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바꾼 인권 선언 - 학생인권조례의 거의 모든 것》
공현, 진냥
14,000원 | 2024
교육공동체 벗
새로 쓴 책입니다.
사실 학생인권조례로 책이 나온 것도 너무 늦은 감이 있지요. 학생인권조례가 최초로 시행된 게 2010년이고 그 뒤로도 '청소년인권운동'이라고 하면 '학생인권조례'가 대중에게는 대표격으로 인식되어 왔는데도 학생인권조례라는 주제를 비중 있게 다룬 책이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좀 기묘한 일입니다.
(서문에 넣으려다가 뺀 내용인데)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난 10년간 다른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로 책 같은 거 많이 쓸 줄 알았거든요. 국가인권위 결정례들로도 책이 나오는데(웃음) 교사이든, 뭐 학생인권센터 조사관이나 옹호관이든, 누구든 많이 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희 활동가들은 학생인권조례 만들고 운동하는 걸로도 바쁘니까, 조례 제정하고 이 정도로 메이저 제도권 만들어 놨으면, 좀 제도권 안의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근데 별로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써야 한다는 걸 또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게 우리 사회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관심과 저평가를 보여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교사들이든, 학자(연구자)들이든 학생인권조례에 대해서 사실과 역사에 근거해서 평가하고 토론하는 작업이 더 활발하게 있어야 마땅했지요. 특히 교육계에서는 더더욱 말입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해서든, 진보 교육감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든, 이미 2010년대에 다 지나간 이야기라고 생각해서든 학생인권 문제를 후순위로, 중요하지 않게 보는 일이 너무나 많지요.
이 책은 그래서 결국 쓰게 됐습니다. 학생인권조례의 거의 모든 것. 사실 이 책을 처음 기획한 건 2021년이고 본격적으로 쓰기에 착수한 게 2022년이었는데, 필자들이 워낙에 바빠서 이렇게 늦게 나오고 말았네요. 아무리 늦어도 2023년 중에는 내려던 생각이었는데요, 원래는...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가 여전히 의미 있기에, 많이 널리 읽히기를 바랍니다.
책 서문 (들어가는 글)
학생인권조례,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차별과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듭시다!”
2011년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 발의 서명을 모으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외쳤던 말이다. 토론회나 언론 인터뷰에선 이런 이야기도 수없이 했다. “학생도 인간이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춰선 안 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인격을 존중받으며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당연하고도 자명한 듯한 말들이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이유와 의미를 설명해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당연하고 뻔한 이유라면 학생인권조례가 왜 굳이 필요하냐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는 유례가 없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는 바로 그 당연한 일들이 한국의 학교에서는 수십 년 동안 이뤄지지 않아 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면서 공교육 기관에서 각종 폭력과 전체주의적 규율, 인권 침해가 만연한 나라가 드물다는 사실을 외면한 것
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정부와 교육 당국과 학교가 학생의 보편적인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는 지켜지지 않던 원칙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제도적 수단이다.
헌법학자 김두식은 헌법적 기본권의 정신을 “인정한다. 그러나……”를 극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김두식(2004), 《헌법의 풍경》, 교양인.) “학생도 인간이고 인권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라며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실제론 학생의 인권을 부정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학생인권에 대해 취해 온 태도였다. 청소년인권운동은 이에 맞서 “우려 사항이나 어려움은 알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며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인권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국가와 사회가 다해야 할 가장 기본적 의무이며, 이를 우선순위에 두고 걸림돌을 해결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기본을 지키지 못하면서 ‘관행’, ‘교육상 필요’ 등의 핑계를 드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오해와 공격은 점점 심해져, 이제는 “인정한다. 그러나……”도 아니고 “학생에게 무슨 인권이냐, 인권은 나쁘다,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하는 데까지 이른 듯 보인다. 특히 2022년 이후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거나 명백히 개악·후퇴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오해와 공격은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부당한 공격에 비하면 학생인권조례의 내용과 의미를 알리고 효과와 한계를 평가하려는 노력은 너무나 부족해 보인다.
학생인권조례라는 제도가 등장한 지 10년이 넘었고, 학교 현장에 불러온 변화가 작지 않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정확히 정리해 놓은 자료조차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후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정확한 정보와 정당한 평가가 공유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 사회·교육계의 상대적 무관심 그리고 악성 정보만 만연해 있는 현실에 깊은 아쉬움이 든다. 또한 진작에 학생인권조례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며, 이 책의 집필을 더욱 서두르게 되었다. 집필 과정에 참고한 여러 선행 연구를 비롯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또한 이 책이 계기가 되어 향후 더 많은 연구와 도서가 나오고, 학생인권조례 및 학생인권에 관하여 건전한 사회적 논의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학생인권조례의 역사부터 과제까지
이 책의 저자들은 오랜 세월 청소년인권운동을 해 오며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에 참여한 활동가들이다. 저자 중 공현은 2009년에 경기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연구 용역팀에 소속되어 현재 학생인권조례들의 얼개에 영향을 미친 조례안을 함께 작성한 바있다. 이 책에서는 학생인권조례의 역사와 배경, 제정 과정, 학생인권조례가 만든 변화 등의 주제를 맡아서 썼다. 다른 저자 진냥은 대구와 경남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 책에는 교사로서, 활동가로서, 연구자로서, 그리고 비非제정 지역의 시민으로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직접 조례안 작성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들은 모두 학생인권조례의 공동 저자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인권 기준과 내용은 청소년인권운동이 주장한 내용, 활동으로 이끌어 낸 판례·결정례 등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학생인권조례의 공동 저자들이 그것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풀어 쓴 해설이자 입문서인 셈이다. 다만 이 책이 학생인권조례의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담았다고는 할 수 없어서 부제는 “학생인권조례의 거의 모든 것”으로 달았다. 예컨대 여러 비제정 지역에서 있었던 시도, 지역별 조례안에 대한 기록과 평가를 포함시키지 못한 점은 아쉽다.
