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아수나로 논평] 차별과 편견, 감시와 통제로 얼룩진 청소년 게임규제를 리셋해야 한다

공현 2013. 11. 15. 16:56





[논평] 차별과 편견, 감시와 통제로 얼룩진 청소년 게임규제를 리셋해야 한다




요즘 ‘게임’이 뜨거운 감자이다. 새누리당 신의진 국회의원의 대표발의로 나온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른바 「4대중독법」)에서 “마약”, “도박”, “알코올”, “인터넷게임 및 미디어 콘텐츠”가 나란히 중독물로 열거된 것이 논란의 방아쇠였다. 이 논란 속에서 특히 청소년의 게임 이용 사례가 자주 거론되었고,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게임규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왔다. 「4대중독법」 외에도 새누리당 손인춘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하여 추진 중인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에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강력히 규제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현재도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 친권자의 요청에 따라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선택적 셧다운제’, 청소년의 게임 이용에 대한 정보를 친권자에게 제공하여 감시가 가능하게 하는 것 등 다양한 청소년 게임규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이를 더 ‘레벨업’시키려는 것이다.



청소년 게임 규제는 차별과 편견, 감시와 통제의 다른 이름

게임 과몰입 혹은 중독의 문제는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며, 여러 연령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많은 국회의원이나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을 비롯한 여러 정책들은 청소년의 게임 이용만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결국 청소년들은 그 권리를 함부로 제한해도 된다는 차별적 사고방식과 청소년의 문화에 대한 편견을 반영한 것 아닌가? 아니면, 청소년은 참정권이 제한당하고 있기 때문에 마구 규제를 해도 정부나 국회로서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일각에서 얘기하듯이 자녀들이 말 잘 듣고 게임 안 하고 공부 잘 하길 바라는 부모들의 ‘표심’을 얻으려고 내놓은 정책 아니냐는 지적이 그럴 듯하게 들릴 정도이다. 그런 정책은 정당성도 공정성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청소년들 중에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할 만큼 게임에 과몰입/중독되는 경우는 소수이다. 하지만 지금 시행되고 있고 추진되고 있는 청소년 게임규제들은, 이를 이유로 하여 청소년 전체의 권리를 제한하려 드는 ‘전체 공격’을 시전하고 있다. 현재 청소년보호법은 16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 게임 가입 및 구입 때 친권자 동의 필수화, ▲ 게임 이용시간 등 정보를 친권자가 감시할 수 있게 함, ▲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셧다운제 등의 규제를 가하고 있다. 이는 청소년의 사생활의 권리, 자기결정권, 문화적 권리, 놀 권리 등은 완전히 안중에도 없는 반인권적인 정책이다. 현재 발의된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은 ‘19세 미만’으로 그 피해 대상을 넓히고,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는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로 금지 시간 확대, 친권자뿐 아니라 담임교사에게도 게임 이용정보 제공 등, 청소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제도들을 ‘레벨업’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제도들은 청소년들의 삶에 대한 국가와 학교, 친권자의 감시와 통제를 용이하게 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당성도 없고 공정성도 없고 청소년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청소년 게임규제는 당장 갖다버림이 마땅하다.



소위 “중독” 문제와 청소년 게임규제는 별개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서 불행해지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예방하고 개선시키기 위해서 청소년을 때려잡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청소년에게만 규제를 가하는 것은 차별적이며, 청소년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제도는 폭력적이다. 하나의 놀이 문화이기도 한 게임에 대해 그 자체를 ‘중독물’이라고 분류하며 전방위적인 규제를 가하려 하는 것 역시 편견 돋는 태도이다. 게임 등의 과몰입/중독 문제에 대처하려면 전연령 대상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닌 지원하고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과몰입/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게임산업 등 관련자들에게도 이에 관해 합당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적절한 길이다.

