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꿈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의 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더해주세요!

공현 2018. 12. 19. 18:23




[빽빽 프로젝트 후원 참가 호소 글]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의 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더해주세요!
- 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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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투명가방끈은 상근활동가가 누구예요? 누구한테 연락하면 될까요?” 못해도 열 번 정도는 들었던 질문 같습니다. 오랫동안 간단하게 “XXX예요.”라고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2006년부터 활동해온 아수나로나, 2011년에 만들어진 투명가방끈이나, 2016년 무렵까지 상근활동가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상근활동가를 두기 위한 노력 끝에 겨우 생기긴 했지만, 월급은 10–50만원 정도로, 반상근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단체 재정 규모를 보면 ‘여기까지 키운 게 어디냐’ 하는 뿌듯함도 들지만, 또 오르는 최저임금과 물가와 집 임대료 등을 보다 보면 도저히 쫓아가지 못하는 우리 임금 수준에 한숨이 나옵니다.

아주 가끔은 모욕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상근활동가도 없고 대표도 없으면 그냥 동아리 같은 거 아닌가요?” 물론 대표, 운영위원회, 이사, 이런 것들이 있어야 단체라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적어도 상근활동가가 있었다면, 한 달에 2-3번 모이는 것으로 활동이 운영되지 않고 상시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쉽게 우리가 어엿한 단체임을 주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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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단체들과 회의를 할 때면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체 활동가들은 보통 평일 낮 시간을 선호합니다. 그때가 그분들이 단체 근무를 하는 시간이니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전업 활동가가 없다 보니,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수업 때문에 안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따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은 일 때문에 안 되고……. 평일에 기자회견이나 대외적 행사 같은 것을 하려 하면, 실무를 챙길 사람도 빠듯합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과외/여가 활동’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공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평일-낮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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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 읽는 청소년인권 활동가의 의문>
(브레히트의 시 패러디)

누가 네 개의 광역지자체에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게 했는가?
신문에서 그대는 교육감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교육감들이 조례를 작성했는가?

몇 번이고 벌어지는 학생인권침해
누가 세상에 알리고 대응했는가?
활동가들이 관공서 건물에 앉아 있었던가?

국가인권위는 많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권고를 했다.
누가 진정을 내고 공론화했던가?
국회의원들은 학생인권법안, 청소년 참정권 확대 법안들을 발의했다.
그들이 혼자서 법안을 추진했던가?

두발자유가, 청소년 참정권이 공중파 TV 토론에서 다뤄지던 날 밤, 왜 활동가들은 패널로 초대받지 못했는가?
언론사 페이지에서 검색해보면 청소년인권에 관한 소식들이 잔뜩 나온다. 누가 그것들을 쓰고 말했는가?

조중동은 누구를 ‘운동권 고등학생/청소년’이라고 딱지를 붙였는가?
교육부는 누가 집회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공문을 보냈던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청소년인권이 새삼스레 거론된다.
누가 이 문제를 잊히지 않게 이야기해왔던가?
그 밑에 누구의 삶이 있는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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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청소년인권운동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고, 조금은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이 있었기에 두발자유가 이슈가 되고, 체벌금지가 논의되고,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선거 연령 하향을 포함해서 청소년 참정권이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많은 학교들에서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규정과 관행을 개선하기도 했고, 청소년인권침해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줌으로써 많은 청소년들에게 최소한의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주적 직선제 학생회를 요구했던 1980년대의 투쟁과 교육 민주화와 사회 변혁을 위해 나섰던 운동을 우리가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보철투’가, ‘우리나라 모든 고등학교가 인간적인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고등학생 정치 활동 쟁취’를 외쳤던 문제의식이 지금의 청소년인권운동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운동이 실체를 가지고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람이 이어져야만 합니다. 이 운동이 계속되고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인권운동에 터를 잡고 성장하는 활동가들이 정말 필요합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가로서 수십 년을 활동하고 인정받는 그런 활동가들이요. 학생인권을 개선시킨 것이 누구냐, 물으면 교육감들보다도 먼저 떠오를 그런 활동가들이요.

우리가 꿈꾸는,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꿈꾸는 운동이 먼저 만들어져야 하고, 우리가 꿈꾸는 운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제가 최근 함께 새로 만들고 있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준)’은 바로 그렇게 청소년인권운동의 활동가로 계속 삶을 꾸려가고 터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활동가조직입니다. 청소년인권운동의 전문성과 안정성이 있는 활동가들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더 크고 깊어진 청소년인권운동을 만드는 것을 꿈꾼다면, 꿈꾸었다면, 활동가의 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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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도요? 내가 누군가의 삶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도요?”
“그건...... 그건 지병 같은 거요. 그냥 앓고 사는 거요.”
- 웹툰 《송곳》

13년 동안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저는 참 많은 사람들을 운동으로 끌어들였고, 또 떠나 보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을 사는 것이니,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책임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 사람들이 청소년인권운동 안에 어떠한 지속 가능한 전망이 없었기 때문에 운동을 지속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제가 그런 전망을 마련하지 못하고 다른 직장을 구해 임노동과 활동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20여 년 전, 30여 년 전에는 어땠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지 않습니까. 경제는 발전했지만, 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먹고살기는 더 어려워졌다... 경쟁과 불안정의 시대다... 그 말은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인권운동을 열심히 할수록 구직과 생존의 경쟁에서는 더욱 불리해지고 그만큼의 시간과 기회를 잃게 된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우리 운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삶을 만들어내고 조직해내는 것이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청소년인권운동을 계속하며 살 길이 없고 어느 순간 그만두고 다른 먹고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면, 계속 함께 운동을 하자고 손을 붙잡는 것도 미안한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에 전념하는 것이 누군가의 삶을 망치는 거라는 두려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좀 더 뻔뻔해지고 싶습니다. 아니, 적어도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계속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는 정도의 기대는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는 청소년인권운동 활동가들의 인건비를 마련하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후원 참가를 약정했습니다.

저의 애정, 자부심, 책임감, 미안함, 두려움……. 그중 무언가에라도 공감하시는 분들은 꼭 참여해주십시오. 하실 여건이 안 되시는 분은 주변에 많이 소문이라도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기 후원 신청 안내 : http://cafe.daum.net/Life2010/8JLE/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