 등이 행정법원에 이를 무효화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있었다. 시험에서 탈락한 적이 있는 사람들까지 소송에 참여했다는 것은, 결국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된 노동자들의 , 똑같이 시험을 쳐셔 합격하지 않았다는 것임을 보여준다.

오로지 기회의 평등만을 강조하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체제인 능력주의(meritocracy)’는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는 필연적으로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단을 요구한다. 사실 능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적 상황과 기준에 따라 달라지고 모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주의는 쉽사리 능력이 있으면 성공한다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은 능력이 있을 것이다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능력주의가 정당성을 갖고 작동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평가 시스템’, 시험이 있기 때문이며 시험에 따라 가시화되고 증명된 능력인 시험 성적 및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개인이 고립된 채로 시험지 앞에 앉아서 답을 적어내고 채점을 받는 과정은 그 자체가 개인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믿음을 주는 일종의 의식처럼 보인다. 이는 시험 결과에 따른 차별을 능력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결과라고 정당화하는 데로 이어진다.

최근 노동 현장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이나 학교교육에서의 문제들을 보면, 한국 사회가 평등과 인권을 논할 때조차도 시험에 따른 자격/능력의 증명을 요구하는 사회라는 평가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등이 오직 시험에 응시할 기회의 평등이며 인권은 오직 공정한 경쟁을 할 권리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존엄과 권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너의 자격과 능력을 증명하라. 되도록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험으로.’ 이러한 논리가 우리가 마주한 우리 사회의 솔직한 태도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시험과 능력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인권운동이 그 극복 방안을 고민해 보자고 제안하고자 한다.

 

 

보상 심리, 그리고 불신 사회

 

시험과 경쟁을 지지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의 기억이다. 자신들은 이렇게 노력하고 고생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그런 노력과 고생 없이 결실을 보(려 하)느냐는 불만이다. 자신들의 노력과 고생에 대해 인정받고 보상받아야 한다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인지 부조화 효과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를 원하고 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잘 수용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들과 같은 노력과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것은 일종의 무임승차라고 받아들이기까지 한다. 이는 극단적으로는 공공성 자체를 부인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 담론은 능력보다도 노력’, 과정에서의 고생과 인내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연구가 있다. ‘노오오오오력이라는 냉소적인 신조어는 이런 경향을 방증한다. 이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학교교육에서든 노동에서든 개인에게 고통을 견디라고 요구하는 사회임을 반영한다. 물론 이 역시도 능력주의의 자장 아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하고 일한 고통과 인내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시험이라는, 능력을 입증하는 시스템을 경유하는 노력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 천시와 지능·학력 숭배의 전통과도 연관되어 있다.

대한민국 사회가, 비록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투명성이 강화되었음에도, 불신이 강한 저신뢰 사회라는 것도, 평등 대신 시험이 강조되는 중요한 이유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관해서, 국회의원들이나 언론들이 나서서 기존 정규직 직원들의 친인척이 특혜를 보았으리라는 의혹을 제기한 사건을 보자. 대부분이 근거가 빈약한 의혹이었음이 드러났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나 학생부종합전형이 비판받는 근본적 이유가 교사의 평가나 학생생활기록부 작성이 공정하고 정확하리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의 학생생활기록부 부풀리기나 시험 부정 의혹 사건은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성토로 연결되고 있다.

이렇듯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지연과 혈연과 돈·권력의 이 강하게 작용하거나, 그렇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다. 또한 교사든 공무원이든 교수든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도덕적 권위를 인정받기보다는 의심과 불신의 대상이 될 때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비리와 특권, 주관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할 방법을 선호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시험, 특히 개인이 각자 치르는 지필고사인 것이다. 실제로 능력주의는 과거 계급사회나 인맥에 의한 비리 등을 대체하면서 대두된 체제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사실 대단히 능력주의적인 사회임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능력주의적이지 못하고 전근대적이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상황이기에, 능력주의와 시험을 더 강화하자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다.

 

 

평등의 경험과 정치적인 경험

 

짚어보면 다분히 사회심리학적 성격의 문제들이고, 또 대중이 공정한 시험과 그에 따른 차별을 요구하며 나서는 상황이 곤혹스러운 순간도 있다. 사실 나 역시 대학입시나 각종 고시등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대대적으로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장기적으로 보는 것이 여전히 정석이라고 생각한다. 다수의 심리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 제도와 구조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우리 사회가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회적 장에서 평등보다도 능력과 자격에 따른 각종 차별을 경험하고 배우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 본다. 학교에서는 노골적으로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이 더 옳은 이념이라고 가르치며, 시험 성적이 안 좋은 학생, 주류의 눈밖에 난 학생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경쟁의 논리와 부정행위가 나쁘다는 점을 가르치지만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어떻게 하면 학교나 일터나 사회 일반에서 자격을 따져묻지 않고 환대받고 평등한 존중을 받는 경험이 일반적인 것이 되도록 할 것인지, 국가에게 어떤 책임을 지게 하고 어떤 제도와 환경을 만들게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평등이란 무엇인지, 공정한 경쟁과 무엇이 다른지 효과적으로 이야기하고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개인이 경험하고 참아내야 하는 고통을 줄이는 것과도 결부되어야 한다. 잠을 줄여가며 노오오오오력해야만 하는 현실, 서열화와 차별로 인한 고통 등을 감소시키는 것은 분명 제도의 개선으로 가능하다. 마치 스포츠 경기 관중들이 상당수가 일어서서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서게 되는 것과 같은 과열된 경쟁 상황이 지금의 교육이나 일자리 구직 환경의 모습이다. 복지와 안전망을 강화하는 등 조건을 변화시켜야 억울한 사람들의 보상 심리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권에 초점을 맞춘 인권운동의 활동 방향은 물론, 인권을 기준으로 한 교육 개혁의 방향, 교육과 노동 영역에서 평가의 방식과 보상 체계 등에 대한 인권적인 관점 등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

두 번째로, 결국 능력주의와 시험 체제의 배경에는 각자도생과 자기 계발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깨기 위해서는 물론이요,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정치적인 실천이 일반화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능력주의에서 능력은 개인에게 속한 것으로 간주되고, 자기 계발(노력)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만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에 개인화된 능력을 입증하는 시험에 천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조합이나 페미니즘운동 등 사회운동적 방식, 집합적 방식, 정치적 방식을 통한 해결은 그 자체가 일종의 반칙인 것처럼 여겨진다. 또한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이나 페미니즘운동 등 사회운동 역시도 편견 없이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을 목표나 정의인 것처럼 요구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따라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끊임없이 원자화되고 각자도생하게 되어 온 삶의 조건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대단히 정치적인 실천과 운동을 하면서도 운동권/정치권을 배격한다고 말하고, 비정치성을 선언하며, 조직화나 권력의 생성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광경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의 정치의 부재, 정치적 경험의 부재가 결국 시험이 평등을 대신하고 보상이 권리를 대신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어떻게 하면 정치적인 경험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정치를 창조할지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과제일 듯싶다. 시민은 합리적인 개인이 아니라 지극히 사회적인 존재이고 연대에 의지하여 구성되는 존재이다. 대중이 인적 자원이나 소비자’, 또는 경주 선수가 아닌 시민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경험은 무엇일까?

인권운동(또는 더 넓은 의미의 운동)이 어떻게 이러한 경험들을 만들어낼지, 제도를 바꾸고 사람들을 조직할지가 인권을 시험 쳐서 받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담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해답을 찾는 열쇠일 것 같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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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8. 11. 30. 17:39

체벌거부선언문


두려움


체벌이라고 하면, 벌써 십수년 전 일이지만 중학교 과학 수업 중 정기적으로 돌아오곤 했던 일종의 즉문즉답 시간이 떠오르곤 한다. 과학 교사가 학생 1명 1명에게 그 전 시간까지 배운 것 중에 아무거나 질문을 하고, 5초 안에 대답을 못 하면 손바닥을 맞는 시간이었다. 대답을 더듬거리거나 한 음절 틀리기만 해도 손바닥을 맞았다. 내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질문을 받고 5초 안에 대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뇌를 작동시켜야 했던 시간, 그 두려움과 조바심이 지금도 떠오른다. 그 시간만 되면 교실 안의 공기는 마치 손에 잡힐 듯 목에 걸릴 듯 팽팽해지곤 했다. 공기의 밀도가 바뀌었을 리는 없으니 그저 내가 숨을 제대로 못 쉴 만큼 긴장했던 것뿐이겠지만.

