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4.16(세월호) 이후 교육이라는 유령

공현 2015. 4. 30. 12:59


4.16(세월호) 이후 교육이라는 유령


- 언젠가부터, 아마도 2014년 교육감 선거 직후부터였던 거 같은데, '4.16(세월호) 이후의 교육'이라는 어구가 자주 보인다. 심지어 교육청이나 교육시민단체들의 공식 토론회에서는 '4.16 체제'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 그러나 세월호참사가 과연 한국의 교육체제에 무언가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던가? 고등학생들이 많이 죽었다는 거 말고? 학교문화, 수업내용, 교육제도 전반을 '전환'할 사건이 아니었다는 점은 명백하다. 또한 실제로 그 사건 이후에 어떤 새로운 체제가 성립하거나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도 명백하다.

"4.16 교육체제"라는 말을 보다보면 오히려 4.16, 세월호참사의 구체적 내용은 사라지고 그걸 바라본 누군가들의 감정, 생각, 시선만이 남아있는 것 같다는 인상마저 받는다.


- 4.16 이후 교육의 내용은 모호하다.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을 벗어나겠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교육"이라는 막연한 선언은 있으나 그게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다. 출발점이 막연한 정서일 뿐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

그래서 그 내용을 채우기 위해서 기존의 담론들과 정책들이 동원된다. 학생자치 강화, 학생인권 보장, 혁신학교, 입시제도 개혁... 그런데 그게 왜 '4.16 이후 교육'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지, 왜 그렇게 불리고 묶여야 하는지 연결고리는 불분명하고 슬로건으로서도 직관적이지 않다. 심하게 말하면 그냥 좋은 것들을 모아놓은 것처럼도 보인다.

(고등학생들이 어떤 교육제도의 효과 때문에 더 많이 죽었다는 해석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나는 별로 그런 해석을 신뢰하지 않는다.)


- 4.16 이후 교육이라는 말이 그나마 실체를 얻는 곳은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인 듯하다. 소위 '민주/진보교육감'이라는 타이틀을 단 후보들이 다수 당선이 됐고, 그 배경에 세월호참사가 있다는 분석.

그런데 그 배경이라고 나오는 게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어른들 다수의 부모 마인드의 작동이나... '우리 애도 저렇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지금이라도 행복하게 살게 해야지'하는 기묘한 사고의 흐름 정도? -- 나는 그게 긍정적인 건지도 모르겠고, 지속성이나 실체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 여하간 '현재의 사회/교육으론 안 된다'라는 경각심 정도는 세월호참사가 줬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경각심을 줬다는 정도로 '4.16 이후 교육'이나 '4.16 체제' 같은 말을 쓰는 것은 무리스럽다. 과연 그게 그렇게 결정적인 사건이었는가.


-  거대한 사건 앞에서 사람들은 자꾸 그 사건을 해석하고 자기의 것으로 바꿔 오고 싶어 한다. 그런 감정이나 마음의 움직임 자체는 별로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거기에 휘둘리는 것이 정당하다는 건 아니다. 거대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든 그 사건을 우리의 문제의식 속으로 가져와서 해석하고 싶어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심하면 '견강부회'가 될 수밖에 없다. 혹은, 그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충격과 관심을 이용해서 자기들이 이익을 얻는 것이 되든지.

무력한 것은 무력한 대로, 상관 없는 것은 상관 없는 대로. 문제는 문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