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들어온꿈 133

그것이 바로 내셔널리즘 아닌가? - 〈아이 캔 스피크〉

그것이 바로 내셔널리즘 아닌가? ※ 〈아이 캔 스피크〉 미리니름(스포일러)이 가득합니다. 추석 연휴 직전에 〈아이 캔 스피크〉를 보았다.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최근 〈리얼〉이나 〈VIP〉나 〈군함도〉로 내려가 있던 한국 상업 영화에 대한 기대치와 상호 작용하여, 상대 평가를 한다면 꽤 높은 평가를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본군 ‘위안부’ 내용을 다룬 대중적인 영화의 계보 속에서 이 영화가 실현한 미덕이나 진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어쨌건 〈아이 캔 스피크〉가 한국 상업 영화의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재미있는 것 이후에라도 이 영화의 문제점이나 ‘해로움’을 좀 더 말해야겠다고 느꼈다. 어느 쪽으로든 말하고 싶어지는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

흘러들어온꿈 2017.11.05

청소년은 시민이다 -《시민의 확장》

청소년은 시민이다김효연, 《시민의 확장》, 스리체어스, 2017 《시민의 확장》은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정당법센터 연구원인 김효연이 법학적 관점에서 청소년 참정권과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의 문제를 논한 책이다. 먼저 이 책에는 몇 가지 의의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겠다.첫 번째로, 단지 선거권 제한 연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틀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18세 선거권 자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슈가 된 문제지만, 국회나 언론 등에서는 그것을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로 잘 다루지 않았다. 또한 18세 선거권 외의 청소년 참정권 문제 역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민의 확장》은 청소년의 권리 문제로서 참정권, 선거권 문제에 접근하고 있어 기존에 나온 책들과 차별화된다. 두 번째..

흘러들어온꿈 2017.10.29

"법은 법적 미성년들의 성애에 대한 관심과 행위를 부정하고 처벌한다."

"법은 유년의 '천진무구함'과 '성인'의 섹슈얼리티 사이에 놓인 경계를 유지하는 데 특히 흉포하다. 우리 문화는 젊은이들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기보다, 그리고 배려하고 책임지는 태도로 그것에 대비하기보다, 지역마다 다르게 지정된, 합법적 성관계 동의 연령에 미치지 못하는 법적 미성년들의 성애에 대한 관심과 행위를 부정하고 처벌한다. 섹슈얼리티에 미리 노출되지 않게 나이 어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된 법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랄 지경이다.성 허용 세대sexual generation와의 분리를 보장하는 주된 기제는 '성적 동의 연령에 관한 법들age-of-consent laws'이다. 이 법은 지극히 잔혹한 강간과 지극히 온화한 연애를 구분하지 않는다. 17세와 성적 접촉을 했다는 죄목으로 유죄 판결..

흘러들어온꿈 2017.10.27

‘이것도 노동이다’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 - 《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

‘이것도 노동이다’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좋은 노동은 가능한가 – 청년 세대의 사회적 노동》(이영롱.명수민 지음, 교육공동체 벗, 2016) 리뷰 운동 사회 안의 해묵은 이야깃거리로, ‘시민사회단체의 상근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화제가 있다. 최근에는 열정노동/열정페이 비판 등이 여론에 대두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당연히 노동자지!’ 하는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원론적으로는 맞다. 운동의 과정에서 하는 일들도 노동이다. 단체와 계약하여 정해진 돈을 받고 일을 한다면 더욱 명백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나는 이게 그렇게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자명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재정 상황 상 오랜 기간 상근활동가가 없었다. 그러다가 단체..

흘러들어온꿈 2017.04.19

『맛집폭격』 : 맛집 묘사 건너, 전쟁을 묻다

『맛집폭격』 : 맛집 묘사 건너, 전쟁을 묻다 《맛집폭격》 (배명훈, 북하우스, 2014) 주의 : 책에 관한 스포일러가 일부 있습니다. 《맛집폭격》의 첫 장을 열면 인도 요리에 대한 묘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 뒤에는 스페인 음식 차례다. 그 다음은 또 터키 음식……. 이 소설은 곳곳에서, 특히 전반부에 이런 묘사가 등장한다. 읽다보니 배가 고파지고 군침이 고일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여기에 등장하는 맛집들은 모두 실제로 있는 식당들이기 때문에, 당장 찾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맛집’보다는 ‘폭격’ 쪽이다. 맛집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에 반응하는 위장을 달래면서 책을 읽어나가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파괴되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이 ..