우스운 것은 반 이상의 학생들은 체벌을 피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맞고 말겠다는 자세로 임했고, 나는 어떻게든 한 대도 안 맞고 넘어가 보려고 열심히 외운 끝에 한 질문 한 질문 클리어할 때마다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다는 점이다.(그래도 종종 삐끗해서 매번 하나씩은 틀리곤 했다.) 끔찍한 것은, 뭐 그런 방식으로 지식을 머릿속에 넣으려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교사는 나름 열의 있는 좋은 인품의 사람이었고 스스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고 믿었으리라는 점이다. 나는 지금도 ‘체벌’이라고 하면 그 교사의 즉문즉답 시간과 더불어 그 교사가 수업 시간에 상습적으로 자는 학생에게 쓰레기통에 물을 받아 끼얹은 사건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교사에 대한 미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아마 그것이 사적 감정 없는 ‘교육의 수단’으로서의 폭력에 가까운 형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끔찍함과 내가 기억하는 충격, 두려움의 시간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이없어했던 체벌들 ― 2학기 개학을 했으니 정신 차리고 공부하잔 의미에서 전원 1대씩 매를 맞자던 영어 교사라든지, 체육 시간에 집합이 늦었다는 이유로 반 학생 전원을 ‘엎드려뻗쳐’ 하게 했던 체육 교사라든지 ― 보다도, 그 중학교 과학 교사의 체벌이 더 ‘아프고’, ‘굴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그건 그 교사가 이상한 사람이거나 불합리한 사람이라 벌어진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의 체벌은 참으로 ‘효과적’이었다. 그 교사가 바라는 대로, 학생이 지정된 범위를 달달 외우고 벌벌 떨며 5초 안에 대답을 쥐어 짜내도록 통제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조금 울먹이고 싶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딱히 그 교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흔히 체벌 이야기를 하면 체벌을 가한 사람의 선악을 판별하고, 그 체벌이 효과적이고 정당한 것이었는지를 묻곤 한다. 감정적이진 않았는지, 심하진 않았는지, 체벌을 당한 사람이 맞을 만한 잘못을 했는지, 반성을 하게 만들었는지 등……. 그러나 체벌을 한 사람이 선량하고 합리적인 사람인지 여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체벌에 의해서 어떠한 결과를 얻든 그 과정 자체가 폭력에 굴복한 경험,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순종하고 두려워한 기억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체벌이 아니라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제도화된/허락된)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내가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낸 198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는, 정부에서는 체벌의 원칙적 금지와 교사들의 자제를 요구했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체벌이 너무나 흔한 시대였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폭력을 가한 학교 교사, 학원 교사, 택견 도장 사범, 그리고 아주 드물긴 했지만 부모까지도, 모두 미워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나 다른 사람들이 겪은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은 그래도 되는 사회였으니까 그런 것일 뿐임을 이해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선 안 되는 사회가 되긴 했던가?


감옥보다도 못한 점


"우선 학교는 감옥이다. 어떤 점에서 학교는 감옥보다 더 잔혹하다. 예컨대 감옥에서 교도관들과 교도소장은, 당연히 읽고 쓸 수 없다면 교도관도 소장도 되지 못했을 테지만, 재소자들에게 읽고 쓰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무엇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때리거나 달리 벌을 주지도 않는다. 감옥에서는 적어도 간수들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 재소자들에게 이해시킬 수 없는, 끌리지도 흥미롭지도 않은 주제로 강연하면서 들으라고 강요하는 일은 없다. 그대가 감옥에 있다고 가정하자. 간수들이 그대의 신체에 고통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대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생각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게다가 간수들은 다른 재소자들에게 얻어맞거나 잔혹한 짓거리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그대를 보호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은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다."

- 조지 버나드 쇼 지음, 서상복 옮김, 《부모와 자식 어른과 아이 길동무로 살아가기》, 연암서가, 64-65쪽


내가 살면서 중·고등학교 적과 가장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은 병역거부로 감옥에 수감되었을 적이다. 외출과 통신이 금지된 것만 더해진 (자유형(刑)의 본질이 자유와 사회적 관계의 박탈이니 그 부분이 중요한 것이긴 하겠지만) 기숙사 고등학교 생활 같았던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가 저러한 글을 쓴 20세기 초반보다야, 감옥도 학교도 모두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적어도 한 가지 부분에서 한국의 감옥은 한국의 학교보다 낫다. 감옥에서는 수용자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폭력을 가하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되고 제한되어 있다. 구속구를 사용하거나 생활환경이 가혹한 징벌방에 수용자를 보내는 처벌이 있으나 일단은 불가피할 때 절차를 거쳐서 집행된다. 물론 밉보인 수용자에 대해서 편법적이고 불공정하게 구속구를 사용한 신체적 처벌을 내리는 경우 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이 발각되면 감옥 직원이나 소장이 규탄과 처벌을 받으리란 점은 확실해서, 정당한 사유와 절차를 밟으려 하고 가혹한 행위는 은폐하기 위해 애쓴다.

반면 청소년의 경우에는 어떤가. 청소년에 대한 폭력, 체벌이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2015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가정, 학교, 학원 등에서 여전히 체벌이 벌어지고 이를 딱히 감추려고 들지도 않는다. 문제가 돼서 처벌을 받으면 그게 오히려 재수 없는 일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청소년인권이 너~무 잘 보장돼서 문제이고, 체벌이 없어져서 요즘 애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소리나 나오려나. 〈세계인권선언〉도 〈대한민국 헌법〉도, 권리 중에서 존엄성과 차별 금지의 원칙 다음에 신체의 자유가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권리로서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의 자유와 신체에 대한 존중이 이런 지경이니 우리 사회가 아직 청소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사회임을 잘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벌 근절부터 확실하게 이루어 내자고 하고 있는 것이다.


법과 권리의 입법


〈아동복지법〉은 만18세 미만 아동에게 그 보호자(친권자, 교사를 포함하여 보호·양육·교육할 의무가 있는 자, 업무·고용 등의 관계로 사실상 아동을 보호·감독하는 자)가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을 금지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학생을 지도할 때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경기도,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는 체벌 등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렇게 법적으로 한국은 체벌 금지 국가다. (만18세가 된 고등학생에 대한 일부 체벌에 대한 법리적 공백이 없지 않으나 이 문제를 생략한다면.) 그러나 체벌이 금지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학교 체벌은 금지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도 제대로 금지된 상황은 아니지만, 가정 체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이 금지된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 반은 넘을 거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의식 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국민의 48.7%는 체벌이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식 조사 중 최초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비율이 50%를 넘긴 고무적인 결과이긴 했으나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체벌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우울하다. 많은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배제가 그렇듯, 체벌은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허용되고 있다.

“권리라는 것은 결국 ‘양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영도 지음, 《눈물을 마시는 새 2》)이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권리는 권리가 되지 못하고 법이 사문화된다. 따라서 법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부는 그 법이 실제의 삶을 규율하는 선이 되고 뿌리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체벌 금지를 대대적으로 선언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청소년은 참정권이 없고 ‘아직’ 시민이 아니며, 체벌 금지를 선언했다가는 친권자·교사 등의 반감만 살 거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비록 체벌의 발생 빈도나 강도는 줄어들고 있지만, 체벌 근절을 기대하기에는 전망이 어둡다. 2016년 국가인권위 조사에 의하면 학교에서 ‘직접체벌을 받았거나 목격한 경험’은 중학생 29.5%, 고등학생 27.1%, ‘간접체벌을 받았거나 목격한 경험’은 중학생 35.1%, 고등학생 36.3%나 된다. (사실 이렇게 체벌을 ‘직접’, ‘간접’ 나누는 것도 지극히 체벌을 가하는 사람의 관점이다!) 이 비율이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에서도 20-30% 선인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체벌을 지지하는 바탕이 되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혐오는 더 강해지는 경향마저 관찰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체벌거부를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선언이 결국 청소년의 신체의 자유, 인격과 존엄성을 존중받을 권리, 체벌을 당하지 않을 권리, 폭력 앞에서 두려움에 떨지 않을 권리를 입법하는 데 한 몫 하는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럼으로써 체벌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과거에 있었던 체벌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사과하고, 예를 들어 공직자를 선출하고 검증할 때 그 사람의 체벌 전력을 문제 삼기도 하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리라 믿는다. 입법의 완결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표결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나 역시, 학교에 인권교육이나 강의를 가서, 체벌의 흔적을 목격하거나 증언을 듣더라도, 굳이 나서기엔 부담스러워 같이 욕이나 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에 대해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와 함께 노력하거나, 적어도 학교에 문제 제기라도 해야겠다.

비록 나는 청소년은 폭력을 당해도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나, 나보다 여러 모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나의 분노나 짜증을 표현할 때 물리적 위협이 되는 방식이나 폭력적 방식을 사용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때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반성한다고 했지만 다시 한 번 잘못을 곱씹는다. 체벌거부선언이 청소년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일이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나와 우리의 습관을 바꾸기 위한 실천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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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거부 약속하기!!
https://stophit.me


체벌거부 선언하기!!
stophit.me/speak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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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8. 7. 11. 18:14



현장과 언어 사이에서

내가 인권운동사랑방과 처음 연을 맺은 것은 2006년의 일이었다.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마련한, 청소년인권운동의 진로를 모색하는 워크숍 자리였다. 워크숍의 결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지금의 청소년인권운동이 자랄 수 있도록 흙을 갈고 거름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은 때로는 공간을 제공해주었고 때로는 입장을 밝히고 운동론을 정제할 수 있는 지면을 제공해주었다. 그 무엇보다도 운동에 함께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가장 든든한 존재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그때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 함께했던 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 활동가들은 현재는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은 인권 문제의 현장에 가서 연대하고 몸으로 부딪히기도 했고, 인권 문제에 대한 보고서나 이론서를 읽고 개념을 정리해서 소개하기도 했다. 인권의 문제의식으로 사회 현상이나 정책을 살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는 성명이나 논평을 냈다. 나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아니었지만,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과 같이 활동하면서 또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운동을 보고 듣고 모방하면서 인권운동이란 무엇인지를 배우고 익혔다.

