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9일, 브로콜리너마저 연말 공연을 갔다.
몇 년 전(<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가 나온 뒤였으니까 아마 2016년 아니면 2017년이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그때도 탄핵 정국...?) 스탠딩 공연을 갔던 뒤, 오랜만에 처음으로...
첫 곡을 <끝>으로 시작했다. 시작을 끝으로 한다는 역설, 하지만 연말공연이니까 어쩌면 어울리는 선곡. 분명히 예전에 한두 번 들어본 노래인데 문득 가슴에 저며드는 듯한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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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 다시 이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을까
다시 마음을 열고 만날 수 있을까 어제처럼
이젠 다시는 오지 않을 길을 걸으며 난 흘리네
흘리네 우리가 나눴던 많은 꿈들
너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쯤 알고 있어
미안해 우리는 조금은 달랐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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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09년에서 2011년 정도에 가장 많이 들은 한국 가수의 앨범이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일 거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앨범 수록곡 순서도 외우고 있다. 앨범을 들을 때, 이 앨범의 전체적인 테마를 나는 '이별'이라고 느꼈다. 중간에 있는 <두근두근>과 <속좁은 여학생> 정도를 제외하면, 노랫말들에 담긴 상황과 감정이 모두 이별 또는 그에 가까운 언저리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춤>에서는 함께하는 관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꿈[춤]이 깨진 않을까, 하면서 노래가 끝나고,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에서는 큰 상처를 입은 화자가 혼자서 슬픈 노래를 부르며 달리고 춤을 춘다. 전에는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 수도 없는 꿈을" 꿨지만,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춘다.
<봄이 오면>. 여타 사랑노래들이 흔히 그렇듯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랑이 떠나고 나는 "너를 기다"린다. <2009년의 우리들>. "그때 그 마음을 너는 기억할까?"라는 질문은 지금 나의 곁에 네가 없다는 걸 방증한다. "슬픈 이별이 오면" 친구가 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을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어 버렸다.
<말>과 <안녕>은 여러모로 통하는 노래라고 느꼈는데, "우리 힘들 때 했던 나쁜 말들은 눈감아 주자"(<안녕>)라는 노랫말 때문인지 나는 종종 둘을 헷갈리기도 했다. 두 노래 모두 할 수 없던 말들, 아무것도 아니게 된 말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잔인한 관계를 언급한다.
<편지>는 멀리 떠난 후의 상황과 감정을 간접적이지만 직설적으로 담고 있다. 거기 이어지는 <앵콜요청금지>가 마치 <편지>에 대한 대답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고, 그 마음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보편적인 노래>는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메타적인 노래다.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를 이야기하지만 그 노래에 나는 그때그때, 선명하게 그때가 떠오른다. 마치 이 앨범에 실린 그 많은 이별 노래들이 모두 "보편적인 노래"인지, "너는 이 노래를 듣고서 그때의 마음을 기억"할지 묻는 것 같다. 앨범의 거의 끝에 와서야 이별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노래이기도 하다.(<2009년의 우리들>에도 "이별"이란 단어가 나오지만 가정법이다) 마지막 곡인 <유자차>는, 시간이 흘러 한때 좋았던 기억과 감정이 "차가운 껍질"로 남은 와중에 그것을 끌어안으면서, 꺼내보면서 다시 봄날로 가자고 한다...
(*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곡의 스타일이나 감정 면에서 앨범 3, 4, 5번 트랙인 <봄이 오면>, <두근두근>, <속좁은 여학생>이 이질적인 느낌이 있고, 그 외의 곡들이 하나의 이별 이야기를 이루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2024년에 다시 듣는 브로콜리너마저는 '보편적인 노래' 앨범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을 재소환하면서, 세월 속에서 너덜너덜해진 나에게는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보편적인 노래'에 수록된 곡이 아님에도 <끝>이라는 곡으로 시작한 공연은 여전히 내게 브로콜리너마저가 이별의 음악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