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꿈

그 조롱의 창 끝

공현 2015. 6. 10. 04:49



최근 박근혜 번역기 등 박근혜 대통령의 문법에 잘 맞지 않고 의미가 모호한 발언들을 풍자하는 페이지 등이 많이 생기고 있다. 과거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이 자주 구설수에 올랐지만 최근에는 MERS 방역 실패 등 무능한 대처가 반보고디는 와중이기에 더 강해진 것 같다.


- 박근혜를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게 잘못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말을 조리있게 잘 하지 못하는 것"을 계속 놀림의 소재로 삼는 게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기분이 좋지 않다'라고 했다. 특별히 윤리적으로 크나큰 문제가 있어서 해선 안 된다거나, 잘못이라고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흔쾌히 받아들이거나 동참할 수 없는 껄끄러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 즉석에서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 문법에 맞게, 내용을 잘 전달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놀림받을 일일까? 그야 그게 반복되면 답답해하고, 힘들어하고, 지적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문체라면서 패러디가 계속 나오는 게 나는 마치 학교 교실에서 말을 더듬거나 횡설수설 하던 동급생을 그 말투나 말을 따라하면서 조롱하던 것이 연상되는 것이다.


- 대통령 같은 고위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 '말 잘하는 것'이 요구되는 덕목이어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정치인이 인기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달변인 것은 그에게 유리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유리한 일과 필요한 덕목은 다른 것이다. 만일 그가 좋은 사상이나 신념, 능력을 가지고 있고 실천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 좀 번잡하고 뒤죽박죽인 게 별 잘못이겠는가.

예컨대,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외모를 가진 것은 정치인에게 유리한 자산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 그런 외모를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그에게 결함이 있다고 하는 건 괜찮은 것일까? 유리함과 필요함은 다르다.


-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놀리는 감성에서, 나는 엘리트주의의 냄새를 맡고 만다. 말이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는 것을 비웃고 놀리고 거기에 공감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반대로, 그렇게 비웃고 놀리는 것이 마치 자신을 향하는 것처럼 느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언어 표현에 능숙하지 못하고 훈련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정이입을 하지는 않을까? 말이든 글이든 제대로 조리 있게 하지 못한 경험은 누구나 한번씩은 있을 것이다. 당황해서이든, 서툴러서이든. 그 경험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수용하고 있는지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반응도 달라질 것이다, 아마...

"말을 잘 못하는 건 사실이지 않느냐" 하는 식의 접근은 너무 능력주의적이다.

   ,,, 나야 잘은 모르지만 민중이나 계급이 어떻고 하던 분들에게는 극복해야 할 문제 아닐까


- 대통령이 생각이 없고, 대책이 없고, 말에 알맹이가 없는 것을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하기를 놀리고 풍자하는 그 밑바닥에는 그런 정부와 대통령의 무능함과 잘못에 대한 반감이 있을 것이다, 분명.

하지만 그 실속 없음, 알맹이 없음, 소통이 되지 않음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것과, 말이 문법에 맞지 않고 중언부언하고 잘 정리되지 않았음을 풍자하는 것은 다르다. 대통령의 위치상 그러는 게 둘 다 안 될 것이야 없겠으나, 후자의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한 조롱의 창 끝이 향하는 곳이 과연 박근혜 대통령 뿐일까?


- 좀 더 말하자면 이 문제는 대통령이나 고위직 정치인을 우리가 어떤 존재로 보느냐 하는 문제랑도 연관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의제 선거가 엘리트주의적일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들이 특정 의미의 엘리트이길 요구하고 그것을 당연시하지는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