사실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인권단체가 의외로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 일이었다. 나는 한 2-3년은,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조직과 문화(대표가 없는 운영 체제, 활동가 사이의 비교적 평등한 관계, 국가 지원을 받지 않는 것 등)가 인권운동에서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마도 오늘날 인권운동계에서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원칙과 문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단체들도 적지 않으리라.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들리지 않던 이야기를 들리게 만들었다. 청소년인권운동도 그 한 예였고, 노숙인-홈리스 문제에 대해 계속해서 연대하고 활동을 하고 주거권 개념을 제기한 활동도 있었다. 과거에는 감옥인권 문제를 다루었으며, 북한인권 문제를 '한반도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직 낯설었던 '사회권'을 공부하고 적용하며 더 풍부하게 만들었고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도 함께했다. 경찰 폭력에 대응하고 집회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등 인권단체로서 당연한 일도 물론 해왔다.

나에게 인권운동사랑방의 인권활동가들은, 자칫 추상적이고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인권'의 언어를 현장의 문제와 연결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 활동은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 남았고, 변화로 이어졌다.



계속 넓어지고 나누어온 단체

1993년 꾸려진 인권운동사랑방이 한국 사회 인권운동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유서 깊은 단체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인권운동사랑방은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고 그렇게 풍족하지도 못하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스스로 명성과 자원을 얻는 방식으로 운동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은 계속 '분열'해왔다는 것이다. 인권교육을 인권운동으로서 처음 인식하고 활동해왔던 인권운동사랑방 교육실은 '인권교육센터 들'이 되었다. 국제인권 문서를 번역하고 '진보적 인권운동'의 이론을 만들어온 부설 인권연구소는 '인권연구소 창'이 되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주관했던 서울인권영화제도 별도의 단체로 독립하였다. 이는 인권운동사랑방이 자기 조직을 키우기보다는 인권운동을 계속 넓혀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인권운동사랑방이 후원 행사를 한다. 내가 알기론 25년의 역사 속에서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후원 행사로, 드문 일이다. 매년 후원 행사를 하면서 단체를 운영하는 시민사회단체들도 흔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리소문 없이(?) 활동해온 인권운동사랑방의 성격을 알 법한 일이기도 하고.

리워드에 박힌 이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함께 살자. 함께 싸우자. 함께 지키자."


함께해, 주시길.



https://tumblbug.com/sarang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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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 가욤 ^^

    2018.09.13 02:21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나가는꿈2018. 5. 2. 20:33

나이 서른의 청소년운동 활동가



어쨌건, ‘청소년’이라는 말에는 따라다니는 아우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청소년계’라는 이름으로 청소년지도사/청소년복지사/청소년수련시설 등의 직능단체 집합이 불려나오고 있긴 합니다만….) 어리고 혹은 젊고, 신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지요. 비록 우리가 청소년운동은 청소년 당사자(10대 혹은 0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합의를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고령의 청소년운동 활동가라는 것은 어색하게 느껴지는 맛이 있습니다.

과거에 고등학생운동이나 청소년운동을 했던 분들 중 몇몇은 그런 인식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운동사》를 쓸 때 인터뷰를 했던 어느 분은 청소년기본법이 만 24세까지를 청소년으로 정하고 있으니, 자신은 만24세까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80년대에 고등학생운동을 했던 어느 분은 지난해에 저를 가리켜 “청소년운동을 돕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시더군요.


-
본론으로 들어가면, 제가 1988년생이니까 올해에 만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좀 새로운 국면이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습니다.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20대이면서 청소년운동의 활동가인 것과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그동안 청소년운동에 30대 이상의 활동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10대 때 청소년운동을 시작해서, 불가피한 경우 외엔 거의 휴지기 없이 쭉 활동을 해서 30대가 된 활동가는, 제 선대 활동가들 중에서는 손에 꼽을 만합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매 국면마다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저라는 한 활동가의 삶에서도 이건 새로운 미지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법적인 성인이 되었을 때부터 청소년이 아닌데 청소년운동을 왜 하느냐는 질문을 셀 수 없이 들어왔지만, 제가 청소년운동의 주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비청소년이지만 청소년운동이라는 한 사회운동이자 직무의 종사자로서 ‘활동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청소년운동에서 비청소년이면서 운동에 대해 당사자성과 전문성을 가진 주체들은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운동론을 기술한다면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겠죠. 저는 다른 활동가들도 저의 이런 생각과 믿음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첫 번째는 시대적·사회적 거리감의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청소년인 사람들의 경험과, 제가 청소년일 때 경험했던 바 사이에 아무래도 차이가 점점 더 커질 테지요. 그리고 제 자신이 아무리 신경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이주의 사회에서 청소년은 제가 나이를 먹을수록 저를 대하기 더 어려워 할 테고, 사회적으로도 점점 더 제게 ‘청소년활동가’ 혹은 ‘청소년운동 활동가’라는 말을 붙이기 어색하게 느낄 것입니다. 뭐, 최근에도 ‘요즘 청소년들과는 말이 더 안 통하는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종류의 질문을 몇 차례 받았는데, “저는 청소년이었을 때도 제 주변의 다른 청소년들을 너무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이나 그때나 별 차이는 없습니다.”라고 답합니다만, 아무래도 그 말이 충분히 이해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는 저의 경제적 위치의 문제겠네요. 저에게 청소년운동의 활동가로서 먹고살 길을 좀 제시해달라는 요구도 받았던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거기에는 실패했고, 지금은 운동단체인지 출판사인지 살짝 애매모호한 곳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습니다. 제가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임노동을 해야겠다는 압력을 느낀 것은 제 나이는 서른 살에 가까워져 가고, 저의 부모님의 나이는 예순 살에 가까워져 가는 현실이 당연히 크게 작용했습니다.(특별히 30대인데 부모한테 손 벌리는 건 부끄럽다는 그런 건 아니고, 부모님의 은퇴 시점과 건강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걱정스러운 점들이 늘어난 거죠.) 이제 저는 무언가 서류를 꾸밀 때 직업란에 “출판편집자”라고 쓸지, “시민단체활동가/인권활동가”라고 쓸지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다른 청소년운동 활동가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삶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17년 이전에 비해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고 정착된 건 맞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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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청소년운동 활동가’가 된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존재로서 나는 어떻게 활동하고 어떻게 살까, 또 사람들은 이런 존재인 나를 어떻게 대할까 흥미진진한 일입니다. 20대 초반에 ‘비청소년인 활동가’로서 받아들여야 했던 질문과 시선들을 다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30대는 또 다르네요. 그러니까 사실 제가 그동안 헤쳐왔던 건 ‘20대인 청소년운동 활동가’가 받아왔던 것일 뿐인 겁니다. 이 어찌나 나이주의적인 사회인지.

저 말고도 청소년운동 경력 10년차를 넘기고 있는 활동가들, 청소년운동에서 활동을 하다가 생계를 위해서든 자신의 운동에 대한 비전 때문에든 다른 운동단체로 이전한 활동가들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거지만 청소년운동을 하다가 활동가로서 살지는 않더라도 여러 직업을 가지고 그 직업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청소년운동을 지원해주는 사람들을 기대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관점에서 청소년운동 주체들의 진로에 대해서 단체가 챙기는 것도 부수적인 활동이긴 할 것입니다.

정작 청소년운동을 전업으로 하는 활동가의 자리는 여전히 대부분의 단체에서 만들지 못했거나, 만들어낸 일부의 단체에서도 취약하기만 한 것도 현실입니다. 그런 자리를 만들어내는 건 사실 어느 한 활동가 개인의 진로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동 전체의 자원과 역량, 그리고 그런 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조직을 만들어냄으로써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먹고살기 충분한 돈을 줄 수 있는 단체를 꾸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프로젝트 지원금이나 자산가의 호의에 의존하는 불건전한 재정 구조를 만들 게 아니라면 말이지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대중조직 건설이고요. (웃음) 두 번째로 떠오르는 건 저와 같은 나이 들고 나름 돈을 벌며 사는 활동가 및 전 활동가들이 무언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20명, 30명이 모이면 상근활동가 하나를 못 지탱할까요?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은 저의 몹쓸 버릇이지만 아마 40살 50살이 될 때까지 이 버릇은 고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쨌건, 저는 그렇게 나이 서른의 청소년운동 활동가는 어떤 존재로 생각될 것이고 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청소년운동을 시작한 지 13년째의 5월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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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 갑니다~~

    2018.09.12 02:22 [ ADDR : EDIT/ DEL : REPLY ]
  2. 잘보고 가요^^

    2018.10.17 15:08 [ ADDR : EDIT/ DEL : REPLY ]

어설픈꿈2018. 4. 28. 16:59

우리의 항해


홀로 새벽을 표류할 때면
무얼로 알 수 있을까 나의 경도를
별도 지워진 골목에 서면
별로 까닭도 없이 불안해진다

부지런한 걸음들이
부질없는 구름으로 감춰질까봐
지켜보던 나침반도
지쳐버린 침묵 아래 멈춰질까봐

햇빛이 눈썹까지 번져올 때야
입술로 기억해낸다 너의 번호를
널 부를 순 없지만
함께 탈 차편을 예매하기엔
우리의 예정이란 애매한 일이지만

외워둔 번호가, 외롭다고 말할 상대가 있다는 것
바라볼 사랑이 있다는 그 사실로
나는 출범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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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8.04.29 16:13 [ ADDR : EDIT/ DEL : REPLY ]

지나가는꿈2018. 4. 18. 19:30

감옥 안에서 청소년 참정권과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인하에 대해 썼던 글이 생각나서 뒤적여 보니까, 그때 18세 이하로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인하나 청소년 참정권 확대에는 우선 두 가지 정도가 필요할 것 같다고 적었었다.