책의 1부 ‘학생인권조례의 모든 것’에서는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기본적인 배경과 정보를 다룬다. 학생인권조례가 한국 사회의 어떠한 역사적·사회적 배경 속에 탄생했는지, 각 지역에서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제정되었는지를 정리했다. 학생인권조례가 결코 몇몇 교육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어떤 취지와 가치 지향을 담고 있는지, 어떤 변화와 교육을 꿈꾸는지도 설명했다.
2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의 내용은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자주 듣게 되는 질문에 답하는 일종의 FAQ이다. ‘왜 학생의 인권만 따로 다루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이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에 관한 일각에서의 논란,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들이 힘들다’는 등의 이야기에 대해 때로는 반박하고 때로는 해명한다. 단순한 반박에 그치지 않고 학생인권조례의 확장된 의미, 그리고 인권·교육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녹아 있는 부분이다.
3부 ‘학생인권조례가 가진 의미’는 학생인권조례가 실제로 가져온 변화와 파급 효과, 넓은 차원의 의의를 다뤘다. 학생인권조례가 불러온 변화를 경험과 조사 결과를 통해 살펴본다. 학생인권조례의 한계점을 함께 짚으며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폐지·후퇴 시도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글로 책을 마무리한다.
‘첫 번째 변화’를 넘어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인권운동이 처음으로 일군 제도적인 성과였고 ‘변화다운 변화’였다. 그 이전에도 운동을 통해 개별 학교들의 학칙을 개선시킨 적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광역 지자체 단위에서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경기 학생인권조례가 최초였다. 또한, 실제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직후부터 머리카락 길이 규제라든지, 강제 야간자율학습 같은 것들은 사라지거나 감소하기 시작한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물론 변화를 만드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학생인권조례를 무시하고 두발 복장을 규제하는 학칙을 유지 또는 강화하려는 학교들에 맞서 싸우고, 재학생들의 학내 시위나 서명운동에 함께하기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준법을 그렇게 강조하는 학교들이었지만, 엄연한 법으로서 학교가 준수해야 할 학생인권조례는 제대로 안 지키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정부에 따라서는 교육부가 학생인권조례 무효 소송을 걸고 법률과 시행령을 개정해 가면서 학생인권조례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고 애쓰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 운동 이후로 청소년인권단체 내부에서도 여러 토론이 있었으며, 지금도 고민되는 부분은 많다. 학생인권조례를 계기로 우리의 이야기가 ‘법을 지켜라’라는 수준에 머무르게 되지는 않았나? 학생인권조례를 홍보하는 데 매진하느라, 다른 의제나 운동 방식, 해야 할 역할들을 소홀히 하게 된 면은 없을까? 제도화라는 방식이나 정부 기관에 의존하게 되는 면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잘한 일이라고 확신을 갖고 답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머물기를 고집하던 학교에 찾아온, 아니 우리가 들이민 ‘첫 번째 변화’였다. 물론 바꾸지 못한 것도 있지만 이를 계기로 바뀐 것이 많고, 그중 어떤 것은 되돌릴 수 없는 변화라고도 생각한다. 이는 청소년인권운동이 학교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기도 했다. 조례라는 법의 형식을 띠고 있긴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를 행정적인 법규를 넘어 학교를 바꾼 인권 선언이자 청소년인권운동의 결실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인권조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경로였을 따름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부당하게 공격받는 것이 답답하고 분노스럽지만, 그다음의 운동을 준비하는 이유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이미’ 만들어 낸 변화를 딛고서, ‘아직’ 오지 않은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와 교육을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학생인권조례 자체가 아니라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 온, 만들어 갈 변화이기 때문이다.
2024년 6월
공현
목차
들어가는 글
1부. 학생인권조례의 모든 것
학생인권, 제도의 울타리로 지키자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과정
학생인권조례가 지향하는 세상
2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
왜 학생의 인권만 조례로 보장하나?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사가 힘든가?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와 임신을 조장한다?
학생인권조례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차별 관련 조항인가?
학생인권조례는 교사를 처벌하기 위한 제도인가?
3부. 학생인권조례가 가진 의미
학생인권조례는 어떤 변화를 낳았나?
‘비(非)제정 지역’에서 바라보는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