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학대와 체벌 사이의 관계

공현 2014. 12. 11. 03:41
학대와 체벌 사이의 관계

공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몇 년 전, 대구에서 교사가 학생을 매로 200대를 때려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 있었다. 그때 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한 청소년활동가가 든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200대를 때려야만 폭력인가? 단 1대라도 폭력이다!”

바로 올해, 서울에서 고등학생이 ‘앉았다 일어났다’ 체벌을 800회 당하고 근육이 파열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을 보며 나는 내가 고등학교에서, 등굣길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200번이 넘게 해야 했던 일이 떠올랐다. 요즘도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십 번씩 했다는 이야기를 드물지 않게 듣게 된다. ‘앉았다 일어났다’는 800번을 시켜야만, 근육이 파열되어야만 폭력인가? 나는 앉았다 일어났다를 200번 넘게 하고 2주 정도는 계단도 제대로 못 오르내렸지만 그걸 시킨 교사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1대를 때리는 체벌은 폭력인가? ‘앉았다 일어났다’는 몇 회부터 폭력이 되는가? 어느 정도부터가 폭력인가? 이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정도부터 학대인가?” 뺨을 철썩 때리면 학대이고, 손바닥을 회초리로 때리면 학대가 아닌가? 이에 대한 정부나 법원의 입장은 애매하다. 각종 체벌이나 학대 사건들에 대한 판례 역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가”를 언급하면서 애매모호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체벌’은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로 정의된다. 조금 더 넓은 국제 기준을 가져온다면,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벌에 더해서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벌까지도 체벌에 포함된다. 예컨대 나는 중학교 때 쓰레기통에 물을 받아와서 학생에게 끼얹는 벌을 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것은 직접적 통증을 주지 않더라도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체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대’는 사전적으로는 ‘괴롭히고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라고 정의되는데, 법적으로는 ‘아동학대’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하는 것과 아동의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 한민국 정부는 현재 모든 체벌을 학대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으며, 그럴 의지도 없는 것 같다. 학교 체벌의 경우에도 ‘직접체벌’(구타형), ‘간접체벌’(얼차려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며 체벌을 존속시키려고 하고 있는데다가, 그나마 금지한다고 한 구타형 체벌도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가 허용한다는 ‘간접체벌’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명백한 가혹행위로 폭행 아닌 학대의 유형에 잘 들어맞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말이다. 가정 체벌에 관해서 경찰은 언론을 통해 “모든 체벌을 학대라고 보기는 힘들어 그 정도와 지속성 등을 토대로 단순한 친권 행사인지, 아동 학대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라고 모든 체벌이 학대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체벌과 학대 사이에 질적 차이가 있는가?

여러 사례들을 확인해봤으나, 체벌과 학대의 구분선은 흐릿하기만 하다. 체벌 중에서도 ‘(내가/경찰이/검사가/판사가) 보기에 좀 심한 것’은 학대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학대가 아니라는 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 제로도 한국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든 체벌이 학대라는 규정에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도 어디부터가 학대인지 묻는다면 그 기준을 제시하지는 못하리라. 오히려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은 행위의 내용보다는 가해자의 의도이다. “아이를 위해서 한 것은 교육적 체벌이고, 아이를 괴롭히거나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은 학대이다.”라는 식으로. 그러나 학대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것은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행위의 내용이고 피해자의 경험이 되어야 마땅하다.

체벌 경험이 아이-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과, 학대 경험이 아이-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들을 살펴보면 두 결과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아동학대 경험이 있는 아이-청소년은 더 높은 공격성과 더 낮은 감정이입 능력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이 연구에서 신체적 학대 경험자로 분류된 상당수는 ‘종아리, 엉덩이 등을 맞음’, ‘빗자루로 맞음’ 등 학대로 잘 생각되지 않을 일상적 체벌을 경험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른 연구들에서도 부모로부터 신체적 학대 경험과, 공격성, 자기통제력 등이 관련이 있다는 결과가 제시되고 있다.