- 먼저, 4.19 혁명 이후 1960년에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인하되었고, 2005년 법 개정도 1987년 시민혁명 이후 지연된 민주화 이행 과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고(1987년 6월 항쟁후 보수적 이행을 거쳐 2004년 이후에야 정치적-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된 것으로 평가하는 견해를 받아들여서.)... 그래서 어쩌면 만18세 이하로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인하는, 1987년에 준하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사건이 있어야 가능할 수도 있다고.
(*물론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변화가 반드시 그런 시민혁명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운동이 자체적으로 대중적 투쟁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그런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필요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 두 번째가 국회의원 설득, 국회 대응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대사회적 설득과 홍보를 통해 지지를 만들어 가는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18세 선거권만 해도 2012년 당시에도 여론조사를 해보면 반대비율이 찬성비율보다 더 많이 나오는 의제였고 그런 상황에서 국회만 바라봐도 잘 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민사회운동의 지지를 더 폭넓게 모아내고, 시민 대상 홍보도 더 많이 하고, 가능하면 청소년들의 직접 행동도 많이 만들어내는 게 선행해야 한다는...





그리고 지금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이 있었고, 그동안 내놔라운동본부나 18세선거권공동행동네트워크나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활동을 거쳐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18세 선거권 찬성이 60% 정도가 나온다. 물론 아직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일반적 인식으로까지 충분히 확대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나는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18세로 낮추는 게, 2013년에 감옥 안에서 바라보던 때보다는, 이제는 좀 더 가능해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장 올해 안 되더라도 2-3년 안에는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어쨌건 우리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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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것같은꿈2018. 4. 2. 18:16

안녕하세요, 언젠가 죽을 여러분.

돌이켜보니 제가 병역거부로 수감되어서 강제적으로 1년 이상 쉬는 기간을 가졌다가 출소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 지가 만으로 4년 반 정도, 5년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 6년 정도를 활동하다가 2011년 12월 정도부터 쉬었으니까, 긴 휴식 전에 살아왔던 만큼의 시간의 80% 정도의 시간을 또 어느샌가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이라는 게 그렇지만,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사람일수록 과거 자신이 했던 일들이 지금의 자신을 또 옭아맵니다. 요는 2013년 이후의 5년의 활동의 밀도가 훨씬 높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과거의 이야기를 공유하거나 정리할 사람이 나밖에 없구나 하는 고독감과는 별개로 나밖에 할 수 없는 역할들이나 내가 쌓아올려서 그 앞을 또 내다봐야만 하는 성과들을 앞에 두고 좀 질리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할 여력을 과거의 연장선에 다 빼앗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만큼 했으면 충분히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자꾸 듭니다. 하고 싶어서 마음속에 모셔둔 기획들이나, 대중조직(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 관련해서 하고 싶고 해야 하고 요청받는 몇 가지 일들이 있는데 도무지 손을 못 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의 저는 좀 너덜너덜한 상태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요구받는 해내야 하는 일들을 어거지로 해내고 있는 것에 가까울까요. 체력의 문제도 있을 테고 심리적으로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떠올릴 에너지가 남아 있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에너지가 조금 돌아올 때마다 눈앞의 일들을 없애는 데 모두 쓰고 마는 기분이에요. 작년 하반기부터 이런 상태였는데, 도중에 추석 연휴로 일주일쯤을 쉬고 또 2-3일쯤 쉬고 오고 하면서 그런 힘으로 어떻게 지나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이른 것 같아요. 요즘 저는 무엇을 할 때건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금의 삶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만, 그저 지금 여기서 멈추고 더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책임한 사람들, 지능을 쓸 의지가 결여된 사람들, 진부한 인간들, 착하고 유순하고 싶은 사람들, 상처입은 인간들을 생각할 때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나서 세상을 끝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슬펐으니 딱히 슬픈 것은 아닙니다만, 지친 것이지요.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은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 언제나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해결책입니다. 그것은 즉자적이고 유물적인 존재의 속성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은 이후나, 나의 연속성이라거나, 삶의 의미라거나, 나의 고통은 절대로 함께할 수도 없는 타인의 입장까지 생각하는, 그런 존재이기도 하니까 그 해결책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단지, 지금 저는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이 다 떨어져서 거기에서 눈을 돌리기가 어렵네요.



서설이 길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본론이 더 짧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서설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좀 쉬겠다는 것입니다. 대략 4월 6일 정도부터 한 달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 기간 동안에도 완전히 쉬지는 못할 거예요. 농성도 챙길 것이고 그 외에도 벌려 놓은 일들도 있고……. 그러나 2주 정도는 직장(벗)도 무급 휴가를 신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정도는 꼭 참가하고 챙겨야 하는 일들 외에는 모두 취소하거나 거절하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조금 힘이 돌아오면 마음속에 모셔둔 글들과 기획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 이영도 신작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영도를 읽읍시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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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8. 3. 11. 19:26



현재 대한민국 청소년(만19세미만)들은 선거권, 피선거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고, 정당 가입이 허용되지 않으며,

학교 등에서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참정권을 크게 제한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 많은 운동이 있어 왔고,

지금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 이후로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외침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국회에서도 꼭 선거권을 현행 19세보다 그 이하로 낮추는 법안, 청소년의 선거운동/정당가입 권리 보장하는 법안 등이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특히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고3 청소년이 올린 선거권 요구 청원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도 청소년 선거권 보장을 위해 나서고, 국회의원들에게도 압박이 될 수 있도록 많이 참여해 주세요!



http://bit.ly/청소년투표청원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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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8. 2. 19. 15:44
차별과 혐오에, 청소년 핑계는 좀 그만
- EBS 〈까칠남녀〉 사태에 대한 청소년 단체 공동 논평

최근 EBS 토크쇼 〈까칠남녀〉가 조기종영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공격을 공공연히 가하는 일부 단체(이하 ‘차별/혐오단체’)들이 〈까칠남녀〉를 공격하자, EBS 측에서 양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출연진인 은하선 작가를 출연 중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벌어진 사태이다.

EBS의 행태는 〈까칠남녀〉의 당초 기획 의도마저 훼손한, 잘못된 결정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차별/혐오단체들은 청소년들이 성소수자와 성에 대한 정보를 접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며, ‘교육방송’ EBS에서 그러한 내용을 방영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며 청소년을 핑계로 삼는 부적절한 행동이었고, 차별/혐오단체들의 시위는 청소년의 인권을 부정하는 말들의 대잔치이기도 했다.

이들처럼 차별과 혐오를 주장하며 이른바 ‘청소년 보호’를 핑계로 대는 것은 낡디 낡은 수법이다. 청소년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싶다는 일부 기성세대의 욕망과 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에 기대는 악의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아직도 이런 말에 혹하는 이들이 있다면 안타까운 노릇이다. “EBS가 우리 아이들 다 망친다.”, “내 자식 동성애자 될까 무섭다.”라고 말하는 차별/혐오단체들은 단지 성소수자를 나쁘다고 여기고 혐오하는 편견을 내보이고 있을 뿐이다. 만약 자식이나 주변 사람이 성소수자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해보면 매우 걱정스럽다. 그들은 성소수자 청소년의 존재를 짓밟고 있는 것이며,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편견과 반인권적 가치관을 따르라고 강요하려 하는 것이다.