현재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4대중독법」 문제이다. 우리는 이 법에 대해서는 그 취지와 전반적 방향에는 그리 반대하지 않는다. 청소년 게임규제 내용을 담고 있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중독 현상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기본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법안이 추진되는 배경에 청소년의 게임 이용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는 점은 크게 우려를 표하며, 법안에서 부족하거나 지나친 점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지적하고자 한다.

사실 게임이 중독을 유발하는 것인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분명하지 않다. 원인이나 의존성 문제 등에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단계이다. 즉 게임에 지나치게 빠지는 현상에 대해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등과 같은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아닌지는 아직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근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게임 및 미디어 콘텐츠 전반을 ‘중독’ 문제에 포함시켜 법을 만들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애초에 미디어 콘텐츠 전반을 중독물로 규정한 것이나 “그 밖에 중독성이 있는 각종 물질과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모두 중독물로 다룰 수 있게 한 것 등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중독물의 생산, 유통 및 판매를 정부가 관리할 수 있게 한 법조항과 결합하여 보면 이는 정부의 전방위적인 문화 통제와 탄압을 뒷받침해줄 수도 있다. 부적절한 과잉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법안을 수정하고, 중독 현상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정책이 올바르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 게임이나 문화적 콘텐츠에 대한 과몰입/중독 현상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 역시 더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청소년 게임규제가 아니라 청소년 문화 · 인권 정책이 필요하다

청소년 게임규제는, ‘보호’의 가면을 내세우며 청소년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 규제를 강화해온 청소년 정책 역사의 반복이다. 이는 청소년들의 삶을 국가와 비청소년들이 규율하고 청소년들을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길러내고 훈육하고자 하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말을 잘 듣고, 학교나 부모 등 체제에 순종하는 청소년을 만들려는 이러한 정책 속에서는 청소년들의 인권도, 오늘의 행복도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청소년 당사자들의 의견은 반영하려고 하지도 않은 이러한 정책들은 비민주적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청소년 게임규제는, 모두 갖다버리고 리셋(reset)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원점에서부터, 청소년들의 의견에 귀기울이면서, 청소년과 게임에 관한 정책들을 다시 만드는 것이 낫다.

일단, 우리는 길게 보았을 때 게임이 이윤과 자본의 논리로부터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익을 내야 한다는 시장 논리 때문에 상당수 게임에서는 자꾸 사행성 조장, 과도한 몰입이나 과소비식의 ‘현질’을 유도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게임 콘텐츠가 폭력적이거나 성을 상품화하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루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게임은 내용적으로나 방법적으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바람직한 놀이 문화이자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하고 창조적인 게임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향유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며, 게임의 내용에 대한 게이머들과 시민들의 아래에서부터의 비평, 논의, 심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더 바람직한 게임 콘텐츠와 문화가 만들어지고 유통될 수 있을 때, 청소년들의 ‘게임할 권리’도 더 즐겁고 풍부하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게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청소년 문화 · 인권 정책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의 놀 권리, 쉴 권리와 문화적 권리 등을 실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관점에서의 정책들이 마련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입시경쟁교육과 과중한 학습부담을 없애고 청소년들에게 여가시간을 보장하는 것, 청소년들이 게임 및 미디어를 적절히 즐기고 행복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동아리활동․여행․문화예술활동 등 다양한 놀이와 취미를 누릴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은 가장 기초적인 일일 터이다. 2011년 통계청의 청소년의 여가 활용 등에 관련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청소년들 중 다수는 ‘여행’ 과 ‘문화예술 관람’을 여가로 즐기고 싶어 하지만, ‘시간 부족’ 때문에 ‘TV 및 DVD 시청’과 ‘컴퓨터 게임 및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일부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중독 현상도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와 여가권의 열악한 상황을 반영한 현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비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게임도 하고 다른 여가도 원하는 대로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과몰입/중독이냐 통제/감시냐 하는 식의 선택지는 잘못된 허상이다. 게임산업의 이윤논리도, 국가의 규제 · 훈육 논리도 아닌 청소년들과 사람들의 행복과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청소년들도 차별 없이 사회의 한 주인으로 살아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청소년 정책이 향해야 할 길이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2013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