체벌 경험에 대해 연구에 따르면, 학교 체벌은 학교생활 적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폭력에 우호적 태도 및 공격성 강화는 바로 체벌로 인한 부정적 산물(영향)이다.” 체벌경험과 공격성, 부정적인 자아정체성 등 사이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고, 체벌을 처음 경험한 연령이 낮을수록 폭력선호도와 공격성, 스스로를 ‘문제아’로 인식하는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나서 체벌경험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자존감을 약화시키고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점에서 체벌과 학대는 정도의 차이가 보일 뿐, 동일한 범주에 있다. 또한 체벌과 학대를 구별하려고 하는 경우에도, 체벌의 사용이나 체벌에 대한 우호적 태도가 아동학대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역시 존재해서, 체벌이 곧 학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정서적 후유증이나 신체적 증상, 스트레스 등 역시 체벌 경험과 학대 경험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 러므로 체벌이 학대와 구별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정확한 정리가 아닐까? “체벌은 학대의 한 유형이며 사회통념상 허용되어온 체벌이란 약한 수준의 학대”라고. 폭행과 구타이든, 폭행 아닌 가혹행위이든, 신체적 고통을 주는 것을 징계 수단으로 삼는 체벌은, 아이-청소년의 존엄성을 인정한다면 당연히 학대의 일종으로 포함될 수밖에 없다.


법의 가능성과 한계


법 적으로 볼 때도 그러하다.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은 아동학대 중에서 형법상 폭행, 상해, 학대, 유기, 감금, 모욕 등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를 ‘아동학대범죄’의 한 종류로 규정하고 있다. 형법상 폭행은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규정되므로, 논리적으로 구타형의 체벌은 모두 폭행죄에 해당하며, 아동학대범죄에 들어간다. 또한 형법상 학대는 폭행 외의 가혹행위를 이르는데, 이는 신체적 고통을 주는 얼차려형의 체벌이나 모욕적이고 비인격적인 행위 전반에 적용해볼 수 있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의 국제인권규범들 역시 체벌을 금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모든 상황에서의 체벌의 전면 금지를 반복해서 권고하고 있다. 위원회는 ‘신체적 고통을 주는 벌’ 뿐만 아니라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대우 자체를 폭 넓게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9년, 유엔의 고문 등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협약>에 있는, 주로 고문 금지에 적용되어 오던 “고문 또는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취급 또는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에 대해 훈육 수단으로서의 체벌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체벌은 필요하거나 심지어 올바른 것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데 체벌은 올바른 것이고 학대는 나쁜 것이라는 식이므로, 대처에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체벌을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하는 것에 대해 망설임과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피해자인 아이-청소년은 부모나 교사 등을 경찰에 신고했을 때 특별히 큰 피해를 입증할 수 없다면 주변으로부터 쉽게 손가락질을 받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패륜’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최근 기사를 살펴보다가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반응 중 하나는 부모의 체벌을 경찰에 신고한 아이-청소년에 대해 “저런 애한텐 매가 약이다.”라는 식의 댓글들이 우르르 달리는 모습이었다. 학교 교사 등, 아동학대를 인지했을 때의 신고의무자들 역시 부모의 아동학대를 신고했다가 혹시 ‘가정파괴자’라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서 신고를 망설이게 된다. 이처럼 폭력에 관대하고 보호자-아동, 교사-학생 사이의 폭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요청하는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세 자체가 아동학대를 유지시키는 사회적 배경이다.