차별/혐오단체들은 또한 ‘교육방송’에서 성소수자나 자위 등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소년은 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에 대해 알고 차별과 편견 없는 인식을 가지는 것 역시 중요한 권리이다. UN아동권리협약은 교육의 목적을 인권의 원칙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해, 평화, 관용, 평등, 및 우정의 정신을 가지는 것 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UN아동권리협약 제29조) 그러므로 EBS가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과 편견 없는 내용을 전하려는 의도로 〈까칠남녀〉를 기획한 것은 지극히 교육적인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청소년을 성에 대해 필요한 정보로부터 격리시키려는 것은 오히려 청소년의 정당한 교육권과 표현의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까칠남녀〉를 가리켜 ‘음란방송’, ‘성인방송’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보여 준다. 성에 대한 토크쇼 혹은 성소수자에 대한 방송은 ‘성인’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 지난 1월 초 EBS 앞 시위 현장에서는 “음란 성인 방송 싫어요!”, “동성애 교육은 받고 싶지 않아요!”라는 피켓 옷을 입은 청소년 시위 참가자들의 모습도 보였는데, 그분들도 성에 대한 정보는 청소년은 몰라야만 한다는 믿음이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태도를 하루빨리 버리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차별/혐오단체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편견과 거부감이 방송을 중단시키거나 성소수자들이 보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EBS가 은하선 작가의 출연 중단을 결정하고 〈까칠남녀〉를 조기종영시킨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EBS가 출연 중단의 이유로 든 것들은 갑작스런 출연 중단을 해야만 했던 이유라기에는 너무나 궁색했으며, 〈까칠남녀〉를 공격한 이들의 의도가 성소수자와 청소년의 인권 그리고 차별 반대의 원칙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임은 뻔히 보이는 바였다. EBS의 잘못된 결정이, 차별/혐오단체들이 자신들의 편견과 거부감이 보편적 정당성이 있다고 조금 더 오랫동안 착각할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앞으로 〈까칠남녀〉 외에도, 다양한 청소년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방송과 언론들, 교육의 현장에서 성에 대한 다양하고 적절한 정보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없는 이야기들이 당연하게 오가야 할 것이다. 청소년인권을 위해서라도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역시 노력할 것이다.


2018년 2월 14일

교육공동체 나다,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서울청소년노동인권지역단위네트워크,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충남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충북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대구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부산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부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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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7. 12. 20. 14:55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논평]
1987년과 2017년, 청소년들의 민주주의
-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의 명동성당 농성 30주년, 그리고 대통령 선거 예정일을 맞아


30년 전, 1987년 12월 1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수백 명의 고등학생들이 모여서 외쳤다.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 각성하라!” “군부독재 타도하여 민주교육 쟁취하자!” 노태우 당선, 군부 독재 연장에 반대하며,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서고련)’이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면서 선언문을 발표했던 것이다. 1987년 6월 시민들이 쟁취한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 무렵부터 청소년들은 민주주의를 외쳤고 선거 결과에 직접 행동으로 대응했다. 자신들은 참여할 수 없었던 대통령 선거의 반민주적인 결과에 대해 항의했고, 선거권을 가진 이들의 각성을 요청했다.

더불어, 오늘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다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을 날이기도 하다. 서고련의 농성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청소년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냈다. 1987년의 청소년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함께 외쳤고 노태우 대통령 당선에 항의했다면, 2017년의 청소년들은 광장에서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청소년들은 언제나 역사와 정치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나서왔다는 증거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은 시민들의 승리였지만, 또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반민주적 전횡을 일삼을 수 있게 했던 것 역시 우리의 현실이었다. 진정한 ‘적폐 청산’을 위해서는 ‘박근혜를 당선시켰던 기성세대의 반성’ 역시 필요하다. 먼저,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전제로 청소년들을 배제한 가운데 이루어져 온 정치가 과연 얼마나 성숙하고 합리적이었던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민주주의를 훼손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데는 함께했음에도 새로운 대통령을 뽑을 때는 전혀 함께하지 못했던 청소년들의 현실은 과연 온당한가. 민주주의에 필요한 마음가짐은 누군가는 미성숙하고 자신들은 충분히 성숙하다는 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인간이며 같이 대화하며 결정해나가야 한다는 겸허함 그리고 과오를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용기일 것이다.

청소년들을 더 이상 선거와 정치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위치에 방치해선 안 된다. 선거권도 없고 선거운동도 정당활동도 금지당한 가운데, 민주주의의 외곽에서 선거 이후에야 목소리를 내고 ‘기성세대의 각성’을 요구하게 해선 안 된다. 30년 전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 독재 타도를 외쳤다면, 오늘날 청소년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대우받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87년 6월을, 고등학생들의 명동성당 농성을, 그리고 바로 1년 전에 타올랐던 촛불을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가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해 조속히 나서야 할 것이다.


2017년 12월 20일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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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꿈2017. 12. 1. 23:57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 후원행사를 맞이하여 쓴 글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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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요?

한때, 청소년운동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궁핍함을 상징하는 것은 교통비, 컵라면, 삼각김밥 등이었습니다. 경제적 약자인 청소년활동가들은 밥을 사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돈조차도 없어서 어렵게 연명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당장의 돈이 없어서 활동을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넉넉한 이들만이 활동을 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물론 지금도 유효하고, 청소년활동가들에게 교통비, 외식비, 통신비와 같이 활동에 드는 최소한의 실비를 보장하는 것은 아직도 다 풀지 못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청소년운동의 발전에 따라, 그리고 청소년활동가의 확대에 따라 좀 다른 문제도 부상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운동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청소년운동을 길게 하는 이들도 늘어났습니다. 20대가 되어도 계속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청소년운동의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려는 이들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청소년운동에 전념하면서 살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월 150만 원(2018년 최저임금으로 따지면 주 40시간 일했을 때 월급은 1,573,770원입니다.) 이상의 돈을 지급하며 상근활동가를 둘 수 있는 청소년운동 단체는 없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활동가들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계속 청소년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을 때는, 앞으로 몇 년 후에는 그래도 운동이 확대되고 발전해서 좀 다른 길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청소년운동의 성장은 더디고 특히 재정적 열악함은 심각합니다. 2005년에 운동을 시작한 제가 그때 이미 “앞으로 몇 년 안에 청소년운동에서 상근비를 받을 수 있게 만들겠다”라고 생각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전업 활동가를 둘 수 없는 상황이니,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청소년활동가들은 처음에는 다른 파트타임 임노동을 병행하면서 운동을 하거나, 가정 사정이 좀 나으면 부모나 양육자의 생계 보조를 받으며 운동을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 독립과 생계 문제는 삶을 압박해 옵니다. 청소년운동에 생계 보장 전망이 안 보인다는 느낌이 짙어지면 전업 운동을 지향하는 것을 지속할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19살에서 20대 초반 시기가 청소년기를 벗어나면서 청소년운동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첫 번째 시기라면, 이처럼 생계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턱 밑까지 차올 때가 사람들이 운동을 떠나게 되는 두 번째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청소년운동에 필요한 지원이 최소한의 교통비, 식비를 해결하기 위한 돈이라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렇게 말할 때 상상하는 청소년활동가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청소년활동가들을 주 생계 책임자, 또는 부양 가족이 있는 경제 생활 인구로 은연중에 잘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그런 의심을 품곤 합니다. 지금 청소년활동가들이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말 최저임금 수준으로라도 ‘소득’을 가질 수 있는 단체입니다. 또는, 본인이 당장 그렇게 벌지는 못하더라도,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면 그런 식으로 삶과 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라도 갖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단 1명이나 2명이라도 청소년운동에서 전업 활동가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청소년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청소년활동가는, 청소년운동의 이후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운동의 역사가 길어지고 영역이 확대되고 담론이 축적되면서, 운동에 대해 전문성과 역량을 가진 활동가의 존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청소년운동에서는 이런 전문성과 역량을 길러나가면서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가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런 활동가를 운동 차원에서 둘 수도 없습니다.

사실 청소년운동이 돌아가는 대부분의 매커니즘은, 공식적 용어로 말하면 ‘자원봉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간혹 연대체 회의 같은 데 가서 주위를 둘러보면 속으로 쓴웃음을 짓습니다. 바로 옆에서 같이 이야기하는 다른 운동의 ‘활동가’들은 상근활동가들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청소년운동 활동가들은 다들 ‘자원활동가’ 내지는 ‘자원봉사자’인 거니까요. 거의 대부분을 무급-봉사에 의존해야 하는 운동의 안정성이나 깊이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게 확실해진다면, 막 운동을 시작한 다른 청소년활동가들 역시 자신의 진로로 청소년운동을 계속하는 걸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고 운동을 더 오래할 수도 있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에 고등학생운동 또는 청소년운동을 하면서 더 발전하고 커지는 운동을 한 번이라도 꿈꾸었던 분이라면, 저희의 절박함에 한층 더 공감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연대할 청소년단체, 섭외할 청소년 주체를 찾아 헤맨 적이 있는 사회운동가라면 왜 청소년활동가들이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사는 게 필요한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1-2명이라도 전업 활동가가 있는 게 운동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해보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청소년활동가들이 청소년운동으로 먹고살 수 있도록, 청소년운동을 후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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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아수나로 10주년 후원행사를, 올해는 활기 후원행사를 준비하면서 후원을 여러 차례 호소드렸습니다.
한낱 님이 이런 문장을 썼지요. "이 운동의 처량함이 아니라 이 운동의 정당성으로 당신에게 가닿고 싶습니다."
그래서 청소년활동가들은 어떤 일들을 하는가 우리 운동이 평소에 무엇을 하고 왜 필요한가 그런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청소년활동가들이 만들어온 변화에도 주목해주시고, 또 잘 보이진 않더라도 계속 만들고 있는 움직임의 의미를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에 잘 띄고, 변화를 당장 만들고 있는 운동에 더 관심을 두고 후원을 해줍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고, 공론화조차 잘 하지 못하고, 큰 투쟁을 벌일 수도 없는 여건의 운동이야말로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와 연대가 필요한 운동일지도 모릅니다. 청소년운동도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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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청소년활동가의 하루는 이보다는 덜 빡빡한 일정이고 좀 더 분담이 되긴 합니다만, 실제로 오전에 기자회견 - 오후 면담 - 저녁에 생계 관련 일 등의 일정을 소화하는 경우를 최근에 본 적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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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어느 청소년활동가의 하루

아침 7시 반. 휴대폰 알람을 황급히 끈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는 활동가가 어제 일정이 늦게 끝나 밤 11시에야 들어온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조금 더 자고 싶고 팔다리가 뻐근하다. 하지만 오늘은 10시에 국회에서 청소년 정당 가입 보장을 위한 정당법 개정에 대한 토론회가 있다. 사무실에 들러서 자료집이나 단체 소개 브로셔 등을 챙겨 가려면 8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짐을 싸들고 전철을 타고 국회의사당역에 내린다. 택시라도 탔다면 좋았으련만, 짐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서 택시비 지원을 단체에 요청하기도 좀 그렇다. 시간이 빠듯해서 종종걸음 친다. 국회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넓은지... 의원회관에 들어가서 신분증으로 청소년증을 내니 안내 직원이 "고등학생이니? 국회 견학 왔어?" 하고 말을 건다. 기분이 상했지만 우물우물 입 속으로만 몇 마디 하고 만다. 마음도 급했고, 한마디 쏘아 붙여 줄 기력도 없다. 아직 하루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지칠까.

