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의제강간 연령 상향 법안 발의 소식을 들은 어느 여성 청소년이 보내는 편지> "차라리 이성애를 금지하면 어때요?"

공현 2016. 2. 16. 02:57


<의제강간 연령 상향 법안 발의 소식을 들은 어느 여성 청소년이 보내는 편지>
"차라리 이성애를 금지하면 어때요?"


지난 12월, 남윤인순 의원 등이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현 만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의제강간이란, 해당 기준 연령 미만의 사람과 만 19세 이상인 사람이 성관계를 했다면 그들끼리의 합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만 19세 이상인 사람은 강간범으로 간주하여 처벌하는 법입니다. 현행법에선 만 13세 미만인 사람과의 성관계 시에 적용하고 있지만, 이번 법안이 통과 된다면 만 16세 미만그러니까 한국나이로 17, 18세 미만인 사람과의 성관계도 강간으로 간주한다는 이야기지요. 17세인 제가 저보다 겨우 두 살 많은 애인이랑 성관계를 한다면 제 애인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철컹철컹하게 됩니다. 제가 아무리 동의한 관계라고 설명해도 소용없겠죠. 의제강간법상 저는 성관계를 할지말지 결정할 능력도 없는 미성숙한 존재니까요 ㅋ...


얼마 전, 연예기획사 대표가 중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무죄 판결을 받아 이슈였었죠. 또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범인이 판사들이 보기에 명시적인 '폭행' '협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나고 있지요. 네, 뭐, 저도 어이가 없어요. 굳이 말로 협박을 하지 않아도 제 꿈이나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제가 원치 않는 성관계를 요구하면 충분히 협박적인 것을!! 판사님들이 이것도 이해 못할 정도로 멍청한 이상 저는 강간을 당해도 보호받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의제강간 연령 상향법안을 들었을 때는 음 그래도 이거라도 있으면 나아지려나 싶기도 했구요.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걸 느꼈어요. 이 법안이 생겨도 만 16세 이상인 사람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부분이죠.



그래서 저는 의제강간 연령 상향보다 나은 걸 제안하려고 합니다. 이성애를 금지하자고 말이에요. 여자랑 성관계한 남자는 모두 처벌하자구요!


2014년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강간 가해자 중 98.7%, 유사상간 가해자 중 98.2%, 강제추행 가해자 중 98.2%, 기타 성폭력 가해자 중 98.2%가 남성입니다. 반면 강간 피해자 중 98.9%, 유사강간 피해자 중 84.5%, 강제추행 피해자 중 93.2%, 기타 성폭력 피해자 중 97%는 여성이죠. 또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통계에 따르면 가정폭력 상담사례 중 남편이 아내한테 폭력을 행사한 경우가 69.9%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3일에 1명의 여성이 남편, 애인 등 친한 남성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모두 이성애와 깊은 연관이 있고, 주로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행해진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관계 자체를 강간으로 간주해버리면 비록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하게 되긴 하지만, 어차피 여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당하면서 사는데요.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관계 유지를 위해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성관계를 하고 사는 여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을 보호하려면 남성이 여성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 자체를 막아버리는 게 낫죠. 여성이 먼저 요구했다고 남성이 거짓말을 할지도 모르니까 아예 이성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면 됩니다.


혹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멍청한 판사들이 성폭력이 뭔지도 몰라서 생기는 문제를, 여자들을 섹스 하고 싶은지 아닌지도 모르는 멍청이라고 설정해서 해결하겠단 거라구요? 이 문제는 의제강간으로 처리할 게 아니라 판사와 그 판결에 동의하는 이들한테 성폭력이 뭔지 똑똑히 가르쳐줘서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시죠? 근데 왜 청소년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을 못하셨을까!


저는 답을 압니다. 지난 12월 초 의제강간 기준 연령 상향을 논의한 국회 토론회에 청소년의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청소년을 어떻게 보호할 지를 결정하는데 보호 받을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결정하고 발의한 법안이 말이 될 리가 없죠.


나이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비청소년의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은 나이라는 일괄적 기준으로 의제강간을 적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청소년 인권 신장과 나이권력 철폐를 통해 해결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반대합니다.

ps. 청소년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싶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폭력인 체벌이나 좀 어떻게 해보세요. 아직도 많은 학교와 가정에서는 일상적으로 체벌이 일어납니다. 우리도 폭력 당하기 싫어요!



* 본 글은 여성 청소년이 보내는 편지로 구성한 논평입니다.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2016. 0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