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친권과 가정의 ‘사회화’

공현 2008. 2. 7. 15:11
친권과 가정의 ‘사회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현

* 여기에서 “청소년”이란 0세~만19세 또는 만20세, 여하간 친권자와 가정에 종속되는 ‘미성년자’ 모두를 의미합니다.


친권과 가정에 대한 논의를 열며

  한국 사회에서 가정은 건드리기 어려운 성역이다. 가정 안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고 그 중 상당수가 공론화되어 왔음에도, 주류적인 논의에서 가정은 여전히 지원하고 보호하고 회복해야 할 대상에 가깝다.

  특히 가정 안에서 친권자(부모 혹은 다른 보호자, 후견인 등. “부모”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차별할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친권자”라는 표현을 계속 쓰겠다.)와 어린이·청소년의 관계와 친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들은 별로 많지 않다. 아동학대나 방임에 관해 활동하는 단체들이 친권제한 제도나 관련 외국 사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특수한 ― 이른바 ‘부적합’한 ― 친권자에게서 친권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즉, 아동학대나 방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친권 자체의 성격에 대한 문제 제기보다는 친권이 ‘잘못’ 행사되거나 ‘제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친권을 어떻게 제한하고 박탈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런 식의 주장은 현재의 친권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는 이르지 못하며, 게다가 때로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양육권만을 불평등하게 제한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현재, 권리이자 의무라고들 하는 이 친권이란 녀석은, 많은 부분 어린이·청소년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억압하는 한편 친권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현재 생활, 진로 문제, 종교 문제 등에서 친권자들의 지나친 간섭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가정의 조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체벌과 성폭행을 비롯한 직접적 폭력들은 물론 사생활의 권리, 자기결정권, 교육권, 직업선택의 자유, 종교의 자유, 여가권, 이동권, 기타 사회권 침해 등등이 가정에서 일어나곤 하는 청소년인권 침해이다. 한편, 친권자들은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할지,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며 양육비·교육비, 그리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우선 여기에선 친권자들의 부담보다는 청소년인권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가정, 구조적 문제

  가정에서 일어나는 청소년인권 문제들은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폭력이나 학대가 아니면 사회에서 잘 다루어지지도 않지만, 어쩌다 얘기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친권자의 자질 및 성격의 문제나 청소년과 친권자의 관계 문제로 풀려고 한다. 좀 더 구조적, 사회적 접근을 한다고 하더라도 가정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해서 가정을 강화함으로써 친권자의 양육 부담을 해소하고 청소년과 친권자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일어나는 청소년인권 문제는 가정과 사회 그 구조와 제도 자체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많다. 당장 떠오르는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 친권자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도록 청소년을 사회경제적 약자로 만드는 여러 사회 제도나 인식들 ▲ ‘어른’은 좀 더 경험이 많기에 청소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더 옳은 판단을 청소년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통념 ▲ 친권자의 양육 방식이나 태도에 대해 되도록 간섭하지 않으며 가정과 친권자-청소년 관계를 사적인 공간으로 취급하려는 사회의 태도 ▲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고 재생산을 담당하는 중요 단위인 ‘가정’을 유지시키려는 정책 ▲ 청소년을 ‘가정’과 ‘학교’에 격리해둠으로써 사회에 순응하는 구성원을 길러내려는 사회 구조 등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설령 청소년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하는 친권자라고 하더라도, 은연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것’, ‘성공하는 삶’의 방식을 청소년에게 강요하게 되기 쉽다. 청소년들도 자신이 사회경제적으로 그 친권자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친권자의 눈치를 적잖이 보게 되곤 한다. 대개의 친권자들은 그러한 심리적 조심스러움조차 없으며 얼마든지 청소년들을 통제하고 강압할 수 있는 조건에 놓여 있다. 이런 속에서 청소년들은 친권자와의 관계의 단절 또는 제한, 어느 정도의 타협, 순응과 포기, 거부와 이른바 ‘반항’, 가출 등 여러 방법을 구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과 친권의 문제는, 단지 친권자들의 의식을 바꿈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친권자들의 의식 개선은 분명 청소년들의 가정에서의 인권 상황을 상당 부분 나아지게 하겠지만, 구조적 변화 없이 얼마나 광범위한 의식 개선이 가능할지도 의문일뿐더러, 가정과 사회의 방식과 청소년들의 지위 자체를 바꿔나가지 않는 한 그 변화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게 될 것이다.


친권과 가정의 사회화

  나는 여기에서 ‘감히’ 친권 축소를 주장한다. “친권 축소”란 단지 법률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친권”의 범위를 축소한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는 포괄적으로, 권리이자 의무인 친권 자체를 축소시키고 그 내용을 사회적인 부분으로 이양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어느 친권자를 두었느냐에 따라 청소년들이 전혀 다른 양육 환경을 겪게 되는 것을 막고 양육과 교육 문제를 사회가 책임지고 그 내용에 공공성을 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청소년들이 사회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친권자와 가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양육 책임과 부담을 친권자가 대부분 져야 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며, 청소년들 중에 출산이나 임신을 경험하는 비혼모들과 임신중절의 문제 또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사적 영역이며 청소년인권을 침해하고 제한하는 권리이자 공간으로 존재하는 친권과 가정을 어떻게 사회화, 공공화, 민주화시키느냐이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이를 위한 정책들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사회적 공동양육 시스템 도입과 점진적 확대
▲ 친권자가 어린이·청소년을 심리적으로 ‘분리’하지 못해서 일어나게 되는 갈등이나 문제를 방지하고 친권자가 어린이·청소년들과 적절하게 관계 맺게 해주기 위한, 그리고 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과 상담 체계의 강화
▲ 청소년들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청소년 생활 보조 제공, 독립 지원, 노동 기회 확대 (청소년 노동의 문제는 다른 글에서 다루므로 더 이상 자세히 쓰진 않겠다.)
▲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벗어나거나 탈출하더라도 주거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지역사회의 시설이나 시스템 확립 (주거권 보장)
▲ 친권자(대개 부모)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사회적 교육·보육 시설
▲ 가정에서의 체벌 금지 등 청소년인권 침해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을 사회적 상식으로 만들기 위한 제도적 조치와 운동

  가정 안에서의 친권자와 청소년의 관계,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사회경제문화적 구조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지금과 같은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재생산 영역 중에 하나인 가정을 새롭게 재편하는 것은 비록 매우 민감한 일이더라도 필수적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현재 가정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인권침해, 불평등, 억압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또는 사회를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롭고 인권적인 형태로 바꾸고자 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친권과 가정의 사회화는 청소년인권 문제의 측면 뿐 아니라 친권자의 과도한 부담과 압박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벗어나고 친권자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는 움직임들이 많아져야 한다. 예컨대 가출 청소년들이 다수가 되어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이 가정을 강화하고 청소년을 더 억압하는 방향이 될 것인지, 아니면 청소년들의 가정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원하고 친권을 축소하는 방향이 될 것인지는 세력화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활동과 움직임에 달렸다. 두 번째로, 전반적인 청소년인권운동의 확대와 발전을 통해 청소년들의 주체성과 권리를 확대해나가고, 가정과 친권을 사회화해나가는 제도들을 도입하고 시행하도록 청소년인권운동이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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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BOOK 프로젝트의 일부로, 예전에 썼던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