지난 주말에도 단체 회원들과 청소년인권과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모임을 가지고, 캠페인을 했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쉬는 날 없이 13일째. 휴일이 시급하다. 공부모임에서는 회원들이 겪는 차별 발언이나 경험들을 나누었고, 그중 어떤 것들은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한 계획도 세웠다. 잘 준비해야 할 텐데...

토론회가 끝나고 간담회실을 나와 로비에 앉아 노트북을 주섬주섬 꺼내든다. 토론회 보도자료를 배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기자들 몇 명한테서 보도자료를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다. 직접 취재하고 써주면 좋을 텐데... 하지만 기사라도 실어주는 언론사가 많지 않으니까 고마운 마음이다. 발언 내용들을 정리하면서는, 사심을 가득 담아서 학교에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시간을 내서 온 청소년 토론자 발언을 가장 길게, 가장 앞에 넣는다. 그 다음 순서는 법안 발의를 다짐하는 국회의원들의 발언이다. 청소년 참정권 문제도 참 오랫동안 씨름해 왔는데 아직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해묵은 과제인데도, 여전히 '18세 선거권'이 전부인 줄 아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점심을 먹으러 간 이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얼른 끝내야지.

같이 토론회를 한 사람들에게 점심을 얻어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 덕에 오늘은 도시락을 안 싸와도 되었다. 잠시 뒤 오후 2시에는 소지품 압수 사례 문제에 대해 교육청 조사관을 만나기로 했다. 경기도, 광주, 서울, 전북 4개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 있고 변화한 것도 많고, 조례에서는 안전을 위해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소지품을 압수하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의 소지품을 함부로 압수하는 경우들이 많다. 우리 단체 조사에서 수집된 것 중에는 학생들의 악세서리를 압수해서 눈앞에서 부숴버리는 등 모욕적인 행위들도 열 건이 넘는다. 서울시교육청에 학생인권조례조차 지키지 않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 조사관은 관심과 노력을 약속했지만, 교육청이 많은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례나 교육청 권한의 한계,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법을 만들기 위한 운동도 하고 있는 것이지만, 교육청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좀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랄 뿐이다.

면담을 끝낸 뒤 시계를 보니 3시가 넘어가고 있다. 단체에 회원 가입 신청을 한 사람들 목록을 정리해서 연락을 돌린다. 중고등학생인 분들은 학교에 있는지 대부분 통화가 되질 않아서 문자메시지를 남겨두고, 몇몇 연락이 된 분들에게는 단체에 대한 안내를 하고 활동 참여 방식을 알려드린다. 저녁 때 연락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6시부터 나도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단체 페이스북 페이지에 새 메시지가 있다고 알림이 뜬다. 아, 어제 밤 11시에 왔는데 미처 답을 못 한 메시지다. 학교에서 교사가 방과후학교 참여를 강요하는데 인권침해가 아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메시지다. 문의해온 학생분이 사는 지역은 마땅히 활동하는 청소년 단체가 없어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보니 아직 답변도 못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에 가려면 5시엔 나가야 하고, 이제 1시간밖에 안 남았다.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후원 회원 배가를 위한 연락을 돌리기 위해 계획은 짜뒀는데 진행을 못 하고 있고, 현장실습 중 사망한 청소년 노동자분 사건에 대한 단체 성명서도 작성해야 하는데... 메시지가 온 것을 그냥 못 본 체하고, '읽음' 표시 안 뜨게 한 채 지나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그래도 기다리고 있을 학생분을 먼저 생각해야지 싶어서, '그건 인권침해가 맞지만 학교에 항의해도 묵살할 가능성이 높고 우리 단체에서는 어떤 걸 도와드릴 수 있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모아 문제제기하는 게 가장 좋고...' 그런 장문의 메시지를 답변으로 보낸다. 답장은 아마 이 학생분이 학교 일과가 끝나고 밤에야 올 것이다. 이런 일들은 보통 사건을 공개하지 않고 학교 안에서 싸우고, 단체에서도 비공개로 공문을 보내 압박하거나 교육청 민원을 내는 등의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밤 10시, 세상은 벌써 캄캄하다. 집에 도착하면 방 청소도 해야 하고 성명서도 써야 한다.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단체 게시판을 확인해보니, SNS에 무슨 학교에 성추행과 혐오/차별발언으로 대자보를 붙였던 사건이 올라왔다고 연락해봐야하지 않겠냐는 글이 올라와있다. 가능하다면 그 학교 앞에 가거나 학생분들을 온라인으로 연락해보고 만나서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나마 내일 오전에는 일정이 없어서 다행이다. 30분이라도 머리를 좀 쉬게 하기 위해, 버스 창가에 기대어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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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보고 갑니다 ~~

    2017.12.10 03:44 [ ADDR : EDIT/ DEL : REPLY ]

흘러들어온꿈2017. 11. 5. 20:11

그것이 바로 내셔널리즘 아닌가?

※ 〈아이 캔 스피크〉 미리니름(스포일러)이 가득합니다.


추석 연휴 직전에 〈아이 캔 스피크〉를 보았다.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최근 〈리얼〉이나 〈VIP〉나 〈군함도〉로 내려가 있던 한국 상업 영화에 대한 기대치와 상호 작용하여, 상대 평가를 한다면 꽤 높은 평가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본군 ‘위안부’ 내용을 다룬 대중적인 영화의 계보 속에서 이 영화가 실현한 미덕이나 진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쨌건 〈아이 캔 스피크〉가 한국 상업 영화의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재미있는 것 이후에라도 이 영화의 문제점이나 ‘해로움’을 좀 더 말해야겠다고 느꼈다. 어느 쪽으로든 말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주변이 온통 〈아이 캔 스피크〉 칭찬 일색이기에 긴 글로 문제점을 다 짚으려고 했지만, 그 사이에 나와 비슷한 관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의 문제점을 짚은 글들이 몇 편 나왔기에, 단상들을 모아놓은 정도로 적고자 한다.


박민재의 서사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옥분이 이야기상으로도 배우의 연기로도 압도적인 주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상당 부분 박민재(이제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관객이 박민재에게 감정 이입할 것을 기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나옥분 만큼이나 박민재의 서사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다.

먼저, 나는 박민재 캐릭터에 대한 일각의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예고편이나 포스터에 적힌 것과 달리 박민재는 ‘원칙주의자’가 아니다. 박민재는 초반에 나옥분에 대해 대응할 때 원칙과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이는 단지 곤란한 민원인에 대한 대처 방침을 선언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오히려 박민재는 이후 구청장에게 재개발 추진에서 구청이 책임을 벗기 위한 꼼수를 제시하고, 구청장 앞에서는 지금 자기 직급에 만족한다고 겸손한 체하면서도 바로 진급 시험 준비를 하러 가는, 상당히 속물적이면서도 책략가의 일면을 가진 인물이다. 나옥분이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할 때 궤변을 구사하며 일부러 어려운 단어로 시험을 치는 것도 그런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다.

그러므로 박민재에 초점을 맞춘 영화의 서사는, 속물적이며 개인주의적이고 복지부동 자세의 공무원 박민재가 나옥분을 만나면서 변화하고 나옥분을 매개로 열의와 공적 책임감을 갖고 나서게 되는 이야기다. 박민재가 미국까지 가서 의회에 난입할 때가 그 변화의 절정을 찍는 순간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 〈아이 캔 스피크〉의 중심 이야기 중 한 축은 〈변호인〉 등 최근 한국 영화에서 여러 차례 변주되었던 ‘소시민의 각성’ 테마를 담고 있다.





공무원과 국가

그런데 기존의 비슷한 이야기들과 박민재의 이야기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바로 박민재가 ‘공무원’이라는 것이다. 박민재는 본래 공적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 할 책무가 있는 국가의 대리인이다. 그럼에도 (현실의 많은 공무원이 그러하듯이) 그가 공적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이 캔 스피크〉의 이야기 배후에 숨어 있는 갈등이다.