흘러들어온꿈 2017.01.10

오늘의 교육 33호 인공 지능 특집에 대한 리뷰를 겸하여, 인공 지능과 교육에 대해

오늘의 교육 33호 인공 지능 특집에 대한 리뷰를 겸하여, 인공 지능과 교육에 대해 인공 지능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설명하면 인간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지능이다. 어릴 적부터 SF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보아 온 이들에게, 인공 지능이라는 말은 인간을 닮은 로봇이나 인간의 질문에 대답을 내놓는 컴퓨터 등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혹은 좀 더 하드한 SF 팬이라면 아이작 아시모프의 ‘멀티백’이나 로봇 시리즈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일단은 ‘인공 지능’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내려놓도록 하자. 사실 우리가 논하는 ‘인공 지능’은 이미 상당 부분이 현실화되어 있고 우리 일상 속에도 들어와 있다. 가령 내 아이폰에서 음성 인식 기능에 기반을 두고 적절한 검색이나 앱 실행, 전화 걸기 ..

흘러들어온꿈 2016.08.15

여기에 우리 편이 있었네? -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서현사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오자와 마키코 지음, 박동섭 옮김, 서현사, 2010 (2015년 2판3쇄)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인데, 그 변화의 방식에 소위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대 어린 시기에는 월 단위로 변화의 양상이 측정된다. ‘생명의 변화’에서 ‘발달’이라고 말이 바뀐 순간에 삶의 모습은 왜곡되고, 축소되고, 경직되어버렸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지고 합/불합격, 적응/부적응, 정/부정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상품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우열과 경쟁이 우리 의식에 착 달라붙기 시작하였다."(34쪽) "논리성·합리성을 몸에 익히는 것을 ‘성숙’이라 이름 붙여 상위에 두고, 감정·직관을 ‘미성숙’이라 부르며 하위에 놓는 ..

흘러들어온꿈 2016.07.16

오늘의교육 31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다시 묻는다?

31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다시 묻는다 리뷰 31호 특집이랑 32호에 실린 후속에 대한 간단한 리뷰 ... 같은 것입니다. - 31호 특집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주제로 하여 구성됐습니다. 조합원들의 글이 많이 실린 것이 특징인데요.'정치적 중립성'이 쟁점이 된다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한국사나 정책/정당에 대한 의견 표명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글을 읽어보면 정치성이라는 문제가 굉장히 폭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진은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밝혔던 일 등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야자를 학생들이 희망대로 참여하게 한 것이나 학생인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였다고 합니다.그리고 최병우의 글은, '수행평가 비율'이라는 문제도 정치적일 수 있음을 보여줍..

흘러들어온꿈 2016.06.21

엄기호 '사랑이 불가능한 이유'와 '사랑과 난입' 비평

엄기호 씨가 경향신문 칼럼 을 두고 일어난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히며 경향 칼럼 지면에서 하차할 것을 밝혔다. 논란이 된 글들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비평해보고자 한다. - 최근에 엄기호 씨의 경향신문 칼럼 글이 SNS에서 논란이 된 시발점은 이 아니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082054005&code=990100 였다. 그러니 이 글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글 을 읽다보면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학생들의 대화에서 ‘에로스의 죽음’을 떠올릴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글의 방향이 바뀌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일단 그 바로 앞에서 거론된 사례들은, 사랑을 하지 않는 이유로 ▲ 소라넷이라는 범죄사이트, ▲ 남자들이..

흘러들어온꿈 2016.06.15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세 번째를 내포하고 있으니까.

"그런 말은 아무 의미 없어. 쥐가 아무리 자신이 쥐가 아니라고 주장해도 고양이에겐 무의미한 것과 마찬가지야. 두 번째 요구 자체가 첫 번째와 세 번째를 내포하고 있으니까. 아아, 왜 세 번째뿐만이 아니라 첫 번째도 내포하냐고? 하나밖에 없을 땐 처음이라고 하지 않아. 그냥 하나지. 심지어 하나라는 말조차 생략할 때가 많아. 베로시 토프탈이 하나라고 말할 필요는 없잖아. 두 번째가 있을 때만 첫 번째가 만들어지는 거야. 두 번째는 그렇게 위험한 거지. 첫 번째와 세 번째를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그리고 넌 그걸 했어. 그러니 네 보증은 무의미해." (『피를 마시는 새 6』, 이영도, p.240.)

흘러들어온꿈 201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