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꿈

시 - 갑자기 눈뜨는 것에도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공현 2008. 2. 22. 18:29



갑자기 눈뜨는 것에도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1

갑자기 눈뜨는 것에도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
다만 시계의 눈금은 열둘밖에 없어서
때론 수십년이 지난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그렇게 오랜만에 눈을 뜨게 되어도
시간이 피부를 어루만지는 감촉은
여전히 서늘하고 아릿하다

세상은 생각보단 얼마 바뀌지 않는다
나의 발치에 꿈이 수백개 쌓이는 동안에도
벽에 핀 곰팡이만큼밖에 삶들은 흐르지 않는다

2

그래 무엇이 날 깨웠나 저기를 살피려다
잊었던 숨을 들이쉬면 깨닫는 건
옷자락에 묻어 있는 투명한 냄새들

세상은 생각보단 얼마 바뀌지 않는 것이고
나는 또 눈을 감고 거짓말을 할 것이고
아무데도 없는 분노를 웅얼거릴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또 불현듯 눈을 뜰 것이다
옷자락에 배어 있는 건 투명한 슬픔의 냄새뿐이기 때문에
눈을 감은 동안 켜켜이 쌓여오기 때문에

갑자기 눈뜨는 것에도
이제는 놀라지 않는다