이런 문제는 나옥분과의 대비를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재개발 문제를 비롯해 시장과 거리의 온갖 공적 문제들에 ‘오지랖’ 넓게 개입하고 다니는 것은 그저 한 개인인 나옥분이다. 반면 〈아이 캔 스피크〉에서 개그 장면처럼 지나치는 공무원들의 일상을 보자. 명절 맞이 인사 이벤트를 하고, 계단에 소비 kcal 표시를 (그것도 거꾸로) 붙이는 그런 쓸모없어 보이는 전시성 사업들이나 하고 있다. 중간중간에 다소 뜬금없이 끼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씬들은, 사람들의 삶과 유리된, 공적이지 못한 공무원-국가를 보여 주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박민재가 시장에 가서 법원 판결이 나기도 전인데 행패를 부리는 깡패들을 제지하는 장면에서 비로소 공무원으로서의 박민재는 존재 의의를 찾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이 캔 스피크〉가 공무원–국가의 의미를 회복시키는 것은 바로 민족의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나서는 것을 통해서다. 나옥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밝혀지고 난 뒤 구청 공무원들은 그가 ‘위안부’ 피해자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나서서 서명을 받고, 박민재의 설득으로 구청장도 움직인다. 그래서 〈아이 캔 스피크〉는 국가와 민족, 내셔널리즘에 관한 영화이다.



나옥분의 서사

이승한이 비평했듯, 〈아이 캔 스피크〉의 미덕은 일본군 ‘위안부’ 소재를 다룬 영화들의 계보 속에서 피해자인 인물을 입체적이고 인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나옥분은 ‘도깨비 할머니’이기도 하고, 또한 ‘위안부’ 피해자로서 어머니와 동생 등에게도 외면당하고 자신을 감추고 살아왔다. 나옥분의 사연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광복 후 한국 사회의 적대적인 반응을 간접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참고 : 피해자도 엄마도 아닌 ‘개인’의 초상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812211.html/)

그런데 나는 나옥분을 박민재와 대비되는 면을 통해 해석하고 싶다. 나옥분이 온갖 문제점을 찾아내서 시정하게 하고 민원을 내고 다니는 모습은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일을 늘리는 악성 민원인인 것으로 그려지고 시장 상인들 역시 나옥분이 트집이나 잡고 다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을 한다. 박민재의 동생 박영재는 나옥분의 그런 행동을 ‘외로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단지 가족 없이 혈혈단신으로 사는 처지의 외로움일까?

극중에서 나옥분이 민원을 제기하고 지적하는 것들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옥분은 재개발 추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건물을 일부러 훼손하는 행동을 고발하고, 입간판을 치우라고 할 때 역시 간판이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고 하며 어린이들이 그 입간판에 부딪혀서 사고가 날 뻔한 사례들을 거론한다. 반면에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했단 이유로 단속을 당한 식당 주인이 “할머니가 신고했죠?”라고 따질 때는 자신을 뭘로 보고 그러냐고 한다. 나옥분은 (적어도 자기 생각에는) 이것저것 다 트집을 잡고 신고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름대로 공공의 복리와 정의를 위해서, 이웃들의 공생을 위해서 필요한 규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나설 것을 촉구하는 사람이다. ‘공무원’도 아님에도.

다소 과잉의 해석일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상상해 본다. 나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 또한 광복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감춰야 할 ‘사적인 수치’로 부정당하고, 국가로부터도 소극적으로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나서서 공적 규범을 지키고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재개발을 추진하려는 시장 건물주의 ‘합법적’ 횡포에 맞서서 구청이 나서서 상인들을 지켜줄 것을 요청하는, 그러나 구청은 오히려 건물주의 편인 상황에 좌절하는 나옥분의 모습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겹쳐 보게 된다. 물론 나옥분이 기본적으로 같이 사는 이웃들을 챙기려 하고 정이 많은 인물이라는 것도 분명하지만 말이다.

나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수치’를 숨기고 살기를 바란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이를 감추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친구의 설득과 위독함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어머니와의 약속을 깨고 증언을 하러 나서기에 이른다. 따라서 나옥분의 서사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남의 일에 오지랖 넓게 나서는 – 공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던 캐릭터가, 자기 개인의 경험과 기억을 돌아보고 화해하고 극복하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박민재가 사적 세계에서 공적 세계로 나아간다면, 나옥분은 공적 세계에만 주로 걸쳐 있다가 숨겨져 있던 사적 세계를 꺼낸다. 그런데 나옥분이 갖고 있던 비밀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것이고 이는 이제 온 민족의, 국가의 이슈가 된 문제였다. 그래서 나옥분의 이야기에서 후반부는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가 통합된다.



‘죄송합니다’에는 무엇이 담겼나

나옥분이 제기해 온 그 많은 민원과 문제들은 그저 ‘악성 민원인의 심술’이라고 무시당하다가, 나옥분이 숨겨 온 개인사를 드러내자 그것은 대단히 공적 사안이 되고 박민재를 비롯하여 국가와 구청이 나서게 되는 것은 참 역설적이다. 시장 상인으로서의 나옥분, 노인으로서의 나옥분의 문제제기는 정당하지 못하게 취급되었지만, 민족이 공격당한 사건으로서 위안부 ‘피해자’인 나옥분의 존재는 갑자기 거대해진다. 나는 이것이 민족-국가의 소유물로서의 여성의 몸과 성이라는 관념이 (과거 민족의 ‘수치’로 생각하고 덮으려 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는다.

〈아이 캔 스피크〉의 연출 중에 무엇보다도 박민재와 족발집 사람이 나옥분에게 사과를 하는 시점이 나옥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이 알려진 이후인 점이 아쉬웠다. 마치 나옥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서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특히 박민재가 울먹이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장면은 껄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재개발에 관한 민원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것이나 폭언을 한 것을 사과하는 것이라면 그런 점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해명을 하거나 사과를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박민재의 “죄송합니다”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죄책감을 투영하기를, 관객이 감정 이입하기를 의도하는 것처럼 느꼈다.

(좀 더 나아가면 이는 박민재라는 남성으로 대표되는 국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화해를 청하는 장면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구청 공무원들이 대부분 남성이고 박민재 옆자리의 여성 공무원은 거의 역할이 없이 박민재에게 연애 감정을 우스운 방식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로만 소비되는 것이 그저 우연일까? ‘여성부’보다도 구청장이 나서서 일을 처리하라고 박민재가 말하는 것이 단지 설득을 위한 언변일 뿐인가?)

(참고 : "나(I)"는 꼭 '위안부'여야만 하는가.
 https://brunch.co.kr/@like-orwell/35 )


적대와 봉합

많은 사람들이 〈아이 캔 스피크〉가 전반과 후반의 서사가 잘 이어지지 않고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것이 만듦새의 엉성함이 아니라, 이 영화가 깔고 있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높은 개연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면?

초반부와 중반부까지 영화가 제기한 갈등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옥분이 노인으로서 겪는 차별이나 문제들, 재개발을 둘러싼 문제들, 민원인 나옥분과 구청 공무원 사이의 갈등, 박민재와 박영재 사이의 긴장 등. 그러나 후반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그 모든 갈등은 뒤로 물러난다. 아니, 밀려난다. 그리고 주된 갈등은 일본을 대표하는 외교관(인가? 너무 외교관 안 같아서….)과 나옥분을 비롯한 한국인들 사이의 문제로 바꿔치기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미국 의회 장면은 더 극적이어야 했고, 일본 외교관은 더 단순하고 악해 보여야 했을 것이다.

이 ‘외부’에 대한 적대는 내부의 여러 이해관계 문제와 갈등을 봉합해버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재개발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건물주와 깡패(일명 ‘용팔이’)들을 비롯한 재개발 추진 세력, 구청 공무원들, 나옥분 사이의 대립이다. 문제들 사이에는 위계가 생겼고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아도 괜찮거나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재개발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구청이 낸 소송도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데, 영화가 재개발 문제를 결말부에서 다루는 방식은 무책임할 정도이다. 이럴 거면 굳이 재개발 문제를 왜 플롯 안에 포함시킨 것인가? 첫 장면을 재개발에 관련된 건물 훼손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속았다는 배신감마저 든다.