현재 체벌이라고 하면 주로 학교에서의 체벌 문제가 거론이 되는 편이고, ‘아동학대’는 주로 가정에서, 보호자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올해 9월 말부터 시행된 아동학대범죄처벌특례법 역시 주로 가정에서 보호자에 일어난 학대치사 사건들 때문에 입법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아동학대 관련 법들은 학교나 학원 등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흡연을 이유로 교사에게 지속적으로 체벌과 모욕을 받아온 중학생이 자살하자 경찰에서 가해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입건했다. 10월에도 영어 유치원 형태의 학원에서 아이를 방에 가둬두거나 밀쳐 넘어뜨리는 등의 행위를 해온 것이 아동학대죄를 적용받아 입건되었다. 또한,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왕따를 조장하고 종용한 담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문제는 체벌이나 학교에서의 학생인권 침해 등에 대한 ‘아동학대’ 혐의 적용이 일관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이슈가 된 사건이나, 피해자의 나이가 적고 보기에 정도가 심한 사건들 등, 극단적인 사례들이 주로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받고 있다. 이는 아동학대의 개념 자체가 포괄적이면서도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며, 관련 법이 주로 가정에서의 아동학대를 상정하고 짜여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적용은 문제가 된 특정 사건들을 엄벌하기 위해 아동학대 관련 법을 적용하는 양상을 띠게 되기 때문에 아동학대 개념을 명확히 하고 이를 예방하는 효과는 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학교와 가정을 포함하여 모든 체벌을 학대에 포함시키고 금지하며, 인권침해 사건들을 학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개입하는 것은 법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현재 대한민국 정부와 법원은 모든 체벌을 학대로 포함해서 보지 않고 있다. ‘사회통념상’ 체벌이 허용되고 있다는 해석 때문이고, 달리 말하면 정부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적용되는 아동학대 개념에도 상당히 불분명한 면이 있는데, 이는 아동학대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합의된 기준과 개념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동학대’의 범위를 넓히고 그 적용을 확실히 하는 것도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발달’은 어디까지인가?

모든 인권침해가 그렇겠지만, 아동학대 역시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아동학대 관련 제도들은 가해자를 모두 형사 처벌하기 보다는 보호조치나 조건부 기소유예 등의 장치를 두어서 재발방지와 치료, 그리고 예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손바닥 한 대 때려도 아동학대로 감옥에 가야 한단 말이냐?”라는 식으로 묻기보다는, 손바닥 한 대를 때리는 것도 아동학대가 될 수 있으며 따라서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학대 개념에 모든 체벌이 포함되어, 금지 대상이 되어야 한다.

현재 체벌의 정당성이나 아동학대 여부를 가리는 데 자주 언급되는 ‘사회통념’은 실체와 기준도 불분명하지만, 아동학대 여부를 논할 때 사회통념이 근거로 인용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아동학대 문제는 정말 그것을 경험한 아이-청소년의 입장에서 고려를 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폭력을 용인하는지 여부를 가지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결국 가해자 중심적인 논리일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는 아이-청소년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행위라고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정상적 발달’이라는 것이 단지 아이-청소년이 눈에 띄는 상해나 질병 없이 자라는 것만을 의미하는가? 폭력을 경험하고 폭력에 우호적인 성격이나 공격성을 가지게 되거나, 차별과 폭력을 내면화하게 되거나, 인격의 존엄성을 짓밟히는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정상적 발달’을 저해당하고 왜곡당하는 것 아닌가? 아이-청소년이 자유로운 정신과 인간에 대한 존중의 경험을 가지고 성장하게 하기 위한 더 적극적인 관점에서 ‘정상적 발달’이란 개념을 구성할 필요가 있고, 이에 근거해서 ‘아동학대’ 개념을 더 적극적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통계에 의하면 여전히 청소년들이 체벌을 가장 많이 경험하는 장소는 학교이다. 이는 대규모로 학생들을 모아놓는 학교의 특성과, 여전히 학교에서의 체벌도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서의 체벌도 아동학대의 개념을 적용해서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학교에까지 아동학대 관련 법을 적용하게 되면, 체벌 외의 각종 학교에서의 가혹행위나 일부 학생인권 침해 사건들까지 아동학대로 보고 대응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미 교사가 ‘왕따’를 조장하고 종용한 행위가 정신적인 학대라고 기소된 사례가 있었듯이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감금이나 모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벌, 심각하고 명백한 차별 행위나 강제 장시간 학습 행위 등도 ‘아동학대’라는 렌즈로 바라볼 수 있다. 무엇이 ‘아동학대’인지, 그리고 가정에서의 아동학대 뿐 아니라 다른 아동학대들까지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할지, 더 깊이 있으면서도 철저한 논의가 요구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