그리고 이는 영화 외적으로 확대해 보아도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부(박정희든 박근혜든)가 일제 강점기 문제에 대해 잘못된 협상을 한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 또한 일본은 총리 명의로 일단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를 표명한 적이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은, 단지 공식 인정과 사과만이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의 반성과 법적 책임 인정 문제 등 더 구체적인 논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아이 캔 스피크〉는 이런 맥락을 축소하고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더 단순화한다. 한국 정부의 책임도 사라지고, 한국인들은 그저 나옥분(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힘을 모아주고 여비를 보태주는 협력자로만 그려진다. 따라서 이 영화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루는 데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그 자체를 다루는 데는 퇴행적인 면마저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소재를 통해서 공무원-국가의 존재 의의를 보이는 데서 더 가서, 일본에 대한 적대를 바탕으로 한국 내부의 단결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내셔널리즘, 국가주의-민족주의가 작동하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공무원들은 여전하지만, 나옥분을 서포트함으로써 국가의 공적 일을 하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얻는다(고 착각한다). 영화가 상영시간 전체에 걸쳐 나옥분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냈음에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나옥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증언자로 단순해지고 만다. 결국 이 영화가 내셔널리즘의 역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

(참고 : 후 캔 스피크 / 후지이 다케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14569.html )


세대 간 문제

사족으로, 나는 영화를 본 직후에 〈아이 캔 스피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대표되는 노인 세대와 박민재 등으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 간의 문제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경제적으로도 발전하고 국제적으로도 위상을 가지게 된(영어 실력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현재 젊은 세대가, 이전의 식민지 시기 기억을 가진 세대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관점을 담고 있다. 박민재, 박영재, 나옥분이 이루는 유사 가족 관계도 그런 틀로 생각해볼 면이 있다. 어쩌면 가부장적 국가의 모습은 더 나이 많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젊고 유능하면서 나옥분에게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나옥분을 돕는 박민재의 얼굴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이 부분은 공부가 부족하여 아직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더 풀어간다면 흥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비슷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다른 영화들과 비교 대조를 해 가며. 그러나 어쨌건,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옥분은 스스로 말할 수 있고 과거 자기를 침묵하게 했던 것과 싸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우리가 더 나아진 구석일 것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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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일고 갑니다 ^^

    2017.11.25 15:37 [ ADDR : EDIT/ DEL : REPLY ]
  2. 조아영

    잘 읽고 갑니다. 영화를 보고 어딘가 미묘하게 속시원하지 않은 감정이 드는 이유는 이때문이었던것 같습니다.

    2017.12.18 10:40 [ ADDR : EDIT/ DEL : REPLY ]

걸어가는꿈2017. 11. 4. 08:48

축사 유감

어제 《세상을 바꾼 청소년》 책 출간기념회가 있었다. 축사를 하는 역할로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 등도 축사를 하였다. 축사를 하는 사람이 6명인가 7명인가 여튼 많아서 나는 나름 신경써서 짧게 말을 줄였는데 조희연 이수호 두 분은 말을 참 길게 하시더라.

말이 긴 것보다도 조희연 이수호 두 분의 축사를 들으면서 내용이 꽤 마음이 거슬렸다. 일단 축사 내내 "여러분"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왔다. 특히 여러분이 ~해야 한다, 여러분이 ~하기 바란다, 여러분이 18세 선거권을 위해 나서야 한다... 그런 말이 적지 않았다. 축하를 하러 온 건지 훈계나 당부를 하러 온 건지 잘 모르겠다.

만약 내가 민교협이나 전교조가 뭐를 해 내서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받아 축사를 한다고 상상해 보자. (나를 부를 리는 거의 없겠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교수 여러분이 ~를 해야 한다" "교사 여러분이 앞으로 ~하기 바란다", "교사 여러분이 앞으로 정치적 기본권을 위해 나서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축사를 채우면 참 어색할 것이다. 사회적 관례나 인삿말에도 많은 차별과 습관이 작용한다.

무엇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신은 1987년의 경험이 자기의 자부심이고 여러분도 2016년 촛불에 참여한 걸 평생의 자부심으로 가지라고 말했는데, 듣자마자 속으로 '그건 자칫하면 꼰대 되는 길이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역사적 승리의 경험은 우리에게 자신감이나 자부심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집합적인 인민의 힘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이지, 자기 삶에 대한 자부심이 되어선 안 된다. 사람은 자기의 바로 지금 현재의 모습과 마주하고 그 모습에서 자부심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지, 과거의 내가 이런 일에도 참여했다는 것을 안고 살면 반성의 동기도 약해지고 현재에 충실하기도 어렵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말이 집합적인 걸 말한 건지 개인적인 걸 말한 건지는 불분명했지만 87년이 자신의 자부심이라고 말했던 것 같아서 아무래도 개인적인 게 더 강하지 않나 싶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동년배인 사람들 다수가 1987년에 대해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 두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런 사고방식을 전수하고 다닌다 상상하면 더더욱.

조희연이나 이수호 두 분에 대한 어떠한 억하심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10~15분 남짓하는 축사를 들으면서 든 여러 생각들 중 일부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축사 외적으로 특별히 불만스러운 게 있다면, 18세 선거권만 자꾸 이야기하지 말고 교육감 권한으로 개입할 수 있는, 학교 안에서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위한 포부나 다짐이나 내실 있는 계획부터 내놓으시길 바란다는 것 정도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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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들어온꿈2017. 10. 29. 18:47

청소년은 시민이다

김효연, 시민의 확장, 스리체어스, 2017

 

 

시민의 확장은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정당법센터 연구원인 김효연이 법학적 관점에서 청소년 참정권과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의 문제를 논한 책이다. 먼저 이 책에는 몇 가지 의의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겠다.

첫 번째로, 단지 선거권 제한 연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틀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18세 선거권 자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슈가 된 문제지만, 국회나 언론 등에서는 그것을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로 잘 다루지 않았다. 또한 18세 선거권 외의 청소년 참정권 문제 역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민의 확장은 청소년의 권리 문제로서 참정권, 선거권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기존에 나온 책들과 차별화된다.

두 번째로, 시민의 확장은 법학적인 개념과 방법으로 논의를 끌고 간다는 점이다. 그동안 청소년 참정권 문제가 주로 (민주주의) 교육의 논리나 세대 간 평등 등 사회학/사회복지학의 논리로 다루어졌던 것에 비해, 시민의 확장은 헌법재판시 기본권 제한의 법리나 인권으로서의 참정권의 성격 논의 등 법학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등에서 계속해서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보수적인 판결을 내놓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접근이 가지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

세 번째는, 단지 국내법이나 국내 사례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1, 2장이 세계적으로 아동의 권리 변천사나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연구를 담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확장의 시야는 국제적이다. 이에 따라 실제 사례들을 검토하면서도 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청소년 참정권 관련 제도들,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경우 등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편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를 논하면서, ‘연령성숙도를 분리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99)도 저자가 한 연구의 깊이를 보여 준다. 이상의 장점들이 청소년 참정권 이슈에 대해 알고 이야기하기 위해 시민의 확장을 읽어야 할 이유들이라 하겠다.

 

 

사회의 책임

 

청소년의 참정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아니, 사실 청소년인권 이야기를 할 때면 거의 대부분) 청소년이 그만큼 성숙한가, 청소년이 그러한 권리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경우가 많다.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면서 18세면 충분히 성숙하다고 논거를 드는 것도 이미 그러한 틀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장에서 던진 질문, ‘몇 살이 되어야 시민이 될 수 있는가라는 말은 곧 이러한 틀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장에서 아동·청소년도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따라 그리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을 연역해 낸다. 다만 2008년과 2016년의 촛불 집회를 언급하면서 아동·청소년의 정치 참여가 이례적 현상이었다고 평가한 것은 아쉬운 부분인데, 이는 저자가 법학 전공자로서 아동·청소년의 정치 참여 사례에 밝지 못한 탓으로 이해하겠다.

4‘19세 미만 선거권 제한은 위헌이다에서는 헌법재판소가 19세 선거권 제한 연령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선거권이 국가 내적인 기본권인지, 인간의 고유한 권리인 인권인지, 그리고 주권 행사의 문제인지를 나누어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내 학자 소수와 독일 학자는 선거권의 법적 성격을 인권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97)라며 인권으로서의 선거권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과 정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청소년 참정권 제한에 반대하긴 하지만, 선거권 제한 연령 설정 자체는 입법자의 재량일 수 있다는 논리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기에 저자가 제시한 관점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고 생각을 고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이 문제를 풀 결정권과 책임은 여전히 국회에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선거권 등을 제한하고 보장하는 기준으로 청소년이 충분히 성숙했는지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봐야 할까? 4장 소제목의 판단 능력이 미숙하면 권리를 빼앗겨도 되는가?”라는 질문도 적절하긴 하지만, 더 나아가서 시민의 확장은 사회와 제도의 문제를 제기한다. 예컨대, 영국에서 16세 선거권 주장이 나오면서 행한 연구에서 16-17세 아동이 정치에 관심이 적고 낮은 수준의 정치적 지식을 갖고 있고 정치적 태도도 일관적이거나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서는 2007년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한 뒤,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16-17세의 아동·청소년이 정치적 성숙성 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6-17세의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성숙성은 선거권 연령의 변화 이후에 성장했고, 즉 선거권 연령이 16-17세의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성숙성에 영향을 주고 있”(122)는 것이다. 정치적 성숙성은 생물학적으로 정해진다기보다는, 제도나 사회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청소년 참정권 요구는 청소년의 성숙성이나 뛰어남을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다. 청소년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할, 청소년도 민주주의 사회의 예외 지대가 아니게 해야 할, 우리 사회의 책임을 묻는 운동이다. 무엇보다도 청소년 참정권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운동이다. 저자의 말대로 입법부는 입법 정책으로 단계적인 선거권 연령 하향이라는 개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127) 또한 연령 제한과 상관없이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할 여러 방법들도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은 시민을 확장하자는 취지로 시민의 확장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에 적힌 내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청소년은 이미 시민이다. 시민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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